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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받은 무당 고양이가 되어 (출처 - 패관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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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250자 내외)
마녀로 몰려 모든 것을 잃은 무당, 그녀는 복수를 위해 인간이 아닌 짐승의 몸을 택했다. 원수의 침실에 숨어든 검은 고양이. 하지만 그의 침실에서 마주한 것은 추악한 원수가 아닌, 고독하고 강직한 젊은 사내였다. 복수의 칼날이 사랑의 입맞춤으로 변하는 순간, 운명은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조선 시대 야담집 『패관잡기』에 실린 설화를 해피엔딩 로맨스 드라마로 재구성한 이야기. 탐관오리들의 모함으로 하루아침에 마녀로 낙인찍힌 무당 '묘령'. 그녀는 죽음의 문턱에서 비술을 사용해 검은 고양이로 변신, 복수를 다짐하며 원수의 집에 숨어든다. 그러나 그녀가 만난 것은 원수가 아닌, 새로 부임한 청렴한 사또 '이안'. 복수를 위해 시작된 동거는 점차 연민과 사랑으로 변해가고, 두 사람은 거대한 음모에 맞서 함께 싸우기 시작한다. 인간과 짐승의 경계를 넘나드는 가장 기묘하고도 애틋한 사랑 이야기.
※ 마녀의 눈물, 복수의 서약
달빛조차 스며들지 못하는 깊은 숲속, 낡고 허름한 신당(神堂)에 한 여인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온몸은 상처투성이였고, 입고 있던 흰 소복은 흙먼지와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묘령(猫靈). 대대로 신내림을 받아 이 마을의 길흉화복을 점쳐주던 무당이었다. 신비로운 자줏빛 눈동자와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영험함으로 칭송받았지만, 그 뛰어난 능력이 오히려 재앙이 되었다. 마을의 재물을 탐하던 부패한 현감과 아전들은 그녀의 신당을 역병의 근원지로 지목하고, 그녀를 사람 홀리는 마녀로 몰아세웠다.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신당은 불탔으며, 그녀는 겨우 목숨만 건져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묘령은 제단에 놓인 낡은 경전을 펼쳤다. 그곳에는 대대로 금기시되어 온 비술(祕術)이 적혀 있었다. 인간의 몸을 버리고,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저주받은 주술. 그녀는 복수를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었다. 그녀의 뇌리에는 며칠 전,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관아로 찾아갔던 날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새로운 사또가 부임했다는 소식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지만, 문지기에게 가로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잠시 마주쳤던 한 젊은 사내의 얼굴. 그가 바로 신임 사또 이안(李安)이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탐관오리들의 그것과는 달랐다. 맑고, 강직하며, 깊은 고뇌가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이 부패한 세상의 일부일 뿐이다. 결국 그도 자신을 마녀라 단죄할 것이다. 묘령은 마음속의 작은 희망을 잘라냈다.
마침내 보름달이 중천에 떠오르자, 묘령은 결심한 듯 제단 앞에 섰다. 그녀는 은장도로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로써 경전에 기이한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주문을 외우는 그녀의 목소리는 밤의 정적을 갈랐고, 신당 주변으로 음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천지신명이시여, 굽어살피소서. 인간의 몸으로는 이 원한을 갚을 길이 없으니, 당신들의 가장 미천한 종에게 새로운 몸을 허락하소서. 밤의 눈을 주시고, 그림자의 발을 주시어, 원수의 심장을 꿰뚫게 하소서."
주문이 끝나자, 묘령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그녀의 몸은 점차 작아졌고, 뼈와 살이 뒤틀리는 끔찍한 소리가 신당을 가득 메웠다. 마침내 모든 것이 고요해졌을 때, 그녀가 쓰러졌던 자리에는 새하얀 소복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옷 위에는, 칠흑같이 검은 털에 신비로운 자줏빛 눈동자를 가진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고양이는 자신의 변해버린 몸을 잠시 낯설게 내려다보더니, 이내 맹수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관아 쪽을 향해 소리 없이 울었다. 이제 그녀는 묘령이 아니었다. 복수의 화신이었다. 인간의 법이 구해주지 못한 정의를, 짐승의 발톱으로 되찾으리라. 복수의 서약과 함께, 검은 고양이는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 원수의 침실에 숨어든 검은 그림자
사또 이안의 관사는 밤이 되면 유독 깊은 적막에 휩싸였다. 한양에서 출세 가도를 달리다, 권력 다툼에 밀려 좌천되듯 부임한 이 외딴 고을은 그에게 또 다른 유배지나 다름없었다. 그는 밤마다 서책을 붙들고 씨름했지만, 책의 내용보다는 창밖의 어둠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고뇌가 그의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부패가 만연한 이곳에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을까.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촛불을 껐다.
