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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 두 명이 서로 다른 명령을 받고 한 사람을 찾아온 날, 염라대왕의 혼란으로 벌어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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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여러분, 혹시 이런 생각 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사람이 죽으면 저승사자가 데리러 온다고 하지요. 그런데 만약, 저승사자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 동시에 찾아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것도 한 사람은 "데려오라"는 명을 받고, 다른 한 사람은 "아직 보내지 마라"는 명을 받고 왔다면 말입니다.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조선시대 충청도 땅에 살던 한 선비에게 실제로 벌어졌다는 기이한 일입니다. 저승의 명부에 이름이 올랐으나, 염라대왕 스스로도 판결을 내리지 못해 저승이 발칵 뒤집어진 그날의 이야기. 과연 그 선비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요? 끝까지 들으시면, 여러분도 저승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지실 겁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 1: 충청도 선비 박진사의 평화로운 일상과 갑작스러운 병환, 죽음의 문턱에 서다
충청도 공주 땅에 박진사라 불리는 선비가 살고 있었습니다. 본명은 박수현이요, 나이 쉰다섯에 아내 윤씨와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고, 비록 대단한 벼슬은 하지 못했으나 마을에서 글을 가르치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박진사의 하루는 늘 같았습니다. 새벽녘 닭이 울면 일어나 사랑방에서 붓을 들고, 아침 해가 뜨면 마을 서당으로 나가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쳤습니다. 점심때면 아내 윤씨가 싸 준 보리밥 도시락을 먹고, 해 질 녘이면 마을 어귀 느티나무 아래에서 동네 어르신들과 장기를 두었습니다. 별다를 것 없는, 그러나 그 자체로 평화로운 나날이었지요.
그런데 그해 가을, 이상한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 박진사가 잠자리에 들었는데 꿈에 낯선 길이 보였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긴 길이었는데, 그 길 끝에 커다란 문이 하나 서 있었습니다. 문 앞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서 있었는데, 얼굴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박진사가 누구냐고 물으려 하는데, 그 사람이 고개를 저으며 아직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놀라서 깨어 보니 온몸에 식은땀이 흥건했습니다.
이 꿈이 사흘 밤을 연달아 계속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같은 꿈이 반복되자 박진사의 마음속에 알 수 없는 불안이 싹텄습니다. 아내 윤씨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했습니다. 괜히 걱정만 끼칠 것 같아서였지요.
그러던 어느 날, 박진사가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꼈습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더니,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고, 소식을 들은 윤씨가 달려왔을 때 박진사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마을 의원이 급히 와서 진맥을 했으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맥이 미약하기 짝이 없고, 기운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형국이라 했습니다. 약을 써 보겠다고는 했으나, 의원의 표정은 어두웠습니다.
윤씨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앉아 밤을 새웠습니다. 스무 해 넘게 함께 살아온 남편이었습니다. 궂은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흉년이 들어 쌀이 떨어진 날에도, 이 사람과 함께라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윤씨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이튿날 새벽, 박진사의 숨이 점점 가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들 박성준이 아버지 곁에서 울고, 윤씨가 기도를 올렸으나, 모든 것이 소용없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첫닭이 울기 직전, 박진사의 숨이 완전히 멈추었습니다.
방 안에 곡소리가 가득 찼습니다. 윤씨는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통곡했고, 아들 성준은 어머니를 부축하면서도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조문을 했고, 모두가 좋은 사람이 너무 일찍 갔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아무도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박진사의 혼이 몸에서 빠져나와 천장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부여잡고 우는 아내와 아들이 보였습니다. 소리를 질러 보았으나 아무도 듣지 못했습니다. 손을 뻗어 보았으나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방 한쪽 구석에서 시커먼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그 안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두 명이었습니다. 검은 갓을 쓰고 검은 도포를 입은 두 사람이, 동시에 안개 속에서 걸어 나온 것이었습니다.
