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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집은 죽을 사람이 없소 , 저승사자 헛걸음한 착한 집안 『청구야담』

    태그 (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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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 멘트 (300자 내외)

    "이보게, 저승사자가 제일 싫어하는 집이 어딘지 아나? 바로 '너무 착해서 잡아갈 수가 없는 집'이라네! 여기, 저승사자가 무려 여섯 번이나 문턱을 넘었다가 빈손으로 돌아간 기막힌 집안이 있소. 잡으러 갈 때마다 누군가의 목숨을 살리고, 헐벗은 이를 입히고 있으니, 붉은색으로 적힌 죽을 사(死) 자가 저절로 지워지더란 말이지! 염라대왕도 혀를 내두르고 포기했다는 이 집안의 정체, 도대체 무슨 덕을 그리 쌓았길래 저승 법도까지 바꿨을까? 듣다 보면 내 수명까지 덩달아 늘어나는 것 같은 신통방통한 이야기, 지금 시작하네!"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저승사자 강림 도령, 웬만해선 실수하는 법이 없는 베테랑 차사입니다. 그런데 딱 한 곳, 경기도 광주 땅에 사는 이 진사 댁만 가면 맥을 못 춥니다. 명부에는 분명 오늘이 제삿날이라 적혀 있는데, 막상 가보면 죽어야 할 사람이 남을 살리는 엄청난 선행을 하고 있어 차마 잡아가질 못합니다. 할아버지부터 손주 며느리까지, 온 가족이 선행 경쟁이라도 하듯 덕을 쌓는 통에 저승 명부가 너덜너덜해졌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청구야담』에 기록된 이 훈훈한 기적을 통해, '덕(德)'이 가진 위대한 힘을 느껴보십시오.

    ※ 저승사자가 이 진사의 목숨을 거두러 왔다가 그가 자신의 수의를 벗어주는 광경을 목격함

    자, 이야기는 칠흑같이 어두운 그믐밤, 경기도 광주 땅 어느 고개 너머에서 시작하네. 산짐승도 숨을 죽인 야심한 시각, 검은 갓을 쓰고 검은 두루마기를 펄럭이며 내려오는 이가 있었으니, 누구긴 누구여. 사람 목숨 거두러 온 저승차사, 강림 도령이지.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고 입술은 팥죽색인 것이, 딱 봐도 산 사람 기운은 아니여.
    강림 도령이 품에서 붉은 책, 명부(命簿)를 꺼내어 침을 퉤 바르고 넘겨보는데, 눈빛이 매섭구먼.
    "어디 보자... 오늘 데려갈 놈이... 옳지, 여기 있구나. 광주 땅에 사는 이석덕(李碩德), 나이는 예순이요, 병명은 노환이라. 오늘 밤 자시(子時)에 숨이 끊어질 운명이로구나."
    저승사자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이 진사 댁으로 향했어. 저 멀리 기와집이 보이는데, 웬걸? 다들 잠들었을 시간인데 안방 문창호지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네그려. 저승사자가 담장을 훌쩍 넘어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방 안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오는 거여.
    "영감, 정말 이래도 되겠소? 이건 영감 가실 때 입으려고 십 년을 넘게 준비한 수의(壽衣)가 아니오. 최고급 삼베로 지어놓은 것인데..."
    할멈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려 있어. 저승사자가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방문 구멍을 뽕 뚫고 안을 들여다봤지. 방 안에는 병색이 완연한 이 진사가 윗목에 앉아 있고, 그 앞에는 눈물범벅이 된 젊은 머슴 놈이 엎드려 있네. 그리고 그 옆에는 곱게 지어놓은 삼베 수의 한 벌이 놓여있는 거여.

    이 진사가 기침을 '콜록콜록' 하면서도 인자한 목소리로 머슴에게 말을 하네.
    "이 녀석아, 울지 마라. 내 비록 병들어 오늘내일한다만, 산 사람은 살아야지. 네 아비가 갑자기 세상을 떴는데, 가난하여 시신을 거적때기에 말아 묻으려 한다니 내 마음이 편치 않구나. 이 수의는 내가 죽으면 입으려 했던 것이나, 죽은 나보다는 지금 당장 장례를 치러야 할 네 아비에게 더 필요한 것이다. 어서 가져가거라."
    "마님... 흑흑... 어찌 소인 같은 놈에게 이 귀한 것을... 이 은혜를 어찌 갚습니까요..."
    머슴이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통곡을 하는데, 이 진사는 허허 웃으며 머슴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거여.

