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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신을 보던 무녀, 결국 저승사자의 신부가 되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금기된 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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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숙종 무렵, 전라도 남원 땅에 귀신을 보는 무녀가 있었다. 이름은 월이. 태어날 때부터 왼쪽 눈이 남들과 달랐다. 산 사람을 보면 평범한 눈이었으나, 죽은 자가 곁을 지나가면 왼쪽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사람들은 그 눈을 저승눈이라 불렀고, 월이는 열다섯부터 마을의 굿판에 서서 죽은 자의 말을 산 자에게 전하는 일을 했다. 그런 월이에게 어느 날 밤, 굿판이 아닌 자신의 방에서 처음으로 죽은 자가 찾아왔다. 검은 갓을 쓰고 창백한 얼굴에 웃음을 띤 사내. 그는 저승의 관리, 차사였다. 차사는 월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를 데리러 온 것이 아니다. 청하러 왔다. 산 자와 죽은 자의 혼인, 그 금기된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 1: 월이의 출생과 왼쪽 눈의 비밀

    조선 숙종 스물여섯 해, 전라도 남원 외곽 산자락에 작은 마을이 있었다. 마을 이름은 갈치골. 집이 스물두 채, 논이 골짜기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고, 마을 뒤로는 지리산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었다. 그 마을에서 아이가 태어난 것은 유월 보름 한밤이었다. 산파가 아이를 받아 들었을 때, 방 안의 촛불이 한꺼번에 꺼졌다. 바람이 분 것도 아니었고, 문이 열린 것도 아니었다. 촛불 넷이 동시에 꺼지자 방 안이 칠흑이 되었고, 산파가 비명을 질렀다. 아이의 어미 복순이가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부싯돌을 찾아 불을 붙였을 때, 산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이 눈이, 아이 왼쪽 눈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복순이가 아이를 안아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오른쪽 눈은 갓 태어난 아이답게 감겨 있었으나, 왼쪽 눈은 반쯤 열린 채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마치 눈 안에 작은 불씨가 들어앉은 것 같았다. 복순이는 그 눈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아이를 가슴에 안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아이의 외할머니도 이런 눈을 가졌었지. 피는 못 속인다.'

    아이의 이름은 월이가 되었다. 달이 가장 밝은 밤에 태어났다 하여 붙인 이름이었다. 월이는 자라면서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말을 빨리 배운 것도, 걸음을 빨리 뗀 것도 아니었다. 다만 아무도 없는 곳을 바라보며 혼자 웃거나, 허공을 향해 손을 흔드는 버릇이 있었다. 세 살 때 복순이가 물었다. "월아, 누구한테 손 흔드는 거냐." 월이가 대답했다. "저기 할아버지가 서 있어. 하얀 옷 입은 할아버지." 복순이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마을 어귀, 월이가 가리킨 곳에는 사흘 전 죽은 이장의 빈소가 있던 자리였다. 복순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복순이는 아이를 안고 울었다. '이 아이도 저승눈을 타고났구나. 외할머니처럼, 평생 죽은 자를 보며 살아야 하는 운명이구나.'

    월이가 일곱이 되자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월이가 지나간 자리에서 개가 짖지 않는다는 이야기, 월이가 우물가에 서면 물이 잠깐 탁해진다는 이야기, 월이의 왼쪽 눈이 밤에 붉게 빛난다는 이야기. 아이들은 월이를 피했다. 어른들은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으나, 월이네 집 앞을 지날 때 발걸음을 빨리 했다. 월이는 혼자 놀았다. 마당 한구석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며 종알종알 말을 했다. 복순이만이 알았다. 월이가 말을 거는 상대가 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복순이의 어머니, 그러니까 월이의 외할머니도 같은 눈을 가졌었다. 마을의 무녀로 사십 년을 살았고, 굿판에서 죽은 자의 말을 전하는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외할머니는 월이가 태어나기 두 해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죽기 전 복순이에게 한마디를 남겼다. "네 뱃속의 아이가 내 눈을 이어받을 것이다. 그 아이를 무서워하지 마라. 다만, 죽은 자의 청을 함부로 들어주지 않도록 가르쳐라."

    열다섯이 되던 해, 월이는 남원 읍내 큰 무당 봉례의 문하로 들어갔다. 봉례는 월이의 왼쪽 눈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이 아이는 가르칠 것이 없다. 이미 보고 있으니까." 월이의 무녀 생활이 시작되었다. 굿판에 서면 월이의 왼쪽 눈이 붉게 물들었고, 죽은 자가 월이의 입을 빌려 말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두려워했으나 점차 월이를 찾았다. 죽은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듣고 싶은 아들, 떠나간 아내의 원한을 풀어 주고 싶은 남편, 어린 나이에 죽은 아이의 행방을 알고 싶은 어미. 월이는 그들을 위해 굿을 했고, 죽은 자의 말을 전했다. 월이의 이름은 남원 일대에 퍼졌다. 사람들은 월이를 저승눈 무녀라 불렀다.