※ 2: 서로 다른 명령을 받은 두 저승사자가 동시에 박진사 앞에 나타나 갈등을 빚다
두 저승사자는 서로를 보자 동시에 멈춰 섰습니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같은 검은 갓에 같은 검은 도포를 입고 있었으나, 자세히 보면 둘은 분명 다른 존재였습니다.
한 사람은 키가 크고 마른 체구에 눈매가 날카로웠습니다. 입가에는 웃음기 하나 없었고, 손에는 쇠사슬을 들고 있었습니다. 이 저승사자를 편의상 흑사자라 부르겠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그보다 조금 작은 키에 둥근 얼굴이었고, 손에는 쇠사슬 대신 두루마리 하나를 들고 있었습니다. 이쪽은 백사자라 부르겠습니다.
흑사자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자신은 염라대왕의 명을 받아 박수현의 혼을 데려가러 왔노라고 했습니다. 명부에 적힌 대로, 이자의 수명이 다했으니 즉시 저승으로 인도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백사자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잠깐, 자신도 염라대왕의 명을 받고 왔는데, 자신이 받은 명은 정반대라고 했습니다. 박수현은 아직 데려갈 때가 아니니, 만약 다른 사자가 이미 와 있거든 막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흑사자의 눈이 가늘어졌습니다. 무슨 헛소리냐, 명부에 분명히 오늘 자시에 데려오라고 적혀 있다며 품에서 명첩을 꺼내 보였습니다. 거기에는 분명 박수현, 충청도 공주, 향년 오십오 세, 인도 날짜가 오늘로 적혀 있었습니다.
백사자도 자신의 두루마리를 펼쳤습니다. 거기에도 역시 박수현, 충청도 공주, 나이 오십오 세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래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이자는 선행과 악행의 저울이 평형을 이루었으니, 함부로 데려오지 말 것. 추가 심의가 필요함.
두 저승사자는 서로의 문서를 확인하고는 동시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승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명부라 함은 하늘이 정한 것이요, 염라대왕이 확인한 것인데, 같은 사람에 대해 정반대의 명령이 내려지다니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입니까.
박진사의 혼은 이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도 아직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마당에, 저승사자가 두 명이나 나타나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흑사자가 한 발짝 다가서며 말했습니다. 어쨌든 자신이 먼저 명을 받았으니 자신이 데려가겠다고 했습니다. 데려간 후에 문제가 있으면 염라대왕께서 알아서 처리하시겠지 하는 투였습니다.
백사자가 앞을 막아섰습니다. 안 된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받은 명은 분명히 막으라는 것이었으니, 이대로 데려갈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만약 잘못 데려갔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누가 지겠느냐며 따졌습니다.
두 저승사자 사이에 팽팽한 기운이 흘렀습니다. 이승에서는 아무도 느끼지 못했으나, 저승의 기운이 부딪히자 방 안의 촛불이 흔들리고, 윤씨가 갑자기 한기를 느끼며 몸을 움츠렸습니다.
한참 동안 대치하던 두 저승사자는 결국 타협점을 찾았습니다. 일단 박진사의 혼을 데리고 저승으로 가되, 직접 염라대왕 앞에서 판결을 받자는 것이었습니다. 흑사자는 못마땅했으나, 백사자가 이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 아니겠느냐며 설득했고, 결국 동의했습니다.
박진사의 혼에게 다가온 백사자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박진사, 놀라지 마시오. 사정이 좀 복잡하게 되었소. 일단 우리와 함께 가시면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오. 걱정 마시오, 그대의 운명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소.
박진사는 두려웠으나,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내와 아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윤씨가 자신의 차가워진 손을 잡고 오열하고 있었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박진사는 두 저승사자를 따라 저승길에 올랐습니다.
※ 3: 두 저승사자 사이에서 박진사가 저승길을 걸으며 이승의 기억을 되돌아보다
저승길은 박진사가 상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어둡고 무시무시한 길을 예상했으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갈대밭이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갈대가 은빛으로 일렁이는데, 그 사이로 좁은 길이 하나 나 있었습니다. 하늘은 해도 달도 없이 그저 붉은빛과 푸른빛이 뒤섞인 오묘한 색이었습니다.