    "은혜는 무슨. 사람이 사람 도리를 하는 것뿐이다. 날이 차다. 어서 가서 아비 잘 모셔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저승사자, 들고 있던 철퇴를 스르르 내리고 마는구먼. 원래 저승 법도라는 게, 죽을 놈이라도 마지막 순간에 큰 덕(德)을 베풀면 하늘이 감동해서 명부를 다시 보게 되어 있거든. 강림 도령이 혀를 차며 명부를 다시 펼쳐봤어.
    "허허, 이거 참.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이석덕' 이름 석 자가 새카맣게 적혀 있었는데..."
    놀라지 마시게. 명부 글자가 스르르 흐려지더니, '수명 삼 년 연장'이라는 글귀가 금가루 뿌린 듯 번쩍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겠어? 자신의 마지막 가는 길에 입을 옷까지 벗어주며 남의 슬픔을 챙기는 그 마음보가, 저승사자의 발목을 잡은 것이지.
    "에잉, 쯧쯧. 오늘은 공쳤구나. 저런 양반을 잡아갔다간 내가 염라대왕님한테 혼쭐이 나지. 알았다, 알았어. 삼 년 더 살다 오게나."
    저승사자는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뒤를 돌아 담장을 넘어 사라졌어. 방 안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 진사가 머슴을 보냅니다. 그날 밤, 이 진사의 병세가 씻은 듯이 나아서 아침에 훌훌 털고 일어나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지 뭔가. 동네 사람들은 "명의가 다녀갔나?" 하고 수군댔지만, 사실은 저승사자가 감동 먹고 그냥 간 덕분이었지. 자, 이것이 첫 번째 헛걸음이었네.

    ※ 이번엔 이 진사의 마누라를 데리러 왔으나 전염병 걸린 거지를 제 식구처럼 돌보는 모습에 또다시 실패

    그로부터 딱 삼 년이 흘렀네. 세월은 유수와 같아서, 어느덧 약속한 시간이 돌아온 게지. 한여름 땡볕이 내리쬐는 칠월이라, 더위가 푹푹 찌는데 저승사자가 다시 이 진사 댁 대문 앞에 나타났어. 이번에는 기필코 잡아가리라 마음먹고 왔는데, 명부를 보니 이름이 바뀌어 있네?
    "어라? 이 진사는 명줄이 늘어나서 아직 멀었고... 오늘은 그 마누라 차례로구나. 부인 김씨, 향년 쉰여섯. 급살을 맞을 운명이라. 쯧쯧, 영감이 덕을 쌓아 더 사나 했더니, 마누라가 먼저 가는구먼."
    저승사자가 대문을 쓱 밀고 들어가는데, 집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사랑채 쪽에서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파리떼가 윙윙거리는데, 사람들이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하고 코를 막고 피해 다니는 거여.
    "무슨 일인가?" 하고 가보니, 사랑채 툇마루에 웬 거지가 누워있는데, 온몸에 종기가 나고 고름이 흐르는 전염병 환자였어. 동네 사람들도 전염된다고 멍석말이해서 내다 버리자는 걸, 이 집 마누라 김씨 부인이 "사람 목숨이 중하다"며 데려다 놓은 거지.
    저승사자가 안채를 들여다보니, 김씨 부인이 땀을 뻘뻘 흘리며 약탕기를 달이고 있어. 하인들이 말리느라 난리가 났네.

    "마님! 그러다 마님까지 병 옮습니다요! 저런 더러운 거지는 그냥 관아에 넘기시지요!"
    하지만 김씨 부인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호통을 치는구먼.
    "시끄럽다! 네놈들 눈에는 저이가 거지로 보이느냐? 내 눈에는 부처님으로 보인다. 저이도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었을 게다. 병들어 서러운 것도 모자라 문전박대까지 당하면 얼마나 원통하겠느냐. 내가 직접 닦아주고 먹여줄 테니 너희는 물러거라!"
    그러고는 김씨 부인이 그 고름 흐르는 환자 곁으로 가서, 행주치마를 걷어붙이고 고름을 입으로 쪽쪽 빨아내는 게 아니겠어? 아이고, 세상에. 제 자식한테도 하기 힘든 일을, 생면부지의 거지한테 하고 있는 거여.
    저승사자가 그 꼴을 보고 턱이 빠질 뻔했네.
    "허... 독하다, 독해. 아니지, 저건 독한 게 아니라 거룩한 것이지. 저 여인이 정녕 사람이란 말인가?"

