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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깊은 궁궐, 뒤바뀐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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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oking_ment (250자 내외)
궁녀의 몸에서 자신의 아이가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된 사대부 선비. 가문과 체통, 왕의 여자인 궁녀를 탐한 죄목까지… 모든 것을 잃을 위기 속, 그는 누구도 상상치 못할 기상천외한 계책을 세웁니다. 바로 자신의 아내와 궁녀를 단 하룻밤, 몰래 맞바꾸는 것! 과연 그의 대담한 계획은 성공하고, 세 남녀의 운명은 어떻게 뒤바뀌게 될까요?
description (300자 내외)
조선 명문가의 자제 '이 선비'와 깊은 궁궐의 외로운 궁녀 '월영'. 신분을 초월한 그들의 사랑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처럼 월영은 이 선비의 아이를 갖게 되고, 두 사람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집니다. 가문과 사랑을 모두 지키기 위해, 이 선비는 아내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고 위험한 제안을 하는데… 어우야담에 실린, 하룻밤의 뒤바뀐 운명이 빚어낸 기막힌 사랑 이야기.
※ 은밀한 만남
밤이 내린 궁궐은 거대한 침묵의 괴물과도 같았다. 낮 동안의喧囂(훤효)와 위엄은 간데없고, 오직 서늘한 달빛만이 기와지붕 위를 하얗게 적실 뿐이었다. 그 깊은 정적 속을 한 사내의 그림자가 유령처럼 미끄러져 갔다. 사내는 당대의 내로라하는 명문가 자제인 이 선비였다. 훤칠한 키에 반듯한 이목구비, 학문까지 깊어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였으나, 지금 그의 발걸음은 금지된 구역을 향하고 있었다. 그의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지만, 그 두근거림은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끓어오르는 열망에 가까웠다. 이윽고 그가 멈춰 선 곳은 궁궐의 가장 후미진 곳에 위치한 작은 서고 앞. 낡고 인적이 드문 그곳은, 그에게 세상 가장 찬란한 보물이 숨겨진 비밀의 장소였다. 삐걱이는 소리를 죽여가며 문을 열자, 희미한 등불 아래 책을 읽고 있던 한 여인이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들었다. 달빛을 머금은 듯 맑고 서글픈 눈매를 가진 궁녀, 월영이었다. 그녀는 왕의 여자였고, 그는 왕의 신하였다. 그들의 만남은 그 자체로 죽음을 부르는 역모와도 같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학문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우연히 서고에서 마주친 두 사람은 시와 문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서서히 물들어갔다. 고고한 학자였던 이 선비는 궁궐의 삼엄한 규율 속에 갇혀 지내면서도 총기를 잃지 않은 월영의 지혜에 감탄했고, 외로운 궁녀였던 월영은 자신을 한 명의 인격체로 존중하며 드넓은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선비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다. 그렇게 이성과 본능의 경계선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감정의 실타래는, 어느 달 밝은 밤, 속절없이 엉켜버리고 말았다. 그날도 이 선비는 그녀에게 새로운 시 한 수를 속삭여주고 있었다. "…복사꽃 잎은 속절없이 흩날리는데, 그대는 어찌 이리도 고운가." 나직한 그의 목소리에 실린 뜨거운 열기를 느낀 순간, 월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연민도, 학자적인 호기심도 아니었다. 그것은 사내가 지어미에게 보내는, 원초적이고도 절박한 갈망이었다.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두 사람을 짓누르던 신분과 금기, 죽음의 공포 따위는 봄눈처럼 녹아내렸다. 먼저 움직인 것은 이 선비였다. 그는 월영의 가녀린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품에 안긴 월영의 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품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겹겹의 옷 위로도 서로의 심장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이 선비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고, 망설임 없이 입술을 겹쳤다. 차갑고 메마른 서책의 냄새만이 가득하던 낡은 서고는, 순식간에 두 남녀의 뜨거운 숨결로 채워졌다. 처음에는 여린 꽃잎처럼 부드럽게 시작된 입맞춤은, 억눌러왔던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깊고 격렬해졌다. 월영의 작은 입술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의 혀는 거칠면서도 달콤했고, 그녀는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쾌감에 몸을 떨었다. 이 선비의 단단한 팔이 그녀의 허리를 더욱 강하게 휘감았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온몸에 불이 옮겨붙는 듯했다. 그는 월영을 안아 든 채, 서고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책장과 책장 사이, 그들만의 작은 공간에 이르자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마치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그녀의 옷고름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스르륵, 얇은 명주 저고리가 벗겨지며 달빛에 젖은 그녀의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부끄러움에 월영이 두 눈을 질끈 감았지만, 이 선비는 그런 그녀의 모습마저 사랑스럽다는 듯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는 경배하듯 그녀의 어깨와 쇄골에 입을 맞추며 아래로 내려갔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봉긋한 가슴에 닿자, 월영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교성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는 이 선비의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을 끊어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옷을 거칠게 벗어 던지고, 마침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녀의 몸 위로 자신의 몸을 포갰다. 