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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비를 끌어들인 기생의 원혼 (출처 - 패관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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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250자 내외)

    죽어서도 끝나지 않은 뜨거운 사랑, 하지만 그 사랑은 당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독(毒)이었습니다. 매일 밤 찾아오는 아름다운 여인, 그녀의 정체는 선비의 정기를 빨아먹는 기생 귀신이었는데... 패관잡기 속 가장 에로틱하고 치명적인 괴담, 당신의 이성을 뒤흔들 이야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과거 시험을 준비하던 선비 박생은 기생 홍매와 깊은 사랑에 빠지지만, 현실의 벽 앞에 잠시 이별한다. 그러나 기다림에 지친 홍매는 상사병으로 죽어 원귀가 되고, 밤마다 박생을 찾아와 사랑을 나누기 시작한다. 선비의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가는데... 죽음마저 갈라놓지 못한 지독한 사랑의 끝을 야담도감이 들려드립니다.

    ※ 원인 모를 병으로 시들어가는 선비 박생

    장래가 총망 받던 젊은 선비 박생의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그 해 늦가을부터였습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강건한 기상과 호수처럼 맑았던 총명한 눈빛으로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그였지만, 지금의 모습은 잘 마른 낙엽처럼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 위태로웠습니다. 뺨은 움푹 패여 광대뼈의 윤곽이 앙상하게 드러났고, 두 눈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처럼 퀭하게 빛을 잃었으며, 방 안에 화롯불을 피워도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를 느끼는 듯 늘 두꺼운 솜옷을 껴입고 있었습니다. 집안에서는 그의 병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습니다. 값비싼 녹용과 산삼을 달인 탕약이 매일같이 올라왔지만, 그의 몸은 마치 밑 빠진 독처럼 그 모든 영양분을 어딘가로 흘려보내는 듯했습니다. 용하다는 의원들이 찾아와 맥을 짚어보고는 하나같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습니다. "이상하옵니다. 맥은 지극히 평온한데, 어찌하여 이리 몸이 쇠하시는 것인지… 이는 의술로 다스릴 병이 아니옵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정기를 빨리듯, 몸 안의 양기가 모조리 고갈되고 있사옵니다." 밤이 되면 그의 증세는 더욱 기이하고 심각해졌습니다. 식은땀을 비 오듯 쏟아내며 알 수 없는 악몽에 시달렸고, 잠결에는 애처롭게 "홍매… 홍매…" 하며 알 수 없는 여인의 이름을 부르며 흐느끼기도 했습니다. 어떨 때는 텅 빈 방 안 허공을 향해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듯 다정하게 웃다가, 이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집안사람들은 그가 단순히 병든 것이 아니라, 무서운 귀신에 홀렸다고 확신하며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불 속에서 홀로 죽음의 문턱을 서성이던 어느 날 밤, 뜨거운 열에 들떠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박생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가고 있는 그 치명적인 시작을 떠올렸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선명했습니다. 