    저승사자가 김씨 부인의 목에 저승 밧줄을 걸려고 다가갔지만, 밧줄이 자꾸만 미끄러져. 김씨 부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따뜻하고 환한 기운, 그걸 '자비(慈悲)'라고 하던가? 그 빛이 어찌나 강렬한지 저승사자의 검은 기운이 범접을 못 하는 거여.
    그때 명부 책이 품속에서 '부르르' 떨리더니, 저절로 페이지가 넘어가네.
    "어이쿠, 또 바뀌었네, 또 바뀌었어! '김씨 부인, 지극정성으로 생명을 살렸으니 수명 오 년 연장'. 허허 참, 이 집구석은 무슨 도깨비 집인가? 죽을 때만 되면 착한 일을 해서 명줄을 늘려버리니, 나 원 참 더러워서 못 해 먹겠네!"
    저승사자는 쓰고 있던 갓을 벗어 부채질을 하며 투덜거렸어. 환자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여인 앞에서, 저승사자인들 어쩌겠나. 결국 강림 도령은 이번에도 빈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지.
    "두고 보자. 이 진사, 김씨 부인... 네놈들 명줄이 어디까지 늘어나나 보자. 내 다음번에는 기필코 한 놈은 잡아갈 테다!"
    그렇게 김씨 부인은 그날 밤 고비를 넘기고, 정성으로 돌보던 거지 또한 기적적으로 살아나서 훗날 이 집안의 머슴이 되어 평생 은혜를 갚았다지 뭔가.

    ※ 다시 찾아온 저승사자, 이번 타겟은 큰아들. 하지만 아들이 부모를 위해 자신의 살을 베어 약을 쓰는 효성에 감복함

    자, 세월이 또 흘렀네.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이 훌쩍 지나갔어. 저승사자 강림 도령, 그동안 이 진사 댁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이불을 뻥 찰 만큼 자존심이 상해 있었지. 저승 차사 생활 수백 년에 이런 수모는 처음이었거든. 드디어 때가 왔어. 이번에는 이 진사의 큰아들, '이몽룡'의 차례라. 나이는 불혹인 마흔이요, 병명은 급체로 인한 심장마비. 아주 확실하고도 깔끔한 건수지.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 강림 도령이 씩씩거리며 이 진사 댁 기와지붕 위에 내려앉았어. 검은 도포 자락이 비바람에 펄럭이는데, 그 눈빛이 어찌나 살벌한지 지나가던 귀신도 오금을 저릴 판이여.
    "흥, 오늘은 얄짤없다. 이 집안이 아무리 착하다 한들, 사람 목숨이 천년만년 갈 수는 없는 법! 내가 두 번은 봐줬어도 세 번은 없다. 몽룡아, 딱 기다려라. 형님이 모시러 왔다!"
    저승사자가 쇠사슬을 '철그럭' 거리며 사랑채로 다가가는데, 방 안에서 희미한 불빛과 함께 끙끙 앓는 신음 소리가 들려와. '옳지, 아픈 놈이 여기 있구나,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하고 문틈으로 방 안을 쓱 들여다보는데... 어라? 이게 웬일인가.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건 몽룡이가 아니라, 다 늙은 이 진사 부부네? 십 년 전보다 훨씬 늙고 병색이 완연하여,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중이여. 오늘내일하는 게 아니라 당장 촛불이 꺼져도 이상하지 않을 위급한 상황이지.
    그리고 그 옆에, 멀쩡해야 할 아들 몽룡이가 홑적삼 바람으로 앉아있는데, 그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있어. 그런데 이 녀석이 하는 짓 좀 보소. 한 손에는 부엌에서 가져왔는지 시퍼런 날이 선 식칼을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제 오른쪽 허벅지를 꽉 움켜쥐고 있는 게 아니겠어? 손이 어찌나 떨리는지 칼끝이 춤을 추고 있네그려.
    "아버님, 어머님... 이 못난 불효자 몽룡이, 부모님 병환을 고칠 길이 없어 하늘만 원망했습니다. 의원도 포기하고 약도 소용없으니, 이제 남은 건 제 몸뚱어리뿐입니다."
    몽룡이가 울먹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려.
    "옛말에 자식의 생살을 고아 드리면 죽어가는 부모도 살린다는 '할고(割股)'의 효성이 있다 들었습니다. 제 살점 하나가 부모님 하루 수명이 된다면, 제 다리몽둥이가 다 없어진들, 제 뼈가 으스러진들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말을 마치자마자 몽룡이가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아드득' 악물더니, 들고 있던 칼을 허벅지에 갖다 대네.
    "으으윽...!"

