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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실록의 저승사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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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과 야담집에 기록된 저승사자의 모습을 재구성한 오디오 드라마입니다. 흰 도포에 검은 갓을 쓰고 명부를 들고 다니는 현대적 이미지와 달리, 조선시대 사람들이 실제로 목격했다고 전해지는 저승사자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죽음을 앞둔 자들에게 나타났던 신비로운 존재, 저승사자의 실체를 찾아 떠나는 여정에 함께하세요.
후킹멘트
당신은 혹시 죽음의 사자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저승사자는 상상 속 존재가 아닌, 실제로 목격되는 존재였습니다. 왕조실록에는 임금들의 임종 직전 나타난 검은 그림자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고, 민간에서는 청포를 입은 키 큰 남자나 흰 머리의 노인, 때로는 까마귀나 흰 나비의 모습으로 죽음을 알렸다고 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저승사자와 거래했다는 무당의 이야기와 저승사자를 속이려 했던 사람들의 기묘한 풍습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리 곁에 언제나 존재하는 죽음의 사자, 그 신비로운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 저승사자의 기원과 조선시대 문헌에 기록된 모습
깊은 밤, 촛불 하나 켜진 방 안에서 할머니의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저승사자가 온다... 저승사자가 온다..." 어린 시절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두려움에 떨었지요. 서쪽 하늘에서 날아온다는 까마귀 한 마리, 창가에 앉은 흰 나비 한 마리에도 우리 선조들은 죽음의 그림자를 느꼈습니다.
동양의 저승사자는 중국 도교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선의 저승사자는 중국의 그것과는 사뭇 달랐지요. 중국의 저승차사는 우두마면(牛頭馬面)이라 하여 소의 머리와 말의 얼굴을 한 괴물의 형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문헌에는 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저승사자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홍만종의 '순오지'에는 "저승에서 온 사자는 검은 의복에 검은 갓을 쓰고 나타나, 명부를 들고 혼을 데려간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동국세시기'에는 "저승사자는 청색 도포를 입고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진다"는 기록이 있지요. 오늘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하얀 도포에 검은 갓을 쓴 저승사자의 이미지는 사실 현대에 재구성된 모습에 가깝습니다.
조선시대 문인들의 시문집을 살펴보면, 저승사자를 직접 목격했다는 기록들이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는 "병석에 누운 지 사흘째 되던 날, 방 구석에 키 큰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사라졌고, 그날 밤 이웃집 노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저승사자가 단순히 죽음을 알리는 존재가 아니라, 때로는 협상이 가능한 존재로 여겨졌다는 점입니다. '청구야담'에는 "병으로 죽음을 앞둔 선비가 저승사자와 술을 나누며 자신의 수명을 연장해달라고 부탁했고, 저승사자는 그의 효심에 감동하여 3년의 시간을 더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저승사자는 또한 죽음의 순간만이 아니라 꿈속에서도 나타난다고 믿어졌습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임종을 앞둔 이가 꿈에서 검은 갓을 쓴 관리를 만났는데, 그가 바로 저승사자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꿈에서 저승사자를 만나면 그것은 곧 죽음의 전조라 여겨져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지요.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저승사자는 상상 속 존재가 아닌, 실제로 목격되는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저승사자의 모습이 언제나 일정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로는 관리의 모습으로, 때로는 노인의 모습으로, 때로는 까마귀나 나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왕조실록에는 어떤 저승사자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을까요?
※ 왕조실록에 기록된 왕과 왕족의 임종 시 나타난 저승사자
왕조실록은 조선시대 역사의 가장 중요한 기록입니다. 그 엄중한 기록 속에도 저승사자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특히 왕과 왕족의 임종을 앞두고 나타났다는 기이한 현상들은 저승사자의 출현으로 해석되곤 했습니다.
세종실록 121권에는 세종의 임종을 앞두고 "밤중에 검은 그림자가 대궐 위를 날아다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사관은 이를 불길한 징조로 기록했지요. 세종은 그로부터 사흘 후 승하하셨습니다. 또한 명종실록에는 명종의 승하 직전 "창문 밖에 검은 새가 울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검은 새는 저승사자의 화신으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숙종실록에는 더욱 직접적인 저승사자 목격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숙종의 승하를 앞두고 "임금의 침소 주변을 검은 도포를 입은 남자가 서성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숙종은 이 일이 있고 나서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어의들은 이 검은 옷의 남자를 저승사자로 해석했습니다.