    ※ 2: 굿판 뒤 월이의 방에 나타난 저승차사

    월이가 스물하나 되던 해 가을이었다. 그날 월이는 남원 읍내에서 큰 굿을 마치고 돌아왔다. 부잣집 맏며느리가 아이를 낳다 죽은 것인데,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한을 풀어 달라며 월이를 불렀다. 굿은 두 시진 넘게 이어졌다. 월이의 왼쪽 눈이 붉게 타올랐고, 죽은 며느리의 목소리가 월이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어머님, 저는 원한이 없습니다. 다만 제 아이를 한 번만 안아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시어머니가 갓 태어난 아이를 월이의 품에 안겼고, 월이의 두 팔이 아이를 감싸 안은 순간 방 안의 촛불이 환하게 타올랐다가 스르르 가라앉았다. 굿이 끝났다. 시어머니는 엎드려 울었고, 월이는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것은 해시(밤 아홉 시)가 넘어서였다. 월이는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땀을 식혔다. 가을밤 바람이 마당을 지나며 월이의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굿을 할 때마다 몸에서 기운이 빠졌다. 죽은 자의 말을 전하는 일은 단순히 입을 빌려 주는 것이 아니었다. 죽은 자의 감정이 월이의 몸을 관통했다. 슬픔이 가슴을 찌르고, 원한이 뱃속을 뒤틀고, 그리움이 목을 조였다. 굿이 끝나면 그 감정들이 빠져나가며 월이의 몸을 텅 비게 만들었다. 월이는 마루에 누워 눈을 감았다.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몸이 무겁다.'

    그때였다. 왼쪽 눈이 뜨거워졌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왼쪽 눈꺼풀 안쪽이 붉게 달아올랐다. 굿판도 아닌 곳에서, 부름도 없이 왼쪽 눈이 반응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월이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눈을 떴다. 마당에 사내가 서 있었다. 검은 갓을 쓰고 검은 도포를 입은 사내였다. 얼굴은 창백했고,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런데 그 미소가 따뜻한 것인지 차가운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웃고 있으되 웃는 것이 아닌 듯한, 기이한 표정이었다. 월이의 왼쪽 눈이 타오르듯 붉어졌다. '이 사내는 산 사람이 아니다.' 월이가 몸을 굳힌 채 마루 위에서 마당을 내려다보았다.

    사내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았으나 또렷했고, 마당의 바람 소리를 뚫고 월이의 귀에 정확히 닿았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오. 나는 당신을 데리러 온 것이 아니오." 월이가 대답하지 않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으나 얼굴에는 드러내지 않았다. 열다섯부터 죽은 자를 대해 온 무녀였다. 두려움을 감추는 법은 오래전에 배웠다. 월이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데리러 온 것이 아니면 무엇 하러 왔느냐." 사내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발이 마당의 흙을 밟았으나 발자국이 남지 않았다. 달빛이 사내의 갓 위에 내려앉았으나 그림자가 지지 않았다. 사내가 대답했다. "청하러 왔소." 월이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무엇을." 사내가 웃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웃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웃음이 입술에만 머물고 눈에는 닿지 않았다. "혼인을 청하러 왔소."

    월이의 숨이 멈추었다. 한 박자, 두 박자. 숨을 다시 쉬기까지 그 사이에 월이의 머릿속을 수십 가지 생각이 관통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혼인. 명혼. 이승에서 금기로 여기는 것 중 가장 깊은 금기. 외할머니가 살아생전에 말했었다. 죽은 자가 산 자에게 혼인을 청하면 절대 들어주지 마라. 그것은 저승과 이승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다. 한 번 허물어지면 다시 세울 수 없다. 월이는 마루 위에서 일어섰다. 사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돌아가라. 나는 죽은 자의 말을 전하는 무녀이지, 죽은 자의 아내가 되는 무녀가 아니다." 사내의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몸을 돌렸다. "내일 다시 오겠소." 사내의 몸이 마당의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스며든다는 표현이 맞았다. 걸어간 것이 아니었다. 어둠이 사내를 삼킨 것이었다. 사내가 사라진 뒤 마당에는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 발자국도, 인기척도, 냄새도. 다만 월이의 왼쪽 눈이 한참이나 붉은 빛을 머금고 있었고, 그 빛이 사그라드는 데는 촛불 하나가 다 탈 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 3: 차사가 월이에게 혼인을 청하는 이유