    차마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억눌린 비명과 함께 칼날이 살을 파고들어 가.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몽룡이의 이마에서는 굵은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허벅지에서는 붉은 선혈이 콸콸 솟구쳐 방바닥을 적시기 시작해. 그 고통이 오죽하겠어? 살을 찢는 아픔에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지만, 몽룡이는 멈추지 않아. 기어이 제 살 한 점을 도려내고서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쓰러지듯 약탕기를 끌어당겨.
    그 피 묻은 살점을 약탕기에 넣고 정성스레 달이기 시작하는데, 몽룡이의 눈빛이 미친 사람 같기도 하고, 성인군자 같기도 한 것이 광기 어린 효심으로 이글거리는 거여.
    지붕 위에서 그 꼴을 지켜보던 저승사자 강림 도령, 그만 다리가 풀려 기와장 위로 주저앉고 말았네.
    "허억...! 미친 놈... 저건 진짜 미친 놈이야! 제 살을 베어 부모를 살리려 하다니, 요즘 세상에 저런 독한 효자가 아직도 남아있단 말이냐?"
    원래 저승사자는 피 냄새를 좋아하지만, 저건 보통 피가 아니여. 하늘을 감동시킨다는 '효(孝)의 피' 냄새가 진동을 하니, 사악한 기운이 범접을 못 하고 뒤로 밀려나는 거여. 강림 도령이 "안 돼! 오늘 못 잡아가면 내 체면이 뭐가 돼!" 하고 억지로 방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마치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에 막힌 듯 '퉁!' 하고 튕겨 나와 마당에 나뒹굴고 말았어.
    그때, 품속에 있던 명부가 또다시 요동을 치네. 붉은 글씨가 제멋대로 춤을 추더니, 번쩍이는 금빛 글자로 싹 바뀌어 버려.

    '이몽룡, 지극한 효심으로 하늘을 울렸으니, 그 정성을 보아 수명 십이 년 연장. 또한 그 부모의 병세도 쾌차하게 함.'
    "아이고 두이야! 또 바뀌었어! 이번엔 아들놈 때문에 다 죽어가는 부모까지 덤으로 더 살게 생겼네!"
    저승사자는 쓰고 있던 갓을 집어 던지며 땅을 치고 통곡할 노릇이라. 제 살 깎아 부모 먹이는 놈을 어찌 잡아가겠나. 잡아갔다가는 저승 법도 중에서도 으뜸인 '효'를 거스르는 꼴이 되니, 염라대왕님한테 시말서 쓰는 걸로 안 끝나고, 지옥불 아궁이에 군불 때는 신세가 될 판이라.
    "에라이, 더러워서 못 해 먹겠다! 너희 식구끼리 천년만년 잘 먹고 잘 살아봐라! 내가 다시는 오나 봐라!"
    강림 도령은 빈손으로 돌아서면서도, 내심 그 지독한 효성에 감탄하여 슬쩍 약탕기에 입김을 '호오-' 하고 불어넣어 주고 갔다는 소문이 있어. 그날 밤, 몽룡이가 피눈물로 달인 약을 먹은 이 진사 부부는 거짓말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몽룡이의 다리 상처도 흉터 하나 남지 않고 깨끗하게 아물었다지 뭔가.
    자, 벌써 세 번째 실패여. 이쯤 되면 저승사자도 오기가 생기다 못해 악이 받치지 않겠소? "내 기필코 이 집구석에서 한 놈은 데려간다!"

