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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라대왕도 울고 간 효녀 심청의 진짜 이야기

    태그 (Ta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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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Hooking Ment)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은 정말 효녀였을까?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간 그녀의 선택은 과연 숭고하기만 했을까? 우리가 몰랐던 심청의 진짜 속마음, 그리고 용궁에서 벌어진 기묘하고 은밀한 이야기. 저승사자가 직접 염라대왕께 고하는 효녀 심청의 숨겨진 진실이 지금 밝혀집니다.

    디스크립션 (Description)

    모두가 효녀라 칭송하는 심청. 하지만 지독한 가난과 아버지라는 멍에에 갇힌 한 여인의 절망을 아는 이는 없었다. 인당수 깊은 곳,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죽음이 아닌 용왕이라는 또 다른 운명. 숭고한 희생 뒤에 가려졌던 그녀의 진짜 욕망과 슬픔. 염라대왕도 눈물 흘린 심청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습니까?

    ※ 지독한 가난과 멍에

    대왕이시여, 이승의 기록을 살피는 소신 저승사자, 오늘 밤에는 염라의 전당에 앉아계신 대왕께 한 여인의 명부를 올릴까 하나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저 ‘효녀 심청’이라 기록하고 칭송하지만, 소신이 들여다본 그 아이의 삶은, 그 검은 먹으로 쓰인 단 네 글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핏빛 슬픔과 욕망으로 얼룩져 있었나이다. 이야기는 갯바람이 썩은 생선 비린내를 몰고 와 지붕 낮은 초가를 할퀴는 황해도 어느 가난한 마을에서 시작됩니다. 그곳에 눈먼 아비 심학규, 세상 사람들은 그를 심 봉사라 불렀지요, 그리고 그의 딸 청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청이를 칭송했습니다. 앞 못 보는 아비를 위해 동냥젖을 얻어먹으며 자라났고, 계집아이의 몸으로 온갖 궂은일을 마다치 않고 아비를 봉양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의 손은 나이답지 않게 거칠었고, 얼굴에는 늘 그늘이 져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고생의 흔적이자 효심의 훈장이라 여겼습니다. 허나, 대왕이시여. 소신이 본 것은 조금 달랐습니다. 청이의 마음속에는 아비를 향한 지극한 사랑과 함께, 그만큼의 깊은 증오와 절망이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었나이다. 그녀의 아비 심학규는 그저 눈이 먼 불쌍한 늙은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눈먼 세상을 한탄하며 어린 딸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이기적인 사내였고, 세상을 볼 수 없다는 결핍은 술과 노름이라는 또 다른 어둠으로 그를 이끌었습니다. 청이가 삯바느질과 갯벌의 조개잡이로 푼푼이 모아온 돈은 심 봉사의 술값으로 사라지기 일쑤였고, 술에 취한 날이면 그는 앞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청이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습니다. "청아, 내가 눈만 떴어도... 내가 눈만 떴어도 우리 부녀가 이리 살지는 않을 터인데!" 그 한탄은 비수처럼 날아와 청이의 심장에 박혔습니다. '아버지의 눈'. 그것은 청이에게 주어진 벗어날 수 없는 멍에이자, 그녀의 모든 삶을 옭아매는 족쇄였습니다. 그녀는 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하나뿐인 혈육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증오했습니다. 자신의 젊음과 인생을 좀먹고 있는 아버지의 어둠을, 그 끝없는 의존을 말입니다. 어느 여름밤, 청이는 밤늦도록 해진 옷을 기우고 있었습니다. 등잔불은 희미하게 흔들렸고, 방 한쪽에서는 심 봉사가 술에 취해 코를 골며 자고 있었습니다. 청이는 문득 바느질을 멈추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굳은살이 박이고 바늘에 찔려 상처투성이인 손. 이 손으로 평생 아버지를 위해 밥을 짓고, 옷을 기우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이 숨 막히는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그녀는 창밖을 보았습니다. 창밖의 달은 교교하게 빛나고, 멀리서 또래 처녀 총각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웃음소리는 청이가 평생 가져보지 못한 세상의 것이었습니다. 사랑, 연애, 미래에 대한 희망. 그녀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단어들이었습니다. 그 순간, 청이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차라리...'. 차라리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 이 지긋지긋한 가난도, 눈먼 아버지의 한탄도, 자신의 희망 없는 미래도. 그녀는 잠든 아버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주름진 얼굴, 세상의 빛을 잃은 공허한 눈꺼풀. 연민과 원망이 뒤섞인 뜨거운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효심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이 굴레를 만든 아버지를 원망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버릴 수 없는 자기 자신을 혐오하는, 한 여인의 처절한 절규였나이다. 그날 밤, 청이는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죽음만이 이 모든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처럼 느껴졌습니다.