    사내는 말한 대로 다음 날 밤에 다시 왔다. 그리고 그다음 날 밤에도, 또 그다음 날 밤에도 왔다. 항상 같은 시각, 해시가 지나고 밤이 깊어지기 시작하는 무렵이었다. 항상 같은 자리, 마당 한가운데 감나무 아래였다. 검은 갓, 검은 도포, 창백한 얼굴, 그림자 없는 몸. 월이는 처음 사흘은 대청마루에 나가지 않았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왼쪽 눈이 뜨거워지는 것을 견뎠다. 눈을 감아도 소용이 없었다. 눈꺼풀 안쪽이 달아올라 눈을 뜨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고, 눈을 뜨면 방 안 어둠 너머 마당에 사내가 서 있는 것이 느껴졌다.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느껴지는 것이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그 사내의 존재가 차가운 물결처럼 밀려들었다.

    나흘째 밤, 월이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외할머니가 가르쳐 준 것 중 하나가 있었다. 죽은 자가 세 번 찾아오면 무시해도 된다. 그러나 네 번째 오면 이유를 들어야 한다. 네 번 찾아오는 죽은 자는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해야 할 말을 가지고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월이는 방문을 열고 대청마루로 나갔다. 마당의 감나무 아래 사내가 서 있었다. 달빛이 감나무 가지 사이로 내려와 사내의 갓 위에 얹혀 있었다. 월이가 마루 끝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네 번째다. 이유를 말해라."

    사내가 고개를 살짝 숙여 예를 올렸다. 그 동작이 놀라울 정도로 정중했다. 죽은 자가 산 자에게 예를 갖추는 것을 월이는 처음 보았다. 굿판에서 만난 죽은 자들은 대개 원한에 가득 차 있거나 슬픔에 잠겨 있었다. 예의를 차릴 여유가 있는 죽은 자는 없었다.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나는 이승에서 사람이었던 적이 없소. 태어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오. 저승의 관리, 이승 말로 차사라 하오." 월이의 왼쪽 눈이 더 뜨거워졌다. 차사. 저승에서 죽은 자의 혼을 거두어 가는 관리. 월이는 굿판에서 차사의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으나 직접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아니, 어쩌면 마주한 적이 있되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차사는 산 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니까. 그런데 이 사내는 보였다. 월이의 왼쪽 눈뿐 아니라 오른쪽 눈에도 보였다. 그것이 월이를 불안하게 했다.

    "차사가 무녀에게 혼인을 청하는 법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월이가 말했다.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없었소. 내가 처음이오." 월이가 물었다. "이유가 무엇이냐." 사내가 감나무 아래에서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여전히 발자국이 남지 않았다. "저승에는 문이 하나 있소. 이승과 저승 사이의 문이오. 그 문은 백 년에 한 번 흔들리오. 문이 흔들리면 틈이 생기고, 틈 사이로 저승의 것이 이승으로 새어 나오오. 귀신이 떼를 지어 이승을 떠돌고, 역병이 퍼지고, 산 자가 이유 없이 미쳐 가오." 월이의 입이 굳어졌다. 사내가 말을 이었다. "그 문을 다시 닫으려면 열쇠가 필요하오. 열쇠는 산 자와 죽은 자의 혼인이오. 이승과 저승을 이어 주는 혼인이 이루어지면 문이 닫히오. 그것이 저승의 법이오." 월이가 물었다. "왜 하필 나냐." 사내가 대답했다. "저승눈을 가진 자만이 문을 볼 수 있소. 문을 볼 수 없는 자가 열쇠가 될 수는 없소. 지금 이 땅에서 저승눈을 가진 자는 당신뿐이오."

    월이는 한참을 말하지 않았다. 마당에 바람이 불어 감나무 잎이 흔들렸고, 잎사귀 사이로 달빛이 깜빡거렸다. 월이가 입을 열었다. "혼인을 하면 나는 어떻게 되느냐." 사내의 미소가 사라졌다. 처음으로 표정이 바뀌었다. 웃음이 걷히자 그 아래에 있던 것은 슬픔이었다. 차사의 얼굴에 슬픔이 서려 있는 것을 보고 월이는 가슴이 싸늘해졌다. 사내가 대답했다. "이승에서 살되, 이승의 사람이 아니게 되오. 먹을 수 있으나 배고프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으나 꿈을 꾸지 못하오. 사람 곁에 있으나 사람의 온기를 느끼지 못하오.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그 사이에 서는 것이오." 월이의 손이 무릎 위에서 떨렸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것. 그것은 삶이 아니다. 그러나 죽음도 아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월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내를 올려다보며 한마디만 했다. "시간을 다오."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보름을 드리겠소. 보름 뒤 이 감나무 아래서 대답을 듣겠소." 사내의 몸이 다시 어둠에 스며들었다. 감나무 잎 하나가 떨어져 사내가 서 있던 자리 위에 내려앉았다.

