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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에서 이름을 지운 도사 『해동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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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저승의 절대적인 장부, 명부에서 이름이 하얗게 지워지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죽음을 거부하고 영생을 탐하여 스스로 이름을 지워버린 천재 도사와, 그를 잡기 위해 지상으로 파견된 저승차사 삼인방의 기상천외한 추격전. 구름을 타고 바위로 변하는 도사의 신묘한 술법과 차사들의 끈질긴 추격 끝에 마주한 생과 사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묘하고도 철학적인 야담이 지금 펼쳐집니다.
씬1: 저승을 뒤집어 놓은 전대미문의 사건
서늘하고도 묵직한 기운이 영원토록 맴도는 곳, 이승의 모든 생명이 마지막으로 당도하게 되는 종착지인 저승. 그곳의 가장 깊숙하고도 신성한 중심에 자리한 명부전은 억조창생의 생과 사를 기록하는 붓소리만이 스스슥, 스스슥 하며 쉼 없이 울려 퍼지는 엄숙하고도 절대적인 공간입니다. 수백 명의 판관들이 산처럼 높게 쌓인 대나무 죽간과 두꺼운 한지 장부들을 넘기며 인간의 수명을 헤아리고, 하늘이 정한 명이 다한 자들의 이름을 붉은 붓으로 지워나가는 작업은 천지개벽 이래 단 한 번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이루어져 왔습니다. 이승의 제왕이 내리는 불호령보다도, 하늘에서 치는 천둥 번개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이 명부의 기록이었으니, 삼라만상의 그 어떤 존재도 명부에 적힌 자신의 수명을 임의로 늘리거나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곧 우주를 지탱하는 가장 거대하고도 단단한 기둥이요, 생명 가진 자들이 반드시 따라야 할 지엄한 대자연의 법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평화롭고 정갈하던 명부전에 갑작스럽게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기이하고도 불길한 파란이 일어났습니다.
"대, 대왕마마! 큰일이옵니다! 명부에서… 저승의 명부에서 이름 하나가 감쪽같이 사라졌사옵니다! 천지개벽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던 전대미문의 사건이옵니다!"
수석 판관의 다급하고도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목소리가 명부전의 무거운 정적을 갈기갈기 찢어발겼습니다. 헐레벌떡 대전으로 뛰어 들어온 그의 두 손에 들려 있는 낡은 장부의 한 페이지에는, 본래 진한 먹물로 또렷하게 적혀 있어야 할 누군가의 이름과 수명이 마치 누군가 기괴한 마법을 부린 듯 하얗게 증발해 버려 백지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종이가 찢겨나간 것도, 물에 젖어 번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해야 할 영적인 각인이 통째로 지워져 버린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이름은 단 하나. 바로 이승에서 칠십 평생을 깊은 산속에서 은둔하며 혹독하게 수련하여, 기기묘묘한 도술을 깨우치고 세상의 이치에 통달했다고 알려진 천재 도사, 청운이었습니다.
본래 청운 도사는 어제 자시를 기해 하늘이 내린 칠십 년의 수명이 완벽하게 다하여, 저승 차사들의 서늘한 손에 이끌려 명부전 앞마당에 무릎을 꿇었어야 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수십 년간 닦아온 깊은 혜안으로 자신의 수명이 턱밑까지 다가옴을 미리 짐작하고, 평생을 바쳐 뼈를 깎는 고통으로 연마한 도술의 정수를 모두 끌어모아 이승을 넘어 저승의 명부에까지 그 영적인 힘을 뻗친 것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생사의 무거운 사슬을 끊어내고 신선과 같은 영원한 삶을 얻고자, 감히 우주의 지엄한 섭리를 거스르며 명부에서 자신의 이름을 통째로 도려내 버린 것입니다.
'이 무슨 해괴망측하고 불경한 일이란 말인가! 하늘의 그물이 아무리 성글다 한들 털끝 하나 빠져나갈 틈이 없는 법이거늘, 한낱 흙으로 돌아갈 인간의 몸으로 도를 조금 닦았다고 하여 어찌 대자연의 순리인 죽음을 거부하고 명부를 희롱한단 말인가! 이는 저승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짓이요, 삼라만상의 질서를 송두리째 파괴하는 대역죄로다!'
염라대왕의 얼굴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고, 그의 부릅뜬 눈동자에서는 당장이라도 세상을 태워버릴 듯한 벼락 같은 무서운 광채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저승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 어마어마한 사태를 당장 수습하지 않으면, 이승과 저승의 엄격한 경계가 무너지고 수많은 인간들이 영생을 탐하며 질서가 파괴될 것이 자명했습니다. 염라대왕은 즉시 명을 내려, 저승에서 가장 능력이 출중하고 지혜롭기로 소문난 세 명의 최정예 차사를 어전으로 다급히 불러들였습니다.
