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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영혼들이 일으킨 사건 (출처: 용재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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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250자 내외)
밤마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아녀자들은 까닭 없이 시름시름 앓아눕는 기이한 마을. 마을의 우물을 둘러싼 섬뜩한 비밀은 무엇일까? 태어나지 못한 아기 영혼들의 서러운 저주가 마을 전체를 뒤덮는다. 과연 마을 사람들은 이 원혼들의 한을 풀고 예전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전라도 어느 자그마한 고을, 평화롭기만 하던 마을에 밤마다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오며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아이를 밴 아낙은 유산을 하고, 젊은 아녀자들은 원인 모를 병으로 쓰러집니다. 마을의 오랜 우물에서 시작된 이 저주는, 과거 억울하게 죽어간 아기 영혼들의 한 맺힌 울음소리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떨지만, 한 지혜로운 노인의 인도로 원혼을 달래기 위한 마지막 방법을 시도하는데... 과연 그들의 노력은 서러운 영혼들에게 닿을 수 있을까요?
※ 평화로운 마을에 깃든 불길한 그림자
때는 조선 성종 임금이 어진 다스림을 펼치던 시절이었습니다. 남도 땅 기름진 들녘 한가운데, '아랫못골'이라 불리는 작고 아담한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지요. 마을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을 어귀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는 사시사철 맑은 물이 샘솟는 커다란 공동 우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물맛이 어찌나 달고 시원한지, 한여름 더위에 지친 나그네가 한 바가지 들이켜면 속이 뻥 뚫리고 온몸에 생기가 돌 정도였습니다. 하여 사람들은 이 우물을 마을의 생명줄이자 복을 가져다주는 샘이라 여기며 소중히 여겼습니다.
아낙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 우물가에 모여 물동이를 이고 오가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했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의 보드라운 배냇저고리를 헹구며 아이의 건강을 빌고, 고된 시집살이의 설움과 농사일의 고단함을 구성진 노랫가락에 실어 풀어내기도 하는, 그야말로 마을의 사랑방과도 같은 곳이었지요. 남자들은 기름진 들녘에서 땀 흘려 일하는 보람을 알고, 아이들은 우물가 주변 너른 마당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고 뛰놀았습니다. 실로 가난할지언정 마음만은 풍요로운, 태평성대의 한 자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평화로운 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요. 이토록 평화롭기만 하던 아랫못골에, 눈에 보이지 않는 스산하고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말입니다. 그 시작은 아주 미미하고 사소한 것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깊은 잠에 빠져드는 한밤중, 유독 달빛이 서리처럼 하얗게 우물을 비추는 밤이면, 어디에선가 갓난아기가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그 소리를 들은 것은 야경을 돌던 마을 장정이었습니다. "응애, 응애..." 마치 어미를 찾는 듯 애처롭게 우는 소리에, 그는 어느 집 아이가 배가 고파 보채는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며칠 뒤, 밤늦게 밭일을 하고 돌아오던 김서방도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쯧쯧, 뉘 집 아기인지는 몰라도 참 서럽게도 우는구나." 사람들은 그리 말하며 넘겼습니다.
하지만 그 울음소리는 하루 이틀에 그치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열흘이 가고 한 달이 가도록, 매일 밤 자정이 넘으면 어김없이 우물가 근처에서 '응애, 응애' 하고 애끓는 아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는 어찌나 서럽고 한이 맺혔던지, 깊은 밤 방문을 닫고 이불 속에 누워있는 사람의 등골까지 오싹하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어떤 날은 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수십 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엉겨 붙어 우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습니다.
"여보, 당신도 저 소리 들었소? 오늘은 꼭 우리 집 헛간 뒤에서 나는 것 같구려. 심장이 다 떨려서 잠을 잘 수가 없네."
"쉬이, 제발 조용히 좀 해보시오. 괜한 소리 했다가 이제 막 잠든 애까지 깨울라. 그저 바람 소리려니 생각하시오."
