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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을 사랑한 기러기의 슬픔 - 새가 된 여인이 옛 연인을 그리워한 사연 (동야휘집)

    태그

    #조선시대, #야담도감, #해피엔딩, #드라마, #전설, #새가된여인, #기러기, #환생, #초월적사랑, #운명, #비극적사랑, #애절함, #판타지, #로맨스, #감동, #스토리텔링, #사랑이야기, #동야휘집

     

    후킹멘트 (250자 내외)

    인간과 새의 경계를 넘어선 금단의 사랑. 아름다운 여인은 왜 스스로 기러기가 되었나? 밤마다 옛 연인의 처소를 맴도는 한 마리 기러기… 인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운명 속에서, 그녀는 어떻게 다시 사랑을 이루었을까? 슬픔과 희망이 뒤섞인 초월적인 사랑 이야기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가난하지만 순수했던 한 선비와, 그를 연모했던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신분 차이로 인해 이루어질 수 없었던 그들의 사랑은 여인을 기러기로 만들었고, 남자는 그녀를 그리워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하지만 운명은 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데… 새가 된 여인의 간절한 그리움과,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한 처절한 노력,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진정한 사랑의 힘을 담아낸 감동적인 이야기다.

    ※ 가난한 선비와 정혼한 여인

    깊은 산속, 푸른 대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사시사철 맑은 바람 소리가 그치지 않는 한적한 마을에 김생이라는 젊은 선비가 살고 있었다. 그는 비록 대대로 물려받은 것이라곤 낡은 서책 몇 권과 청빈뿐인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학문에 대한 열의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밤에는 달빛을 등불 삼아 책을 읽었고, 낮에는 땔감을 하며 늙으신 노모를 봉양했다. 그의 벗들은 김생의 뛰어난 학식과 고결한 성품을 칭송하며, 언젠가는 반드시 대과에 급제하여 가문을 일으킬 것이라 입을 모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벼슬길은 멀고 험했으며, 그는 늙으신 노모의 약값과 당장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고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김생에게는 칠흑 같은 현실 속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어린 시절부터 양가 부모님의 약조로 정혼한 여인, 이웃 마을 대갓집의 외동딸 이효연이었다.

    효연은 피어나는 목련처럼 곱고 단아한 미색을 자랑하는 규수였으며, 그 마음씨 또한 비단결 같아 마을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두 사람은 어릴 적, 아직 남녀유별의 법도를 배우기 전부터 허물없이 지내며 맑고 순수한 사랑을 키워왔다. 김생의 기억 속, 효연은 늘 개울가에서 수줍게 그를 기다리던 소녀였다. 김생이 서당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효연은 늘 그의 집 앞 개울가에서 기다렸다가, 손수 땋아온 오색 머리끈이나 밤새 몰래 만든 떡을 건네주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김생은 그런 효연의 미소에 고단했던 하루의 피로를 잊곤 했다. 서로의 눈빛 속에는 미래에 대한 설렘과 변치 않을 사랑의 맹세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어린 시절, 달빛 아래에서 아무도 모르게 처음 손을 잡았을 때, 효연은 책을 잡느라 이미 굳은살이 박인 김생의 손길에 온몸이 떨리는 전율을 느꼈고, 김생은 비단처럼 부드러운 효연의 여린 손을 평생 놓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그들의 사랑은 가난이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하지만 세월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효연이 어느덧 혼인할 나이가 되자, 그들의 사랑 앞에는 거대하고도 잔인한 시련이 닥쳐왔다. 효연의 아버지는 이제 와서 가난한 선비인 김생과의 혼인을 결사반대하고 나섰다. 김생의 집안은 끼니를 잇기조차 어려운 빈궁한 처지였고, 그의 출셋길은 안개 속처럼 불투명했다. 효연의 아버지는 매일같이 딸의 방문 앞에서 소리쳤다. "내 금쪽같은 외동딸을, 저렇게 앞날이 캄캄한 가난뱅이에게 보낼 수는 없다! 굶어 죽을 셈이냐!" 그는 딸의 애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양의 막강한 세도가인 박 대감 댁 아들과 효연의 혼인을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박 대감의 아들은 학식과 문벌은 물론, 산더미 같은 재물까지 갖춘, 누구나 부러워하는 당대의 일등 신랑감이었다. 효연은 울며불며 며칠 밤낮으로 부모님께 김생과의 혼인을 허락해달라고 애원했다. "아버님, 약조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저희는 이미 하늘이 맺어준 인연입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뜻은 요지부동이었다. "어릴 적 철없는 약조가 어찌 평생을 좌우한단 말이냐! 네 정혼자라 한들, 지금은 나랏돈이나 축내는 한심한 선비에 불과하다. 어찌 네가 저런 박복한 팔자를 따라가 평생을 고생하며 살려 하느냐!" 효연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밤마다 김생을 생각하며 피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요되는 낯선 사내와의 혼인에 그녀는 깊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김생 역시 효연과의 강제적인 이별 소식에 깊은 슬픔과 무력감에 잠겼다. 그는 며칠 밤낮을 식음을 전폐하며 고통스러워했다. 자신의 가난과 무능함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을 빼앗게 되었다는 끔찍한 자책감에 그는 잠시 삶의 의미를 잃는 듯했다. 그는 밤마다 효연의 집 높은 담장 아래를 서성이며 그녀의 그림자라도 보려 애썼고, 그녀에게 보내는 애절한 연서를 수십 통이나 썼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모두 허사였다. 효연의 집 담장은 높았고, 부모님의 감시는 삼엄했으며, 그가 보낸 서찰은 효연에게 닿기도 전에 불태워졌다. 그는 결국 자신 때문에 효연이 집안에서 더 큰 고통을 겪게 될까 두려워, 그녀에게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아픈 가슴만 쥐어뜯을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순수했던 사랑은 가혹한 운명의 장난과 냉정한 현실의 벽 앞에서 속절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효연은 날마다 핏기 없이 야위어갔고, 김생은 점점 더 깊은 시름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들의 찬란했던 사랑은 이제 슬픔과 절망이라는 짙고 차가운 그림자에 갇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서로를 향한 변치 않는 애틋함이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여전히 남아있었다.

