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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초꾼 마당에 떨어진 저승 명부, 마을 사람 열일곱 명의 이름이 모두 적혀 있었다 『천예록』

    한밤중 충청도 산골 약초꾼 최서방의 오두막 마당에 떨어진 검은 두루마리, 펼쳐보니 자기 이름을 비롯해 마을 사람 열일곱 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저승 명부였으니. 사흘 안에 한 약초꾼이 어떻게 마을 모두를 구해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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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충청도 깊은 산골, 그믐달도 빛을 잃은 한밤중. 외딴 오두막 마당에 묵직한 무엇이 떨어졌습니다. 약초꾼 최서방이 호롱불을 들고 나가 보니, 그 자리엔 빛조차 빨아들이는 검은 두루마리 하나. 떨리는 손으로 펼쳐 보니 자기 이름을 비롯해 다람치골 마을 사람 열일곱 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고, 끝줄엔 '사흘 안에 모두 데려가리라'라는 섬뜩한 글귀가 새겨져 있었으니. 한낱 약초꾼이 어찌 저승의 명을 거슬러 마을을 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솔밭 너머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던 저승사자가 마지막에 남긴 한마디는… 천예록이 전하는 사흘간의 사투,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 1: 다람치골 약초꾼 최서방의 마당에 검은 두루마리가 떨어진다

    때는 숙종 임금 시절, 충청도 보은 땅 깊은 산골에 다람치골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산 그늘이 일찍 내려앉고 솔잎 사이로 까마귀 울음이 길게 흐르는, 가을이 한창 익어가던 어느 그믐밤이었다.

    마을 끝자락, 솔밭과 등성이 하나 사이로 외따로 떨어진 초가 오두막. 그 집에 사는 약초꾼 최서방은 이날따라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방 한구석엔 일곱 살 난 외동딸 연이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고, 벽에 걸린 약초 꾸러미들에선 마른 쑥과 당귀 냄새가 은은히 흘러나왔다. 천장 들보엔 가을에 갓 캐어 말리는 도라지며 더덕이 끈에 매달려 가만가만 흔들리고 있었다.

    '벌써 삼경이 가까운데… 어찌 이리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하는고.'

    최서방은 일찍이 아내를 잃은 홀아비였다. 삼 년 전, 아내가 갑작스러운 열병에 쓰러졌을 때 그는 산이란 산은 다 뒤져 약초를 캤으나 끝내 살리지 못했다. 그 한이 깊어, 그는 더더욱 약초에 매달려 살았다. 다람치골 마을 사람 가운데 그의 손에 신세 한 번 안 진 이가 없을 정도로, 최서방은 지극정성이었다.

    그러나 오늘 밤은 달랐다. 등줄기로 자꾸만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손가락 끝이 까닭 모를 한기에 떨려 왔다. 호롱불 심지를 돋우어 약초 책을 펼쳐 보아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산짐승이라도 내려왔는가. 어찌 이리 마음이 어수선한지 모를 일이로다."

    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때였다.

    쿵―

    무거운 무엇인가가 마당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흙바닥이 살짝 움푹 들어갈 만큼 묵직한 소리였으되, 짐승의 발소리도 아니요, 가을바람에 솔방울 떨어지는 소리도 아니었다.

    최서방은 호롱불을 한 손에 받쳐 들고 조심스레 사립을 열었다. 차가운 밤바람이 쏴아 옷자락을 흔들었고, 하늘엔 그믐달이 가느다란 손톱마냥 비끼어 걸려 있었다. 별빛조차 어쩐지 흐릿한 밤이었다.

    "누구냐. 누구가 게 있느냐."

    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 호롱불을 마당으로 비추는데, 평소 약초를 펼쳐 말리던 멍석 한가운데에 무엇인가가 놓여 있었다. 검은 두루마리 하나였다.

    다만 그것은 그저 검은 것이 아니었다. 호롱불 빛이 그 위에 닿는 순간 빛이 도리어 빨려 들어가는 듯, 마치 세상의 어떤 어둠보다도 더 깊은 어둠이 한 자 길이로 똘똘 말려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최서방은 자기도 모르게 한 발 물러섰다.

    '이것이 어디서 떨어졌단 말인가. 위를 보아도 솔개 한 마리 없는 그믐 하늘인데…'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살피는데, 솔밭 너머 어디선가 까마귀들이 일제히 울기 시작했다. 까악, 까악, 까악― 마치 무엇인가에 크게 놀란 듯, 무엇인가를 일러 주려는 듯, 그 소리가 산골짜기 가득 울려 퍼졌다.

    최서방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침내 무릎을 꿇고 두루마리에 손을 대었다. 손끝이 닿는 순간,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켰다. 종이라기엔 너무 매끄럽고, 비단이라기엔 너무 차가운 그 무엇.

    "이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그는 두루마리를 한 손에 받쳐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무게는 가벼우나, 그것을 든 손목이 어쩐지 납덩이를 매단 듯 무거웠다. 사립이 바람에 끼익 닫혔고, 까마귀 울음이 한 번 더 길게 늘어지더니 뚝, 끊겼다.

    방 안의 호롱불이 까닭 없이 두 번 흔들렸다.

