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감동] 자신의 수명을 내어준 기생 , 그이의 사랑은 진심이었어요 『해동야화』
태그 (15개):
#야담, #전설의고향, #조선시대, #저승사자, #기생, #순애보, #감동실화, #수면용, #오디오드라마, #시니어힐링, #옛날이야기, #기적, #명부, #염라대왕, #사랑
야담, 전설의고향, 조선시대, 저승사자, 기생, 순애보, 감동실화, 수면용, 오디오드라마, 시니어힐링, 옛날이야기, 기적, 명부, 염라대왕, 사랑


후킹멘트 (300자 내외):
"차사님! 이분은 안 됩니다. 차라리 저를 데려가십시오!"
천하의 명기(名妓)라 불리던 기생 월향.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돈 많은 양반도, 권세가도 아닌 병든 가난한 선비였습니다. 선비가 죽음을 맞이하던 날, 들이닥친 저승사자 앞을 가로막은 여인. 피도 눈물도 없다는 저승사자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자신의 수명을 떼어주겠다며 울부짖은 그녀의 사랑은 과연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요? 얼음장 같은 저승 법도마저 뒤집어놓은, 죽음을 뛰어넘은 기적 같은 사랑 이야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조선 한양 땅, 콧대 높기로 소문난 기생 월향은 가난하지만 올곧은 선비 김수영에게 마음을 뺏깁니다. 그녀는 자신의 패물을 팔아 선비의 약값과 과거 공부를 뒷바라지하지만, 야속하게도 선비는 과거 시험을 코앞에 두고 덜컥 죽을병에 걸리고 맙니다. 비바람 몰아치던 밤, 선비의 목숨을 거두러 온 저승사자. 하지만 월향은 물러서지 않고 사자와 맞서는데... "내 사랑은 거짓이 아닙니다. 제 목숨을 가져가세요." 저승사자가 흘린 단 한 방울의 눈물, 그리고 뒤바뀐 운명.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동의 오디오 드라마입니다.
※ 화려한 기방의 명기 월향, 가난한 선비에게 마음을 주다
옛날, 조선 한양 장안에 '월향(月香)'이라는 기생이 살았습니다. 이름처럼 달빛 그윽한 향기를 품은 여인이었지요. 그녀의 거문고 솜씨와 빼어난 미색을 보려고 돈 깨나 있다는 한량들과 권세가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지만, 월향의 콧대는 남산 소나무보다 더 높았습니다.
"내 비록 천한 기생 몸이라 하여도, 마음만은 아무에게나 줄 수 없다."
그녀는 황금을 싸 들고 오는 부자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냉랭하게 대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그녀의 마음속에 들어온 단 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진 것 하나 없는 남산골 샌님, 김수영 선비였습니다.
김 선비는 몰락한 양반 가문의 자손으로, 하루 끼니를 걱정할 만큼 가난했지만 글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올곧은 청년이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기방 앞을 지나던 김 선비가 떨어진 월향의 노리개를 주워주게 되었는데, 그때 월향은 선비의 맑고 깊은 눈동자에 그만 마음을 뺏기고 말았습니다. 비단 옷을 입은 자들에게서는 맡을 수 없는, 묵향(墨香)과도 같은 은은한 인품의 향기가 났기 때문입니다.
그날 이후, 월향은 남몰래 김 선비를 뒷바라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방에서 번 돈을 몰래 선비의 집 담장 너머로 던져주기도 하고, 밤새 정성껏 지은 도포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받을 수 없다"며 거절하던 선비도, 월향의 진심 어린 마음에 감동하여 마음을 열게 되었습니다.
"낭자, 내 반드시 과거에 급제하여 낭자를 면천(免賤)시키고 정실부인으로 맞이하리다. 이 약조를 내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겠소."
선비의 굳은 맹세에 월향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가난했지만 풍요로웠습니다. 월향은 기방 일을 줄이고 선비의 공부 뒷바라지에 전념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선비에게 먼저 가져다주었고, 추운 겨울에는 자신의 솜이불을 선비의 윗목에 깔아주었습니다. 주변 기생들은 혀를 찼습니다.