    ※ 4: 월이가 혼인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갈등과 결심

    보름이 시작되었다. 월이는 낮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살았다. 마을 사람들의 부름에 응해 굿을 했고, 아픈 아이의 집에 가서 부적을 써 주었고, 논일을 거드는 아낙네들과 우물가에서 물을 길었다. 그러나 밤이 되면 달라졌다. 방에 누우면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을 바라보며 차사의 말을 곱씹었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것.' 그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먹을 수 있으나 배고프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으나 꿈을 꾸지 못하고, 사람 곁에 있으나 온기를 느끼지 못하는 삶. 그것은 월이가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는 감각이었다. 저승눈을 가지고 태어난 이후, 월이의 삶은 늘 사이에 있었다. 산 자들 사이에서 살았으나 산 자들과 같지 않았다. 아이들이 피하고, 어른들이 두려워하고, 남자들이 청혼하지 않는 삶. 월이는 스물하나까지 한 번도 사내의 손을 잡아 본 적이 없었다. 마을 사내들은 월이가 아무리 고운 얼굴을 가져도 가까이 오지 않았다. 저승눈을 가진 여자를 아내로 맞으면 집안에 재앙이 온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보름의 닷새째 되는 날, 월이는 어머니 복순이를 찾아갔다. 복순이는 이미 머리가 반백이 되어 있었고, 허리가 굽어 마루에 앉아 지내는 날이 많았다. 월이가 마루에 앉아 어머니의 무릎에 머리를 기댔다. 복순이가 딸의 머리를 쓸어넘기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월아." 월이는 차사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어머니, 외할머니는 행복하셨습니까." 복순이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 "행복이라. 네 외할머니가 행복했느냐고." 복순이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행복이 뭔지는 모르겠다만, 외로웠을 것이다. 네 외할아버지도 외할머니의 눈을 무서워해서 같은 방에 잠을 자지 않았으니까. 사람들은 외할머니가 필요할 때만 찾아왔고, 필요 없을 때는 피했지. 무녀의 삶이 그런 것이다. 필요하되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존재." 월이의 눈에 물기가 차올랐다. '나도 그렇다. 필요하되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존재. 이미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 있는 셈이다.'

    보름의 열째 되는 날, 월이는 혼자 지리산 기슭을 올랐다. 외할머니가 묻혀 있는 산소를 찾았다. 풀이 무성하게 자란 봉분 앞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할머니, 죽은 자의 청을 들어주지 말라 하셨지요. 그런데 할머니, 이번에는 다릅니다. 저 혼자의 일이 아닙니다. 문이 열리면 마을에 역병이 들고, 귀신이 떠돌고, 산 자가 미쳐 간다 합니다. 제가 거절하면 마을이, 사람들이 위험해집니다." 바람이 봉분 위를 지나갔다. 풀이 한쪽으로 쏠렸다가 돌아왔다. 월이는 그 바람을 외할머니의 대답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바람이 풀을 쓸어넘기는 방향, 마을 쪽이었다. '마을을 지키라는 뜻인가.' 월이가 눈을 감았다 떴다. 왼쪽 눈이 뜨거웠다. 늘 뜨거웠다. 이 눈은 태어날 때부터 이 순간을 위해 달아오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보름의 열넷째 밤, 월이는 잠들지 못한 채 마루에 앉아 있었다. 내일이면 차사가 온다. 대답을 해야 한다. 월이는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굿판에서 방울을 흔들고, 신칼을 잡고, 죽은 자의 말을 전하던 손. 이 손으로 사내의 손을 잡아 본 적이 없었다. 따뜻한 손을 잡아 본 적이 없었다. 차사의 손은 차가울 것이다. 죽은 자의 손이니까. 그 차가운 손을 잡으면 나도 차가워질 것이다. 그러나 그 차가움으로 문이 닫히고, 마을이 살고, 사람들이 무사하다면. 월이가 입을 열었다. 아무도 없는 마당을 향해 말했다. '나는 이미 사이에 서 있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산 자들 사이에서 살았으나 산 자가 아니었고, 죽은 자를 보았으나 죽은 자가 아니었다. 차사의 아내가 되는 것이 그렇게 먼 길인가. 이미 반은 건너와 있는 것을.'

