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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가 진정 사랑한 사냥꾼

황금 인생 21 2025. 8. 13. 00:25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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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호가 진정 사랑한 사냥꾼 (출처: 용재총화)

    태그 (20개)

    #구미호, #조선시대, #야담, #전설, #사랑, #용재총화, #사냥꾼, #비극, #로맨스, #판타지, #초월적사랑, #오디오드라마, #라디오드라마, #옛날이야기, #설화, #운명, #선택, #괴물, #인간

     

    후킹멘트 (250자 내외)

    인간의 간을 탐하는 요물, 구미호. 하지만, 만약 그 구미호가 한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짐승의 본능과 인간의 사랑 사이, 그 비극적인 경계에 선 한 연인의 이야기. 당신의 심장을 저미게 할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야담이 지금 시작됩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성현의 '용재총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애절한 사랑 이야기. 산의 정기를 품은 고독한 사냥꾼 '태웅'은, 자신이 쫓던 신비로운 여우에게서 운명적인 이끌림을 느낀다.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여인 '연'과 거부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의 정체는 바로 천 년 묵은 구미호. 본능과 사랑, 그 잔인한 갈림길에서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 고독한 사냥꾼, 운명과 마주치다

    태백산맥 깊은 곳, 인간의 발길이 쉬이 닿지 않는 산골에 태웅이라는 사냥꾼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곰의 어깨와 범의 눈빛을 가진 사내였지요. 마을 사람들은 그를 산의 주인이라 불렀습니다. 그는 바람의 냄새로 짐승의 길을 읽었고, 흙의 온기로 날씨를 점쳤으며, 그의 화살은 단 한 번도 목표물을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산의 일부였고, 산 역시 그의 일부였습니다. 그는 짐승을 사냥했지만, 그들을 증오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생존 본능과 야성을 존중했지요. 자신 역시 그들과 같은, 이 거대한 산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필요 이상으로 사냥하지 않았고, 어린 짐승이나 새끼를 밴 어미는 결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평생 처음 보는 기이한 짐승과 마주친 것은, 단풍이 핏빛처럼 산을 물들이던 어느 늦가을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산의 분위기는 이상하리만치 고요했습니다. 마치 모든 짐승이 숨을 죽이고, 거대한 포식자의 등장을 두려워하는 듯했지요. 태웅은 직감적으로 무언가 특별한 놈이 나타났음을 깨달았습니다.

    얼마나 산을 올랐을까. 그의 눈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들어왔습니다. 바위 위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여우 한 마리. 그런데 그 모습이 여느 여우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털은 첫눈처럼 새하얗고, 몸집은 웬만한 중개(中介)보다 컸으며, 무엇보다 아홉 개로 갈라진 꼬리는 금빛 가루라도 뿌린 듯 햇살 아래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태웅은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습니다. 마을 노인들에게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던, 천 년 묵은 구미호가 틀림없었습니다. 사냥꾼의 본능이 그의 피를 끓게 했습니다. 저 신물을 잡는다면, 그는 조선 최고의 사냥꾼으로 역사에 기록될 터였습니다. 그는 소리 없이 활을 들어 시위를 당겼습니다.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해지고, 그의 모든 신경이 화살 끝에 집중되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여우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태웅을 바라보았습니다. 태웅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우의 눈. 그 눈에는 짐승에게서 흔히 보이는 공포나 경계심이 없었습니다. 그 안에는 인간보다 더 깊은 지성과, 세상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한 오만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뒤덮는 처연한 슬픔이 담겨 있었습니다.

    마치 ‘너도 나와 같은 고독한 존재로구나’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 태웅은 평생 처음으로 심장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산의 주인이었고, 늘 사냥하는 자의 입장에 서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사냥 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저 눈빛에, 저 영혼에, 통째로 사로잡히는 듯한 느낌. 시간은 영원처럼 늘어지고, 두 고독한 포식자는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서로를 응시했습니다. 팽팽했던 태웅의 팔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갔습니다. 그는 저도 모르게 활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사냥꾼으로서의 본능을, 그의 존재 이유 자체를 거스르는 행동이었습니다. 여우는 그런 그를 잠시 더 바라보다가, 이내 가벼운 몸놀림으로 바위에서 뛰어내려 안갯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졌습니다. 태웅은 한참 동안이나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여우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의 가슴속에는 이제껏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기묘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냥감을 놓친 아쉬움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 무언가 운명적인 것과 조우했다는 강렬한 예감이었습니다.

