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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급제자와 기생의 사랑

황금 인생 21 2025. 9. 13. 19:19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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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급제자와 기생의 사랑 (출처 - 계서야담)

    태그 (20개)

    #조선시대, #야담, #설화, #전설, #기생, #선비, #사랑이야기, #계서야담, #사극, #로맨스, #신분차이, #권선징악, #해피엔딩, #감동, #역사, #한국사, #장원급제, #한양, #오디오드라마, #ASMR, #야담도감, #전설의고향, #라디오드라마

     

    후킹멘트 (250자 내외)

    하룻밤 연정으로 끝날 인연인 줄 알았건만, 그 밤의 맹세는 훗날 장원급제자가 된 선비의 목에 칼이 되어 돌아왔다. 신분의 벽과 탐욕스러운 권력가의 손아귀에서 피어난 애절한 사랑. 과연 선비는 붓 대신 칼을 들고, 그의 여인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계서야담 속 가장 뜨거웠던 밤의 기록.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계서야담에 기록된 선비 이명원과 기생 매향의 애절하고도 뜨거운 사랑 이야기. 가난한 선비와 한양 제일의 기생으로 만나 잊지 못할 하룻밤을 보낸 두 사람. 장원급제를 약속하며 떠난 선비를 기다리는 매향 앞에 거대한 시련이 닥친다. 신분과 관습을 뛰어넘은 이들의 사랑은 과연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까?

    ※ 가난한 선비 이명원의 글솜씨를 유일하게 알아보는 매향

    휘황찬란한 등불이 밤의 장막을 걷어내고, 한양의 욕망이 들끓는 곳, 연화루는 그 이름처럼 활짝 핀 연꽃처럼 화려하게 밤을 수놓고 있었다. 나라의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거물들이 모두 모여 앉아, 기름진 음식과 향기로운 술에 취해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으니, 바로 무대 중앙에서 거문고를 뜯고 있는 매향이었다. 그녀는 단순한 기생이 아니었다. 시와 서, 그리고 음악에 두루 능통하여 '해어화(解語花)', 즉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 불리는 당대 제일의 명기였다. 옥으로 빚은 듯한 손가락이 거문고 줄 위를 미끄러질 때마다,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노래 한 소절을 읊조릴 때면, 늙은 재상들마저 넋을 잃고 침을 삼켰다. 모두가 그녀의 아름다움과 재능에 취해 있을 때, 그 화려한 연회와 어울리지 않는 한 사내가 있었다. 가장 구석진 자리,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에서 묵묵히 술잔만 기울이는 사내. 남루하다 못해 해진 유생 복을 입은 그는,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진 산해진미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바로 이명원이었다. 그의 행색은 초라했으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만은 연회장의 그 어떤 보석보다도 맑고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권세가들의 귀에 거슬리는 아첨과 저잣거리 잡배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 음담패설이 오가는 동안, 그는 홀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듯했다. 술이 거나하게 오르자, 판서 벼슬을 하는 늙은이가 붉어진 얼굴로 시제를 하나 던졌다. '달 아래 홀로 핀 매화의 정경'이라는 시제에, 저마다 한가락 한다는 양반들이 붓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붓끝에서 나온 것은 화려한 수식어로 치장했을 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상투적인 시구들뿐이었다. 