영조실록에는 더욱 구체적인 저승사자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영조의 승하를 앞두고 "창가에 푸른 도포를 입고 높은 갓을 쓴 남자가 서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남자는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다가 영조의 눈에만 보였다고 하니, 이것이 바로 저승사자였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놀라운 것은 왕족이 아닌 일반 신하들의 죽음에 관한 기록에도 저승사자가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선조실록에는 명재상 이항복의 임종을 앞두고 "그의 집 마당에 키 큰 남자가 나타났다 사라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항복은 그날 밤 세상을 떠났습니다.
또한 왕조실록에는 저승사자를 물리치려 한 의식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 정조실록에는 "세자의 병환 중에 무당을 불러 저승사자를 물리치는 의식을 거행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의식은 '저승사자 퇴치 의식'이라 불렸으며, 양초를 켜고 북을 치며 저승사자를 쫓아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저승사자의 출현을 실제 사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저승사자를 직접 만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이 야담집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저승사자와 대화를 나누고, 심지어 협상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민간에서는 어떤 저승사자의 모습이 전해 내려왔을까요?
※ 민간에서 전해지는 저승사자 목격담과 다양한 모습
해가 지고 달이 떠오르는 시간, 마을 어귀에 한 노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60년 전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지요. "내가 열다섯 살 되던 해, 병으로 죽음을 앞두었을 때였네. 방 한구석에 키 큰 사내가 서 있는 걸 보았지. 그는 푸른 도포를 입고 검은 갓을 쓰고 있었는데, 손에는 붉은 명부를 들고 있었네. 내 이름을 부르더니 '따라오라'고 하더군. 하지만 나는 따라가지 않았지. 그렇게 사흘을 버티니 그 사내는 사라졌고, 나는 살아남았네." 이처럼 민간에서는 저승사자를 직접 목격했다는 증언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임진록과 같은 전쟁기록에도 저승사자 목격담이 남아있습니다. "전쟁터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갈 때, 검은 옷을 입은 수십 명의 사자들이 전장을 누비며 혼을 거두어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대역병이 돌았을 때도 "마을 곳곳에 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는 기록이 있지요.
흥미로운 것은 조선시대 저승사자의 모습이 지역마다 조금씩 달랐다는 점입니다. 경기도 지역에서는 주로 검은 도포에 붉은 명부를 든 모습으로, 전라도 지역에서는 청색 도포에 흰 명부를 든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함경도 지역에서는 저승사자가 백발의 노인으로 나타난다는 이야기가 많았고, 제주도에서는 까마귀나 흰 나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믿었습니다.
'어우야담'에는 저승사자를 만난 한 선비의 이야기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밤중에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키 큰 사내가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을 저승사자라 소개하며 '때가 되어 데리러 왔다'고 말했다. 선비는 학문을 마치지 못했으니 3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간청했고, 저승사자는 그의 정성에 감동하여 허락했다. 3년 후 정확히 같은 날, 그 사내가 다시 찾아왔고 선비는 평온히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또 다른 야담집인 '동패낙송'에는 저승사자의 실수로 잘못 데려가려다 돌려보낸 사람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승사자가 홍판서를 데려가려 했으나, 명부를 확인해보니 홍서방을 잘못 데려온 것이었다. 저승사자는 사과하며 그를 돌려보냈고, 그 사람은 죽었다가 살아난 경험을 모두에게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민간에서는 저승사자를 피하는 방법도 전해 내려왔습니다. "저승사자는 붉은 색을 두려워하니 붉은 천을 문에 걸어두라", "저승사자는 개 짖는 소리를 무서워하니 병자가 있는 집에 개를 키워라", "저승사자는 북소리에 놀라 달아나니 병자의 방 앞에서 북을 쳐라" 등의 방법이 있었습니다.
특히 저승사자가 온 집에는 특유의 냄새가 난다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청구야담'에는 "저승사자가 오면 썩은 나무 냄새가 난다"는 기록이 있고, '동국세시기'에는 "저승사자가 오면 썩은 생선 냄새가 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처럼 조선시대 사람들은 죽음의 사자가 실제로 존재하며, 그들과 만날 수도 있다고 믿었습니다.
※ 저승사자를 피하기 위한 민간 풍습과 의식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조선시대 사람들은 저승사자를 속이거나 지연시키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그들이 발전시킨 다양한 풍습과 의식들은 오늘날까지도 일부 지역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방법은 '이름 바꾸기'였습니다. 저승사자는 명부에 적힌 이름으로 사람을 찾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병에 걸리면 이름을 바꾸거나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해동잡록'에는 "중병에 걸린 사람은 이름을 바꾸어 저승사자를 혼란스럽게 해야 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가문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두 개의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는데, 하나는 공식적인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저승사자를 속이기 위한 이름이었습니다.
