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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천에서 저승사자와 고승 , 법집행하던 자가 홀로 서던 곳 『기문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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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300자 내외)
"수천 년간, 영혼을 거두어 온 냉혹한 저승사자. 그는 자신이 '법' 그 자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삼도천(三途川) 앞에서 마주한 한 고승(高僧)이, 그를 향해 나직이 속삭였습니다. '사자여, 이 강을 건너는 저 영혼들이 보이는가. 저 길이, 바로 네가 갈 길이다.' 저승사자마저 깨닫게 한 노스님의 마지막 지혜는 무엇이었을까요?"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기문총화』에 실린 기이한 이야기. 이승도 저승도 아닌, 그 경계에서 수천 년을 머물던 저승사자가 자신의 '업보(業報)'를 마주합니다. 법을 집행하던 자가, 실은 가장 무거운 굴레에 묶여 있었음을 한 노스님의 마지막 설법(說法)이, 차가운 저승사자의 심장을 울립니다. 오늘 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위대한 깨달음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 냉혹한 집행자
이승과 저승의 경계. 그곳은 빛도, 어둠도 아닌 영원한 잿빛 황혼(黃昏)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곳을 지키는 자. 우리는 그를 '저승사자'라 부른다. 그의 이름은 무영(無影), 그림자가 없는 자. 그는 수천 년인지, 수만 년인지 모를 세월 동안, 그저 명부(名簿)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고, 그 주인을 데려오는 일만을 반복해왔다. 그에게 '감정'이란, 인간들이나 가지는 하찮고 거추장스러운 미련의 찌꺼기에 불과했다. 그는 자비(慈悲)를 베풀지 않았고, 동정(同情)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법(法)'이었고, '균형'이었으며, '끝' 그 자체였다.
오늘도, 무영은 한양의 거대한 기와집, 이조판서 김 아무개의 침소에 서 있었다. 방 안은 온갖 값비싼 약재 냄새와, 죽음을 앞둔 노인의 썩어가는 체취가 뒤섞여 역겨웠다. "크흐흑 내가 내가 이대로 죽을 수 없다 내 돈이 내 재산이!" 김 판서는 비단 이불을 움켜쥔 채, 핏발 선 눈으로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에는 오직 무영의 모습만이 시퍼렇게 보이고 있었다. "사 사자! 사자 양반! 내 말 좀 들어보시오!"
무영은 말없이, 방구석에 쌓인 금은보화 궤짝들을 바라보았다. 저 무겁고 반짝이는 돌덩이들이 대체 무엇이기에 인간들은 죽는 순간까지 저것을 놓지 못하는가. "내 내 곳간에 황금이 천 근이오! 그 절반을 주겠네! 아니, 다 주겠네!" 김 판서가 애원하며 손을 뻗었다. "염라대왕께 가서 며칠만 아니, 단 하루만이라도 더 살게 해달라고 말 좀 전해주게!"
무영은 한숨 대신 차가운 입김을 내뿜었다. "김 아무개. 네놈의 명(命)은 오늘 자시(子時)까지다. 거래는 없다." "이 이 짐승 만도 못한 놈!" 애원이 통하지 않자, 김 판서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네 이놈! 내가 누군지 알고 !" 그가 악을 쓰는 순간, 무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에 들린 '홍억사(魂憶鎖)' 즉, 영혼을 묶는 붉은 쇠사슬을 던졌다. '촤악!' 쇠사슬은 육신을 통과하여, 그 안에 숨어 떨고 있던 김 판서의 영혼을 정확히 꿰뚫었다.
