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명부 잉크 번졌다고 '대충 비슷한 사람' 데려가려는 저승사자… 분노 폭발하는 황당 실화

    태그

    #조선시대야담, #염라대왕, #저승사자, #명부위조, #저승미스터리, #한국전설, #조선괴담, #저승재판, #오디오드라마, #소름돋는이야기, #저승행정, #조선야담실화, #웃기고무서운이야기, #저승차사, #공포스릴러
    #조선시대야담 #염라대왕 #저승사자 #명부위조 #저승미스터리 #한국전설 #조선괴담 #저승재판 #오디오드라마 #소름돋는이야기 #저승행정 #조선야담실화 #웃기고무서운이야기 #저승차사 #공포스릴러

    조선시대야담, 염라대왕, 저승사자, 명부위조, 저승미스터리, 한국전설, 조선괴담, 저승재판, 오디오드라마, 소름돋는이야기, 저승행정, 조선야담실화, 웃기고무서운이야기, 저승차사, 공포스릴러

     

    후킹

    여러분은 혹시, 자기 이름이 이미 저승의 명부에 적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것도 자기가 죽을 날짜와 죽을 방법까지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는 장부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다면 말입니다. 조선 영조 치세, 한양 북촌에 박철수라는 영감이 살았습니다. 재산이 넉넉하고 하인도 여럿 거느린 양반이었는데, 어느 날 밤 그의 방 안에 낯선 사내가 서 있었습니다. 갓도 쓰지 않고, 도포도 걸치지 않은 채, 다만 검은 관복 하나만 입은 사내였습니다. 그 사내가 품에서 꺼내 보인 것은 누렇게 바랜 장부 한 권이었고, 거기에는 분명 박철수라는 이름 석 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먹으로 한 글자가 덧씌워진 흔적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일부러 고친 것입니다. 사내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원래 죽을 사람이 아니었소. 그 한마디가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었습니다. 이것은 조선시대 야담에 실제로 기록된 이야기입니다.

    ※ 1단계: 오프닝 — 비 오는 밤, 이름 없는 방문자

    영조 십이년, 한양에 장마가 닥쳤다. 사흘째 비가 그치지 않았고, 북촌 골목 안쪽에 자리한 박 영감의 기와집 처마에서는 빗물이 쏟아져 마당에 도랑이 생길 지경이었다. 박 영감은 그날도 사랑방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흔일곱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고, 눈 아래에는 그림자가 깊었다. 삼 년 전 아내를 잃은 뒤로 그는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인 돌쇠가 문밖에서 물었다. 나으리, 주무시지 않으시렵니까. 박 영감은 대꾸하지 않았다. 촛불이 바람에 한 번 흔들렸다. 그 순간 방 안 공기가 달라졌다. 습기와는 다른,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마루 아래에서 올라오는 것 같았다. 박 영감이 고개를 들었을 때, 방 한쪽 구석에 사람 하나가 서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기척은 없었다. 발소리도,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도 없었다. 그냥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는 듯이, 검은 관복을 입은 사내가 서 있었다. 사내의 얼굴은 갓 아래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고, 다만 입술만이 창백하게 드러나 있었다. 박 영감의 손에서 술잔이 떨어졌다. 사내가 말했다. 박철수. 그 이름이 맞소. 박 영감은 대답 대신 뒷걸음질쳤다. 사내가 한 발 다가왔다. 그 한 발이 마룻바닥을 밟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놀라지 마시오. 나는 당신을 해치러 온 것이 아니오. 사내가 품에서 꺼낸 것은 누렇게 빛바랜 장부 한 권이었다. 그 표지에는 붉은 글씨로 생사부라고 적혀 있었다. 사내가 장부를 펼쳤다. 장부의 한 페이지에 박철수라는 이름이 선명했다. 그런데 그 옆에 적힌 사망 일자 위로 누군가 먹을 덧칠한 흔적이 있었다. 원래의 글자를 지우고 다른 날짜를 써넣은 것이었다. 사내가 손가락으로 그 부분을 짚었다. 누군가 당신의 사망일을 바꿨소. 원래 당신은 칠 년 전에 죽었어야 할 사람이오. 빗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박 영감의 입술이 떨렸다. 그게 무슨 소리요. 사내가 장부를 접으며 말했다. 나는 저승의 차사 김이라 하오. 명부에 변조가 있어 조사차 이승에 내려왔소. 협조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오늘 밤 안에 죽소.

