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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의 밥맛을 잊지 못해 몰래 내려와 국밥을 훔쳐먹다 걸린 저승사자, 욕쟁이 할머니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고 밥값 대신 설거지를 하고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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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
조선 영조 시절, 충청도 어느 장터 국밥집에서 새벽마다 솥 뚜껑이 열려 있고, 국물이 반 동이씩 줄어드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쥐도 아니고, 도둑도 아닙니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발자국 하나 없었습니다. 나흘째 되던 새벽, 국밥집 주인 봉순 할머니가 부엌에 숨어서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목격한 것은, 검은 갓에 검은 도포를 걸친 키 여덟 자짜리 사내가 솥 앞에 쪼그리고 앉아 국물을 후루룩 들이키고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저승사자였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기절했을 겁니다. 그런데 봉순 할머니는 기절은커녕, 부엌 한쪽에 놓아둔 떡갈나무 국자를 들더니 그 사내의 등짝을 후려갈겼습니다. 대체 이승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에게 국자를 휘두른 할머니는 누구였으며, 죽음을 관장하는 저승사자는 왜 밥맛에 미쳐 이승까지 내려온 걸까요?
※ 1 — 충격 투하: 새벽 부엌의 도둑
충청도 홍주 땅, 오일장이 서는 장터 한복판에 봉순이네 국밥집이 있었습니다. 초가지붕 낮은 처마 아래 가마솥 두 개가 나란히 걸려 있고, 그 솥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새벽안개와 뒤섞여 장터 입구까지 흘러가는 집이었습니다. 소뼈를 열두 시진 고아 만든 국물은 한 사발에 엽전 두 닢이었는데, 그 한 사발을 먹으려고 이웃 고을에서 반나절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을 만큼 이름이 나 있었습니다. 봉순 할머니는 올해 예순여덟이었습니다. 허리는 활처럼 굽었고, 왼쪽 눈은 백태가 껴서 반쯤 감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목소리만큼은 장터 끝에서 끝까지 울릴 만큼 우렁찼고, 한번 입을 열면 양반이고 관리고 상관없이 상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장터 사람들은 할머니를 '봉순 마누라'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욕보 할매'라 불렀습니다. 욕을 보따리째 지고 다닌다 하여 붙은 이름이었습니다.
그런 할머니에게 이상한 일이 생긴 것은 가을 들녘에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던 팔월이었습니다. 첫날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전날 밤 솥에 가득 채워 놓은 국물이 아침에 보니 두어 사발 정도 줄어 있었습니다. '바람이 세더니 증발이 좀 되었나 보다.' 할머니는 혀를 한 번 차고 말았습니다. 이튿날도 같았습니다. 이번에는 국물만 준 것이 아니라 솥 옆에 쌓아 놓은 파와 마늘 다진 것이 한 줌 사라져 있었습니다. 셋째 날, 할머니는 눈이 뒤집혔습니다. 솥 뚜껑이 비스듬히 열려 있었고, 국물이 반 동이 넘게 빠져 있었으며, 가마솥 앞바닥에 국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 있었는데 그 자국이 사람 발 크기 두 배는 되는 흔적으로 찍혀 있었습니다. 문은 안에서 걸어 잠근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창문 하나 열리지 않았습니다. 쥐구멍으로 드나들기에는 그 발자국이 너무 컸습니다.