    ※ 공양미 삼백 석이라는 유혹

    운명은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가장 달콤한 얼굴로 찾아오는 법이라고 했던가요. 청이가 죽음이라는 검은 유혹에 잠식되어 가던 어느 날, 남경 뱃사람들이 인당수 제물로 바칠 처녀를 구한다는 소문이 마을에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인당수는 물살이 험하고 풍랑이 잦아, 그곳을 지나는 뱃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처녀를 제물로 바쳐 물의 신, 용왕의 노여움을 달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마을 처녀들은 모두 겁에 질려 문을 걸어 잠갔지만, 그 소문을 들은 청이의 귀는 번쩍 뜨였습니다. 제물로 팔려 가는 처녀의 값은 공양미 삼백 석. 그 엄청난 재물에 대한 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죽음’ 그 자체였습니다. 합법적으로, 그리고 누군가에게 원망받지 않고 이 생을 마감할 수 있는 기회. 바로 그때, 심 봉사가 몽운사라는 절의 화주승에게 속아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약속을 덜컥 해버리고 만 일이 벌어졌습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불전에 맹세부터 해버린 심 봉사는 뒤늦게 후회하며 집으로 돌아와 땅을 치고 울었습니다. "내가 눈을 뜨고 싶은 욕심에... 분수도 모르고 약조를 해버렸구나!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청아!" 심 봉사는 그저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고 있었지만, 그 말을 듣는 청이의 심장은 차갑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공양미 삼백 석. 그리고 죽음. 운명의 두 조각이 완벽하게 맞춰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청이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버지, 걱정 마십시오. 제가 공양미 삼백 석을 마련할 방도가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침착하고 단호했습니다. 그녀는 뱃사람들을 찾아가겠노라고, 자신의 몸을 팔아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드리겠노라고 고했습니다. 심 봉사는 경악하며 그녀를 말렸지만, 그의 만류는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소신이 보기에, 그의 마음 한편에는 '혹시나' 하는 이기적인 희망이 싹트고 있었나이다. 딸의 희생으로 자신의 세상을 되찾을 수 있다는 그릇된 희망 말입니다. 청이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그녀가 뱃사람들을 찾아가 자신의 뜻을 전했을 때, 험상궂은 사내들은 오히려 당황했습니다. 죽음을 자처하는 어린 처녀 앞에서 그들조차 차마 말을 잇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거래는 거래. 그들은 약속대로 공양미 삼백 석을 몽운사에 바쳤고, 청이는 인당수로 떠날 날만을 기다리는 몸이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청이의 효심에 감복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녀의 선택이 얼마나 숭고하고 위대한지를 칭송하며 저마다 옷가지와 음식을 가져와 그녀의 마지막 길을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청이의 진짜 속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효녀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그저 이 생이 너무나도 지긋지긋했던, 절망에 빠진 한 마리 어린 짐승이었을 뿐입니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다는 것은 그녀의 죽음을 정당화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마지막 명분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으로 되었다. 나는 아버지를 위한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누구도 나를 원망하지 않으리라. 아버지는 눈을 뜨고 새로운 삶을 사실 테고, 나는 이 고통스러운 생을 마감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효녀 심청의 가면 뒤에 숨겨진, 그녀의 진짜 마음이었나이다. 떠나기 전날 밤, 청이는 아버지를 위해 마지막 저녁상을 차렸습니다.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려 애썼지만, 숟가락을 드는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심 봉사는 딸의 희생으로 눈을 뜨게 되었다는 기쁨과 죄책감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렸습니다. "청아, 내 딸아..." 그날 밤, 부녀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서로의 숨소리만을 들으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청이는 잠든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효심인가, 아니면 가장 잔인한 복수인가. 아버지는 과연 눈을 뜨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니, 평생 딸을 죽였다는 죄책감 속에서 살아가게 되지는 않을까.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자신을 평생 얽매었던 아버지에게 내리는 가장 완벽한 형벌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대왕이시여, 숭고한 희생이란 이토록 복잡하고 이기적인 감정 위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은 것이었나이다.