    ※ 덫에 걸린 여인, 야성의 이끌림

    그날 이후, 태웅은 매일같이 홀린 사람처럼 산을 헤맸습니다. 하지만 그 신비로운 백여우는 두 번 다시 그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지요. 그러던 어느 비 내리는 밤이었습니다. 겨울을 재촉하는 차가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태웅은 자신이 설치해 둔 덫을 확인하러 숲으로 들어섰습니다. 멧돼지라도 잡혔을까 싶어 다가간 덫에는, 그러나 짐승이 아닌 사람이 걸려 있었습니다. 비에 흠뻑 젖은 하얀 소복 차림의 여인. 그녀는 날카로운 올무에 발목이 걸린 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태웅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가 얼굴을 살폈습니다. 그리고는 숨을 멈췄습니다. 칠흑 같은 머리카락, 비현실적으로 하얀 피부, 그리고 굳게 닫힌 입술. 인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그녀를 안아 일으키려다, 문득 그녀의 얼굴에서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며칠 전 마주쳤던 그 백여우의 눈빛. 묘하게도, 정신을 잃은 이 여인의 얼굴에서 그 오만하고도 슬픈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태웅은 잠시 망설였지만, 빗속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단검으로 올무를 끊고, 기절한 여인을 둘러업었습니다. 작고 가벼울 것이라 생각했던 여인의 몸은, 이상하리만치 묵직하고 탄탄한 기운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인을 자신의 오두막으로 데려와 눕혔습니다. 발목의 상처는 깊었고, 비를 맞아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그는 묵묵히 마른 옷으로 그녀의 몸을 닦아주고, 상처에 약초를 찧어 발라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밤새 불을 지피며 그녀의 곁을 지켰지요. 다음 날 새벽녘, 여인이 희미한 신음과 함께 눈을 떴습니다. 태웅은 또 한 번 숨을 멈춰야 했습니다. 바로 그 눈.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백여우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 눈이었습니다. 여인은 자신을 ‘연’이라 소개하며, 기억을 잃었다고 말했습니다. 태웅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그녀가 여우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는 매일 사냥에서 돌아와 그녀를 간호했습니다. 말없이 죽을 끓여 먹이고, 약초를 갈아주었지요. 두 사람 사이에는 많은 대화가 오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침묵 속에서, 그들은 서로가 같은 종류의 영혼임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서로의 눈빛 속에서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과 깊은 고독을 발견했던 것이지요.

    상처가 아물어 갈 무렵의 어느 밤, 달빛이 창틈으로 스며들던 밤이었습니다. 태웅이 잠든 그녀의 발목에 약을 발라주려 할 때, 연이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녀의 손은 차가웠지만, 그 손길에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습니다. “왜… 저를 살리셨습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물안개처럼 몽환적이었습니다. 태웅은 대답 대신, 그녀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모르겠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 순간, 두 사람을 가로막고 있던 모든 경계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연이 그의 거친 손을 자신의 뺨으로 가져갔습니다. 사냥꾼의 굳은살 박인 손과 요물의 부드러운 살결이 맞닿는 순간, 두 사람의 몸에서 동시에 뜨거운 불꽃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것은 이성적인 판단이나 감정적인 교류를 넘어선, 훨씬 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이끌림이었습니다. 태웅은 거칠게 그녀를 품에 안았고, 연은 그런 그를 기다렸다는 듯 받아들였습니다. 맹수와 맹수가 서로의 힘을 겨루듯, 두 야성의 영혼은 어둠 속에서 격렬하게 서로를 탐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신의 일부로 삼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에 가까웠습니다. 그날 밤, 사냥꾼은 처음으로 사람의 온기를, 구미호는 처음으로 짐승이 아닌 한 사내의 체온을 알게 되었습니다.