    보름째 밤, 감나무 아래 사내가 나타났다. 달이 구름 뒤에 숨어 있어 마당이 어두웠으나, 사내의 창백한 얼굴이 스스로 빛을 내는 듯 희미하게 보였다. 사내가 말없이 서 있었다. 월이가 마루에서 내려섰다. 맨발이 마당의 차가운 흙을 밟았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감나무 아래 사내 앞에 섰다. 두 사람의 거리는 팔 하나 길이. 월이가 입을 열었다. "받아들이겠다." 사내의 눈에 처음으로 빛이 스쳤다. 슬픔도, 기쁨도 아닌, 이름 붙일 수 없는 빛이었다. 사내가 물었다. "후회하지 않겠소." 월이가 대답했다. "후회는 산 자의 것이다. 나는 내일부터 산 자가 아니게 되니, 후회할 일도 없을 것이다." 사내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걸렸다. 이번에는 눈까지 닿는 미소였다. "사흘 뒤, 자시 정각. 이 감나무 아래에서 혼례를 올리겠소. 준비해야 할 것은 없소. 다만, 왼쪽 눈을 감지 마시오. 혼례 내내 왼쪽 눈을 뜨고 있어야 하오." 사내의 몸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월이는 감나무 아래 혼자 서 있었다. 맨발 아래 흙이 차가웠다. '이것이 마지막 차가움이겠지. 내일부터는 차가움도 느끼지 못할 테니.' 월이의 왼쪽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그 눈물이 붉은빛을 머금고 있었다는 것을 월이 자신은 알지 못했다.

    ※ 5: 자정에 치러지는 기이한 혼례식

    사흘이 지났다. 월이는 그 사흘 동안 평소와 똑같이 살았다. 아침이면 마당을 쓸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 세수를 하고, 마을 아낙네들과 함께 늦가을 김장 배추를 다듬었다. 손끝에 소금기가 배었고, 입김이 하얗게 피어올랐다. 옆집 아낙이 월이에게 말했다. "월이야, 올겨울은 유난히 춥겠다. 벌써 손이 꽁꽁이구먼." 월이가 웃었다. "그러게요, 올겨울은 추울 것 같아요." 그 웃음이 평소와 같았는지, 달랐는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월이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오늘 밤 자시에 혼례를 올린다는 것을. 신랑이 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내일부터 자신이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걸린 존재가 된다는 것을. 말할 수 없었다. 말한다 해도 믿을 사람이 없었고, 믿는다 해도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해가 졌다. 월이는 저녁밥을 지어 혼자 먹었다. 쌀밥에 된장찌개, 무나물. 입에 밥을 넣고 씹으면서 생각했다. '이것이 마지막 배고픔으로 먹는 밥이구나. 내일부터는 먹을 수 있되 배고프지 않다 했으니, 밥의 맛이 아니라 밥의 모양만 남겠지.' 월이는 숟가락을 놓고 밥그릇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밥을 한 숟가락 더 떠서 천천히 씹었다. 쌀알이 이 사이에서 부서지는 감촉, 된장의 짠맛이 혀 위에 퍼지는 느낌,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온기. 월이는 그 감각 하나하나를 몸에 새기듯 느꼈다.

    밤이 깊었다. 월이는 장롱에서 흰 저고리와 흰 치마를 꺼냈다. 외할머니가 남긴 것이었다. 외할머니가 굿판에서 입던 무복이 아니라, 한 번도 입지 않은 채 장롱 깊숙이 접어 둔 옷이었다. 복순이가 예전에 말해 준 적이 있었다. "이 옷은 네 외할머니가 혼례 때 입으려고 지은 것인데 결국 못 입으셨다. 외할아버지가 혼례를 서두르는 바람에 그냥 평복으로 올렸거든." 월이는 그 옷을 꺼내 몸에 댔다. 흰 천에서 오래된 향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외할머니의 냄새인지, 장롱 속 세월의 냄새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월이는 옷을 입고 머리를 빗었다. 거울 앞에 앉아 머리카락을 가르마 타고 뒤로 넘겨 하나로 묶었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른쪽 눈은 평범했다. 왼쪽 눈이 붉은빛을 머금고 있었다. 월이가 거울 속 자신에게 말했다. '무섭지 않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길이라면 무서울 것도 없다.'