바로 그 순간, 열린 창문 틈으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소리 없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검은 고양이로 변한 묘령이었다. 그녀는 짐승의 본능으로 사또의 침실이 가장 허술하다는 것을 간파하고, 복수의 첫걸음을 떼기 위해 이곳으로 숨어든 것이다. 그녀의 자줏빛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며, 잠든 원수의 목덜미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 목을 물어 끊어버릴까. 아니, 너무 쉬운 복수는 시시하다. 매일 밤 그의 잠자리를 어지럽히고, 악몽을 꾸게 하여 서서히 말려 죽이리라.
묘령은 고양이 특유의 유연함으로 이안의 침상 머리맡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가까이서 본 그의 얼굴은, 그녀가 생각했던 탐관오리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잠든 그의 얼굴에는 깊은 고뇌와 외로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심지어 그는 잠꼬대처럼 누군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기도 했다. 묘령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며칠 전 관아 앞에서 마주쳤던 그 강직한 눈빛이 떠올랐다. 정말 이 사람이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원수일까. 그녀의 마음속에서 복수심과 함께 작은 혼란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때, 방문 밖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묘령은 잽싸게 몸을 날려 대들보 위로 몸을 숨겼다. 잠시 후, 복면을 쓴 괴한 하나가 소리 없이 방 안으로 들어와 잠든 이안에게 다가갔다. 손에는 번뜩이는 단검이 들려 있었다. 자객이었다! 묘령은 순간 모든 것을 깨달았다. 이 고을의 부패 세력들이 새로 부임한 사또를 제거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자들도 바로 저들과 한패일 것이다.
복수심이 다시 타올랐다. 원수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꼴이니, 구경이나 하는 것이 상책이다. 하지만 단검이 이안의 심장을 향해 내려꽂히려던 바로 그 순간, 묘령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날렸다. 그녀의 몸은 마치 검은 화살처럼 허공을 가로질러, 자객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캬악!" 하는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그녀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자객의 눈을 할퀴었다. 비명과 함께 자객이 휘두른 칼날이 그녀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갔다. 상처의 고통보다, 자신이 왜 원수를 구했는지에 대한 혼란이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잠에서 깨어난 이안이 고함을 치자, 자객은 당황하여 황급히 도망쳤다.
방 안에는 피를 흘리며 쓰러진 검은 고양이와, 이 모든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셔 있는 이안만이 남아 있었다. 이안은 조심스럽게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고양이는 경계심을 드러내며 하악질을 했지만, 이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는 고양이의 옆구리에 난 깊은 상처를 발견했다. 자신을 구하려다 다친 것이 분명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고양이를 안아 들었다. 이상하게도, 고양이를 품에 안는 순간, 얼마 전 관아 앞에서 마주쳤던 억울한 눈빛의 한 여인이 떠올랐다. 그는 고양이의 상처를 정성껏 치료해주고, 자신의 침상 옆에 푹신한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묘령은 낯선 사내의 다정한 손길에 저항하지 못하고, 그의 곁에서 조용히 잠이 들었다. 복수를 위해 찾아온 원수의 침실은, 역설적이게도 그녀에게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었다.
※ 짐승의 마음, 인간의 사랑
그날 이후, 묘령은 이안의 곁에 고양이의 모습으로 머물게 되었다. 낮에는 관사의 지붕 위나 후원 나무 그늘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평범한 고양이처럼 보였지만, 밤이 되면 그녀는 이안의 가장 가까운 수호자가 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그를 원수라 생각하지 않았다. 매일 밤, 그가 부패한 관리들의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밤늦도록 서책과 씨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가 자신이 찾던 정의로운 사람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복수심 대신 연민과 애틋함이라는 낯선 감정이 자라나고 있었다.
이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을 구해준 이 신비로운 검은 고양이에게 '흑월(黑月)'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애지중지 보살폈다. 그는 고양이의 자줏빛 눈동자를 들여다볼 때마다, 알 수 없는 그리움과 슬픔을 느꼈다. 그는 매일 밤 흑월을 품에 안고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이곳에서, 말 못 하는 이 짐승만이 그의 유일한 벗이었다. "흑월아, 내가 과연 이들을 이길 수 있을까. 때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구나." 그의 한탄을 들으며, 묘령은 그의 뺨에 자신의 부드러운 털을 비비는 것으로 위로를 대신했다.