봉순 할머니의 성정을 아는 사람은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할머니는 그날 저녁, 솥에 국물을 가득 끓여 놓고 부엌 한쪽 장독 뒤에 몸을 숨겼습니다. 오른손에는 떡갈나무로 깎은 국자가 들려 있었고, 왼손에는 부싯돌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자시 초, 한밤중이 넘었습니다. 아무 기척이 없었습니다. 축시가 지나고, 인시가 다가올 무렵이었습니다. 할머니 눈앞의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부엌 한가운데 온도가 뚝 떨어지더니 입김이 보일 만큼 차가워졌고, 가마솥 위로 푸르스름한 빛이 실처럼 한 줄기 내려오는가 싶더니 검은 도포 자락이 아무 소리 없이 펼쳐졌습니다. 키가 여덟 자는 되어 보이는 사내였습니다. 검은 갓, 검은 도포, 검은 행전까지 온몸이 칠흑이었는데, 유독 얼굴만 달빛보다 희었습니다. 그 사내가 솥 뚜껑을 들어 옆에 놓고, 허리를 깊이 숙여 국물에 코를 가까이 댔습니다. 길게 한 번 들이마신 다음, 품에서 나무 사발 하나를 꺼내 국물을 퍼 담았습니다. 첫 모금을 입에 넣는 순간, 그 사내의 창백한 얼굴에 생전 처음 보는 표정이 스쳤습니다. 눈이 질끈 감기고, 어깨가 축 내려가고,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행복한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이놈아!" 봉순 할머니가 장독 뒤에서 튀어나왔습니다. 부싯돌을 쳐서 불을 붙인 기름 등잔이 부엌을 환히 밝혔고, 오른손의 떡갈나무 국자가 바람을 가르며 사내의 등짝을 내리쳤습니다. 퍽. 둔탁한 소리가 울렸습니다. 키 여덟 자짜리 사내가 국물을 뿜으며 앞으로 고꾸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일어난 일은, 이승의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광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몰랐습니다. 이 새벽 부엌에서 벌어진 한 대의 국자질이 이승과 저승 사이에 어떤 파란을 일으킬지.
※ 2 — 시간을 되돌린다: 밥 한 그릇의 기억
이야기의 시작은 사흘 전이 아닙니다. 오십 년 전입니다.
봉순이라는 이름의 열여덟 살 처녀가 홍주 장터에 처음 발을 디딘 날이었습니다. 맨발이었습니다. 어깨에는 보따리 하나가 걸쳐 있었는데, 그 안에 든 것이라고는 어머니가 쓰던 떡갈나무 국자 하나와 소금 한 줌이 전부였습니다. 고향은 서산 바닷가 어느 포구였습니다. 아버지는 봉순이가 다섯 살 되던 해에 고기잡이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그 뒤로 열세 해를 홀로 버티다 그해 봄 기침을 참지 못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말이 있었습니다. "봉순아,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사는 거여. 밥 짓는 사람은 절대 굶지 않는다." 봉순은 그 말만 가슴에 품고 무작정 장터로 걸어왔습니다.
처음에는 국밥집이 아니었습니다. 남의 집 부엌에서 물을 길어다 주고, 상을 닦고, 땔감을 패서 동전 몇 닢을 모았습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장터 한쪽 버드나무 아래에 솥 하나를 걸었습니다. 소뼈를 구할 돈이 없어서 닭 뼈를 삶았고, 반찬이라 할 것도 없이 소금에 절인 무 한 쪽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도 장터 짐꾼들이 하나둘 찾아왔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봉순의 국물에는 정성이라는 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뼈를 고르는 손이 느렸고, 불을 조절하는 눈이 간절했고, 국물을 뜨는 국자에 어머니의 체온이 배어 있었습니다.
서른 살, 봉순은 초가 한 칸을 얻어 제대로 된 국밥집을 차렸습니다. 그 무렵 소뼈를 구할 수 있게 되었고, 국물은 뿌옇게 우러나왔으며, 한 사발 값을 엽전 두 닢으로 정했습니다. 이건 일부러 싸게 잡은 것이었습니다. 장터에는 아침부터 짐을 나르고 오후 늦게까지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끼니를 거르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봉순은 그들 앞에 국밥 한 사발을 놓으면서 "먹고 갚든, 못 갚으면 말든"이라며 등을 돌렸습니다. 외상장부 같은 것은 두지 않았습니다. 대신 솥 옆 기둥에 어머니의 국자가 걸려 있었고, 그 국자를 볼 때마다 봉순은 열여덟 살 맨발의 자신을 떠올렸습니다.
마흔 살이 지나고, 쉰이 넘고, 예순이 다가오면서 봉순 할머니의 등은 점점 굽었지만 국물 맛은 점점 깊어졌습니다. 장터 사람들은 이상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봉순 마누라 국밥을 먹으면 몸살이 낫는다." "기운이 없다가도 그 국물 한 사발이면 다시 일어선다." 봉순 할머니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약이 아니라 밥이여, 밥. 뭔 몸살이 나. 배가 고팠던 거지." 그러면서도 아픈 사람이 오면 국물을 더 진하게 끓여 주었고, 겨울이면 솥 옆에 자리를 깔아 노숙하는 행상에게 따뜻한 바닥을 내주었습니다.