    자시가 다가왔다. 월이가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섰다. 맨발이었다. 차가운 흙이 발바닥에 닿았다. 마당의 감나무 아래 사내가 이미 서 있었다. 오늘은 달랐다. 검은 갓과 검은 도포가 아니었다. 사내는 짙은 남빛 도포를 입고 있었고, 갓 대신 머리에 검은 비단을 둘렀다. 사내의 옆에 낮은 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상이었다. 상 위에는 촛불 두 개가 타고 있었고, 나무잔 두 개에 맑은 물이 담겨 있었다. 술이 아니라 물이었다. 사내가 말했다. "저승의 혼례에는 술을 쓰지 않소. 물을 쓰오. 물은 이승과 저승 모두를 흐르는 것이니까." 월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상 앞에 섰다. 사내가 맞은편에 섰다. 두 사람 사이에 촛불 두 개가 흔들렸다.

    사내가 월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왼쪽 눈을 감지 마시오. 혼례가 끝날 때까지 뜨고 있어야 하오." 월이는 왼쪽 눈을 크게 떴다. 붉은빛이 타올랐다. 그 순간 마당의 풍경이 달라졌다. 감나무 뒤로 희미한 형체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수십 명의 형체.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 그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했다. 사흘 전 굿판에서 보낸 죽은 며느리가 있었다. 지난해 보낸 어린아이가 있었다. 몇 해 전 월이의 굿으로 한을 풀고 떠난 노인이 있었다. 월이가 무녀로서 보내 준 죽은 자들이 줄지어 서서 이 혼례를 지켜보고 있었다. 월이의 입이 떨렸다. 사내가 말했다. "이들이 증인이오. 산 자와 죽은 자의 혼례에는 죽은 자들이 증인으로 서는 것이 법이오." 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왼쪽 눈에 맺혔으나 흘러내리지 않았다. 붉은빛이 눈물을 붙잡고 있었다.

    사내가 나무잔을 들었다. 월이도 잔을 들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물을 마셨다. 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차가웠다. 한겨울 얼음장 밑을 흐르는 물처럼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목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배로, 배에서 손끝과 발끝까지 퍼졌다. 월이의 몸이 떨렸다. 이가 부딪혀 소리를 냈다. 사내가 상 위 촛불 하나를 집어 들고 월이에게 건넸다. "이 불을 불어서 끄시오." 월이가 떨리는 손으로 촛불을 받아 들고 입으로 불었다. 후. 불이 꺼졌다. 그 순간 마당 전체가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남은 촛불 하나의 빛이 이상하리만큼 환하게 퍼졌다. 사내가 남은 촛불을 들고 말했다. "이 불은 끄지 않소. 이것은 당신의 남은 이승 몫이오. 이 불이 다 타는 날이 당신이 완전히 저승으로 오는 날이오." 사내가 촛불을 상 위에 내려놓았다. 불꽃이 흔들리지 않고 곧게 타올랐다. 사내가 두 손을 내밀었다. 월이가 사내의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돌처럼 차가웠다. 그러나 그 차가움 안에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죽은 자의 떨림이었다. 월이는 그 떨림을 느끼며 눈을 감지 않았다. 왼쪽 눈이 활활 타올랐고, 감나무 뒤에 줄 선 죽은 자들의 형체가 하나둘 허물어지며 빛으로 흩어졌다. 혼례가 끝나고 있었다.

    ※ 6: 혼인 후 월이에게 벌어지는 일들

    혼례 다음 날 아침, 월이는 평소처럼 눈을 떴다. 방 안에 아침 햇살이 들어와 있었고, 마당에서 참새가 울고 있었다. 몸을 일으켰다. 어지러움은 없었다. 통증도 없었다. 다만 무언가가 달랐다. 이불 위에 올려놓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은 평소와 같았다. 그러나 이불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솜이불의 부드러움, 무명천의 거친 올, 손끝에 닿는 따뜻함. 아무것도 없었다. 눈으로는 손이 이불 위에 있는 것이 보였으나, 손은 아무것도 만지지 않는 것 같았다. 월이가 천천히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불이 타오르는 것이 보였고, 나무가 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불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손을 아궁이 가까이 가져갔다. 뜨거워야 할 거리였다. 뜨겁지 않았다. 월이의 입에서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시작되었구나."

    밥을 지었다. 쌀을 씻고, 물을 붓고, 솥을 올렸다. 손이 기억하는 대로 움직였다. 밥이 되었다. 뚜껑을 열자 김이 올라왔다. 김의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밥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씹었다. 이 사이에서 쌀알이 부서지는 감각은 있었으나, 맛이 없었다. 짠맛도, 고소함도, 뜨거움도 없었다. 어제 저녁에 느꼈던 쌀의 감각이 사라져 있었다. 입 안에 있으되 먹는 것이 아닌, 기이한 감각이었다. 월이는 숟가락을 놓고 밥그릇을 바라보았다. '차사가 말한 대로구나. 먹을 수 있으나 배고프지 않고, 맛을 알 수 없는 삶.'