    ※ 인당수, 죽음의 바다이자 새로운 시작

    마침내 인당수로 떠나는 날이 밝았습니다. 하늘은 무심하게도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고, 바다는 잔잔하게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습니다. 뱃사람들은 죄를 짓는 사람들처럼 얼굴이 어두웠고, 청이를 배에 태우는 그들의 손길은 조심스러웠습니다. 청이는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녀의 등 뒤로 심 봉사의 처절한 통곡 소리가 들려왔지만, 청이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미련도, 후회도 없었습니다. 오직 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는 안도감만이 그녀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배가 뭍을 떠나 인당수 한가운데로 나아갈수록, 청이의 마음은 역설적으로 평온해졌습니다. 그녀는 뱃전에 서서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았습니다.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어지럽게 흩날렸지만, 그녀의 눈빛은 미동조차 없었습니다. 마침내 배가 멈추고, 뱃사람 중 우두머리가 그녀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가씨... 때가 되었습니다. 부디 용왕님의 노여움을 잠재워주시오." 청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녀는 곱게 차려입은 흰 소복의 옷고름을 매만졌습니다. 죽음 앞에 선 신부와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녀가 뱃전 끝에 서자, 뱃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돌려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청이는 눈을 감았습니다. 아버지의 얼굴, 지긋지긋했던 가난, 그리고 짧았던 생의 모든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제, 끝이다.' 그녀는 한 마리 새처럼 두 팔을 벌리고 망설임 없이 검푸른 바다를 향해 몸을 던졌습니다. 차가운 물이 온몸을 덮치는 순간, 청이는 숨이 턱 막히는 고통과 함께 기묘한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몸은 솜처럼 가벼워졌고, 의식은 아득한 심연으로 끝없이 가라앉았습니다. 눈을 뜰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없는 암흑의 세계. 수압이 온몸을 짓누르고, 차가운 물이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감각이 그녀의 마지막 감각이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녀의 의식이 완전히 끊어지기 직전, 누군가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사방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오며 그녀를 어딘가로 이끌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청이는 부드러운 비단 위에서 눈을 떴습니다. 폐부를 찢을 듯한 고통은 사라지고, 온몸은 따스한 온기에 감싸여 있었습니다. 그녀가 눈을 뜨자,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천장은 거대한 진주와 산호로 장식되어 있었고, 사방의 벽은 영롱한 빛을 내는 보석들로 가득했습니다. 이곳은 죽음의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지상의 어떤 왕궁보다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녀가 몸을 일으키자, 아름다운 옷을 입은 시녀들이 다가와 그녀를 부축했습니다. "깨어나셨습니까, 부인. 용왕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용왕. 그제야 청이는 자신이 인당수 깊은 곳, 용궁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녀가 시녀들을 따라 거대한 전각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옥좌에 한 사내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과는 다른 기묘한 위엄을 풍기고 있었습니다. 길고 검은 머리카락은 물에 젖은 듯 윤기가 흘렀고, 희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피부는 차가운 옥과 같았습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의 눈동자는 인당수의 심연처럼 검고 고요했습니다. 그가 바로 이 바다의 주인, 용왕이었습니다. 용왕이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동굴 속에서 울리는 것처럼 깊고 낮았습니다. "인간의 아이여. 너의 목숨은 이제 나의 것이다." 청이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당당히 그를 마주 보았습니다. 이미 한 번 죽음을 각오했던 그녀에게 더 이상 두려운 것은 없었습니다. "저는 이미 죽은 목숨. 바라시는 대로 하십시오." 그녀의 담담한 태도에 용왕의 눈에 흥미로운 빛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는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인간들의 탐욕과 공포를 보아왔지만, 이처럼 어린 나이에 죽음 앞에서 평온한 인간은 처음이었습니다. "너에게서 깊은 슬픔과 고독의 냄새가 나는구나. 무엇이 너를 죽음으로 이끌었느냐." 용왕의 질문에 청이는 자신의 삶을, 아버지와 가난, 그리고 벗어나고 싶었던 절망을 담담히 털어놓았습니다.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자, 용왕은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그는 옥좌에서 내려와 청이의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차가운 손을 들어 그녀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너의 슬픔이 이 바다를 울리는구나. 이제 너는 나의 여인이 되어 이곳에서 머물게 될 것이다. 지상의 고통은 모두 잊거라."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자, 기묘한 위로였습니다. 죽음을 통해 모든 것을 끝내려 했던 심청. 그녀의 운명은 죽음의 바다 인당수에서, 고독한 신, 용왕을 만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다시 흐르기 시작하고 있었나이다.

