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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간은 그득한데 아무도 없구나. 스님의 한마디에 뒤집어 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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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돈 냄새가 진동하는 천석꾼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 하지만 마을 사람 그 누구도 그 집 앞을 지나려 하지 않습니다. 썩은 문드러진 시궁창 냄새보다 더 지독한 '독설'의 악취가 풍기기 때문이지요. 재물은 산처럼 쌓였으나 곁에는 개미 한 마리 남지 않은 외로운 노인. 어느 날 찾아온 낯선 스님의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습니다. 과연 어떤 뼈아픈 진실이 숨겨져 있을까요?"
※ 1: 금은보화로 쌓아 올린 외딴섬, 최 영감의 집
조선 팔도에서 물 맑고 산세가 수려하여 인심 좋기로 소문난 평화로운 어느 산골 마을, 그 아늑한 마을의 정중앙에는 주변의 소박한 초가집들을 발아래 두고 위압적으로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하고 으리으리한 고래등 같은 기와집 한 채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굽이굽이 이어진 넓은 길의 끝에 버티고 선 그 저택은 솟을대문 앞에 수백 년은 족히 묵었을 법한 거대한 아름드리 당산나무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집을 둘러싼 돌담은 장정 두세 명이 어깨 위로 목말을 타고 올라서도 그 안뜰을 훔쳐보기 힘들 만큼 아득하게 높고 견고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이 거대하고 철옹성 같은 저택의 주인은 마을 사람 그 누구도 감히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그저 숨죽여 천석꾼이라 부르는, 평생을 바쳐 산처럼 거대한 재물을 긁어모은 늙은 부자 최 영감이었습니다.
그의 기와집 뒤편으로 늘어선 수십 칸의 거대한 곳간들 안에는 흉년이 다섯 번을 내리 거듭하여 온 나라가 굶주림에 허덕인다 해도 끄떡없을 만큼,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최고급 쌀가마니들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단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빽빽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기거하는 화려한 안방의 자개 장롱 깊숙한 곳에는 캄캄한 밤중에도 눈이 부시도록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금괴와 은괴, 그리고 청나라에서 들여온 최고급 비단과 희귀한 패물들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가득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재물이 많으면 주변에 사람이 끓고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라 생각하지만, 참으로 기이하고도 기괴하게도 이 엄청난 부귀영화를 뉘고 있는 최 영감의 곁에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 너른 마당을 매일같이 쓸고 닦아야 하는 집안의 하인들마저도 주인의 발자국 소리나 헛기침 소리만 들리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마치 사나운 맹수를 피하듯 허둥지둥 헛간이나 장독대 뒤로 몸을 숨기기 일쑤였습니다. 그들은 깊은 산속의 굶주린 호랑이보다도 안방에 앉아 있는 최 영감을 뼛속 깊이 두려워했습니다. 마을 사람들 또한 사정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십 리 밖에서부터 최 영감의 그림자만 어른거려도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잰걸음으로 방향을 틀어 멀리멀리 도망치듯 피했고, 장터에서 혹여나 옷깃이라도 스칠까 봐 노심초사하며 숨을 죽였습니다. 심지어 동네 공터에서 흙장난을 하며 천진난만하게 뛰놀던 코흘리개 어린아이들조차 최 영감의 기와집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고, 부득이하게 그 집 앞을 지나가야 할 때면 마치 귀신 붙은 흉가를 지나가듯 숨을 꾹 참고 발소리를 죽인 채 쏜살같이 달아나버렸습니다. 그토록 많은 쌀과 돈을 가졌으니 온갖 아쉬운 소리를 하는 사람들과 식객들이 몰려들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어야 마땅할 터인데, 최 영감의 기와집은 마치 폭풍우 치는 깊은 바다 한가운데 홀로 둥둥 떠 있는, 생명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적막하고 고립된 외딴섬과도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이토록 최 영감을 피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그의 입에서 시도 때도 없이 뿜어져 나오는 너무도 지독하고 끔찍한 '악취' 때문이었습니다. 그 악취는 한여름 뙤약볕에 며칠을 묵힌 뒷간의 똥 냄새나, 구더기가 들끓으며 썩어가는 짐승의 사체 냄새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코를 틀어막거나 고개를 돌린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물리적인 냄새가 아니라, 사람의 가장 여리고 깊은 마음속을 예리하고 차가운 칼날처럼 푹푹 쑤시고 잔인하게 후벼 파서 평생토록 아물지 않는 깊고 붉은 흉터를 남기는, 참으로 소름 끼치고 악독한 '독설의 냄새'였던 것입니다.
최 영감은 마치 세상의 모든 불만과 짜증, 그리고 타인에 대한 끝없는 경멸을 등 뒤에 무거운 짐처럼 짊어지고 사는 사람 같았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 귀에 들리는 모든 일에 대해 꼬투리를 잡고 트집을 잡으며 숨 막히는 악담을 쉴 새 없이 퍼부었습니다. 어느 날 길을 가다 실수로 자신의 가죽신 앞코를 살짝 밟은 남루한 봇짐장수에게는 그 자리에서 멱살을 잡고, 조상 대대로 눈이 멀어 평생 흙바닥에서 개처럼 밥을 빌어먹다가 결국엔 객사하여 까마귀 밥이 될 것이라며 입에 담지도 못할 모욕을 수십 분 동안이나 쏟아냈습니다. 이웃집 담장 너머로 탐스러운 감나무 가지가 자기네 마당 쪽으로 한 뼘쯤 넘어오기라도 하면, 당장 하인들을 풀어 이웃집 대문을 걷어차게 하고는 남의 피 같은 재산을 호시탐탐 노리는 천하의 도둑놈 심보를 가졌다며 삿대질을 해댔고, 당장 관아에 고발하여 곤장을 쳐서 뼈를 부러뜨려 놓겠다며 반나절 내내 길길이 날뛰었습니다.