마치 어제 일처럼, 아니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처럼. 과거 시험을 앞두고, 속세의 번잡함을 피해 깊은 산속 고즈넉한 사찰에 머물며 학문에 매진하던 시절. 혈기 왕성한 젊은 선비에게 끝없는 독서는 고역이었고, 끓어오르는 욕망을 억누르는 것은 혹독한 수행이나 다름없었죠.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식히려 무작정 산을 내려온 그는, 낯선 고을의 저잣거리에서 우연히 붉은 등불이 새어 나오는 작은 기루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저 찬 술 한 잔으로 타는 듯한 갈증과 마음을 달래려 했을 뿐인데,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운명을 통째로 뒤흔들고 종국에는 파멸로 이끌 여인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여인의 이름은 홍매. 이름처럼 붉고 요염한 매화 같은 기생이었습니다. 시끌벅적한 기루 안, 술과 웃음이 난무하는 혼탁한 공간 속에서도 그녀는 한 떨기 고고한 꽃처럼 단연 눈에 띄었습니다. 가야금을 타는 희고 긴 손가락은 흐르는 물처럼 유려했고, 애절한 가락을 뽑아내는 붉고 도톰한 입술은 잘 익은 앵두가 터지기 직전처럼 관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박생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은 것은 단순히 그녀의 요염한 아름다움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 속에는, 천한 기생의 삶에 대한 체념과 함께, 아직 꺼지지 않은 지성의 불꽃과 꺾이지 않은 자존심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술잔을 사이에 두고 시를 논했습니다. 박생이 한 구절을 읊으면, 홍매는 즉흥적으로 가락을 붙여 노래를 불렀고, 그 조화는 마치 오랜 세월을 함께한 지음(知音)을 만난 듯 완벽했습니다. 밤이 깊어지고, 다른 손님들이 모두 떠나간 기루. 홍매는 말없이 일어나 박생의 손을 이끌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습니다. 은은한 난초 향이 감도는 방 안, 두 사람 사이에는 더 이상 언어가 필요 없었습니다. 달빛이 창호지를 은은하게 비추는 가운데, 홍매는 수줍으면서도 대담하게 박생의 굳은 어깨를 감싸며 그의 옷고름을 풀었습니다. 박생 또한 억눌렀던 모든 욕망을 터뜨리며 그녀의 가는 허리를 휘감아 품에 안았죠. 비단 치마가 스르륵 소리를 내며 벗겨지고, 봉긋한 젖가슴과 잘록한 허리의 관능적인 곡선이 촛불 아래 드러났을 때, 박생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습니다. 홍매의 뜨거운 숨결이 그의 귓가를 간지럽혔고, 꿀을 바른 듯 부드러운 살결이 그의 몸에 닿는 순간, 그의 이성은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날 밤의 정사는 격렬하고도 뜨거웠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육체의 결합이 아니었습니다. 학문에 지쳐 고독했던 선비의 영혼과, 뭇 사내들에게 웃음을 팔아야 하는 기생의 서러운 영혼이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탐하는, 하나의 의식이었습니다. 박생은 자신이 그녀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까지 온전히 소유했다고 믿었습니다. 그 치명적인 착각이,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달콤한 저주의 시작이었음을 까맣게 모른 채 말입니다.