"끄아아악!" 김 판서의 영혼이 육신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그 탐욕스럽던 판서의 모습은 간데없고, 그저 검은 때가 덕지덕지 붙은 추레한 영혼 하나가 바닥을 굴렀다. "가자." 무영이 쇠사슬을 잡아당기자, 영혼은 비명을 지르며 끌려왔다. "내 돈 내 집 싫어 !" 방 밖에서는 아들 며느리들이 "아버님!" 하고 가식적인 울음을 터뜨렸지만, 그들의 마음속은 '이제 저 재산이 우리 것이구나' 하는 검은 환희로 가득 차 있음을 무영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어리석은 것들.' 무영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경멸했다. 그들은 평생 무언가를 갈구하고, 집착하고, 결국 죽음 앞에서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이 신기루였음을 깨닫고 절규한다. 수천 년간 보아온 똑같은 촌극(寸劇). 무영은 김 판서의 영혼이 애처롭게 제 금궤를 향해 손을 뻗는 것을 무시하고, 그를 거칠게 끌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일은 언제나 그랬다. 차가웠고, 정확했으며, 한 점의 동정도 없었다.
※ 뜻밖의 명부(名簿)
영혼을 삼도천 나루터의 boatman에게 인계한 무영은 다시 잿빛 경계로 돌아왔다. 이곳은 저승의 초입이자, 염라대왕의 명이 내려오는 '명부전(冥府殿)'이 있는 곳이다. 수많은 저승사자들이 그림자처럼 오가며, 자신들의 '수확물'을 보고하고 새로운 '명단'을 받아 갔다. 무영은 그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냉혹하며, 가장 실수 없는 '최고 참(參)' 사자였다.
그가 명부전 안으로 들어서자, 다른 사자들이 조용히 길을 터주었다. 그들은 무영을 두려워했다. 그의 몸에서는 다른 사자들에게서 나는 '죽음'의 냄새 대신, 아무 냄D새도 나지 않는 '무(無)'의 기운이 흘렀기 때문이다. "이번 명부다." 명부전을 지키는 '감찰(監察)' 사자가, 새로운 명부가 적힌 검은 죽간(竹簡)을 내밀었다. 무영은 기계적으로 죽간을 펼쳤다. 보통은 수십 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어야 할 죽간이 오늘은 이상하게 텅 비어 있었다. 단 하나의 이름만이 적혀 있었다.
'혜각(慧覺). 금강산 보덕사(普德寺). 향년 아흔 셋.'
"고작 이 하나인가." 무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감찰 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왕님의 뜻이다. 이번 영혼은 '특별'하니, 최고 참인 네가 '정중히' 모셔 오라 하셨다." '정중히?' 무영은 그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영혼은 거두는 것이지, 모시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상대는 '고승(高僧)', 스님이었다.
무영은 스님들을 데려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탐욕에 찌든 김 판서 같은 영혼은 다루기 쉬웠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삶에 미련이 많아 쇠사슬에 잘 묶여 왔다. 하지만 스님들은 다르다. 특히 평생을 도(道)를 닦은 고승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울지도, 빌지도 않았다. 오히려 너무 '맑아서' 쇠사슬이 잘 걸리지 않거나, 혹은 이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귀찮게 '말'을 걸어오곤 했다.
"까다로운 상대로군." 무영은 죽간을 허리춤에 찼다. '정중히'라는 명령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쨌든 임무는 임무였다. 그는 자신의 거처인 어둠 속으로 들어가, 잠시 '쉼'을 가졌다. 그의 쉼이란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흐르는 저승의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존재를 '비우는' 것이었다. 그는 다음 임무를 위해, 김 판서를 잡아 오며 미세하게 묻었던 '인간의 때'를 씻어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각이 되자, 그는 다시 일어섰다. 다음 목적지, 속세의 때가 가장 적다는 금강산을 향해 그림자처럼 몸을 날렸다. 그의 발걸음은 소리가 없었고, 그의 마음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 산사(山寺)의 만남
금강산은 과연 명산(名山)이었다. 이승의 그 어떤 곳보다 '기운'이 맑았다. 무영은 인간 세상의 추잡하고 탁한 공기 대신, 서늘하면서도 청아한 기운이 자신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 맑은 기운은 무영 같은 '음(陰)'의 존재에게는 오히려 불편했다. 마치 밝은 햇빛 아래 강제로 끌려 나온 박쥐가 된 기분이었다. 그는 구름 그림자를 타고 이동하여, 약속된 장소인 보덕사(普德寺)에 도착했다.