우두머리인 강 차사는 깎아지른 바위처럼 거대하고 단단한 체구에, 한 번 물은 사냥감은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절대 놓치지 않는 강직하고 맹렬한 성품의 소유자였습니다. 두 번째인 문 차사는 생전 이승에서 제일가는 학자이자 철학자 출신으로, 세상의 이치와 생사의 철학에 완벽하게 통달하여 칼날보다 예리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고 굳은 마음을 열게 하는 지혜로운 자였습니다. 마지막 막내인 비 차사는 불어오는 바람보다 날쌘 몸놀림과, 세상 그 어떤 교묘한 술법의 흔적도 귀신같이 찾아내는 매의 눈을 가진 날렵하고 영민한 차사였습니다. 이들 삼인방은 저승사자들 사이에서도 결코 실패를 모르는 전설로 불리는 완벽한 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너희 셋은 지금 당장 이승으로 내려가, 지엄한 천기를 어지럽히고 명부를 농락한 청운 도사를 지체 없이 잡아 오너라. 허나 마음속 깊이 명심할 것이 하나 있다. 그는 삿된 요괴나 원한에 찬 악귀가 아니라, 평생을 맑은 정신으로 뼈를 깎으며 도를 닦은 학자이자 도인이니라. 무지몽매한 짐승을 다루듯 무력으로 제압하여 끌고 오는 것은 차사들의 능사가 아니다. 그가 스스로 죽음의 숭고한 의미를 깨닫고 자연의 거대한 순리에 순응하여, 자신의 두 발로 이 저승으로 걸어 들어오게끔 설득하여라. 그것이 평생 도를 닦은 자에 대한 저승의 마지막 예의이자, 무너진 저승의 법도를 가장 온전하고 완벽하게 세우는 길이니라."
염라대왕의 묵직하고도 심오한 어명이 대전에 쩌렁쩌렁 떨어지자, 세 차사는 일제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깊은 예를 표했습니다. 무력으로 묶어 끌고 오는 것이 아니라 설득하여 스스로 깨달음을 얻게 하라는 어명은, 그동안 수많은 영혼을 사냥하듯 무자비하게 거두어왔던 백전노장 차사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은, 참으로 험난하고 막막한 과제였습니다.
'스스로 저승의 명부를 지워버릴 정도의 무시무시한 도력을 가진 자라면, 필시 살고자 하는 생에 대한 미련과 자신의 도술에 대한 아집 또한 저 태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을 터. 단칼에 목을 베거나 밧줄로 묶는 무력을 쓰지 않고, 오직 말과 이치만으로 그 지독한 아집을 꺾어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니… 참으로 멀고도 험한 철학의 여정이 되겠구나.'
강 차사는 짧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칠흑같이 검은 도포 자락을 힘차게 펄럭였습니다. 이내 세 차사의 단단한 몸이 검은 안개처럼 스르륵 흩어지더니, 캄캄하고 적막한 저승의 강을 훌쩍 건너 겹겹이 쌓인 구름을 뚫고 지상을 향해 빛의 속도로 맹렬하게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고 영생을 움켜쥐려는 천재 도사와, 그 엇나간 이치를 바로잡으려는 차사 삼인방의 기상천외하고도 철학적인 숨바꼭질이 막 장엄한 막을 올리는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
씬2: 지상으로 내려온 차사들, 도사의 흔적을 쫓다
차사 삼인방이 먹물 같은 검은 안개를 흩뿌리며 사뿐히 내려앉은 곳은 이승의 어느 이름 모를 깊고 수려한 영산의 중턱이었습니다. 깎아지른 듯 험준한 기암괴석들이 마치 천혜의 요새처럼 병풍으로 둘러싸여 있고, 발밑으로는 솜사탕 같은 흰 구름이 양탄자처럼 융단같이 깔려 있는, 그야말로 신선들이나 머물 법한 신비로운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었지요. 수백 년, 아니 천 년을 묵은 듯한 거대한 적송들이 하늘을 찌를 듯 웅장하게 솟아 있고, 어디선가 흘러내리는 청아한 계곡물 소리와 산새들의 평화로운 지저귐만이 귓가를 간질이는 이 깊은 산중은, 속세의 떼 묻은 인간들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도인들의 완벽한 은신처로 안성맞춤인 장소였습니다.
막내인 비 차사가 가장 먼저 코를 킁킁거리며 짐승처럼 엎드려 주변의 기운을 예리하고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두 눈동자가 사냥감을 노리는 매처럼 형형하게 빛나며, 산천 초목 사이사이 깊숙한 곳에 교묘하게 숨겨진 미세한 영적인 파동들을 샅샅이 읽어 내려갔습니다.
"대장, 이 근방에 맴도는 기운이 몹시도 기이하고 묘합니다. 수십 년을 닦아온 맑고 청아한 도의 기운이 숲을 감싸고 있으나,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코 놓지 못하는 인간의 질긴 아집과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이 만들어낸 몹시 탁한 기류가 한 가닥 교묘하고 끈적하게 섞여 들어가 있습니다. 명부에서 이름을 지운 청운 도사가 필시 이 산자락 어딘가에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꼭꼭 숨어든 것이 분명합니다."
비 차사의 확신에 찬 말에 우두머리 강 차사는 굳은 표정으로 주변을 매섭게 둘러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세상의 미련을 버린 일반적인 영혼들이라면 자신들 차사의 등장만으로도 서늘한 사기에 압도되어 두려움에 떨며 무릎을 꿇었겠지만, 명부의 이름을 지워낼 정도의 거대한 도력을 가진 청운 도사라면 차사들의 접근을 이미 오래전부터 눈치채고 만반의 방어 준비를 철저하게 갖추고 있을 것이 불 보듯 뻔했습니다.