'내 굳건한 곳간과 이 눈부신 재산들은 내가 젊었을 적부터 먹고 싶은 것 안 먹고 입고 싶은 것 안 입어가며 피눈물 흘려 모은 내 목숨 같은 것들이야. 저 게으르고 무능하며 멍청한 것들이 어찌 감히 내게 손을 벌리고 내 주위를 알짱거린단 말이냐. 다 내 돈 냄새를 맡고 불나방처럼 꼬여들어 알량한 동정심에 기대어 굽신거리는 징그럽고 역겨운 버러지 같은 놈들뿐이지. 암, 그렇고말고. 내가 이 세상에서 믿을 것은 오직 쌀가마니와 번쩍이는 금붙이뿐이야.'
그는 언제나 사람들을 의심이 가득 찬 차가운 뱀 같은 눈초리로 곁눈질하며 훑어보았고, 평생토록 단 한 번도 남에게 따뜻한 위로나 다정한 격려의 말을 건넨 적이 없었습니다. 그가 얇은 입술을 달싹이며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맹독을 품은 독사가 뿜어내는 독기처럼 치명적이어서, 듣는 이로 하여금 깊은 수치심과 절망감에 휩싸여 며칠 밤낮을 식음을 전폐하고 뜬눈으로 지새우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비정한 세월이 흐를수록 최 영감의 성품은 바짝 마른 가시가 돋친 밤송이처럼 더욱 뾰족하고 날카로우며 험악해졌고, 그의 입에서 쉬지 않고 쏟아지는 언어의 독기는 온 마을의 맑은 공기를 오염시키고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시커먼 먹구름처럼 마을 전체를 뒤덮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정작 최 영감 본인은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슬금슬금 피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자신이 가진 엄청난 재물과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권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숭고한 위엄 때문이라고 굳게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넓고 서늘한 대청마루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 끝없이 펼쳐진 자신의 비옥한 문전옥답과 굳게 자물쇠가 채워진 거대한 곳간 문들을 번갈아 바라볼 때마다, 이따금씩 가슴 한구석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지독한 외로움과 공허함이 시리게 밀려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럴 때면 자신의 나약함을 들키기라도 할까 봐 억지로 헛기침을 크게 내뱉으며, 애꿎은 하인들을 향해 목소리를 더욱 높여 호통을 치고 악을 쓰며 자신의 허전하고 텅 빈 마음을 억지로 감추려 발버둥 쳤습니다. 돈과 재물로 세상 모든 사람을 무릎 꿇릴 수 있고 모든 행복을 살 수 있다고 굳게 믿으며 오직 황금만을 신처럼 섬기고 살아온 늙은 천석꾼의 으리으리한 집에는, 사람 사는 따뜻한 온기와 정겨운 웃음소리 대신 뼛속까지 차갑게 얼어붙게 만드는 씁쓸하고도 날카로운 금속성의 정적만이 맴돌고 있었습니다.
※ 2: 가슴을 후벼 파는 비수, 독설이 남긴 상처
유난히도 길고 지루하던 장마가 거짓말처럼 멈추고 하늘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비옥했던 논바닥조차 거북이 등껍질처럼 처참하게 쩍쩍 갈라지던 지독하고 원통한 가뭄이 든 어느 해 늦은 가을이었습니다. 최 영감 소유의 그 너른 논밭에서 허리가 끊어지도록 농사를 짓던 가엾은 소작농들은, 태양 빛에 바싹 타들어 가며 누렇게 죽어가는 벼 포기를 거친 손으로 부여잡고 하늘을 우러러 원망하며 마르지 않는 피눈물을 펑펑 흘려야만 했습니다. 멀고 먼 냇가에서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등짐으로 물을 퍼 나르고 온갖 정성과 피땀을 쏟아부었건만, 만물을 메말라 죽이려는 하늘의 매정한 뜻을 나약한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었지요. 결국 기다리고 기다리던 추수철이 다가왔지만, 빈 쭉정이뿐인 벼를 베어 거둬들인 곡식은 예년의 절반은커녕 삼 분의 일도 채 되지 않았고, 당장 오늘 저녁 늙으신 부모님과 어린 자식들의 입에 멀건 풀칠조차 하기 막막한 처참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 수많은 소작농들 중에서도 유독 하늘이 무심하다 여겨질 정도로 사정이 딱하고 기구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몇 해 전 역병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늙고 병든 노모와 갓난쟁이 딸을 키우고 있는 심성 고운 순박한 청년 칠성이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노모의 오랜 지병이 깊어져 매일 밤 피를 토하며 앓아누웠고, 독한 약값을 대느라 가뜩이나 쥐뿔도 없는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 이웃들에게 이자 높은 빚까지 잔뜩 끌어다 쓴 칠성이는, 가을걷이가 끝나고 최 영감에게 바쳐야 할 무거운 도지(소작료)를 내고 나면 당장 내일 아침거리조차 한 줌 남지 않는 캄캄한 벼랑 끝에 몰려 있었습니다. 칠성이는 며칠을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차가운 윗목에서 앓는 노모의 숨소리와 배고픔에 지쳐 울다 지친 어린 딸의 창백한 얼굴을 번갈아 보며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피가 배어날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고는,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최 영감의 으리으리한 기와집 솟을대문을 두드렸습니다. 평소 사람을 길가의 벌레나 짐승보다 못하게 취급하는 최 영감의 잔인한 성정을 마을 그 누구보다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기에 두려움과 수치심에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사정없이 떨렸지만, 당장 굶어 죽어가는 핏덩이 딸과 숨이 헐떡거리는 노모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알량한 체면이나 자존심 따위는 진흙탕 속에 짓이겨 버려야만 했습니다.