절은 산 중턱, 아찔한 절벽 위에 제비집처럼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규모는 작았으나, 절 전체에서 은은한 '황금빛'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김 판서의 집에서 나오던 재물의 누런 빛이 아니라, 오랜 세월 쌓인 기도와 수행의 '공덕(功德)'의 빛이었다. 무영은 그 빛이 눈이 부셔, 저도 모르게 손으로 얼굴을 가릴 뻔했다. "쯧. 이래서 스님네들은 귀찮다."
그는 육신을 가진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영(靈)'의 상태로 절 마당을 가로질렀다. 늙은 보리수나무 아래,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하품을 한번 '하암' 하고는 다시 잠을 청했다. 보통 짐승들은 그의 살기(殺氣)를 느끼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마rownames 저 고양이조차 이 절의 기운을 닮아 있는 듯했다.
무영은 명부에 적힌 '혜각'의 방을 찾았다. 당연히 병세가 악화되어 자리에 누워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방은 비어 있었다. 이불은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고, 방 안에는 묵향(墨香)과 국화 향만이 은은했다. "어디로 간 것이냐." 무영이 짜증스럽게 중얼거리며 절 뒤편으로 향했다.
그곳에 혜각 스님이 있었다. 그는 자리에 누워 있지 않았다. 아흔셋의 노승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정한 모습으로, 달빛 아래 마당에 떨어진 낙엽을 쓸고 있었다. 사각 사각 싸리비가 땅을 스치는 소리는 흐트러짐 없이 일정했고, 그 소리가 마치 경(經)을 읽는 소리처럼 무영의 귀를 파고들었다. 무영은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스님의 등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음습하고 차가운 '죽음'의 기운이 퍼져나갔다.
스님의 빗자루질이 '뚝' 멎었다. "때가 되었는가." 혜각 스님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나직이 물었다. 무영은 놀랐다. 자신이 기척을 드러내기도 전에 알아차리다니. 스님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얼굴은 세월의 흔적으로 깊게 주름이 패었지만, 그 두 눈은 마치 밤하늘의 별을 옮겨 박은 듯, 깊고 총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눈에는 공포나 놀람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오랜 손님을 맞이하는' 듯한 평온함이 있었다.
"혜각. 명이 다하였다." 무영이 관례대로 차가운 목소리로 선고했다. 혜각 스님은 조용히 합장(合掌)을 했다. "나모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알고 있었네. 오늘 밤 귀한 손님이 오실 줄 알고 밤새 마당을 쓸고 있었지." 스님은 빗자루를 내려놓고, 무영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수고가 많았네. 이 먼 산길까지 오시느라. 날이 찬데 차(茶)나 한 잔 하겠는가?"
무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수천 년간 영혼을 거두면서, 저승사자에게 차를 권한 영혼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그런 것을 탐하지 않는다." "허허. 아쉽구먼." 스님은 오히려 무영을 안타깝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이 저승으로 가는 길이 참으로 길고 추울 터인데 가슴속에 따뜻한 차 한 잔 없이는 어찌 그 긴 세월을 버텼는가. 자네야말로 참으로 수고가 많았네." 그 말은 마치 무영의 '임무'가 아니라, 무영의 '존재' 자체를 위로하는 듯했다. 무영은 이 상황이 불편했다.
※ 저승길의 문답(問答)
혜각 스님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다. 그는 방으로 들어가 가장 깨끗한 승복으로 갈아입고, 잠들어 있는 삼색 고양이의 머리를 한 번 쓸어 준 뒤, 무영을 따라나섰다. 두 존재는 절 마당을 떠나, 인간의 길이 아닌 '영(靈)'의 길, 즉 '염로(閻路)'로 접어들었다. 이 길은 이승과 저승의 틈새에 있는 길로, 사방은 온통 잿빛 안개로 자욱했고, 멀리서 수많은 영혼들의 울부짖음과 탄식 소리가 바람처럼 들려왔다.
무영의 앞서 오늘 다른 사자들에게 끌려가는 영혼들이 보였다. 그들은 대부분 울고 불며, 이승에 남겨둔 것들을 애타게 부르짖으며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내 아들 ! 장가 가는 것은 보고 가야 하는데!" "내 돈! 그 놈이 내 돈을 가로챌 것이야!" 미련과 집착에 사로잡힌 영혼들은 무겁고 추했다.