흑사자가 앞장서고, 박진사가 가운데 서고, 백사자가 뒤를 따랐습니다. 걸으면서 박진사가 물었습니다. 이 길이 저승으로 가는 길이냐고 하니, 백사자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길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길인데, 사람마다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박진사가 왜 자신에게는 갈대밭이 보이느냐고 묻자, 백사자가 말했습니다. 갈대밭이 보인다는 것은 그대의 마음이 아직 이승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갈대는 바람에 흔들리지만 뿌리는 땅에 박혀 있지 않느냐고. 그대의 마음이 그러하다는 것이라 했습니다.
박진사는 그 말에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그랬습니다. 아내 윤씨가, 아들 성준이가, 마을 아이들이, 느티나무 아래 장기판이, 모든 것이 떠나기 싫었습니다.
한참을 걸으니 갈대밭이 끝나고 넓은 강이 나타났습니다. 강물은 맑았으나, 그 깊이를 알 수 없었습니다. 강가에는 낡은 나룻배 하나가 매여 있었고, 배 위에는 흰 수염이 길게 늘어진 노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노인이 고개를 들어 일행을 바라보더니,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저승사자 양반이 두 분씩이나 오시다니, 오늘 대단한 손님이 오셨구먼 하며 너털웃음을 지었습니다.
흑사자가 무뚝뚝하게 건네 달라고 하자, 노인은 급할 것 없다며 박진사를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더니 한마디 했습니다. 이 양반은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왜 벌써 오셨소, 라고 말입니다.
백사자가 조용히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허, 명부에 착오가 생기다니, 저승에서도 별일이 다 있구먼 하며 배에 오르라고 손짓했습니다.
강을 건너는 동안 박진사는 강물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맑은 물속에 무언가가 비쳤는데, 그것은 자신의 과거였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 품에서 천자문을 배우던 모습, 청년 시절 과거 시험에 낙방하고 울먹이던 날, 윤씨를 처음 만나 얼굴이 붉어지던 혼인날, 아들 성준이가 태어나 처음 울음을 터뜨리던 그 순간. 모든 기억이 강물 위에 펼쳐졌습니다.
박진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좋은 일도 있었고, 후회스러운 일도 있었습니다. 장사꾼에게 속아 빚을 지고 윤씨에게 화를 냈던 일, 형과 재산 다툼으로 의절했던 일, 서당에서 한 아이를 너무 호되게 꾸짖어 마음의 상처를 준 일. 그런 기억들도 강물 속에 고스란히 비쳤습니다.
백사자가 말했습니다. 이 강은 삼도천이라 하오. 이승에서의 모든 기억이 이 강물에 비치는 법이오. 숨기고 싶은 것도, 자랑하고 싶은 것도, 모두 그대로 드러나오. 저승에서는 거짓이 통하지 않소.
강을 다 건너자 거대한 성문이 나타났습니다. 검은 돌로 쌓은 높다란 성벽에, 문 위에는 명부전이라는 글씨가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성문 앞에는 갑옷을 입은 귀졸들이 도열해 있었는데, 두 저승사자를 보더니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성문을 지나자 넓은 마당이 나왔고, 그 너머에 거대한 전각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박진사는 이승의 어떤 궁궐보다도 위엄 있는 그 건물을 올려다보며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바로 여기가 염라대왕이 계시는 명부전, 저승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곳이었습니다.
※ 4: 명부에 기록된 모순을 발견한 염라대왕이 전대미문의 재판을 열다
명부전의 문이 열리자 박진사는 숨이 멎는 듯했습니다. 전각 안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넓었습니다. 높은 천장에는 수천 개의 등불이 매달려 있었는데, 그 하나하나가 이승에 살아 있는 사람들의 수명을 나타내는 것이라 했습니다. 어떤 등불은 환하게 타오르고, 어떤 것은 가물가물 꺼져 가고 있었습니다.