"얘, 월향아. 네가 미쳤구나. 저런 가난뱅이한테 공을 들여서 뭐 하니? 차라리 김 대감 첩으로 들어가는 게 낫지."
하지만 월향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너희는 껍데기를 보지만 나는 알맹이를 본다. 저분은 훗날 큰 인물이 되실 분이야. 아니, 설령 벼슬을 못 하신다 해도 나는 저분의 곁을 지킬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연정이 아니었습니다. 서로의 영혼을 알아본, 운명적인 사랑이었습니다. 그렇게 3년, 선비의 학문은 날로 깊어졌고 드디어 과거 시험 날짜가 잡혔습니다.
※ 과거 급제의 꿈도 잠시, 선비를 덮친 죽음의 그림자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요.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더니, 과거 시험을 불과 한 달 앞둔 어느 날이었습니다. 밤낮없이 책만 파고들던 김 선비가 그만 덜컥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처음엔 단순한 과로인 줄 알았으나, 선비의 기침 소리는 날이 갈수록 깊어졌고 나중에는 피까지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용하다는 의원을 불러 진맥을 해보았으나, 의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습니다.
"쯧쯧, 폐에 깊은 병이 들었소. 맥이 실낱같으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소."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습니다. 월향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하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아니오, 의원님. 이분은 절대 돌아가실 분이 아닙니다. 제가 살릴 겁니다."
월향은 그동안 모아두었던 패물을 모두 팔았습니다. 산삼이며 녹용이며 좋다는 약재는 다 구해다 달였습니다. 기생으로서의 자존심도 버리고, 약값을 구하기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손은 거칠어졌고 얼굴은 수척해졌지만, 선비를 향한 눈빛만은 형형하게 빛났습니다.
"낭자... 미안하오... 내 그대에게 호강을 시켜주겠다 약조해 놓고... 짐만 되는구려..."
피골이 상접한 선비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월향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월향은 선비의 손을 자신의 볼에 비비며 울음을 삼켰습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낭군님은 일어나실 수 있습니다. 제가 제 수명을 나눠서라도 낭군님을 살릴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약해지지 마세요."
하지만 하늘은 무심했습니다. 약을 써도 차도가 없고, 선비의 생명 불꽃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워져만 갔습니다. 창밖에는 며칠째 궂은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수 소리가 마치 이별을 재촉하는 시계 소리처럼 들려왔습니다.
선비가 누워있는 방 안에는 짙은 약 냄새와 죽음의 그림자가 깔려 있었습니다. 선비는 헛소리를 하며 자꾸만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어머니... 아버님... 오셨습니까..."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찾는 선비. 월향은 직감했습니다. 이승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녀는 선비의 머리맡을 지키며 밤새 기도를 올렸습니다.
"천지신명님, 부처님. 제발 이 사람을 살려주십시오. 착하게 산 죄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데려가시려거든 차라리 저를 데려가십시오."
그녀의 간절한 기도가 빗소리에 묻혀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밤, 방문 밖에서 스산한 바람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산 사람의 것이 아닌, 저승의 냉기를 품은 발자국 소리였습니다.
※ "김수영, 가자" 비 내리는 밤 찾아온 검은 도포의 불청객
비바람이 문풍지를 거세게 때리는 칠흑 같은 밤이었습니다. 선비의 숨소리는 갈수록 가늘어져 마치 꺼져가는 촛불과도 같았습니다. 월향은 선비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주며 불안한 마음을 다잡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스으으...'
분명 닫혀 있던 방문이 소리도 없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바람에 열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람이 불면 덜컹거려야 할 문이, 마치 누군가 부드럽게 밀고 들어온 듯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틈으로 뼛속까지 시린 냉기가 방 안으로 밀려들어 왔습니다.
월향은 본능적으로 소름이 끼쳤습니다. 고개를 들어 문 쪽을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둠 속에서 검은 삿갓을 깊게 눌러쓰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 도포를 입은 사내가 서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고, 입술은 핏기 하나 없이 푸르스름했습니다. 산 사람의 기색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죽음 그 자체를 형상화한 존재. 바로 저승사자였습니다.