    ※ 2단계: 주제 제시 — 명부의 글자 하나가 사람을 죽인다

    박 영감은 믿을 수 없었다. 저승사자라니. 그러나 눈앞의 사내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산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방 안 온도가 내려간 것은 착각이 아니었고, 사내의 발 아래에는 그림자가 없었다. 김 차사가 장부를 다시 펼쳐 보였다. 이 명부는 저승 명부청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이승의 모든 사람의 이름과 태어난 해, 죽을 해, 죽을 때의 상황이 기록되어 있소. 그가 손가락으로 박철수의 이름 옆을 다시 짚었다. 여기, 원래 기록에는 영조 오년 시월 십삼일, 급체로 사망이라고 적혀 있었소. 그런데 누군가 이 글자 위에 먹을 덧씌우고 영조 이십년 삼월 초이틀, 화재로 사망이라고 고쳐 썼소. 박 영감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영조 오년이면 칠 년 전이었다. 그해 시월에 그는 실제로 체기가 들어 사경을 헤맨 적이 있었다. 그때 살아난 것이 기적이라고 모두가 말했었다. 김 차사가 장부를 덮었다. 당신은 칠 년 전에 죽었어야 할 사람이 칠 년을 더 살았소. 그 칠 년 동안 당신이 받은 복과 재산, 인연, 그 모든 것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어야 할 것이었소. 박 영감이 물었다. 그러면 누가 대신 죽었단 말이오. 김 차사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그것이 문제요. 명부를 위조한 자가 당신 대신 다른 이름을 끼워 넣었소. 그 사람은 죽을 운명이 아니었는데 죽었소. 박 영감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내. 삼 년 전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내. 의원은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멀쩡하던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숨이 끊어졌다. 김 차사가 박 영감의 표정을 읽었다. 짐작이 가는 모양이오. 맞소. 당신의 처, 이씨 부인의 이름이 당신 자리에 끼워 넣어져 있었소. 박 영감의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주저앉으며 그가 물었다. 누가 그런 짓을 했소. 김 차사가 돌아서며 말했다. 그것을 밝히러 온 것이오. 그리고 당신이 도와야 하오. 명부가 위조된 이상, 저승의 질서가 흔들리고 있소. 이대로 두면 이승과 저승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오. 방 밖에서 돌쇠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으리, 괜찮으십니까. 이상한 소리가 나서. 김 차사가 촛불을 향해 손을 뻗었다. 불꽃이 파랗게 변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방 밖의 돌쇠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터였다. 김 차사가 말했다. 내일 밤까지 시간을 주겠소. 이 집 안에 명부 위조와 관련된 증거가 있을 것이오. 그것을 찾으시오. 사내가 뒤로 한 발 물러섰다. 마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그의 윤곽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목소리만 남았다. 한 가지 더. 영조 이십년 삼월 초이틀. 그 날짜가 당신의 새 사망일이오. 올해 삼월까지 앞으로 석 달이오. 빗소리 사이로 사내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

    ※ 3단계: 설정 — 북촌의 양반, 감춰진 과거

    다음 날 아침, 비가 그쳤다. 박 영감은 밤새 한잠도 자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장부에 적힌 아내의 이름이 떠올랐다. 이씨, 영조 칠년 팔월 초사흘, 원인 미상으로 사망. 원래는 영조 삼십년까지 살 수명이었다고 김 차사가 말했다. 이십삼 년을 빼앗긴 것이다. 돌쇠가 아침상을 들여왔다. 박 영감은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돌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으리,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박 영감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명부를 위조할 수 있는 자가 누구란 말인가. 저승의 일을 이승에서 조작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보통 사람이 아닐 터였다. 박 영감은 기억을 더듬었다. 칠 년 전, 체기로 쓰러졌을 때 그를 살린 것은 의원이 아니었다. 이웃에 사는 최 대감이 보내준 지관이었다. 지관은 박 영감의 방 아래에 묻힌 돌을 파내고, 이상한 부적 하나를 태운 뒤에야 박 영감이 깨어났다고 했다. 그때는 감사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최 대감은 왜 하필 지관을 보냈을까. 의원도 아니고, 스님도 아니고, 땅을 보는 지관을 보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 뒤로 최 대감은 박 영감에게 유난히 친절했다. 토지 거래를 소개해 주고, 관가의 인맥을 이어 주었다. 박 영감의 재산이 크게 불어난 것도 최 대감의 도움 덕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죽고 나서부터 최 대감의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예전처럼 찾아오지 않았고, 마주치면 눈을 피했다. 한번은 술자리에서 최 대감이 박 영감의 손을 잡으며 말한 적이 있었다. 형, 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오. 그때는 그저 술 취한 넋두리인 줄 알았다. 박 영감이 일어섰다. 돌쇠야. 최 대감 댁이 요즘 어떠하더냐. 돌쇠가 고개를 갸웃했다. 최 대감 댁 말씀이십니까. 요새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무슨 소문이냐. 밤마다 대감댁 사당에서 불이 켜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당에 들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못 봤다고 합니다. 하인들이 무서워서 가까이도 못 간다더군요. 박 영감의 눈이 좁아졌다. 사당. 칠 년 전 그 지관이 태운 부적에도 비슷한 문양이 있지 않았던가.