    ※ 기생 홍매와 세상의 눈을 피해 밀회

    하룻밤의 뜨거운 인연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되어 서로의 삶을 잠식해 들어갔습니다. 박생은 학문을 위해 찾았던 사찰을, 이제는 홍매를 만나기 위한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낮에는 먼지가 쌓여가는 책을 형식적으로 펼쳐 놓았지만, 그의 정신은 온통 밤에 만날 홍매 생각뿐이었습니다. 그의 머릿속은 더 이상 성현의 말씀이 아닌, 홍매의 교태 섞인 웃음소리와 그녀의 살 내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해가 저물기 무섭게 그는 산을 내려와 그녀에게 달려갔고, 홍매 또한 다른 모든 손님을 마다한 채 오직 박생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녀의 거절에 앙심을 품은 손님들의 행패와 기루 행수의 핍박이 있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 박생은 단순한 손님이 아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싶은 유일한 사내였기 때문입니다. 기루의 작은 방은 두 사람만의 세상이자, 현실의 모든 법도와 신분을 초월하는 신성한 공간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두 사람은 체면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모두 잊은 채 오직 서로에게만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박생은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워 시를 읊어주었고, 홍매는 그런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어떨 때는 낡아서 해진 그의 옷깃을 정성스럽게 꿰매주기도 했는데, 그 모습은 영락없는 지어미의 모습이라 박생의 마음을 더욱 애틋하게 만들었습니다. 때로는 홍매가 먼저 도발적인 유혹의 손길을 뻗어왔습니다. 그녀는 붓을 들어 박생의 맨 가슴에 장난스럽게 난을 치는 척하다가, 이내 뜨거운 혀끝으로 그 먹의 흔적을 지워나갔고, 술에 취한 척 그의 품에 안겨와 "도련님의 몸은 먹보다도 향기롭습니다"라며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습니다. 그들의 정사는 단순한 행위를 넘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불안한 현실을 잊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의식이 되었습니다. 서로의 몸 구석구석을 탐하며, 어디를 어루만져야 상대가 숨을 헐떡이는지, 어떤 말을 속삭여야 황홀경에 빠지는지를 본능적으로 알아챘습니다. "홍매야…", "도련님…"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절정의 순간을 맞이할 때, 두 사람은 세상에 오직 우리 둘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완벽한 합일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현실의 차가운 벽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박생에게는 그를 기다리는 본가의 가족과,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명문가의 정혼자가 있었습니다. 기생과의 사랑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그의 앞날에 오점만을 남길 한때의 불장난일 뿐이었죠. 홍매 또한 이를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사랑은 더욱 절박하고 집요해졌습니다. 그녀는 박생의 몸에 자신의 흔적을 새기듯 집요하게 입을 맞추었고, 정사가 끝난 후에도 뱀처럼 그의 몸을 휘감고 품을 파고들며 놓아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도련님, 부디 저를 잊지 마십시오. 이 밤의 약속을, 도련님의 살에 닿았던 저의 체온을, 제발 잊으시면 아니 되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사랑과 함께, 언젠가는 버려질 것이라는 깊은 불안감이 독처럼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박생은 그런 그녀를 안심시키려 굳은 약속을 하곤 했습니다. 반드시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오른 뒤, 그녀를 첩으로라도 들여 평생을 곁에 두고 함께하겠노라고. 그 약속은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지만, 홍매의 영혼에 뿌리내린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녀는 이 사랑이 언젠가 끝날 유한한 것임을, 박생은 결국 자신을 떠나 그의 세상으로 돌아갈 사람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필사적으로 그에게 매달렸고, 그를 자신의 일부로 만들려는 듯 격렬하게 그를 원했습니다. 위태로운 현실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정상적인 애정이라기보다 서로에게 중독되어 가는, 광기에 가까운 치명적인 열병과도 같았습니다.