    ※ 끈질긴 저승사자, 며느리를 잡으러 왔으나 며느리가 흉년 든 마을 사람들에게 곳간을 여는 현장을 목격

    또다시 몇 해가 흘렀네. 이번에는 조선 팔도에 유래 없는 대가뭄이 들었어. 논바닥은 거북이 등짝처럼 갈라지고, 우물은 말라비틀어져서 먼지만 풀풀 날려. 백성들은 풀뿌리를 캐 먹다 못해 흙을 파 먹으며 굶어 죽어가는 아비규환의 지옥도였지.
    저승사자 강림 도령에게는 대목이여, 대목. 굶어 죽은 귀신들이 줄을 서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그 와중에 이 진사 댁 명부가 반짝거리는 거여.
    "옳다구나! 이번엔 며느리다! 이 집안 큰며느리 박씨. 나이는 서른다섯. 사인은... 과로사? 흥, 이번엔 핑계 댈 것도 없겠지. 가자!"
    강림 도령이 신이 나서 이 진사 댁으로 날아갔어. 그런데 대문 앞에 도착하니, 이게 웬일인가. 거지 떼가 구름처럼 몰려와서 대문을 두드리며 아우성을 치고 있네.
    "마님! 밥 좀 주십시오! 제 새끼가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물 한 모금만 주시면 소원이 없겠습니다요!"
    집 안을 들여다보니, 며느리 박씨가 곳간 열쇠를 손에 쥐고 하인들 앞에 딱 버티고 서 있어. 시아버지 이 진사도, 남편 이몽룡도 출타 중이라 집안의 결정권은 오로지 며느리한테 있는 상황이여. 하인들이 덜덜 떨며 말려.

    "아씨, 안 됩니다요! 지금 우리 식구들 먹을 양식도 간당간당합니다. 곳간을 열었다가는 우리도 다 굶어 죽습니다요!"
    보통 사람 같으면 문 꽉 걸어 잠그고 쥐 죽은 듯 있을 텐데, 이 며느리 눈빛 좀 보소. 아주 횃불처럼 이글이글 타오르네.
    "비켜라! 내 자식이 배고픈 게 불쌍하면, 남의 자식 배고픈 것도 불쌍한 법이다. 곡식은 쌓아두면 썩어서 똥이 되지만, 나누면 사람을 살리는 약이 된다 했다! 내 목숨이 붙어있는 한, 내 집 앞에서 굶어 죽는 사람은 볼 수 없다. 당장 곳간 문을 활짝 열어라! 쌀 한 톨 남기지 말고 다 퍼주어라!"
    며느리의 호령이 떨어지자 곳간 문이 '끼이익-' 열리고, 쌀가마니가 쏟아져 나오네. 굶주린 백성들이 "아이고, 생불이십니다!", "보살님이십니다!" 하며 엎드려 절을 하고, 죽을 쑤어 먹이는 며느리의 치마폭을 붙잡고 눈물을 흘려. 그 수백 명의 감사하는 마음, 살았다는 안도의 숨결이 모여서 거대한 빛기둥을 만들어내는 거여.
    저승사자가 며느리 목을 낚아채려고 손을 뻗었는데, 그 빛기둥에 손이 닿자마자 '치이익!' 하고 타는 소리가 나네.
    "으악! 뜨거워! 이게 뭐야!"
    저승사자가 화들짝 놀라 손을 보니, 화상을 입은 것처럼 벌겋게 달아올랐어. 이건 '적선(積善)의 열기'라. 수많은 생명을 살린 공덕이 하늘을 찌르고 땅을 울리니, 음습한 저승 차사가 감히 건드릴 수가 없는 경지에 오른 게지.