    연이는 그새 잠결에 모로 돌아누우며 작게 잠꼬대를 하였다. 최서방은 어린 딸을 한번 가만히 내려다보고는, 호롱불 곁에 두루마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이제 펼쳐 볼 차례였다. 그러나 손이 자꾸만 떨려, 그는 두 번이나 헛손질을 하였다. 무엇인가 일생일대의 무거운 일이, 지금 자기 손에 놓여 있다는 예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 2: 마을 사람 열일곱 명의 이름과 '사흘 안'이라는 시한을 확인한다

    호롱불이 한 번 더 깜빡이더니, 심지가 길게 불을 뽑아 올렸다. 최서방은 깊이 한숨을 내쉬고는, 마침내 떨리는 손으로 두루마리의 매듭을 풀었다.

    스르륵―

    그 검고 매끄러운 비단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저 혼자 풀려 나갔다. 펼쳐진 두루마리에서는 까닭 모를 음한 기운이 새어 나와, 호롱불의 불꽃이 푸르스름하게 빛을 바꾸었다.

    최서방은 침을 꿀꺽 삼키고 그 위로 시선을 떨구었다.

    붉은 글씨, 그것도 사람의 피 같은 빛깔로, 한 줄 한 줄 정갈하게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가장 윗줄, 누구보다 먼저 적혀 있는 그 이름은―

    崔書房, 五十二歲

    "내… 내 이름이…"

    그의 목소리가 떨려 갈라졌다.

    자신의 이름 아래로 줄줄이 이어진 이름들. 그 이름 하나하나가 그가 잘 아는, 다람치골 마을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박첨지 일흔셋. 평생 마을의 어른으로 모두를 보살펴 온 백발의 노인이 또렷이 떠올랐다. 김씨 마흔다섯, 새벽이면 들에 나가 가장 먼저 쟁기를 잡던 부지런한 농부. 김씨의 처 마흔하나, 그 손에서 빚어진 떡과 김치는 마을의 자랑이었다. 어린 막동이 여섯 살, 김씨의 막내아들로 늘 최서방의 마당까지 쫓아와 약초 냄새를 맡곤 하던 천진한 아이. 훈장 변선생 쉰여덟, 마을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던 점잖은 선비. 과부 윤씨 서른아홉,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외아들 하나로 살아가는 가여운 여인. 떡장수 노파 예순둘, 새벽마다 마을을 돌며 시루떡을 팔던 인심 후한 늙은이. 그리고 한양 다녀온 뒤 도통 어른들 말은 듣지 않는 혈기 방장한 김도령 스물둘…

    그렇게 한 줄, 또 한 줄. 이름이 모두 합하여 열일곱.

    자신을 더하면 열여덟 사람의 이름이 거기에 있었다.

    최서방의 손에서 두루마리가 미끄러져 무릎 위로 떨어졌다. 가슴이 쾅쾅 뛰어, 귀밑에서 천둥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이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그는 한참을 멍하니 그 이름들을 들여다보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한평생 정 붙이고 살아온 이웃들의 얼굴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가 떨리는 시선을 두루마리의 끝으로 옮기는 순간, 그곳에 한 줄이 더 적혀 있었다. 다른 글자보다도 더 굵고, 더 검고, 더 차가운 한 줄.

    『三日內 盡將去之― 사흘 안에 모두 데려가리라.』

    그 글자를 보는 순간, 최서방은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등골이 곤두섰다. 그는 두루마리를 떨어뜨리듯 내려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하늘이시여… 이것이 정녕 저승의 명부란 말입니까."

    저승 명부. 한평생 산을 누비며 약초를 캐 온 그였으나, 어른들 입에서 듣던 그 무서운 이야기가, 지금 자기 손 안에 놓여 있었다.

    저승사자가 사람을 데려갈 때엔 먼저 그 이름을 적은 명부가 내려진다 하였다. 명부에 적힌 자는 아무리 도망쳐도 사흘 안에 숨이 끊긴다 하였다. 그것이 산골 노인들이 자식들에게 이불 속에서 들려주던 옛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명부가, 어찌 자기 마당에 떨어졌단 말인가. 더구나 자기를 비롯하여 마을 사람 모두의 이름이 적힌 채로―

    방 밖에서 솔밭 쪽 까마귀가 다시 한 번 길게 울었다. 까아악―

    최서방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두루마리를 다시 집어 들고,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다시 읽기 시작했다.

    박첨지 일흔셋. 김씨 마흔다섯. 김씨의 처. 어린 막동이…

    이름 하나하나가 칼날이 되어 가슴을 베었다. 그는 잠든 연이의 얼굴을 한 번 돌아보았다. 다행히 어린 딸의 이름은 그 명부에 없었다. 그 사실에 그는 한순간 안도하였다가, 곧 큰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딸의 이름이 없는 것이 다행이라 여기다니… 이 마을 사람 모두가 내 식구나 다름없거늘.'

    그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등잔불 곁에 두루마리를 곧게 펼쳐 놓고, 그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얹었다.

    '사흘이라 하였지. 사흘.'

    그 사흘 동안, 자기 한 사람이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마을 사람 열일곱이 함께 죽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평생 캐어 외운 약초의 이름들. 평생 산을 누비며 익힌 처방들. 그것이 지금 이 사흘을 위해 주어진 것이라면―

    "내 이 한 목숨, 사흘만 빌려 받자."

    호롱불이 또 한 번 흔들렸다. 그러나 이번엔 두려움이 아닌, 결연한 빛이었다.