    ※ 용왕의 여인, 은밀한 사랑

    대왕이시여, 그리하여 그 아이는 용궁의 주인이신 용왕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지상의 모든 고통을 잊으라는 신의 명령은 달콤했으나, 그것은 또한 벗어날 수 없는 새로운 굴레이기도 하였나이다. 용궁의 삶은 지상의 그것과는 모든 것이 달랐습니다. 굶주림도, 추위도, 고된 노동도 없었습니다. 산호와 진주로 만들어진 방에서 눈을 뜨면 시녀들이 가져오는 영롱한 이슬을 마시고,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해초로 짠 옷을 입었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차갑고 생명이 없었습니다. 따스한 햇볕도, 흙냄새를 품은 바람도, 계절의 변화도 없는 영원한 푸른빛의 세계. 그곳은 거대하고 화려한 무덤과도 같았나이다. 그리고 그 무덤의 주인인 용왕. 그는 인간의 사내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품은 넓었으나 바다처럼 차가웠고, 그의 눈동자는 다정했으나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어 두려웠습니다. 그는 청이에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화려한 보석과 아름다운 옷, 신기한 물고기들이 추는 춤을 보여주었고, 바다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정원을 거닐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인간의 그것과는 달라, 소유에 가까웠습니다. 그는 청이를 ‘나의 여인’이라 불렀지만,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의 기나긴 고독을 달래줄 아름다운 인형처럼, 보석처럼 곁에 두었을 뿐입니다. 청이가 용궁에 온 첫날 밤의 일을 소신은 똑똑히 보았나이다. 거대한 침실은 푸른빛을 내는 야광주로 밝혀져 있었고, 방 안에는 깊은 바다의 냄새와 이름 모를 꽃의 향기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청이는 두려움에 떨며 침상에 앉아 있었고, 용왕은 말없이 그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의 손길이 그녀의 어깨에 닿았을 때, 청이는 얼음장 같은 차가움에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습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이의 온기가 아니었습니다. 용왕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습니다. "두려워 마라. 너는 이제 나의 것이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목덜미와 쇄골을 지날 때, 그것은 입맞춤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소유임을 각인하는 낙인처럼 느껴졌습니다. 청이는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 죽음에 대한 갈망,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이 낯선 운명. 그녀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그의 몸을 받아들였습니다. 그의 품은 거칠지 않았으나 거대했고, 그의 행위는 뜨겁지 않았으나 집요했습니다. 청이는 고통도, 쾌락도 아닌, 그저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는 조각배처럼 자신의 몸이 흔들리는 것을 느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청이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 그의 뺨 위로 떨어졌습니다. 그 뜨거운 액체에 용왕의 움직임이 처음으로 멈칫했습니다. 그는 수천 년의 세월 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뜨거움’이라는 감각에 당황한 듯,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 눈물을 흘리는 가엾은 인간 아이의 얼굴이 비쳤습니다. 그 순간, 용왕의 차가운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그녀를 그저 소유물이 아닌, 상처 입은 하나의 생명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그녀를 다그치지 않고, 그저 부서지기 쉬운 보석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습니다. 그날 이후, 둘의 관계는 미묘하게 변해갔습니다. 용왕은 여전히 서툴렀지만, 청이에게 인간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달라 청하기도 하고, 그녀가 슬픈 표정을 지을 때면 말없이 곁을 지켜주기도 했습니다. 청이 역시 그의 차가움 뒤에 숨겨진 지독한 고독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영겁의 시간을 홀로 살아온 신의 외로움. 그것은 아비의 곁에서 느꼈던 자신의 외로움과 닮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고독을 알아본 두 존재는 차가운 용궁 속에서 기묘한 연정을 키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뜨거운 사랑은 아니었으나,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연민이자, 깊은 바닷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는 유일한 동반자로서의 애틋함이었나이다.