두 개의 그림자가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월영은 짧은 고통과 함께 온몸을 관통하는 거대한 희열에 숨을 멈췄다. 밖은 여전히 얼음장 같은 정적이 흐르는 궁궐의 밤이었지만, 낡은 서고 안에서는 두 남녀가 만들어내는 사랑의 언어만이 격렬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욕정의 해소가 아니었다. 신분과 죽음의 공포를 뛰어넘은 두 영혼의 처절한 몸부림이었고, 어두운 현실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빛이 되어주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서로를 탐했다.
※ 드러난 비밀
금지된 밀회의 달콤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계절이 한 바퀴 돌고, 또다시 궁궐에 봄이 찾아왔을 무렵, 월영은 자신의 몸에 드리워진 불길한 변화를 감지했다. 한 달, 두 달… 반드시 찾아와야 할 달거리 소식이 끊긴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과로와 심적 고통 때문이려니 애써 외면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속이 메슥거리고, 낯선 음식이 당기는 등 몸의 증상은 점점 더 뚜렷해졌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떨며 지내던 어느 날, 함께 지내던 선배 격의 상궁이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더니 무심코 한마디를 던졌다. "네 얼굴빛이 푸르스름한 것이, 아무래도 회임을 한 듯하구나. 궐내에 경사가 있으려나 보다." 그 말은 월영의 심장에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회임. 그것은 궁녀에게 내려지는 가장 끔찍한 사형선고와도 같은 말이었다. 왕의 승은을 입지 않은 궁녀의 임신은 곧 불의한 간통을 의미했고, 그 죄는 죽음으로도 씻을 수 없는 것이었다. 월영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뱃속에서 자라나는 작은 생명은 그녀와 이 선비의 뜨거운 사랑의 결실이었지만, 동시에 두 사람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날 밤, 월영은 약속된 장소에서 이 선비를 기다렸다. 초조함과 두려움에 손톱을 깨물며 발을 동동 구르는 그녀의 모습은 평소의 총명하고 단아하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윽고 나타난 이 선비는 월영의 창백한 안색을 보고는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다급히 그녀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월영아, 무슨 일이냐. 안색이 왜 이리 좋지 않은 것이냐." 그의 따뜻한 손길에, 애써 참고 있던 월영의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서방님… 제 몸에… 서방님의 아이가… 아이가 자라고 있습니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멎는 듯했다. 이 선비는 거대한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월영의 뱃속에 자신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 그토록 뜨겁게 사랑한 여인이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 기뻐해야 할 그 사실이, 지금은 둘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처럼 혼란스러웠다. 왕의 여자인 궁녀를 탐한 죄. 이는 삼족을 멸해도 시원치 않을 대역죄였다. 자신 하나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가문 전체가 풍비박산이 나고, 사랑하는 여인과 뱃속의 아이까지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을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월영을 그저 부서져라 껴안았다. 그의 품에서 월영은 절규하듯 말했다. "어찌하면 좋습니까, 서방님. 이 아이를… 우리 아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차라리 제가 죽어 모든 것을 덮는 것이…" "아니다! 그런 말은 하지 마라!" 이 선비는 월영의 입을 막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눈빛은 어느새 깊은 고뇌와 함께 강한 결의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는 절대 월영과 자신의 아이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을 살려내야만 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의 은밀한 만남은 기쁨과 설렘 대신, 무거운 불안과 초조함으로 가득 찼다. 월영의 배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미미하게나마 조금씩 불러오고 있었고, 그들을 옥죄어오는 시간은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 선비는 밤낮으로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월영을 몰래 궁 밖으로 빼돌릴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궁녀 한 명이 사라지면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힐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시간이 흘러 월영의 배가 남들의 눈에 띄게 되면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사방이 꽉 막힌 절벽에 선 심정이었다.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듯한 시간 속에서, 이 선비의 얼굴은 수척해져만 갔다. 사랑은 이토록 달콤했건만, 그 책임의 무게는 천근만근의 바위가 되어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이제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자신의 모든 것, 가문의 명예, 그리고 목숨까지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결단을.