사자는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월향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직 누워있는 김 선비에게로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그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가 선비를 응시하자,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선비의 몸이 움찔하고 떨렸습니다. 사자가 품속에서 붉은 글씨가 적힌 명부(名簿)를 꺼내 들고, 낮고 건조한 목소리로 읊조렸습니다.
"한양 남산골 김수영, 금년 나이 스물일곱. 자, 때가 되었으니 가자."
그 목소리는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바로 울리는 듯했습니다. 그 순간, 놀랍게도 며칠째 꼼짝 못 하던 선비의 몸에서 희뿌연 그림자 같은 것이 일어나 앉으려 했습니다. 선비의 영혼이 육신을 빠져나가려는 찰나였습니다.
공포에 질려 떨고 있던 월향이 비명을 지르며 선비의 몸을 와락 껴안았습니다.
"안 됩니다! 못 갑니다! 낭군님, 정신 차리세요! 따라가시면 안 됩니다!"
월향의 따뜻한 체온이 닿자, 일어나려던 선비의 영혼이 다시 육신 속으로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사자의 눈썹이 꿈틀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목소리도 듣지 못하는 법인데, 이 여인은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고 대항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보시오, 여인. 산 사람은 빠져라. 어명을 받고 왔다. 저 자의 명줄은 여기까지다."
사자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젓자, 보이지 않는 힘이 월향을 밀쳐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월향은 선비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손톱이 하얗게 질리도록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습니다.
"누구 마음대로 데려간단 말입니까! 이분은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아직 꽃도 피워보지 못한 분입니다!"
사자는 싸늘하게 비웃었습니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억지 부리지 말고 비키거라. 시간이 지체되면 너 또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사자가 한 걸음 다가오자 방 안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져 입김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촛불이 파르르 떨며 꺼질 듯 말 듯 위태로웠습니다. 그것은 압도적인 공포였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공포보다 강하다고 했던가요. 월향은 두려움에 치를 떨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암사자처럼 눈을 부릅뜨고 저승사자를 노려보았습니다.
※ "못 갑니다!" 저승사자의 앞길을 막고 통곡하는 기생
"비키라 했다. 두 번 말하지 않겠다."
저승사자의 목소리에 서릿발 같은 살기가 실렸습니다. 그는 품에서 차가운 쇠사슬을 꺼내 들었습니다. 망자의 목을 걸어 끌고 간다는 그 악명 높은 저승의 쇄기였습니다. 사자가 선비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월향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날려 사자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행동을 했습니다.
감히, 천상의 존재인 저승차사의 바짓가랑이를 두 손으로 꽉 붙잡고 바닥에 납작 엎드린 것입니다.
"차사님! 제발... 제발 한 번만 굽어살펴 주십시오! 이분은 안 됩니다. 절대 안 됩니다!"
월향의 절규는 바깥의 천둥소리를 뚫고 밤하늘에 메아리쳤습니다. 사자는 당황하여 뒷걸음질 치려 했으나, 월향의 악력은 대단했습니다. 마치 뿌리 깊은 나무처럼 엉겨 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짓이냐! 이거 놓지 못할까! 감히 인간 따위가 저승사자의 옷깃을 잡다니, 네가 정녕 죽고 싶은 게냐!"
사자가 호통을 쳤지만, 월향은 더욱 세게 매달렸습니다.
"죽여도 못 놓습니다! 차사님도 눈이 있으시면 보십시오! 이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평생 남에게 해코지 한 번 안 하고, 욕심 한 번 안 부리고 오직 글공부만 하며 올곧게 살아온 사람입니다. 굶기를 밥 먹듯 하면서도 남을 먼저 생각하던 바보 같은 사람입니다. 왜 하필 이런 사람을 데려가려 하십니까!"
월향의 목소리는 피를 토하듯 처절했습니다.
"저기 밖을 보십시오!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고 배부르게 사는 탐관오리들은 백 년을 넘게 살게 두면서, 왜 법 없이도 살 이 착한 선비만 잡아가려 하십니까! 하늘에 눈이 있다면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게 하늘의 도리입니까!"