    ※ 금단의 밀회, 그리고 이별

    효연의 혼례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올수록 그녀의 마음은 더욱 애통해지고 절박해졌다. 낯선 사내의 아내가 되어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녀에게 죽음보다 더한 형벌이었다. 밤마다 잠 못 이루며 창밖의 달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에는 마르지 않는 눈물만이 가득했다. 김생 역시 효연이 곧 다른 사내의 여인이 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는 더 이상 이 무기력한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대로 효연을 떠나보낸다면, 산송장처럼 평생을 후회하며 살게 될 것 같았다. 그는 마지막 용기를 내어, 효연의 충직한 몸종을 통해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효연 역시 죽기 전 김생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녀는 부모님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목숨을 건 밀회를 약속했다.

    어느 날 밤, 달빛마저 두 사람의 슬픈 운명을 외면하듯 구름 뒤에 숨어버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마을 외곽의 작은 숲에서 몰래 만났다. 숲은 그들의 슬픈 사랑을 아는 듯 깊은 침묵에 잠겨 있었고, 나뭇잎 사이로 흐느끼는 듯한 바람 소리만이 애처롭게 들려올 뿐이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로의 얼굴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불과 몇 달 사이에 효연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 있었고, 김생의 눈빛은 깊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효연은 떨리는 손으로 김생의 까칠해진 뺨을 어루만졌다. "도련님… 어찌 이리 야위고 상하셨습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터져 나오는 흐느낌에 섞여 갈기갈기 찢어질 듯 이어졌다. 김생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효연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의 단단한 품속에서 효연은 마치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서럽게 울었다. "효연아… 가지 마라. 제발 나를 떠나지 마라. 너 없는 세상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단다." 그의 목소리는 절박한 애원이 되어 어둠 속에 흩어졌다.

    두 사람은 숲속 이끼 낀 바위 위에 마주 앉았다. 그들의 손은 다시는 놓치지 않으려는 듯 서로의 온기를 찾아 얽혔고, 그들의 눈빛은 이제 곧 영원히 헤어져야 할 연인들의 간절함으로 애틋하게 빛났다. 김생은 효연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그녀의 붉어진 입술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처음에는 애틋하고 서툴기만 하던 입맞춤은, 이내 억눌려왔던 이별의 아픔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깊은 갈망으로 점차 격렬해졌다. 그들의 몸은 서로의 마지막 온기를 탐하듯, 그리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듯 뜨겁게 얽혔다. 효연은 김생의 품에 안겨 흐느꼈고, 김생은 그녀의 여린 등을 쓸어내리며 슬픔을 달랬다. 그들의 옷고름이 풀리고, 차가운 밤공기에 드러난 맨살이 서로의 뜨거운 체온을 나누며, 세상의 모든 법도와 규율을 잊었다.