전각 정면 높은 단상 위에 염라대왕이 앉아 있었습니다. 박진사가 상상했던 무서운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수염이 길고 눈빛이 깊은, 위엄은 있으되 잔인해 보이지는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오늘따라 염라대왕의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고, 표정이 심히 곤란해 보였습니다.
염라대왕의 좌우에는 판관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고, 그 뒤로 수많은 명부 기록관들이 두루마리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두 저승사자가 박진사를 데리고 단상 앞에 무릎을 꿇자, 염라대왕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 한숨 한 번에 전각 안의 등불이 전부 한 번씩 흔들렸으니, 그 위엄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이 입을 열었습니다. 박수현이라 했느냐. 너를 두고 명부에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 솔직히 말하건대, 이 염라인 내가 이 자리에 앉은 이래로 이런 일은 처음이다.
그리고 판관에게 명했습니다. 명부를 가져오라고. 판관이 커다란 책 한 권을 가져와 단상 위에 펼쳤습니다. 명부에는 박수현의 이름 옆에 두 줄의 기록이 있었습니다.
첫째 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선행 삼백이십사 건. 부모에게 효도함, 아내를 공경함, 마을 아이들을 가르침, 굶주린 이웃에게 곡식을 나눔, 길에서 쓰러진 노인을 업어 나름, 빗물에 떠내려가는 아이를 구함 등등. 그 목록이 매우 길었습니다.
둘째 줄에도 기록이 있었습니다. 악행 삼백이십네 건. 형과 재산 다툼으로 의절함, 빚 독촉에 쫓기어 이웃에게 거짓말을 함, 서당에서 어린 아이를 과도하게 꾸짖어 그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줌, 장에서 물건을 사며 값을 속임,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아내에게 모진 말을 함 등등. 이 목록도 결코 짧지 않았습니다.
염라대왕이 말했습니다. 보거라. 선행 삼백이십사 건, 악행 삼백이십사 건. 숫자만 같은 것이 아니라, 저울에 달아 보아도 그 무게가 정확히 같다. 이것이 문제다.
본래 저승의 법도란 이러했습니다. 선행이 악행보다 무거우면 좋은 곳으로 보내고, 악행이 선행보다 무거우면 벌을 받게 하고, 그러고 나서 다시 이승으로 보내는 것이 순리였습니다. 그런데 선행과 악행이 완벽하게 같은 경우는 명부가 생긴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입니다.
판관이 나서서 말했습니다. 대왕님, 이런 경우에는 어찌 해야 합니까. 전례가 없으니 법조문에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염라대왕이 이마를 짚으며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저승으로 확정하자니 선행이 분명히 있고, 이승으로 돌려보내자니 악행도 분명히 있다. 어느 쪽이든 공정하지 못하다.
전각 안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명부 기록관들이 수군수군했고, 판관들도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승이 생긴 이래 최초의 사건 앞에서, 염라대왕조차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박진사는 무릎을 꿇은 채 온몸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낱낱이 드러나다니, 부끄러운 일도 있었고, 스스로 몰랐던 선행도 있었습니다. 과연 자신의 운명이 어찌 될 것인가, 가슴이 두근거려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 5: 박진사의 선행과 악행이 정확히 같은 무게로 밝혀지며 저승 전체가 술렁이다
염라대왕이 심사숙고한 끝에 전례 없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명부의 기록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으니, 박수현의 선행과 악행을 하나하나 직접 들여다보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저승에서도 극히 드문 일이었으니, 일종의 특별 재판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선행의 기록이 펼쳐졌습니다. 명부 기록관이 두루마리를 풀자, 전각 한가운데 커다란 연못같은 것이 나타났는데, 그 수면 위에 박진사의 과거가 생생하게 비쳤습니다.