    ※ 불안한 행복, 숨길 수 없는 본능

    그날 이후, 연은 태웅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기억을 잃었다는 그녀를, 태웅은 자신의 아내로 받아들였지요. 두 사람의 삶은 꿈처럼 행복했습니다. 태웅이 사냥을 나가면, 연은 오두막을 정갈하게 정리하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태웅은 난생처음으로 누군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연은 수천 년의 고독 속에서 처음으로 따스한 안식처를 얻었습니다. 태웅이 사냥해 온 짐승의 가죽을 벗기면, 연은 신묘한 솜씨로 그 가죽을 부드럽게 무두질하여 옷이나 이불을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손길이 닿으면, 뻣뻣하던 가죽이 비단처럼 부드러워졌지요. 그녀는 또한 산의 모든 풀과 나무의 이름을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어떤 독초가 약이 되는지, 어떤 버섯을 먹어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알았지요. 태웅은 그런 그녀의 신비로운 모습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그는 그녀가 평범한 인간이 아님을, 어쩌면 자신이 마주쳤던 그 백여우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짐작했지만, 굳이 확인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이 행복이 깨어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행복이 깊어질수록, 불안의 그림자 또한 짙어졌습니다. 태웅은 연이 자신이 사냥해 온 고기를 결코 불에 익혀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그저 태웅을 위해 음식을 조리할 뿐, 자신은 숲에서 따온 이름 모를 열매나 풀뿌리로 끼니를 때우곤 했지요. 그러면서도 그녀의 힘은 장정인 태웅을 능가하는 듯했습니다. 한번은 태웅이 사냥에 실패하여 며칠간 굶주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다음 날 아침, 오두막 문 앞에는 목이 막 끊긴 듯한 신선한 노루 한 마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태웅이 놀라 묻자, 연은 그저 운 좋게 발견했다며 웃어넘길 뿐이었지요. 하지만 태웅은 보았습니다. 그 노루의 목덜미에 나 있는, 날카로운 송곳니 자국을. 또, 그녀의 몸에서는 언제나 기묘한 향기가 났습니다. 짙은 꽃향기 같으면서도, 그 끝에는 비릿한 피 냄새와 흙냄새가 섞인 듯한, 야성의 향기. 그 향기는 태웅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사냥꾼으로서의 본능을 날카롭게 자극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다 장에 내려가면, 사람들은 태웅의 곁에 선 연을 보며 수군거렸습니다. 어디서 굴러 들어온 여인인지, 얼굴은 천사 같은데 눈빛은 여우 같다며 쑥덕거렸지요. 태웅은 그럴 때마다 연의 손을 더욱 굳게 잡고, 그들의 시선에 맞서 으르렁거리는 맹수처럼 굴었습니다. 그는 그녀를 지켜야만 했습니다. 그녀의 정체가 무엇이든, 그녀가 어디에서 왔든, 그녀는 이제 자신의 세상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녀의 비밀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고, 그녀의 본능을 눈치채고도 사랑으로 덮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사냥꾼은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깊은 숲 속에 숨어도, 짐승은 결국 자신의 냄새를 숨길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의 불안한 행복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 위에서 추는 위태로운 춤과도 같았습니다.

    ※ 퍼져가는 의심, 마을의 위협

    두 사람의 행복은 얇은 살얼음판 위에서의 춤과도 같았습니다. 그 얼음판 아래에서는, 차갑고 어두운 의심의 물결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지요. 변화는 마을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밤마다 외양간의 닭이 사라지고, 울타리를 부수고 들어와 염소를 물어 죽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굶주린 늑대나 스라소니의 소행이라 여겼지만, 피해는 점점 더 대담해졌습니다. 마침내 한 아이가 애지중지 키우던 삽살개마저 목이 물어뜯긴 채 발견되자, 마을의 공기는 공포와 분노로 뒤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어느새 하나의 목소리가 되어, 산꼭대기에 사는 태웅의 오두막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냥꾼 놈이 괴상한 여인을 데려온 뒤부터 이 모든 일이 시작됐어.”, “그 여자 눈을 봤나? 꼭 여우 눈처럼 사람 홀리는 기운이 있다니까.”, “필시 산의 요물, 여우고개(여우가 넘어가는 고개에 산다는 요물)가 틀림없어. 태웅이 놈은 그년한테 홀려서 정신을 못 차리는 게야!” 그들의 두려움은 논리를 마비시켰고, 알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는 연을 완벽한 희생양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소문은 바람을 타고 태웅의 귀에도, 그리고 연의 귀에도 들어왔습니다. 태웅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마을로 내려가 소리치는 자들의 모가지를 비틀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연의 입지만 더욱 위험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저 묵묵히, 이전보다 더 많은 짐승을 사냥해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그들의 분노를 잠재우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오히려 기름을 붓는 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요물 아내의 죄를 덮기 위해 애쓴다고 더욱더 손가락질했지요.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연이었습니다. 그녀는 태웅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를 위해 완벽한 인간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천 년을 살아온 짐승의 본능은, 그녀의 의지만으로 억누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밤이 되어 태웅이 잠들고 나면, 그녀의 귓가에는 마을에서 들려오는 가축들의 피 냄새, 공포에 질린 심장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손톱을 살이 파이도록 움켜쥐며, 피를 갈망하는 끔찍한 본능과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마을의 가축을 해치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지만, 때로는 기억나지 않는 밤의 행적과,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입가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비릿한 흔적 때문에 스스로를 의심하며 절망에 빠졌습니다.