월향은 억울함을 쏟아내며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쳤습니다. 그녀의 뜨거운 눈물이 사자의 차가운 도포 자락 위로 뚝뚝 떨어져 얼룩을 만들었습니다. 사자는 혀를 찼습니다. 수백 년 동안 수만 명의 망자를 데려갔지만, 이렇게 지독하게, 이렇게 악착같이 매달리는 사람은 처음이었습니다. 대부분은 공포에 질려 도망치거나 체념하기 마련인데, 이 여인은 사자를 꾸짖고 있었습니다.
"인명은 재천이라 했다. 착하다고 오래 살고, 악하다고 일찍 죽는 게 아니다. 그저 정해진 수명이 다했을 뿐이다. 세상의 이치를 네 좁은 소견으로 판단하려 들지 마라. 놔라, 갈 길이 멀다."
사자가 다리에 힘을 주어 월향을 떨쳐내려 했습니다. 월향의 몸이 바닥에 질질 끌려갔습니다. 무릎이 까져 피가 배어 나오고, 손톱이 깨져 나갔지만 그녀는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그녀는 다시 기어와 사자의 발 앞에 머리를 찧으며 통곡했습니다.
"수명이라고요? 하늘이 정한 운명이라고요? 그런 억지 같은 운명이면 저는 인정 못 합니다! 이분이 과거 급제하여 힘없는 백성을 돌보는 꿈을 꾸는 동안, 저는 기생 옷을 입고 웃음을 팔아가며 손발이 부르트도록 뒷바라지했습니다. 이제 막 그 고생 끝에 낙이 오려는 찰나입니다. 그런데 죽음이라니요! 꽃 한번 피워보지 못하고 꺾이는 게 운명이라면, 그 운명은 너무나 가혹합니다!"
월향은 사자의 발을 붙잡고 흔들며 애원했습니다.
"차사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평생을 살려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딱 며칠만이라도, 아니 이분이 눈을 뜨고 저에게 작별 인사라도 할 수 있게 시간을 주십시오. 이렇게 허망하게, 눈도 못 마주치고 보낼 수는 없습니다. 제발...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방바닥에 엎드려 오열하는 여인의 모습은 처참할 정도로 애절했습니다. 화려했던 명기 월향의 자존심은 온데간데없고, 사랑하는 이를 지키려는 한 여인의 처절한 몸부림만이 방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냉혈한인 저승사자의 마음 한구석에도 작은 파동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돌처럼 굳어있던 그의 심장이 '지끈'거리며 반응했습니다.
'허어... 지독한 여인일세. 천한 기생이라 하여 가볍게 보았더니, 그 마음 씀씀이는 열녀(烈女)보다 더하고 그 기개는 장군보다 더하구나.'
하지만 사자는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려 명부를 어기면, 저승의 질서가 무너지고 자신 또한 소멸의 벌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짐짓 더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습니다.
"안 된다! 이미 명부에 이름이 올라왔고, 시각이 되었다. 더 이상 고집부리면 네 영혼까지 쇠사슬에 묶어 끌고 갈 것이다. 썩 물러거라!"
사자가 억지로 월향의 손을 떼어내고, 선비의 목을 향해 쇠사슬을 던지려는 찰나였습니다. 월향이 벌떡 일어나 선비의 몸 위를 덮으며 두 팔을 벌려 막아섰습니다. 그리고 사자를 똑바로 노려보며, 천지를 뒤흔들 충격적인 제안을 내뱉었습니다.
"그렇다면 거래를 합시다! 정 누군가를 데려가야 한다면, 차라리 저를 데려가십시오! 제 목숨을 가져가란 말입니다!"
※ "제 수명을 드리겠습니다" 하늘도 놀란 여인의 희생
"차라리... 차라리 저를 데려가십시오!"