    ※ 3: 박첨지의 발병으로 사투가 시작되고 독샘의 정체를 찾아내다

    다음 날 첫닭이 울기도 전에, 최서방은 약초 망태기를 둘러메고 사립문을 나섰다. 새벽 산기운이 싸늘하게 폐부를 찔렀고, 동쪽 하늘이 겨우 잿빛으로 풀어지고 있었다.

    연이에겐 가까운 친척 댁에 며칠 다녀오게 일러 두었다. 어린 것이 영문도 모르고 작별 인사를 할 때, 최서방은 가슴이 미어졌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무슨 변고가 있으되 알 수 없는 일이니, 이 아이만은 마을 밖으로.'

    그는 명부에 적힌 첫 이름, 박첨지의 집부터 향했다. 마을 어귀의 큰 느티나무를 지나, 흙담을 끼고 굽어 도는 골목 끝에 박첨지의 집이 있었다.

    사립을 두드리니 박첨지의 며느리가 사색이 되어 뛰어나왔다.

    "아이고, 최서방. 마침 잘 오셨소. 시아버님께서 어젯밤부터 식은땀을 흘리며 정신을 못 차리신다오."

    최서방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명부가 떨어진 그 시각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니 박첨지가 이불을 차며 헛손질을 하고 있었다. 얼굴은 누렇게 뜨고, 입술은 푸르스름하며, 숨소리가 거칠었다. 최서방은 노인의 손목을 잡아 맥을 짚고, 입을 벌려 혀를 들여다보았다.

    혀끝이 검붉었다. 가장자리엔 흰 거품이 말라붙어 있었다.

    '이것은… 약초 중독의 빛이로구나. 더구나 깊은 산의 독풀에 든 자의 빛.'

    최서방은 한평생 약초만 캐어 온 사람이었다. 사람을 살리는 약초가 있으면, 사람을 죽이는 독초도 있게 마련. 그가 아는 한, 박첨지처럼 점잖은 노인이 산에 올라 독초를 캐 먹을 까닭이 없었다.

    그렇다면―

    "마님, 어제 영감님이 무엇을 자셨는지 일러 주시오. 한 끼 한 그릇이 다 중하오."

    며느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하였다.

    "어제 점심나절 동네 우물에서 길어 온 물로 끓인 미음을 자셨고, 저녁엔 떡장수 노파가 가져다 준 시루떡을…"

    "그 우물물이라 하셨소? 마을 한가운데 큰 우물?"

    "그렇소이다."

    최서방의 머리에 번개가 쳤다.

    '그 우물― 며칠 전 큰비가 내렸을 때 산자락 한 자락이 무너져 흙탕물이 우물로 흘러들었다 하지 않았던가. 그 산자락 위에는 천남성이며 부자가 자생하는 음습한 골이 있었지.'

    사람을 죽이는 부자뿌리. 흙물을 따라 우물로 흘러들었다면, 그것은 보이지 않는 독이 되어 마을 사람의 입으로 들어갔을 터.

    최서방은 박첨지의 머리맡에 자리를 잡고 망태기를 풀었다. 안에서 누런빛 감초 뿌리와 보랏빛 도라지, 그리고 검붉은 빛이 도는 길경 한 줌을 꺼내었다.

    "맑은 물 한 그릇만 끓여 주시오. 이 약을 달여 먹이면 반나절 안에 정신이 들 것이오."

    며느리가 부엌으로 달려갔다. 최서방은 노인의 손을 가만히 잡고 속으로 다짐했다.

    '박첨지부터 살려야지. 이 어른이 정신을 차려야 마을 어른들에게 일을 알릴 수 있다.'

    약을 달여 한 그릇 떠먹이니, 노인은 한참을 컥컥거리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식은땀을 쏟았다. 한 식경이 지나자 고통스럽던 신음이 잦아들고, 호흡이 가라앉았다.

    박첨지가 가까스로 눈을 떴다.

    "최… 서방인가. 내가… 어찌 된 일인가."

    "노인장, 우물물 때문이오. 마을 사람들도 다들 위태로우니 어른께서 정신을 차리시고 일을 도와주셔야 하오."

    박첨지는 멍한 눈으로 한참 천장을 보다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 한걸음에 마을 회의를 부르겠네. 자네는… 자네는 어서 다음 집으로 가게."

    최서방은 곧장 일어섰다. 명부의 둘째 이름은 박첨지의 손자, 셋째 이름은 김씨, 넷째는 김씨의 아내, 그리고 어린 막동이―

    해는 이제 동쪽 등성이 위로 한 뼘 솟아 있었다. 사흘. 그 첫째 날의 첫 시각이 막 지나가고 있었다.

    그가 박첨지의 집을 나서며 솔밭 쪽을 한 번 돌아보았을 때였다. 까마귀 한 마리가 솔가지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그 곁에 어쩐지 키 큰 그림자 하나가 함께 서 있는 듯도 싶었다. 다시 보니, 그저 솔가지일 뿐이었다.

    ※ 4: 김도령의 거부와 어린 딸 연이마저 쓰러지는 위기

    박첨지의 집을 나선 최서방은 그 길로 마을 한가운데 큰 우물 앞으로 달려갔다. 두레박을 끌어 올려 보니, 물빛이 평소보다 한층 거무튀튀했다. 코를 가까이 대니 비릿한 흙냄새 너머로 어쩐지 비린 풀 냄새가 섞여 있었다.