마을 사람들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점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혈기왕성한 청년들이 횃불을 들고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나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물가에 가까워질수록 울음소리는 서서히 잦아들었고, 막상 우물가에 도착하면 그곳에는 차가운 달빛 아래 제 몸을 비추는 고요한 수면과, 스산한 밤바람에 흔들리는 느티나무 잎사귀 소리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소문은 흉흉하게 번져나갔습니다. 새벽 일찍 물을 길으러 갔던 과수댁은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우물에 머리를 풀어헤친 채 아기를 달래는 것을 보았다고 기절초풍을 했고, 술에 취해 밤늦게 귀가하던 최서방은 주먹만 한 도깨비불 여러 개가 우물 주위를 맴돌며 춤을 추는 것을 보았다고 횡설수설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마을에는 실질적인 해악이 깃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물에서 갓 길어온 맑은 물로 밥을 지으면, 반나절도 안 돼 밥에서 시큼한 냄새가 나며 시뻘건 물이 고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아낙들이 정성껏 담근 장독에는 이유 없이 구더기가 하얗게 들끓었고, 밤새 외양간에 잘 매어두었던 소가 아침에 가보면 눈을 허옇게 뒤집은 채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기도 했습니다. 평화롭던 마을의 인심은 흉흉해졌고, 사람들은 해가 지면 이웃집에 마실 가는 것조차 꺼리며 서둘러 방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그 정체 모를 아기 울음소리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마을 전체를 옥죄어 오는 듯했습니다. 아랫못골의 자랑이었던 맑고 풍요롭던 우물은, 이제 그 누구도섣불리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 저주와 공포의 근원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 저주의 시작, 스러지는 생명들
밤마다 마을을 떠도는 기이한 울음소리와 불길한 사건들은, 곧이어 닥쳐올 거대한 비극의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아랫못골을 덮친 진짜 저주는, 가장 연약하고 소중한 생명들을 덮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끔찍한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그해 늦가을, 혼인한 지 삼 년이라는 긴 기다림 끝에 귀한 첫아이를 회임하여 온 집안의 기쁨이 되었던 이참봉 댁 맏며느리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며 피를 쏟고 쓰러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놀란 식구들이 고을에서 가장 용하다는 의원을 불러 모아 온갖 귀한 약재를 써가며 백방으로 애썼지만, 결국 복중에 있던 아이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차가운 핏덩이가 되어 스러지고 말았습니다. 비통에 잠긴 맏며느리는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꿈속에는 늘 파랗게 질린 갓난아기가 나타나 "어머니, 어찌하여 저를 이 차가운 물속에 버리셨소" 하고 원망하며, 그녀의 퉁퉁 불은 젖가슴을 날카로운 손톱으로 할퀴어댔습니다. 그녀는 결국 곡기를 끊고 시름시름 앓다, 한 달도 못 되어 남편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이참봉 댁의 비극이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기점으로, 마을의 젊은 아낙들이 마치 전염병이라도 도는 것처럼 줄줄이 유산을 하거나, 열 달을 고이 품어 낳은 아이가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는 끔찍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습니다. 마을에서 가장 금실이 좋기로 소문나 온 동네의 부러움을 샀던 김서방네 아내는, 어렵게 쌍둥이를 가졌다는 기쁨도 잠시, 해산일이 가까워지자 매일 밤 지옥 같은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녀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남편의 손을 붙잡고 절규했습니다. "서방님, 제발... 제발 제 배를 좀 갈라주시오! 아기들이... 아기들이 뱃속에서 노는 것이 아니라, 마치 원수라도 만난 듯 서로를 물어뜯고 제 창자를 긁어대는 것만 같습니다! 아악!" 그녀의 처절한 비명은 밤마다 온 마을에 울려 퍼져 듣는 이의 마음을 찢어지게 했습니다. 결국 그녀 역시 온전치 못한 아이 둘을 낳은 뒤, 기력을 다하여 남편의 품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마을은 이제 걷잡을 수 없는 공포를 넘어, 거대한 슬픔과 회복 불가능한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마을은, 이제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곡소리와 깊은 한숨 소리만이 가득했습니다. 젊은 아낙들은 아이를 갖는 것을 죽음처럼 두려워했고, 남편들은 밤이 되면 혹여나 아내가 회임이라도 할까 봐 아내의 방에 들기를 꺼려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모든 끔찍하고 참혹한 일들이, 우물가에서 들려오는 아기 귀신들의 저주 때문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만 억울하게 죽은 것이 분해서, 산 사람의 씨를 말려 대를 끊어 놓으려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틀림없어! 저 우물에 빠져 죽은 원귀들이야! 자기들만 스러져간 것이 원통해서, 이제 막 태어나려는 생명들을 시기하고 끌어당기는 게야!"
