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사주를 보고 파혼을 번복한 장모

    태그

    #만복야담, #야담, #조선시대, #사주팔자, #궁합, #파혼, #장모와사위, #역전인생, #대박, #금광, #양기, #첫날밤, #해피엔딩, #시니어, #동패낙송
    #만복야담 #야담 #조선시대 #사주팔자 #궁합 #파혼 #장모와사위 #역전인생 #대박 #금광 #양기 #첫날밤 #해피엔딩 #시니어 #동패낙송

    후킹멘트

    "가난한 놈한테 내 귀한 딸을 어찌 주누! 당장 파혼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예비 사위의 꼴을 보고 뒷목을 잡은 장모. 그런데, 용하다는 점쟁이가 사위의 사주를 보더니 혼비백산하며 외칩니다. "마님! 이 사주는... 조선 팔도를 뒤흔들 어마어마한 양기와 황금빛 재물복을 타고났습니다요!" 과연 그날 밤, 신혼방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 1: 무너진 양반가, 찢어지게 가난한 예비 사위를 보며 파혼을 결심하는 장모

    매서운 삭풍이 몰아치는 한겨울의 어느 날, 조선 한양 외곽의 퇴락한 양반가 안채에서는 깊은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때는 제법 행세깨나 하던 집안이었으나, 가세가 기울어 이제는 끼니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인 최씨 부인의 한숨이었다. 최씨 부인의 눈길이 머문 곳에는, 해진 치마폭을 여미며 묵묵히 삯바느질을 하고 있는 외동딸 연화가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곱고 참한 딸이건만,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번듯한 혼처 하나 구해주지 못한 어미의 마음은 숯검정처럼 타들어가고 있었다.

    '내 배 아파 낳은 금쪽같은 내 새끼... 어쩌다 이리도 기구한 운명을 타고나서 고생만 하는고. 저 고운 손마디가 다 굵어지도록 밤낮없이 일만 하니, 애비 없는 자식이라 이리도 천대를 받는 것인가.'

    최씨 부인은 가슴을 치며 속으로 오열했다. 사실 연화에게는 오래전 죽은 남편이 살아생전 정혼해 둔 짝이 있었다. 남편의 오랜 벗이었던 박 진사의 아들, 무진이라는 청년이었다. 두 집안이 모두 번듯했던 시절에는 그야말로 선남선녀의 맺음이라며 주위의 부러움을 샀지만, 세월이 흘러 양가가 모두 몰락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무진의 집안은 돌림병으로 부모를 모두 잃고, 무진 홀로 남아 다 쓰러져가는 초가삼간에서 그야말로 입에 풀칠만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어머니, 근심이 깊어 보이십니다. 제 바느질 솜씨가 제법 늘어 장에 내다 팔면 며칠 치 식량은 족히 구할 수 있을 터이니 너무 상심 마시어요."

    연화가 고개를 들어 맑은 눈망울로 어미를 위로했다. 그 착한 심성에 최씨 부인은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애써 고개를 돌렸다.

    "오냐, 네가 이리도 효심이 깊으니 내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 그저 바람이 차니 손이라도 곱을까 염려될 뿐이다."

    말은 그렇게 했으나 최씨 부인의 속마음은 차갑게 얼어붙고 있었다. 며칠 전, 딸의 혼례 문제를 의논하고자 무진이 살고 있다는 산동네 판자촌을 몰래 찾아갔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구불구불한 흙길을 지나 당도한 무진의 집은 집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몰골이었다. 지붕의 짚은 다 썩어문드러져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고, 마당에는 땔감 하나 없이 찬 바람만 휑하니 불고 있었다. 방문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글 읽는 소리만이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짐작게 할 뿐이었다.

    '가난한 선비의 기개도 좋고, 부모님이 맺어준 정혼도 좋다만... 내 저토록 가난방망이인 사내에게 어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딸을 준단 말이냐! 당장 내일 굶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꼴을 하고서 무슨 혼인이란 말이냐. 가뜩이나 가세가 기울어 고생하는 내 딸을, 저런 찢어지게 가난한 놈의 수발이나 들게 하며 평생 흙구덩이 속에서 살게 할 수는 없다. 남편의 약조가 무슨 소용이람.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것 아니냐!'

    최씨 부인은 그날 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굳게 결심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혼인은 깨야 한다고.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짐승만도 못한 년이라 욕을 먹더라도, 딸의 평생 고생길을 뻔히 알면서 사지로 밀어 넣을 수는 없었다.

    "연화야, 넌 방에 가만히 있거라. 내 오늘 밖을 좀 다녀올 참이다."

    "날이 이리도 궂은데 어딜 가시려구요? 길이 얼어 미끄러울 터인데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아니다! 넌 그냥 집이나 잘 지키고 있거라. 어른들끼리 만나 중히 결판을 지을 일이 있으니... 네가 알 바가 아니다."