    ※ 4단계: 촉발 사건 — 서재에서 발견된 먹자국

    박 영감은 서재로 향했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 쓰던 방을 서재로 고친 뒤로 거의 들어가지 않았던 곳이다. 문을 열자 묵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먼지가 쌓인 책상 위에 아내의 필묵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박 영감은 서랍을 열었다. 아내의 유품 사이에서 손때 묻은 서찰 묶음이 나왔다. 아내가 친정에 보내려다 부치지 못한 편지들이었다. 한 장 한 장 펼쳐 읽었다. 대부분은 안부를 묻는 평범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맨 아래에 깔린 편지 한 장이 달랐다. 먹이 번져 읽기 어려웠지만, 몇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지관이 다녀간 뒤로 이상한 일이 생겼사옵니다. 밤마다 방 아래에서 소리가 나옵니다. 글자를 읽는 소리 같사옵니다. 박 영감의 손이 떨렸다. 편지를 더 읽었다. 나으리께서는 모르시지만 최 대감이 보낸 지관은 방 아래에 무엇인가를 묻어 놓고 갔사옵니다. 소녀가 들여다보니 검은 천으로 싸인 것이었는데, 열어 보지는 못했사옵니다. 무섭사옵니다. 편지는 거기서 끝나 있었다. 날짜는 아내가 죽기 보름 전이었다. 박 영감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내는 알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그런데 말하지 못한 것이다. 박 영감이 방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이 방 아래. 아내가 말한 것이 아직도 묻혀 있는 것일까. 그가 마루 한쪽을 두드렸다. 둔탁한 소리. 다른 쪽을 두드렸다. 역시 둔탁한 소리. 그런데 방 한가운데를 두드리자, 소리가 달랐다. 텅 빈 울림이었다. 돌쇠를 불렀다. 여기를 뜯어라. 돌쇠가 연장을 가져와 마루를 들어냈다. 마루 아래에 검은 천으로 싸인 무언가가 있었다. 크기는 어른 주먹만 했고, 무게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천을 벗기자 안에서 나온 것은 나무로 깎은 작은 관이었다. 손바닥에 올라갈 크기의 미니어처 관. 그 위에 붉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이씨, 대신 들어감. 박 영감의 시야가 흔들렸다. 아내 대신 들어감이 아니었다. 아내가 대신 들어간 것이었다. 누구 대신. 자기 대신. 돌쇠가 겁에 질려 물었다. 나으리, 이게 대체 무엇입니까. 박 영감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마당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고개를 돌리니 대문 앞에 검은 관복의 사내가 서 있었다. 낮인데도 그림자가 없었다. 김 차사였다.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찾았소.

    ※ 5단계: 망설임 — 진실과 마주할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김 차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낮이었지만 그가 들어서자 방 안이 어두워졌다. 촛불이 절로 켜졌고, 불꽃은 파란빛을 띠었다. 김 차사가 작은 관을 집어 들었다. 이것은 대사관이라 하오. 저승의 금기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금기에 해당하는 물건이오. 사람의 죽음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주술이오. 이것을 만든 자가 명부도 위조한 자요. 박 영감이 물었다. 최 대감이 한 짓이오. 김 차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단정할 수 없소. 이것을 만든 것은 지관이오. 그러나 지관에게 시킨 자가 누구인지가 핵심이오. 증거가 더 필요하오. 박 영감이 이를 악물었다. 그러면 최 대감 댁을 뒤지면 될 것 아니오. 김 차사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나는 저승의 관리요. 이승의 집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소. 이승의 일은 이승 사람이 해야 하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조언뿐이오. 박 영감은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풀었다. 겁이 났다. 최 대감은 한양에서 손꼽히는 세도가였다. 관가에 줄이 닿아 있고, 하인만 수십이었다. 그런 자를 상대로 증거를 찾겠다고 나서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게다가 지관이 어떤 주술을 부리는 자인지도 알 수 없었다. 김 차사가 박 영감의 망설임을 읽었다. 당신에게 강요하지는 않겠소. 그러나 알아 두시오. 영조 이십년 삼월 초이틀이 다가오고 있소. 명부가 정정되지 않으면, 그날 당신은 죽소. 그것이 위조된 운명이든 아니든, 명부에 적힌 대로 죽소. 저승은 장부대로 움직이는 곳이오. 글자가 곧 법이오. 박 영감은 아내의 편지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무섭사옵니다. 아내는 무서웠을 것이다. 밤마다 방 아래에서 들리는 소리에 겁을 먹으면서도, 남편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고 편지에만 적었을 것이다. 그리고 죽었다. 대신 죽었다. 박 영감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겠소. 김 차사의 눈빛이 달라졌다. 조건이 있소. 돌쇠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박 영감을 바라보았다. 나으리,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나으리 혼자 보낼 수 없습니다. 박 영감은 돌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돌쇠는 아내가 살아 있을 때 데려온 아이로, 고아 출신이었다. 아내가 제 자식처럼 돌보았다. 좋다. 함께 가자. 김 차사가 말했다. 오늘 밤 자시. 최 대감 댁 사당. 거기서 증거를 찾으시오. 나는 밖에서 지켜보겠소.