    "독이 든 우물이로다."

    그는 우물가 옆에 있던 굵은 솔가지 두 개를 가져다가, 우물 위로 가위표 모양으로 가로질러 묶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이 우물물 절대 길어 자시지 마시오! 산이 무너진 자리에서 독한 풀이 풀려 물이 더러워졌으니, 다들 윗골 샘으로 가셔야 하오!"

    마을 사람 몇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모두가 그의 말을 곧이듣는 것은 아니었다. 마침 골목에서 나오던 젊은 김도령이 코웃음을 쳤다.

    "최서방, 그대가 무슨 풍수쟁이라도 되시오. 멀쩡한 우물을 두고 윗골까지 가라니 무슨 헛소리요."

    최서방은 답답한 가슴을 누르고 차분히 말하였다.

    "김도령, 박첨지 어른이 어젯밤 이 물을 자시고 정신을 잃으셨소이다. 부디 한나절만 윗골 샘을 쓰시오."

    "흥, 늙은이가 노망이 들었기로서니 그것이 어찌 우물 탓이오. 나는 새벽에도 한 그릇 떠 마셨건만 멀쩡하오."

    김도령은 보란 듯이 두레박을 풀어 내리려 하였다. 최서방이 그 손을 잡자, 김도령이 도리어 그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내 손에 손대지 마시오! 약초꾼 주제에 마을 어른 노릇이라도 하려는 게요!"

    김도령이 휙 돌아서 가버리는데, 최서방은 그 등에다 대고 한참을 외쳤다.

    "도령, 부디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 물 자시지 마시오. 내가 사정사정 비오. 부디―"

    그러나 김도령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마음이 돌덩어리처럼 가라앉았으나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최서방은 곧장 김씨네 집으로 달려갔다. 사립문 앞에 이르자마자 안에서 어린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부지― 아부지 일어나―"

    방문을 열어 보니, 김씨가 부뚜막 옆에 쓰러져 있었다. 김씨의 처는 이미 정신을 잃고 토방 위에 엎드려 있었으며, 어린 막동이가 둘 사이를 오가며 울고 있었다.

    최서방은 가슴이 미어졌다.

    "아저씨이― 우리 어무이 아부지 좀 살려 줘유―"

    여섯 살 막동이가 그의 다리를 붙잡고 매달렸다. 최서방은 아이를 한 번 꼭 안아 주고는, 곧장 망태기를 풀었다.

    "막동아, 잘 듣거라. 내가 이르는 대로 부엌에서 큰 솥에 물을 한가득 끓여 다오. 막동이가 어무이 아부지 살리는 길이다."

    아이는 콧물을 닦고 야무지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등이 부엌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최서방은 망태기에서 감초와 도라지, 그리고 한층 더 진한 길경을 듬뿍 꺼냈다.

    부부가 의식을 차리는 데에는 한 식경, 그리고 또 한 식경이 더 걸렸다. 그 사이 최서방은 막동이까지 한 그릇 약을 먹였다. 어린 입에 감초의 단맛이 도는지, 막동이는 약을 마시고 또 마시고는 그제야 어미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다음은 떡장수 노파의 집, 그 다음은 훈장 변선생, 그 다음은 과부 윤씨―

    해가 중천에 걸리고, 다시 서쪽 등성이로 기울 무렵까지, 최서방은 명부의 이름을 따라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어떤 이는 의식이 흐릿한 채 토악질을 하였고, 어떤 이는 사지가 굳어 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최서방의 약초가 닿는 곳마다, 죽음의 그림자는 한 발씩 한 발씩 물러섰다.

    저녁 어스름이 내릴 무렵, 그가 지친 다리를 끌고 자기 오두막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마당에 한 그림자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친척 집에 갔어야 할 어린 연이가, 영문 모를 얼굴로 마당에 서 있는 것이었다.

    "아부지, 나… 길에서 자꾸 어지러워서 되돌아왔어유…"

    연이의 입술이 푸르스름했다. 이마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최서방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명부에는 분명 이 아이의 이름이 없었거늘― 어찌 이 아이까지…'

    그는 딸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명부에 이름이 없다고 하여, 독을 마시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명부는 죽을 사람만 적었을 뿐, 마을 사람 누구라도 그 우물물을 마셨다면 이미 독이 든 것이었다.

    다만 명부에 적힌 자는 사흘 안에 반드시 데려가는 것이요, 적히지 않은 자는 운명이 닿지 않을 뿐. 그렇다면 이 아이는 지금, 살릴 수 있다 해도 살리지 못하면 그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명부에 없으니 살 길이 있는 것이었다.

    그는 어린 딸을 등에 업고 방으로 들어갔다. 약초를 달이는 그의 손이 처음으로 떨리고 있었다.

    첫째 날의 해가 산을 넘어가는데, 솔밭 너머에서 까마귀가 한 번 더 길게 울었다.

    까아악―

    그리고 솔밭의 가장 안쪽, 가장 어두운 그림자 아래― 키 큰 사내 하나가 가만히 서서, 오두막 마당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 5: 한 명씩 구해 나가는 최서방, 솔밭의 저승사자가 가까이 다가오다

    밤새 끓인 약을 어린 연이에게 흘려 넣고, 최서방은 한숨도 자지 못한 채 두 번째 날의 새벽을 맞았다. 동창이 푸르게 트일 무렵, 다행히 연이의 호흡이 가라앉고 입술에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부지… 나 이제 안 어지러워."