첫 번째로 보인 것은 박진사가 젊었을 적 이야기였습니다. 흉년이 들어 마을 사람들이 굶주리던 해, 박진사는 자신의 집에 남은 쌀마저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바람에 자신의 가족도 죽 한 그릇으로 겨울을 났으나, 그 덕분에 마을의 노인 셋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서당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집이 가난하여 서당에 다닐 수 없는 아이가 있었는데, 박진사가 그 아이를 아무 대가 없이 받아들여 가르쳤습니다. 그 아이가 훗날 과거에 급제하여 어머니를 봉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작은 선행이 큰 열매를 맺은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비가 쏟아지던 날이었습니다. 냇물이 불어 다리가 끊어졌는데, 건너편에서 아이 하나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위험하다며 망설였으나, 박진사가 뛰어들어 그 아이를 건져 냈습니다. 그때 박진사도 물살에 휩쓸려 큰 부상을 입었으나, 아이의 목숨을 살렸습니다.
이 장면을 보던 전각 안의 판관들과 기록관들 사이에서 탄성이 나왔습니다. 분명 대단한 선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서 악행의 기록도 펼쳐졌습니다.
박진사가 형과 재산을 다투던 날이 비쳤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과 재산을 나누는데, 박진사가 자신의 몫이 적다며 크게 화를 내었습니다. 형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모진 말을 하였고, 그 길로 의절하여 죽을 때까지 형의 얼굴을 보지 않았습니다. 형은 그 일 이후로 가슴앓이를 하다가 몇 해 뒤에 세상을 떠났는데, 임종 직전까지 동생을 보고 싶다 했으나 끝내 만나지 못했습니다.
또한 서당에서 한 아이를 너무 호되게 꾸짖었던 일이 비쳤습니다. 그 아이는 글을 더디 배웠는데, 박진사가 답답한 마음에 모진 꾸지람을 한 것이었습니다. 여러 아이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그 아이는 서당을 그만두었고, 이후 글을 배울 기회를 다시는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내 윤씨에게 화를 내던 장면도 비쳤습니다. 빚에 쫓기던 시절, 박진사는 스트레스를 아내에게 풀었습니다. 윤씨는 아무 잘못 없이 남편의 노여움을 받아야 했고, 혼자 부엌에서 울었습니다.
모든 기록이 펼쳐지자 전각 안은 고요해졌습니다. 박진사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다시 보니,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마음이 산더미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특히 형에 대한 기억은 가슴을 후벼 팠습니다. 그때 한마디만 양보했더라면, 형이 그렇게 가슴 아파하며 죽지 않았을 것을.
염라대왕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보았느냐, 박수현. 그대의 인생이란 이러하다.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있고, 선행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악행이 뒤따랐다. 그래서 저울이 정확히 평형을 이룬 것이다.
박진사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대왕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소인이 살면서 많은 잘못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옵니다. 특히 형님에게 한 짓은 죽어서도 용서받지 못할 죄인 줄 아옵니다. 허나 소인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사옵니다. 이승에 두고 온 아내와 아들이, 소인 없이 어찌 살아가겠습니까.
그 말에 전각 안의 공기가 잠시 무거워졌습니다.
※ 6: 염라대왕이 전례 없는 제안을 하고, 박진사의 아내가 저승까지 울려 퍼지는 간절한 기도를 올리다
염라대왕이 한참을 침묵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박수현, 내가 저승을 다스린 이래 이런 경우는 처음이니, 나도 전례에 따를 수가 없다. 그러니 내가 특별한 제안을 하나 하겠다.
전각 안이 숨을 죽였습니다. 모든 판관과 기록관의 시선이 염라대왕에게 쏠렸습니다.
염라대왕이 말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너의 운명을 결정하되,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이승에 네가 남겨 둔 사람 중에, 진심으로 너를 위해 기도하는 자가 있다면, 그 기도의 힘을 저울에 올려 보겠다. 저승의 법도란 냉정한 것이나, 이승의 진심 어린 마음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니라.
박진사는 놀랐습니다. 이승의 기도가 저승의 저울에 영향을 미친다니,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안했습니다. 자신이 평소에 아내에게 잘해 준 것만은 아니었으니, 과연 윤씨가 자신을 위해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염라대왕이 손을 들어 허공에 원을 그리자, 전각 한가운데에 커다란 거울 같은 것이 나타났습니다. 그 거울에 이승의 모습이 비쳤습니다.