그 국밥집의 명성은 사람만 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장터 어귀 느티나무 아래를 지나는 것들, 저녁 해가 지면 그림자 속에서 슬그머니 코를 킁킁거리는 것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오가는 존재들도 그 국물 냄새를 맡고 있었습니다. 다만 봉순 할머니는 그것을 전혀 몰랐을 뿐입니다.
모두가 평화롭게 끝날 줄 알았습니다. 할머니는 국밥을 끓이고, 장터 사람들은 먹고, 그렇게 홍주 장터의 하루가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순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순서를 깨뜨린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왔습니다.
※ 3 — 반전 정보 공개: 저승사자의 사정
솥 앞에 엎어진 사내, 아니 저승사자의 등짝에 국자 자국이 벌겋게 찍혀 있었습니다. 봉순 할머니는 숨이 차서 헐떡거리면서도 국자를 놓지 않았고, 저승사자는 엎드린 채 한동안 꼼짝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승의 어떤 도구도 저승사자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없습니다. 쇠칼도 안 되고, 돌팔매도 안 됩니다. 그런데 유일한 예외가 있었습니다. 사람의 정성이 수십 년 동안 깃든 물건, 그것은 저승의 기운조차 밀어낼 만큼의 힘을 품게 됩니다. 봉순 할머니의 떡갈나무 국자는 어머니에게서 받은 뒤 오십 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국물을 저어 온 물건이었습니다. 그 국자가 저승사자의 등을 후려치자 저승사자의 온몸에 이승의 온기가 전해졌고, 그것은 찬물을 끼얹은 것보다 훨씬 충격적인 감각이었습니다.
저승사자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봉순 할머니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니가 뭔데 남의 솥에 주둥이를 박고 있어!" 할머니의 고함이 부엌을 울렸습니다. 저승사자는 일어서자 천장에 갓이 닿았고, 할머니는 고개를 뒤로 젖혀야 그 얼굴을 올려볼 수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것은 사람이 공포에 질려 도망쳐야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러나 봉순 할머니는 상식 바깥의 사람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국자를 다시 치켜들었습니다. "말을 해, 이놈아. 도둑이면 도둑이라 하고, 귀신이면 귀신이라 해. 말 안 하면 한 대 더 맞을 거여."
저승사자가 입을 열었습니다. 목소리는 빈 절의 종소리처럼 낮고 길게 울렸습니다. "나는 도둑이 아니오." "그럼 귀신이여?" "귀신도 아니오. 나는 저승의 차사(差使)요." 봉순 할머니의 눈이 가늘어졌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말에 혼이 빠졌을 겁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혀를 찼습니다. "차사? 차사가 밤에 남의 국밥을 훔쳐 처먹어? 저승에서는 그게 예의여?" 저승사자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나서, 아니 태어난 적이 없으니 존재를 부여받은 이래로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습니다. 이승의 사람이 자신을 보고 도망치지 않는 것도 처음, 등짝을 맞은 것은 더더욱 처음, 그리고 예의를 따져가며 꾸지람을 듣는 것은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부엌 한쪽 선반에서 놋그릇 하나를 꺼내 솥에서 국물을 가득 퍼 담았습니다. 파를 송송 썰어 얹고, 소금 간을 한 번 봤습니다. 그리고 그 그릇을 아궁이 앞 나무 상 위에 탁 내려놓았습니다. "앉아." 저승사자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앉으라니까. 훔쳐 처먹을 거 뭐 있어. 먹고 싶으면 앞에 앉아서 사람처럼 먹어야 밥이지, 솥에 얼굴을 처박으면 그게 밥이여 아니여?" 저승사자의 다리가 굽혀졌습니다. 무릎이 땅에 닿았고, 양반다리를 틀었고, 눈앞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국밥 한 그릇이 놓였습니다.