넓고 번듯한 대청마루에서 폭신한 비단 방석을 깔고 앉아 한가로이 값비싼 장죽(긴 곰방대)을 입에 물고 연기를 뻐끔거리던 최 영감은, 차가운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덜덜 떨며 울먹이는 칠성이를 향해 얼음장같이 차갑고 경멸이 가득 어린 시선을 짐짓 내리깔아 던졌습니다.
"아이고, 마님... 제발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요. 소인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올 한 해 가뭄이 너무도 심하여 도무지 바칠 곡식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방에 누워계신 늙은 노모는 병환이 깊어져 당장 숨이 넘어갈 지경이고, 핏덩이 같은 어린 딸자식은 며칠째 묽은 미음 한 숟갈 넘기지 못하고 굶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요. 제발, 제발 이번 가을 도지만이라도 반으로 깎아주시거나, 아니면 내년 봄에 보리 추수를 하면 어떻게든 두 배, 아니 세 배로 쳐서 갚을 테니, 제발 저희 식구 목숨만 부지할 수 있게 쌀 한 가마니만 빌려주십시오. 이 크나큰 은혜는 제가 평생토록 마님의 소나 말처럼 뼈가 부서지도록 일해서 꼭 갚겠습니다요! 제발 살려주십시오!"
거친 흙바닥에 퍽퍽 소리가 나도록 이마를 찧으며 피가 흐르도록 애원하는 칠성이의 절박하고 처절한 목소리에는, 듣는 이의 억장을 여지없이 무너지게 하고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는 깊고 깊은 슬픔이 가득 배어 있었습니다. 마당 한구석에서 빗자루질을 하며 그 끔찍한 광경을 숨죽여 지켜보던 늙은 하인들조차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 채 몰래 소매로 눈시울을 훔쳤지만, 대청마루에 앉아 있는 최 영감의 표정은 마치 차가운 화강암 바위처럼 단 한 치의 미동조차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곰방대를 재떨이에 탁탁 털더니, 입꼬리를 비릿하고 잔인하게 말아 올리며 칠성이의 찢어진 가슴을 갈가리 후벼 파고 숨통을 끊어놓을 끔찍한 독설을 너무나도 차분하고 서늘한 목소리로 뱉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썩어 문드러질 놈을 보았나. 비가 오지 않고 가뭄이 든 게 내 탓이란 말이냐? 네놈이 평소에 게을러 터지고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서 하늘이 벌을 내린 것을, 어찌 감히 내 소중하고 귀한 재산을 탐내며 거렁뱅이처럼 구걸을 하러 와? 병든 늙은 어미가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면 지게로 져다가 깊은 산속에 던져 버려 까마귀 밥이나 되게 하면 그만일 것이고, 젖 달라고 우는 쓸모없는 핏덩이는 길거리 봇짐장수나 지나가는 거지 발싸개한테나 적선하듯 던져 버려라! 짐승만도 못한 무능하고 천박한 놈이 어미와 자식새끼 하나 제대로 건사할 능력도 없으면서, 어디서 감히 뻔뻔하게 대문 안으로 기어 들어와서 남의 집 마당에 눈물 콧물 질질 짜며 동정심을 구걸해? 네놈 식구들이 굶어 죽든 피를 토하고 죽든 내 알 바 아니니, 당장 내 문전옥답에서 그 더러운 손 떼고 네놈 식구들 몽땅 산나무에 목이나 매달고 깨끗하게 죽어버리거라! 여봐라! 당장 저 재수 없고 더러운 놈을 멍석으로 둘둘 말아 몽둥이로 두들겨 패서 대문 밖으로 내쫓아 버리고, 소금을 한 바가지 뿌려라!"
최 영감의 얇은 입술에서 무자비하게 뿜어져 나온 말들은 시퍼렇게 날이 선 비수가 되어 칠성이의 가슴 한가운데를 무참히 찌르고 난도질했습니다. 칠성이는 당장이라도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끔찍한 참담함과 모멸감에 거친 흙 묻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흡사 상처 입은 짐승처럼 서럽게 울부짖으며 마당 흙바닥을 질질 끌려 대문 밖으로 무참히 내동댕이쳐졌습니다. 그 처참하고 끔찍한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돌리고 침을 뱉으며, 피도 눈물도 없는 최 영감을 향해 치를 떨며 끔찍한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흥, 어리석고 미련한 것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다고. 저런 천한 것들에게 동정을 베풀고 알량한 온정을 내어주면,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끝도 없이 기어오르는 게 저 버러지 같은 놈들의 더러운 본성이지. 내 목숨보다 귀한 내 재산은 오로지 나만이 지켜야 해.'
최 영감은 칠성이가 질질 끌려 나가며 남긴 흙먼지가 가라앉은 텅 빈 마당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속으로 그렇게 오만하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러나 굳게 닫힌 거대한 대문 안쪽, 텅 빈 고요한 마당에 늦은 오후의 쓸쓸하고 붉은 햇살이 길게 드리우자, 그의 단단한 가슴 속에서는 사람을 내쫓았다는 승리감이나 재산을 지켰다는 만족감 대신, 마치 뚫린 가슴 사이로 시리도록 차갑고 휑한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듯한 참으로 기이하고 서늘한 감각이 소름 끼치게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불쾌하고 두려운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외면하며, 마당 한구석에 서 있는 하인들을 향해 당장 우물물을 가득 퍼 와서 저 더러운 놈이 무릎 꿇었던 자리에 뿌려 흔적을 싹 다 지워버리라며 평소보다 더욱 신경질적이고 앙칼지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날카로운 독설로 사람을 가차 없이 베어버리고 밀어낼수록, 최 영감의 주변은 점차 그 누구도 다가갈 수 없는 칠흑 같은 짙은 어둠과 끝없는 적막 속으로, 그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깊고 깊게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 3: 바람처럼 찾아온 노승과 등골 서늘한 일침
그렇게 마을 사람 모두의 뼛속 깊은 원망과 서린 저주를 한 몸에 받으며, 겉으로는 누구보다 위풍당당하고 거만하지만 속으로는 영양분을 잃고 썩어가는 고목나무 둥치처럼 메말라가던 최 영감의 기와집에 어느 늦은 오후, 전혀 예상치 못한 낯선 불청객 하나가 소리 없이 찾아왔습니다. 잔뜩 찌푸린 하늘에 구름이 낮고 무겁게 깔려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듯 스산하고 차가운 늦가을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기분 나쁜 날이었습니다. 굳게 닫힌 솟을대문 너머로 '탁, 탁, 탁, 탁' 하는 무겁고 맑은 나무 마찰음, 즉 청아한 목탁 소리가 일정한 염불 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고요한 마당을 뚫고 무겁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따뜻한 온돌방에 누워 비단 이불을 덮고 배를 두드리며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던 최 영감은, 그 규칙적이고 거슬리는 소리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신경질적으로 몸을 벌떡 일으켰습니다.