"이제 이 마을은 망했어... 젊은 것들이 아이를 낳아 대를 이어야 마을의 명맥이 유지되는데, 이래서야 어디 사람 사는 동네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 지독한 저주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습니다. 인근에서 가장 영험하다는 무당을 비싼 돈을 주고 불러다, 우물 앞에서 밤을 새워가며 푸닥거리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무당은 시퍼런 작두 위에서 칼춤을 추고, 살아있는 돼지의 목을 베어 그 뜨거운 피를 우물 사방에 뿌리며 악귀를 쫓아내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밤의 아기 울음소리는 더욱 처절하고 날카로워질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날 밤에는 마을의 모든 집 안방에서 동시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기괴한 일까지 벌어져, 온 마을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뜬 눈으로 밤을 새워야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저주받은 이 마을을 떠나야 한다며 야반도주를 감행하기도 했지만, 마을 어귀를 채 벗어나기도 전에 갑자기 다리가 부러지거나 급병을 얻어, 결국 다시 마을로 실려 들어오기 일쑤였습니다. 마을은 이제 거대한 감옥이자, 살아있는 무덤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서서히 희망의 끈을 놓아가고 있었고, 아랫못골에는 짙고 서늘한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 지혜로운 노파, 저주의 근원을 밝히다
마을 전체가 깊은 절망의 수렁에 빠져, 그저 속수무책으로 스러져갈 날만을 기다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마을의 연장자들과 장정들은 이장 댁 사랑채에 모여 머리를 맞대었지만, 뾰족한 대책 없이 깊은 한숨만 내쉬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마을 전체가 폐허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삐걱, 하고 낡은 문이 열리며 한 노파가 마른 대추나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방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살아있는 부처님으로 통하는 허씨 할멈이었습니다. 올해로 아흔을 훌쩍 넘긴 허씨 할멈은, 아랫못골의 탄생과 성장을 모두 지켜본, 마을의 살아있는 역사나 다름없는 존재였지요.
"어르신, 이 밤중에 여긴 어인 일로 왕림하셨습니까. 방이 차갑습니다."
마을 이장이 당황하며 황급히 일어나 자리를 권했지만, 허씨 할멈은 괜찮다는 듯 주름진 손을 내저으며 방 한가운데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침통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방 안에 모인 사람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둘러보며 입을 열었습니다.
"어리석고 가여운 것들... 칼 든 무당을 부르고 시뻘건 피를 뿌린다고 해서, 저 서럽고 여린 원혼들의 한이 풀릴 것이라 진정 생각했는가! 겁을 주고 매를 들어 쫓아내려 할수록 그 원한의 뿌리만 더욱 깊어질 뿐임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허씨 할멈의 목소리는 쇠가 갈리는 듯 쉰 소리가 났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와 질책은 그 어떤 젊은이의 호통보다도 무거웠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허씨 할멈은 눈을 지그시 감고, 아득한 옛 기억의 강을 더듬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육십 년은 족히 되었을 게야. 내가 아직 댕기머리를 갓 면한 어린 계집이었을 적 일이지... 그때 이 고을에 새로 부임해 온 현감이 하나 있었는데, 그 성이 '탁' 가였어. 어찌나 탐욕스럽고 그 성정이 호랑이보다 포악했던지, 온갖 무거운 세금으로 백성들의 등골을 빼먹는 것으로도 모자라, 해괴한 법도를 만들어 멀쩡한 사람의 재산을 빼앗고 제 배를 채우던, 인간의 탈을 쓴 짐승 같은 자였지."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탁 현감의 이야기는 마을에서 악몽 같은 전설처럼 내려오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그 탁 현감에게는 금지옥엽 외동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만 좋은 가문에 혼례 날짜까지 받아놓고, 다른 천한 사내와 눈이 맞아 배가 불러오고 말았지. 가문의 명예가 똥통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한 현감은, 딸이 아이를 낳자마자 강보에 싸인 그 핏덩이를 빼앗아, 아무도 모르는 깊은 밤, 저 우물에 던져 버렸어. 바로 우리 마을의 젖줄인 저 우물에 말일세!"