월향의 그 한마디는 비바람 치는 밤, 천둥소리보다 더 크고 무겁게 방 안을 뒤흔들었습니다. 쇠사슬을 던지려던 저승사자의 손이 허공에서 딱 멈췄습니다. 수백 년간 수만 명의 망자를 데려갔지만, 죽음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조금이라도 더 부지하려 발버둥 치는 인간은 보았어도, 남을 위해, 그것도 천한 기생 신분으로 양반 선비를 위해 대신 죽겠다고 나서는 꼴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자가 서늘한 눈빛으로 바닥에 엎드린 월향을 내려다보며 싸늘하게 물었습니다.
"진심이냐? 네 놈의 명줄을 보니 아직 창창하다 못해 넘쳐흐른다. 너는 앞으로 40년은 더 살 수 있고, 네가 가진 재주와 미색이라면 한양 바닥에서 내로라하는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다. 헌데 겨우 이 병든 사내, 오늘내일하는 이 가난한 선비를 위해 그 모든 미래를 포기하고 지옥불에 뛰어들겠다는 거냐?"
월향은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눈빛은 두려움은커녕, 바위처럼 단단하고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부귀영화가 다 무슨 소용입니까. 비단옷을 입고 고기반찬을 먹은들,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은 제게 차가운 감옥이나 다름없습니다. 40년의 세월을 홀로 눈물로 지새우느니, 단 하루를 살아도 낭군님을 살리고 제가 대신 가는 것이 제게는 천국이고 행복입니다."
월향은 품속 깊이 간직해 온 은장도를 꺼냈습니다. 칼집에서 '스르릉' 하고 서슬 퍼런 칼날이 빠져나오자, 촛불 빛을 받아 섬뜩한 빛을 냈습니다. 사자가 흠칫하여 물러섰으나, 월향은 사자를 위협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칼끝을 자신의 목에 겨누었습니다. 그것은 협박이 아니라,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려는 결연한 의지였습니다.
"차사님, 이분의 이름이 적힌 명부를 제게 보여주십시오. 제 이름을 그 위에 덮어쓰겠습니다. 제 남은 수명 40년을 몽땅 이분께 드릴 테니, 제발... 제발 이분을 살려주십시오. 이분은 저 같은 기생과는 다릅니다. 세상에 나가 백성을 위해 큰일을 해야 할 귀한 분입니다. 저 하나 죽는 것은 세상에 아무런 해가 되지 않으나, 이분이 가시는 것은 나라의 큰 손실이자 백성들의 아픔이 될 것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으나,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이 하염없이 뚝뚝 떨어져 차가운 칼날 위를 적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애원이나 치기 어린 객기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오직 '그 사람'에게 둔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목숨을 초월한 숭고한 자기희생이었습니다. 월향은 피골이 상접한 선비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넸습니다.
"낭군님... 못난 저를 만나 고생만 하시다 가시게 할 순 없습니다. 부디 일어나셔서 못다 한 뜻을 펼치세요. 저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다음 생에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제가 양반집 규수로 태어나 낭군님과 당당하게 짝이 되겠습니다."
월향이 선비의 차가운 손을 자신의 젖은 볼에 비비며 오열하자, 놀랍게도 혼수상태인 선비의 감은 눈가에서도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비록 의식은 없으나, 영혼으로 그녀의 절절한 마음을 느낀 것이겠지요.
방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밖에서는 빗줄기가 더욱 거세져 창문을 때리고 있었지만, 방 안에서는 죽음의 사자와 사랑의 화신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사자는 월향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눈 속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 대신, 사랑하는 이를 살리겠다는 일념만이 횃불처럼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얼음장같이 차가웠던 저승사자의 마음 한구석에서 '지끈' 하는 통증과 함께 작은 파동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수백 년 동안 잊고 살았던 '인간의 정(情)'이라는 감정이었습니다.
'허어... 지독한 여인일세. 기생이라 하여 천하게 여겼더니, 그 마음 씀씀이는 열녀(烈女)보다 더하고, 그 기개는 장군보다 더하구나.'
※ 저승사자의 눈물, 그리고 고쳐 쓰인 저승 명부
사자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방 안에는 거친 빗소리와 월향의 끊어질 듯한 흐느낌 소리만이 가득 찼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적막 속에서, 사자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그 목소리에는 서릿발 같은 냉기 대신, 알 수 없는 깊은 탄식과 온기가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거두어라. 그 칼 거두어라."