    마을 사람들은 월이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월이가 평소처럼 우물가에 나와 물을 길었고, 아낙네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아이들에게 엿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월이 자신은 알았다. 우물물을 길어 올릴 때 두레박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낙네의 손이 월이의 팔을 잡았을 때 그 온기가 전해지지 않았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귀에 들렸으나 가슴에 닿지 않았다. 세상이 유리벽 너머에 있는 것 같았다. 보이고 들리되 만져지지 않는 세상. 월이는 우물가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림자가 옅어져 있었다. 아침 햇살이 환한데도 월이의 그림자만 반투명하게 흐릿했다. '그림자마저 반은 사라졌구나.'

    밤이 되면 차사가 왔다. 혼인 뒤 차사는 매일 밤 월이의 방에 나타났다. 더 이상 마당이 아니었다. 방 안 촛불 옆에 앉아 월이와 마주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사는 저승의 이야기를 했다. 저승에는 강이 있다는 것, 그 강을 건너면 돌아올 수 없다는 것, 강 이쪽에서 기다리는 혼들이 있다는 것. 월이는 이승의 이야기를 했다. 오늘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옆집 아낙이 아들을 낳았다는 것, 논에 첫 서리가 내렸다는 것. 차사는 이승의 이야기를 들을 때 눈빛이 달라졌다. 평소의 무표정 아래에 무언가가 스치는 것이 보였다. 월이가 물었다. "너는 이승에서 살아 본 적이 없다 했지. 이런 이야기가 궁금하냐." 차사가 대답했다. "궁금하오. 나는 이승에서 혼을 거두기만 했소. 혼을 거둘 때 그 사람의 기억이 잠깐 보이오. 밥을 먹는 기억, 아이를 안는 기억, 눈 위를 맨발로 걷는 기억. 그 기억들이 아름다웠소. 가져 본 적 없는 것이 아름다운 법이오." 월이의 가슴이 저렸다.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저림은 무엇인가. 감각이 사라졌다고 했으나 이 아림은 남아 있었다. 월이는 그 저림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가슴에 손을 얹었다.

    혼례 후 열흘이 지나자 변화가 뚜렷해졌다. 월이의 왼쪽 눈은 더 이상 붉어지지 않았다. 대신 양쪽 눈 모두로 죽은 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길을 걸으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뒤섞여 보였다. 누가 산 자이고 누가 죽은 자인지 구별이 힘들어졌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으나 점차 익숙해졌다. 죽은 자는 그림자가 없었고 발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굿을 할 때 변화가 왔다. 예전에는 월이의 입을 빌려야 죽은 자의 말이 전해졌으나, 이제는 월이가 죽은 자의 말을 직접 듣고 산 자에게 옮길 수 있었다. 몸이 매개가 아니라 귀가 매개가 된 것이었다. 굿이 쉬워졌다. 기운이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대가가 있었다. 굿이 끝나고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월이는 자신의 발자국을 돌아보았다. 흙길 위에 발자국이 찍혀 있지 않았다. 월이의 몸은 여전히 이 땅에 있었으나, 이 땅이 월이를 받아들이지 않기 시작한 것이었다.

    ※ 7: 월이가 내린 최후의 결정

    혼례 후 석 달이 흘렀다. 겨울이 깊어졌다. 갈치골 마을에 눈이 내렸고, 논은 하얗게 덮였고, 지리산 기슭은 얼음으로 반짝였다. 월이는 변함없이 마을의 무녀로 살았다. 굿을 했고, 부적을 썼고, 아픈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러나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을 때 열이 느껴지지 않았고, 부적에 먹을 적을 때 붓의 무게가 손에 전해지지 않았다. 세상과의 접촉면이 날마다 줄어들고 있었다. 촛불 하나가 타들어 가듯, 월이의 이승 몫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었다. 혼례 때 차사가 상 위에 남겨 둔 촛불. 그 불이 다 타는 날이 월이가 완전히 저승으로 가는 날이라 했다. 월이는 그 촛불을 방 한구석에 두고 매일 밤 지켜보았다. 촛불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짧아지고 있었다.