"이놈들! 귀청이 다 떨어졌느냐!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겁도 없이 남의 집 귀하고 신성한 대문 앞에서 감히 땡깡을 부리며 염불질로 잠을 깨우는 것이냐! 당장 몽둥이를 들고나가서 소금 바가지를 냅다 대가리에 뿌려버리고 반쯤 죽여서 쫓아내지 못할까!"
최 영감의 서슬 퍼런 벼락같은 호통에 혼비백산하여 놀란 하인이 허둥지둥 잰걸음으로 달려가 육중한 대문을 삐그덕 열자, 그곳에는 곳곳이 낡고 해져서 기운 자국이 선명한 잿빛 승복을 걸치고 커다란 삿갓을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게 눌러쓴 노승 한 분이 그림자처럼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노승의 어깨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듯 푸른 이끼가 낀 듯한 낡은 바루(발우)가 매달려 있었고, 뼈만 남은 듯 앙상하지만 묘하게 단단하고 기품 있어 보이는 두 손으로 일정한 박자에 맞춰 흔들림 없이 목탁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최 영감은 툇마루에서 신을 꿰어 신고는 뒷짐을 거만하게 지고 마당으로 성큼성큼 걸어 내려와서는, 노승을 위아래로 불쾌하고 경멸 어린 눈빛으로 훑어보며 언제나처럼 날이 바짝 선 모욕적인 독설을 기관총처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디 쥐새끼처럼 산속에나 처박혀 있을 것이지, 마을까지 기어 내려와서 남의 단잠을 깨우는 근본 없는 땡중이냐? 보아하니 사지육신 멀쩡하고 힘도 제법 있어 보이는데, 땀 흘려 밭을 갈고 일할 생각은 추호도 안 하고, 그저 부처님 핑계나 대면서 이 집 저 집 문전을 기웃거리며 동냥질이나 구걸해 빌어먹고 사는 식충이 같은 늙은이로구나. 똑똑히 들어라! 내 곳간에는 곡식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쥐새끼들이 파먹고 썩어 문드러진다 해도, 너같이 일 안 하고 공짜 밥이나 바라는 도둑놈 심보를 가진 중놈에게 적선할 쌀은 단 한 톨, 아니 반 톨도 없으니, 그 재수 없고 시끄러운 목탁 소리 당장 집어치우고 썩 물러가거라! 너 같은 것들이 신성한 불도를 빙자해서 무지몽매한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기생충 같고 벼룩 같은 존재라는 걸, 이 똑똑한 최 영감이 모를 줄 알았더냐!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지 않으면 하인들을 시켜 네놈의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 놓을 것이다!"
최 영감의 입에서는 쉬지 않고 모욕적이고 끔찍한 악담과 저주가 폭포수처럼 무자비하게 쏟아졌습니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나 수행이 부족한 승려였다면 그 참을 수 없는 모욕에 얼굴이 시뻘겋게 붉어지며 화를 내고 맞서 싸우거나, 아니면 두려움에 쫓기듯 허둥지둥 도망쳤을 텐데, 참으로 기이하고도 서늘하게도 그 노승은 목탁 치는 것을 단 한 치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삿갓 아래 그림자로 반쯤 감춰진 주름진 얼굴에서는 분노나 굴욕감, 그 어떤 미세한 감정의 동요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최 영감이 숨을 헐떡이고 입가에 침을 튀겨가며 기나긴 악담을 간신히 멈춘 그 순간, 노승이 비로소 천천히 두드리던 목탁을 거두어 품에 안고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려 최 영감을 정면으로 똑바로 응시했습니다. 낡은 삿갓 너머로 번뜩이는 노승의 맑고 깊은 두 눈은, 마치 이승의 허울을 넘어 세상의 모든 숨겨진 이치와 사람의 썩어가는 영혼의 밑바닥까지 모조리 꿰뚫어 보는 듯, 끝을 알 수 없이 깊고 뼛속까지 서늘해지는 신비로운 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아아, 참으로 가엾고 한없이 불쌍한 중생이로다."
노승의 갈라진 입술 사이로 조용히 흘러나온 첫 마디는, 자신에게 모욕을 준 최 영감을 향한 분노나 원망이 아닌, 저 깊은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뼈저리고 거대한 연민이었습니다. 그 억양 없이 낮고 묵직한 목소리는 넓은 마당의 공기를 가르고 날아와, 오만함으로 가득 차 있던 최 영감의 가슴 한가운데를 커다란 무쇠 망치로 쿵 하고 강하게 내리치는 듯한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뭐, 뭣이 어째? 감히 뉘 안전이라고 그따위 혓바닥을 함부로 놀려! 이 동네, 아니 천하의 제일가는 으뜸 갑부인 나 최 영감에게 감히 불쌍하다고 망발을 지껄이는 것이냐? 이 미친 돌파리 땡중이 배가 고파 눈이 뒤집히더니 드디어 단단히 실성이라도 한 모양이로구나! 여봐라! 당장 이놈을 묶어라!"