월향이 의아한 눈으로 젖은 얼굴을 들어 올리자, 사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내 수만 명의 망자를 데려갔지만, 너 같은 독종은 처음 보는구나. 네 정성이 지극하여 하늘도 차마 외면치 못할 듯싶다. 네 목숨을 내놓겠다는 그 말이 빈말이 아님을 내 알겠다."
사자는 품에서 다시 붉은 명부를 꺼내 펼쳤습니다. 그리고 먹을 잔뜩 머금은 붓을 들어 김수영 선비의 이름 위에 가져다 댔습니다. 사자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습니다. 저승의 법도를 어기고 명부를 고치는 일은, 차사 자신에게도 감당하기 힘든 큰 벌이 따르는 금기(禁忌)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자는 월향의 피 맺힌 눈물을 보고 결심을 굳힌 듯했습니다. '사랑'이라는 위대한 힘 앞에,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법칙이 고개를 숙이는 순간이었습니다.
'뚝.'
사자의 눈에서 투명한 물방울 하나가 명부 위로 떨어졌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다던 저승사자가 인간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감동하여 흘린, 기적과도 같은 눈물이었습니다. 그 눈물이 명부의 글자 위에 떨어지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스물일곱(二十七)'이라고 적혀 있던 선비의 수명 글자가 검은 먹물처럼 번지더니, 스스로 꿈틀거리며 모양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이(二) 자 위에 획이 더해지고 획이 꺾이더니, 이내 '일흔일곱(七十七)'이라는 글자로 선명하게 다시 새겨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자가 명부를 '탁' 덮으며 나직이 말했습니다.
"네 놈의 지독한 사랑이 내 눈을 멀게 했구나. 내 오늘 빗물에 눈이 흐려 명부를 잘못 보았다 치겠다. 이자의 수명은 본래 스물일곱이 아니라 일흔일곱이었구나. 50년을 더 살 운명이었는데, 내가 착각하여 헛걸음을 했다."
월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아 멍하니 사자를 바라보았습니다.
"차... 차사님?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 살려주시는 겁니까?"
사자는 월향을 내려다보며 엄중하게 경고했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다. 이것은 공짜가 아니다. 덤으로 얻은 50년의 삶이니, 너희 두 사람은 남은 생을 절대 허투루 살아서는 안 된다. 네가 떼어주려 했던 그 수명만큼, 더 치열하게 사랑하고, 더 많이 베풀며 살거라. 그것이 하늘을 속인 대가이자, 나에 대한 보답이다."
월향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오열했습니다. 감사의 눈물이 바닥을 흥건히 적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평생 은혜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사자는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 듯하더니, 검은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뒷걸음질 쳤습니다.
"잘 살아라. 다음번에 데리러 올 때는 둘이 손잡고 같이 오거라. 혼자 오면 심심할 테니."
사자의 모습이 안개처럼 흐릿해지더니, 스르르 문밖으로 빠져나갔습니다. 그와 동시에 며칠 동안 천지가 개벽할 듯 퍼붓던 비바람이 거짓말처럼 '뚝' 그치고, 먹구름 사이로 둥근 보름달이 환하게 얼굴을 내밀어 방 안을 비추었습니다.
"으음..."
방 안을 가득 채우던 죽음의 냉기가 사라지자, 거짓말처럼 선비가 깊은 신음과 함께 눈을 떴습니다. 핏기 없던 창백한 얼굴에 붉은 홍조가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월향은 선비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다시는 놓지 않겠다는 듯, 부서져라 껴안았습니다. 그날 밤의 달빛은 두 사람의 새로운 인생을 축복하듯 유난히 밝았습니다.
※ 백년해로하고 함께 떠난 두 사람
그날 밤의 기적 이후, 김 선비는 마치 씻은 듯이 병석을 털고 일어났습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선비는 월향의 손을 꼭 잡고 눈물로 맹세했습니다.
