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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면을 쓴 스님】 웃는 얼굴 뒤에 숨은 도깨비

    태그 (Ta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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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Hooking ment)

    언제나 온화한 미소를 짓는 스님, 모두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그의 얼굴 뒤에 소름 끼치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면? 한밤중, 모두가 잠든 사찰에서 홀로 무언가를 하는 스님. 그의 방에서 흘러나온 기이한 소리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선한 얼굴에 가려진 추악한 진실, 그 충격적인 이야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디스크립션 (Description)

    깊은 산속, 고즈넉한 암자에 나타난 한 명의 스님. 늘 온화한 미소로 신망을 얻지만, 그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웠습니다. 한 젊은 수도승이 그의 정체에 의문을 품고 밤마다 기이한 행동을 하는 그의 뒤를 쫓기 시작합니다. 과연 가면 뒤에 숨겨진 그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요? 조선시대 사찰에서 벌어진 기묘하고도 오싹한 미스터리, 《사찰야담》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가면 쓴 스님의 등장

    금강산 깊고 깊은 골짜기, 속세의 소음이 닿지 않는 곳에 천 년의 세월을 품은 고찰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름은 정적암. 이름 그대로 아침저녁으로 울리는 목탁 소리와 풍경 소리만이 유일한 소음인, 고요하고 평화로운 수행처였지요. 이곳에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행이 깊고 마음이 강직하여 다른 스님들은 물론, 산 아래 마을 사람들까지 존경해 마지않는 현오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현오 스님은 매일 새벽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법당을 청소하고, 부처님께 올릴 맑은 정화수를 길어 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늘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고, 그의 걸음걸이는 구름 위를 걷듯 가벼웠습니다. 정적암의 모든 것은 늘 그러하듯,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규칙과 평화 속에서 고요히 흘러가는 듯했습니다.

    그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 것은, 안개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늦은 오후였습니다. 삿갓을 깊게 눌러쓴 한 스님이 홀연히 암자 앞에 나타났습니다. 스스로를 묘운이라 밝힌 그는, 온 나라의 명산을 유람하며 수행하던 중 정적암의 명성을 듣고 며칠간 머물며 가르침을 청하고자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주지 스님은 구름 같은 나그네 수행승을 반갑게 맞았고, 다른 스님들 역시 새로운 도반의 등장을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현오 스님은 묘운을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묘운 스님의 얼굴에는 늘 온화한 미소가 걸려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마당을 쓰는 동자승에게도, 심지어는 법당 기둥에 붙어있는 작은 거미에게조차 그는 미소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웠습니다. 마치 잘 깎아 만든 나무 인형의 얼굴처럼,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었지요. 특히 그의 눈은 기이했습니다. 입은 분명 환하게 웃고 있는데,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의 눈동자에는 그 어떤 감정도 비치지 않았습니다. 마치 맑고 투명한 유리구슬을 보는 듯, 공허하고 서늘한 기운마저 감돌았습니다.

    묘운 스님은 여러모로 보통 사람과 달랐습니다. 그의 경전 외는 소리는 물 흐르듯 유창했고, 지친 기색 없이 밤새도록 좌선에 들었으며, 궂은일에도 언제나 가장 먼저 나서서 스님들의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비가 새는 지붕을 수리할 때에는, 장정 서너 명이 끙끙대며 옮겨야 할 서까래를 혼자서 가뿐히 들어 올렸고, 가뭄으로 말라버린 우물터 옆에 새로운 샘을 찾아내는 신통력까지 보여주었습니다. 스님들은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이야말로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다. 저 깊은 수행의 경지를 보라.” 산 아래 마을 사람들도 묘운 스님의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와 병든 가족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거나, 어려운 집안 사정을 토로하며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묘운은 언제나 그 웃는 얼굴로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지혜로운 말로 그들을 위로했습니다. 그의 명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져, 이제는 정적암의 실질적인 어른처럼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모두가 묘운 스님을 칭송하고 따랐지만, 오직 현오 스님만이 그를 향한 의심의 끈을 놓지 못했습니다. 현오는 스스로를 다그쳤습니다. ‘나의 수행이 부족하여 저 높은 경지에 이른 스님을 시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이리 간악한 마음을 품는단 말인가.’ 그는 묘운 스님을 향한 불편한 마음을 지우기 위해 더욱더 고된 수행에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묘운 스님의 기이한 모습은 더욱 선명하게 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치 그림자처럼, 그의 마음속에서 어른거리는 그 서늘한 미소는 좀처럼 가시질 않았습니다.