    그들의 사랑은 금단의 열매와도 같았다. 유교의 엄격한 규율 속에서 혼인 전 남녀의 몸이 섞이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하고 부정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모든 것을 초월했다. 어둠 속에서 두 개의 몸은 서로에게 마지막 위안과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듯 격정적으로, 그리고 서글프게 하나가 되었다. 효연은 김생의 품에 안겨 그의 이름을 애절하게 불렀고, 김생은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에 입을 맞추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몸이 닿을 때마다 참을 수 없는 전율이 일었고, 쾌락을 넘어선 깊은 슬픔과 애절한 사랑이 뒤섞여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그것은 단순한 정사가 아니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잔인한 운명 앞에서, 서로의 영혼을 상대의 육신에 영원히 각인시키려는 두 연인의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동이 틀 무렵, 숲은 여전히 고요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그 어떤 세월의 풍파에도 결코 지워지지 않을 뜨거운 흔적이 새겨졌다.

    헤어질 시간이 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 동안 놓아주지 못했다. 효연은 김생의 품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고, 김생은 그녀를 놓아주는 것이 마치 자신의 심장을 산 채로 찢어내는 것과 같았다. "효연아… 부디, 부디 건강히 지내거라. 이 못나고 무능한 사내는… 평생 너 하나만을 가슴에 품고 살 것이다." 김생은 그녀의 손을 잡고 굵은 눈물을 흘렸다. 효연은 이미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김생을 올려다보았다. "도련님… 저를 잊지 마십시오. 저 역시… 다른 사내의 아내가 되더라도, 제 마음은 영원히 도련님의 것입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김생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는, 더 이상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는 듯 재빨리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김생은 그녀의 뒷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그의 가슴속에는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사무치는 아픔과 함께, 그녀와의 뜨거웠던 하룻밤의 기억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낙인처럼 새겨졌다. 그렇게 두 사람은 차갑고 잔인한 생이별을 맞이하게 되었다.

    ※ 기러기가 된 여인

    효연의 혼례 날, 마을은 온통 축제 분위기로 들썩였다. 화려한 꽃가마가 그녀의 집 대문 앞에 도착했고, 혼례 행렬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길거리가 북적였다. 하지만 김생의 마음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는 허름한 초가집에 홀로 틀어박혀, 마치 독약을 마시듯 쓰디쓴 술잔을 쉴 새 없이 기울였다. 쓰디쓴 술은 그의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지만, 그의 가슴속을 태우는 고통은 전혀 가시지 않았다. 그는 덜컹거리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풍악 소리는 마치 그의 심장을 칼로 난도질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효연아… 나의 효연아…' 그는 술잔을 움켜쥐고 어린아이처럼 목 놓아 흐느꼈다. 그날 밤, 김생은 효연과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모두 마당의 아궁이 속으로 던져 넣었다. 그녀와의 애틋했던 마음이 담긴 연서는 물론, 그녀가 손수 만들어준 빛바랜 머리끈까지.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며 그는 효연을 향한 미련과 함께 자신의 마음마저 남김없이 불태우려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효연의 그림자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그녀와의 뜨거웠던 마지막 하룻밤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하고 감각적으로 그의 뇌리를 맴돌았다. 그의 손끝에 아직도 남아있는 듯한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 그의 귓가에 울리는 듯한 그녀의 애절한 신음 소리, 그 모든 것이 그를 미치게 했다.

    한편, 효연은 박 대감 댁으로 시집을 갔다. 그녀는 겉으로는 나무랄 데 없이 정숙하고 순종적인 새색시의 모습을 잃지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속은 이미 모든 것이 타버린 잿더미와 같았다. 그녀는 부와 명예를 모두 갖춘 남편의 지극정성 어린 보살핌 속에서도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웃지 못했다. 매일 밤, 그녀는 화려하지만 차가운 비단 이불 속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김생을 그리워했다. 특히 김생과의 마지막 밤의 기억은 그녀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의 뜨거운 숨결, 그녀의 이름을 애절하게 부르던 그의 목소리, 서로의 몸을 미친 듯이 탐하던 격렬한 몸짓.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잠 못 드는 밤을 지배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김생을 향한 변치 않는 사랑과, 그를 잊지 못하는 죄책감, 그리고 낯선 사내에게 몸을 맡겨야 하는 굴욕감과 억지로 강요된 삶에 대한 깊은 절망감이 뒤섞여 그녀의 영혼을 서서히 갉아먹었다.