그러던 어느 기이한 밤이었다. 하늘에는 붉은 달이 떠 있었고, 대기 중에는 신비로운 기운이 감돌았다. 그날은 12년에 한 번 돌아오는, 음(陰)의 기운이 가장 강한 날이었다. 이안은 여느 때처럼 흑월을 품에 안고 잠이 들었다. 깊은 밤, 잠결에 그는 이상한 기척을 느꼈다. 짐승의 부드러운 털의 감촉 대신, 사람의 매끄러운 살결이 느껴졌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자신의 옆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한 여인이 누워 있었다. 칠흑같이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를 덮고 있었고, 붉은 달빛을 받은 새하얀 몸은 현실의 것 같지 않게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여인의 눈동자는, 바로 흑월의 신비로운 자줏빛 눈동자였다. "누… 누구냐, 너는…." 이안의 목소리는 충격으로 떨리고 있었다.
여인은 대답 대신, 슬픈 미소를 지으며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 손길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바로 며칠 전 관아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던 그 무당, 묘령이었다.
"어찌… 네가…."
"쉿. 아무것도 묻지 마세요, 나리. 제게 허락된 시간은 동이 트기 전까지뿐입니다."
묘령의 목소리는 이슬처럼 맑았다. 그녀는 붉은 달의 기운을 받아, 아주 잠시 동안 인간의 몸을 되찾은 것이다. 이안은 꿈을 꾸는 것 같았지만, 자신의 뺨에 닿은 그녀의 부드러운 감촉과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체향은 너무나도 생생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 고양이의 몸으로 그를 위로하던 묘령 또한, 인간의 몸으로 그를 안으니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다. 연민과 감사가, 어느새 사랑이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입맞춤은 길고 깊었다. 이안은 그녀가 왜 고양이가 되었는지, 어찌하여 자신의 곁에 머물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앞에 있는 이 신비로운 여인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탐했다. 그녀의 살결은 비단보다 부드러웠고, 그녀의 몸짓은 그를 황홀경으로 이끌었다. 묘령 역시 그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마녀라 손가락질받고, 짐승의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유일하게 위로해준 남자.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그에게 사랑을 표현했다. 짐승의 마음이 인간의 사랑으로 피어나는 기적의 밤이었다. 두 사람의 몸은 달빛 아래에서 하나가 되었고, 이 기묘하고도 애틋한 사랑은 잔혹한 운명의 굴레를 끊어낼 유일한 희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 낮에는 짐승, 밤에는 연인
그 기적 같은 밤 이후, 묘령과 이안의 관계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묘령은 붉은 달이 뜨는 밤에만 인간으로 변할 수 있었기에, 두 사람의 만남은 애틋하고도 절박했다. 낮 동안 묘령은 여전히 충직한 반려묘 '흑월'이었다. 그녀는 이안의 무릎에 앉아 애교를 부리거나, 관사 지붕 위에서 그의 안전을 살폈다. 고양이의 뛰어난 청력과 민첩함으로, 그녀는 부패한 관리들이 이안을 해치기 위해 꾸미는 온갖 음모들을 엿들을 수 있었다. 누가 누구를 만나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어디에 뇌물을 숨겨두었는지, 그 모든 정보가 그녀의 귀에 들어왔다. 그녀는 밤이 되면, 이 모든 사실을 연인 이안에게 전해주었다.
이안에게 낮의 흑월은 귀여운 위안이었고, 밤의 묘령은 치명적인 사랑이었다. 붉은 달이 뜨는 밤이 되면, 그는 모든 시중을 물리치고 오직 그녀만을 기다렸다. 고양이의 모습으로 잠든 흑월이, 달빛을 받아 서서히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변하는 과정은 그에게 경이로운 황홀경이었다. 그는 매번 경건한 마음으로 그녀의 변신을 지켜보았고, 그녀가 온전한 인간의 모습을 되찾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
"오늘도… 무사했구나, 묘령."