"모두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명심해라. 청운 도사는 단순한 무술가가 아니라, 천지 만물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변신술과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환술에 완벽하게 능통한 자다. 눈에 보이는 겉모습에 절대 현혹되어서는 아니 된다. 네 눈앞에 서 있는 든든한 나무가 당신을 찌르는 바위일 수 있고, 밟고 있는 바위가 허공의 구름일 수 있으며, 평화롭게 흐르는 물조차 그의 잔인한 허상일 수 있다. 마음을 완벽하게 비우고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만 그의 기만술을 깨고 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강 차사의 무거운 당부가 땅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갑자기 숲속의 고요가 와장창 깨지며 기이하고 무시무시한 현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단단하게 디디고 서 있던 발밑의 땅이 늪처럼 질척이고 꿀렁이며 차사들의 발목을 잡아끌기 시작하더니, 수백 년 된 아름드리나무들이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괴물처럼 뿌리를 뽑고 일어나 날카로운 가지를 칼날처럼 뻗으며 차사들의 앞길을 무섭게 가로막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허공에서는 맑았던 하늘이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더니, 어른 주먹만 한 날카로운 우박과 얼음 송곳들이 소나기처럼 화살이 되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청운 도사가 자신의 도력을 총동원하여 차사들의 추격을 늦추고 그들을 쫓아내기 위해 숲 전체에 거대한 환술의 살진을 쳐놓은 것이었습니다.
'이토록 맹렬하고 강렬한 저항이라니… 어떻게든 죽음을 피하고 영생을 누리고자 하는 그의 지독한 결기와 발버둥이 이 거대한 숲 전체를 미친 듯이 요동치게 만들고 있구나. 허나, 죽음이란 인간이 아무리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며 도망친다 한들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늘. 참으로 어리석고도 안타까운 생존에 대한 몸부림이로다.'
지혜롭고 철학적인 문 차사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치명적인 얼음 우박과, 괴물처럼 요동치며 덤벼드는 숲의 무서운 환상 속에서도 조금의 흔들림이나 당황함 없이 그 자리에 우뚝 서서 가만히 두 눈을 감았습니다. 그는 거칠게 휘몰아치는 물리적 현상들에 휩쓸리지 않고, 그 어지러운 환술을 만들어내는 가장 근원적인 기운, 즉 숲 어딘가에 숨어있는 도사의 헐떡이는 심장 박동과 거친 호흡이 진동하는 미세한 방향을 마음의 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환술이라 해도 시전자의 감정을 완벽히 숨길 수는 없는 법. 거센 바람결에 아주 미세하게 실려 오는 초조하고 불안한 감정,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섞인 인간 특유의 땀 냄새. 문 차사의 예리한 직관이 숲의 얽히고설킨 기운을 뚫고 환술의 심장부로 곧장 향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 실체 없는 허상은 결코 진리를 품은 차사의 앞길을 막을 수 없소이다!"
문 차사가 품속에서 낡고 바랜 명부의 빈 페이지 한 장을 꺼내어 알 수 없는 진언을 외우며 허공에 길게 흩뿌리자, 신기하게도 괴물처럼 요동치며 덤벼들던 나무들이 제자리로 돌아가 얌전해지고, 살을 찢을 듯 쏟아지던 얼음 우박이 봄눈 녹듯 스르륵 녹아내리며 맑은 하늘이 환하게 드러났습니다. 거대한 환술이 완전히 깨어지고 시야가 트인 숲의 끝자락, 안개가 자욱하게 낀 아찔하게 높은 절벽 쪽으로 하얀 도포 자락 하나가 휙 하고 재빠르게 사라지는 것이 매의 눈을 가진 삼인방의 시야에 포착되었습니다.
"저기다! 도사가 자신의 술법이 깨지자 저 험한 절벽 쪽으로 도망을 쳤다! 당장 어서 쫓아라! 한 치의 거리도 내어주어선 안 된다!"
막내 비 차사가 땅이 파일 정도로 힘차게 바닥을 박차고 쏘아 올린 맹렬한 화살처럼 절벽을 향해 몸을 날렸고, 강 차사와 문 차사 역시 공간을 접는 축지법을 쓰며 가파른 산비탈을 미친 듯이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평생을 갈고닦은 신묘한 도술로 바람처럼 구름처럼 교묘하게 도망치는 노련한 청운 도사와, 저승의 절대적인 권능을 품고 그 뒤를 그림자처럼 집요하게 쫓는 세 차사의 본격적인 추격전이 이 깊고 신비로운 산중에서 불꽃 튀게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도사는 자신의 아까운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고, 차사들은 그 헛된 발버둥을 멈추게 하고 자연의 순리를 일깨우기 위해 묵묵히, 그러나 무서운 속도로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습니다.