    ※ 기이한 행적과 깊어지는 의심

    묘운 스님이 정적암에 머문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는 이제 암자의 모든 스님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지만, 현오의 마음속 의심은 안개가 걷히기는커녕 더욱 짙은 농무가 되어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묘운 스님에게는 다른 스님들이 이해하기 힘든 몇 가지 기이한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는 바로 공양이었습니다. 스님들은 하루 두 차례, 발우를 들고 공양간에 모여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소박한 나물과 밥 한 그릇이었지만,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는 것은 고된 수행 생활의 큰 낙이자 중요한 공동체 의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묘운 스님은 단 한 번도 공양에 참여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늘 웃는 얼굴로 “소승은 맑은 이슬과 소나무의 기운만으로도 족합니다.”라고 말하며 조용히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그의 높은 수행 경지에 감탄하며 ‘과연 신선과 같은 분’이라 여겼지만, 한 달 내내 밥 한 톨,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 사람의 얼굴빛이 어찌 저리도 좋을 수 있는지 현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묘운 스님의 뺨은 날이 갈수록 더욱 혈색이 돌고 윤기가 흘렀습니다.

    두 번째 기이한 점은 잠이었습니다. 스님들은 해가 지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잠시 눈을 붙이거나, 조용히 명상에 잠기곤 했습니다. 하지만 묘운 스님의 방에서는 밤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기이한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현오의 방은 묘운의 방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깊은 상념에 잠 못 이루던 현오는 무심코 밖으로 나왔다가 묘운의 방 창호지에 여전히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호기심에 이끌려 조심스럽게 방문 가까이 다가간 현오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방 안에서는 경전을 외는 소리도, 명상에 든 이의 고요한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딱… 딱… 딱…’ 하고 무언가 단단하고 날카로운 것으로 나무를 쪼는 듯한, 규칙적이면서도 섬뜩한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가 뼈를 갉아 먹는 소리 같기도 했고, 누군가 손톱으로 기둥을 긁어대는 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현오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황급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이후로 현오는 밤마다 그 소리를 들었고, 그때마다 묘운 스님의 웃는 얼굴 뒤에 감춰진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굳혀갔습니다.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하루는 장마로 인해 불어난 계곡물을 건너 땔감을 해 와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거센 물살에 젊은 스님들조차 발을 딛기 어려워 쩔쩔매고 있을 때, 묘운 스님이 나섰습니다. 그는 웃는 얼굴로 “소승이 먼저 길을 터보겠습니다.” 하더니, 성큼성큼 계곡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의 발이 물에 닿는 순간, 그를 중심으로 주변의 물살이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잠잠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심지어는 옷자락 하나 적시지 않고 계곡을 건넜습니다. 다른 스님들은 그 광경을 보고 “부처님의 가호가 함께하신다!”며 경탄했지만, 현오의 눈에는 그것이 신통력이 아니라 요사스러운 술법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또한 묘운 스님이 유독 동물의 피를 두려워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산토끼 한 마리가 매에게 쫓기다 부상을 입고 법당 앞으로 떨어졌을 때, 모든 스님들이 안타까워하며 토끼를 돌보려 했지만, 묘운 스님만은 피를 보더니 질색하며 뒷걸음질 쳤습니다. 언제나 온화하던 그의 웃는 얼굴이 그 순간만큼은 미세하게 경련하는 것을 현오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현오는 자신의 의심이 단순한 시기심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저것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의 탈을 쓴 무언가다. 하지만 주지 스님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묘운을 맹목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의혹을 제기했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이단으로 몰릴 것이 뻔했습니다. 현오는 깊은 고뇌에 빠졌습니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수행자로서의 사명감과, 그 진실이 가져올 파장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그는 밤새도록 번민해야 했습니다.