    그해 정월, 마을에 역병이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열을 앓았고, 곧이어 노인들이 쓰러졌다. 사흘 만에 마을 스물두 집 가운데 일곱 집에서 환자가 나왔다. 월이의 눈에는 역병의 원인이 보였다. 마을 뒤편 산기슭, 외할머니가 말하던 이승과 저승 사이의 문이 있는 자리에서 검은 기운이 실처럼 가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은 것이었다. 월이가 차사에게 물었다. "혼인으로 문이 닫혀야 하는 것 아니었느냐." 차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닫혔소. 그러나 완전하지 않소. 문을 완전히 닫으려면 열쇠가 문 안에 들어가야 하오." 월이의 심장이 한 박자 멈추었다. "열쇠가 문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내가 저승으로 건너간다는 뜻이냐." 차사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대답이었다.

    월이는 사흘을 고민했다. 역병은 번져 가고 있었다. 아이 하나가 죽었다. 옆집 아낙이 낳은 아들이었다. 태어난 지 석 달 된 아기가 열에 시달리다 새벽에 숨을 거두었다. 월이는 그 아이의 혼을 보았다. 작은 혼이 아기의 몸 위에 앉아 울고 있었다. 크기가 주먹만 했다. 월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감각이 다시 살아났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 아이는 내가 살릴 수 있었다. 문을 완전히 닫았다면 이 아이는 죽지 않았다.' 월이가 차사에게 말했다. "내가 가겠다." 차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가면 돌아올 수 없소." 월이가 대답했다. "알고 있다."

    마지막 굿을 한 것은 정월 대보름 밤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월이가 굿판에 섰다. 흰 저고리에 흰 치마, 외할머니가 남긴 옷이었다. 월이는 방울을 들었다. 방울 소리가 마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월이의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저승 가는 길이 멀다 하되, 눈 한 번 감으면 닿는 길이요, 이승에서 울지 마라, 이승의 울음은 저승에 닿지 않으니. 마을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 채 귀를 기울였다. 월이의 양쪽 눈이 붉게 타올랐다. 왼쪽 눈만이 아니라 오른쪽 눈까지 붉은빛을 머금었다. 월이의 몸이 빛을 냈다. 마을 사람들이 눈을 가렸다. 빛이 굿판을 감싸고, 마당을 감싸고, 마을 전체를 감쌌다.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 월이는 사라져 있었다. 굿판 위에 흰 저고리와 흰 치마만 접혀져 놓여 있었다. 방울이 그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월이를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집에 가 보았으나 방은 비어 있었다. 다만 방 한구석에 촛불 하나가 타고 있었는데, 그 촛불은 심지가 끝까지 타 내려가 촛농 위에서 마지막 불꽃을 떨구고 있었다. 불꽃이 꺼진 것은 마을 사람들이 방에 들어선 직후였다. 지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사라지자 방 안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날 밤부터 역병이 멈추었다. 열을 앓던 아이들의 열이 내렸고, 쓰러졌던 노인들이 일어나 앉았다. 마을 뒤편 산기슭에서 새어 나오던 검은 기운이 사라졌다. 문이 닫힌 것이었다. 완전히.

    마을 사람들은 월이가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이듬해 봄, 월이의 집 마당 감나무 아래에서 이상한 것이 발견되었다. 나무잔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그 안에 맑은 물이 가득 차 있었다. 누가 놓았는지 알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잔을 치우지 않았다. 비가 와도 잔 안의 물이 넘치지 않았고, 가뭄이 와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감나무를 월이나무라 부르기 시작했다. 해마다 보름밤이면 감나무 아래에 촛불을 켜고 월이를 기렸다. 죽은 것인지, 간 것인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만은 모두가 느꼈다. 월이가 사라진 뒤 마을에 귀신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 아이들이 허공을 향해 손을 흔들지 않았다는 것. 이승과 저승 사이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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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신을 보는 눈을 가지고 태어난 무녀 월이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저승차사의 신부가 되었고, 끝내 스스로 문 너머로 걸어갔습니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삶을 택한 여인의 이야기,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오늘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리고, 다음 이야기에서 또 만나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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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photorealistic cinematic wide shot of a young Korean woman in a white traditional hanbok standing barefoot under a large persimmon tree at night. Her left eye glows faintly red while her right eye remains dark and normal. Across from her stands a pale-faced man in a deep navy-blue dopo robe with no shadow on the ground. Between them, a low wooden table holds two small wooden cups and a single flickering candle. Behind the persimmon tree, dozens of translucent ghostly figures in white hanbok stand in rows watching silently. A full moon hangs in the clear night sky, casting cold blue-white light over the scene. Fallen persimmon leaves scatter on the dirt ground. The atmosphere is hauntingly beautiful, eerie yet serene. Shallow depth of field, dramatic moonlight, 16:9 aspect ratio, no 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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