최 영감이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핏대를 세우고 길길이 날뛰려 하자, 노승은 오히려 한 걸음 더 앞으로 묵직하게 다가서며, 조용하지만 뇌성벽력보다 더 무겁게 영혼을 짓누르는 목소리로 돌이킬 수 없는 일침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아하니 저 뒤편에 버티고 선 거대한 천석군의 곳간 안에는 당신이 일평생을 놀고먹고 펑펑 쓰고도 남을 재물이 그득하게 쌓여 있건만, 정작 당신의 곁을 돌아보시오. 당신과 따뜻한 밥 한 끼, 훈훈한 온기를 나눌 사람이라곤 개미 한 마리조차 곁에 남아있지 않구나. 당신이 평생을 바쳐 악착같이 모으고 쌓아 올린 것은 빛나는 금은보화가 아니라, 무고하고 가엾은 남의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살점을 도려낸 시커먼 원한과 끔찍한 저주의 탑뿐이다. 쯧쯧... 냄새가 나는구나, 아주 지독한 냄새가 나. 시뻘겋게 썩은 살이 뼈까지 파고드는, 세상 그 어떤 오물보다 지독하고 역겨운 시궁창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나. 이 으리으리하고 번듯한 집구석 전체가 당신의 그 더러운 입에서 뿜어져 나온 독설의 악취로 가득 차, 이미 생기는 모두 끊어지고 서늘한 죽음의 기운만이 스멀거리며 맴돌고 있거늘, 어리석고 눈먼 당신 본인만 그 끔찍한 지옥의 냄새를 전혀 맡지 못하고 구더기처럼 기어 다니는구나."
노승의 단호하고도 소름 끼치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평온하게 가라앉아 있던 기와집 마당에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차갑고 기괴한 회오리바람이 미친 듯이 휘몰아치며 최 영감의 온몸을 거대한 보이지 않는 뱀처럼 칭칭 옥죄어 감아왔습니다. 마당의 모래바람이 일고 낙엽이 하늘로 솟구치는 그 기괴한 바람 속에서는, 최 영감이 평생토록 남들에게 내뱉었던 끔찍한 저주 섞인 폭언들과, 그 비수 같은 말에 상처받아 남몰래 가슴을 치며 피눈물을 흘렸던 수많은 사람들의 처절한 곡소리가 소름 끼치게 환청처럼 한데 섞여 귓가를 사정없이 때리며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이, 이럴 수가... 대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내 숨통을 조여오는 이 알 수 없는 끔찍한 두려움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최 영감은 평생 돈의 힘을 믿으며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압도적인 공포와, 목을 졸라오는 알 수 없는 죽음의 짙은 그림자에 휩싸여, 그 자리에 두 발이 꽁꽁 얼어붙은 채 덜덜 떨며 노승을 경악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 서 있는 노승의 커다란 그림자가 순간, 검고 긴 도포 자락을 휘날리는 끔찍한 형상으로 변하여 기이하게 마당 전체를 덮어오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산중 스님의 훈계나 설교가 아닌, 이승에서 지은 무거운 업보를 당장이라도 심판하러 찾아온 저승사자의 서늘하고도 피할 수 없는 사망 선고의 경고장과도 같았습니다. 최 영감의 턱관절은 통제력을 잃고 덜덜 부딪히기 시작했고, 천석꾼의 철옹성 같던 오만한 세계가 뿌리째 흔들리며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선명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 4: 거울 속에 비친 흉측한 악귀의 몰골
기괴하고도 소름 끼치는 회오리바람이 한바탕 마당을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방금 전까지 서늘한 경고를 내뱉던 잿빛 승복의 노승은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신기루처럼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고 없었습니다. 텅 빈 마당에는 오직 바람에 쓸려간 흙먼지만이 매캐하게 가라앉고 있었고, 넋이 완전히 나가버린 최 영감 혼자만이 두 다리에 힘이 풀린 채 망부석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대문 앞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며 죄 없는 하인들의 머리채를 잡고 몽둥이찜질을 하며 불같이 화풀이를 해댔겠지만, 참으로 이상하게도 목구멍이 턱 막혀 단 한 마디의 목소리도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온몸의 솜털이 하나하나 쭈뼛 서고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묘하고도 기분 나쁜 공포감이 그의 전신을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불쌍하고 가엾은 중생이라니... 내 몸에서 시궁창 썩는 지독한 냄새가 난다니... 그게 대체 무슨 해괴망측한 헛소리란 말인가? 내가 조선 팔도에서 남부럽지 않게 떵떵거리며 사는 천석꾼 부자인데, 감히 땡중 주제에 나를 능멸해!'
최 영감은 애써 노승의 저주 같은 말을 무시하고 떨쳐내려 고개를 거칠게 내저었지만, 귓가를 맴도는 그 묵직하고 서늘한 목소리는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쫓기듯 허둥지둥 안방으로 도망쳐 들어온 그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신경질적으로 비단 요가 깔린 방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그의 안방은 평생토록 긁어모은 수천 냥의 어음 뭉치들과 어둠 속에서도 영롱한 빛을 발하는 최고급 옥장식들, 그리고 십장생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자개장으로 눈이 부시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그 찬란한 반짝임들이 마치 죽은 자의 무덤을 장식하는 부장품들처럼 한없이 차갑고 섬뜩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숨 막힘에 거친 숨을 몰아쉬던 최 영감은, 문득 방구석에 고풍스럽게 놓인 커다란 청동 거울 쪽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평소 그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그 거울 앞에 거만하게 앉아, 빳빳하게 다려진 값비싼 명주 비단옷의 맵시를 다듬고 자신의 꼿꼿하고 권위적인 위엄에 깊이 만족하곤 했지요. '그래, 나는 이렇게 완벽하고 부유한 사람이다. 저딴 미친 중놈의 헛소리에 흔들릴 내가 아니지.' 스스로를 위로하며 덜덜 떨리는 걸음으로 다가가 무심코 청동 거울 속을 들여다본 순간, 최 영감은 자신의 목을 강하게 옥죄어오는 끔찍하고도 압도적인 공포에 짐승처럼 억눌린 비명을 지르며 뒤로 크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습니다.
