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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승사자도 눈물 흘린 호박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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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목숨을 거두러 온 저승사자가, 할머니가 끓여 준 호박죽 한 그릇에 그만 마음이 흔들렸다면 어떻게 될까요. 깊은 산골 다래울 마을, 삼월 할머니의 호박죽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하나 숨어 있었습니다. 그 죽을 먹으면 신기하게도 병이 낫고, 지친 마음이 치유되고, 수명까지 늘어났지요. 그런데 어느 깊은 밤, 나그네로 가장한 낯선 손님이 이 평화로운 마을을 찾아옵니다. 차가운 기운을 감춘 그는 다름 아닌 저승사자였지요. 죽음을 관장하는 그가 생명을 늘리는 호박죽을, 그리고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마주했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죽음마저 변화시킨 호박죽 한 그릇의 이야기, 지금부터 천천히 들려드리겠습니다.

    ※ 1: 다래울 마을의 호박죽

    깊고 깊은 산골에 다래울이라는 자그마한 마을이 하나 있었더랍니다. 첩첩산중에 폭 안긴 마을이라, 아랫동네 장에 한 번 다녀오려 해도 꼬박 반나절은 산길을 걸어야 했지요. 세상과 동떨어진 외진 마을이었지만, 이곳 사람들의 얼굴에는 늘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마을 어귀 오두막에 사는 삼월 할머니 덕분이었지요.

    삼월 할머니는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어느덧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되었습니다. 자식도 없이 홀로 사는 처지였지만,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친어머니처럼, 친할머니처럼 따랐더랍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월 할머니에게는 남다른 재주가 하나 있었으니까요.

    바로 호박죽이었습니다.

    할머니가 가마솥에 뭉근히 끓여 내는 호박죽은, 그 맛이 어찌나 곱고 달던지 한번 맛본 사람은 결코 잊지를 못했지요. 노랗게 잘 익은 늙은 호박을 푹 고아, 찹쌀 새알심을 동동 띄우고, 거기에 정성을 한 솥 가득 쏟아부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그 죽 한 그릇이면, 아무리 추운 겨울날도 뱃속부터 사르르 녹아내렸더랍니다.

    그런데 이 호박죽에는 아무도 모르는 신기한 비밀이 하나 숨어 있었습니다.

    그 죽을 먹으면 신기하게도 몸의 병이 씻은 듯 나았거든요.

    "할머니, 우리 아이가 며칠째 열이 펄펄 끓고 밥도 못 넘겨요. 어쩌면 좋아요."

    젊은 아낙이 울상을 지으며 찾아오면, 삼월 할머니는 두말없이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고는 뜨끈한 호박죽 한 그릇을 정성껏 끓여 내주었지요.

    "자, 이걸 먹이거라. 따뜻할 때 한 술 한 술 떠먹이면 금세 툭툭 털고 일어날 게다."

    신통하게도, 그 죽을 먹은 아이는 이튿날이면 언제 아팠냐는 듯 마당을 뛰어다녔습니다. 기침을 쿨럭이던 노인도, 다리를 절뚝이던 총각도, 할머니의 호박죽 한 그릇이면 거짓말처럼 기운을 되찾았지요.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옆 마을 나무꾼이 벼랑에서 굴러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고 온몸이 성한 데가 없었지요. 아랫동네 의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 했습니다. 헌데 그 소식을 들은 삼월 할머니가 밤새 호박죽을 끓여 먹이자, 나무꾼은 보름 만에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니게 되었더랍니다. 사람들은 그저 입을 다물지 못했지요.

    아픈 몸만 낫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치고 상한 마음까지도 그 죽을 먹으면 스르르 풀어졌더랍니다.

    시집살이에 눈물 마를 날 없던 새댁도, 자식 잃고 넋을 놓았던 늙은이도, 할머니 앞에 앉아 호박죽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어느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지요. 마치 세상 시름을 죄다 그 죽 속에 녹여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할머니는 죽을 내밀며 늘 이렇게 말하곤 했지요.