    ※ 기다림에 지친 홍매는 상사병으로 죽어가며

    영원할 것만 같았던 금지된 열애의 시간에도 끝은 찾아왔습니다. 한양에서 과거 시험일이 공표되고, 박생의 본가에서도 "즉시 돌아와 혼례를 준비하라"는 엄한 서신이 당도한 것입니다. 더 이상은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박생은 천근만근 무거운 마음으로 홍매에게 기약 없는 이별을 고해야 했습니다. 그는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맹세를 수없이 반복했지만, 그 말을 듣는 홍매의 얼굴은 이미 살아있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핏기가 완전히 가시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녀는 부서질 듯 가냘픈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기다릴 것입니다... 도련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이곳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기다릴 것입니다." 그녀의 대답은 담담했지만, 그 속에는 차라리 저주에 가까운 무서운 집념이 서려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그날의 정사는 그 어느 때보다 애틋하고 처절했습니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서로의 살을 파고들 듯 격렬하게 상대를 안았고,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밤이 새도록 서로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행위라기보다, 곧 닥쳐올 이별의 고통과 미래의 절망을 잠시라도 잊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습니다. 동이 트고, 박생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끼던 벼루를 이별의 징표로 건네며 말했습니다. "이 벼루에 먹을 갈며 시를 짓다 보면, 내 금방 돌아올 것이오." 홍매는 피눈물을 삼키며 그것을 받아들고, 그의 옷자락을 놓아주었습니다. 박생이 떠나간 후, 홍매의 삶은 완벽하게 멈춰버렸습니다. 그녀는 정말로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다른 손님은 물론, 동료 기생들과의 교류마저 끊은 채, 매일같이 박생이 떠나간 길목만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곧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으로 버텼습니다. 하지만 한 달이 가고,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낙엽 한 장, 편지 한 통 도착하지 않자, 그녀의 희망은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를 가엾게 여긴 기루 행수가 억지로 부유한 상인의 술자리에 그녀를 밀어 넣으려 했지만, 그녀는 "내 몸은 박 도련님의 것이니, 차라리 죽여달라"며 은장도로 자신의 목을 겨누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기루에서도 쫓겨난 그녀는, 박생과 함께했던 추억이 깃든 작은 초가에 홀로 기거하며 그를 기다렸습니다. 기다림은 그녀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마저 갉아먹는 무서운 병이 되었습니다. 바로 상사병(相思病)이었습니다. 그녀는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못했고, 잠을 자도 그의 꿈만 꾸다가 울며 깨어나기 일쑤였습니다. 탐스럽던 두 뺨은 깡마르고, 앵두 같던 입술은 하얗게 말라붙어 갈라졌습니다. 그녀의 머릿속은 오직 박생에 대한 그리움과, 혹시나 그가 자신을 잊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원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녀는 박생이 남기고 간 차가운 벼루를 끌어안고 밤새도록 그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도련님... 어찌 이리 더디 오시나이까... 저를 잊으셨나이까... 당신의 세상으로 돌아가 저를 까맣게 잊으셨나이까..."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움은 광기 어린 집착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녀는 이제 박생이 돌아와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기대조차 버렸습니다. 그녀의 유일한 소망은, 이유를 막론하고 다시 한번 그를 만나는 것, 그의 품에 안기는 것, 그것뿐이었습니다. 살아서 안 된다면, 죽어서라도. 마침내 그녀의 병이 위중해져 자리에 눕게 된 어느 날, 그녀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거든, 박 도련님이 오시는 길목에 묻어다오. 살아서 그분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면, 내 혼이라도 그분의 그림자를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홍매는 박생이 준 벼루를 가슴에 꼭 품은 채, 그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과 집착을 거두지 못하고 고요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죽음으로써, 그녀는 신분과 거리, 삶과 죽음의 제약을 모두 벗어나 오직 박생만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끔찍하고도 자유로운 존재가 된 것이었습니다.