"부인, 내 목숨은 이제 내 것이 아니오. 그대가 저승사자와 담판을 지어 찾아온 목숨이니, 내 남은 생은 오직 그대를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쓰겠소. 그대가 아니었으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오."
월향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덕분에 김 선비는 이듬해 과거에 장원급제하였습니다. 급제 후, 선비는 가문의 반대와 세상의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기생 신분인 월향을 정실부인으로 당당하게 맞아들였습니다.
"천한 기생을 부인으로 삼다니!"라며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김 선비는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내 목숨을 구한 은인이자, 내 영혼의 반려자요. 신분이 무엇이 중요하겠소. 내게는 이 사람보다 귀한 사람은 없소."
두 사람의 깊고 단단한 사랑 앞에서는 신분의 벽도 무의미했습니다. 김 대감이 된 선비는 청렴결백한 관리로 명성을 떨치며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고, 월향은 지혜롭고 덕망 있는 안주인이 되어 가난한 이웃을 돕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들은 저승사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루하루를 덤으로 얻은 선물이라 생각하며 그 누구보다 귀하고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 50년이 지났습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백년해로한 두 사람은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가 되었습니다. 자식들은 훌륭하게 자랐고, 집안은 화목했습니다. 어느 따스한 봄날, 툇마루에 나란히 앉아 붉게 물드는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사립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습니다.
"계십니까."
낮고 굵직한, 하지만 어딘가 낯익은 그리운 목소리였습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돌리자, 50년 전 그 비 오는 밤에 보았던 검은 도포의 사내가 서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은 모습, 바로 그 저승사자였습니다.
김 대감과 월향은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오래전 떠난 벗을 다시 만난 듯, 서로를 마주 보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오셨습니까. 약조한 시간이 다 되었구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습니다.
"약속대로, 두 분을 함께 모시러 왔습니다. 지난 50년, 참으로 잘 사셨습니다. 명부의 잉크가 아깝지 않을 만큼, 참으로 아름답게 사셨습니다."
김 대감은 주름진 월향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 손은 예전처럼 곱지 않았지만, 김 대감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이었습니다.
"부인, 갑시다. 그대가 있어 내 삶은 매일이 봄날이었고, 축복이었소. 고맙소, 정말 고맙소."
월향도 남편의 손을 마주 잡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낭군님과 함께라면 저승길도 꽃길일 것입니다.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두 사람은 미리 준비해 둔 고운 수의로 갈아입고, 나란히 손을 꼭 잡고 대문을 나섰습니다. 저승사자가 그들의 앞길을 안내했습니다. 그들의 뒤로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와 벚꽃 잎을 흩날려 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다음 날 아침, 잠든 듯 평온하게 숨을 거둔 노부부를 발견했습니다. 두 분의 얼굴이 어찌나 행복해 보이던지, 마치 좋은 곳으로 소풍을 떠난 아이들 같아서 아무도 곡(哭)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저승사자의 눈물로 얻어낸 50년의 세월. 죽음조차 갈라놓지 못한 그 기적 같은 사랑 이야기는 후세에도 전해져,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 주었습니다.
유튜브 엔딩 멘트
자, 오늘 들려드린 '저승사자의 마음마저 움직인 기생 월향의 기적 같은 사랑 이야기', 어떠셨나요?
자신의 목숨보다 상대를 더 아끼는 그 지고지순한 사랑이 가슴을 참 먹먹하게 만듭니다.
요즘같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세상에서, 죽음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월향의 용기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어르신들, 여러분의 곁을 지키고 있는 배우자, 혹은 가슴 속에 품고 계신 소중한 인연이 떠오르시나요?
오늘 밤, 곤히 잠든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한번 꼭 잡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당신 덕분에 내 인생이 참 좋았다"는 말 한마디가, 어쩌면 저승 명부도 고쳐 쓸 기적을 만들어낼지도 모르니까요.
오늘 이야기가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작은 관심이 잊혀가는 우리네 아름다운 옛이야기들을 다시 꽃피우는 큰 힘이 됩니다.
저는 다음 시간, 더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조선의 야담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사랑 가득한 편안한 밤 되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