그들의 시는 마치 분만 두껍게 바른 기생의 얼굴처럼, 아름답기는 하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그때였다. 모두의 관심 밖, 아니 멸시의 대상이었던 이명원이 조용히 붓을 들었다. 그의 붓이 화선지 위를 스쳐 지나가자, 먹빛이 피어나듯 시 한 수가 완성되었다. 그의 시는 화려하지 않았다. 꾸밈도 없었다. 하지만 담백하고 소박한 시어 하나하나에, 달빛 아래 홀로 추위를 견디며 고고한 향기를 뿜어내는 매화의 모습이, 그리고 그 매화에 자신의 처지를 투영한 선비의 외로운 심경이 절절하게 녹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시는 이내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웬 거지 선비가 감히 대감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는고!" "글에 힘이 없고 청승맞기만 하구나. 저런 글로는 평생 말단 관직 하나 얻지 못할 것이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웃음에도 이명원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붓을 내려놓았다. 그때, 그 모든 소음을 잠재우는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시 소첩의 무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매향이었다. 그녀는 연꽃처럼 우아한 자태로 일어나, 이명원이 쓴 시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는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그의 시를 읊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빌려 다시 태어난 시는, 더 이상 초라한 글자의 나열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가운 겨울밤, 외로운 이의 마음을 파고드는 애달픈 노래가 되었고, 모두의 가슴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던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시 낭송을 마친 매향은, 그 어떤 권세가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직 이명원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시에는 화려한 기교는 없사오나, 시인의 맑은 영혼과 굳은 절개가 담겨 있습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이처럼 꾸미지 않은 것에서 나오는 법. 오늘 이 자리에서 가장 으뜸인 시는 단연 이 선비님의 것입니다." 순간, 연회장에는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감히 기생 따위가, 그것도 당대 최고의 명기인 매향이 늙은 판서의 체면을 깎아내리고, 이름 없는 선비의 편을 든 것이다. 이명원은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을 맞추었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자신의 겉모습만 보고 손가락질할 때, 유일하게 자신의 글 속에 담긴 고고한 정신을 알아봐 준 여인. 화려한 장신구와 값비싼 비단 옷으로도 가릴 수 없는, 그녀의 깊고 맑은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이명원은 자신의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뛰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날 밤, 시끌벅적했던 연회가 끝나고 모두가 떠나간 자리. 텅 빈 누각 위로 교교한 달빛만이 쏟아져 내렸다. 그 달빛 아래, 두 사람은 비로소 온전한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밤공기에는 매화 향기가 그윽했고, 그 향기는 앞으로 시작될 두 사람의 운명을 예고하는 듯했다.