    ※ 6단계: 2막 진입 — 사당의 비밀

    자시가 되었다. 박 영감과 돌쇠는 최 대감 댁 뒷담을 넘었다. 달은 구름에 가려 있었고, 바람은 차가웠다. 최 대감 댁은 한양에서도 큰 편에 속하는 저택이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사당까지 가려면 행랑채와 안채 사이를 지나야 했다. 돌쇠가 앞장섰다. 소년 시절 구걸을 하며 닦은 몸놀림이 남아 있어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행랑채를 지날 때 안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하인들은 잠들어 있었다. 안채 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지만, 사당은 안채에서 떨어진 뒤뜰에 있었다. 사당 앞에 도착했다. 문이 닫혀 있었고,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돌쇠가 품에서 쇠꼬챙이를 꺼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자물쇠를 열었다. 나으리, 열렸습니다. 문을 밀자 안에서 향 냄새가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보통 향이 아니었다. 달고 비린 냄새가 섞여 있었다. 피 냄새 같기도 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사당 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의 사당에는 위패가 놓여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 사당에는 위패 대신 장부가 놓여 있었다. 한 권이 아니었다. 수십 권이었다. 선반 위에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박 영감이 장부 한 권을 꺼냈다. 표지에 적힌 글씨를 보고 숨이 멎을 뻔했다. 생사부 초본. 저승의 명부를 베껴 쓴 것이었다. 장부를 펼치자, 사람 이름과 태어난 해, 죽을 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어떤 이름에는 먹줄이 그어져 있었고, 어떤 이름 옆에는 붉은 글씨로 변경이라고 적혀 있었다. 박 영감의 손이 떨렸다. 이것은 명부를 베껴 쓴 정도가 아니었다. 이승에서 저승의 명부를 조작할 수 있는 장치였다. 여기에 이름을 쓰면 저승의 원본에도 반영이 되는 것이 아닌가. 돌쇠가 다른 장부를 집어 들었다. 나으리, 이것 좀 보십시오. 돌쇠가 편 장부에는 거래 기록이 적혀 있었다. 이름, 금액, 날짜. 누군가 돈을 받고 명부의 이름을 고쳐 준 기록이었다. 삼백 냥에 수명 오 년 연장. 오백 냥에 사망 원인 변경. 천 냥에 대리 사망자 지정. 박 영감의 눈에 익은 이름이 있었다. 박철수, 천 냥, 대리 사망자 이씨 부인.

    ※ 7단계: B 이야기 — 돌쇠의 기억, 이씨 부인의 사랑

    박 영감의 손에서 장부가 떨어졌다. 천 냥. 누가 천 냥을 내고 자기 대신 아내를 죽게 만든 것인가. 자기가 낸 것일 리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자기 이름으로 이 거래를 한 것인가. 돌쇠가 장부를 주워 다시 살펴보았다. 나으리, 여기 의뢰인 항목이 있습니다. 최 대감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의뢰 사유는, 박철수의 재산 관리 지속을 위해 수명 연장 필요. 대리 사망자는 가장 가까운 혈연 또는 배우자로 지정. 박 영감의 무릎이 꺾였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최 대감이 자기 수명을 연장시킨 이유가 재산 때문이었다. 자기를 살려 둔 것이 아니라, 자기 재산을 계속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그 대가로 아내가 죽은 것이었다. 돌쇠가 박 영감의 어깨를 잡았다. 나으리. 돌쇠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마님이. 마님이 그래서 돌아가신 겁니까. 돌쇠는 이씨 부인에게 깊은 은혜를 입은 아이였다. 다섯 살에 굶어 죽을 뻔한 것을 이씨 부인이 데려다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글을 가르쳤다. 돌쇠에게 이씨 부인은 어머니나 다름없었다. 돌쇠가 이를 악물었다. 최 대감을 당장 관가에 끌고 가야 합니다. 박 영감이 고개를 저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장부가 진짜라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관가에서 저승 명부 운운하면 미친 사람 취급받을 뿐이다. 그때 사당 뒤쪽에서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이 동시에 몸을 숨겼다. 발소리. 누군가 사당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당 문이 밖에서 열렸다. 들어온 것은 백발의 노인이었다. 초라한 행색에 허리가 굽었고, 손에는 먹과 붓을 들고 있었다. 노인이 선반에서 장부를 꺼내 펼치고 붓에 먹을 묻히기 시작했다. 장부에 무언가를 쓰려는 것이었다. 박 영감은 직감했다. 저 노인이 지관이다. 노인의 붓끝이 장부에 닿는 순간, 사당 안의 촛불이 일제히 파란빛으로 변했다. 바닥에 놓인 향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노인이 중얼거렸다. 김 판관 댁 이들, 수명 삼 년 단축. 대금 이백 냥 수령 완료. 글자가 적히는 순간, 사당 바닥이 진동했다. 마치 땅 아래에서 무언가가 반응하는 것 같았다. 돌쇠가 박 영감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나으리, 저 사람이 지금 누군가를 죽이는 겁니다.