    "자, 어여 먹어. 사람이 아무리 힘들어도 뜨끈한 거 한 술 뜨고 나면 또 살 만해지는 게야. 세상만사 다 그런 거지."

    "삼월 할멈네 호박죽은 약손이 따로 없다니까."

    "암, 그 죽 한 그릇이면 저승 문턱까지 갔던 사람도 되돌아온다잖은가."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그렇게 입을 모았습니다. 그저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었지만, 실은 그 말이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지요. 할머니의 호박죽을 먹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병치레 없이 오래오래 살았으니까요. 다래울 마을에 유독 백수를 누리는 노인이 많은 것도, 다 그 호박죽 덕분이라는 소문이 은근히 돌았더랍니다.

    이 마을에 흉년이 들어 온 고을이 굶주릴 때에도, 다래울 사람들만은 할머니의 호박죽을 나눠 먹으며 무사히 겨울을 났습니다. 돌림병이 온 나라를 휩쓸던 그 무서운 해에도, 다래울 마을에서는 단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 않았지요. 사람들은 그저 하늘이 도운 것이라 여기며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실은 삼월 할머니 한 사람의 정성에서 비롯된 것임을, 정작 아무도 알지 못했지요.

    허나 정작 삼월 할머니 자신은 그 비밀에 대해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물어도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었지요.

    "별거 아니여. 그냥 늙은 호박에 정성 한 줌 더 넣는 것뿐이지."

    할머니는 늘 그렇게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하나 있었지요. 남의 병은 그리도 잘 고치는 할머니가, 정작 제 몸은 해가 갈수록 눈에 띄게 야위어 갔던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할머니의 등은 점점 더 굽었고, 걸음은 느려졌고, 얼굴에는 저물어 가는 노을 같은 그늘이 어렸더랍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저 할머니가 연세가 많아 그러려니 여겼습니다. 아무도 그 진짜 까닭을 알지 못했지요. 삼월 할머니가 남의 병을 고쳐 줄 때마다, 실은 제 몸에 남은 무언가가 조금씩 조금씩 덜어져 나가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가끔 마을의 눈 밝은 노인들이 걱정스레 한마디씩 건네기도 했습니다.

    "할멈, 남 챙기는 것도 좋지만 이젠 할멈 몸도 좀 돌봐야지. 요새 부쩍 수척해진 게 영 마음에 걸려서 그러네."

    그러면 삼월 할머니는 늘 손사래를 치며 껄껄 웃었지요.

    "아이고, 나야 이만하면 살 만큼 살았지 뭐. 늙은이가 뭘 더 바라겄어. 남은 정이나 실컷 나눠 주다 가면 그걸로 족하지."

    그 말속에 담긴 깊은 뜻을, 그때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더랍니다. 그저 마음씨 고운 노인의 겸손한 말인 줄로만 여겼지요. 그 깊은 비밀은 오직 할머니 혼자만이 가슴에 품고 있었더랍니다.

    그렇게 다래울 마을에는 오늘도 호박죽 냄새가 구수하게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따뜻한 냄새 속에서 평화롭기만 했지요. 저녁이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산자락에 메아리쳤습니다. 참으로 그림처럼 평온한 마을이었지요. 이 평화로운 마을에, 머지않아 아주 낯선 손님 하나가 찾아오리라는 것을. 그때만 해도 아무도,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더랍니다.

    ※ 2: 깊은 밤의 낯선 손님

    그날은 유독 밤바람이 매섭게 부는 늦가을이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산 너머로 넘어가고, 다래울 마을에 짙은 어둠이 깔릴 무렵이었지요. 마을로 들어서는 외길 산자락에, 검은 도포 자락을 휘날리는 한 사내가 소리도 없이 나타났습니다. 머리에는 갓을 깊이 눌러쓰고, 얼굴은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요.