씬3: 쫓고 쫓기는 술법 대결, 구름 속의 숨바꼭질
청운 도사의 도망치는 발걸음은 칠십 노인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사뿐하고 비상하게 날렵했습니다. 그의 가벼운 발끝이 숲속의 마른 나뭇잎을 밟고 지나가도 나뭇잎은 미세하게 흔들릴 뿐 결코 바스라지거나 땅으로 떨어지지 않았고, 수직으로 깎아지른 듯한 험난하고 위험한 기암절벽을 맨손으로 오를 때도 마치 평평한 대지를 걷는 듯 한 치의 막힘이나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칠십 평생을 이슬을 먹고 솔잎을 씹으며 피나는 수련으로 연마한, 육신의 무게마저 지워버린 완벽하고 가벼운 몸놀림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하늘을 나는 새처럼 뛰어난 도술을 지닌 도사라 할지라도, 저승에서 가장 우수한 실력을 자랑하며 파견된 최정예 차사 삼인방의 끈질기고 집요한 추격을 완벽하게 따돌리고 뿌리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뒤통수까지 바짝 쫓아온 차사들의 서늘하고도 압도적인 기운을 피부로 느낀 청운 도사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낼 새도 없이 다급하게 펄럭이는 소매에서 붉은 부적 한 장을 꺼내어 허공에 던졌습니다. 부적이 허공에서 푸르고 신비로운 불꽃을 일으키며 타들어가자, 허공을 뛰어오르던 도사의 몸은 순식간에 커다랗고 우아한 날개를 가진 백학 한 마리로 감쪽같이 변신했습니다. 새하얀 깃털을 뽐내는 백학은 날카롭고도 청아한 울음소리를 내며, 절벽 꼭대기에서 짙은 안개가 두껍게 깔린 아득한 협곡 아래로 유유히 날아올랐습니다. 짙은 구름 속에 몸을 완벽하게 숨겨 차사들의 시야에서 벗어나고, 바람을 타고 머나먼 곳으로 영영 자취를 감추려는 고도의 속셈이었습니다.
'내가 이 깊은 경지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뼈를 깎는 고통을 인내했는데! 내가 어찌 깨달은 도력이며, 어찌 얻은 영생인데! 죽음의 사자인 차사들에게 이토록 허무하게 끌려가 한 줌의 재로 변하여 내 모든 성취를 무로 돌릴 수는 없다. 나는 기어코 살아남을 것이다. 나는 하늘의 순리마저 꺾어내고 진정한 신선의 반열에 올라 영원토록 이 세상을 굽어보고야 말 것이다!'
백학으로 변한 도사는 거센 바람을 가르며 날갯짓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 지독한 생의 집착을 되뇌며 안도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 얄팍한 안도는 결코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협곡을 뒤덮은 짙은 안개를 뚫고, 바람의 속도를 지배하는 비 차사가 마치 날다람쥐처럼 벼랑 끝을 박차고 허공으로 엄청난 도약을 하더니, 비상하는 백학의 그림자를 향해 정확하게 손을 뻗어 그 날개깃을 움켜쥐었기 때문입니다. 차사의 서늘하고도 영적인 손에 닿은 백학은 비명을 지르며 다시 펑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본래의 주름진 늙은 도사의 모습으로 흉하게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도사는 허공에서 균형을 잃고 협곡 아래의 너른 바위지대로 무겁고 비참하게 굴러떨어졌습니다.
도사는 차가운 흙바닥을 뒹굴며 온몸에 타박상을 입으면서도 영생에 대한 미련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닥에 구르는 그 짧고 아찔한 순간에도 재빠르게 양손으로 흙과 마른 나뭇잎을 움켜쥐고 다급하게 은신술의 주문을 외웠습니다. 그러자 바닥을 구르던 도사의 형체는 온데간데없이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고, 그 자리에는 주변 계곡의 풍경과 완벽하게 똑같이 생긴, 푸른 이끼가 잔뜩 낀 거대한 바위 덩어리 하나만이 아주 자연스럽게 우뚝 솟아나 있었습니다. 도술 중에서도 가장 눈속임이 완벽하여 신선들조차 속는다는 최고의 은신술이었습니다.
뒤이어 바위지대로 사뿐히 내려앉은 세 차사는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진 도사의 행방을 찾기 위해 주변의 바위와 나무들을 샅샅이 살폈습니다.
"이럴 수가, 도사가 눈 깜짝할 새 쥐도 새도 모르게 증발해 버렸습니다!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 짧은 찰나에 도대체 어디로 숨어들었단 말입니까?"
막내 비 차사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두리번거렸지만, 묵묵히 뒷짐을 지고 상황을 관망하던 문 차사가 빙그레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방금 전까지 없었던 이끼 낀 거대한 바위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참으로 놀랍고도 기가 막힌 술법이오. 육신을 무생물인 바위로 바꾸어 자연의 일부로 완벽하게 위장하다니. 칠십 년의 세월 동안 닦은 도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실로 훌륭하고 뛰어난 재주요. 허나… 도사님, 당신의 육신은 완벽한 바위로 변하여 우리의 눈을 속였을지언정, 살고자 발버둥 치는 그 뜨겁고 절박한 심장 소리마저 바위처럼 차갑게 식히지는 못하셨구려. 이 차가운 바위 안에서 세차게 뛰고 있는 생에 대한 지독한 집착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내 귀에는 저 하늘의 천둥소리보다도 웅장하고 크게 들리오. 이래서야 어찌 완벽한 은신이라 할 수 있겠소."
문 차사의 부드러우면서도 폐부를 날카롭게 찌르는 뼈아픈 지적에, 이끼 낀 거대한 바위가 사시나무 떨듯 부르르 진동하더니 이내 희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청운 도사의 초라한 모습으로 펑 하고 되돌아왔습니다. 수백 번의 변신술과 도주를 거듭한 끝에 영적인 기력이 쇠할 대로 쇠해진 도사는, 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가쁜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의 이마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굵은 식은땀 방울이 비 오듯 맺혀 있었고, 세상을 다 가졌다고 자부했던 천재 도사의 두 눈에는 태어나 처음으로 마주하는 극심한 공포와 벗어날 수 없는 절망감이 짙게 배어 나왔습니다.