    ※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현오의 고뇌가 극에 달했던 어느 여름밤, 마침내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그날 밤은 유난히도 사나웠습니다. 하늘에는 시커먼 먹구름이 가득 몰려와 달빛 한 점 스며들지 못했고, 이따금씩 터져 나오는 번갯불이 천지의 명암을 순식간에 뒤바꾸었습니다. 귀청을 찢을 듯한 천둥소리와 함께 장대 같은 빗줄기가 사정없이 암자를 두들겨댔습니다. 모든 스님들이 일찌감치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공포에 떨고 있을 때, 오직 현오만이 홀로 깨어 있었습니다. 그의 심장 역시 천둥소리에 맞춰 쿵쾅거렸지만, 그것은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밤에야말로 저 기이한 스님의 정체를 반드시 확인해야겠다는 비장한 결심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뇌리에는 며칠 전, 주지 스님의 방에 걸려 있던 오래된 탱화 속 사천왕의 험상궂은 얼굴을 보고 유독 몸을 떨던 묘운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법을 수호하는 신장 앞에서 보이는 저 기이한 공포. 그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증거였습니다.

    현오는 숨을 죽인 채 자신의 방문을 열었습니다. 거센 비바람이 그의 얼굴을 때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푹 젖은 흙바닥을 조심스럽게 밟아 나갔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묘운의 방만이 목적지였습니다. 그의 방에서는 어김없이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폭풍우 소리를 뚫고, 그날 밤에도 어김없이 ‘딱… 딱… 딱…’ 하는 그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현오는 묘운의 방문 앞에 쭈그려 앉아, 어릴 적 동자승들이 장난삼아 뚫어 놓았던 작은 창호지 구멍으로 눈을 가져갔습니다. 방 안의 광경은 그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방 안에는 촛불 하나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고, 묘운 스님은 방 한가운데에 등을 보인 채 단정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자세가 이상했습니다. 그는 좌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두 손을 자신의 얼굴 쪽으로 가져가 무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현오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묘운 스님이 자신의 귀밑머리 어딘가를 더듬더니,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얼굴을, 마치 가면을 벗듯이, 앞으로 들어내어 바닥에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번개가 번쩍하고 어두운 방 안을 환하게 비추는 순간, 현오는 모든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바닥에 놓인 것은 언제나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던, 정교하게 만들어진 나무 가면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면이 벗겨진 묘운의 진짜 얼굴이 드러났습니다. 그 자리에 인간의 얼굴은 없었습니다. 그곳에는 시퍼런 피부에, 흉측하게 찢어진 입, 그리고 머리 양옆으로 돋아난 작은 뿔까지, 전설 속에서나 듣던 도깨비의 흉측한 몰골이 있었습니다. 도깨비는 자신의 길고 날카로운 손톱을 내려다보며, 다른 쪽 손톱으로 정성스럽게 다듬고 있었습니다. 현오가 밤마다 들었던 그 ‘딱, 딱, 딱’ 소리는 바로 도깨비가 자신의 손톱을 다듬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도깨비는 만족스러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인간 행세도 여간 고된 것이 아니로군. 이놈의 가죽은 어찌 이리 답답한지… 허나, 이 절의 정기만 다 빨아먹으면, 천 년 묵은 힘을 얻는 것도 시간문제다.” 그 순간, 너무나도 큰 충격에 현오는 자신도 모르게 ‘흡!’ 하고 숨을 삼키고 말았습니다. 그 작은 소리를 놓칠 리 없는 도깨비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습니다. 번갯불이 다시 한번 터지며, 창호지 구멍을 향한 도깨비의 붉고 번뜩이는 두 눈과 현오의 겁에 질린 눈이 정확히 마주쳤습니다. 시간은 영원처럼 멈췄고, 현오의 등 뒤로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습니다.