"으, 으아아악! 저, 저, 저게 대체 무엇이냐! 저 끔찍한 괴물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것이냐!"
청동 거울 속에 뚜렷하게 비친 것은, 기름진 음식을 먹어 윤기가 흐르던 천석꾼 부자 최 영감의 기품 있는 얼굴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거울 속에는 두 눈이 끝없는 탐욕과 시기심에 물들어 시뻘겋게 충혈된 채 툭 튀어나와 있었고, 얇은 입술은 누군가를 저주하듯 시커멓게 죽어 기분 나쁘게 비틀리고 찢어져 있는 흉측한 형상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최 영감을 경악하게 만든 것은, 거울 속 괴물의 벌어진 입과 온몸의 땀구멍에서 마치 시체를 태우는 듯한 검고 끈적끈적한 진흙 같은 연기가 쉴 새 없이 끊임없이 피어오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시커먼 연기는 마치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 숨 쉬는 것처럼 흉측하게 꿈틀거리며 거울 안의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현실의 최 영감의 코끝까지 한여름 뙤약볕에 며칠을 방치해 둔 썩은 짐승의 고기 냄새와 비릿한 피비린내가 뒤섞인 듯한, 도저히 숨을 쉴 수 없는 지독한 악취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최 영감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이 참혹한 현실을 부정하며, 덜덜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두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조심스레 매만져 보았습니다. 그러자 거울 속의 흉측하고 시커먼 괴물 역시 똑같이 뼈만 앙상하게 남은 기괴한 손을 천천히 올려 자신의 썩어가는 얼굴을 쓰다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허상이나 환상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평생을 남의 가슴에 잔인한 비수를 꽂고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며 살아온 최 영감 본인의 썩어 문드러진 영혼의 진짜 민낯이었고, 그가 평생 쉴 새 없이 내뱉은 독설과 악담이 형상화되어 들러붙은 끔찍한 악귀의 몰골이 바로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아아... 이, 이게 정녕 내 진짜 모습이란 말인가... 노승이 말했던 그 지독하고 역겨운 시궁창 냄새가, 바로 내 썩은 영혼에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였단 말인가...'
최 영감은 차가운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자신의 하얀 머리칼을 거칠게 쥐어뜯으며 짐승처럼 절규했습니다. 그 순간, 평생 자신이 쏟아냈던 온갖 독기 어린 말들이 하나둘씩 생생한 환청이 되어 귓가를 찢어질 듯이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길바닥에서 밥을 빌어먹다 객사할 놈!", "자식새끼들과 목이나 매달고 당장 죽어버려라!", "짐승만도 못한 무능하고 천박한 놈들!" 그가 타인을 향해 무심코 던졌던 그 잔인한 저주들은, 이제 수만 개의 시퍼런 화살이 되어 도리어 그의 가슴 한가운데를 무수히 뚫고 들어와 박히고 있었습니다. 그는 비로소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헛기침 소리만 들어도 벌벌 떨며 도망쳤던 이유가, 자신을 우러러보고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서 풍기는 이 지독하고 끔찍한 업보의 악취를 피해 코를 막고 도망쳤다는 뼈아프고도 참담한 진실을 온몸으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방 안을 숨 막히게 가득 채운 금은보화와 화려한 비단들은 이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그 어떤 위로나 방패도 되어주지 못했고, 오직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숨 막히는 고립감과, 죽음보다 더한 끔찍한 공포만이 그의 영혼을 어둠 속으로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 5: 검은 도포 자락의 그림자, 저승사자의 경고
밤이 깊어질수록 으리으리한 안방의 온도는 한겨울 살얼음판처럼 차갑게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최 영감은 덜덜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장롱에서 최고급 목화솜이 든 두꺼운 요와 이불을 여러 채 꺼내어 겹겹이 산처럼 뒤집어쓰고는, 캄캄한 방구석에 쥐새끼처럼 잔뜩 웅크린 채 식은땀을 흘리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습니다. 극도의 공포와 환청에 시달리며 단 1초도 눈을 붙이지 못한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바로 그 순간, 굳게 잠겨 있던 안방의 창호지 문이 바깥에서부터 스르륵, 하는 소름 끼치는 마찰음을 내며 스스로 열리더니, 방 안으로 달빛조차 얼어붙게 만들 듯한 스산하고 푸른 안개가 소리 없이 뱀처럼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짙은 안개 속에서, 칠흑같이 검은 도포 자락을 길게 끌며 보통 사람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거대하고 불길한 그림자 하나가 삐걱이는 툇마루를 넘어 천천히 방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섰습니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그 존재는 밀랍처럼 창백하고 핏기 하나 없는 얼굴에 시커멓게 죽은 입술을 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낮에 마당에서 보았던 그 회색 승복의 노승과 똑같이 세상의 모든 생명을 앗아갈 듯 서늘하고 깊은 눈빛을 한 저승사자였습니다. 최 영감은 당장이라도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튀어나올 듯한, 숨조차 제대로 들이마시지 못하는 극한의 공포에 짓눌려 겹겹이 쌓인 이불 밖으로 두 눈만 겨우 내민 채, 입술을 파르르 떨며 짐승처럼 앓는 소리만 내고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는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어둠이 내려앉은 화려한 방 안을 한 바퀴 쓱 둘러보더니, 이내 최 영감이 평생 목숨보다 더 아끼고 사랑했던 금괴와 옥구슬이 가득 찬 화려한 자개 장롱을 향해 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습니다. 그러자 챙그랑! 와장창! 하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그토록 값비싸고 영롱했던 옥구슬과 금붙이들이 와르르 바닥으로 쏟아져 내리더니, 방바닥에 닿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시퍼런 불꽃을 내며 타올라 한 줌의 시커먼 재로 변해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이게 무슨 짓이오! 내 피 같은 재산이! 내 목숨 같은 돈이!"