    그녀는 결국 식음을 전폐하고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날마다 낙엽처럼 야위어갔고, 옥같이 고왔던 얼굴에는 짙은 병색이 완연했다. 용하다는 의원들이 모두 다녀갔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병을 고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병은 몸의 병이 아닌, 마음의 병이었기 때문이다. 효연은 자신이 더 이상 살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녀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김생을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품었다. 하지만 명문가의 부인이 된 몸으로 옛 정혼자를 만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점차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부디… 부디 다시 한번 김생 도련님을 만나게 해주소서. 그가 저를 잊지 않게 해주소서. 만약 인간으로 안된다면, 저 하늘을 나는 새라도 되어 그의 곁을 맴돌게 해주소서.'

    그녀의 간절한 바람은 마침내 하늘에 닿았다. 그녀의 마지막 숨이 멎는 순간, 그녀의 몸은 한 줄기 눈부신 빛과 함께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아름다운 한 마리 기러기가 슬픈 눈빛으로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효연은 기러기가 된 것이었다. 그녀는 기러기가 된 자신의 모습에 놀랐지만, 이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녀는 다시 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김생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날개를 힘껏 펼쳐 차가운 밤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녀의 몸은 자유로웠고, 그녀의 눈은 인간일 때보다 훨씬 멀리 볼 수 있었다. 그녀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먼 곳으로 날아갔다. 그녀의 목적지는 오직 하나, 김생이 살고 있는 그리운 마을이었다. 그녀는 차가운 바람을 가르며 밤새도록 쉬지 않고 날았다. 그녀의 날갯짓에는 김생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과, 인간으로 돌아가 다시 그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기러기가 된 자신의 기구한 운명에 감사하며, 새로운 희망을 품고 어둠 속을 날아갔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김생을 향한 변치 않는 사랑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 그리움의 날갯짓

    기러기가 된 효연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옛 연인이 사는 마을을 향해 날아갔다.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과 감정은 뇌리에 선명했지만, 새가 된 몸은 차가운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했다. 그녀는 다른 기러기들과 무리를 지어 날며, 그들의 거친 날갯짓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웠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는 깃털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고, 궂은비가 내리는 날에는 꺾일 듯한 날개로 비바람과 맞서 싸워야 했다. 굶주린 매의 날카로운 발톱이 자신의 등을 스치고 지나갈 때면, 인간이었을 때는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생명의 위협에 온몸을 떨어야 했다. 고되고 처절한 여정이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직 김생을 만나야 한다는 단 하나의 일념뿐이었다. 수백 리 길을 며칠에 걸쳐 날아, 마침내 그녀는 눈에 익은 고향 마을의 풍경을 상공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대나무 숲 아래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더욱 낡아버린 김생의 초가집을 발견했다.

    그녀는 김생의 집 지붕 위에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창호지 너머로, 희미한 등불 아래에서 홀로 책을 읽고 있는 김생의 모습이 보였다. 효연이 떠난 후 몇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혼자였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시름과 지울 수 없는 그리움이 그늘처럼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효연은 그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고 싶었지만, 그녀의 목에서는 그저 "끼룩, 끼룩"하는,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영혼의 울음소리만 터져 나올 뿐이었다. 그날 이후, 효연은 김생의 곁을 그림자처럼 맴돌았다. 낮에는 그가 밭을 맬 때면 근처 나뭇가지에 앉아 그의 지친 어깨를 안타깝게 지켜보았고, 밤에는 그의 집 지붕 위에서 그의 방 창호지에 비친 그림자를 보며 밤을 지새웠다. 그녀는 밤마다 그의 꿈에라도 나타나고 싶은 마음에, 더욱더 구슬프게 울었다.

    한편, 김생은 몇 년 전부터 자신의 집 주변을 떠나지 않는 기이한 기러기 한 마리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아차리고 있었다. 보통 기러기는 계절의 흐름을 따라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는 법인데, 그 기러기는 사시사철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특히 달빛이 시리도록 푸른 밤이 되면, 그 기러기는 마치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는 듯한 구슬픈 울음소리로 밤새도록 울어댔다. 김생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그 울음소리가 오래전 헤어진 효연의 흐느낌과 섬뜩할 만큼 닮아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기러기에게 깊은 정을 주기 시작했다. 그는 기러기에게 '효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매일 아침 자신의 몫을 덜어 먹이를 챙겨주었다. "효연아, 오늘은 날이 좋구나. 네가 내 곁에 있으니, 나도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는구나." 그는 기러기에게 말을 걸며, 사무치는 그리움을 달랬다. 기러기는 그의 말을 모두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그의 손에 부리를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김생은 그런 기러기의 모습에서 죽은 효연의 환영을 보았다. 그는 기러기를 통해 자신의 슬픔을 위로받았고, 기러기는 그런 그의 곁에서 잠시나마 인간이었을 때의 행복을 느끼며 외로움을 견뎠다. 그렇게 종의 경계를 넘어선, 세상에서 가장 기묘하고도 애틋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 운명의 재회와 깨달음