하지만 혜각 스님은 달랐다. 그는 쇠사슬에 묶여 있지도 않았지만, 도망치지도 않았다. 오히려 무영의 반 걸음 뒤에서, 마치 가을 산책이라도 나온 듯 손을 뒷짐 진 채, 이 기괴한 저승길의 풍경을 조용히 둘러보고 있었다. 그 평온함이 무영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시끄럽군." 무영이 영혼들의 울음소리를 향해 중얼거렸다. 그러자 혜각 스님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저들이 시끄러운 것인가, 아니면 사자(使者)의 마음이 시끄러운 것인가." "!" 무영이 우뚝 걸음을 멈추고 스님을 노려보았다. "스님.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다. 그 입을 다물라." "허허. 죽었기에 비로소 할 수 있는 말도 있는 법이지." 혜각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사자여. 자네는 이 길을 얼마나 걸었는가."
"숫자 따위는 센 지 오래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자네는 늘 '인도하는' 자였는가, 아니면 '끌려가는' 자였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무영은 자신이 '집행자'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나는 법을 집행한다. 끌려가는 것은 저 어리석은 영혼들이다."
혜각 스님은 걸음을 계속하며 조용히 말했다. "내 젊은 시절, 길을 가다 독(毒)에 빠진 사슴을 구해준 적이 있지. 그 사슴은 내게 고마워 눈물을 흘렸네. 또 한 번은, 굶주린 호랑이에게 내 팔 하나를 내어줄 각오를 한 적도 있었지. 그것이 중생(衆生)의 삶이라 배웠네. 그런데 말일세, 사자여." 스님이 무영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수천 년을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저 우는 영혼을 위해 '슬퍼한' 적이 있는가? 아니면, 자네의 차가운 손을 잡아준 '따뜻함'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쓸데없는 소리." 무영은 쇠사슬을 '촤랑' 하고 울렸다. 그의 마음 속, 수천 년간 굳어 있던 얼음 성에 미세한 '금'이 가는 소리였지만, 그는 애써 외면했다. 두 사람은 말 없이 걸어, 마침내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마지막 관문, 안개 자욱한 거대한 강가에 도착했다. 삼도천(三途川)이었다.
※ 삼도천(三途川)의 풍경
얼마나 걸었을까. 이승도 저승도 아닌 잿빛 '염로(閻路)'의 끝에서 무영은 익숙한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바람 소리가 아니었다. 수천, 수만, 아니 수억만 영혼의 울부짖음과 탄식, 그리고 절규가 한데 뒤섞여 만들어진 거대한 '흐느낌'의 소리였다. 공기는 점점 무거워졌고, 이승에서 묻혀 온 먼지 냄새 대신, 비릿하고 축축한 '한(恨)'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안개가 걷히고, 마침내 그 모습이 드러났다.
삼도천(三途川). 이름만으로도 이승의 인간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죽음의 강. 그 풍경은 무영에게조차 수천 년을 보아 왔음에도 여전히 지겹고도 음울한 곳이었다. 강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었고, 그 물빛은 맑은 물이 아니라 검붉었다. 마치 수억 영혼이 흘린 피눈물이 모여 강을 이룬 듯 걸쭉하고 탁했다. 강물은 그저 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은 자들이 이승에 두고 온 '미련'과 '집착', 그리고 '원망'이 뒤엉켜 흐르는 '업보(業報)의 강'이었다. 강물은 잔잔히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서 이유 없이 소용돌이쳤고, 물 표면 위로 거품 대신 수많은 '손'들이 뻗어 나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무언가를 움켜쥐려는 듯 절박하게 허공을 휘젓는 그 손들은, 이미 강을 건너다 미련에 잠식당한 영혼들의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강가에는 수많은 영혼들이 모여 있었다. 무영이 오늘 데려온 김 판서의 영혼도 저 한쪽 구석에서 "내 황금 ! 내 전답 !" 하며 땅을 치고 있었다. 어떤 영혼은 강 앞에 주저앉아 "나는 못 가네 ! 내 새끼 얼굴 한 번만 더 보고 가야 하네!" 하고 울부짖었고, 어떤 영혼은 자신이 평생 바친 공든 탑과 명예를 부르짖으며 허공에 대고 절규했다. 갓 죽은 어미의 영혼은 젖을 찾는 갓난아이의 환영을 쫓아 강물로 뛰어들려 했고, 책상 앞에서 죽은 늙은 선비의 영혼은 아직도 손에 보이지 않는 붓을 쥐고 "아직 다 못 썼다!" 하며 괴로워했다. 이 모든 혼돈과 절망, 어리석음의 풍경 속에, 오직 하나 고요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나루터를 지키는 '나룻배' 한 척과 그 배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말 없는 '뱃사공'이었다.