    최씨 부인은 단호하게 딸의 만류를 뿌리치고 서둘러 외출 채비를 했다. 낡았지만 가장 깨끗한 비단 치마를 꺼내 입고, 머리에는 쪽을 단정히 졌다. 파혼을 통보하러 가는 길, 행여라도 얕보일까 싶어 애써 위엄을 갖춘 것이었다. 품속에는 무진의 아버지가 정혼의 증표로 남기고 간 오래된 옥가락지를 단단히 품었다. 이 가락지를 그 젊은놈의 얼굴에 던져주고 서라도 억지로 연을 끊어낼 작정이었다.

    '무진아, 네놈이 나를 원망해도 어쩔 수 없다. 부모 잃고 가난에 찌든 네놈의 팔자를 탓하거라. 내 딸은 내가 지킬 것이야.'

    칼바람이 얼굴을 때렸지만 최씨 부인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한평생 가문의 체면과 도리를 중시하며 살아온 양반가 안방마님이었으나, 자식의 안위 앞에서는 그깟 체면 따위는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것이 어미의 독한 마음이었다. 무진이 살고 있는 헐벗은 산동네를 향해 걸음을 옮기던 최씨 부인의 눈빛에는 파혼에 대한 굳은 결의가 서려 있었다. 이 선택이 훗날 집안의 운명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을 기막힌 전환점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 2: 파혼하러 가는 길, 용한 점쟁이에게서 듣게 된 사위의 기막힌 사주팔자

    차디찬 바람을 뚫고 무진의 집으로 향하던 최씨 부인의 발걸음이 번화한 저잣거리 어귀에서 멈칫했다. 길가에 높이 솟은 깃발 하나가 유독 바람에 요란하게 펄럭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한양에서 제일간다는 눈먼 점쟁이, 이른바 '곽 맹인'의 집이었다. 앞은 보지 못하나 사람의 사주팔자와 길흉화복을 귀신같이 짚어낸다 하여, 고관대작들도 남몰래 밤도둑처럼 찾아와 점을 친다는 유명한 곳이었다.

    파혼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왠지 모를 불안감과 찜찜함이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던 최씨 부인이었다. 남편의 오랜 벗과 맺은 약조를 저버리는 일이니, 혹여라도 조상님들이 노하여 딸의 앞길에 해를 끼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일었던 것이다.

    '그래, 기왕 나온 길에 연화의 사주와 그 가난방망이 놈의 궁합이나 한번 슬쩍 떠보자. 혹여라도 파혼하는 것이 백번 천번 맞다는 소리를 듣게 되면, 내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질 터이니.'

    최씨 부인은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조심스레 곽 맹인의 점집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는 매캐한 향냄새가 진동했고, 방 한가운데에는 두 눈이 하얗게 멀어버린 곽 맹인이 기괴한 자세로 앉아 산통을 흔들고 있었다.

    "뉘시오? 찬 바람을 잔뜩 몰고 온 것을 보아하니, 마음속에 독한 결심을 품고 온 여인네로군."

    아직 입도 떼지 않았건만, 곽 맹인은 단번에 최씨 부인의 심기를 꿰뚫어 보았다. 등골이 오싹해진 최씨 부인은 조심스레 자리에 앉아 쌈짓돈을 꺼내 밀어놓았다.

    "용한 어르신이라 듣고 찾아왔소. 실은 내 딸아이의 혼사 문제로 근심이 깊어, 두 아이의 사주와 궁합을 좀 보고자 하오."

    "어허, 불러보시오. 사내놈의 사주부터 불러보시오."

    최씨 부인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무진의 태어난 연월일시를 읊었다. 가난하고 부모복 없는 사주라는 소리가 나올 것을 잔뜩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무진의 사주를 듣고 산통을 찰칵찰칵 흔들던 곽 맹인의 손이 돌연 허공에서 멈췄다. 하얗게 뒤집힌 그의 두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더니, 이내 몸 전체를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이... 이... 이보시오, 부인! 방금 부른 이 사주가 참으로 부인의 사위 될 자의 사주가 맞단 말이오?!"

    곽 맹인이 자리에서 펄쩍 뛸 듯이 놀라며 소리쳤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최씨 부인은 흠칫 놀라며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그, 그렇소. 그 녀석의 사주가 맞소. 어찌 그러시오? 찢어지게 가난해서 내일 당장 객사할 사주라도 된단 말이오? 그렇지? 내 그럴 줄 알았어! 당장 이 혼인을 물러야..."

    "무슨 소리를 하는 게요!! 객사라니! 당장 그 입을 다무시오!"

    곽 맹인의 호통에 방 안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곽 맹인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소매로 닦아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마님... 이 사주는... 내 평생 점을 치며 살아왔으나, 이렇게 무시무시하고 엄청난 사주는 처음 보오. 이 사내의 사주에는... 하늘을 뚫고 솟아오르는 맹렬한 불기운, 즉 전무후무한 '양기(陽氣)'가 똬리를 틀고 있소이다!"

    "양기... 라니요?"