    어느 날 밤, 태웅은 잠에서 깨어 연이 곁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불안감에 오두막을 나섰다가, 달빛 아래 홀로 서 있는 연의 뒷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가녀린 어깨를 떨며, 인간처럼 서럽게 울고 있었습니다. “제가… 제가 괴물이라서 죄송합니다. 당신 같은 분을 사랑해서… 죄송합니다.” 그녀의 울음 섞인 고백에, 태웅의 심장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그는 조용히 다가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았습니다. 그녀의 정체가 무엇이든 상관없었습니다. 그에게 그녀는 더 이상 요물도, 인간도 아닌, 그저 자신이 목숨 걸고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떨리는 어깨를 감싸 안으며, 다가올 비극을 예감했습니다. 세상이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차가운 결심을 다졌습니다. 만약 세상이 그녀를 버린다면, 자신 또한 기꺼이 세상을 버리리라고. 오두막 주위로, 마을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와 횃불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밤이었습니다.

    ※ 사냥꾼의 선택, 인간에게 등을 돌리다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분노와 공포가 극에 달한 마을 사람들은, 쇠스랑과 낫, 그리고 이글거리는 횃불을 손에 들고 태웅의 오두막으로 몰려왔습니다. 그들의 선두에는 마을의 촌장과, 태웅에게 늘 질투심을 느끼던 다른 사냥꾼 무리가 서 있었지요. 그들의 눈은 이성을 잃고 광기에 번들거리고 있었습니다. 촌장이 목청을 높여 소리쳤습니다. “이놈, 태웅아! 당장 문을 열고 그 요물을 내놓거라! 네가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면, 그 요사스러운 것을 네 손으로 처단하여 마을의 화를 막아야 할 것이다!” 그의 외침에, 마을 사람들은 동조하며 “요물을 내놓아라!”, “오두막을 불태워라!”라고 외쳐댔습니다. 오두막 안에서, 연은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났다는 공포보다, 자신 때문에 태웅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에 더욱 절망했습니다. 그녀는 태웅의 옷소매를 붙잡고 눈물로 애원했습니다. “제발… 저를 버리고 낭군님이라도 사셔야 합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게 저의 운명인 것을요.”

    태웅은 그런 연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녀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주며, 아주 희미하게 미소 지었습니다. 그것은 체념도, 슬픔도 아닌, 모든 것을 결정한 자의 평온한 미소였습니다. 그는 연의 손을 놓고, 벽에 걸려있던 자신의 대궁(大弓)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성난 군중 앞에 홀로 섰습니다. 태웅의 등장은 광분하던 군중을 순간적으로 침묵시켰습니다. 산의 주인으로서 그가 가진 위압감은 여전했기 때문이지요. 촌장이 다시 한번 소리쳤습니다. “태웅아! 마지막 기회다! 그 여자를 내놓고 우리에게 돌아오너라! 네 종족을 택하란 말이다!” 태웅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한때 자신이 지켰던 마을 사람들의, 무지와 공포에 휩싸인 얼굴들을 천천히 둘러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조용히 화살 한 대를 뽑아 시위에 걸었습니다. 그의 움직임에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그는 활을 가득 당겨, 촌장이 들고 있던 횃불의 심지를 정확히 조준했습니다. 쉭!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화살은 정확히 횃불을 꿰뚫었고, 가장 밝게 타오르던 불꽃이 허무하게 사그라들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경악하여 뒷걸음질 쳤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경고이자 선전포고였습니다. 태웅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밤의 정적을 갈랐습니다. “여기는 내 집이다. 그리고 내 아내가 있는 곳이다.” 그는 다시 화살 한 대를 시위에 걸며, 군중을 향해 말했습니다. “살고 싶으면, 당장 이 산에서 내려가라. 이 경계를 넘는 첫 번째 자는, 내 화살에 심장이 꿰뚫릴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마을의 사냥꾼 태웅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영역과 암컷을 지키려는, 한 마리 거대한 맹수의 으르렁거림이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선택을 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무리를 버리고, 자신의 유일한 짝을 지키기로. 그는 기꺼이 인간 세상에 등을 돌리고, 사랑을 위해 고독한 맹수가 되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횃불의 불빛 아래, 사냥꾼과 마을 사람들 사이의 숨 막히는 대치가,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치닫고 있었습니다.