뱃사공의 얼굴은 마치 이 강가의 바위가 살아 움직이는 듯, 세월의 흔적 따위는 초월한 듯 무표정했다. 그의 눈은 오직 강물만을 비추고 있었다. 저 배를 타야만, 영혼은 비로소 강을 건너 염라대왕의 심판대로 나아갈 수 있었다. 강을 건너지 못한 영혼들은 결국 저 검붉은 강물에 빨려 들어가 영원히 '미련'의 일부가 되어 떠돌게 될 터였다.
무영은 이 풍경에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그에게 이곳은 그저 '배달지' 혹은 '창고'에 불과했다. 그는 혜각 스님을 나룻배 쪽으로 이끌었다. "혜각. 저 배를 타라. 저 배가 너를 심판대로 이끌 것이다." 그의 임무는 여기까지였다. 이 까다로운 영혼을 뱃사공에게 '인계'하고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혜각 스님은 배로 향하지 않았다. 그는 울부짖는 영혼들을 피해 나루터 가장 끝, 강물이 가장 거세게 휘몰아치는 곳에 우뚝 서서, 강물 속에서 서로를 할퀴고 끌어당기는 영혼들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무영이 늘 느끼던 '경멸'이나 '무관심' 대신, 깊고 아픈 '연민(憐愍)'이 서려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합장했다. "참으로 애처롭구나. 참으로 가엽구나. 살아 있을 때 스스로 만든 그 '욕망'과 '집착'의 감옥에 갇혀, 죽어서도 스스로를 이 차가운 강물 속에 묶고 있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모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리고 혜각 스님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는 강물도, 나룻배도, 울부짖는 영혼들도 보지 않았다. 그는 오직 저승사자 '무영'을 그 깊고 맑은 눈으로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아흔셋 노승의 눈이 아니라, 마치 하늘 그 자체처럼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듯했다.
"사자(使者)여." "이제 그만 가야 할 시간이다." 무영이 재촉했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아직 갈 수 없네." "명이 다한 영혼이 어찌 이리 미련이 많은가." "나의 미련이 아니라, 사자, 자네의 '무지(無知)'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일세." 혜각 스님이 강물을 가리켰다. "사자여. 자네는 저 강물 속 영혼들을 보며 무엇을 느끼는가?" 무영은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어리석음(Folly). 살아생전 놓지 못한 미련이 저들을 물 속에 가두는 것이다. 스스로 만든 지옥이지." "옳은 말이네." 혜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사자여. 자네는 무엇이 자네를 이 강둑에 수천 년간 저 영혼들보다 더 단단히 묶어두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 네가 갈 길이다
무영은 그 질문에 마치 보이지 않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듯했다. "무 무슨 소리냐. 나는 묶인 것이 아니다." 그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조금 높아졌다. "나는 '임무' 수행 중이다. 나는 '직책'을 가진 자이며, 이 저승의 '균형'을 지키는 집행자다. 나는 너희 같은 감정에 휘둘리는 어리석은 영혼들과는 근본부터 다르다!" 그가 소리쳤지만, 그 목소리는 스스로도 모르게 떨리고 있었다. 수천 년간 단 한 번도 스스로에게 던져보지 않았던,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혜각 스님은 그런 그를 마치 길 잃은 아이를 보듯 자비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사자여. 자네야말로 이 강가에 가장 단단히 묶여 있는 가장 가엾은 영혼일세. 저 강물 속 영혼들은 뜨거운 '미련'에 묶여 있지만 자네는 그보다 더 무서운 '차가운 마음' 그 자체인 '업보(業報)'에 묶여 있네."