    ※ 8단계: 재미 구간 — 저승과 이승 사이의 거래 장부

    박 영감은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노인이 한 줄을 쓸 때마다 촛불이 흔들렸고, 향 연기가 천장으로 소용돌이쳤다. 노인이 다 쓰고 나서 붓을 내려놓자 진동이 멈추었다. 노인이 장부를 접고 선반에 꽂았다. 그리고 사당을 나갔다. 발소리가 멀어진 뒤에야 박 영감과 돌쇠가 몸을 일으켰다. 박 영감이 노인이 방금 쓴 장부를 꺼내 펼쳤다. 먹이 아직 마르지 않아 글자가 번지고 있었다. 김 판관이라면 동대문 안쪽에 사는 김 판관이 아닌가. 아들이 올해 스물이었을 것이다. 그 청년의 수명이 삼 년 단축되었다는 것은, 삼 년 안에 죽는다는 뜻이었다. 이백 냥에 사람 하나의 목숨을 삼 년 줄이다니. 돌쇠가 다른 장부들을 빠르게 넘겼다. 거래 건수가 셀 수 없이 많았다. 수십 명, 아니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의 수명이 조작되어 있었다. 어떤 이는 수명이 늘어났고, 어떤 이는 줄었으며, 어떤 이는 대리 사망자가 지정되어 있었다. 박 영감이 중얼거렸다. 이것은 살인이다. 장부로 하는 살인. 돌쇠가 거래 기록에서 의뢰인 목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한양의 세도가들이었다. 자기 수명을 늘리기 위해, 혹은 원수의 수명을 줄이기 위해 돈을 내고 명부를 고친 것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거래를 한 이름이 최 대감이었다. 건수만 스무 건이 넘었다. 최 대감은 자기 수명을 세 번이나 늘렸고, 경쟁자의 수명을 네 번 줄였으며, 대리 사망자를 다섯 명이나 지정했다. 아내는 그 다섯 명 중 하나였다. 박 영감이 장부 몇 권을 품에 넣었다. 돌쇠, 이것을 가지고 나가자. 사당을 나서려는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구요. 돌아보니 사당 입구에 최 대감이 서 있었다. 손에는 등잔을 들고 있었고, 그 뒤로 하인 넷이 몽둥이를 쥐고 서 있었다. 최 대감의 눈이 박 영감을 알아보았다. 아, 박 형. 이 밤에 남의 사당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게요.

    ※ 9단계: 미드포인트 — 두 세계의 균열

    최 대감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등잔 불빛 아래 드러난 그의 표정은 차가웠다. 하인들이 박 영감과 돌쇠를 에워쌌다. 박 영감이 품에 넣은 장부를 최 대감이 보았다. 그 장부를 가지고 어디를 가려 했소. 박 영감이 정면을 바라보았다. 최 대감. 내 아내를 죽인 것이 당신이오. 최 대감의 표정이 일순 굳었다가, 이내 풀어졌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소. 내가 언제 형수를 해쳤소. 박 영감이 장부를 펼쳐 보였다. 여기에 다 적혀 있소. 천 냥을 주고 내 수명을 연장하면서, 그 대가로 내 아내를 죽게 만들었소. 최 대감이 등잔을 하인에게 넘기고 두 손을 모았다. 형은 아무것도 모르시오. 그 장부가 무엇인지, 어떤 힘이 담겨 있는지, 함부로 건드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최 대감이 한 발 다가왔다. 내가 형의 수명을 늘린 것은 사실이오. 그러나 그것은 형을 위한 것이었소. 형이 죽으면 형의 재산은 관가에 귀속되오. 형에게는 후사가 없으니까. 그 재산을 내가 관리하고 불려 주고 있었소. 형이 살아야 내가 편했소. 그게 잘못이오. 박 영감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내 아내를 죽인 것이 정당하다는 말이오. 최 대감의 눈이 가늘어졌다. 형수가 죽은 것은 유감이오. 그러나 명부의 법칙상, 수명을 늘리면 누군가의 수명이 줄어야 하오. 그것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 저승의 법칙이오. 나는 그저 돈을 냈을 뿐이오. 그때 사당 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발 아래로 검은 틈이 벌어졌다. 하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틈 사이에서 차가운 바람이 솟구쳤다. 김 차사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최 대감. 저승 명부청 감사관이 당신을 소환하오. 최 대감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김 차사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 뒤로 검은 관복의 차사 셋이 더 서 있었다. 사당 안의 장부들이 하나씩 펼쳐지기 시작했다. 저절로. 바람도 없는데 장부의 낱장들이 넘어가며 그 안에 적힌 이름들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웅얼거리는 소리. 수백 명의 이름이 동시에 읊어지는 소리. 최 대감이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이 사당을 태워라. 하인에게 명령하는 것이었다. 돌쇠가 몸을 날려 하인의 손에서 횃불을 빼앗았다.