※ 대담한 계책
며칠 밤낮을 뜬눈으로 새우며 고뇌하던 이 선비의 머릿속에, 마침내 번개처럼 하나의 계책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실로 기상천외하고 대담무쌍한,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성공한다면 월영과 아이, 그리고 가문까지 모두 지킬 수 있지만, 만에 하나 실패한다면 모든 것이 파멸로 치닫게 될 위험한 도박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는 결심을 굳히고, 자신의 서재로 아내를 불렀다. 그의 아내는 명망 높은 사대부가의 여식으로, 현숙하고 기품이 넘치는 여인이었다. 두 사람은 정략에 의해 맺어진 사이였지만, 서로를 존중하며 별다른 문제없이 지내왔다. 다만, 혼인한 지 수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집안의 큰 그늘이었다. 아내는 남편의 부름에 평소와 같이 단아한 모습으로 서재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녀는 방 안에 감도는 무겁고 서늘한 공기와, 남편의 수척하고 비장한 얼굴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이 선비는 차마 아내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보지 못한 채,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과오를 단 하나도 숨기지 않고 모두 털어놓았다. 궁녀 월영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서로에게 빠져들게 된 과정,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린 밤, 그리고… 월영이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까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아내의 얼굴은 새하얗게 굳어갔다. 남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그녀가 평생을 지켜온 세계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존경하던 남편의 배신, 다른 여인과의 통정, 심지어 그 결실로 아이까지 생겼다는 사실은 그녀의 심장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그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이 선비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아내의 눈물을 묵묵히 받아냈다. 한참의 침묵이 흐른 뒤, 아내는 간신히 흐느낌을 멈추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저더러 어찌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당장 그 계집과 함께 제 눈앞에서 사라져 달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니면… 첩으로라도 들이시겠다는 겁니까." 차갑게 얼어붙은 아내의 목소리에, 이 선비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었다. 양반 대장부가 아내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부인, 나는 죽을죄를 지었소. 부인의 분노와 원망은 백번이고 천번이고 달게 받겠소. 허나… 이 모든 것은 부디 나 하나의 죄로 묻어주시오. 그 여인과… 뱃속의 아이는 살려야 하지 않겠소. 그 아이는… 내 아이이기 이전에, 이 가문의 대를 이을 유일한 핏줄일지도 모르오." 그는 가문의 후사 문제를 꺼내 들며, 아내의 가장 약한 부분을 파고들었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온 아내의 마음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자신의 입으로도 믿기지 않는, 대담하고도 끔찍한 계획을 털어놓았다. "부인… 단 하룻밤이면 되오. 내가 월영을 몰래 집으로 데려올 터이니, 그날 밤 부인과 월영이 서로의 처소를 맞바꾸는 것이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부인의 처소로 들어가, 월영과 하룻밤을 보낼 것이오. 그리하면 월영의 뱃속 아이는, 부인의 아이가 되는 것이오." 아내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동침하는 것을, 아내인 자신이 직접 주선하고 눈감아 주라는 말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그 여자가 낳은 아이를 자신의 아이인 양 평생을 속이며 키우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 여인으로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치욕이었다. 그녀는 기가 막혀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 선비는 진지했다. 그는 아내의 앞에 납작 엎드려 애원했다. "부인의 고통과 희생을 어찌 모르겠소. 허나 이 방법만이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오. 가문의 대를 잇고, 아무도 다치지 않고 이 일을 해결할 수만 있다면… 나는 평생을 부인의 발치에서 속죄하며 살겠소. 부디… 부디 나의 어리석음을 용서하고, 나의 간청을 들어주시오." 서재 안에는 아내의 거친 숨소리와 이 선비의 절박한 애원만이 가득했다. 