    ※ 시와 음악으로 서로의 지성과 마음에 깊이 빠져드는 두 사람

    연화루의 본채에서 풍겨오는 소란과 술 냄새가 닿지 않는 깊숙한 곳. 오직 매향만이 거처하는 아담한 별채는 그녀의 성정을 닮아 단아하고 기품이 넘쳤다. 방 안에는 진한 묵향과 은은한 난초 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고, 창호지 너머로는 작은 대나무 숲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청아한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우고 있었다. 그 운명적인 첫 만남 이후, 이명원은 밤이 깊어지면 으레 매향의 방을 찾았다. 연화루의 다른 기생들과 손님들은, 가난한 선비가 용케도 한양 제일의 기생을 홀려 몸을 섞는다고 수군거렸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그런 세속적인 욕정을 뛰어넘는 깊은 교감이 흐르고 있었다. 둘은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시와 글을 논하며, 서로의 학문과 예술에 대한 깊이에 감탄했다. 이명원은 매향이 단순히 얼굴이 곱고 노래만 잘하는 기생이 아니라는 사실에 매일 밤 새롭게 놀랐다. 그녀는 사서삼경은 물론, 당대의 학자들이 쓴 책까지 두루 섭렵하고 있었으며, 역사와 철학에 대한 식견은 어지간한 선비들을 능가했다. 그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자신의 원대한 정치적 이상과 학문에 대한 깊은 고뇌를 그녀에게 털어놓았고, 매향은 그의 유일한 지기(知己)가 되어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선비님의 글에는 힘이 있습니다.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닌, 핍박받는 백성을 향한 따뜻한 마음과 부조리한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지요." 매향의 칭찬은 권력자들이 자신의 환심을 사기 위해 던지는 값싼 아첨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녀는 이명원의 글 속에 숨겨진 고독과 분노, 그리고 원대한 꿈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어느 깊은 밤, 이명원은 오랫동안 품어왔던, 나라의 근본적인 개혁을 주장하는 상소문의 초고를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내밀었다. 당시의 지배층이 본다면, 그의 목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과격하고 위험한 내용이 담긴 글이었다. 하지만 매향은 조금도 놀라는 기색 없이, 몇 번이고 글을 정독하더니, 가만히 먹을 갈기 시작했다. 그녀는 붉고 도톰한 입술을 살짝 깨물며, 글자 몇 개를 수정하고, 문장의 순서를 바꾸어 글의 논리를 더욱 날카롭게 벼렸다. 그녀의 섬세한 손길이 닿자, 거칠고 투박했던 이명원의 글은 마치 잘 벼린 명검처럼 예리하고, 막힘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유려해졌다. 이명원은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매향 낭자는... 정녕 하늘이 내린 사람이오. 나의 글에 날개를 달아주었소. 낭자는 나의 스승이오." 그의 진심 어린 말에 매향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지만, 이내 맑고 깊은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선비님이야말로 소첩의 소리를 알아주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제 거문고 소리가 곱고 아름답다고 칭송하지만, 정작 그 소리 안에 담긴 제 슬픔과 한을 진정으로 들어주는 이는 선비님뿐이었습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려있던 거문고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는 오직 이명원, 단 한 사람의 관객을 위해 줄을 뜯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끝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단순한 기교를 넘어선, 영혼의 절규와도 같았다. 기생이라는 천한 신분에 갇혀 자신의 재능과 몸을 팔아야 하는 처절한 현실, 진정한 사랑을 꿈꿀 수조차 없는 깊은 슬픔, 그리고 자신을 억압하는 세상을 향한 서러운 원망이 그 가락 하나하나에 모두 녹아 있었다. 이명원은 조용히 눈을 감고 그녀의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비단 매향 한 사람의 소리가 아니었다. 이 땅의 모든 억압받는 이들의 울음소리이자, 신음 소리였다. 그는 그녀의 음악을 통해 비로소 핍박받는 백성의 삶을, 그들의 사무치는 고통을 가슴으로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연주가 끝나고,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시와 음악, 그리고 학문과 예술을 통해 두 사람의 영혼은 이미 하나의 끈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가난한 선비와 천한 기생이라는 신분의 차이나, 그들을 향한 세상의 손가락질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들은 서로의 영혼을 비추는 맑은 거울이자,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 따뜻한 안식처였다. 창밖의 달빛이 더욱 밝게 방 안을 비추며, 두 사람의 모습을 고요히 지켜보고 있었다.