    ※ 공포와 고뇌

    그 붉고 번뜩이는 눈과 마주친 순간, 현오의 온 세상은 소리를 잃고 차갑게 얼어붙었습니다. 시간의 흐름마저 멈춘 듯한 그 찰나의 정적 속에서, 현오의 귓가에는 오직 자신의 심장이 미친 듯이 울부짖는 소리만이 가득했습니다. 도깨비는 입꼬리를 비틀어 흉측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쓰고 있던 온화한 미소의 가면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순수한 악의와 조롱이 깃든 진짜 미소였습니다. ‘들켰구나.’ 그 한마디가 현오의 머릿속을 벼락처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습니다. 공포가 목구멍을 틀어막아 쇳소리 같은 숨만 간신히 새어 나왔습니다. 이대로 죽는 것인가. 저 끔찍한 요물에게 정기를 빨리고 미라처럼 변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그의 정신을 갉아먹었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고, 빗물에 젖은 나뭇가지를 밟아 ‘우드득’ 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습니다.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현오는 모든 것을 내던지고 자신의 처소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둠 속을, 그는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짐승처럼 내달렸습니다. 뒤에서 도깨비가 쫓아오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확인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저 심장이 터져버릴 때까지, 다리가 부러질 때까지 달려야 한다는 본능만이 그를 지배했습니다.

    방에 도착한 현오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걸어 잠갔습니다. 얇은 나무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더욱 절망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방구석에 웅크린 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밤새도록 폭풍우는 멎지 않았고, 현오는 그 모든 소리가 도깨비가 자신을 찾아 문을 긁어대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그의 머릿속은 지옥과도 같은 혼돈에 빠져 있었습니다. 내가 본 것이 진실인가? 혹, 흉흉한 날씨 탓에 내 마음속 망상이 만들어 낸 헛것은 아니었을까? 수행이 부족한 나에게 마구니가 씐 것은 아닐까? 그는 필사적으로 자신이 본 것을 부정하려 애썼습니다. 그것이 진실이라고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감당해야 할 공포의 무게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뇌리에 박힌 그 시퍼런 얼굴과 붉은 눈동자는 아무리 고개를 저어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날이 밝아오고 폭풍우가 잦아들었지만, 현오의 마음속 폭풍은 더욱 거세게 몰아쳤습니다. 아침 공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을 때, 그는 차마 방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나가면, 그 ‘스님’을 마주해야만 합니다. 그 온화한 미소의 가면을 쓴 도깨비를 말입니다.

    그가 한참을 망설이고 있을 때, 방문 밖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현오 스님, 아직 기침 전이십니까? 어젯밤 비바람이 몹시 사나워 잠을 설친 것은 아니신지요.” 묘운의 목소리였습니다. 현오는 심장이 멎는 듯했습니다. 어제의 그 끔찍한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평소와 같은 맑고 온화한 음성이었습니다. 현오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자, 묘운이 다시 한번 말했습니다. “몸이 불편하신 것이라면, 주지 스님께 고하고 약이라도 지어 와야겠습니다.” 그 목소리에는 너무나도 진실한 걱정이 담겨 있어, 현오는 순간적으로 어젯밤의 일이 정말 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괜찮습니다… 곧 나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묘운은 “다행입니다.”라는 한마디와 함께 조용히 멀어져 갔습니다. 현오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못 박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저것은 단순한 요물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아는, 아주 영악하고 사악한 존재라는 것을. 방금 전의 그 다정한 목소리는 현오를 안심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나는 네가 어젯밤에 한 일을 알고 있다. 하지만 모른 척해주마. 그러니 너도 입을 다물어라.’ 하는 무언의 협박이었던 것입니다. 현오는 깊은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이 거대한 악의 앞에서,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젊은 수행승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결심과 계획