우두머리 강 차사가 도사 앞으로 한 걸음 묵직하고도 위압적으로 다가섰습니다. 그의 거대한 그림자가 바닥에 주저앉아 헐떡이는 도사의 온몸을 서늘하고 어둡게 덮었습니다.
"이제 그만 헛된 저항과 의미 없는 도주를 거두시오, 청운 도사. 당신이 저승의 명부를 지우고 여기까지 до망쳐 온 그 집념과 도력은 높이 사오만, 생과 사는 거스를 수 없는 우주의 지엄한 법칙이오. 아무리 도술이 뛰어나다 한들, 자연의 순리인 죽음을 거부하는 것은 그저 어린아이의 억지에 불과하오. 자, 이제 운명을 받아들일 시간이오."
"억지라니! 내가 어찌 평생을 바쳐 얻은 이 귀한 목숨을, 이 찬란한 도력을 허망하게 버린단 말이오! 나는 이미 생사의 이치를 꿰뚫어 보았고 명부의 속박에서 내 힘으로 벗어났거늘, 왜 차사들이 나를 강제로 지옥으로 끌고 가려 한단 말이오!"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절벽 끝으로 몰린 짐승처럼 청운 도사는 바들바들 떨면서도 차사들을 향해 핏대를 세우며 발악하듯 울부짖었습니다. 더 이상 구름으로 몸을 숨길 환술도, 바위로 변할 기력도 남아있지 않은 완벽한 벼랑 끝의 상황. 세 차사는 그를 묶을 포승줄이나 칼을 꺼내 드는 대신, 헐떡이는 도사를 깊고 차분한 철학자의 눈빛으로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무력이 아닌 오직 말과 설득으로 그를 진정한 깨달음의 길로 인도해야 하는, 저승과 이승의 경계를 넘나드는 길고도 심오한 생사결의 대화가 이 고요한 절벽 위에서 마침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 하고 있었습니다.
씬4: 벼랑 끝의 대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먹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아 금방이라도 하늘이 무너져 내릴 듯한 아찔한 절벽 끝, 수백 길 낭떠러지를 등지고 선 깎아지른 바위 위에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은 청운 도사와, 그를 거대한 산맥처럼 포위하듯 둘러싸고 내려다보는 차사 삼인방 사이에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하고 서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도망칠 곳을 모두 잃고 수십 년간 쌓아온 영적인 기력마저 바닥이 난 도사는, 마치 사냥꾼의 촘촘한 그물에 걸려 빠져나갈 길을 잃은 늙고 병든 호랑이처럼 허연 수염을 파르르 떨며 마지막 남은 기력을 쥐어짜 내어 거칠게 항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칠십 평생을 이 깊고 외로운, 인적조차 드문 산중에서 이슬만 받아먹으며 뼈를 깎는 고통으로 수련을 거듭했소. 남들이 따뜻한 아랫목에서 부귀영화를 탐하고 얄팍한 정욕에 허덕이며 허송세월을 보낼 때, 나는 오직 우주의 거대한 이치를 깨닫고 불로장생의 묘약을 구하기 위해 내 모든 빛나는 청춘과 필사의 삶을 기꺼이 바쳤단 말이오! 살을 에는 듯한 겨울의 눈보라를 맨몸으로 견디고, 찌는 듯한 한여름의 폭염 속에서도 단 한 번도 가부좌를 풀지 않았소. 그 길고 모진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결과로, 마침내 나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도의 극의에 달하였고, 내 스스로 저승 명부의 그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속박에서 내 이름을 완벽하게 지워내었거늘! 어찌하여 너희 저승의 차사들이 감히 여기까지 쫓아와 나의 영원한 삶을 가로막고, 내가 이룩한 모든 것을 무로 돌리려 한단 말이냐!"
절벽의 찬 바람을 가르는 도사의 목소리에는, 평생을 바친 수련에 대한 지독할 정도의 자부심과, 필사적으로 거머쥔 생명줄을 결코 놓지 않으려는 처절하고도 끈적한 아집이 뚝뚝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막내인 비 차사가, 도사의 그 지독한 억지에 기가 차다는 듯 서늘한 코웃음을 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습니다.
"참으로 어리석고 꽉 막힌 노인네구려! 명부의 이름을 당신 손으로 지웠다고 해서 죽음이라는 대자연의 그림자가 당신을 피해 갈 줄 알았소?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결국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하늘이 천지개벽 때부터 정해놓은 지엄한 법도이거늘. 당신이 평생 도를 닦고 산천초목을 호령하는 술법을 부린다 한들, 당신 역시 이 거대한 대자연 속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한낱 티끌 같은 존재일 뿐이오. 영원한 삶을 탐하며 자연의 법칙 위에 군림하려 드는 것 자체가,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탐욕이자 용서받지 못할 거대한 죄악임을 어찌 그리 모른단 말이오! 당신은 도를 깨우친 것이 아니라, 그저 죽음이 두려워 떼를 쓰는 어린아이에 불과하오!"
비 차사의 날카롭고도 매서운 일침에 청운 도사는 손에 쥐고 있던 낡은 지팡이를 바위 바닥에 쾅 내리치며 핏대를 세웠습니다.