    그때 어김없이 명부가 또 펄럭이네.
    '며느리 박씨, 만인의 목숨을 구한 대공덕(大功德)을 쌓았으니, 수명 이십 년 연장. 또한 그 자손 만대까지 복을 내림.'
    "이십 년?! 아이고, 나 죽네 나 죽어! 이 집구석은 며느리까지 왜 이 모양이야! 시애비는 옷 벗어주고, 남편은 제 살 깎고, 마누라는 전 재산을 털어? 아주 쌍으로, 아니 가족 단체로 성인군자 놀음을 하는구나!"
    저승사자는 너무 기가 막혀서 헛웃음만 나오네. 굶주린 아이를 안고 미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땀을 뻘뻘 흘리는 며느리의 얼굴을 보니, 차마 거기다 대고 "가자" 소리가 안 나오는 거여.
    "그래... 네가 나보다 낫다. 나는 죽이러 왔는데 너는 살리고 있구나. 내가 졌다, 졌어!"
    강림 도령은 화상 입은 손을 호호 불며, 며느리가 나눠주는 주먹밥 냄새만 킁킁 맡다가 쓸쓸히 퇴장했어.
    자, 이쯤 되면 저승사자도 포기할 법한데, 아직 끝난 게 아니여. "내 기필코 끝장을 본다!" 하는 오기가 발동한 게지.

    ※ 다섯 번째 방문, 손자를 잡으려 했으나 손자가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고 대신 죽으려 하자 하늘이 감동해 명부를 고침

    자, 어느덧 또 시간이 흘러 여름이 왔네. 이 진사 댁의 금지옥엽 외동 손자, '복동이'가 열 살이 되었어. 강림 도령은 이번엔 실수 없으려고 날짜를 세고 또 세었지.
    "오늘이다. 물놀이 갔다가 물귀신한테 홀려갈 운명! 어린 것이라 마음이 좀 쓰이다만, 내 체면을 위해서라도 이번엔 반드시 데려간다."
    강림 도령이 냇가 버드나무 위에 앉아 지켜보는데, 복동이가 동네 친구들이랑 물장구치고 노느라 정신이 없어. 그때였어. 갑자기 물살이 세지더니, 같이 놀던 친구 녀석 하나가 발을 헛디뎌 깊은 소용돌이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가는 거여.
    "으악! 살려줘! 엄마!"
    아이가 허우적대는데, 다른 아이들은 무서워서 다 도망가고 복동이만 남았어. 저승사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 '옳지, 저 친구 놈 구하려다가 복동이가 대신 죽는 그림이구나. 딱 걸렸다!'
    아니나 다를까, 복동이가 주저 없이 물속으로 뛰어드네. 작은 몸으로 친구를 끌어안고 낑낑대며 뭍으로 밀어내는데, 물살이 어찌나 센지 복동이 힘으로는 역부족이라. 간신히 친구를 얕은 물가로 밀쳐내긴 했는데, 정작 복동이는 힘이 빠져서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휘말려 들어가는 거여.

    "꼬르륵... 꼬르륵..."
    복동이의 머리가 물속으로 잠겼다 떠올랐다 하는데, 강림 도령이 밧줄을 들고 다가갔어.
    "자, 이제 가자. 친구 살리느라 애썼다만, 네 명은 여기까지다."
    그런데 말일세. 물속에서 죽어가던 복동이가 속으로 비는 소리가 강림 도령 귀에 쟁쟁하게 들려오네. 살려달라는 비명도 아니고, 엄마 찾는 울음도 아니었어.
    '부처님... 천지신명님... 제 친구 철수만은 살려주세요. 철수는 홀어머니 모시고 사는 효자예요. 철수가 죽으면 그 어머니는 못 살아요. 차라리 저를 데려가시고 철수는 무사하게 해주세요... 제발요...'
    아이고 세상에. 열 살짜리 꼬마가 죽는 순간에 제 목숨보다 친구와 그 홀어머니를 걱정하고 있네그려. 그 마음이 어찌나 맑고 투명한지, 물속에서 빛이 번쩍번쩍 나는데 그게 꼭 연꽃이 피어나는 것 같아.
    강림 도령이 그 소리를 듣고 또다시 얼어붙었어.