    사내가 지나는 자리마다 서늘한 냉기가 감돌았습니다. 풀잎에는 때 아닌 서리가 내려앉고, 짐승들은 기척을 느끼고는 슬금슬금 자취를 감췄지요. 그럴 수밖에요. 이 사내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는 다름 아닌 저승사자였습니다.

    죽음을 관장하는 명부에서, 때가 다한 이의 목숨을 거두러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이었지요. 저승사자의 소맷자락 속에는 명부 한 권이 들려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번에 그가 데려가야 할 이의 이름 석 자가 또렷이 적혀 있었지요.

    '다래울 마을, 삼월. 정해진 명이 다하였으니, 오늘 밤 데려가야 하리라.'

    저승사자는 명부를 스윽 훑어보고는 나직이 중얼거렸습니다. 그에게 이런 일이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되풀이하는 예삿일에 지나지 않았지요. 그는 지난 수백 년간, 단 한 번도 정에 이끌린 적이 없는 냉정한 저승사자였습니다. 울고불고 매달리는 이도, 목숨을 구걸하는 이도 무수히 보아 왔지만, 그의 얼음장 같은 마음은 결코 흔들리는 법이 없었더랍니다.

    '명부에 적힌 대로, 그저 데려가면 그뿐.'

    저승사자는 스산한 걸음으로 마을을 향해 내려섰습니다.

    수백 년 세월 동안, 그는 무수한 인간의 마지막을 지켜보았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리던 대감도, 저잣거리의 이름 없는 거지도, 죽음 앞에서는 하나같이 똑같았지요. 어떤 이는 재물을 내밀며 목숨을 흥정하려 들었고, 어떤 이는 원망과 저주를 퍼부었으며, 또 어떤 이는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저승사자는 그 모든 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보았지요. 그에게 인간이란, 정해진 때가 되면 데려가야 할 명부 위의 이름 석 자에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정이란 부질없는 것. 어차피 만나면 헤어지고, 태어나면 스러지는 것이 세상 이치가 아니던가.'

    그렇게 마음을 굳게 다진 저승사자였습니다.

    마을 어귀 오두막에 이르자, 창호지 문틈으로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코끝으로 구수한 냄새 하나가 스며들었지요. 늙은 호박을 뭉근히 고는, 그 달큼하고 정겨운 냄새였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냄새를 맡는 순간 저승사자의 서늘한 발걸음이 저도 모르게 잠시 멈칫했지요.

    저승사자가 문 앞에 서서 헛기침을 하자, 안에서 노인의 정겨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뉘신가? 이 야심한 밤에 산골까지 어인 일로."

    이윽고 문이 열리고, 등이 굽은 삼월 할머니가 호롱불을 들고 나왔지요. 할머니는 낯선 사내의 검은 행색을 보고도 조금도 놀라거나 경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야윈 몰골을 걱정스레 살피며 이렇게 말했지요.

    "아이고, 이 추운 밤에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수. 어서 안으로 드시게. 얼굴이 얼음장이 다 되셨네그려."

    저승사자는 잠시 멈칫했습니다. 이제껏 그를 보고 문을 열어 준 이는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사람들은 그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해도, 본능적으로 그 서늘한 기운을 꺼려 몸을 사리기 마련이었지요. 개들은 그를 보면 꼬리를 말고 짖어 대기 바빴고, 어린아이들은 까닭 모를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헌데 이 할머니는 도리어 그를 방 안 아랫목으로 이끌었습니다. 마치 오래 기다린 손님이라도 맞이하듯 말이지요.

    "나그네 양반, 저녁은 자셨는가? 안 자셨으면 마침 죽을 끓이던 참인데 한 그릇 자시고 가시게."

    할머니는 대답도 듣기 전에 부엌으로 종종걸음을 쳤습니다. 그러고는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호박죽 한 그릇을 소반에 받쳐 내왔지요. 그 노란 죽에서는 은은한 온기가 방 안 가득 퍼져 나갔습니다.