또 다른 방법은 '얼굴 가리기'였습니다. 저승사자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확인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중병에 걸린 사람의 얼굴에 천을 덮거나 도깨비 탈을 씌우기도 했습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병자의 얼굴에 붉은 천을 덮어 저승사자가 알아보지 못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는 '저승사자 쫓기' 의식이 있었습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무당이 북을 치고 방 안에 소금을 뿌리며 저승사자를 쫓아내는 의식을 거행했다"고 합니다. 이 의식은 주로 밤에 진행되었으며, 방 네 구석에 양초를 켜고 무당이 춤을 추며 저승사자를 물리치는 주문을 외웠습니다.
특히 제주도에서는 '영감놀이'라는 특별한 의식이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를 상징하는 가면을 쓴 사람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죽을 사람을 찾는 놀이인데, 이를 통해 저승사자의 힘을 약화시킨다고 믿었습니다. '탐라지'에는 "영감놀이를 하면 그해 마을에 죽음이 적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대체물 바치기'도 흔한 방법이었습니다. 저승사자에게 사람 대신 동물이나 인형을 바치는 것인데, 주로 닭이나 돼지를 사용했습니다. '청장관전서'에는 "병자의 방 앞에 닭을 매달아 저승사자가 그것을 데려가게 했다"는 기록이 있고, '해동잡록'에는 "짚으로 만든 인형에 병자의 옷을 입혀 문 앞에 두면 저승사자가 그것을 데려간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더 특이한 방법으로는 '저승길 막기'가 있었습니다. 저승으로 가는 길을 물리적으로 막아버리는 것인데, 주로 병자의 집 문턱에 가시나무를 심거나 십자가를 그려놓았습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병자의 집 문에 가시나무 가지를 걸어두어 저승사자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저승사자 달래기'도 시도했습니다. 저승사자에게 음식과 술을 바치고 정중히 시간을 달라고 부탁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청구야담'에는 "병자의 가족이 상을 차려 저승사자를 대접하고 1년의 시간을 더 달라고 빌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풍습과 의식들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절박함과 저승사자를 실존하는 존재로 여겼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저승사자와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다고 여겨졌던 무당들은 저승사자를 어떻게 다루었을까요?
※ 무당과 저승사자의 관계, 저승사자와 거래했다는 전설
달빛이 창문으로 스며드는 깊은 밤, 산속 작은 굿당에서는 한 무당이 방울소리와 함께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세상과 저승을 오가는 중재자로서, 저승사자와 대화할 수 있다고 여겨졌지요. 조선시대 무당들은 어떻게 저승사자와 관계를 맺었을까요?
무당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를 연결하는 유일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해동잡록'에는 "무당은 저승길을 알고 저승사자와 대화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강신무(降神巫)라 불리는 무당들은 저승사자의 혼을 자신의 몸에 받아 그의 목소리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동국세시기'에는 특별한 무당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평양의 문씨 무당은 저승사자의 아내라 자처하며, 누가 언제 죽을지 정확히 예언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녀는 저승사자와 매일 밤 만나 누구를 데려갈지 상의한다고 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두려워하며 선물을 바쳤다고 합니다.
또한 '청구야담'에는 "저승사자와 계약을 맺은 무당이 있어, 그녀가 굿을 해주면 3년간 저승사자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무당은 특별한 부적을 만들어 병자의 방에 붙였는데, 그 부적은 저승사자가 읽을 수 없는 글자로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황해도에서는 '만신굿'이라는 특별한 굿이 있었습니다. 이는 저승사자를 직접 불러내어 협상하는 의식이었습니다. '해동잡록'에 따르면, "만신굿에서 무당은 저승사자로 분장하고 나타나, 병자의 가족과 협상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이 협상에서는 주로 재물이나 가축을 대가로 병자의 목숨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일부 무당들이 저승사자의 명부를 훔쳐봤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우야담'에는 "전주의 한 무당이 굿을 하던 중 저승사자의 명부를 잠시 훔쳐보고, 마을 사람들의 수명을 알려주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무당은 나중에 저승사자에게 붙잡혀 갑자기 죽었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무당과 저승사자의 관계가 민간신앙으로 더욱 발전했습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무당들이 자신의 신당에 저승사자 그림을 걸어두고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그림 속 저승사자는 검은 도포에 붉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손에는 명부와 칼을 들고 있었다고 합니다.