"아니, 그럴 수가... 아, 이럴 수가!"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허씨 할멈은 눈가에 맺힌 이슬을 닦아내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탁 현감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그때부터 더욱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에 역병이 돈다는 핑계를 대고, '부정'을 막아야 한다는 해괴한 명목으로 마을의 임산부들이 낳은 갓난아기들을 강제로 빼앗아 제물로 바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떤 아이는 산 채로 땅에 묻혔고, 어떤 아이는 우물에 던져졌습니다. 그 끔찍하고 반인륜적인 악행은 그가 파직되어 한양으로 압송될 때까지 몇 년간이나 비밀리에 계속되었고, 그동안 수십 명의 아기들이 어미의 얼굴도, 제 이름 석 자도 없이 억울하게 죽어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우물 밑에는... 그저 한두 명의 원혼이 떠도는 것이 아닐세. 수십 명의 아기 영혼들이 그 차디찬 물속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육십 년이 넘도록 울고 있는 게야. 어미의 따뜻한 품에 한번 안겨보지도 못하고, 향긋한 젖 냄새 한번 맡아보지도 못한 채 스러져간 그 여리고 서러운 영혼들이... 어찌 원한이 맺히지 않겠는가. 그대들이 밤마다 듣는 그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는, 저주가 아니라 살려달라는, 단 한 번만이라도 따뜻하게 안아달라는 서러운 애원이란 말일세!"
허씨 할멈의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방 안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박혔습니다. 그들은 이제야 모든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들이 그동안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했는지를 말입니다. 그들은 아기 원혼들을 달래려 한 것이 아니라, 그저 두려움에 사로잡혀 쫓아내고 외면하려 했던 것입니다. 아이를 잃은 어미의 찢어지는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마을 아낙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진심 어린 통한의 눈물은, 비로소 아랫못골에 드리워진 지독한 저주를 풀 수 있는 첫걸음이 되고 있었습니다.
※ 한을 풀기 위한 노력
허씨 할멈의 피맺힌 절규는 메마른 논에 쏟아지는 단비와도 같았습니다. 지난 몇 달간 마을을 뒤덮었던 지독한 공포와 서로를 향한 불신은, 이제 깊은 참회와 연민의 눈물로 씻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밤의 울음소리를 두려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들의 어리석음과 조상들의 방관이 저 여린 영혼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을지 깨닫고 가슴을 치며 부끄러워했지요. 그날 이후, 아랫못골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해가 졌다고 서둘러 빗장을 거는 집은 없었습니다. 대신, 밤이 되면 집집마다 등불을 밝히고, 마을 사람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차가운 우물 밑에 잠들어 있는 가여운 아기 영혼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모든 일의 중심에는 지혜로운 허씨 할멈이 있었습니다. 할멈은 먼저 마을 아낙들을 모두 우물가 느티나무 아래로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집집마다 가장 부드럽고 좋은 무명천을 상자째로 가져오게 했습니다.
"자, 모두들 정갈하게 손을 씻고 바늘과 실을 드시게. 우리는 오늘부터 저 가여운 아가들을 위해 배냇저고리를 지을 것이야. 평생 차가운 물속에서 추위에 떨었을 저 여린 살결을 덮어줄,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고운 옷을 말이네. 어미의 사랑을 듬뿍 담아서 말이여."
허씨 할멈의 말에, 아낙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눈물을 훔치며 조심스럽게 바느질을 시작했습니다. 특히 최근에 아이를 잃는 아픔을 겪었던 젊은 며느리들은, 자신의 아이에게 입혀주지 못했던 그 모든 설움과 사랑을 한 땀 한 땀 바느질에 정성껏 담아냈습니다. 한 땀을 뜰 때마다 '아가야, 이 어미가 미안하다' 하고 마음으로 속삭였고, 실을 매듭지을 때마다 '부디 원한을 풀고 좋은 곳으로 가거라' 하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뜨거운 눈물은 새하얀 무명천 위로 뚝뚝 떨어져 얼룩을 만들었지만, 그 손길에는 세상의 그 어떤 이름난 장인의 손길보다도 깊은 사랑과 정성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낙들이 옷을 짓는 동안, 마을의 남자들도 더 이상 뒷짐만 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잃은 슬픔을 술로 달래던 최서방은 며칠 동안 대장간에서 나오지 않고 쇠를 두드려, 바람이 불면 은은하고 맑은 소리가 나는 작은 방울을 수십 개나 만들었습니다. 무뚝뚝하기만 하던 목수 김서방은 밤을 새워가며 매끄러운 소나무를 깎아, 아기들이 가지고 놀 법한 작은 목마와 솟대들을 만들었습니다. 마을의 할아버지들은 뒷산에서 가장 곧고 좋은 대나무를 베어 와, 바람이 불면 청아한 소리를 내는 풍경을 엮으며 아이들의 넋을 위로했습니다.