    "단순히 사내로서의 힘이 좋다는 뜻이 아니오! 이 거대한 양기는 꽁꽁 얼어붙은 땅을 녹이고 만물을 싹 틔우는 생명력 그 자체요! 어찌나 그 기운이 짐승처럼 맹렬하고 뜨거운지, 이 사내와 하룻밤을 보낸 여인은 뼈가 녹아내리는 쾌락과 함께 평생 무병장수하며 아들 열을 내리 낳을 대박 사주란 말이오!"

    최씨 부인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남부끄러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내는 맹인의 말에 당황했지만, 맹인의 예언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디 그뿐인 줄 아시오? 이 뜨거운 양기가 땅의 기운과 만나면 흙이 곧 황금이 되는 법이오! 이 사내의 팔자에는 땅 밑으로 굵디굵은 황금 맥이 사방으로 뻗어 있소. 이 사내가 손을 대는 땅마다 금맥이 터질 것이요, 손을 대는 장사마다 떼돈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오! 가난하다고? 허허! 이 사내는 조만간 조선 팔도를 쥐락펴락할 한양 최고의 거상, 아니 거부가 될 운명이란 말이오! 이런 금두꺼비 같은 사위를 차버리려 하다니, 마님은 평생을 치고 후회할 미친 짓을 하려던 참이었소!"

    곽 맹인의 침 튀기는 열변에 최씨 부인은 망연자실했다. 방금 전까지 무진을 거지취급하며 멸시했던 자신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만약 이 맹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가난한 청년이 훗날 엄청난 거부가 되고, 내 딸에게 그토록 대단한 행복을 안겨줄 사내라면?

    '양기... 황금 맥... 거부...'

    최씨 부인의 귓가에 곽 맹인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맴돌았다. 파혼을 위해 단단히 움켜쥐고 있던 품속의 옥가락지가 갑자기 불덩이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찢어지게 가난한 현실과 점쟁이의 기막힌 예언 사이에서, 최씨 부인의 머릿속은 폭풍우가 몰아치듯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 3: 태도를 싹 바꾼 장모의 전폭적인 지지, 그리고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혼례

    점집을 나선 최씨 부인의 발걸음은 파혼을 결심하고 집을 나설 때와는 정반대의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머릿속은 곽 맹인의 호통으로 가득 찼지만, 그녀 특유의 결단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래, 어차피 양반 체면에 정혼을 깨는 것도 마음에 걸렸던 터. 용하다는 맹인의 예언이 그리도 확고하니, 밑져야 본전 아니겠는가! 만에 하나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내 딸은 조선 최고의 갑부 안방마님이 될 것이요, 덤으로 부부 금슬까지 그리 좋다 하니... 까짓것, 내 남은 비상금을 다 털어서라도 이 혼인을 거창하게 치러주리라!'

    최씨 부인은 그 길로 발길을 돌려 한양에서 가장 큰 포목점과 장터로 향했다. 파혼 통보 대신, 예비 사위에게 입힐 최고급 비단옷과 혼례에 쓸 진귀한 음식들을 미친 듯이 사들여 하인들의 지게에 가득 실었다.

    며칠 뒤, 헐벗은 산동네 무진의 초가집 마당에 진수성찬과 비단보따리가 한가득 쌓였다. 글을 읽다 말고 뛰어나온 무진은 이 믿기지 않는 광경에 두 눈을 비비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장모님... 이, 이게 다 무엇입니까? 저는 아직 혼례를 치를 준비가..."

    "오호호! 무진아, 장모가 사위 옷 한 벌 해 입히는 게 무에 대수라고 그리 놀라느냐. 선친들께서 정해주신 귀한 인연인데, 더 이상 미룰 것이 무엇이냐! 당장 다음 달 보름달이 뜨는 길일에 혼례를 올리자꾸나!"

    무진을 바라보는 최씨 부인의 눈빛은 예전의 차갑고 멸시 어린 눈빛이 아니었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금덩이를 보듯, 꿀이 뚝뚝 떨어지는 다정한 눈빛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이 갑작스러운 광경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저 깐깐하기로 소문난 최씨 마님이 웬일이래? 다 망해가는 저 집구석에 딸을 안 주려고 난리를 치더니만."
    "그러게 말이야.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무진이 놈이 무슨 묘약이라도 먹였나?"

    사람들의 수군거림에도 최씨 부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진의 깡마른 체격을 유심히 살펴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흠, 겉보기엔 저리 비쩍 곯았어도 맹인이 그리 장담했으니... 속은 짐승처럼 옹골차단 말이렷다. 그래, 내 딸 연화가 복을 타고난 게지.'

    집으로 돌아온 최씨 부인은 일사천리로 혼례 준비를 서둘렀다. 가세가 기울어 돈이 없다는 것은 핑계였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몰래 숨겨두었던 마지막 패물까지 모조리 내다 팔아 성대한 잔치를 준비했다.

    연화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어머니, 갑자기 이리 혼례를 서두르시는 연유가 무엇입니까? 게다가 이리 귀한 비단에 잔치까지... 우리 형편에 너무 무리하시는 건 아니신지요."