    ※ 10단계: 위기 압박 — 불과 먹의 대결

    최 대감의 하인 하나가 다른 횃불을 들어 사당 기둥에 불을 붙였다. 마른 나무가 순식간에 타올랐다. 연기가 사당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김 차사가 손을 뻗어 불꽃을 막으려 했지만, 이승의 불은 저승의 힘으로 끌 수 없는 모양이었다. 차사의 손을 불꽃이 그대로 통과했다. 박 영감이 외쳤다. 장부를 꺼내야 하오. 이것이 증거요. 돌쇠가 선반으로 달려가 장부를 팔에 안았다. 수십 권이었다. 한 번에 다 가져갈 수 없었다. 돌쇠가 먼저 한 아름을 안고 사당 밖으로 뛰어나갔다. 박 영감도 장부 몇 권을 품에 넣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때 최 대감이 박 영감의 길을 막았다. 형. 이 장부가 세상에 나가면 나만 망하는 것이 아니오. 여기 이름이 적힌 한양의 세도가들이 전부 뒤집어지오. 그들이 형을 가만두겠소. 박 영감이 최 대감을 밀쳤다. 내 알 바 아니오. 내 아내를 돌려내시오. 사당 지붕에 불이 번졌다. 기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김 차사가 박 영감에게 소리쳤다. 빨리 나가시오. 여기 곧 무너지오. 박 영감이 사당 문을 향해 달렸다. 등 뒤에서 최 대감이 따라오며 박 영감의 옷자락을 잡았다. 놓으시오. 놓지 않겠소. 이 장부와 함께 타 버려야 하오. 두 사람이 엉겨 붙은 채 사당 안에서 뒹굴었다. 불길이 가까워졌다. 열기가 피부를 달구었다. 김 차사가 차사 셋에게 명령했다. 저승의 법으로 소환장을 발부하오. 이승의 일은 이승에 맡기되, 최 대감의 영혼에 대한 관할권은 저승에 있소. 차사 하나가 품에서 검은 종이를 꺼내 최 대감의 이마에 붙였다. 최 대감의 몸이 굳었다.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임이 멈추었다. 박 영감이 그 틈을 타 사당 밖으로 빠져나왔다. 뒤에서 사당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기둥이 쓰러지고 지붕이 내려앉았다. 불꽃이 하늘로 치솟았다. 돌쇠가 마당에서 장부를 안은 채 박 영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으리. 살아 계십니까. 박 영감은 그을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당 잔해 속에서 최 대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김 차사가 잔해 앞에 서서 말했다. 최 대감은 저승으로 소환되었소. 그의 육신은 불에 탔지만, 영혼은 명부청 감사관이 거두었소. 재판을 받게 될 것이오.

    ※ 11단계: 최악의 순간 — 명부의 주인이 드러나다

    불길이 잦아들고 동이 트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이 연기를 보고 달려왔지만, 사당 자리에는 잿더미만 남아 있었다. 최 대감 댁 하인들은 대감의 행방을 몰랐다. 혼란 속에서 박 영감과 돌쇠는 장부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재에 장부를 펼쳐 놓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거래 기록을 하나하나 읽었다. 읽을수록 소름이 돋았다. 최 대감 한 사람의 거래만으로도 죽거나 수명이 줄어든 사람이 스무 명이 넘었다. 다른 의뢰인들까지 합치면 백 명은 족히 넘었다. 이들 모두가 저승 명부의 위조로 인해 부당하게 죽거나, 죽을 날이 앞당겨진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장부 맨 뒤에 이상한 기록이 있었다. 다른 거래와는 형식이 달랐다. 거래가 아니었다. 계약이었다. 한쪽에는 노인 지관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이름 대신 관직이 적혀 있었다. 명부청 서기관. 저승의 관직이었다. 계약 내용은 이러했다. 명부청 서기관은 이승의 지관에게 생사부 초본의 열람 및 수정 권한을 위임한다. 대가로 이승에서 거둔 거래 금액의 반을 저승의 서기관에게 바친다. 계약 기간은 삼십 년. 박 영감의 머리가 하얘졌다. 이것은 지관 혼자 한 짓이 아니었다. 저승 안에 공범이 있었다. 명부청의 서기관이 명부를 열어 주고 이승의 지관이 돈을 받고 고쳐 주는 구조였다. 저승과 이승을 잇는 부패의 고리. 김 차사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표정이 어두웠다. 여기까지 밝혀진 모양이오. 박 영감이 물었다. 이것을 알고 있었소. 김 차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의심은 하고 있었소. 그러나 서기관은 명부청에서도 높은 자리에 있소.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소. 박 영감이 분노했다. 그래서 나를 이용한 것이오. 이승 사람을 앞세워 증거를 모으게 한 것이오. 김 차사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소. 저승의 일을 저승에서만 처리하려 하면 서기관이 증거를 없애 버리오. 이승에서 증거를 확보해야 서기관도 손을 쓸 수 없소. 박 영감이 장부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이 장부가 타 버리면 어떻게 되오. 사당은 이미 불탔소. 남은 것은 내가 가져온 이 몇 권뿐이오. 김 차사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 그것이 문제요.