그녀는 남편에 대한 배신감과 원망, 한 여자로서의 질투심, 그리고 가문의 며느리로서의 의무감 사이에서 격렬하게 갈등했다. 남편의 제안은 분명 말도 안 되는 것이었지만, 그의 말대로 이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만약 이 일이 발각되어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한다면, 자신 또한 그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오랜 침묵 끝에, 아내는 눈물을 삼키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생기를 잃고 낙엽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좋습니다. 대감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 한마디에, 이 선비는 구원이라도 받은 듯 아내의 손을 잡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아내의 순종 뒤에 얼마나 시리고 깊은 상처와 슬픔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그렇게 세 남녀의 운명을 건, 위험하고도 서글픈 연극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
※ 뒤바뀐 하룻밤
마침내 운명의 밤이 찾아왔다. 그날 밤의 달은 유난히도 희고 서늘하여, 세상의 모든 비밀을 속속들이 꿰뚫어 보는 듯했다. 깊은 어둠을 틈타, 이 선비가 미리 손을 써둔 가마가 월영을 싣고 그의 집 후문으로 소리 없이 들어섰다. 가마에서 내린 월영의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 모든 기만극의 또 다른 주인공인 이 선비의 아내가 초조한 얼굴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여인은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한 사내를 사이에 둔 아내와 첩. 하지만 그들의 눈빛 속에는 질투나 원망보다는,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함께 휘말린 동지애와 연민, 그리고 처절한 슬픔이 뒤섞여 있었다. 아내는 월영의 손을 잡고 미리 마련해 둔 별채로 이끌었다. 자신이 입고 있던 것과 똑같은 비단 속곳과 잠옷을 건네며,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밤, 이 집의 안주인은 그대입니다. 부디… 부디 우리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을 점지해 주십시오." 그 말속에는 한 여자로서의 모든 자존심을 내던진 처절한 부탁이 담겨 있었다. 월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잠시 후, 월영은 아내가 마련해준 옷으로 갈아입고 안방으로 향했다. 반면, 아내는 월영이 입고 온 수수한 무명옷으로 갈아입고, 그녀가 머물기로 한 차가운 별채로 들어갔다. 자신의 온기와 체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안방 쪽을 향해 돌아누운 아내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소리 죽여 흐느꼈다. 자신의 잠자리에서 다른 여인과 몸을 섞을 남편을 상상하는 것은, 살을 에는 듯한 고통이었다. 한편, 아내의 향기가 배어있는 안방에 들어선 월영은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자신이 평생 동경해왔던, 그러나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정실부인의 공간. 그곳에 자신이 누워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잠시 후, 밖에서 이 선비의 헛기침 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방문이 열렸다. 그는 일부러 월영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으려 애쓰며, 마치 평소에 아내를 대하듯 자연스럽게 옷을 벗고 이부자리로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었다. 공기 중에는 어색함과 죄책감, 그리고 거스를 수 없는 욕망이 무겁게 떠다녔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이 선비였다. 그는 월영의 몸을 부드럽게 끌어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그 한마디에 월영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선비는 그런 그녀의 눈물을 혀로 핥아주며, 입술을 겹쳤다. 궁궐의 낡은 서고에서 나누었던 첫 입맞춤과는 또 다른, 무겁고도 성스러운 입맞춤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니라, 뱃속 아이의 운명을 바꾸고, 세 사람의 미래를 담보하는 계약의 증표와도 같았다. 그의 손길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부드럽고 정중했다. 그는 마치 귀한 보물을 다루듯 월영의 온몸을 어루만지고 탐했다. 아내의 체취가 희미하게 남은 비단 이불의 감촉과, 지금 자신을 안고 있는 사내의 뜨거운 숨결이 뒤섞이며 월영의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이 궁녀인지, 아니면 이 집의 안주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저 눈앞의 사내에게 온전히 몸을 맡길 뿐이었다. 