    "걱정 말아라. 내 딸이 평생 짝을 맞이하는 일인데 이 정도가 대수더냐. 무진이는 비록 지금은 가난하나, 장차 크게 될 재목이니라. 넌 그저 몸가짐을 정갈히 하고 첫날밤을 맞이할 준비나 하거라."

    최씨 부인은 딸의 등을 토닥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연화는 어머니의 확신에 찬 모습에 안도하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얼굴을 보지 못한 예비 신랑과의 첫날밤 생각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혼례 날이 밝았다. 붉은 홍단과 푸른 청단이 얽히고 흥겨운 풍악 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 늠름한 사모관대 차림으로 신랑 무진이 들어서자, 하객들은 그의 수려한 이목구비와 곧은 기개에 탄성을 내뱉었다. 가난에 찌들어 있던 산동네 청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기품 있는 고관대작의 자제 같았다.

    '그래,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어!'

    최씨 부인은 사위의 당당한 풍채를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혼례식은 화려하고 떠들썩하게 치러졌고, 날이 어둑해지며 마침내 대망의 첫날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잔치가 파하고 하객들이 돌아간 후, 최씨 부인의 심장은 다른 의미로 터질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곽 맹인이 호언장담했던 그 맹렬한 '양기'가 과연 사실일지, 오늘 밤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 4: 대망의 첫날밤, 문밖에서 귀를 기울이던 장모를 안심시킨 사위의 짐승 같은 기운

    어스름한 달빛이 신방의 창호지를 은은하게 비추는 밤. 촛불이 일렁이는 방 안에는 무거운 정적과 함께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화려한 원삼을 입고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연화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맞은편에 앉은 무진 역시 떨리는 손을 애써 쥐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 시각, 신방 문밖. 차가운 마루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린 이가 있었으니, 바로 장모인 최씨 부인이었다.

    '아이고, 양반 체면에 사위와 딸의 첫날밤을 엿듣다니... 들키면 망신살이 뻗치겠지만, 어쩌겠나. 맹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내 두 귀로 똑똑히 확인해야 마음을 놓을 것 아닌가!'

    최씨 부인은 숨을 죽인 채 창호지에 귀를 바짝 가져다 댔다. 방 안에서 조심스레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무진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부인... 고생 많으셨소. 나같이 부족하고 가난한 사내에게 시집와 주어... 참으로 고맙고 미안하오."

    "서방님, 당치 않으신 말씀이옵니다. 아내가 지아비를 따르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거늘, 그런 섭섭한 말씀은 마시어요. 저는 서방님과 함께라면 평생 굶어도 좋습니다."

    서로를 위하는 애틋한 대화에 문밖의 최씨 부인은 콧등이 시큰해졌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아니, 뜸을 왜 이리 오래 들이는 게야! 맹인이 말한 그 짐승 같은 기운은 언제 나오는 거야?'

    답답함에 가슴을 치려는 찰나, 방 안에서 스르륵 옷고름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촛불이 훅 하고 꺼지며 방 안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부인..."

    무진의 목소리가 아까와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다정하고 차분했던 선비의 목소리에 묘하게 짐승의 으르렁거림 같은 거칠고 뜨거운 숨결이 섞여 있었다.

    "서, 서방님..."

    연화의 당황한 숨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방 안의 공기가 급격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오호라... 시작되었구나!'

    최씨 부인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귀를 더 바짝 들이댔다.

    "아앗... 서, 서방님... 너무... 너무 뜨겁사옵니다..."

    "부인, 꽉 잡으시오."

    그 순간, 신방의 두꺼운 참나무 바닥이 삐걱! 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문밖의 최씨 부인이 깜짝 놀라 펄쩍 뛸 정도의 엄청난 진동이었다. 겉보기엔 깡마르고 유약해 보였던 가난방망이 선비 무진은, 이불속에 들어가자마자 곽 맹인의 말대로 그야말로 억눌려있던 엄청난 양기를 폭발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흐읏...! 아아... 서방님..."

    연화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교성은 고통인지 쾌락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했다. 무진의 거칠 것 없는 야성적인 몸짓과 지치지 않는 짐승 같은 체력은 연화를 숨도 쉴 수 없는 황홀경으로 몰아넣었다. 평생 바느질만 하며 조신하게 살아왔던 연화는, 뼈마디가 녹아내릴 것 같은 짜릿한 감각에 온몸을 떨며 지아비의 품에 깊이 안겨 들었다.

    방 안에서는 쉴 새 없이 삐걱거리는 바닥 소리와, 연화의 억눌린 교성, 그리고 무진의 거친 숨소리가 밤새도록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마치 굶주린 호랑이가 사냥감을 물어뜯듯, 무진의 열정은 식을 줄을 몰랐다.