무영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혜각 스님은 그런 그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몸에서는 황금빛 공덕의 빛이 흘러나와, 무영의 차가운 기운을 따뜻하게 밀어내고 있었다. "사자여. 자네는 스스로를 심판의 집행자라 여겼겠지. 허나 자네 또한 이 거대한 윤회(輪廻)의 톱니바퀴 하나일 뿐. 자네는 왜 저승사자가 되었는가. 그 시작이 무엇이었는지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무영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존재'할 뿐이었다. 시작도 끝도 없이 이 임무를 수행해 왔다고 생각했다. "자네의 전생(前生)은 아마도 혹독한 법관이었거나, 피도 눈물도 없는 망나니였거나, 혹은 타인의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오직 '이치'와 '논리'만으로 수많은 이의 가슴에 피눈물을 흐르게 한 그런 자였을 게다." 혜각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무영의 영혼 자체를 꿰뚫었다. 마치 오래 전 잊었던 기억의 파편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법전 차가운 칼날 눈물 흘리는 여인
"그 '차가움'의 업보가 너무도 무거워, 자네는 환생조차 하지 못하고 이 이승도 저승도 아닌 경계에서 영원토록 타인의 '뜨거운 미련'을 지켜보며 자신의 그 차가움을 벌(罰)받고 있는 것일세. 따뜻함을 모르는 자가 가장 따뜻함이 간절한 곳에 묶여 있는 것. 이것이 염라의 법도이며 인과의 법도일세."
무영은 자신이 들고 있던 '홍억사' 붉은 쇠사슬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영혼을 묶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이 삼도천 나루터에 수천 년간 묶어두는 '업보의 쇠사슬'이었다. "아 아니다 이건 나의 임무 ' "자네는 수천 년 이 강둑에서 영혼들을 저 배에 태웠지." "그렇다." "단 한 번이라도 저 배가 어디로 가는지 저 강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자네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있는가?"
무영은 답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영혼을 '배달'했을 뿐이다. 뱃사공은 그를 태워주지 않았다. 혜각 스님이 손을 들어, 무영이 방금 걸어온 잿빛 '염로'를 가리켰다. 그 길은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사자여. 저 길을 보라. 저 울부짖는 영혼들이 걸어온 저 길이 바로 '네가 가야 할 길'이다." "!" 무영의 존재가 송두리째 흔들렸다. "자네의 그 얼음 같은 마음이 녹아내리는 날 자네의 그 차가운 가슴이 저 강물 속 영혼들의 슬픔에 단 한 번이라도 '함께' 울어주는 날 자네의 이 길고 긴 형벌도 끝이 날 것이다. 그리고 자네 또한 저 강을 건너야 할 한 낱 영혼이 되어 다시 저 길을 처음부터 걸어야 할 것이다. 미련에 울부짖으며 말이다. 이것이 자네의 '길'이며, 이것이 자네가 가야 할 '윤회'다. 자네는 집행자가 아니라, 가장 오래된 '미결수(未決囚)'였던 게야."
무영의 차가웠던 영혼이 무너져 내렸다. 그는 자신이 집행자가 아니라, 가장 무거운 형벌을 받고 있는 '죄수'였음을 깨달았다. 그는 처음으로 강물 속의 영혼들을 보며 '경멸'이 아닌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을 이 차가운 곳으로 수천 년간 기계처럼 끌고 온 자신의 손을 보며 지독한 '고통'과 '참회'를 느꼈다.
※ 깨달음과 새로운 시작
무영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떨고 있었다. 수천 년 만에 처음 느껴보는 '감정'의 폭풍우 속에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신이 쌓아 올린 '무영(無影)'이라는 존재의 성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 빈 자리에 들어온 것은 지독한 '두려움'과 '외로움'이었다. 혜각 스님은 그런 그를 조용히 내려다보며 자비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일은 끝났다. 이 가엾은 영혼에게 '길'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그가 받은 마지막 '소임'이었다.