    ※ 지상으로 향하는 연꽃

    용궁에서의 시간은 지상과는 다르게 흘렀습니다. 하루가 한 해 같기도 하고, 한 해가 하루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의미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청이는 더 이상 굶주리지도, 고된 노동에 시달리지도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종류의 슬픔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움이었습니다. 자신을 평생 옭아맸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흙냄새와 비린내가 뒤섞여 있던 고향 마을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뜨거운 햇살 아래서 땀 흘리던 그 치열했던 삶 자체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아무리 화려한 보석도 지상의 들꽃 한 송이만 못했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아버지와 나눠 먹던 거친 보리밥 한 그릇만 못했습니다. 그녀는 웃음을 잃어갔고, 종종 먼 수면 위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용왕은 그런 그녀의 변화를 모를 리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지만, 이 인간 여인의 마음속에 자리한 근원적인 슬픔만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청이를 거대한 수정 거울이 있는 방으로 데려갔습니다. 그 거울은 지상의 모든 것을 비추는 신비한 물건이었습니다. "네가 그리워하는 것을 보여주겠다." 용왕이 말하자, 거울 표면에 뿌연 안개가 걷히며 지상의 풍경이 나타났습니다. 청이는 숨을 죽이고 거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거울 속에는 그녀가 떠나온 마을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그녀의 아비 심 봉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정말로 눈을 뜨고 있었습니다. 몽운사의 약속대로, 청이의 희생으로 그는 세상을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기쁨 대신 깊은 수심과 죄책감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양반 행세를 하지 않고, 남루한 옷을 입은 채 딸의 이름을 부르며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습니다. "청아, 내 딸아! 이 눈을 뜨게 하려고 네가... 이 애비가 죄인이다!" 그는 딸의 목숨과 맞바꾼 세상을 저주하며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우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앞을 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의 무게에 눌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더듬거리며 걷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청이의 가슴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이 아버지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지옥으로 밀어 넣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녀의 희생은 숭고한 효심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이기적인 도피였을 뿐입니다. "아버지... 아버지!" 청이는 거울을 붙잡고 오열했습니다. 그녀의 눈물이 바닥에 떨어져 차가운 옥구슬로 변해 굴러다녔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용왕의 마음에도 거대한 파도가 일었습니다. 그는 이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는 그녀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를 붙잡아두는 것이 자신의 이기심이며, 그녀를 위한 진정한 사랑은 그녀를 놓아주는 것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용왕은 오열하는 청이를 뒤에서 조용히 끌어안았습니다. "가거라." 그의 목소리는 바다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것처럼 낮게 울렸습니다. "너는 더 이상 이곳의 사람이 아니다. 너의 슬픔이 이 바다를 병들게 하는구나. 너의 자리로 돌아가거라." 청이는 눈물을 흘리며 그를 돌아보았습니다. "허나... 어찌하면 제가..." "내가 너를 세상으로 다시 보내주겠다." 용왕은 청이의 손을 잡고 용궁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비밀의 화원으로 그녀를 이끌었습니다. 그곳에는 세상을 모두 담을 만큼 거대한 연꽃 한 송이가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 연꽃이 너를 지상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이 안에 들어가 잠이 들거라. 눈을 뜨면, 너는 그리워하던 세상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청이는 마지막으로 용왕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눈동자에서 처음으로 인간적인 슬픔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의 차가운 뺨에 손을 대고 속삭였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고독과... 당신의 사랑을." 청이가 연꽃 안으로 들어가 몸을 눕히자, 거대한 꽃잎이 부드럽게 그녀를 감싸 안았습니다. 용왕은 마지막으로 닫히는 꽃잎을 바라보며, 수천 년 만에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지나이다. 신의 눈물은 바다를 흔들었고, 거대한 연꽃은 그 파도를 타고 아주 천천히, 지상을 향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 염라대왕의 눈물