"나리께서 무사하시니, 저 또한 무사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깊은 입맞춤을 나누었다. 낮 동안 쌓였던 그리움과 불안함이 서로의 타액과 섞여 달콤하게 녹아내렸다. 그들의 사랑은 평범한 연인들의 그것과는 달랐다. 언제 다시 짐승으로 변할지 모르는 연인에 대한 애틋함, 그리고 거대한 음모에 맞서 싸우는 동지애가 그들의 정사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이안은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자신의 흔적으로 채웠다. 마치 그녀가 다시는 고양이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인간의 쾌락으로 그녀를 붙잡아두려는 듯했다. 그는 그녀의 귓가에 사랑을 속삭이며, 그녀가 겪었을 억울함과 고통에 대해 함께 분노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반드시 너의 누명을 벗겨주고, 너를 이렇게 만든 자들을 모두 처단할 것이다. 그리고… 너를 온전히 나의 아내로 맞이할 것이다."
묘령은 그의 품에 안겨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몸은 그의 격렬한 사랑에 완전히 정복당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오히려 그를 리드했다. 그녀는 낮 동안 고양이의 모습으로 알아낸 비밀 정보들을 그의 귓가에 속삭여주었다. 현감의 비자금이 숨겨진 장소, 아전들이 나누는 다음 계략. 그녀의 속삭임은 달콤한 교성이었다가, 어느 순간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적의 심장을 겨누는 정보가 되었다. 두 사람의 침실은 사랑을 나누는 공간이자, 거대한 반격을 준비하는 가장 은밀한 작전실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몸을 탐하며 미래를 약속했다. 짐승과 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묘한 사랑이었지만, 그 어떤 사랑보다도 순수하고 절실했다. 동이 트기 직전, 묘령의 몸이 다시 고양이로 변하려 할 때면, 이안은 미친 듯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헤어짐의 순간은 언제나 고통스러웠다. "제발… 가지 마라, 묘령." 하지만 그녀는 그의 뺨에 마지막 입맞춤을 남기고, 다시 작고 검은 짐승으로 돌아가 그의 품에 잠들었다. 이안은 작아진 묘령을 끌어안고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그의 결심은 더욱 굳어졌다. 이 기묘하고 슬픈 밤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그는 반드시 승리해야만 했다. 그의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고 이 고을의 정의를 되찾기 위해.
※ 정의의 칼날, 부패를 베다
이안과 묘령의 은밀한 공조는 서서히 거대한 거미줄처럼 부패한 관리들의 숨통을 옥죄어갔다. 묘령이 고양이의 몸으로 물어온 정보들은 날카로운 파편들이었고, 이안은 밤새 그것들을 꿰어 맞춰 거대한 음모의 실체를 완성해나갔다. 전임 사또들의 의문사, 사라진 세곡, 그리고 묘령에게 덮어씌워진 마녀라는 누명까지. 모든 것이 현감과 아전들의 탐욕에서 비롯된 범죄였음이 명확해졌다.
마침내 결전의 날이 밝았다. 그날은 일 년 중 가장 크고 둥근 보름달이 뜨는 날이자, 현감이 몰래 거두어들인 뇌물을 한양의 권력자에게 상납하기로 한 날이었다. 이안은 이 날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했다. 그는 일부러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며칠간 두문불출하며, 현감과 아전들의 경계심을 완전히 풀어놓았다.
깊은 밤, 현감의 비밀 창고 주변으로 이안이 이끄는 소수의 정예 포졸들이 매복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묘령은 검은 고양이의 모습으로 지붕 위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자줏빛 눈동자는 그 어떤 등불보다도 밝게 빛나며, 어둠 속의 움직임을 낱낱이 꿰뚫어 보고 있었다. 마침내 현감과 아전들이 뇌물이 가득 담긴 상자를 들고 나타나 밀매상들과 접선하는 순간, 이안의 신호와 함께 포졸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모두 꼼짝 마라! 역적들을 현장에서 체포한다!"
이안의 서슬 퍼런 외침과 함께,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당황한 현감과 아전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한 이안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치열한 싸움의 와중에, 현감은 몰래 빠져나가 이안의 등 뒤에서 비수를 꽂으려 했다. 이안이 다른 적을 상대하느라 그를 보지 못했던 절체절명의 순간.
"캬아아악-!"
지붕 위에서 검은 섬광이 허공을 갈랐다. 고양이 묘령이 쏜살같이 날아와 현감의 얼굴을 덮쳤다. 그녀는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로 현감의 얼굴을 물어뜯고 할퀴었다. 현감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이안은 칼을 휘둘러 그의 손에 들린 비수를 떨어뜨렸다. 마침내 현감과 그의 일당은 모두 포박되었다.