이 선비 역시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품에 안고 있다는 기쁨과 동시에, 다른 방에서 홀로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그의 심장을 찔러왔다. 그러나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은 오직 이 가문의 대를 잇는다는 막중한 사명에만 충실해야 했다. 그는 모든 죄책감을 잠시 잊고, 오직 눈앞의 여인에게만 집중했다. 두 사람의 몸이 하나로 얽히고, 격렬한 숨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그것은 쾌락을 넘어선, 하나의 생명을 세상에 내놓기 위한 처절한 의식이었다. 달빛이 창호지를 넘어와, 땀으로 젖은 채 얽혀있는 두 사람의 그림자를 길게 비추었다. 그렇게 길고도 짧은 밤이 지나고, 새벽의 첫 닭이 울었을 때,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로의 몸에서 떨어졌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아내는 새벽안개를 뚫고 별채를 나섰고, 월영 역시 어둠이 채 가시기 전에 가마에 올라 궁으로 돌아갔다. 하룻밤 사이에 운명이 뒤바뀐 두 여인은, 서로에게 그 어떤 말도 건네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제 그들의 삶은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 아홉 달의 기다림
그날 밤 이후, 이 선비는 약속대로 월영을 궁에서 빼내어 자신의 집으로 들였다. 월영의 신분은 아내의 먼 친척뻘 되는 고아로 꾸며졌고, 몸이 약해 요양이 필요하다는 구실을 붙였다. 집안의 하인들은 아무도 그 속내를 의심하지 못했다. 그렇게 세 사람의 아슬아슬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아내는 그날부터 본격적으로 거짓 회임 연기를 시작했다. 헛구역질을 하고, 신 음식을 찾으며, 불러오지 않은 배를 가리기 위해 품이 넓은 옷을 입었다. 친척들과 이웃들은 명문가에 드디어 후사가 생겼다며 축하를 건넸고, 아내는 그들의 축하를 받을 때마다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며 미소를 지어야 했다. 그녀의 연기는 너무나도 완벽해서, 남편인 이 선비조차 가끔씩 정말로 아내가 자신의 아이를 가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집안의 가장 깊숙한 방에 머물게 된 월영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었다. 그녀의 유일한 낙은, 하루가 다르게 불러오는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아이와 교감하는 것뿐이었다. 아이가 뱃속에서 발길질을 할 때면, 그녀는 이 모든 고통과 설움을 견뎌낼 힘을 얻곤 했다. 세 사람의 관계는 기묘했다. 이 선비는 낮에는 아내의 지아비로서, 밤에는 월영의 정인으로서 이중생활을 해야 했다. 그는 아내 앞에서는 한없이 자상하고 미안해하는 남편이 되었고, 월영의 방에 가서는 뱃속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그녀를 살뜰히 챙겼다. 아내와 월영, 두 여인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벽과 기묘한 유대감이 동시에 흘렀다. 아내는 월영에게 좋은 음식을 챙겨주며 뱃속 아이의 건강을 염려했다. 그것은 가문의 후사를 위한 의무감인 동시에, 한 생명에 대한 모성이기도 했다. 월영 역시 자신을 받아주고, 자신의 아이를 지켜주는 아내에게 죄스러움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꼈다. 때로는 두 여인이 조용히 마주 앉아 다과를 나누기도 했다. 그들은 결코 그날 밤의 일이나 뱃속 아이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의 눈빛 속에서, 말없이 모든 감정을 읽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 속에서 흘러갔다. 아내는 매일 밤, 남편이 월영의 처소로 향하는 발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차가운 잠자리를 지켜야 했고, 월영은 창밖으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도 '어머니'라 부를 수 없는 현실을 슬퍼해야 했다. 시간은 흘러, 월"영의 배는 누가 보아도 만삭임이 완연해졌다. 출산일이 가까워오자 집안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 선비는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입이 무거운 산파를 수소문했고, 아내는 친정에서 몸을 풀겠다는 핑계를 대고 집을 떠날 준비를 했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아홉 달이라는 시간 동안, 세 사람의 마음속에는 처음과는 다른 감정의 파문들이 일고 있었다. 아내에게는 아이에 대한 기묘한 애착이, 월영에게는 세상의 빛을 볼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그리고 이 선비에게는 두 여인 모두에게 진 마음의 빚이 거대한 산처럼 쌓여가고 있었다. 마침내 기나긴 기다림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 생명의 탄생을 예고하는 희망의 빛인 동시에, 세 사람의 기묘한 관계를 영원히 옭아맬 운명의 서막이기도 했다.