"탐욕이라니! 감히 생명을 이어가고자 하는 숭고한 본능을 어찌 한낱 더러운 탐욕이라 매도하느냐! 죽음은 모든 것을 무(無)로 돌려버리는 끔찍하고 잔인한 폭력이 아니더냐. 육신이 썩어 문드러지면 내가 쌓아 올린 이 깨달음, 이 방대한 지식, 우주와 소통하던 이 빛나는 도력이 내 육신의 죽음과 함께 한 줌의 재로 변해 완벽하게 사라질 터인데, 세상천지에 그보다 원통하고 허무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저승의 법도를 어긴 것이 아니라, 생명의 가장 궁극적인 형태를 완성한 것뿐이다!"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가 도사의 흔들리는 두 눈동자에서 붉게 일렁거렸습니다. 제아무리 위대한 도술을 지닌 도사라 할지라도, 자신이 평생을 바쳐 피땀으로 일구어놓은 것들이 죽음과 함께 완벽하게 소멸하고 만다는 두려움 앞에서는, 그저 생에 집착하는 한없이 나약하고 가여운 한 명의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그때, 거센 바람 속에서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며 도사의 밑바닥을 꿰뚫어 보던 우두머리 강 차사가, 묵직하고도 바위 같은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절벽을 때리는 바람 소리마저 압도할 만큼 깊고도 거대했습니다.
"도사, 육신의 썩어짐을 두려워하는 당신의 그 처절한 마음은 차사인 나로서도 십분 이해하오. 허나 당신이 진정으로 우주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자부한다면, 생과 사가 결코 분리된 두 개의 세상이 아님을 진작에 알았어야 했소. 눈부신 낮이 있으면 반드시 어두운 밤이 찾아오고, 화려하게 꽃이 피면 마침내 시들어 떨어지는 것이 우주의 한결같은 순리거늘. 당신의 억지스러운 장생은, 따스한 봄이 지나고 삭풍이 부는 겨울이 왔는데도 억지로 앙상한 가지를 붙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시든 꽃잎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오. 추하고 고집스럽게 매달려 시들어버린 꽃은 결코 내년의 찬란한 새싹을 위해 자리를 내어줄 수 없는 법이오. 생명이란,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고 죽음을 맞이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완성되는 것이오."
강 차사의 묵직하고도 철학적인 한마디에, 핏대를 세우며 분노하던 도사의 흔들리던 동공이 순간 멈칫했습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을 찌르는 뼈아픈 진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눈앞에 닥친 차가운 현실을 강하게 부정했습니다. 평생을 부정해 온 죽음이라는 거대한 그림자를 단숨에 받아들이기에는, 그가 쌓아 올린 칠십 년의 아집이 너무나도 크고 단단한 바위와도 같았습니다. 절벽 아래서부터 스산한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며 협곡의 짙은 안개를 흩어놓았고, 마주 선 네 사람 사이에는 삶과 죽음이라는 인류의 풀리지 않는 거대한 철학적 난제가 벼랑 끝의 차가운 공기를 더욱 숨 막히게 조여오고 있었습니다.
씬5: 차사들의 설득, 자연의 순리라는 깨달음
도사의 지독하고도 끈질긴 아집이 단번에 꺾이지 않음을 간파한 학자 출신의 문 차사가, 검은 도포 자락을 단정히 여미며 앞으로 나섰습니다. 그는 다른 차사들처럼 위압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대신, 마치 길을 잃은 제자를 다독이는 온화한 스승처럼 부드럽고도 심연을 깊게 찌르는 듯한 목소리로 철학적인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청운 도사님. 당신은 육신의 썩어짐을 두려워하여 억지스러운 영생을 갈구하지만, 진정한 생명의 가치와 도의 완성은 결코 영원히 멈춰있는 고립에 있지 않소이다. 흐르지 않고 한곳에 고여있는 웅덩이의 물을 생각해 보시오. 처음에는 맑을지 모르나 시간이 흐르면 결국 썩어 악취를 풍기고 생명을 품을 수 없게 되지 않소. 반면, 쉼 없이 산을 깎고 계곡을 굽이쳐 마침내 거대한 바다로 나아가는 강물은 멈추지 않고 변하기에 영원토록 푸르게 살아 숨 쉬는 것이오. 당신이 지금 그토록 애타게 붙잡고 있는 이 육신은, 그저 당신의 고귀하고 빛나는 영혼을 잠시 담아두고 있던 낡은 질그릇에 불과하오. 낡고 금이 간 그릇을 과감하게 깨버려야 비로소 더 맑고 거대한 진리라는 무한한 바다에 당신의 영혼을 자유롭게 부어 넣을 수 있는 것 아니겠소?"
문 차사의 부드럽고도 깊이 있는 설득은 도사의 마음 깊은 곳에 꽁꽁 숨겨져 굳어있던 깨달음의 불씨를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지피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귓가에 울리는 문 차사의 음성은 단순한 저승사자의 질책이 아니라, 우주의 섭리 그 자체를 대변하는 진리의 울림이었습니다.
"죽음은 결코 모든 것의 끔찍한 끝이요 허무가 아닙니다, 도사님. 육신의 소멸은 새로운 형태의 존재로 나아가기 위한 아름답고도 필연적인 관문일 뿐이오. 당신이 저승의 명부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워버리며 거스른 것은, 단순히 당신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가 우주 만물의 거대한 흐름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성스러운 기회를 매몰차게 걷어찬 것과 다름없소이다. 가을날 나뭇잎이 미련 없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만 그 거름으로 다시 내년 봄에 푸른 새싹을 틔울 수 있듯, 당신의 낡은 육신을 대자연에 미련 없이 돌려주어야만 진정한 신선의 영적인 반열에 오를 수 있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오. 억지로 붙잡은 생명은 도의 성취가 아니라 그저 구차한 생존에 불과하오."