저승사자가 나무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한 모금 떠 넣었습니다. 그리고 멈추었습니다. 손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수백 년 동안 혼을 거두어 가기만 했던 손이었습니다. 그 손이 지금 따뜻한 국물을 담은 숟가락을 쥐고 떨리고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는 말했습니다. "이것이 밥이오?" 봉순 할머니가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아니, 독약이여. 밥이 밥이지 뭐여." 저승사자가 두 번째 숟가락을 떴고, 세 번째, 네 번째. 먹는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국물이 입술 옆으로 흘러내렸고, 저승사자는 그것을 닦을 줄도 모른 채 숟가락을 움직였습니다. 그릇이 비었을 때, 저승사자의 양 볼 위에 무언가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그것을 보았지만 모른 척했습니다. 대신 솥에서 국물을 다시 퍼 담아 그릇을 채워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등을 돌렸습니다. "천천히 먹어. 급하면 체해."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였습니다. 저승사자가 국밥 한 그릇에 눈물을 흘린 이유, 그것은 수백 년 저승의 시간 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 4 — 감정 폭발: 수백 년의 허기
저승사자에게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저승에서는 이름이 필요 없었습니다. 번호가 있었습니다. 칠백삼십이. 그것이 이 저승사자를 부르는 유일한 방식이었습니다. 칠백삼십이 번 차사는 조선이 건국되기 한참 전, 고려 말 어느 해에 저승으로 왔습니다. 살아 있을 적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주 오래전부터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손이었습니다. 거칠고 갈라진 손이 나무 사발에 밥을 담아 내밀던 장면이었습니다. 그 밥이 보리밥이었는지, 조밥이었는지, 쌀밥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손의 온기와 사발에서 올라오던 김의 냄새, 그리고 그것을 받아 들었을 때 가슴 한가운데서 퍼지던 어떤 감각만이 수백 년을 버텨 남아 있었습니다.
저승에는 밥이 없었습니다. 물도, 국도, 반찬도 없었습니다. 저승사자는 먹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었고, 먹지 않아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먹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먹고 싶지 않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었습니다. 칠백삼십이 번 차사는 수백 년 동안 혼을 거두러 이승에 내려올 때마다 한 가지를 느꼈습니다. 냄새였습니다. 장터를 지나칠 때 솥에서 올라오는 김, 초가집 굴뚝에서 흘러나오는 밥 짓는 냄새, 겨울 한밤에 국물을 끓이는 부엌의 온기. 그것들이 코끝을 스칠 때마다 가슴 한쪽이 텅 비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배가 고픈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승사자에게 배고픔이라는 감각은 주어지지 않았으니까요. 그것은 배고픔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무엇이었습니다. '그리움'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어떤 것이었습니다.
백 년쯤 지났을 때, 칠백삼십이 번 차사는 처음으로 규칙을 어겼습니다. 혼을 거두고 저승으로 돌아가는 길에 장터 국밥집 앞에서 발이 멈춘 것이었습니다. 솥 위에 걸린 김을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뻗지 못했습니다. 저승의 법도는 분명했습니다. 차사는 이승의 것을 취하지 않는다. 이승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이승의 감정에 물들지 않는다. 칠백삼십이 번 차사는 발을 돌려 저승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뒤로도 백 년, 또 백 년, 규칙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삼백 년쯤 흐른 어느 날, 홍주 장터에 혼을 거두러 내려왔을 때였습니다. 늦은 밤이었고, 장터는 비어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바람에 실려 온 냄새가 칠백삼십이 번 차사의 발을 멈추게 했습니다. 소뼈를 고은 국물이었습니다. 기름기가 유백색으로 풀어져 나오는 국물의 냄새였습니다. 수백 년 전, 누군가의 거친 손이 건네주던 그 사발의 기억이 코끝에서 되살아났습니다. 다리가 움직였습니다. 머리가 명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리가 스스로 걸었습니다. 그리고 초가집 부엌 앞에 서 있었습니다. 봉순이네 국밥집이었습니다.