저승사자와 무당의 관계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사자밥'이라는 풍습입니다. 무당들은 병자의 집에서 굿을 할 때 사자밥이라 하여 특별한 음식을 차려놓았습니다. '청장관전서'에는 "사자밥은 메밀로 만든 떡과 물고기, 그리고 술로 구성되며, 이를 먹은 저승사자는 흡족해하여 병자를 놓아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무당들은 저승사자에게 바치는 특별한 주문도 알고 있었습니다. '해동잡록'에는 "무당이 외우는 사자주문은 저승사자를 불러내거나 물리치는 강력한 힘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주문은 매우 비밀스럽게 전해져 내려왔으며, 무당이 될 때 스승에게서 직접 전수받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조선시대 무당들은 저승사자와 특별한 관계를 맺으며,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은 저승사자를 두려워하면서도 그와 소통하고 협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저승사자에 대한 믿음은 현대에 어떻게 이어지고 있을까요?
※ 현대까지 이어지는 저승사자 관련 전설과 그 의미
가을비가 내리는 어느 날, 서울의 한 고서점에서 노부인이 오래된 책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그 책에는 저승사자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요.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날,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창문 밖에 서 있었다고 하셨어요." 노부인의 이야기처럼, 저승사자에 대한 믿음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민속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저승사자에 대한 이야기는 20세기 중반까지도 농촌 지역에서 활발히 전해졌습니다. 특히 전라남도와 경상북도 산간 지역에서는 1970년대까지도 저승사자를 물리치는 의식이 행해졌다고 합니다. '한국민속대관'에는 "영천의 한 마을에서는 중병에 걸린 노인의 방 문 앞에 닭을 매달고 저승사자 퇴치 의식을 거행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현대 의학이 발달하면서 저승사자에 대한 직접적인 믿음은 줄어들었지만, 문화적 상징으로서의 저승사자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습니다. 현대 소설, 드라마, 영화에서 저승사자는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합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저승사자'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가 인기를 끌었는데, 이는 죽음에 대한 현대인의 불안과 호기심을 반영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현대 미디어에 등장하는 저승사자의 모습이 조선시대의 기록과 상당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현대 작품에서는 주로 검은 도포에 갓을 쓴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조선시대의 저승사자는 청색 도포를 입거나 노인, 까마귀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민간 신앙이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변화로 보입니다.
또한 현대 심리학에서는 저승사자 목격담을 임종을 앞둔 사람들의 심리적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임종 경험 연구'에 따르면, 죽음을 앞둔 환자의 약 30%가 자신을 데리러 온 존재를 보았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는 문화적 배경에 따라 천사, 저승사자, 돌아가신 가족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민속학적 관점에서 저승사자는 죽음이라는 불가피한 현실을 인격화한 존재입니다. '한국민속학연구'에는 "저승사자 이야기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죽음을 하나의 여정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심리적 기제"라고 설명합니다. 죽음을 데리러 오는 존재가 있다는 믿음은 죽음을 단순한 끝이 아닌, 다른 세계로의 이동으로 인식하게 합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최근 호스피스 의료 현장에서 저승사자 이야기가 재조명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부 호스피스 의사들은 임종을 앞둔, 특히 어린이 환자들에게 저승사자를 친절한 안내자로 재해석하여 설명합니다. "저승사자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너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할 친구"라는 설명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또한 현대 불교와 무속에서도 저승사자는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49재나 진오기 굿에서는 저승사자에게 망자를 잘 인도해달라는 의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저승사자가 단순히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자로 여겨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저승사자는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화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모습과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두려움을 반영하는 상징으로서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합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는 저승사자를 만나게 될 테지만, 그때까지 우리는 이 신비로운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며 죽음의 의미를 찾아갈 것입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저승사자의 실체를 찾아 떠난 여정,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저승사자는 단순한 상상 속 존재가 아닌, 실제로 목격되고 때로는 협상까지 가능한 실존하는 존재였습니다. 검은 도포를 입은 관리의 모습, 푸른 옷을 입은 키 큰 남자, 백발의 노인, 때로는 까마귀나 흰 나비의 모습으로 나타나 사람들의 혼을 데려갔다고 믿어졌지요.
우리는 이런 저승사자를 피하기 위해 이름을 바꾸고, 얼굴을 가리고, 대체물을 바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무당들은 저승사자와 대화하고 협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여겨졌고, 이러한 믿음은 현대까지도 문화적 상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초립동이 온다: 조선시대 아이 모습의 저승사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어린아이 모습으로 나타나 사람들을 저승으로 데려간다는 특별한 형태의 저승사자가 등장합니다. 이 귀여운 모습의 사자가 실은 가장 무시무시한 존재였다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한 아이의 모습을 한 저승사자는 어떤 사람들을 데려갔을까요? 다음 이야기에서 그 신비로운 비밀을 함께 풀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과 좋아요, 구독은 저희에게 큰 힘이 됩니다. 다음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