    ※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연정을 나누는 밤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르던 방 안에, 낯설고 뜨거운 열기가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거문고를 내려놓은 매향의 희고 가녀린 목덜미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달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다. 이명원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평생을 책과 붓, 그리고 성현의 말씀만을 가까이하며 살아온 그의 몸이, 처음으로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원초적인 열망에 휩싸였다. 그는 떨리는 손을 뻗어, 격정적인 연주로 인해 붉게 상기된 그녀의 손가락 끝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매향은 놀란 듯 어깨를 움츠렸지만, 그의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의 크고 투박한 손을, 자신의 작고 부드러운 손으로 마주 감싸왔다. 그 따뜻하고 보드라운 감촉이 전해지는 순간, 이명원의 마음속에 단단히 세워져 있던 이성의 둑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매향을 자신의 품으로 와락 끌어당겼고, 매향은 놀란 작은 새처럼 그의 단단한 품에 안겼다. "낭자... 내가... 내가 낭자를..." 이명원은 말을 잇지 못했다. '연모한다'는 흔하고 진부한 말로는, 자신의 심장을 터뜨릴 듯이 날뛰는 이 격정적인 감정을 도저히 표현할 수 없었다. 그의 떨리는 마음을 다 안다는 듯, 매향은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자신의 앵두 같은 입술을 가만히 포갰다. 은은한 난초 향이 섞인 그녀의 달콤한 숨결이 그의 입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순간, 굳게 닫혀 있던 욕망의 빗장이 완전히 풀려버렸다. 두 사람의 입술은 꿀을 찾아 헤매는 벌과 나비처럼, 서로를 미친 듯이 갈망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시작되었던 입맞춤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깊고 격렬해졌다. 이명원의 투박한 손은 어느새 그녀의 얇은 허리를 감아 더욱 밀착시켰고, 매향의 가녀린 손은 그의 넓은 등을 파고들며 그의 열기에 화답했다. 겹겹이 껴입은 옷이 이토록 원망스럽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이명원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저고리 고름을 풀었다. 하얀 동정 아래로 감춰져 있던, 눈처럼 희고 뽀얀 속살과, 수줍게 솟아오른 두 개의 붉은 봉우리가 달빛 아래 고스란히 드러나자, 그는 순간 숨을 멈췄다. 그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어루만졌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매향은 이제껏 한 번도 내보지 못했던 가느다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틀었다. "선비님... 아..." 그녀의 목소리는 애원에 가까웠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듯, 혹은 더 깊고 강렬한 자극을 갈망하는 듯한 그 소리에, 이명원은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마저 놓아버렸다. 마침내 두 사람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완전한 나신으로 서로를 마주했다. 서로의 뜨거운 숨결과 심장이 터질 듯한 고동 소리가 아무런 방해 없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명원은 그녀의 부드러운 몸 위에 자신의 단단한 몸을 포개고, 세상을 다 얻은 정복자처럼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매향은 수줍으면서도 모든 것을 허락한다는 듯한 대담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두 팔을 벌려 그의 목을 힘껏 감싸 안았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무언의 신호였다. 이명원은 천천히, 그러나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녀의 가장 깊고 은밀한 화원(花園)으로 들어갔다. 처음 느껴보는 충만감과 찢어질 듯한 고통에 매향이 숨을 멈추자, 그는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 귓가에 다정하게 속삭였다. "괜찮소... 이제 우리는 온전한 하나요."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매향은 긴장을 풀고 그를 자신의 모든 것으로 온전히 받아들였다. 삐걱이는 나무 침상 소리와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 그리고 살과 살이 부딪히는 질펀한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밤은 깊어갔고,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미친 듯이 탐하며 완벽한 하나가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정욕의 해소가 아니었다. 서로의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상처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위로하는 신성한 의식과도 같았다.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서로를 끌어안고 잠시 숨을 고르던 이명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매향... 내가 반드시, 기필코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이 연화루에서 너를 데리고 나가 내 정식 아내로 맞이하겠소. 하늘에 맹세하리다. 그러니 나를 믿고 기다려주시오."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굳건했다. 매향은 그의 굳은 맹세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겠습니다, 선비님. 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선비님만을 기다릴 것입니다." 창밖으로 새벽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비록 하룻밤의 짧고 강렬한 연정이었지만,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평생을 함께할 굳은 맹세가 불도장처럼 깊이 새겨졌다.