    문밖에서 이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엿듣던 최씨 부인은 얼굴이 화끈거리다 못해 터질 지경이었으나, 입가에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아이고, 부끄러워라! 하지만... 맞구나, 맞아! 맹인의 말이 한 치의 거짓도 없었어! 저 지치지 않는 사내의 양기 좀 보소! 내 딸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기절하기 직전이 아니냐! 오호호, 이리도 궁합이 찰떡이니, 우리 집안은 이제 만사형통이다, 만사형통이야!'

    다음 날 아침, 방문이 열리고 나온 연화의 얼굴은 밤새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꽃이 핀 듯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볼은 복숭아처럼 발그레했고, 눈빛에는 평생 느껴보지 못한 행복감이 가득했다. 무진 역시 어젯밤의 격렬했던 전투(?)가 무색하게,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상쾌하고 늠름한 자태를 뽐내며 걸어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최씨 부인은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이제 남은 것은... 땅만 사면 터진다는 그 황금빛 재물복뿐이로구나!'

    최씨 부인은 앞으로 이 듬직한 사위가 어떻게 집안을 떵떵거리게 만들어줄지 기대감에 부풀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사위의 아침상을 차리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 5: 혼인 후, 처가의 남은 재산을 털어 돌투성이 황무지를 사겠다는 사위의 고집

    꿈결 같았던 첫날밤이 지나고, 초가삼간에는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살이는 그대로였건만, 집안을 감도는 공기는 마치 따스한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포근하고 생기가 넘쳤다. 연화는 아침 일찍 일어나 남편의 세숫물을 떠다 바치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고, 무진은 그런 아내의 고운 손을 어루만지며 애정 어린 눈빛을 감추지 않았다. 밤마다 낡은 방문 너머로 새어 나오는, 숨죽인 교성과 쉴 새 없이 삐걱이는 방바닥 소리는 며칠이 지나도록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무진의 그 맹렬한 양기는 기세를 더해갔고, 연화의 얼굴에는 복사꽃 같은 화색이 만발하여 동네 아낙들의 질투 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정도였다.

    최씨 부인은 매일 아침 안도와 기대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사위를 바라보았다. 곽 맹인이 호언장담했던 첫 번째 예언, 즉 뼈를 녹이는 짐승 같은 기운으로 부부 금슬이 하늘을 찌를 것이라는 말은 이미 두 눈과 두 귀로 똑똑히 확인한 터였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사위가 손을 대는 곳마다 황금빛 재물이 쏟아져 들어와 조선 팔도를 뒤흔들 거부가 된다는 그 기막힌 예언뿐이었다. 최씨 부인은 속으로 조바심을 내며 사위가 언제쯤 과거 공부를 접고 큰 장사에 뛰어들지, 아니면 어디서 금두꺼비라도 주워 올지 목을 빼고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저녁상을 물리고 난 후 무진이 장모와 아내를 안방으로 조용히 불러 모았다. 평소와 달리 한껏 진지하고 결연한 표정이었다.

    "장모님, 그리고 부인. 제가 오늘 두 분께 중히 드릴 말씀이 있어 이리 모시었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제가 이제 글공부를 접고 집안을 일으켜 세울 방도를 실행에 옮기고자 합니다."

    최씨 부인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어 가슴이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오, 그래! 사위, 드디어 네가 큰 뜻을 품었구나. 그래, 무엇을 하려느냐? 한양 육의전에 가서 비단 장사라도 크게 벌일 참이냐? 아니면 청나라를 오가는 인삼 무역을 해볼 테냐? 어서 말해보거라!"

    최씨 부인이 잔뜩 기대에 부풀어 묻자, 무진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장모님. 장사를 하려 해도 밑천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먼저 땅을 하나 사려 합니다."

    "땅? 오호, 그래 땅을 사서 농사를 짓거나 훗날 값을 불려 팔겠다는 심산이로구나. 기름진 논을 살 테냐, 아니면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목 좋은 장터 길목을 살 테냐?"

    "저기, 뒷산 고갯마루 너머에 있는 '까마귀골' 황무지를 모조리 사들일 작정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최씨 부인의 얼굴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하얗게 질려버렸다. 연화 역시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까마귀골 황무지라니! 그곳은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않는, 온통 뾰족한 암석과 돌무더기로 덮여 있는 저주받은 땅이었다. 예로부터 그 땅을 개간하려던 사람들은 쟁기 날만 다 부러뜨리고 빚더미에 앉아 야반도주하기 일쑤였고, 밤이면 굶주린 짐승들과 까마귀 떼만 스산하게 우러대는 흉지 중의 흉지였다. 동네 사람들은 그곳에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이 묻혀 있어 땅의 기운이 썩어 문드러졌다고 믿고 있었다.

    "사, 사위...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냐?! 까마귀골이라니! 거기가 어떤 땅인지 정녕 모르고 하는 소리야? 씨앗을 뿌려도 싹 하나 트지 않는 썩은 돌산이란 말이다! 그런 쓸모없는 버려진 땅을 돈을 주고 사겠다니, 네가 정녕 미친 게로구나!"