"나는 이제 가야겠다. 자네에게 이 '길'을 알려주는 것이 내가 이 강을 건너기 전의 마지막 '업(業)'이었으니. 자네를 만나기 위해 내 수명을 스스로 조율하며 93년을 기다렸네."
혜각 스님은 뱃사공이 기다리는 나룻배로 향하지 않았다. 그는 울부짖는 영혼들이 가득한 검붉은 삼도천 강물을 향해 한 걸음 내디멋다. 무영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안 된다! 스님! 그 강은 미련의 강이라 발을 담그면 아무리 고승이라도 영원히 저 영혼들에게 붙잡혀 빠져 나오지 못 "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혜각 스님의 발이 강물에 닿는 순간, 그를 잡아채려 달려들던 검붉던 강물이 맑아지며 그의 발 아래에서 눈부신 '황금 연꽃'이 피어올랐다. 스님은 그 연꽃을 밟고 강 위로 우뚝 섰다. "자네의 길은 저 배를 타고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지만 나의 길은 이 물을 건너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일세."
혜각 스님은 한 걸음 한 걸음 강 위를 걸었다. 그가 걸을 때마다 그의 발밑에서 황금 연꽃이 피어났고, 그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울부짖던 강물의 소리가 잠잠해졌다. 강물 속에서 서로를 할퀴던 영혼들조차 그 자비로운 빛에 이끌려 잠시 고통을 잊고 그를 향해 합장했다. 스님의 몸에서는 점점 더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와, 잿빛 저승 세계를 환하게 비추었다. 그는 강 한가운데서 걸음을 멈추고, 강둑에 주저앉은 무영을 향해 마지막 자비로운 미소를 보냈다.
"사자여 아니, 이름 없는 영혼이여. 자네의 그 차가움이 녹아내리기 시작했으니 자네의 새로운 길도 곧 열릴 것일세. 부디 다음 생(生)에서는 타인의 고통에 울어줄 줄 아는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이 되시게나" 그 말을 끝으로, 혜각 스님의 몸은 한 줄기 거대한 빛기둥이 되어 하늘로 사라졌다. 완전한 깨달음, 열반(涅槃)에 든 것이다.
무영은 그 빛이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강은 다시 시끄러워졌지만, 그의 마음은 더 이상 차가운 얼음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이 이것이 ' 그것은 '눈물'이었다. 수천 수만 년 만에 처음 흘리는 뜨거운 눈물.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지독한 연민이었고, 수많은 영혼들에 대한 뼈아픈 참회였으며, 혜각 스님에 대한 감사였다.
그가 눈물을 흘리는 순간, 그의 손을 수천 년간 묶고 있던 '홍억사' 붉은 쇠사슬이 '쨍그랑' 맑은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업보'가 끝난 것이다. 그의 길고 길었던 임무가 끝났다. 무영은 더 이상 저승사자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이름 없는 한 '영혼'이 되었다.
말 없던 뱃사공이 그를 향해 손짓했다. '네가 건널 차례'라는 듯이. 무영은 자신이 수천 년간 영혼들을 태웠던 그 나룻배를 바라보았다. 두려웠다. 강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몰랐다. 이제 자신이 심판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설렘을 느꼈다. '새로운 시작'. 그는 배에 올라탔다. 배는 그를 태우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심판을 받고, 아마도 '인간'으로 다시 환생(還生)할 것이다. 차가운 심장이 아닌, 뜨거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그런 '사람'으로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얻은 것이다.
유튜브 엔딩멘트
삼도천에서 만난 고승의 지혜, 어떠셨나요? 『기문총화』에 실린 이 기이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업보와 윤회의 무거움을, 그리고 '공감'과 '자비'의 위대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가장 차가운 형벌은 어쩌면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밤, 차가운 저승사자마저 녹여버린 노스님의 따뜻한 지혜를 떠올리시며 평온한 잠자리에 드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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