극한의 두려움 속에서도 재물이 눈앞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하는 것을 보자 반사적으로 이불을 걷어차고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온 최 영감을 향해, 저승사자는 이승의 모든 미련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서늘하고 묵직한 금속성의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자여. 아직도 네 눈앞에서 재로 변해버린 저 한 줌의 헛된 티끌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목숨을 거느냐. 네가 평생 남의 가슴에 잔인한 대못을 박고 피눈물을 쥐어짜며 악착같이 쌓아 올린 이 알량한 재물들은, 네놈이 저승의 서늘한 문턱을 넘는 그 순간 너를 끝없이 타오르는 지옥의 가장 깊고 잔혹한 불구덩이 밑바닥으로 영원히 끌어내릴 무겁고 끔찍한 형벌의 쇳덩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정녕 모른단 말이냐."
저승사자가 품속에서 낡고 검은 가죽으로 덮인 명부를 스르륵 꺼내어 허공에 펼치자, 그곳에는 다른 이들의 이름과는 다르게 최 영감의 이름 석 자만이 금방이라도 피가 뚝뚝 떨어질 듯 시뻘건 핏빛으로 섬뜩하게 물들어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네가 평생 혓바닥으로 내뱉은 수많은 독설과 잔인한 악담은 스스로의 영혼을 시궁창보다 더럽게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었고, 그 지독하고 역겨운 원념의 악취가 이승을 넘어 저승의 명부에까지 코를 찌르듯 진동을 하여 내가 직접 네놈의 목줄을 끊어 데리러 온 것이다. 보아라, 네놈의 천석꾼 곳간이 터져나갈 듯 쌀가마니로 그득하면 무엇하겠느냐. 네가 오늘 밤 이승을 하직하고 지옥으로 떠날 때, 네놈의 식어가는 시신 곁에서 슬퍼하며 눈물 한 방울 흘려줄 이가 천지 사방에 단 한 명도 없거늘. 너는 이미 살아서 숨을 쉬고 있었을 뿐, 오랫동안 온기 하나 없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끔찍하게 고독한 지옥의 감옥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최 영감은 저승사자의 그 무자비한 심판의 말을 듣는 순간, 그제야 자신의 70년 평생의 삶이 얼마나 철저하게 망가지고 부서져 있었는지 뼛속 깊이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평생 돈과 권력만을 맹목적으로 좇으며 자신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짓밟고 벌레 취급하며 살아온 결과가, 이토록 참혹하고 시린 고독과 영원히 끝나지 않을 끔찍한 형벌일 줄은 꿈에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무릎이 깨지는 것도 모른 채 저승사자의 검은 도포 자락 발밑에 바짝 엎드려, 두 손을 싹싹 비비며 핏물이 맺히도록 처절하게 애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자님, 대감님! 제발... 제발 이 못난 놈을 딱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틀렸습니다, 제가 완전히 잘못 살았습니다! 돈의 노예가 되어 미쳐 있었던 제 더러운 입이, 제 칼날 같은 혓바닥이 가장 큰 죄악이었습니다! 저에게 남은 생의 시간을 아주 조금만, 단 며칠만이라도 허락해 주신다면, 날이 밝는 대로 당장 제 모든 재산을 가난하고 굶주린 이웃들에게 남김없이 나누어 주고, 평생 남을 위해 머리를 조아리고 봉사하며 제 이 끔찍한 입버릇을 반드시 고치겠습니다. 제발, 제발 이 비참하고 외로운 지옥불에서 저를 한 번만, 단 한 번만 구해주십시오!"
최 영감의 탁한 두 눈에서는 일평생 단 한 번도 흘려본 적 없는, 뼈를 깎는 참회와 회한의 뜨거운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 차가운 방바닥을 흥건하게 적셨습니다. 저승사자는 최 영감의 그 처절하고 절박한 눈물과 피맺힌 절규를 한참 동안 차갑게 내려다보다가, 펼쳤던 붉은 명부를 탁 소리 나게 덮으며 짙은 어둠 속으로 나지막하게 속삭였습니다.
"이승에서의 시간과 업보는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일 아침 붉은 해가 산등성이로 떠올랐을 때, 네놈의 거대한 곳간이 여전히 탐욕으로 그득하게 채워져 있다면, 내 사정없이 네놈의 목에 오랏줄을 걸어 지옥불로 끌고 갈 것이다."
그 서늘한 최후통첩의 말을 끝으로 저승사자의 우뚝 솟은 거대한 모습은 푸른 안개와 함께 이슬처럼 스르륵 흩어져 버렸고, 박살 난 옥구슬의 잔해만이 뒹구는 방 안에는 다시 숨 막힐 듯 짙은 어둠과 무거운 적막만이 무섭게 내려앉았습니다.
※ 6: 텅 빈 곳간과 꽉 찬 마음, 진정한 부자의 길
다음 날 아침, 밤새 뒤척이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터로 나가기 위해 집을 나섰을 때, 그들은 최 영감의 거대한 기와집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무지 믿기 힘든 광경에 자신의 두 눈을 강하게 비비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일 년 삼백육십오 일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굳게 자물쇠가 채워져 있던 커다란 솟을대문이 활짝, 담장 끝까지 열려 젖혀져 있었고, 언제나 번쩍이는 비단옷을 입고 대청마루에서 곰방대를 물고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호통을 치던 최 영감이, 세상에나, 죄인이 입는 거칠고 하얀 소복 차림으로 흙먼지가 날리는 마당 한가운데 납작 엎드려 모여드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연신 고개를 숙이며 절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을 여러분, 이 늙고 어리석은 죄인을, 부디 천벌을 받을 이 몹쓸 늙은이를 불쌍히 여겨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일평생 눈앞의 돈과 재물에 눈이 멀고 귀가 먹어, 착하고 선량한 여러분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크나큰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칼자국 같은 상처를 드렸습니다. 오만하게 굴었던 제 썩어빠진 입에서 뿜어져 나온 독설들이 타인을 찌른 것을 넘어 결국 제 자신의 영혼마저 악귀처럼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었다는 것을, 죽음의 문턱에 가서야 이제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제발 저의 이 크나큰 죄업을 꾸짖어 주십시오!"