    어린 딸이 가까스로 눈을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최서방은 딸의 이마를 짚어 보고는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아이는 살았구나. 명부에 없었으니, 살릴 길이 있었구나.'

    그는 연이의 머리맡에 박첨지의 손녀를 앉혀 두고, 다시 망태기를 둘러멨다.

    박첨지는 지팡이를 짚고 마을 한 바퀴를 돌며 어른들에게 일을 알리고, 큰 우물을 가마니로 덮어 막아 두었다. 떡장수 노파와 김씨 부부가 정신을 차린 뒤로는, 마을 부엌마다 큰 솥이 걸리고 약을 달이는 김이 자욱이 피어올랐다. 최서방의 약초만으로는 모자라 박첨지가 뒷산 약초막에서 묵혀 둔 약재를 꺼내었고, 변훈장은 한문책에 적힌 옛 처방을 한 자 한 자 짚어 가며 손을 보태었다.

    그렇게 둘째 날의 해가 떠올랐다.

    명부의 이름들이 한 줄, 두 줄, 차례로 살아났다. 한 사람이 깨어날 때마다 최서방은 두루마리에 적힌 그 이름 위에 가만히 손을 얹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사람은 살았소. 저승사자여, 이 이름은 거두어 가시오.'

    그러나 모든 이름이 그렇게 쉽게 살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오정이 가까운 무렵, 마을 외곽 김도령의 집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최서방― 최서방, 어서 와 보시오! 우리 도령이 갑자기 정신을 잃었소!"

    김도령의 어머니가 맨발로 뛰어나와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어제 우물물을 한 그릇 더 떠 마셨던 김도령이, 한 식경 전부터 사지가 굳어 가더니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는 것이었다.

    최서방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명부의 일곱 번째 이름. 김도령 스물둘.

    방으로 뛰어드니, 김도령의 얼굴빛이 이미 시퍼렇게 변해 있었다. 호흡이 거의 끊어진 듯 보였고, 눈동자가 한쪽으로 돌아가 흰자위만 보였다.

    '이미 늦은 것이 아닌가―'

    그러나 최서방은 망태기를 풀었다. 어제 다른 이들에게 쓰던 처방으로는 부족했다. 그는 망태기 가장 안쪽에서, 평소 깊이 간직하던 한 자루의 약을 꺼냈다. 산속 천 길 절벽 끝에서나 자라는 산삼 곁뿌리, 그리고 부자의 독을 다스리는 감수 한 줌이었다.

    "노모, 한 번만 도와주시오. 내가 도령의 입을 벌리거든 이 약을 한 숟가락 부어 주시오."

    김도령의 어머니가 떨리는 손으로 약을 받았다. 최서방은 도령의 입을 억지로 벌리고, 약을 흘려 넣었다.

    한참을 기다렸으나 김도령은 미동도 없었다. 어미가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내 아들… 내 아들 정녕 가는 게요…"

    최서방은 도령의 양쪽 손목을 꽉 잡고, 가슴을 자기 두 손으로 누르며 외쳤다.

    "도령, 아직 갈 때 아니오! 어미를 두고 어찌 가오! 정신 차리시오, 정신 차리시오!"

    쿵, 쿵, 쿵―

    가슴팍을 누르기를 한참, 김도령이 갑자기 컥, 하고 검은 토사물을 한 사발이나 쏟아 냈다. 그러더니 거친 숨을 한 번 들이켜고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어… 어머니…"

    김도령의 어머니가 통곡을 하며 아들을 끌어안았다. 김도령은 멍한 눈으로 천장을 보다가, 곁에 무릎 꿇고 앉은 최서방을 알아보고는 입술을 떨었다.

    "최… 서방… 어제 내가 그대에게 못된 말을 하였소이다… 정녕 미안하오… 정녕 미안하오…"

    최서방은 도령의 손을 가만히 잡고 고개를 저었다.

    "살았으면 됐소. 부디 어머님 오래 모시고 사시오."

    그가 김도령의 집을 나섰을 때, 해는 이미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둘째 날의 해가, 그렇게 또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가 마을 어귀의 솔밭을 지나는데, 어쩐지 등 뒤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또렷이 느껴졌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솔밭의 가장 안쪽, 키 큰 적송 두 그루 사이에― 검은 갓에 검은 도포를 두른 사내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얼굴은 갓 그늘에 가려 보이지 않았으나, 그 가만한 자세에서 사람 아닌 무엇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최서방은 한참을 그 자리에 굳어 서 있었다. 두려움보다는, 어쩐지 한없는 슬픔이 가슴을 짓눌렀다.

    '당신이… 그렇소이다. 내가 알고 있었소이다.'

    그가 한 걸음 나아가려 하자, 사내의 자세가 슬며시 흐려졌다. 다시 보니, 솔밭에는 솔바람만이 가만히 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최서방은 알았다. 둘째 날의 해가 지고, 셋째 날의 새벽이 곧 시작될 것을. 그리고 명부에는 아직 두 사람의 이름이 남아 있다는 것을―

    ※ 6: 마지막 두 사람을 두고 자신의 목숨까지 거는 절체절명의 사투

    셋째 날의 새벽은 짙은 안개로 시작되었다. 마을 골목마다 우윳빛 안개가 자욱이 깔려, 사람들의 얼굴조차 한 발 앞에서 알아보기 어려웠다.