마을 전체가 마치 한 아이의 백일잔치를 준비하는 것처럼, 분주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동네 아이들까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산과 들에서 제비꽃, 민들레 같은 예쁜 들꽃을 꺾어 와 작은 꽃다발을 만들었습니다. 며칠 동안 마을 회관에는 아기들을 위한 옷과 음식, 그리고 장난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갔습니다. 갓 짜낸 신선한 우유로 정성껏 쑨 타락죽, 고운 쌀가루로 밤새 끓여낸 미음, 달콤한 꿀을 섞은 과일까지. 모두 살아생전 따뜻한 음식 한 번 제대로 맛보지 못했을 아기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준비하는 동안, 이상하게도 밤마다 들려오던 아기 울음소리가 눈에 띄게 잦아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울음소리는 들려왔지만, 예전처럼 날카롭고 원망에 찬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 그리운 것을 애타게 기다리는 듯한 애처로운 흐느낌에 가까워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진심이 조금이나마 가여운 영혼들에게 닿고 있음을 느끼며, 마지막 제사를 위한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했습니다.
※ 달빛 아래, 마지막 제사
마침내 닷새간의 정성 어린 준비가 끝나고, 일 년 중 달이 가장 크고 밝게 차오른다는 정월 대보름날 밤이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이른 저녁부터 냇가에 나가 찬물에 목욕재계를 하고, 집에서 가장 깨끗하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리고 손에 손에 초를 하나씩 들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히 우물가로 모여들었습니다. 우물 주변은 수백 개의 촛불로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졌고, 우물을 마주 보는 곳에는 마을 사람들이 며칠 밤낮으로 정성껏 마련한 제사상이 차려졌습니다. 아낙들이 지은 수십 벌의 고운 배냇저고리와 오색실로 수를 놓은 버선, 남자들이 만든 앙증맞은 장난감들,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음식들이 달빛 아래 정갈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숨을 죽이자, 허씨 할멈이 마른 대추나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천천히 제사상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녀는 우물을 향해, 마치 살아있는 어른을 대하듯 깊이 허리를 숙여 세 번 절을 올린 뒤, 떨리는 목소리로 축문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신에게 복을 비는 기원문이 아니었고, 원혼을 꾸짖어 쫓아내려는 호통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가여운 영혼들을 향한, 마을 공동체의 이름으로 올리는 진심 어린 사죄와 늦었지만 따뜻한 위로의 말이었습니다.
"차가운 물속에서 육십 년이라는 긴 세월을 외로움과 배고픔에 떨었을 아가들아. 이 못나고 어리석은 늙은이와, 이 무지했던 마을 사람들의 죄를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다오. 너희들의 그 서럽고 아픈 울음소리를 듣고도, 그저 무섭다는 생각에 쫓아내고 외면하려 했던 우리의 이기심을 용서해다오. 우리는 너희의 진짜 부모도 아니고, 너희의 진짜 할미, 할애비도 아니지만, 오늘 이 밤만큼은 이 마을 사람들 모두가 너희의 따뜻한 어미가 되고, 너희의 든든한 아비가 되어주고자 이 자리에 이렇게 모였단다."
허씨 할멈의 목소리는 회한의 눈물에 젖어 있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 모두 소리 없는 눈물을 뺨으로 흘려보냈습니다. 축문 낭독이 끝나자, 최근에 아이를 잃었던 젊은 어미들이 자신이 직접 지은 배냇저고리를 하나씩 조심스럽게 들고 앞으로 나섰습니다. 그들은 저고리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쳐 들고, 우물 앞에서 한 명씩, 자신의 아이에게 간절히 불러주고 싶었던 이름을 나직하게 불렀습니다.
"복남아... 우리 아가 복남아... 이 어미가 주는 이 옷 곱게 입고, 이제 다시는 추워하지 말고 하늘나라에서 훨훨 날아다니거라..."
"순이야... 세상에서 가장 예쁜 내 딸 순이야... 이 어미가 다음 세상에서는 꼭 너를 다시 만나, 배불리 젖 물려주고 밤새도록 따뜻하게 안아줄 터이니 부디 원한을 풀으렴..."