    ※ 원귀가 된 홍매가 밤마다 박생을 찾아와

    본가로 돌아온 박생은 며칠 동안 깊은 상실감과 지독한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홍매의 애처로운 얼굴과 마지막 밤의 뜨거운 열기가 그의 모든 감각에 낙인처럼 새겨져, 밤마다 잠을 이룰 수 없었죠. 하지만 시간은 무심한 약이었고, 명문가의 정혼녀와 혼담이 오가고 과거 시험 준비에 다시 몰두하게 되면서, 홍매의 기억은 봉인해야 할 과거, 혹은 한때의 치기 어린 불장난으로 스스로 치부하려 애썼습니다. 그는 이것이 현실이고,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 되뇌며 그녀를 잊으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고된 공부에 지쳐 잠이 든 그의 꿈속에 홍매가 나타났습니다. 꿈속의 그녀는 생전의 모습 그대로, 아니 오히려 현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완전한 행복에 젖은 얼굴로 그의 이름을 다정히 불렀습니다. 두 사람은 꿈속에서 그토록 그리워했던 해후를 나누었습니다. 그녀의 부드럽고 따스했던 살결, 달콤한 숨결, 모든 것이 너무나도 생생하여 꿈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죠. 그가 홍매를 끌어안고 "다시는 너를 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순간, 그는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온몸은 식은땀으로 축축했고, 심장은 가슴을 뚫고 나올 듯 미친 듯이 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방 안에는 분명 그녀의 체향이었던 깊고 은은한 난초 향이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박생은 밤늦도록 책을 읽다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자신의 뺨을 비단결처럼 부드럽게 쓰다듬는 감촉에 스르르 눈을 떴습니다. 그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은, 꿈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홍매였습니다. 박생은 헛것을 보는 것이라 생각하여 눈을 비비고 제 뺨을 때려보았지만, 그녀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얀 소복 차림의 그녀는 달빛을 받아 창백하게 빛났지만, 분명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도련님... 제가 보고 싶지 않으셨습니까? 도련님을 너무나도 연모한 나머지, 저의 넋이 육신을 빠져나와 이곳까지 날아왔나 봅니다." 그녀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교묘하게 감춘 채, 마치 먼 길을 달려온 지고지순한 연인처럼 행동했습니다. 이성과 현실감이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머릿속에서 비명을 질렀지만, 그녀를 다시 만났다는 압도적인 기쁨과 억눌렀던 욕망이 모든 의심을 집어삼켰습니다. 박생은 이성을 놓고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그동안의 그리움과 갈증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서로의 몸을 탐했습니다. 그녀의 손길은 더욱 대담해졌고, 그녀의 입맞춤은 더욱 집요해졌습니다. 그녀는 마치 그의 몸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듯, 그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녹여버릴 듯이 그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아주 근원적인 것이 이상했습니다. 불덩이처럼 뜨거웠던 그녀의 몸은 어째서인지 깊은 강물 속에서 막 건져낸 옥처럼 서늘했고, 그녀의 몸에서는 늘 풍기던 난초 향과 함께, 비 온 뒤의 축축한 흙냄새와 서늘한 밤이슬 냄새가 섞여 났습니다. 정사가 끝난 뒤, 박생의 품에 안겨 잠든 그녀의 가슴에 귀를 대어보아도,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 대신 기이한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박생은 그 모든 섬뜩한 징후들을 애써 외면했습니다. 그는 그저 그녀가 돌아왔다는 기적 같은 사실에, 이 금지되고 위험한 쾌락을 다시 누릴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내맡기고 중독되어 갈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후로 매일 밤 찾아왔습니다. 언제나 깊은 밤, 모든 이가 잠든 시간에 홀연히 나타났다가, 첫닭이 울기 전에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두 사람의 위험한 밀회는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은 자가 산 자의 정기를 양식 삼아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 산 자는 그 달콤한 독에 취해 서서히 죽어가는, 끔찍하고도 관능적인 약탈의 시작이었습니다.