※ 새로운 운명
마침내 월영에게 산기가 찾아온 그날 밤, 집안은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이 선비는 계획대로 아내가 산통을 시작했다며 집안을 부산스럽게 움직이게 했고, 미리 약조가 된 산파를 은밀히 월영의 방으로 들였다. 아내는 다른 방에서 홀로 이불을 입에 문 채, 월영이 내지르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자신의 것인 양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밤샘 진통 끝에,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올 무렵, 우렁찬 사내아이의 울음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다.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었다. 산파가 아이를 깨끗이 씻겨 강보에 싸서 나오자, 이 선비는 감격에 겨워 아이를 받아 안았다. 자신의 핏줄, 그토록 고대하던 아들이었다. 그는 잠시 아이를 안고 월영의 방으로 들어갔다. 탈진하여 누워있는 월영은 눈물 어린 눈으로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떨리는 손을 뻗어 아이의 작은 뺨을 한번 쓸어보는 것으로, 어미로서의 모든 권리를 만족해야 했다. 이윽고 아이는 진짜 어머니인 월영의 품을 떠나, 가짜 어머니인 아내의 품에 안겼다. 아내는 평생 처음으로 아기라는 존재를 품에 안아보았다. 낯설고 작은 온기. 남편과 다른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하지만 아이가 꼼지락거리며 그녀의 품을 파고드는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서 얼어붙어 있던 무언가가 속절없이 녹아내렸다. 핏줄이 무엇이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이 아이는 이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켜낸, 자신의 아들이었다. 그 후,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 선비의 집안은 장손의 탄생에 온통 축제 분위기였고, 아내는 현숙하게 아들을 낳아 가문을 빛낸 열녀로 칭송받았다. 거짓 연극은 완벽한 성공으로 막을 내린 것이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리고 월영은 '몸을 의탁한 친척'이라는 신분으로 그 집에 계속 머물며 아이의 유모 역할을 자처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다른 여인을 '어머니'라 부르며 자라는 모습을 매일 곁에서 지켜보아야 했다. 가슴이 미어지는 순간도 많았지만, 아이가 명문가의 장손으로 귀하게 자라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행복했다. 아내는 더 이상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아이는 그녀의 허전했던 삶을 완벽하게 채워주었고, 그녀는 아이에게 모든 사랑을 쏟아부으며 진정한 어머니가 되어갔다. 오히려 자신에게 아들을 낳아준 월영에게 고마움과 연민을 느끼며, 친자매처럼 그녀를 아끼고 보살폈다. 이 선비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두 여인에게 평생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는 아내를 정실부인으로서 극진히 존중했고, 월영을 아이의 생모로서 끔찍이 아꼈다. 그렇게 한 지붕 아래, 세 사람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공유한 채 기묘한 형태의 가족을 이루었다. 아내는 자애로운 어머니가 되었고, 월영은 헌신적인 유모가 되었으며, 아이는 두 어머니의 사랑 속에서 구김살 없이 밝게 자라났다. 훗날, 이 선비는 높은 벼슬에 올라 가문을 더욱 빛냈고, 그의 아들은 총명하게 자라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명문가의 대를 훌륭하게 이었다고 한다. 하룻밤의 대담한 계책으로 시작된 뒤바뀐 운명. 그것은 누군가의 희생과 눈물 위에 세워진 위태로운 성이었지만, 결국 세 사람 모두를 구원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게 해준 새로운 운명의 시작이기도 했다.
유튜브 엔딩멘트
한 남자의 대담한 선택이 세 사람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랑과 가문, 그리고 핏줄이라는 굴레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 나선 사람들. 여러분이라면 이런 기막힌 상황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셨을 것 같나요? 야담 속 이야기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도 사랑과 책임의 무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댓글로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야담도감 다음 시간에는, 어둠 속에서 피어난 기묘한 하룻밤의 인연, 청구야담 속 '그림자 도적의 하룻밤'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잊지 마시고, 다음 이야기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