    최씨 부인이 가슴을 치며 호통을 쳤지만, 무진의 눈빛은 바위처럼 단단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장모님, 남들의 눈에는 그저 저주받은 황무지로 보이겠지만, 제 눈에는 다릅니다. 제가 며칠 전 그곳을 둘러보았는데, 척박한 돌무더기 아래에서 무엇인가 뜨겁고 맹렬한 기운이 꿈틀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남들이 버린 땅이야말로 가장 헐값에 거둘 수 있는 보물창고가 아니겠습니까. 제게 남은 가산과 장모님께서 가지고 계신 비상금을 조금만 보태주신다면, 그 돌산을 모조리 사들여 이 집안의 기둥을 다시 세우겠습니다. 저를 한 번만 믿어주십시오!"

    '뜨거운 기운...?'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최씨 부인의 머릿속에 곽 맹인이 산통을 흔들며 부르짖던 목소리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 사내의 팔자에는 땅 밑으로 굵디굵은 황금 맥이 뻗어 있소! 손을 대는 땅마다 금맥이 터질 것이오!'

    최씨 부인은 숨을 헉 하고 들이마셨다. 이 사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짐승 같은 양기가 필시 저주받은 땅의 기운마저 뚫어버릴 것이라는 확신, 아니 미신 같은 믿음이 갑자기 가슴 속에서 솟구치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결코 사지 않을 흉지이기에, 오히려 그 점쟁이의 기막힌 예언이 꿰맞춰지는 듯한 기묘한 소름이 돋았다.

    '그래... 이놈은 평범한 놈이 아니야. 첫날밤 그 무시무시했던 기운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래, 까짓것 어차피 바닥을 친 인생, 점쟁이 말 한번 끝까지 믿어보고 내 남은 명운을 다 걸어보자!'

    결심을 굳힌 최씨 부인은 치마폭 깊숙한 곳에서 명주 수건에 겹겹이 싼 묵직한 쌈지를 꺼내어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남편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겨준, 가문이 완전히 망했을 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숨겨두었던 손바닥만 한 금두꺼비와 귀한 옥비녀들이었다.

    "어머니! 안 됩니다! 이것은 우리 집안의 마지막 남은 명줄이 아닙니까. 어찌 저런 흉지를 사는데 이 귀한 것을 허비하신단 말씀이십니까!"

    연화가 울며 만류했지만, 최씨 부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연화야, 넌 가만히 있거라. 사위가 확신을 가지고 하는 일이다. 지아비가 큰 뜻을 품었는데 어미 된 자가 밀어주지는 못할망정 초를 쳐서야 쓰겠느냐. 무진아, 여깄다. 내 평생을 품고 있던 내 전부니라. 이것을 팔아 그 까마귀골 황무지를 당장 모조리 사들이거라. 네놈의 그 뻗치는 기운으로 돌산을 황금 산으로 만들어 보란 말이다!"

    무진은 장모의 파격적인 결단에 깊이 감동하며 큰절을 올렸다.

    다음 날, 무진이 까마귀골 땅을 모조리 사들였다는 소문이 퍼지자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최씨 부인을 향해 혀를 끌짫 찼다.

    "아이고, 저 최씨 마님이 마침내 노망이 났군. 가난방망이 놈한테 홀려서 남은 재산을 돌덩이 사는 데 다 처박다니!"
    "사위 놈이 밤일 좀 잘한다고 정신을 못 차리나 보지. 쯧쯧, 저 집안은 이제 쫄딱 망해서 동냥아치 신세가 될 게 불 보듯 뻔해."

    사람들의 온갖 조롱과 비웃음이 쏟아졌지만, 최씨 부인은 귀를 굳게 닫았다. 낡은 마루 끝에 앉아 험준한 까마귀골 산등성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두 손에는 땀이 흥건하게 배어 있었다.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던진 이 무모한 승부수가 과연 장모의 인생을 구원할 동아줄이 될 것인지, 아니면 집안을 완전히 파멸로 몰아넣을 썩은 동아줄이 될 것인지, 운명의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후였다.

    ※ 6: 황무지에서 터져 나온 금맥과 거침없는 사업 수완으로 거상으로 거듭나는 과정

    까마귀골 황무지의 땅문서를 손에 쥔 다음 날부터, 무진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지게와 곡괭이를 메고 돌산으로 향했다.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닥치는 산중턱에서, 그는 웃통을 훌렁 벗어 던진 채 집채만 한 바위들을 깨부수고 척박한 땅을 파내기 시작했다. 깡마른 줄만 알았던 그의 몸은 어느새 다부진 근육으로 덮여 있었고, 곡괭이를 내리칠 때마다 굵은 땀방울이 그의 구릿빛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 모습은 마치 대지의 억센 기운과 혈투를 벌이는 한 마리의 야수와도 같았다.

    동네 사람들은 매일같이 산 아래로 모여들어 낄낄대며 그 광경을 구경했다.

    "어이구, 저 힘자랑 좀 보소. 밤에 마누라 안을 힘까지 다 빼버리겠네!"
    "바위를 캔다고 거기서 금이나 은이 나온답디까? 헛고생 그만하고 내려와서 짚신이나 엮으시지!"