    ※ 아홉 개의 꼬리, 사랑을 위한 변신

    팽팽한 긴장감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태웅에게 질투심을 품고 있던 사냥꾼 하나가, “저놈이 요물에게 홀려 미쳤다!”고 소리치며 그에게 덤벼들었습니다. 그것을 신호로, 이성을 잃은 군중이 함성을 지르며 오두막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태웅은 맹수처럼 움직였습니다. 그는 날아드는 쇠스랑을 활대로 쳐내고, 달려드는 사내의 명치를 발로 차 쓰러뜨렸습니다. 그의 움직임은 인간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자연 그 자체의 분노처럼 거칠고 효율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적으로 열세인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가 한 명을 쓰러뜨리면, 두세 명이 동시에 그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결국 한 마을 사람이 던진 돌멩이에 이마가 찢겨 피가 흘렀고, 등 뒤에서 기습적으로 날아온 창날이 그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크윽!” 태웅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는 비틀거리면서도 눈을 부릅뜨고 활시위를 놓지 않았지만, 점차 힘이 빠져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오두막 안에서, 세상을 찢을 듯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것은 슬픔과 분노, 그리고 체념과 사랑이 뒤섞인,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영혼의 절규였습니다. 쾅! 오두막 문이 산산조각 나며, 눈을 멀게 할 듯한 눈부신 백색광이 터져 나왔습니다. 성난 군중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습니다. 빛이 가라앉은 자리에 서 있는 것은, 더 이상 가녀린 여인 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의 달을 가릴 만큼 거대한 몸집, 온몸을 뒤덮은 순백의 털, 그리고 밤하늘을 향해 춤추듯 너울거리는 아홉 개의 거대한 꼬리. 그 눈은 분노의 황금빛으로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천 년 묵은 구미호가,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마침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구미호는 포효했습니다. 그 울음소리에 산천이 떨고, 웬만한 사내들은 오금을 저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거나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구미호는 도망치는 이들을 쫓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태웅에게 달려들었던 자들을 향해 섬광처럼 달려들었습니다. 그녀의 움직임은 바람과도 같아서, 사람들은 그저 거대한 흰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는 것만을 느낄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손에 들려있던 쇠스랑과 창은 종잇장처럼 구겨져 나갔고, 몸은 거대한 힘에 의해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멀리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살육이 아닌, 완벽한 제압. 그녀는 자신의 압도적인 힘으로, 그저 사랑하는 이에게 향했던 위협을 모조리 치워버리고 있었습니다.

    아수라장이 끝나고, 공터에는 쓰러진 태웅과, 그를 보호하듯 서 있는 거대한 구미호만이 남아있었습니다. 구미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피를 흘리는 태웅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분노로 불타던 눈빛은, 어느새 깊고 애틋한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태웅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는 상처 입지 않은 팔을 뻗어, 그녀의 거대한 몸에 손을 얹었습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 그는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이제야… 너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보는구나. 여전히… 아름답다, 연아.” 그의 말에, 구미호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습니다. 그녀의 거대한 몸이 다시 빛에 휩싸이며, 점차 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태웅이 처음 만났던, 신비롭고 아름다운 백여우의 모습으로 돌아갔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인간 세상에서의 삶은, 그렇게 끝이 난 것이었습니다. 태웅과 여우는 서로를 마주 보았습니다. 더 이상 인간과 요물이 아닌, 그저 서로의 유일한 짝으로서. 훗날 사람들은, 그날 이후로 사냥꾼 태웅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다만, 깊은 산속에서 달빛을 받으며 함께 걷는 거대한 사내와, 그 곁을 떠나지 않는 아홉 꼬리 여우를 보았다는 나무꾼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올 뿐이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냥꾼과, 인간이 되고 싶었던 구미호. 두 고독한 영혼의 사랑 이야기는 비극이었을까요, 아니면 진정한 행복의 시작이었을까요. 어쩌면 그들은 서로의 진짜 모습을 받아들여 줌으로써, 세상의 그 어떤 연인보다 완벽한 사랑을 이룬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애틋한 사랑도 있지만, 인간의 잔혹함이 부른 끔찍한 복수 이야기도 있습니다. 다음 야담도감 시간에는, 어유당 유몽인의 ‘패관잡기’에 실린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바로 ‘하녀를 능욕한 악귀 같은 주인’ 이야기입니다. 구독과 좋아요로, 다음 이야기를 함께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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