    ※ 12단계: 영혼의 밤 — 죽은 아내의 목소리

    그날 밤, 박 영감은 서재에서 잠이 들었다. 장부를 안은 채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상태에서 눈앞에 이씨 부인이 서 있었다. 아내였다. 삼 년 전 죽은 아내가 살아 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다만 발 아래에 그림자가 없었다. 여보. 아내가 불렀다. 목소리가 생전과 똑같았다. 박 영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여보, 나는 당신에게 해야 할 말이 있소. 아내가 말했다. 나는 알고 있었어요. 방 아래에 묻힌 것도 알고 있었고, 내가 당신 대신 죽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박 영감이 소스라쳤다. 알고 있었소.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지관이 부적을 태우던 날 밤, 당신이 잠든 사이에 지관이 나에게 말했어요. 수명을 옮기는 일이니, 가장 가까운 사람이 대신해야 한다고. 나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었어요. 거부하면 당신이 그대로 죽고, 받아들이면 당신이 산다고. 박 영감의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받아들인 거요. 아내가 미소 지었다. 당신이 사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선택이었어요. 다만 한 가지 원통한 것은, 최 대감이 이것을 장사로 삼았다는 거예요. 나의 선택을 돈으로 바꾼 거예요. 그것만 밝혀 주세요. 박 영감은 손을 뻗어 아내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손이 닿지 않았다. 아내의 형체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아내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돌쇠를 부탁해요. 그 아이는 당신을 아버지처럼 따르고 있어요. 형체가 사라졌다. 박 영감이 눈을 떴다. 서재였다. 새벽이었다. 볼에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손에 무언가가 쥐어져 있었다. 꿈에서 아내가 없었던 손, 그 손에 작은 종이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명부청 서기관의 이승 이름은 박 달수. 박 영감의 친형이었다. 십오 년 전에 죽은 형. 형이 저승에서 서기관이 되어 이 모든 일을 벌인 것이었다. 박 영감의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 13단계: 3막 진입 — 저승 법정에 서다

    날이 밝자 김 차사가 다시 나타났다. 박 영감은 아내가 남긴 종이를 내밀었다. 명부청 서기관이 내 형 박 달수요. 김 차사의 눈이 커졌다. 당신의 친형이오. 그래서 당신의 명부가 변조된 것이오. 형이 아우의 수명을 늘리려 한 것이 시작이었고, 그것을 계기로 이승의 지관과 손을 잡고 거래를 벌인 것이오. 박 영감은 지난밤의 꿈을 떠올렸다. 아내는 모든 것을 알고도 자기 대신 죽었다. 형은 자기를 살리려다 수백 명의 운명을 뒤틀었다. 두 사람 모두 자기 때문이었다. 김 차사가 말했다. 명부청에서 정식 재판이 열리오. 서기관 박 달수와 이승의 지관, 최 대감의 영혼이 피고로 서오. 그런데 이승의 증인이 필요하오. 나보고 저승에 가라는 말이오. 산 사람이 저승 법정에 설 수 있소. 김 차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례가 없지는 않소. 다만 위험이 있소. 저승에 머무는 동안 이승의 몸은 숨만 붙어 있는 상태가 되오. 돌아오지 못하면 그대로 죽소. 박 영감은 돌쇠를 보았다. 돌쇠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으리, 가십시오. 이 몸이 나으리의 몸을 지키고 있겠습니다. 마님의 원한을 풀어 주셔야지요. 박 영감이 김 차사에게 말했다. 가겠소. 김 차사가 박 영감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기운이 이마에서 온몸으로 퍼졌다. 박 영감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거대한 전각 앞에 서 있었다. 전각의 편액에는 명부청이라고 적혀 있었다. 문 앞에 검은 관복의 관리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법정이 나타났다. 가운데에 높은 단상이 있었고, 그 위에 붉은 도포를 입은 거대한 형상이 앉아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눈빛만이 법정 안을 훑었다. 김 차사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염라대왕 전하. 이승의 증인 박철수를 데려왔사옵니다. 법정 한쪽에 최 대감의 영혼이 사슬에 묶여 있었다. 다른 한쪽에 백발의 지관 노인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피고석 가운데에, 관복을 입은 사내가 서 있었다. 형이었다. 박 달수. 십오 년 만에 보는 형의 얼굴이었다. 형은 박 영감을 보자 입술을 떨었다. 아우야. 박 영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 14단계: 결말 — 명부의 정정, 그리고 대가