    최서방은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채 다시 망태기를 둘러멨다. 두 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웠고, 손끝이 자꾸만 떨렸다. 어제 김도령의 가슴팍을 누르던 그 순간부터, 그 자신의 호흡도 한 박자씩 가빠지고 있었다.

    '그렇구나. 내 이름도 명부의 첫 자리에 있었지.'

    그는 잠시 마당에 서서 새벽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 한 모금이 어쩐지 평생 마셔 본 어떤 공기보다도 시리고 또 달았다.

    명부에 남은 두 이름은 훈장 변선생과― 자기 자신이었다.

    훈장 변선생은 어제 새벽 약을 한 그릇 마시고 정신을 차렸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한낮부터 다시 열이 오르고 사지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이 번갈아 곁을 지키며 약을 달여 먹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최서방이 변선생의 집에 이르렀을 때, 박첨지가 다 떨어진 갓을 쓴 채 그의 곁에 앉아 있었다. 변선생의 얼굴은 어제보다 더 누렇게 떴고, 호흡이 가늘어 마치 실낱같았다.

    "어른께서 어찌 이리…"

    박첨지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어제 한 번 독에 깊이 든 사람이라, 약이 잘 들지 아니하네. 자네에게 달리 도리가 있겠는가."

    최서방은 변선생의 손목을 짚었다. 맥이 거의 잡히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정녕 못 살리겠구나.'

    그는 망태기에서 마지막 남은 산삼 한 뿌리를 꺼내었다. 평생을 산에 다닌 그가, 십 년 전 천왕봉 아래 절벽에서 손가락 끝에 피를 묻혀 가며 캐어 온 천종산삼이었다. 언젠가 가장 사랑하는 이를 위해 쓰겠노라 깊이 간직해 둔 것.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산삼을 잘게 썰어 약탕기에 넣었다. 그 곁에서 박첨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 그것이 자네 평생의 보배 아닌가."

    "평생의 보배는 사람이지요. 어른께서 살아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셔야 다람치골이 다람치골이지요."

    산삼을 우려낸 약을 변선생의 입에 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 흘려 넣기를 한 식경. 마침내 변선생의 가슴이 크게 한 번 들썩이더니, 가는 신음과 함께 깊은 숨을 들이켰다.

    "훈장님… 훈장님―"

    박첨지가 그의 손을 잡고 외쳤다. 변선생이 가까스로 눈꺼풀을 떨더니, 흐린 눈으로 천장을 보았다.

    "아직… 아직 내가 살아 있는가…"

    방 안에 있던 마을 사람 모두가 소리 죽여 눈물을 쏟았다. 변선생은 한참을 멍하니 천장을 보다가, 마침내 최서방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

    "자네 손이 이리 차가운데… 자네는 괜찮은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최서방의 무릎에서 힘이 풀렸다. 그는 변선생의 손을 잡은 채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아이고― 최서방!"

    박첨지가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최서방의 입술도 어느새 푸르스름했고, 이마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 자신도 그제 우물물을 한 그릇 떠 마신 적이 있었던 것이었다. 다만 다른 이들을 살리느라 자기 약은 단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을 뿐.

    "이 사람아, 자네 약은 어찌 안 자셨나―"

    박첨지가 그를 흔들었으나, 최서방은 가만히 미소 지을 뿐이었다.

    "제 약초는… 다 떨어졌습니다, 어른… 산삼도 마지막… 한 뿌리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를 둘러쌌다. 김씨가 그의 머리를 받쳐 들었고, 떡장수 노파가 그의 손을 비비며 흐느껴 울었다. 어린 막동이가 어디서 왔는지 그의 가슴팍에 고사리 같은 손을 얹었다.

    "아저씨이… 아저씨 안 죽어유, 그치유…"

    김도령이 한걸음에 달려와 자기 집에 남아 있던 마지막 감초를 한 줌 끓여 가져왔다. 과부 윤씨가 자기 외아들을 시켜 윗골의 더 깊은 산속까지 약초를 캐러 보냈다. 마을 부엌마다 다시 약 끓이는 김이 자욱이 피어올랐다.

    명부의 마지막 이름. 최서방, 쉰둘.

    셋째 날의 해가 중천을 지나고, 다시 서쪽으로 기울어 가는데, 솔밭의 그림자가 자꾸만 마을 가까이로 다가오는 듯도 싶었다.

    ※ 7: 솔밭에서 걸어 나온 저승사자가 남긴 한마디

    셋째 날의 해가 마침내 산 너머로 자취를 감추었다. 마을 부엌마다 끓고 있던 약 김이 사그라들고, 어둠이 다람치골을 부드럽게 감쌌다.

    최서방의 오두막 방 안. 마을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변선생도 가까스로 몸을 이끌고 와 윗목에 자리를 잡았다. 어린 연이가 아비의 손을 꼭 잡고, 한 번씩 작게 흐느꼈다.

    최서방의 호흡은 자꾸만 가늘어졌다. 그러나 그는 가끔씩 눈을 떠 둘러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한 사람 한 사람 살펴보았다.

    박첨지― 살았다. 김씨와 그의 처― 살았다. 어린 막동이― 살았다. 떡장수 노파― 살았다. 변훈장― 살았다. 과부 윤씨― 살았다. 김도령― 살았다.