첫날 밤은 솥 뚜껑만 들어 올렸습니다. 국물 위로 피어오르는 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냄새만 맡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온몸이 떨렸습니다. 저승에서는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감각이 사지 끝까지 퍼졌습니다. 따뜻함이었습니다. 두 번째 밤, 국물에 손가락 끝을 담갔습니다. 뜨거웠습니다. 저승사자는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느꼈습니다. 봉순 할머니의 국물에서는 단순한 열기가 아니라 오십 년 동안 사람을 먹이겠다는 마음이 끓고 있었고, 그 마음의 온기는 저승의 차가움마저 녹이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 밤, 손가락을 빨았습니다. 국물 맛이 혀에 닿는 순간, 칠백삼십이 번 차사의 무릎이 꺾였습니다.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수백 년 동안 잊으려 했던 기억이 폭포처럼 쏟아졌습니다. 거친 손, 나무 사발, 밥 위에 피어오르던 김, 그리고 그것을 건네며 "많이 먹어라"라고 말하던 누군가의 목소리. 네 번째 밤, 사발을 꺼내 국물을 퍼 담았습니다. 숨길 생각도, 규칙을 떠올릴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저 먹었습니다. 한 모금이 목을 넘어갈 때마다 수백 년의 허기가 밀려왔고, 그 허기는 밥의 허기가 아니라 이승의 허기, 살아 있는 것들의 온기에 대한 허기였습니다.
그렇게 봉순 할머니의 국자에 등짝을 맞기까지, 저승사자는 사흘 밤을 이승의 가장자리에서 규칙을 깨뜨리며 울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날 새벽, 국밥 한 그릇을 비우고 눈물을 흘린 저승사자를 보며 봉순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등을 돌리고 설거지물을 끓이면서, 할머니의 입술이 한 번 씰룩거렸습니다. 그것이 욕이었는지, 한숨이었는지, 아니면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의 버릇이었는지는 할머니 자신도 몰랐습니다.
그날 밤, 칠백삼십이 번 차사는 존재를 부여받은 이래 처음으로 눈물이라는 것을 흘렸습니다. 저승에는 눈물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 5 — 카타르시스: 밥값
동이 트기 전이었습니다. 봉순 할머니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말했습니다. "거, 아직도 앉아 있을 거여?" 저승사자는 빈 그릇 앞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릇 바닥에 남은 국물 자국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이 허공을 보는 것인지 그릇을 보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습니다. 할머니가 부지깽이로 아궁이를 쿡 찔렀습니다. "밥 먹었으면 밥값을 해야지. 이승이든 저승이든 공짜는 없어."
저승사자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밥값이오?" "밥을 먹었으니 값을 치러야지. 니가 돈이 있어? 없지. 저승에서 엽전을 가져왔어? 안 가져왔지. 그러면 몸으로 갚아야 할 것 아녀." 할머니가 부엌 한쪽을 턱으로 가리켰습니다. 거기에는 사흘치 그릇이 쌓여 있었습니다. 국그릇, 밥그릇, 종지, 숟가락. 할머니 혼자 끓이고 혼자 팔고 혼자 닦기에는 몸이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허리가 아파서 쪼그려 앉기가 힘들었고, 왼쪽 눈이 더 흐려져서 그릇에 낀 기름때를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저승사자가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키가 커서 천장 서까래에 머리가 닿았고, 몸을 숙여 걸어야 했습니다. 죽음을 관장하는 자의 위엄이랄 것은 이 부엌 안에서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봉순 할머니가 수세미 대신 쓰는 짚 뭉치를 건넸습니다. "국그릇은 뜨거운 물에 불려서 닦고, 숟가락은 재에 문질러야 기름이 빠져. 알겠어?" 저승사자가 짚 뭉치를 받아 들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저승의 명부를 넘기던 손이었습니다. 혼을 거두어 가는 냉기가 서린 손가락이었습니다. 그 손가락이 지금 짚 뭉치를 쥐고 놋그릇을 문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서투른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처참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릇을 쥐면 힘 조절이 안 되어 휘어졌고, 물을 끼얹으면 팔소매가 다 젖었고, 짚 뭉치가 손에서 세 번이나 미끄러졌습니다. 봉순 할머니가 뒤에서 지켜보다 결국 터져 나왔습니다. "아이고, 저승에서는 그릇을 안 닦아? 그것도 못 해?" "저승에는 그릇이 없소." "그릇이 없어? 그럼 뭘로 먹어?" "먹지 않소." 할머니가 잠시 멈추었습니다. 부지깽이를 쥔 손이 힘없이 내려갔고, 입에서 나오려던 욕이 목구멍 안쪽으로 도로 들어갔습니다. 먹지 않는 존재. 밥도 국도 모르는 존재. 그런 것이 이승까지 내려와 국물 한 모금에 눈물을 흘렸다는 것. 할머니는 허리를 돌리며 코를 훌쩍였습니다. 감기 기운이 있는 것처럼 두어 번 코를 풀고 나서 목소리를 가다듬었습니다. "빨리 안 닦고 뭐해! 날이 밝으면 손님 온다!"