    ※ 매향의 미색을 탐낸 신임 판관 김진수

    이명원이 과거 시험을 위해 책 보따리를 짊어지고 한양으로 떠난 뒤, 연화루에는 매향의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그녀는 매일 밤 그가 남기고 간, 그의 체취가 밴 시를 읽고, 그와의 뜨거웠던 밤의 추억이 깃든 거문고를 뜯으며 사무치는 그리움을 달랬다. 그녀의 거문고 소리는 전보다 한층 더 깊고 애절해졌지만, 그 가락에 담긴 슬픔 또한 걷잡을 수 없이 짙어졌다. 그녀의 삶은 이제 온전히 이명원을 기다리는 시간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양에 새로 부임한 판관 김진수가 요란한 행차와 함께 연화루를 찾았다. 그는 선대왕의 먼 친척이라는 족보를 방패 삼아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호색한으로 악명이 자자했으며, 그의 권세를 이용해 수많은 여인들을 울린 파렴치한이었다. 연회에 나선 매향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의 탐욕스러운 눈은 독사처럼 번들거렸다. "네년이 바로 뜬구름 잡는다는 사내들의 심금을 울린다는 매향이렷다. 과연 소문이 헛되지 않았구나. 그 곱상한 얼굴과 탐스러운 몸매가 내 침상에 딱 어울리겠어." 김진수는 노골적이고 음흉한 시선으로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으며 저속한 말을 내뱉었다. 매향은 속에서 치미는 불쾌감과 혐오감을 억누르고 예를 갖춰 술을 따랐지만, 김진수의 추태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해졌다. 그는 술에 취한 척 비틀거리며 그녀의 손을 덥석 잡고, 풍만한 엉덩이를 주무르며 희롱했다. 매향이 오랜 기생 생활에서 익힌 기지를 발휘해 뱀처럼 교묘하게 그의 손길을 피하자, 김진수는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괘씸한지고. 감히 이 판관의 손길을 거부하다니. 오늘 밤 내 수청을 들지 않으면, 네년의 고운 얼굴에 칼자국을 내고, 이 연화루를 쑥대밭으로 만들어주마." 그의 살기 어린 협박에 연화루의 행수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매향에게 매달렸다. "매향아, 제발... 판관 나리의 심기를 거스르면 우리 모두가 죽는다. 그저 하룻밤, 눈 딱 감고 참으려무나." 하지만 매향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제 몸은 이미 다른 분께 허락한 몸입니다. 제 마음 또한 그렇습니다. 차라리 제 목에 칼이 들어올지언정, 정조를 더럽힐 수는 없습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직 이명원 한 사람뿐이었다. 그와의 굳은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렵지 않았다. 그날 이후, 김진수의 비열하고 집요한 압박이 시작되었다. 그는 매일같이 포졸들을 보내 매향을 자신의 관아로 끌고 오라 명했고, 연화루에 터무니없는 세금을 물리거나 사소한 트집을 잡아 영업을 방해했다. 매향 한 사람 때문에 연화루 전체가 위기에 처하자, 다른 기생들은 그녀를 원망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행수는 매일 밤 눈물로 호소했다. 매향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밤마다 이명원의 이름을 부르며 베갯잇을 적셨고, 그가 하루빨리 장원급제하여 자신을 구하러 와주기만을 애타게 기도했다. 이명원과의 약속, 그 희망의 끈 하나만을 붙잡고, 그녀는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었다. 한편, 한양의 과거 시험장에서는 이명원이 마지막 답안지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새워가며 공부한 탓에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그의 눈빛만은 맑은 정신으로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뇌리에는 오직 두 가지 생각뿐이었다. 부패한 이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는 원대한 포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매향의 얼굴. 그녀를 생각하면 저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장원급제를 해야만 했다. 그는 매향이 붉은 입술로 속삭이며 다듬어주었던 상소문의 내용을 떠올리며, 막힘없이 자신의 경륜과 지식을 화선지 위에 펼쳐나갔다. 그의 답안지는 다른 유생들처럼 현학적인 지식을 뽐내는 글이 아니었다. 굶주리는 백성을 향한 뜨거운 연민과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충심이 글자 하나하나에 담겨 있었다. 마침내 마지막 글자까지 써 내려간 그는, 붓을 내려놓고 합격자 발표가 있을 방(榜)이 내걸릴 광장을 향해 굳은 다짐을 되뇌었다. '매향... 나의 매향... 조금만 더 견뎌주시오. 내가 곧 그대에게 가겠소. 반드시 그대를 구해내겠소.'