    그들의 조롱에도 무진은 묵묵히 곡괭이질만 계속했다. 연화는 매일 점심때마다 정성껏 싼 도시락을 이고 험한 산길을 올라와 남편의 땀을 닦아주었고, 무진은 아내가 건네는 물 한 모금에 호랑이 같은 기운을 다시 얻어 돌밭을 파헤쳤다. 최씨 부인 역시 매일 밤 정한수를 떠놓고 조상님과 천지신명께 두 손이 닳도록 기도를 올렸다.

    그렇게 한 달이 훌쩍 지난 어느 늦은 오후였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있을 때, 무진이 거대한 암석 틈새를 향해 온 힘을 다해 곡괭이를 내리쳤다.

    '까앙-!!'

    귀청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단단하던 바위 한쪽이 우지끈 갈라지며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순간, 곡괭이 끝을 쥔 무진의 두 손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찌릿하게 떨려왔다. 무너진 바위틈 사이로, 석양빛을 받아 눈이 멀 것 같이 찬란하게 빛나는 누런 덩어리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이것은...!"

    무진은 숨을 헐떡이며 떨리는 손으로 그 누런 덩어리를 긁어내어 입으로 베어 물어보았다. 돌처럼 단단하지 않고 기분 좋게 잇자국이 남는 묵직한 질감. 그것은 흙먼지 속에서도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순도 높은 진짜 황금이었다. 곽 맹인의 예언대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저주받은 까마귀골 황무지는 사실 조선 최대의 금맥을 품고 있던 거대한 노다지였던 것이다!

    "금이다!! 금이 터졌다!!!"

    산 밑에서 나물거리던 동네 사람들과 안절부절못하며 서성이던 최씨 부인의 귓가에 무진의 짐승 같은 포효가 천둥처럼 내리꽂혔다. 최씨 부인은 치맛자락이 찢어지는 줄도 모르고 돌산을 단숨에 기어 올라갔다. 갈라진 바위틈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누런 황금 덩어리들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순간, 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이고, 조상님...! 하늘이시여! 맹인의 말이 참말이었어! 참말이었어!! 내 사위가 흙을 만지니 진짜로 황금이 되었단 말이다!!"

    최씨 부인은 흙투성이가 된 무진을 부둥켜안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곁에 있던 연화 역시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 산 밑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며 손가락질을 해대던 동네 사람들의 얼굴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하얗게 질려버렸고, 질투와 경악에 찬 탄식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무진의 기막힌 행보는 금광을 발견한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쏟아져 나오는 황금을 함부로 발설하거나 흥청망청 쓰지 않았다. 은밀하고 신속하게 금을 녹여 막대한 은자로 바꾼 뒤, 그 자금을 밑천 삼아 한양 도성 한복판에 가장 크고 번듯한 상단인 '무진 상단'을 세웠다. 가난한 선비의 허물을 벗어 던지고, 천부적인 상술을 지닌 거상으로 완벽하게 탈바꿈한 것이다.

    그의 사업 수완은 흡사 신들린 사람 같았다. 그는 남들이 팔려는 물건은 사지 않고,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위기의 물건들에만 엄청난 자본을 쏟아부었다. 가뭄이 들어 쌀값이 폭등할 것을 미리 예견하고, 흉년이 들기 전 전국 팔도의 구황작물과 곡식을 미리 매점매석하여 수십 배의 이문을 남겼다. 또한, 청나라 사신들이 오가는 길목에서 진귀한 조선의 홍삼을 독점하여 그들이 가져온 비단과 은덩이를 모조리 쓸어 담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의 과감한 결단력과 짐승 같은 배포였다. 해적들이 출몰하여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 험난한 뱃길에 거대한 상선을 띄워 일본과의 무역을 뚫었고, 한 번 배가 들어올 때마다 상단의 창고에는 은덩이가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무진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돈이 돈을 낳고, 재물이 재물을 끌어당겼다.

    불과 몇 년 만에 무진 상단의 이름표가 붙지 않은 물건은 육의전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조선 팔도의 상권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가난에 찌들어 파혼당할 뻔했던 산동네의 깡마른 청년은, 이제 한양의 고관대작들조차 앞다투어 돈을 빌리러 와서 굽신거리는 명실상부한 조선 최고의 거부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거대한 부의 한가운데에는, 사위의 떡잎을 알아보고 모든 것을 걸었던 장모 최씨 부인의 짜릿한 역전극이 늠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 7: 한양 최고의 갑부가 되어 다복한 가정을 일구고 백년해로하는 완벽한 해피엔딩

    그로부터 십수 년의 세월이 흐른 뒤, 한양 도성에서 가장 볕이 잘 들고 터가 좋다는 북촌 제일의 명당자리에는 구중궁궐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아흔아홉 칸짜리 기와집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밤낮없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손님들과 전국 팔도에서 올라온 귀한 특산물들이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비단옷을 곱게 차려입은 수십 명의 하인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이 대저택의 주인은 다름 아닌 무진과 연화 부부였다.