눈물 콧물로 얼굴이 엉망이 된 최 영감은 놀라 굳어있는 하인들에게 즉시 명하여, 자물쇠로 겹겹이 잠겨 있던 수십 칸의 천석꾼 곳간 문을 모두 활짝 열어젖히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며칠 전 도지를 깎아달라 애원하다가 모욕을 당하고 쫓겨나 가뭄에 굶어 죽어가고 있던 소작농 칠성이를 가장 먼저 집 안으로 불러들여 무릎을 꿇고 사죄한 뒤, 마을의 헐벗고 가난하고 병든 이웃들을 모두 마당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최 영감은 자신의 두 손으로 직접,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무거운 쌀가마니와 번쩍이는 엽전 꾸러미를 지게에 가득가득 실어 아낌없이 나누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억지로 떠안고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부당한 빚 문서와 노비 문서들은 그 자리에서 모조리 화로에 던져 넣어 재로 불태워 버렸고, 추운 겨울을 대비할 옷이 없는 헐벗은 이들에게는 자신의 장롱에 있던 따뜻한 명주 비단옷을 손수 어깨에 덮어 입혀주었습니다.
"자, 어서들 가져가십시오. 이것들은 본래부터 옹졸한 제가 가질 것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이 피땀 흘려 일군 땀방울이자 저 때문에 흘린 억울한 눈물의 결정체이니 모두 가져가서 배불리 드십시오. 부디 이 못나고 악독한 늙은이의 지난날의 짐승만도 못한 악행을 이것으로 조금이나마 거두어 주시고 덜어주소서."
처음에는 이 끔찍한 호랑이 영감이 하룻밤 새 미쳐서 수작을 부리는 것이라며 잔뜩 겁을 먹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동네 사람들도, 핏방울이 맺힐 듯 엎드려 비는 최 영감의 진심 어린 참회의 눈물과, 아낌없이 내어주는 따뜻한 나눔의 손길 앞에서는 서서히 굳고 얼어붙었던 마음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기 시작했습니다. 재물을 건네는 그가 내뱉는 말들은 더 이상 남의 가슴을 후벼 파는 가시 돋친 끔찍한 독설이 아니었습니다.
"허리가 아프실 텐데 짐이 너무 무겁지 않게 조심히 덜어 가시게나", "칠성아, 그동안 자네 식구들에게 몹쓸 짓을 해서 정말 죽을죄를 지었네, 이 돈으로 어서 노모의 약부터 지어 드리게", "날씨가 차가워지니 아기 감기 들지 않게 비단으로 포대기를 꼭 해 입히시게나".
그것은 최 영감이 70년 평생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의 안위를 걱정하며 진심을 담아 건네는, 너무나도 다정하고 따뜻한 위로와 축복의 말씨였습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최 영감이 곳간의 쌀을 비워내고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따뜻한 말을 한 마디씩 건넬 때마다,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죽음의 끔찍한 공포와 영혼에서 풍겨 나오던 악취는 봄눈 녹듯 흔적도 없이 사르르 사라져 갔고, 대신 그 텅 빈 가슴 속에서부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먹먹한 평온함과 인간으로서의 벅찬 감동이 따뜻하게 차올랐습니다.
붉은 노을이 내려앉는 저녁 무렵, 천석꾼의 거대했던 곳간은 싹싹 긁어 나눈 탓에 먼지 하나 없이 텅텅 비어 쥐새끼 한 마리조차 굶어 죽을 지경이 되었지만, 반대로 최 영감의 널찍한 마당은 그를 향해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전하는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웃음소리와, 사람 사는 정이 넘치는 정겨운 대화 소리로 빈틈없이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날 밤, 텅 빈 곳간을 뒤로하고 소박한 방에 홀로 조용히 앉은 최 영감은 다시 한번 두려움을 떨치고 청동 거울을 깊숙이 들여다보았습니다. 거울 속에는 더 이상 시궁창 냄새를 풍기던 흉측하고 끔찍한 악귀가 아닌, 평온하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눈물이 맺힌 주름진 늙은이의 맑은 얼굴이 촛불에 비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텅 빈 곳간 대신 사람들의 진심 어린 따뜻한 온기로 꽉 차오른 자신의 벅찬 가슴을 두 손으로 조용히 어루만지며, 창호지 문 너머 밝게 빛나는 보름달을 향해 깊고 편안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날 밤 저승사자는 끝끝내 그를 데리러 다시 찾아こ지 않았고, 최 영감은 남은 여생을 입에는 항상 따뜻한 덕담을 품고 손에는 끝없는 나눔을 실천하며, 그 누구보다 곁에 사람이 붐비는 진정한 천석꾼 부자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유튜브 엔딩 멘트
"천석꾼 최 영감의 텅 빈 곳간,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무심코 던진 날카로운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가슴에는 평생 남는 상처가 되고, 결국 나 자신의 영혼마저 갉아먹는 독설의 냄새가 된다는 사실,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입술에는 어떤 향기가 머물고 있나요? 따뜻한 말 한마디로 내 곁을 사람의 온기로 채우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야담이 마음에 와닿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잊지 마세요! 다음 시간에도 가슴을 울리는 서늘하고 감동적인 저승사자 야담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