    며칠 동안 현오는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묘운 스님과 마주치는 것을 극도로 피했고, 법당 구석에 앉아 고개만 숙인 채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른 스님들은 밤새 이어진 폭풍우에 현오가 크게 놀라 몸져누운 것이라 생각하고 그를 걱정했지만, 그 누구도 그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는 공포의 실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현오의 눈에 비친 정적암은 더 이상 평화로운 수행처가 아니었습니다. 스님들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수척해 보였고, 예전 같던 활기찬 기운은 사라진 채 무겁고 축축한 기운만이 암자 전체를 감돌고 있었습니다. 도깨비가, 저 묘운이라는 가면을 쓴 요물이, 정적암의 맑은 정기를 조금씩, 아주 교묘하게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암자의 모든 스님들이 기력을 잃고 쓰러지거나, 심하면 목숨까지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암자는, 그리고 이곳의 스님들은 모두 자신이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이었습니다. 공포에 질려 숨어 있는 것은 수행자의 도리가 아니었습니다. 현오는 마침내 결심했습니다. 이대로 죽음과 같은 공포 속에서 말라 죽거나, 아니면 모든 것을 걸고 저 요물과 맞서 싸우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는 기꺼이 후자를 택하기로 했습니다.

    현오는 떨리는 발걸음을 옮겨 주지 스님의 처소로 향했습니다. 수십 년간 정적암을 지켜온 노스님이라면,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지혜를 빌려줄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주지 스님은 책상에 앉아 낡은 경전을 읽고 있었습니다. 현오의 창백한 얼굴을 본 주지 스님은 안경을 고쳐 쓰며 나지막이 물었습니다. “현오야, 네 얼굴에 어찌 이리 그늘이 가득하냐. 네 마음에 무슨 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게냐.” 현오는 주지 스님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고하기 시작했습니다. 묘운 스님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위화감부터, 공양을 하지 않는 점, 밤마다 들려오던 기이한 소리, 그리고 폭풍우 치던 밤에 목격했던 끔찍한 진실까지. 그는 하나도 빠짐없이, 두서없지만 진솔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주지 스님의 온화했던 얼굴은 점점 더 굳어져 갔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마친 현오는 깊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습니다. “주지 스님, 제가 망상에 사로잡혀 헛것을 본 것이라면, 저를 벌하여 주십시오. 하지만 만약 제 말이 사실이라면… 부디 이 암자를, 스님들을 구해주십시오.”

    한동안 깊은 침묵이 흘렀습니다. 주지 스님은 눈을 감고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현오에게는 그 시간이 영겁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이윽고 주지 스님이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네 말이 사실일 게다.” 현오는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주지 스님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고 엄중했습니다. “사실 나 또한 묘운이 온 뒤로 암자의 기운이 탁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허나 그 원인이 그에게 있을 줄은 차마 생각지 못했구나. 네가 아니었다면 우리 모두가 저 요물의 간계에 넘어가 큰일을 당할 뻔했다.” 주지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 쌓인 경전함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는 가장 아래 칸에서 누렇게 변색된 낡은 책 한 권을 꺼내 들었습니다. ‘벽사요람(辟邪要覽)’.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방법에 대해 적힌 비서(祕書)였습니다. “도깨비나 요물들은 그 본성이 음습하고 탁하여, 가장 순수하고 강한 양기(陽氣)를 두려워하는 법이다. 불법(佛法)의 힘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맑은 양기이니, 우리가 저것을 이기지 못할 리 없다.” 주지 스님과 현오는 밤이 깊도록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하지만,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다가오는 초하루, 모든 스님이 대웅전에 모여 아침 예불을 드릴 때, 저 도깨비의 정체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불법의 힘으로 그를 제압하기로 한 것입니다. 주지 스님은 현오에게 특별히 금강경의 한 구절을 알려주며, 예불 당일 그 구절을 온 마음을 다해 외울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악귀를 파괴하는 힘을 지녔다고 전해지는 구절이었습니다. 현오의 마음속에 자리했던 공포는 이제 뜨거운 사명감으로 변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 진실의 폭로와 최후