저승사자가 그릇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놋그릇에 재를 묻혀 문지르고, 물을 끼얹어 헹구고, 엎어서 물기를 빼는 동작을 하나하나 배웠습니다. 속도는 느렸지만 한 번 알려준 것은 두 번 다시 묻지 않았습니다. 저승사자의 손이 그릇을 쥘 때마다 찬 기운이 번졌지만, 봉순 할머니가 끓여 놓은 뜨거운 물에 손을 넣을 때마다 그 냉기가 스르르 풀렸습니다. 그릇 열두 개, 숟가락 열 개, 종지 여섯 개. 마지막 그릇을 엎어 놓았을 때 동쪽 하늘이 회색에서 분홍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봉순 할머니가 설거지가 끝난 그릇들을 하나씩 확인했습니다. 놋그릇이 반질반질 빛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솥에서 국밥 한 그릇을 퍼서 저승사자 앞에 다시 놓았습니다. "이건 뭐요?" "밥값 치렀으니까 새로 한 그릇 먹을 자격이 생긴 거여." 저승사자가 그릇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국물 위에 파가 떠 있었고, 김이 피어올랐고, 솥 바닥에서 긁어 올린 누룽지 한 조각이 국물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저승사자가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손이 떨리지 않았습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국물을 떠서 입에 넣었습니다. 맛이 달랐습니다. 훔쳐 먹던 사흘 밤의 국물과 다른 맛이었습니다. '이것이 밥값을 치르고 먹는 밥의 맛이구나.' 이승의 사람들이 매일 하는 일, 일하고 벌어서 먹는 밥 한 끼의 무게가 혀 위에서 퍼졌습니다.
그릇을 비운 저승사자가 일어섰습니다. 창문 사이로 햇살 한 줄기가 들어와 부엌 바닥을 가로질렀습니다. 저승사자의 검은 도포 자락이 그 빛에 닿자 천 끝이 연기처럼 흐릿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밝으면 머물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저승사자가 돌아서며 말했습니다. "할머니." 봉순 할머니가 솥을 저으며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으면 되오." 할머니가 국자를 솥 가장자리에 탁 걸치며 말했습니다. "은혜는 무슨 은혜여. 밥 한 그릇 먹고 설거지 한 것뿐인데. 갚을 거 없어. 다음에 또 배고프면 와. 대신 훔쳐 먹지 말고 앞에 앉아서 먹어. 그래야 밥이지."
저승사자의 몸이 점점 옅어졌습니다. 검은 도포가 아침 햇살에 스며들듯 사라지고, 검은 갓이 마지막으로 한 번 흔들렸습니다. 부엌에는 봉순 할머니 혼자 남았습니다. 솥 앞에 서서 국물을 한 번 저었습니다. 국자 끝에 남은 온기가 평소보다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할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장사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 6 — 여운과 확장: 다시 돌아오는 밤
그 뒤로 봉순 할머니의 국밥집에는 이상한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매달 그믐, 달이 사라지는 밤이면 부엌에 놋그릇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놓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슬이 내린 새벽에 부엌에 들어서면, 아궁이 앞 나무 상 위에 놋그릇이 엎어져 있었고, 그릇 옆에 짚 뭉치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그릇은 이미 닦여 있었습니다. 반질반질, 티끌 하나 없이. 봉순 할머니는 처음에 "뭐여, 이게"라며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두 번째 그믐에도 같은 일이 생기고, 세 번째 그믐에도 반복되자 혀를 한 번 차고 말았습니다. "밥값 다 치렀다니까, 이 미련한 것이."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매달 그믐 전날이면 솥에 국물을 한 사발 더 끓여 놓았습니다. 뚜껑을 살짝 열어 김이 새어나가게 해 놓고, 상 위에 빈 그릇과 숟가락을 나란히 놓아두었습니다. 아침에 확인하면 그릇은 비어 있었고, 숟가락에는 국물 자국이 묻어 있었으며, 설거지까지 깨끗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그릇을 들어 올릴 때마다 코웃음을 쳤습니다. "설거지 솜씨는 늘었네." 그것이 할머니가 저승사자에게 보내는 유일한 인사였습니다.