    ※ 장원급제하여 금의환향한 이명원

    드디어 과거 시험의 결과가 발표되는 운명의 날. 한양 저잣거리는 이른 새벽부터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유생들과 그 가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마침내 합격자 명단이 적힌 거대한 방이 내걸리자, 광장은 순식간에 기쁨의 함성과 절망의 탄식이 뒤섞인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누군가는 목이 터져라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했고, 누군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했다. 그 희비가 엇갈리는 소란의 한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가장 큰 글씨로 당당히 적힌 이름 석 자가 있었다. '이명원(李明遠)'. 장원급제. 그토록 간절히 염원하고 고대하던 순간이었다. 이명원은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고도 한동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벅찬 기쁨보다는, '이제 매향에게 당당히 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 먼저 그의 온몸을 감쌌다. 그는 임금 앞에 나아가 어사화(御史花)를 하사받고, 온 백성의 축복을 받으며 삼일유가(三日遊街)를 하는 내내 오직 한 사람만을 떠올렸다. 화려한 비단 관복을 입고, 백마에 올라앉아 위풍당당하게 거리를 행진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수많은 백성들이 그의 앞길에 꽃을 뿌리며 축복했고, 한양의 내로라하는 규수들은 그의 준수한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담장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그 어떤 화려한 풍경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이미 연화루의 매향에게로 달려가, 그녀를 품에 안고 있었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금의환향. 연화루 앞에 당도한 이명원은 벅차오르는 가슴을 안고 굳게 닫힌 문을 활짝 열었다. "매향! 나의 매향! 내가 왔소! 내가 그대와의 약조를 지키러 왔소!" 그의 우렁찬 목소리에 놀란 기생들이 뛰쳐나왔지만, 그를 맞는 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둡고 침통했다. 행수는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릴 뿐이었다. 순식간에 불길한 예감이 그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오? 행수 어멈, 어서 말을 해보시오. 매향이는, 나의 매향이는 어디에 있소?" 그의 다그침에, 곁에 있던 어린 기생 하나가 끝내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나으리... 매향 언니는... 매향 언니는... 그 짐승만도 못한 김 판관 나리에게 강제로 끌려갔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이명원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행수는 그간의 기막힌 사정을 모두 털어놓았다. 이명원이 떠난 후, 김진수 판관이 매향을 자신의 첩으로 삼기 위해 온갖 비열한 악행을 저질렀으며, 끝내 말을 듣지 않자 며칠 전 관노들을 시켜 강제로 자신의 관아로 끌고 갔다는 것이다. 매향이 마지막까지 저항하다가 머리채를 잡혀 짐승처럼 끌려가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고 했다. "언니는... 나으리만 기다렸습니다. 매일 밤 나으리가 써주신 시를 읽으며, 나으리가 꼭 장원급제해서 돌아오실 거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동료 기생의 말은 그의 심장에 비수가 되어 박혔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장원급제의 벅찬 기쁨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 사라지고, 심장을 칼로 도려내는 듯한 극심한 고통과 김진수에 대한 불타는 분노가 그의 온몸을 휘감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굳게 움켜쥐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손바닥을 깊이 파고들어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는 아무런 아픔도 느낄 수 없었다. 그의 눈은 지옥의 불꽃처럼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멸시받던 힘없는 선비가 아니었다. 임금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정식 관료이자, 나라의 녹을 먹는 장원급제자였다. "그 더러운 짐승 놈이... 감히 내 사람을... 내 여인을 건드려!" 이명원은 더 이상 한순간도 지체할 수 없었다. 그는 곧장 말을 돌려, 지옥의 아가리 같은 김진수의 관아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그의 등 뒤에서, 임금이 하사한 어사화가 분노에 찬 그의 마음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 매향을 구해내어 정식 부인으로 맞이한다