문 차사의 한마디 한마디는 마치 예리하게 벼린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청운 도사의 완고하게 굳어있던 아집과 탐욕의 두꺼운 껍데기를 하나씩 조각조각 부수어 나갔습니다. 평생을 바쳐 숲속에서 도의 본질을 탐구했던 천재 도사였기에, 그 철학적인 비유가 품고 있는 거대한 깊이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만큼은 세상 그 누구보다 예리했습니다. 다만, 그동안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두려움과 병적인 자기애가 그 맑은 통찰력을 두껍고 검은 장막으로 가리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는다… 낡은 그릇을 버려야 더 큰 바다로 나아간다… 앙상한 가지에 매달린 시든 꽃잎이라니… 아, 내가 참으로 어리석었구나. 평생을 도를 닦으며 자연의 순리를 내 입에 달고 살았건만, 정작 내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그 순리를 철저하게 역행하려 발버둥 치는 추악하고 볼품없는 미물에 불과했구나. 생의 끝자락에서 영생을 탐한 것은 진리를 구하는 도사의 길이 아니라, 세속의 욕심에 찌든 무지랭이의 탐욕이었어. 명부를 지우며 내가 우주를 지배했다 착각했지만, 실은 우주의 이치에서 철저히 버림받는 길을 택한 것이었구나.'
절벽 위를 감싸던 무거운 침묵 속에서, 도사의 안면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며 그의 표정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핏대를 세우며 분노와 두려움으로 일그러졌던 주름진 얼굴에서 억지스러운 독기와 불안감이 눈 녹듯 빠져나가고, 대신 그 자리에 깊고 넓은 상념과 평온한 깨달음의 빛이 맑은 아침 이슬처럼 환하게 번져갔습니다. 그토록 무섭게 꽉 쥐고 있던 낡은 나무 지팡이가, 마침내 도사의 손에서 스르륵 힘을 잃고 절벽 바닥으로 툭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습니다.
도사는 천천히, 아주 평온하게 두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자신을 얼어붙게 만들던 절벽의 차가운 바람이, 이제는 이마의 땀을 씻어주는 다정한 손길처럼 느껴졌고, 멀리서 들려오는 청아한 산새들의 지저귐이 천상의 음악처럼 귓가에 내려앉았습니다. 평생을 이곳 산속에서 수련했지만, 육신의 생존에 집착하고 도력을 높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단 한 번도 이 대자연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이토록 온전하고 편안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도사는 마침내 헛된 발버둥과 거센 저항을 멈추고,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흐름 앞에 자신의 작고 초라한 영혼을 기꺼이 내어놓기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하하하… 그대들의 말이 백번, 아니 천번 만번 옳소이다. 내 평생을 바쳐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진리를 찾으려 했건만, 정작 가장 중요하고 궁극적인 생사의 진리는 내 두 눈을 맹인처럼 가리고 있던 알량한 아집 속에 숨어 있었구려. 명부에서 내 이름을 내 손으로 지워버린 것은, 칠십 년 도사 인생을 모두 부정하는 나의 가장 어리석고 옹졸한 오만이었소. 이제 나는 아무런 미련도, 후회도 없이 이 무겁고 낡은 육신의 짐을 내려놓고, 나를 잉태했던 대자연의 거대한 품으로 즐겁게 돌아갈 준비가 되었소이다. 나를 일깨워주어 참으로 고맙소."
청운 도사의 메마른 입술 사이에서, 마침내 온전한 순응과 맑디맑은 깨달음의 고백이 실바람을 타고 흘러나왔습니다. 긴장 속에 대치하던 차사 삼인방은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며 깊고 벅찬 안도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칼을 뽑고 포승줄을 묶는 강압이 아닌, 치열한 철학적 설득과 깨달음으로 하늘의 어긋난 순리를 완벽하게 바로잡은 위대한 순간이었습니다.
씬6: 죽음을 끌어안아 얻은 영원, 신선이 되어 오르다
청운 도사가 죽음에 대한 마지막 한 줌의 미련마저 완전히 내려놓고 삶에 대한 질긴 집착을 끊어내자, 절벽 위에서는 차사들조차 숨을 멎게 할 만큼 믿을 수 없이 경이롭고 눈부신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인 도사의 낡고 굽은 육신에서, 돌연 서서히 은은하고도 맑은 은빛 광채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빛은 점점 더 밝아지더니, 그의 몸을 무겁게 짓누르던 노환과 세월의 주름, 흉터들이 마치 봄눈이 녹아내리듯 씻은 듯이 사라져 갔습니다. 백발이 성성했던 늙고 초라한 도사는 어느새 티 없이 맑고 투명한 젊은 날의 영혼 형상으로 탈바꿈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죽음을 온전히 끌어안고 자연의 이치에 완벽하게 순응하는 순간, 그가 평생을 바쳐 뼈를 깎으며 닦아온 깊은 도력이 마침내 진정한 영적인 빛을 발하며 그를 범인(凡人)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한 것입니다.
그는 죽어 저승의 무서운 심판을 받아야 하는 한낱 평범한 영혼이 아니었습니다. 명부를 지우며 반역을 꾀했던 죄인이, 죽음을 수용함으로써 오히려 우주의 섭리와 완벽하게 하나가 되어 생사를 초월한 진정한 신선의 반열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서는 오색찬란한 무지갯빛 구름이 절벽 위로 소리 없이 사뿐하게 내려앉았고, 어디선가 신비롭고 청아한 천상의 선율, 옥피리와 비파 소리가 섞인 듯한 신선의 음악이 부드럽게 절벽 전체를 감싸며 울려 퍼졌습니다.