    ※ 박생은 자신의 병이 홍매 때문임을 알게 되고

    죽은 홍매와의 밤이 계속될수록, 박생의 몸은 눈에 띄게 쇠락해져 갔습니다. 낮에는 늘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았고, 안색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졌으며, 한때는 단숨에 외웠던 책의 글귀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밤마다 치르는 격렬하고도 기이한 정사는 그의 양기를 송두리째 뽑아냈고, 그는 마치 살아있는 미라처럼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습니다. 그의 이런 급격하고도 기이한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깊은 의심을 품은 것은, 그와 어릴 적부터 막역한 사이였던 친구 이 선비였습니다. 이 선비는 박생을 문병하러 왔다가, 그의 목덜미와 가슴에 남아있는 기이한 흔적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여인의 입술 자국 같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푸른빛이 도는 것이 마치 시체의 반점처럼 섬뜩했습니다. 또한, 박생의 방에서는 계절과 상관없이 늘 뼈가 시릴 정도의 음습한 냉기와 함께, 향기롭지만 어딘가 부패한 듯한 기묘한 향내가 풍겼습니다. "박생, 자네 솔직히 말해보게. 혹, 밤마다 몰래 만나는 여인이라도 있는 겐가? 자네의 몰골이 말이 아닐세. 마치 오랜 병을 앓은 사람도 아니고, 귀물(鬼物)에게 정기를 빨린 사람 같단 말일세." 이 선비의 날카로운 추궁에 박생은 당황하며 역정을 냈지만, 그의 눈빛은 겁에 질린 사슴처럼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의심을 거두지 않은 이 선비는 그날 밤, 몰래 박생의 집 담을 넘어 그의 방을 엿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깊은 밤이 되자, 박생의 방 창호지에 그림자 두 개가 어른거렸습니다. 하나는 앙상한 박생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몸의 곡선이 요염하기 그지없는 여인의 것이었습니다. 두 그림자는 뱀처럼 서로 격렬하게 얽혔고, 방 안에서는 남자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교태 롭고 서늘한 여인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이 선비는 침을 꿀꺽 삼키며, 미리 뚫어놓았던 창호지의 작은 구멍으로 눈을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그 구멍을 통해 방 안을 들여다본 순간, 그는 비명을 지를 뻔한 것을 간신히 틀어막았습니다. 박생의 몸 위에서 그를 농락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분명 절세미인이었지만, 그녀의 발이 땅에 닿아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녀는 마치 연기처럼 허공에 살짝 떠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더욱더 끔찍한 것은, 방 안에 놓인 구리 거울에 비친 모습이었습니다. 거울 속에는 앙상한 박생 혼자 허공을 끌어안고 몸부림치고 있을 뿐, 여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비치지 않았습니다. 틀림없는 귀신, 그것도 보통이 아닌 원귀였습니다. 다음 날, 이 선비는 박생에게 자신이 본 것을 모두 이야기하며 절규했습니다. "자네는 지금 귀신에게 홀린 걸세! 그 여인은 사람이 아닐세. 그러다간 정말 목숨을 잃고 말 걸세! 제발 정신 차리게!" 하지만 박생은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홍매라는 달콤한 독에 뇌수까지 깊이 중독되어, 끔찍한 현실을 직시할 용기를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자네가 헛것을 본 것이겠지! 홍매는 나를 사랑할 뿐이네. 그녀가 귀신일 리가 없어! 자네는 우리의 사랑을 시기하는 것일 뿐이야!" 절망에 빠진 이 선비는 결국 용하기로 소문난 도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도사는 이야기를 듣고는 붉은 경면주사로 괴이한 글씨를 빼곡하게 채운 부적 한 장을 내주며 말했습니다. "이것은 귀신의 허상을 부수고 그 본모습을 드러나게 하는 현형부(顯形符)일세. 그 여인이 나타났을 때, 몰래 방 안으로 던져 넣게. 다만, 그 귀신은 사랑에 대한 한이 뼈에 사무친 원귀라, 웬만한 도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으니, 자네 또한 목숨을 조심해야 할 걸세." 부적을 손에 쥔 이 선비는 그날 밤, 중독된 친구를 구하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다시 박생의 집을 찾았습니다.