    세월은 덧없이 흘러, 김생은 이제 수염이 거뭇하게 자란 중년의 사내가 되었다. 그는 여전히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지만, 그의 깊은 학문과 인품을 흠모한 마을 사람들의 추대로 작은 서당의 훈장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여전히 깃털의 색이 바래고 늙어버린 기러기 '효연'이 함께였다. 그는 효연을 향한 지독한 그리움을 잊지 못해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그의 지극한 순정은 마을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많은 이들이 그의 변치 않는 사랑을 안타까워하고 또 존경했다. 그러던 어느 혹독한 겨울밤, 김생은 지독한 고뿔에 걸려 며칠 밤낮을 끓는 듯한 열병에 시달리며 앓아누웠다. 뜨거운 열에 정신이 혼미해진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깊은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그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효연을 만났다. 그녀는 십수 년 전 헤어지던 그 날의 모습 그대로, 아름다운 비단옷을 입고 달빛 아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련님…" 그녀의 목소리는 예전처럼 맑고 고왔다. 김생은 이것이 꿈인 줄 알면서도 그녀에게 달려가 어린아이처럼 와락 끌어안았다. "효연아! 정녕 너란 말이냐! 내가… 내가 단 하루라도 너를 잊은 적이 없는 줄 아느냐!" 그는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효연은 그런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슬픈 미소로 말했다. "저 역시… 단 한 순간도 도련님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도련님의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김생은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너는 이미 오래전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 않느냐." 그러자 효연은 눈물을 머금고, 자신이 죽어서 기러기가 될 수밖에 없었던 기구한 사연을 모두 털어놓았다. 그리고 매일 그의 곁을 맴돌며 그를 지켜보던 그 늙은 기러기가 바로 자기 자신임을 알려주었다.

    "끼루룩!" 하는, 심장을 저미는 듯한 구슬픈 울음소리에 김생은 꿈에서 깨어났다.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꿈의 내용은 너무나도 생생하여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는 그의 늙은 기러기 '효연'이 하얀 눈을 흠뻑 맞으면서도, 오직 방문만을 바라보며 그를 걱정스럽게 지키고 있었다. 김생은 떨리는 목소리로, 꿈속에서처럼 기러기를 불렀다. "효연아… 정말… 정말 너란 말이냐?" 그러자 기러기는 마치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천천히 그에게 다가와 그의 차가운 손등에 자신의 머리를 가만히 부볐다. 그 온기와 눈빛. 그 순간, 김생은 모든 것을 깨달았다. 꿈이 아니었다. 이 기러기는 정말로 효연의 영혼이 깃든 환생이었던 것이다. 그는 기러기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효연아! 나의 어리석음을 용서하거라! 어찌하여… 어찌하여 이런 가혹한 운명이 우리에게…!" 그의 뜨거운 눈물은 차가운 기러기의 깃털 위로 떨어져 녹아내렸다. 기러기 역시 그의 품에서, 지난 십수 년간의 서러움을 토해내듯 구슬프게 울었다.

    그날 이후, 김생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더 이상 기러기를 단순한 새로 대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대하듯, 매일 정성껏 그녀를 보살폈다. 그는 기러기를 방 안에 들여, 가장 따뜻한 아랫목에 푹신한 짚을 깔아 자리를 내주었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이 밤새워 쓴 시를 읽어주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기러기는 그의 말을 모두 알아듣는 듯,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때로는 날갯짓과 울음소리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밤이 되면, 김생은 기러기를 품에 안고 잠이 들었다. 그는 그녀의 작은 심장 소리를 들으며, 그녀의 부드러운 깃털을 어루만지며, 비록 모습은 다르지만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있음을 느끼며 지독했던 외로움을 위안받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깊은 슬픔과 갈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효연을 다시 온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그는 그녀와 다시 한번, 인간으로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그는 효연을 인간으로 되돌릴 방법을 찾기 위해, 온갖 의서와 금서, 야담집까지 뒤지기 시작했다.