어미들의 가슴 찢어지는 부름에 화답이라도 하듯, 바로 그 순간, 고요하던 우물 안에서부터 아기 울음소리가 와아, 하고 터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더 이상 원망과 저주에 찬 소름 끼치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토록 그리워하던 어미의 다정한 목소리를 드디어 듣게 된 아기들의, 서럽고도 기쁜 응석과도 같은 울음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는 대신, 그저 부모의 마음으로 함께 울어주었습니다. 그들은 제사상에 차려진 음식들을 조금씩 떼어 우물에 던져주었고, 남자들은 나무 인형과 방울들을 우물 곁에 정성껏 놓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한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기를 재울 때나 부르던, 평범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자장가였습니다. 그들의 진심 어린 노랫소리가 달빛 아래 고요히 울려 퍼지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서럽게 터져 나오던 아기 울음소리가 점차 잦아들더니, 이내 만족스러운 한숨 소리처럼, 혹은 어미 품에서 기분 좋게 잠이 드는 아기의 색색거리는 숨소리처럼, 고요하고 평화롭게 변해갔습니다. 마침내 모든 소리가 멎었을 때, 차갑기만 하던 우물가에는 어디선가 불어온 듯한, 따스하고 향긋한 젖 내음이 온 마을을 부드럽게 감쌌습니다.
※ 저주가 풀리고 찾아온 축복
그 기적과도 같은 밤이 지나고, 아랫못골에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그 어떤 불길한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벽하게 고요하고 평화로운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밤새 잠을 설쳤던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반신반의하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은 숨을 들이쉬었습니다. 마을을 무겁게 짓누르던 음습하고 축축한 기운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아침 공기가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하고 달게 느껴졌습니다. 햇살은 유난히 따스했고, 나뭇잎에 맺힌 아침 이슬은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났습니다.
몇몇 용기 있는 아낙이 조심스럽게 우물로 다가가 두레박을 내렸습니다. 길어 올린 물은 예전처럼 맑고 차가웠지만, 더 이상 그 물에서는 시신 썩는 듯한 비린내나 뼛속까지 파고드는 서늘한 한기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갓난아기의 살결에서 나는 듯한 부드럽고 달콤한 향기가 나는 듯했습니다. 한 노인이 그 물을 받아 마시고는 외쳤습니다. "물이... 물이 다시 달아졌어! 예전보다 더 달고 시원해졌다고!" 그 말을 시작으로 온 마을 사람들이 우물물을 마시며 기쁨의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날 이후, 마을에는 놀라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원인 모를 병으로 골골대며 자리에 누워 있던 아낙들은 하나둘씩 기력을 되찾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흉흉했던 인심은 예전처럼 정답고 따뜻하게 돌아와 마을에는 다시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죽어가던 마을에 다시 새로운 생명이 움트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지난날 쌍둥이를 잃고 슬픔에 잠겨 있던 김서방의 아내가 토실토실하고 건강한 사내아이를 순산했습니다. 아이의 힘찬 첫 울음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지던 날, 온 마을 사람들은 마치 제 일처럼 기뻐하며 잔치를 열었고, 모두가 함께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아이를 시작으로, 마을에는 연이어 건강하고 예쁜 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마치 지난 수십 년간 맺혔던 한을 풀어주기라도 하듯, 태어나는 아이들마다 유난히 병치레 없이 건강하고 총명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결코 그날 밤의 일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매년 가장 큰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우물 앞에 모여 아기 영혼들을 위한 제사를 올렸습니다. 더 이상 슬픔과 공포의 제사가 아니라, 마을을 지켜주는 작은 수호신들에게 올리는 즐겁고 풍성한 감사의 축제였습니다. 마을에 아이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깨끗한 배냇저고리를 입혀 우물에 가서 인사를 올리고,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것이 마을의 새로운 전통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랫못골'이라는 슬픈 이름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졌습니다. 대신 사람들은 이 마을을, '아기들을 지키고 보살피는 고을'이라는 고귀한 뜻을 담아 '아기수골(阿只守洞)'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저주받았던 마을은 이제 축복의 땅이 되어, 대대손손 아이들의 건강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풍요로운 마을로 번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원망과 저주로 가득했던 마을이, 진심 어린 위로와 사랑으로 마침내 축복의 땅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꼬인 매듭과 깊은 원한은, 칼이나 힘이 아닌, 따뜻한 마음과 진실한 눈물만이 풀어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청해 주시는 어르신들 모두, 이 이야기처럼 늘 평안하고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오늘 야담도감이 들려드린 '아기 귀신이 들린 마을의 저주' 편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조금 더 섬뜩하고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 '청구야담' 속 '억울하게 죽은 관리의 망령'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