    명부에 적힌 열일곱 사람이, 모두 그의 곁에 살아 둘러앉아 있었다.

    "고맙소이다… 모두… 살아 주시어… 고맙소이다…"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 죽여 울었다. 박첨지가 그의 손을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아, 가지 말게. 자네가 가면 다람치골은 어찌 사는가."

    연이가 아비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아부지― 가지 마유, 아부지―"

    최서방은 어린 딸의 머리를 더듬어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내 한 목숨, 사흘만 빌려 받자 하였더니― 빌려 받기는 잘 받았구나.'

    자정이 가까운 무렵이었다. 사립문 밖 솔밭 쪽에서, 가만한 발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자박, 자박, 자박―

    방 안의 모든 이가 그 소리에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호롱불이 두 번 흔들렸다.

    사립이 저 혼자 끼익― 열렸다. 그리고 그 너머로 검은 갓에 검은 도포를 두른 키 큰 사내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솔밭의 그 그림자였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도 소리 내지 못했다. 그저 가슴이 얼어붙은 듯,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저승사자가 천천히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첫날 밤 최서방의 마당에 떨어졌던 그 검은 두루마리가 다시 들려 있었다. 방문 앞에 이르러, 그가 잠시 멈추었다. 갓 그늘 아래에서, 어쩐지 깊고 긴 한숨소리 같은 것이 새어 나왔다.

    그러더니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내 일찍이 천 년 동안 명부를 들고 다녔으되, 명부 한 장으로 마을 하나를 살리는 자는 너 하나로다."

    그의 목소리는 깊고도 부드러웠다. 사람의 목소리 같으면서도 어쩐지 솔바람 같았다.

    "네가 사흘 동안 잠 한숨 자지 아니하고, 네 평생의 보배를 아낌없이 풀어 놓고, 네 목숨까지 마지막 한 사람을 위해 비웠으니― 그 자비가 저승의 문을 흔들었느니라."

    저승사자는 두루마리를 천천히 펼쳤다. 그 위에 한 사람의 이름이 마지막으로 남아 있었다.

    崔書房, 五十二歲

    그가 손가락을 가만히 그 이름 위에 얹었다. 호롱불이 한 번 더 일렁이더니, 그 이름이 마치 따뜻한 입김에 지워지는 글자처럼 스르르 사라졌다.

    "이 한 줄을 지우고 가노라.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마음이, 명부보다 더 깊은 글이로다."

    그가 두루마리를 휘릭 말아 품에 거두어 넣었다.

    "오늘 밤 네 잠은 길고 깊되, 새벽의 첫닭 소리에 너는 다시 일어나리라. 다람치골에 다시 한평생 약초 향기가 흐르리라."

    저승사자가 한 번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산 사람의 절이라기보다는, 어떤 오래된 경의의 표현이었다. 그가 천천히 돌아서 솔밭으로 사라지는 그 자취 위로, 어디선가 까마귀 한 마리가 길게 한 번 울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슬프지 아니하고, 어쩐지 환한 새벽을 알리는 닭 울음과도 같았다.

    다음 날 새벽, 첫닭이 우는 소리에― 최서방이 가만히 눈을 떴다.

    마당엔 어느새 솔향이 가득하였고, 어린 연이의 작은 손이 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의 곁엔 마을 사람 열일곱이, 둘러앉은 그 자리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모두가, 한 사람도 없이, 살아 있었다.

    천예록은 이 이야기 끝에 이렇게 적고 있다.

    『一藥草人之慈, 動冥府之筆― 약초꾼 하나의 자비가, 저승의 붓을 움직였더라.』

    유튜브 엔딩멘트

    이상으로 천예록이 전하는 「약초꾼 마당에 떨어진 저승 명부」 이야기를 마칩니다. 한 사람의 자비가 저승의 명까지 거꾸로 돌렸다는, 우리네 옛 선조들이 남긴 가장 따뜻한 한마디. 부디 시청해 주신 모든 분의 마음에 한 줄기 솔바람 같은 위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다음 시간엔, 같은 천예록에서 또 다른 저승사자가 만난 한 어부의 기이한 이야기를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좋아요와 구독은 우리 채널이 계속 옛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는 가장 큰 힘입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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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humble Korean herbalist's thatched-roof hut at deep autumn night under a thin crescent moon, a mysterious black scroll glowing faintly with red calligraphy lying on the moonlit dirt courtyard, a tall dark robed figure with wide-brimmed black hat barely visible standing among the pine trees in the background, warm amber oil lamp glow seeping through the hut's paper window, swirling autumn mist, dramatic cinematic chiaroscuro lighting, deeply atmospheric, ominous yet hopeful mood, photorealistic, ultra-detailed, no text, no readable letters, no identifiable faces, 16:9 aspect rat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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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ep autumn night in a Korean mountain village, isolated thatched-roof hut at the edge of pine forest, faint crescent moon, mist rolling over distant ridges, photorealistic, cinematic lighting, 16:9
    2. Interior of a humble Korean herbalist's hut, dried medicinal herbs hanging from wooden ceiling beams, glowing oil lamp on low wooden desk, traditional hanji walls, warm amber light, 16:9
    3. Aged man's hand holding a wooden oil lamp in a dark courtyard, low angle, hand only, traditional Korean sleeve, cold blue night atmosphere, photorealistic, 16:9
    4. A mysterious black scroll lying on a straw mat in a moonlit Korean courtyard, light seeming to be absorbed by it, eerie unnatural darkness, no text, photorealistic, 16:9
    5. Black silhouettes of crows rising from a pine forest against a faint crescent moon sky, autumn night, dramatic shadows, photorealistic, 16:9