    ※ 사랑의 기적

    김생은 효연을 인간으로 되돌릴 방법을 찾기 위해 온 나라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기도하고,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마을을 지나던 한 백발의 늙은 스님에게서 실낱같은 희망이 담긴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인간의 간절한 사랑과 지극한 정성은 때로 하늘을 감동시켜 법도를 뛰어넘는 기적을 만들기도 하는 법이지요. 달빛의 정기를 모아 만든 옷을 입히면, 혹시 아오." 스님은 그에게 보름달이 뜨는 백일 동안, 깊은 산속 이슬을 머금고 자라는 '월광초(月光草)'라는 신비로운 풀을 엮어 옷을 만들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백 번째 되는 날 밤, 그 옷을 기러기에게 입히고 진심을 다해 사랑의 입맞춤을 하면, 그녀가 다시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 하루라도 거르거나,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마음을 품으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어 그녀는 영원히 새로 살아가야 할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도 잊지 않았다.

    김생에게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이자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날부터 그는 매일 밤, 험준한 뒷산 깊은 곳으로 가 월광초를 베어왔다. 월광초는 쇠보다 단단하고 그 잎은 칼날보다 날카로워, 그의 손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밤새도록 달빛 아래에서 풀을 엮어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손가락은 굳은살이 박이고 갈라져 피가 흘렀지만, 그는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효연은 그런 그의 곁을 그림자처럼 지키며, 구슬픈 울음소리로 그를 응원했다. 그녀는 자신의 부리로 그의 상처를 핥아주며, 그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애썼다. 99일이 지나는 동안, 김생은 단 한숨도 편히 잠들지 못했다. 그의 몸은 바싹 말라갔지만, 그의 눈빛은 효연을 다시 만나리라는 뜨거운 희망으로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마침내 운명의 백 번째 밤이 되었다. 하늘에는 세상을 모두 비출 듯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떠올랐다. 김생은 지난 백일 동안 자신의 피와 땀, 그리고 영혼을 바쳐 엮은 월광초 옷을 들고 마당으로 나섰다. 은은한 달빛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는 옷은 마치 천상의 선녀가 입는 옷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그는 조심스럽게 기러기를 품에 안고, 떨리는 손길로 그녀에게 옷을 입혔다. 그리고는 그녀의 작은 머리를 감싸 쥐고, 그녀의 부리에 자신의 입술을 맞추었다. 그의 입맞춤에는 효연을 향한 백일간의 지극한 정성과, 평생의 사무치는 그리움, 그리고 세상을 초월한 변치 않을 영원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기러기의 몸에서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 기러기는 온데간데없고, 월광초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바로, 그가 평생을 그리워했던 효연이었다.

    "도련님…" 그녀는 꿈에도 그리던 그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김생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의 온기가 느껴졌다. 꿈이 아니었다. "효연아… 나의 효연아…" 그는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듯, 한참 동안 서로를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길고 길었던 이별이 마침내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비로소 온전한 부부가 되었다.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만난 그들의 사랑은 그 어떤 젊은 연인들의 사랑보다도 뜨겁고 격렬했다. 김생은 효연의 몸 구석구석을 경건하게 어루만지며, 그녀가 없는 동안 겪어야 했던 사무치는 그리움과 외로움을 남김없이 달랬다. 효연 역시 그의 품에 안겨, 인간으로서 느끼는 사랑의 희열과 남자의 체온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몸은 서로에게 마지막 위안이자 영원한 안식처였다. 쾌락을 넘어선 깊은 교감 속에서, 두 개의 영혼은 마침내 완벽한 하나가 되었다. 그 후, 두 사람은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들의 기적 같은 사랑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져, 오늘날까지도 진정한 사랑의 힘을 증명하는 아름다운 전설로 남아있다.

    유튜브 엔딩멘트

    야담도감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인간과 새의 경계를 넘어, 죽음마저 갈라놓지 못한 애틋하고도 기적 같은 사랑 이야기, 어떻게 보셨나요? 진실된 마음과 지극한 정성은 때로 운명마저 바꾸는 거대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인간과 동물의 애틋한 사랑이 아닌, 인간들의 욕망이 부딪히는 곳, 바로 밤 깊은 궁궐의 이야기입니다. 하룻밤의 실수로 궁녀와 공주의 운명이 뒤바뀐다면? 『어우야담』이 들려주는 아찔한 운명의 장난, 기대해 주십시오. 구독과 좋아요는 다음 야담을 만드는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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