    "허... 이 집안은 핏줄 자체가 다른 것인가? 어찌 어린 놈이 죽음 앞에서도 남 걱정을 한단 말이냐?"
    그 순간, 맑았던 하늘에서 갑자기 오색구름이 몰려오더니, 강림 도령의 명부를 덮쳐버리네. 명부가 '파라락' 넘어가더니, 글자가 또 바뀌어 버려.
    '이복동,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마음으로 친구를 구했으니, 물귀신이 범접지 못하리라. 수명 육십 년 연장. 훗날 정승 판서가 될 재목임.'
    "육십 년?! 야 이놈아! 십 년도 아니고 이십 년도 아니고 육십 년을 더 살면 나는 어쩌란 말이냐!"
    강림 도령이 소리를 꽥 지르는데, 이미 늦었어. 물살이 갑자기 잔잔해지더니, 지나가던 뱃사공이 복동이를 발견하고 "어이쿠, 저게 뭐냐!" 하며 건져 올리는 거여. 복동이는 물을 토해내며 살아났고, 저승사자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었지.
    "독하다, 독해. 할애비는 옷 벗어줘, 애비는 살 떼어줘, 어미는 곳간 털어, 손자는 목숨 내놔... 이 집구석은 내가 이길 수가 없다. 내가 졌다! 졌어!"
    강림 도령, 이제는 화낼 힘도 없어서 털석 주저앉아 버렸네. 다섯 번이나 허탕을 쳤으니 저승 가서 무슨 망신인가.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대로 물러서면 저승사자 체면이 말이 아니잖아? 그래서 강림 도령이 마지막으로 무시무시한 결단을 내리게 되는데... 과연 그게 뭘까?

    ※ 마지막 여섯 번째, 온 가족을 한꺼번에 데려가려 했으나 염라대왕이 직접 나타나 "그 집은 건드리지 마라"고 명함

    강림 도령이 눈에 불을 켜고 이 진사 댁 지붕 위에 섰어.
    "에라이! 한 놈씩 잡으려니까 안 되는 거다. 이 집안 식구들이 똘똘 뭉쳐서 선행을 베푸니 당해낼 재간이 있나.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오늘 밤, 이 집 식구들을 한꺼번에 몽땅 데려가겠다! 단체로 사고가 났다고 하면 그만이지!"
    저승사자가 독기를 품으니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고, 집 주위로 검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이 진사 식구들은 영문도 모르고 저녁밥 먹다 말고 으슬으슬 추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지. 강림 도령이 저승 밧줄을 다섯 개나 꺼내서 꼬아 쥐고는 지붕을 뚫고 들어가려는 찰나였어.
    "멈춰라!!!"
    갑자기 하늘이 쩍 갈라지는 듯한 호통 소리가 들려오네. 그 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강림 도령이 들고 있던 밧줄을 놓치고 바닥으로 떼굴떼굴 굴러떨어졌어. 고개를 들어보니, 구름 사이로 황금빛이 쏟아지며 거대한 형상이 나타나는데, 누구시겠어? 바로 저승의 왕, 염라대왕님이 직접 행차하신 거여!
    "여... 염라대왕님! 어인 일로 여기까지..."

    강림 도령이 벌벌 떨며 납작 엎드리니, 염라대왕이 수염을 휘날리며 호통을 치시네.
    "네 이놈 강림아! 너는 눈이 없느냐 귀가 없느냐! 이 집안에서 피어오르는 덕(德)의 향기가 저승까지 진동하여 내 코를 찌르는데, 감히 네놈이 이 집을 멸문지화(滅門之禍) 시키려 하느냐!"
    "하오나 대왕님... 명부에는 분명 죽을 날짜가..."
    "명부? 그래, 명부는 내가 적는 것이지. 허나, 그 명부를 고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니라! 보아라! 이 진사의 인자함이 땅을 비옥하게 했고, 며느리의 자비가 굶주린 백성을 살렸으며, 손자의 의로움이 미래를 밝혔다. 이런 집안을 없애면, 이 땅에 누가 선을 행하겠느냐!"