다음 날 아침, 관아 동헌에는 모든 백성들이 모였다. 이안은 밤새 찾아낸 비리 장부와 증거들을 만천하에 공개하며, 현감 일당의 죄를 낱낱이 밝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묘령의 누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죄를 덮기 위해, 무고한 무당을 마녀로 몰아 모든 것을 빼앗고 죽이려 하였다! 이 고을에 역병을 퍼뜨린 것은 마녀가 아니라, 바로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은 저자들의 탐욕이다!"
이안의 외침에 백성들은 분노했고, 진실이 밝혀졌다. 현감 일당은 모든 죄를 자백했고, 그들의 재산은 몰수되어 백성들에게 돌아갔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지붕 위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묘령의 자줏빛 눈동자에서,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길고 길었던 복수가, 마침내 정의의 이름으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가슴을 짓누르던 지독한 한(恨)이, 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다.
※ 저주가 풀린 밤, 사랑이 싹트다
모든 소동이 끝나고, 관사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그날 밤, 보름달은 유난히도 밝고 맑았다. 이안은 깨끗하게 정리된 침실에서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묘령이었다. 그녀의 누명을 벗겨주었으니, 저주가 풀릴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해가 지고 밤이 깊도록, 그녀는 고양이의 모습으로도, 인간의 모습으로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안의 마음은 타들어갔다. 혹시 저주가 풀리지 않았거나, 모든 임무를 마친 그녀가 자신의 곁을 영원히 떠나버린 것은 아닐까.
그는 미친 듯이 관사 곳곳을 뒤지며 '흑월'을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절망에 빠진 그는 무작정 숲을 향해 달렸다. 그녀를 처음 만났던, 이제는 폐허가 된 그 신당으로 향했다. 혹시나 그녀가 그곳에 있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서였다.
신당 터는 달빛 아래 을씨년스러웠다. 이안은 무너진 제단 앞에서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그때, 그의 등 뒤에서 나뭇잎 스치는 소리와 함께, 꿈에 그리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리."
이안이 심장이 멎는 듯한 기분으로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하얀 소복을 입은 묘령이 서 있었다. 고양이의 모습이 아닌, 온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녀는 더 이상 쫓기는 도망자가 아니었다. 한(恨)의 그림자를 모두 벗어던진, 맑고 청아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자줏빛 눈동자는 눈물로 가득 차, 달빛을 받아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묘령… 정말 너로구나…."
이안은 한 걸음에 달려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부서져라 끌어안았다. 묘령 역시 그의 목을 감싸 안고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감사합니다, 나리. 저의 지독한 원한을 풀어주시고… 저를 다시 사람으로 살게 해주시어…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의 누명이 벗겨지면서, 복수심을 원동력으로 삼았던 비술의 저주가 마침내 풀린 것이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서로를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안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눈물로 젖은 입술에 깊게 입을 맞췄다. 그것은 그 어떤 밤의 정사보다도 뜨겁고 성스러운 입맞춤이었다.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두 영혼의 완전한 결합이었다.
"이제 다시는 너를 짐승으로 살게 하지 않겠다. 너는 더 이상 무당도, 마녀도 아니다. 오직 내 아내가 될 사람이다."
이안의 청혼에, 묘령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달빛이 쏟아지는 숲길을 걸어 관사로 돌아왔다. 그날 밤, 두 사람의 침실에서는 더 이상 불안과 애틋함이 아닌, 온전한 행복과 사랑의 교성이 울려 퍼졌다. 마녀의 저주는 사랑의 기적으로 끝이 났고, 복수를 위해 짐승이 되었던 여인은 한 남자의 지어미가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훗날, 이안은 한양으로 다시 복귀하여 높은 벼슬에 올랐고, 묘령은 정경부인이 되어 남편의 곁에서 평생을 함께하며 어진 덕을 베풀었다고 한다.
유튜브 엔딩멘트
마녀로 몰린 무당과 정의로운 사또의 기묘한 사랑 이야기, 재미있게 보셨나요? 복수를 위해 짐승이 되었지만, 결국 사랑의 힘으로 저주를 풀고 행복을 찾은 묘령의 삶은 진정한 복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용서와 사랑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기적이라는 것을 보여준 셈이지요.
다음 야담도감 시간에는, 장원급제한 조선 최고의 엘리트 선비가 하룻밤 연정을 나누기 위해 벌이는 눈물겨운(?) 소동! 『계서야담』에 실린 유쾌하고도 야릇한 사랑 이야기를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로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