    염라대왕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법정 전체를 울렸다. 명부청 서기관 박 달수. 너는 삼십 년간 생사부를 위조하여 이승의 질서를 어지럽혔다. 수명을 늘리고 줄이고, 대리 사망자를 지정하여 죽지 않을 자를 죽게 하였다. 이에 대해 할 말이 있느냐. 박 달수가 무릎을 꿇었다. 처음에는 아우를 살리기 위한 것이었사옵니다. 아우가 영조 오년에 급체로 죽을 운명이었사옵니다. 형으로서 차마 볼 수 없었사옵니다. 명부의 글자 하나만 고치면 된다고 생각했사옵니다. 그러나 한 번 고치니 두 번째가 쉬워졌고, 그것이 거래가 되었사옵니다. 제 죄를 알고 있사옵니다. 염라대왕의 눈빛이 박 영감에게로 향했다. 이승의 증인 박철수. 증거를 제출하라. 박 영감이 품에서 장부를 꺼내 법정 바닥에 내려놓았다. 거래 기록이 담긴 장부였다. 이름과 금액과 날짜가 빼곡하게 적힌 장부. 염라대왕이 관리에게 장부를 올리게 했다. 장부를 넘기는 동안 법정이 조용했다. 낱장이 넘어갈 때마다 바람이 일었다. 염라대왕이 판결을 내렸다. 서기관 박 달수는 삼천 년간 무간지옥에서 형벌을 받을 것이며, 이후 명부청의 모든 기록에서 관직이 삭제된다. 지관은 이승으로 돌려보내되, 남은 수명을 모두 거두어 즉시 사망케 한다. 최 대감의 영혼은 위조로 인해 부당하게 누린 수명 전부를 환수하고, 피해자들에게 돌려준다. 그리고 위조된 명부의 모든 기록을 원래대로 정정한다. 법정 한가운데에 거대한 장부가 나타났다. 생사부 원본이었다. 관리들이 먹을 갈고 붓을 들어 위조된 글자를 하나하나 지우고 원래의 글자를 써넣기 시작했다. 수백 명의 이름이 정정되는 동안, 법정 안에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당하게 죽은 영혼들의 한이 풀리는 소리였다. 박 영감은 형을 바라보았다. 형, 형은 나 때문에 이런 짓을 한 것이오. 박 달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우야. 나 때문이다. 형이 욕심을 부린 것이다. 너를 핑계 삼은 것이다.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 박 달수가 관리들에게 끌려갔다. 박 영감은 그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염라대왕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박철수, 너의 수명도 원래대로 정정되었다. 영조 오년에 죽었어야 할 운명이나, 네 아내 이씨가 자발적으로 대신한 것은 위조가 아닌 희생이다. 저승의 법에서도 자발적 희생은 유효하다. 너의 수명은 아내가 남긴 것이다. 남은 수명을 아끼라.

    ※ 15단계: 마지막 장면 — 먹이 마르지 않는 종이

    박 영감이 눈을 떴다. 서재였다. 돌쇠가 옆에서 박 영감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나으리, 깨어나셨습니까. 돌쇠의 눈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 삼 일이나 잠드셨습니다. 숨만 겨우 붙어 있어서 의원을 불렀는데 의원도 손을 쓸 수 없다 했습니다. 박 영감이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무거웠지만, 가슴 안쪽은 오히려 가벼웠다. 서재 안을 둘러보았다. 장부는 사라져 있었다. 품에 넣었던 장부도, 바닥에 놓았던 장부도 전부. 대신 책상 위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먹으로 쓴 글씨가 또렷했다. 명부 정정 완료. 피해자 삼백이십칠 명의 수명 환원. 서기관 박 달수 무간지옥 삼천 년 확정. 이승의 지관 즉사 처리 완료. 최 대감 수명 환수 완료. 이상, 명부청 감사관 김. 박 영감은 종이를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돌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으리,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박 영감은 종이를 접어 품에 넣으며 말했다. 돌쇠야. 오늘부터 너를 내 양자로 삼겠다. 돌쇠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나으리,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님이 부탁했다. 네 어머니나 다름없는 사람이 그리 말했다. 돌쇠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박 영감은 서재 문을 열었다. 아침 햇살이 마당을 비추고 있었다. 최 대감 댁 사당 자리에는 잿더미만 남아 있을 터였다. 그러나 장부에 적혔던 이름들은 이제 제자리를 찾았다. 죽은 자는 죽은 자의 자리로, 산 자는 산 자의 자리로. 박 영감은 마당으로 나섰다. 품에서 종이를 다시 꺼내 보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먹으로 쓴 글씨가 마르지 않았다. 세 번을 접었다 펴도, 먹이 번지지도, 마르지도 않았다. 마치 방금 쓴 것처럼 선명했다. 박 영감은 종이를 다시 접어 품에 넣었다. 저승에서 온 종이는 이승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내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스치는 것 같았다. 당신이 사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선택이었어요. 박 영감은 대문을 나섰다. 한양의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엔딩

    조선 영조 때의 일이라 전한다. 한양 북촌에 살던 한 양반이 저승의 명부가 위조되었음을 밝혀냈고, 저승 법정에 산 사람으로서 증인으로 섰다고 한다. 그 뒤로 그 양반의 품에는 늘 먹이 마르지 않는 종이가 한 장 있었다고 한다. 아무도 그 종이를 본 사람은 없으나, 양반이 죽은 뒤 관 속에서 종이 한 장이 발견되었는데, 글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빈 종이만 남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