    염라대왕이 손가락을 튕기자, 이 진사 댁 지붕 위로 상서로운 무지개가 뜨고 검은 안개가 싹 걷히는 거여.
    "듣거라! 이 집안사람들은 하늘이 내린 '적선가(積善家)'이니, 앞으로 저승사자는 이 집 대문턱도 넘지 말라! 이들은 천수(天壽)를 다 누리다, 늙어서 힘 빠지고 지겨워질 때, 그때나 아주 편안하게 가마 태워 모셔오너라. 알겠느냐!"
    "예... 예! 분부 받잡겠나이다!"
    강림 도령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머리를 조아렸어. 염라대왕의 불호령에 찍소리도 못 하고 물러난 거지. 결국 여섯 번째 시도는 시도조차 못 해보고, 염라대왕님한테 혼쭐만 나고 끝난 거여.
    강림 도령이 터덜터덜 돌아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이 진사 댁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하 호호 웃음꽃이 피어나고 있네.
    "허허... 내 참, 저승사자 노릇 수백 년에 별꼴을 다 보는구나. 그래, 너희들이 이겼다. 내가 졌다! 부디 오래오래 살아서 그 착한 마음 씨앗이나 널리 퍼뜨려라."
    강림 도령은 쓴웃음을 지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그 뒤로 다시는 이 집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해.

    ※ 이 진사 댁이 대대로 장수하며 복을 누렸다는 후일담

    자, 그 뒤로 이 진사 댁은 어떻게 되었을까? 말해 뭐하겠소. 저승사자도 포기하고 염라대왕이 보증 선 집안인데, 아주 대대손손 만사형통이지.
    이 진사 부부는 백 살이 넘도록 장수하다가, 어느 날 아침 "잘 잤다" 한마디 하고는 잠자듯이 편안하게 손잡고 가셨고. 효자 아들 몽룡이는 나라에서 효자 정문(旌門)을 세워주고 높은 벼슬까지 했어.
    그 화통했던 며느리는 어찌 됐냐고? 마을 사람들한테 '살아있는 관세음보살' 소리 들으며 존경받았지. 흉년이 들 때마다 곳간을 열었는데, 희한하게도 퍼내도 퍼내도 곡식이 줄지를 않더래. 아마 도깨비가 몰래 채워줬거나, 하늘에서 복을 부어주신 게지.
    그리고 그 꼬마 복동이! 물에 빠진 친구 구하고 육십 년 수명 연장받은 그 녀석은, 자라서 정승 판서가 되어 나라를 아주 잘 다스렸다고 해.
    사람들이 이 집을 두고 뭐라 불렀는지 아시오? '불사(不死)의 집', 죽음이 없는 집이라 불렀어. 물론 영원히 안 죽는 사람은 없겠지만, 험한 일 안 당하고, 아프지 않고, 제 명대로 살다가 웃으며 가는 게 바로 '불사' 아니겠소?

    세월이 흘러 흘러, 지금도 광주 땅 어딘가에는 이 진사 댁 후손들이 살고 있다는데, 그 집안사람들은 지금도 남을 돕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선다지 뭔가.
    여러분, 이 이야기가 그저 옛날 전설 같기만 하오? 나는 그리 생각 안 하오. 저승사자가 들고 다니는 명부, 그거 지금도 매일매일 바뀐다고 합디다.
    우리가 길 가다 휴지 하나 줍는 마음, 배고픈 길고양이한테 물 한 모금 주는 마음, 힘든 이웃한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마음... 그 마음 하나하나가 모여서 시커먼 '죽을 사(死)' 자를 지우고, 반짝이는 '살 생(生)' 자를 새겨넣는 법이지요.
    혹시 아오? 오늘 여러분이 베푼 작은 친절 때문에, 문밖에 와 있던 저승사자가 "에이, 이 집은 아직 멀었네" 하고 발길을 돌렸을지.
    자, 이 진사 댁의 기적 같은 이야기, 여기서 맺습니다.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는 말, 너무 뻔해서 잊고 살지만, 그게 바로 세상 이치고 진리라는 거, 오늘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시길 바라오.

    유튜브 엔딩 멘트

    "어르신들, 오늘 이 진사 댁 이야기 어떠셨소? 저승사자도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만드는 '착한 마음'의 힘,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요즘 세상이 각박하다, 살기 힘들다 해도, 결국 나를 지키고 우리 가족을 지키는 건 보험 증서가 아니라 서로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입니다. 오늘 밤, 주무시기 전에 가족들 손 한번 꼭 잡아주시고, '고맙다, 사랑한다' 말해보세요. 그 순간 여러분 집에도 황금빛 복이 굴러들어올 겁니다. 오늘 이야기가 즐거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시고, 저는 다음에 더 신나고 가슴 찡한 이야기 보따리 메고 찾아오겠습니다. 모두들 무병장수하시고, 강녕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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