    김진수의 관아는 삼엄한 경비 속에서도, 그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주지육림의 향연이 한창이었다. 내실에서는 김진수가 억지로 끌고 온 매향에게 강제로 술을 따르게 하며 희롱하고 있었다. 그녀의 저고리는 반쯤 풀어헤쳐져 있었고, 얼굴에는 굴욕적인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그러나 매향의 눈은 죽지 않았다. 그녀는 독기 어린 눈으로 그를 노려볼 뿐,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이 독한 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네년이 밤낮으로 기다리는 그 거지 선비 놈은, 과거에 낙방하고 시골 구석에서 굶어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 헛된 희망은 버리고, 순순히 내 여자가 되는 것이 네년의 팔자려니 생각하거라!" 김진수가 그녀의 마지막 남은 옷고름마저 풀어헤치고 짐승처럼 덮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네 이놈!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이리도 방자하고 무엄한 짓을 벌이는 것이냐!" 벼락같은 호통과 함께 문이 활짝 열리며, 어사화를 꽂은 화려한 관복 차림의 이명원이 서슬 퍼렇게 들어섰다. 그의 압도적인 기백과 위풍당당한 모습에 김진수는 물론, 내실에 있던 모든 자들이 혼비백산했다. "네... 네놈은 대체 누구냐!" 김진수가 겁에 질려 더듬거리며 묻자, 이명원은 허리춤에서 임금이 하사한 마패(馬牌)를 꺼내 보이며 천지를 울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어명(御命)이다! 신임 암행어사 이명원은 지금부터 이 고을의 부정부패를 심판할 것이다!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부정부패를 일삼고, 백성의 고혈을 빨아 자신의 배를 채웠으며, 힘없는 여인을 겁박한 판관 김진수를 당장 파직하고 의금부로 압송하라!" 사실 그가 받은 직책은 암행어사가 아니었으나, 장원급제자에게 하사된 마패와 그의 불타는 기백은 진짜 암행어사의 출두와 다를 바 없었다. 갑작스러운 어사의 등장에 관졸들은 우왕좌왕했고, 김진수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장원급제자가 바로 자신이 그토록 무시하고 멸시했던 가난한 선비 이명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명원은 그 더러운 놈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곧장 방구석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매향에게 다가갔다. 그는 자신의 화려한 관복 겉옷을 벗어, 헝클어지고 더럽혀진 그녀의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매향... 나의 매향... 내가 너무 늦었소. 정말... 미안하오." 그의 목소리는 죄책감으로 인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매향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다는 듯,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와락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며 그의 품에 안겼다. "선비님... 살아... 돌아오셨군요. 정말... 정말 장원급제하여 저를 구하러 와주셨군요."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서로를 부둥켜안고 그간의 사무치는 그리움과 설움을 토해냈다. 소란을 듣고 달려온 포졸들이 김진수와 그 수하들을 모두 포박했다. 이명원은 매향의 손을 굳게 잡고, 지옥 같았던 관아를 나섰다. 모든 사건이 정리된 후, 이명원은 자신의 굳은 약속을 지켰다. 그는 기생이었던 매향의 신분을 면천(免賤)시키고, 주위의 극심한 반대와 손가락질을 무릅쓴 채 그녀를 자신의 정식 부인으로 맞이했다. 신분의 벽을 뛰어넘은 두 사람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는 한양 전체에 파다하게 퍼져나갔고,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희망을 주었다. 훗날 이명원은 청렴하고 강직한 관리로서 높은 벼슬에 올라, 굶주리고 핍박받는 백성을 위한 선정을 펼쳤고, 매향은 그의 가장 든든한 동반자이자 지혜로운 조언자로서 평생을 함께했다. 비록 하룻밤의 인연으로 시작되었지만, 굳은 믿음과 맹세로 지켜낸 두 사람의 사랑은, 마침내 시들지 않는 꽃이 되어 행복한 결실을 맺은 것이다.

    유튜브 엔딩멘트

    신분을 뛰어넘어 맹세를 지킨 선비와 그를 믿고 기다린 기생의 사랑 이야기, 어떠셨나요? 한낱 야담으로 치부하기에는 그들의 사랑이 주는 울림이 참으로 깊습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어쩌면 서로의 재능과 영혼을 먼저 알아보는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이명원과 매향처럼 모든 것을 걸고 지키고 싶은 인연이 있으신가요? 오늘 야담이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응원이 더 재미있는 야담을 만드는 큰 힘이 됩니다. 야담도감 다음 시간에는 동야휘집에 실린 '도성 밖 주막, 떠도는 영혼의 한'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섬뜩하고도 애달픈 그들의 한 서린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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