장터 사람들은 이상한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봉순 할머니네 국밥집에서 밥을 먹으면 나쁜 꿈을 꾸지 않는다더라. 중병에 걸린 사람이 국밥 한 그릇을 먹고 일어났다더라. 아이를 가지지 못하던 부부가 국밥을 먹은 달에 아이가 들어섰다더라. 소문은 소문을 낳고, 홍주 장터의 봉순이네 국밥집은 충청도에서 가장 이름난 집이 되었습니다. 봉순 할머니는 그 소문을 들을 때마다 퉁명스럽게 받아쳤습니다. "미신이여, 미신. 국밥 먹으면 배부른 거지 무슨 약이여." 그러면서도 아픈 사람이 오면 국물을 더 진하게 끓여 주었고,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예전처럼 "먹고 갚든 말든"이라며 한 그릇을 내밀었습니다.
진짜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매달 그믐밤, 저승사자가 국밥 한 그릇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돌아갈 때, 부엌에 남겨두고 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저승사자의 손이 그릇을 닦을 때마다 저승의 나쁜 기운이 물과 함께 씻겨 나갔고, 대신 그 자리에는 이승과 저승 사이의 경계가 한 겹 얇아진 틈으로 스며드는 미세한 온기가 남았습니다. 그것은 봉순 할머니의 국물에 녹아 들었고, 국물을 먹는 사람들의 몸속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죽음을 관장하는 자가 정성으로 닦은 그릇에 담긴 밥은, 이승의 어떤 보약보다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봉순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은 그로부터 칠 년 뒤, 일흔다섯 되던 해 겨울이었습니다. 마지막 날까지 솥 앞에 서서 국물을 저었고, 마지막 손님에게 "천천히 먹어, 급하면 체해"라고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눈을 감은 밤, 장터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보았습니다. 국밥집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불을 지피지 않았는데, 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고, 부엌 안에서 그릇 닦는 소리가 사각사각 들렸습니다. 용기 있는 청년 하나가 문을 열어 보았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만 솥에는 국물이 가득 끓어 있었고, 아궁이 앞 나무 상 위에 놋그릇 두 개가 나란히 엎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는 봉순 할머니가 평생 쓰던 그릇이었고, 다른 하나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크고 검은 그릇이었습니다. 그 두 그릇 사이에 떡갈나무 국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장터 사람들은 그날 밤을 오래도록 기억했습니다. 솥에 끓고 있던 국물을 나누어 마시며 봉순 할머니를 떠나보냈고, 그 국물은 평소보다 더 뜨겁고, 더 진하고, 혀에 닿는 순간 이상하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맛이었다고 했습니다.
홍주 장터에는 그 뒤로도 국밥집이 이어졌습니다. 할머니의 솥을 물려받은 이가 누구인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 장터를 지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래도록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달이 없는 그믐밤, 국밥집 앞을 지나면 부엌에서 그릇 닦는 소리가 난다는 것.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그해 겨울을 무사히 넘긴다는 것. 사람들은 그것을 도깨비의 장난이라고도 하고, 저승사자의 설거지라고도 했습니다.
엔딩
밥 한 그릇의 힘은 배를 채우는 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수백 년을 굶주린 저승사자의 허기를 녹인 것도, 욕쟁이 할머니의 단단한 마음을 연 것도, 장터를 오가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살린 것도 결국 따뜻한 밥 한 그릇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끓인 국물 한 사발에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마저 허무는 정성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오늘 당신이 누군가에게 건네는 따뜻한 한 끼가 수백 년 뒤에도 기억될지 모릅니다. 한국의 길에서 발견하는 지혜, 한국의교훈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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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cinematic 16:9 photorealistic image of a tall, gaunt figure in a flowing black Joseon-era dopo robe and black gat hat, caught mid-bite over a steaming earthenware bowl of milky-white ox-bone soup (seolleongtang) inside a rustic thatched-roof Korean tavern at night, while a fierce tiny elderly Korean grandmother in a worn white jeogori and grey chima with jjokjin meori hairstyle grabs his ear from behind with one hand and raises a large wooden ladle with the other, candlelight illuminating their faces, dramatic chiaroscuro lighting, ultra-detailed, no 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