박진사의 집이었습니다. 사랑방에 박진사의 시신이 놓여 있고, 그 곁에 윤씨가 앉아 있었습니다. 윤씨는 밤새 잠을 자지 못한 듯 눈이 퉁퉁 부어 있었고,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처량하여, 전각 안의 귀졸들조차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윤씨가 남편의 차가운 손을 잡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당신이 가시면 나는 어찌 살라고 이러시오. 당신이 화를 낼 때도, 빚쟁이에게 쫓길 때도, 나는 당신 곁이라서 괜찮았소. 우리 성준이가 아직 장가도 못 갔는데, 아비 없이 어찌 살라고 이러시오.
윤씨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저승 전각 안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 목소리에는 꾸밈이 없었습니다. 이십 년 넘게 함께 살아온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진심의 울림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윤씨가 두 손을 모아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이시여, 땅이시여, 저승의 대왕이시여, 제 남편을 돌려주시옵소서. 이 사람이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사옵니다. 화도 잘 내고, 고집도 세고, 때로는 무심하기도 했사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옵니다. 굶주린 이웃에게 자기 밥을 덜어 주던 사람이옵니다.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러 뛰어들던 사람이옵니다. 매일 밤 서당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내일은 무엇을 가르칠까 고민하던 사람이옵니다.
윤씨의 기도는 계속되었습니다. 제가 이 사람 대신 갈 수만 있다면 기꺼이 가겠사옵니다. 아니, 그것도 안 되온다면, 제 남은 수명을 절반이라도 떼어 이 사람에게 줄 수만 있다면, 그리하겠사옵니다. 부디, 부디 이 사람을 돌려보내 주시옵소서.
저승 전각 안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윤씨의 기도가 울려 퍼지는 순간, 전각 한가운데 놓인 저울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선행 쪽 저울접시가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판관이 놀라서 외쳤습니다. 대왕님, 저울이 움직이고 있사옵니다.
염라대왕도 눈을 크게 떴습니다. 이승의 진심 어린 기도가 저울을 움직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승의 법도에 기도의 무게가 더해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거울에 또 다른 모습이 비쳤습니다. 박진사의 아들 성준이가 마을 뒷산에 올라가 하늘을 향해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를 돌려주십시오. 아들 놈이 아직 아버지께 효도도 제대로 못 했습니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그리고 마을 사람들도 보였습니다. 박진사에게 글을 배운 아이들이 서당 앞에 모여 두 손을 모으고 있었고, 박진사가 도와주었던 이웃 노인이 문 앞에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울이 더 크게 기울었습니다. 선행 쪽이 뚜렷하게 내려갔습니다.
염라대왕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 비슷한 것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7: 박진사가 이승으로 돌아오고, 저승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다
염라대왕이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전각 안의 모든 존재가 숨을 멈추었습니다. 저승의 지배자가 일어서는 것은 중대한 선언을 할 때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박수현, 들으라.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전각을 울렸습니다. 명부에 기록된 너의 선행과 악행은 본래 정확히 같은 무게였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 밝혀진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네가 이승에 남긴 사랑이다.
너의 아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고, 아들이 너를 위해 절하고, 마을 사람들이 너를 위해 손을 모았다. 이 기도들은 이승에서의 너의 흔적이다. 네가 비록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너의 선행이 이승에 뿌린 씨앗은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열매를 맺고 있다.
저승의 법도란 엄정한 것이나, 이승의 진심은 이 법도마저 움직일 수 있느니, 나 염라는 오늘 이런 판결을 내리노라.
박수현, 너를 이승으로 돌려보내겠다.