    그렇게 지상으로 돌아온 연꽃 한 송이가 인당수 위를 떠다니는 것을, 마침 그곳을 지나던 황제의 배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다시없을 기이하고 거대한 연꽃에 감탄한 황제는 그것을 궁으로 가져가게 했습니다. 며칠 밤낮으로 향기만 내뿜던 연꽃이 환한 달빛을 받자 마침내 꽃잎을 활짝 열었고, 그 안에서는 용궁의 이슬을 먹고 자라 지상의 여인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워진 청이가 잠에서 깨어나듯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 기적 같은 이야기는 순식간에 온 나라에 퍼졌고, 황제는 하늘이 내린 인연이라 여기며 그녀를 황후로 맞이하였습니다. 황후가 된 청이는 지극한 효심으로 아버지를 찾고자, 나라의 모든 맹인들을 위한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잔치 마지막 날, 행색이 남루하고 죄책감에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한 늙은 맹인이 잔치에 찾아왔으니, 그가 바로 심 봉사였습니다. 딸을 판 돈으로 눈을 떴으나, 그 죄책감에 다시 마음의 눈을 감고 방황하던 그는 소문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잔치를 찾았던 것입니다. 청이는 수많은 맹인들 속에서도 한눈에 아버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 하고 외치자, 그토록 그리워하던 딸의 목소리에 심 봉사는 "내 딸 청이가 살아있었구나!"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그 순간 거짓말처럼 그의 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녀의 기적 같은 재회와 황후가 된 효녀의 이야기에 감동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모든 것이 행복하게 끝난, 완벽한 권선징악의 결말이라고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왕이시여, 소신이 본 그들의 재회는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들의 눈물은 기쁨의 눈물인 동시에, 서로에게 남긴 깊은 상처를 확인하는 아픔의 눈물이었습니다. 청이는 황후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밤이 되면 창밖의 달을 보며 차가운 바닷속, 홀로 남겨진 고독한 신을 그리워하며 남몰래 눈물을 훔쳤고, 심 봉사는 딸의 곁에서 행복했지만, 자신의 이기심이 딸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과거를 평생 속죄하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이것이 소신이 본 효녀 심청 이야기의 전말입니다. 세상에 알려진 그녀의 효심은, 사실 지독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한 여인의 처절한 절규였습니다. 그녀의 희생은 숭고한 결단이 아닌, 이기적인 도피였습니다. 그녀가 얻은 구원은 풍요로운 용궁이라는 또 다른 감옥이었으며, 그녀가 맞이한 행복한 결말은 평생 지울 수 없는 그리움과 죄책감을 대가로 한 것이었나이다. 그녀는 가난이라는 지상의 지옥에서, 고독이라는 용궁의 지옥으로, 그리고 죄책감이라는 마음의 지옥으로 끝없이 옮겨 다닌, 가련한 영혼이었을 뿐입니다. 이 아이의 삶에 과연 행복이란 존재하기는 했던 것일까요. 이 아이의 명부를 살피고 또 살펴본 소신은, 감히 대왕께 여쭙고 싶나이다. 이토록 기구하고 슬픈 운명을 감당해야 했던 이 아이의 죄는 과연 무엇이었나이까.

    유튜브 엔딩멘트

    저승사자가 고한 효녀 심청의 진짜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나요? 우리가 알던 숭고한 희생 뒤에는 이처럼 한 여인의 처절한 절망과 슬픔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어쩌면 모든 위대한 이야기의 이면에는, 이처럼 알려지지 않은 눈물이 숨어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태연히 웃었던 한 조선 선비의 이야기, 그 웃음에 담긴 놀라운 비밀을 저승사자가 직접 파헤쳐 보겠습니다. (출처: 용재총화) 구독과 알림 설정으로 저승사자의 다음 보고를 놓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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