    ※ 박생은 홍매의 광기 어린 사랑을 거부하지 못하고

    그날 밤도 홍매는 어김없이 박생의 방에 나타났습니다. 그녀는 평소보다 더욱 교태를 부리며, 더욱 절박하게 박생을 유혹했습니다. 아마도 자신에게 닥쳐올 위험과, 박생의 마음속에 싹튼 작은 의심의 씨앗을 본능적으로 감지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도련님, 오늘 밤은 유난히 도련님이 사모스럽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잊고, 저와 하나가 되어 주십시오.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녀는 박생의 옷을 벗기고, 이전보다 더욱 뜨겁고 집요하게 그의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었습니다. 마치 그의 영혼까지 삼켜버리려는 듯, 그를 소유하려 했습니다. 박생은 친구의 경고를 떠올리며 잠시 망설였지만, 홍매의 관능적이고도 애처로운 유혹 앞에서 그의 마지막 남은 이성은 또다시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는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히려 더욱 필사적으로 그녀를 끌어안았습니다. 두 사람의 정사가 절정으로 치닫고, 박생이 홍매의 서늘한 품에서 쾌락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정신을 놓고 있던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밖에서 숨죽이고 있던 이 선비가 문틈으로 도사의 부적을 휙 던져 넣었습니다. 붉은 부적이 방 안으로 날아 들어와 홍매의 몸에 닿는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굉음과 함께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으아아아악!" 비단결 같던 홍매의 피부가 갑자기 썩은 시체처럼 검게 변하며 부스러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웠던 얼굴은 눈, 코, 입이 뭉개진 해골의 모습으로 변했고, 탐스럽던 머리카락은 한 줌의 먼지가 되어 흩날렸습니다. 방 안을 가득 채웠던 난초 향은 순식간에 코를 마비시키는 역겨운 시체 썩는 냄새로 변했습니다. 박생의 눈앞에 서 있는 것은 더 이상 아름다운 연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지독한 집착과 광기만이 남아, 사랑했던 남자의 정기를 빨아먹는 흉측한 몰골의 악귀였습니다. 본모습이 드러난 홍매는 미친 듯이 웃다가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리는 원망이라기보다, 모든 것을 빼앗긴 존재의 처절한 비명이었습니다. "어찌하여! 어찌하여 저에게 이런 짓을 하십니까! 저는 그저 도련님과 함께 있고 싶었을 뿐인데! 당신의 세상이 나를 버렸기에, 나만의 세상을 만들려 했을 뿐인데!" 그녀는 더 이상 박생을 유혹하지 않았습니다. 날카로운 뼈마디만 남은 손으로 그의 목을 조르며 함께 죽자고 발악했습니다. "이리될 바에야, 차라리 저와 함께 가시지요. 저승의 가장 깊은 곳에서나마 영원히 함께하는 겁니다!" 밖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이 선비가 문을 부수고 뛰어 들어와 "이 요망한 것아, 내 친구를 놓아주어라!"라며 허리에 찬 칼을 휘둘렀지만, 홍매의 원기는 칼날마저 튕겨냈습니다. 모든 것이 끝장이라고 생각한 순간, 멀리서 첫닭이 우는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새벽이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닭 울음소리에 홍매의 기세가 잠시 주춤한 틈을 타, 이 선비는 박생을 끌고 방 밖으로 도망치려 했습니다. 하지만 박생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공포에 질려있으면서도, 차마 홍매에게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흉측하게 변해버린 홍매의, 텅 빈 눈구멍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홍매야… 이리될 줄 알면서도… 나는 너를 거부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너와 함께 가는 것이 내 운명일지도 모르겠구나…" 그 순간, 홍매는 울부짖음을 멈추고 박생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고백에 만족한 듯,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그의 입술에 마지막 입맞춤을 했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남은 모든 원기를 짜내어 그의 마지막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죽음의 입맞춤이었습니다. 박생의 몸이 가볍게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내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축 늘어졌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기묘한 안도감과 희미한 미소가 걸려있었습니다. 그의 영혼을 온전히 거두어낸 홍매의 원혼은, 떠오르는 아침 햇살 속에서 마지막 비명과 함께 한 줌의 검은 재로 변해 사라졌습니다. 이 선비의 품에 남은 것은, 차갑게 식어버린 친구의, 바싹 마른 시신뿐이었습니다.

    유튜브 엔딩 멘트

    죽음을 넘어선 사랑, 과연 아름답기만 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저 살아남은 자를 파멸로 이끄는 지독한 독이 될 뿐일까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지독한 집착과 광기로 변질되었을 때, 그 끝이 얼마나 끔찍한 비극으로 치닫게 되는지, 오늘 패관잡기 속 이야기를 통해 함께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댓글로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오늘 이야기가 흥미로우셨다면, 다음 '야담도감'에서는 한 마을 전체를 공포에 떨게 만든 작은 원혼, '용재총화'에 기록된 '아기 귀신이 들린 마을의 저주'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더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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