"차사들이여, 나를 쫓아온 저승의 지혜로운 사자들이여. 그대들의 깊고 철학적인 가르침 덕분에 나는 한낱 필부의 욕심을 버리고 참된 도의 완성을 이루었소. 죽음이란 참으로 두렵고 끔찍한 끝이 아니라, 더 거대하고 눈부신 우주의 세계로 나아가는 참으로 아름다운 시작이자 비상이었음을 이제야 가슴 깊이 깨달았소이다. 벼랑 끝에서 헤매던 나를 구원하고 일깨워준 그대들의 숭고한 은혜를 이 우주가 끝나는 날까지 결코 잊지 않으리다. 저승의 대왕께도 나의 이 깊은 참회와 감사를 꼭 전해주시오."
신선이 되어 눈부시게 빛나는 청운 도사는 세 차사를 향해 깊고 인자한 미소로, 허리를 굽혀 깍듯한 감사의 예를 표했습니다. 임무를 위해 찾아왔던 차사들 역시 모든 무기를 거두고 두 손을 모아 공손히 허리를 깊숙이 굽혀, 위대한 깨달음을 얻은 신선의 찬란한 탄생을 경건한 마음으로 배웅했습니다. 오색 구름을 사뿐히 딛고 선 도사의 맑은 영혼은 천상의 음악 소리와 함께 서서히 맑은 하늘 위로, 저 끝없는 우주의 품으로 아득하고도 우아하게 솟아올라 영원토록 빛나는 별빛 속으로 스며들어갔습니다.
도사가 남기고 간 텅 빈 육신만이, 마치 뱀이 벗어놓은 낡고 투명한 허물처럼 바위 위에 조용하고 평화롭게 누워, 한 줌의 맑은 흙으로 흩어져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차사 삼인방은 절벽 끝에 나란히 서서, 도사가 사라진 아득한 하늘을 오랫동안 묵묵히 우러러보았습니다.
"결국 저 도사님은 저승의 명부에서 자신의 이름만 지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기꺼이 뛰어넘어 진정한 영원이라는 하늘의 장부에 자신의 이름을 찬란하게 새겨 넣으셨군요. 차사 노릇 수백 년에 이토록 기막히고도 소름 돋게 아름다운 결말은 처음입니다."
막내 비 차사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경이로움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하늘을 향해 중얼거렸습니다.
"그렇다. 인간이 꿈꾸는 가장 완벽한 영생은 죽음을 거부하고 육신에 집착하여 억지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죽음마저 대자연의 일부로 기꺼이 끌어안고 순리로 녹아들 때 비로소 영혼의 형태로 얻어지는 것임을 저 도사님이 우리에게 똑똑히 증명해 보여주셨구나. 우리 역시 오늘 저 도사님을 쫓아 이승으로 내려왔으나, 오히려 저분을 통해 생과 사의 거대한 진리를 가슴 뜨겁게 새롭게 배우게 되었다. 명부에서 지워진 이름은, 이제 영원히 빈칸으로 남겨두어도 좋을 듯싶구나."
우두머리 강 차사는 깊고도 묵직한 여운이 길게 남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도사의 텅 빈 남은 육신 위로 주변의 따뜻한 흙과 낙엽을 끌어모아 정성스럽게 살포시 덮어 무덤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승 명부에서 이름이 하얗게 지워져 발칵 뒤집혔던 초유의 반역 사건은, 이렇게 칼날이 춤추는 무력이나 포승줄의 강압이 아닌, 삶과 죽음에 대한 지혜와 철학적인 깨달음으로 가장 완벽하고도 숭고하게 해결되었습니다. 흔들렸던 저승의 질서는 다시 온전하고 단단하게 바로 섰고, 이승의 깊은 산중에는 진정한 도를 깨우치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곧장 올라간 아름다운 도사의 전설만이 영원히 굽이치는 계곡물과 함께 남게 되었습니다. 염라대왕의 어명을 무사히, 그리고 가장 이상적이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완수한 세 차사는 검은 도포 자락을 힘차게 펄럭이며, 흐뭇하고도 깨끗한 미소와 함께 다시 짙은 안개처럼 허공으로 흩어져 그들의 영원한 본분인 저승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차사들이 떠난 텅 빈 절벽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고, 놀라 흩어졌던 산새들은 나뭇가지에 앉아 맑게 지저귀기 시작했습니다. 절벽 아래로 흐르는 푸른 계곡물은 생과 사의 아득한 경계를 묵묵히 넘어, 영원토록 멈추지 않고 저 넓은 바다를 향해 기운차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명부를 지우고 도망친 천재 도사와 그를 쫓는 차사들의 숨 막히는 추격전,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깨달음의 이야기,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죽음을 피하려는 발버둥을 멈추고 대자연의 순리에 기꺼이 순응할 때 비로소 진정한 영원을 얻는다는 철학적인 메시지가 긴 여운을 남기네요. 오늘 저희가 준비한 야담이 마음에 드셨다면, 잊지 마시고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부탁드립니다. 다음 시간에도 시청자 여러분의 귀를 즐겁게 해드릴 신비롭고 기막힌 저승사자 야담으로 찾아오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