    "어허, 이 녀석들! 마루에서 뛰지 말라 하지 않았느냐. 할머니께서 단잠을 깨실라!"

    마당 한가운데서 무진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주변으로는 똑같이 생긴 사내아이 열 명이 이리저리 뛰놀며 시끌벅적한 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곽 맹인의 점괘가 어찌 그리도 무서울 정도로 맞아떨어졌는지, 연화는 혼인 후 첫아이를 가진 것을 시작으로 단 한 번의 잔병치레도 없이 내리 아들만 열 명을 순산하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동네 사람들은 이들 부부의 칠성줄보다 굵은 자식 복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음에도 무진의 체격은 여전히 범처럼 건장했고, 그의 눈빛에는 세상을 호령하는 거상 특유의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쳐흘렀다. 연화 역시 열 명의 아이를 낳은 어미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운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의 애정은 세월이 흘러도 도무지 식을 줄을 몰랐다. 밤이 깊어지면 아흔아홉 칸 대저택의 안방에서는 여전히 부부의 농염하고 뜨거운 숨소리가 멈추지 않는다는 소문이 하인들 사이에 파다할 정도로, 무진의 전무후무한 양기와 연화의 찰떡같은 속궁합은 한양 제일의 금슬로 정평이 나 있었다.

    "서방님, 아이들 꾸짖지 마셔요. 사내아이들이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씩씩하게 커야 훗날 아버지를 닮아 큰 인물이 되지 않겠습니까."

    연화가 기품 있는 비단 치마를 여미며 남편에게 다가와 다정하게 팔짱을 꼈다. 무진은 사랑스러운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 평화롭고 다복한 정경을 사랑채 대청마루에 앉아 지긋이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최고급 비단에 호화로운 옥비녀로 치장한 노년의 최씨 부인이었다. 입에는 최고급 다과를 물고, 양옆에서는 어린 계집종들이 정성껏 안마를 해주는 그야말로 황후장상이 부럽지 않은 호사스러운 노후였다.

    최씨 부인은 햇살 아래에서 웃고 있는 딸과 사위,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열 명의 외손자들을 보며 주름진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내 평생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더냐 묻는다면, 두말할 것 없이 그 춥고 시린 겨울날 점집을 찾아간 것이리라. 그때 만약 내 체면과 알량한 계산에 눈이 멀어 저 금두꺼비 같은 사위를 내쳤더라면... 우리 연화는 지금쯤 남의 집 노비가 되어 뼈 빠지게 일하고, 나는 굶주려 죽은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돌고 있었겠지.'

    그녀는 문득 사위가 까마귀골 황무지를 사겠다며 자신 앞에 무릎을 꿇었던 그 절박했던 날을 떠올렸다. 남들은 모두 미친 짓이라 손가락질하고 조롱했지만, 자신은 사위의 사주에 깃든 그 뜨거운 양기와 맹렬한 재물복, 그리고 짐승 같은 기운을 믿고 마지막 남은 전 재산을 기꺼이 내어주었다. 벼랑 끝에서 내린 장모의 그 아찔한 선택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몰락 양반 가문을 하루아침에 조선 최고의 갑부 집안으로 환골탈태시킨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장모님! 날이 참으로 좋습니다. 내일은 아이들을 데리고 유람선이라도 띄워 뱃놀이를 가실까요? 맛난 음식은 제가 두둑이 준비해 놓겠습니다."

    사위 무진이 호탕하게 웃으며 다가와 말을 건네자, 최씨 부인은 껄껄 소리 내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오냐! 네가 가자면 지옥 불인들 못 가겠느냐. 내 든든한 사위와 어여쁜 딸, 그리고 보석 같은 손주들이 있는데 이 세상 어디를 가든 거기가 바로 극락이지! 허허허!"

    담장 너머로 뻗어 나가는 다복한 가족의 웃음소리가 맑은 하늘 위로 기분 좋게 울려 퍼졌다. 지독한 가난의 굴레를 짐승 같은 양기와 거침없는 상술로 통쾌하게 깨부수고, 믿음 하나로 가문의 운명을 완벽하게 뒤바꿔버린 장모와 사위의 찰떡같은 조화. 돈과 사랑, 건강과 자식복까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복을 쓸어 담은 이들의 삶은,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되는 만복(萬福)의 상징으로 영원히 빛나고 있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시니어 여러분, 오늘의 야담 즐거우셨나요? 찢어지게 가난했던 사위가 장모의 믿음 하나로 조선 최고의 갑부가 된 통쾌한 인생 역전극!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나 봅니다. 사위의 그 무시무시한 기운(?) 덕에 딸도 기절할 만큼 행복했다니 이보다 완벽한 해피엔딩이 있을까요? 이야기가 재미있으셨다면 구독좋아요, 그리고 재미있는 댓글 잊지 마세요! 다음 시간에도 19금의 짜릿함과 가슴 뻥 뚫리는 사이다 같은 만복 야담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