    결전의 날인 초하루 아침이 밝았습니다. 짙은 안개가 걷히고 맑은 햇살이 대웅전의 기왓장을 비추는, 유난히도 상서로운 아침이었습니다. 모든 스님들이 이른 새벽부터 몸을 정갈히 하고 대웅전으로 향했습니다. 묘운 스님 역시 평소와 다름없는 온화한 미소를 띤 채 스님들 사이에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그의 눈에는 곧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듯한 오만함마저 서려 있었습니다. 현오는 주지 스님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손은 가사 아래에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폭풍 전야처럼 고요했습니다. 그는 오직 주지 스님이 알려준 금강경의 구절만을 마음속으로 되뇌고 또 되뇌었습니다. 마침내 주지 스님이 목탁을 잡고 예불을 시작했습니다. 낭랑하면서도 힘 있는 그의 목소리가 대웅전 전체를 가득 채웠고, 다른 스님들도 일제히 그를 따라 경전을 외기 시작했습니다. 향냄새와 함께 신성한 기운이 법당 안을 감돌았습니다.

    예불이 중반에 이르렀을 때, 주지 스님은 현오에게 조용히 눈짓을 보냈습니다. 마침내 때가 된 것입니다. 현오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자신의 모든 기운과 신념을 담아 그 파사(破邪)의 구절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세상의 모든 현상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볼지어다!) 현오의 목소리가 대웅전에 울려 퍼지는 순간,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법당에 모셔진 거대한 금동 불상의 미간에서 한 줄기 눈부신 황금빛이 뿜어져 나와 곧장 묘운 스님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그 순간, 언제나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던 묘운이 “크악!” 하는 짐승과도 같은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살이 타는 듯한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다른 스님들은 눈앞의 광경에 경악하여 염불을 멈추고 웅성거렸습니다. 바로 그때, 묘운의 얼굴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얼굴을 덮고 있던 나무 가면이 산산조각 나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흉측한 도깨비의 본모습이 모든 스님들 앞에 드러나고야 말았습니다. 시퍼런 얼굴, 찢어진 입, 머리의 뿔까지. 도깨비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현오와 주지 스님을 향해 핏발 선 증오의 눈을 번뜩였습니다. “네 이놈들…! 감히 나를…!” 분노에 찬 도깨비가 날카로운 손톱을 세우고 현오를 향해 덮치려는 순간, 주지 스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네 이놈, 요망한 것! 부처님의 성스러운 법당에서 어찌 감히 날뛰느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주지 스님과 모든 스님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합쳐 금강경을 외기 시작했습니다. 수십 명의 스님들이 쏟아내는 강력한 불법의 힘은 거대한 빛의 파도가 되어 도깨비를 덮쳤습니다. 도깨비는 고막을 찢는 듯한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검은 연기 속으로 스러져 갔습니다. 잠시 후, 대웅전에는 부서진 나무 가면 조각과 매캐한 유황 냄새만이 남았을 뿐, 도깨비의 형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기나긴 악몽이 끝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대웅전에는 깊은 정적이 흘렀고, 이내 스님들은 다시 고요히 염불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염불 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맑고 청아하게 암자 전체에 울려 퍼졌습니다. 마침내 진정한 평화가 정적암에 돌아온 것입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가면을 쓴 스님’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선한 미소 뒤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은, 우리에게 겉모습만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어떤 진실이 담겨 있나요? 야담도감의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과 좋아요로 응원 부탁드립니다. 다음 시간에는 천상계에서 내려온 신비로운 여인이 한양에 나타나 벌어지는 이야기, 《한국야담선집》의 【천녀의 밤】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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