    ※ 2 대표이미지 프롬프트 (5장)**

    1. Hands slowly unrolling a black silk scroll on a low wooden desk under glowing oil lamp, traditional Korean room, no faces, photorealistic cinematic, 16:9
    2. Aged calligraphy in deep crimson red brush strokes on dark silk scroll, ancient Korean characters style, ominous mood, no English text, no readable text, photorealistic close-up, 16:9
    3. Old man's hands clasped over his face, oil lamp glow on his shoulders, silhouette of distress, traditional Korean robe, no face visible, 16:9
    4. Sleeping child in traditional Korean blanket, peaceful, dim oil lamp lighting, side angle so face partially obscured, warm and tender mood, 16:9
    5. A scroll with red writing partially unrolled, oil lamp burning blue-tinted, swirling smoke or shadow rising from the parchment, mysterious supernatural atmosphere, photorealistic, 16:9

    ※ 3 대표이미지 프롬프트 (5장)**

    1. Korean herbalist with woven straw basket walking up a misty mountain village path at dawn, autumn leaves, soft morning light, photorealistic, 16:9
    2. Bedridden elderly Korean man covered in traditional blanket, sweating, dim hut interior, oil lamp on low table, partial view from above so face obscured, photorealistic, 16:9
    3. Close-up of medicinal Korean herbs spread on white cloth - licorice root, balloon flower root, bellflower, traditional medicine atmosphere, photorealistic, 16:9
    4. Steaming pot of dark herbal medicine on a traditional Korean stone hearth, herbs floating, soft kitchen light, photorealistic close-up, 16:9
    5. A lone crow perched on a pine branch at sunrise with mist, suggestion of a tall faint shadow standing nearby, eerie, photorealistic, 16:9

    ※ 4 대표이미지 프롬프트 (5장)**

    1. Traditional Korean stone village well in autumn with two thick pine branches crossed over its mouth in an X shape, warning gesture, photorealistic, 16:9
    2. Korean rural village courtyard with a few adults gathered, late morning shadows, traditional hanbok robes, no clear faces, photorealistic, 16:9
    3. A small child in traditional Korean clothing gripping the leg of a tall robed adult, emotional, faces obscured, dim doorway behind, photorealistic, 16:9
    4. Boiling cauldron in a traditional Korean stone kitchen, herbs in dark broth, steam rising, warm firelight, photorealistic close-up, 16:9
    5. Tall dark robed silhouette standing motionless among pine trees at dusk, only outline visible, faint orange glow of an oil lamp from a distant hut, eerie photorealistic,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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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orean herbalist's hands pressing the chest of an unconscious young man on a traditional bed mat, dim hut interior, no clear faces, dramatic photorealistic, 16:9
    2. Multiple Korean rural courtyards with smoking cauldrons of herbal medicine, women in hanbok tending fires, late morning light, photorealistic, 16:9
    3. Two tall red pines at the edge of an autumn forest with a tall dark robed silhouette barely visible between them, eerie atmosphere, photorealistic, 16:9
    4. A clay bowl of dark steaming herbal medicine being poured carefully, weathered hands holding a wooden spoon, traditional Korean kitchen setting, no faces, photorealistic close-up, 16:9
    5. Korean mountain village at sunset, smoke rising from many thatched-roof chimneys, golden light over autumn ridges, photorealistic, 16:9

    ※ 6 대표이미지 프롬프트 (5장)**

    1. Misty white morning over a Korean mountain village, thatched roofs barely visible through fog, autumn leaves on ground, photorealistic, 16:9
    2. Aged hand placing a slender wild ginseng root with long fibrous tendrils into a clay medicine pot, traditional Korean herbalist setting, close-up, photorealistic, 16:9
    3. Bedridden elderly Korean scholar in a traditional study room with stacked Confucian books and brushwriting tools, dim lamp light, no clear face, photorealistic, 16:9
    4. Group of villagers in traditional Korean hanbok crouching around a fallen man, hands extended in concern, dim hut interior, no clear faces, photorealistic emotional, 16:9
    5. Boiling clay pot of dark herbal medicine on a stone hearth, vigorous steam rising, urgent firelight, traditional Korean kitchen, photorealistic close-up, 16:9

    ※ 7 대표이미지 프롬프트 (5장)**

    1. Korean rural village at midnight, single thatched-roof hut with warm oil lamp glow through paper window, dark pine forest silhouette behind, photorealistic, 16:9
    2. Tall dark robed figure with traditional Korean wide-brimmed black hat standing at the threshold of a rural Korean courtyard, only silhouette visible, otherworldly aura, photorealistic, 16:9
    3. A black scroll partially unrolled in dark gloved hands, faint blue-white glow on a single line of red Korean calligraphy, mysterious supernatural close-up, no readable text, photorealistic, 16:9
    4. Korean mountain village at first light of dawn, mist clearing over autumn ridges, soft golden glow, sense of peace and renewal, photorealistic, 16:9
    5. Wooden Korean village gate slightly open onto a misty pine forest path at dawn, footprints fading into the fog, peaceful and reverent atmosphere, photorealistic,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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