전각 안에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판관들이 놀라고, 기록관들이 술렁이고, 귀졸들이 웅성거렸습니다. 저승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염라대왕이 손을 들어 전각을 다시 조용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승에 돌아가거든, 네가 저지른 악행을 반드시 바로잡아라. 형과 의절한 일, 상처 준 아이에게 사과하지 못한 일, 아내에게 함부로 한 일, 모두 네 손으로 풀어야 한다. 그것이 네가 다시 받은 삶의 값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오늘 네가 저승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억하라. 사람의 일생이란 결국 저울 위에 오르는 것이다. 매 순간의 선택이 그 저울의 무게를 결정한다. 이것을 잊지 마라.
박진사는 엎드려 통곡하며 말했습니다. 대왕님의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사옵니다. 돌아가면 반드시 잘못을 바로잡고, 남은 삶을 올바르게 살겠사옵니다.
백사자가 미소를 지으며 박진사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박진사, 축하하오. 돌아가시오. 흑사자도 무뚝뚝하면서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습니다. 운이 좋은 사람이오. 그 운을 헛되이 쓰지 마시오.
박진사가 명부전을 나서자, 왔던 길이 다시 펼쳐졌습니다. 그런데 올 때와는 달리 갈대밭이 아닌 꽃밭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온갖 빛깔의 꽃이 만개한 길이었습니다. 백사자가 말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는 마음이 편안한 풍경이 보이는 법이라고.
삼도천을 다시 건너고, 꽃길을 걸어가니, 저 멀리 빛이 보였습니다. 눈이 부실 만큼 환한 빛이었습니다. 그 빛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들어가자, 갑자기 온몸이 무거워지면서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떴습니다.
사랑방 천장이 보였습니다. 자신의 몸이 느껴졌습니다. 차가웠던 손에 온기가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곁에서 윤씨의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 여보! 눈을 떴소! 여보!
박진사가 힘겹게 입을 열었습니다. 윤씨, 내가 돌아왔소.
윤씨가 남편을 부여안고 대성통곡했습니다. 아들 성준이가 뛰어 들어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울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기적이라며 모여들었습니다.
그 뒤의 이야기입니다. 박진사는 건강을 회복한 후 가장 먼저 형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무덤 앞에 엎드려 울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형님, 이 못난 아우를 용서하시오. 평생 원망하셨을 형님께 이제야 머리를 숙이니, 너무 늦어 죄송하오. 눈물이 마를 때까지 형의 무덤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옛 서당에서 상처를 주었던 제자를 수소문하여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이미 장성한 그 제자는 처음에는 놀랐으나, 박진사의 진심 어린 사과에 눈물을 흘리며 옛 원망을 내려놓았습니다.
아내 윤씨에게는 매일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당신이 있어 내가 돌아올 수 있었소. 이제부터는 내가 당신에게 진 빚을 갚으며 살겠소. 윤씨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빚이 다 무엇이오, 당신이 살아 돌아왔으니 그것만으로 되었소.
박진사는 그 뒤로 마을에서 더욱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웃을 돕고, 선한 일에 힘썼습니다. 그리고 간혹 밤이 깊어지면 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잣말을 했습니다. 매 순간이 저울 위에 오르는 것이지. 오늘 하루도 선한 쪽으로 기울었기를.
박진사는 그로부터 이십 년을 더 살았다고 합니다. 일흔다섯 나이에 편안히 눈을 감았는데, 이번에는 저승사자가 한 명만 왔고, 그 저승사자가 웃으며 말했다 합니다. 박진사, 이번에는 아무 문제없소. 명부에 선행이 크게 앞서 있으니, 좋은 곳으로 가시게 되었소. 축하하오.
이것이 조선시대 충청도 공주 땅에 전해 내려오는 박진사의 이야기입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이야기 어떠셨습니까? 박진사처럼 우리의 인생도 매일매일의 작은 선택이 보이지 않는 저울 위에 오르는 것이겠지요. 여러분의 오늘 하루도 분명 선한 쪽으로 기울었을 거라 믿습니다.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한 번씩만 눌러 주시고, 알림 설정까지 해 주시면 다음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더욱 재미있고 감동적인 조선시대 야담 이야기로 곧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끝까지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