    "자, 어여 드시게. 뱃속부터 뜨끈해야 이 산속 밤 추위를 견디지. 먼 길 오신 양반이 얼굴이 아주 백지장이 다 됐네그려."

    저승사자는 제 앞에 놓인 노란 죽 한 그릇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습니다.

    '죽음을 거두러 온 나에게, 생명을 늘리는 죽을 내밀다니.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로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 호박죽에 서린 신묘한 기운을 말이지요. 저승의 존재인 그의 눈에는, 그 죽 속에 감도는 은은한 생명의 빛이 훤히 보였습니다. 사람의 명을 늘려 주는, 참으로 귀하고 따뜻한 기운이었지요.

    허나 저승사자는 그 죽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저승의 존재가 인간의 음식을, 그것도 생명을 늘리는 죽을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요. 그는 그저 묵묵히 앉아, 눈앞의 할머니를 지그시 바라보았습니다.

    이 할머니가 바로 오늘 밤 자신이 데려가야 할 사람이었으니까요.

    '삼월. 저 노인이 명부에 적힌 그 사람이로구나.'

    저승사자는 소맷자락 속 명부를 다시 한번 가만히 더듬었습니다. 그 손끝이 어쩐지 무겁게 느껴졌지요. 그가 데려가야 할 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얼어붙은 몸을 이불로 덮어 주고, 따뜻한 죽을 끓여 주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었으니까요.

    "어여 드시라니까. 늙은이가 정성껏 끓인 건데, 식으면 맛이 없어."

    할머니가 자꾸만 죽을 권하자, 저승사자는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이런 난감함은 수백 년 만에 처음이었지요.

    저승사자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습니다. 허나 그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지요. 정에 흔들려서는 아니 된다고, 수백 년을 그리 다져 온 그였으니까요.

    밤은 점점 깊어 가고, 오두막 안에는 호박죽의 온기와, 그 온기와는 사뭇 다른 서늘한 기운이 조용히 뒤섞이고 있었더랍니다. 창밖에는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쳤지만, 방 안만은 이상하리만치 아늑하고 따뜻했지요. 저승사자는 그 낯선 온기 속에서, 까닭 모를 아득함에 잠겨 들고 있었습니다.

    ※ 3: 흔들리는 저승사자

    할머니는 죽에 손도 대지 않는 나그네를 보고도 서운한 기색 하나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랫목 이불을 끌어다 그의 무릎을 덮어 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풀어놓았지요.

    "보아하니 먼 길을 오신 모양인데, 어디서 오셨는가?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것이, 필시 무슨 곡절이 있는 게로구먼."

    저승사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허나 할머니는 그 침묵을 탓하지 않았지요. 그저 혼잣말하듯 조곤조곤 제 이야기를 이어 갔습니다.

    "나도 한때는 서러운 세월을 살았다우. 젊어 서방을 병으로 앞세우고, 하나 있던 자식마저 어린 나이에 저세상으로 보냈지. 그때는 나도 살고 싶지가 않았어. 밥도 안 넘어가고, 밤마다 눈물로 베개를 적셨으니께."

    할머니의 주름진 눈가에 잠시 물기가 어렸습니다. 허나 이내 다시 잔잔한 미소를 지었지요.

    "헌데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구먼. 내가 이리 슬퍼만 하고 있으면, 먼저 간 우리 식구들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었지. 남은 세월, 나처럼 아프고 서러운 사람들이나 보듬어 주며 살자고 말이여."

    저승사자는 저도 모르게 할머니의 이야기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노릇이었지요. 수백 년간 수많은 사람의 사연을 들어 왔지만, 이토록 마음이 저릿해 오는 것은 처음이었으니까요.

    "허허, 늙은이가 주책없이 신세타령을 다 했구먼. 나그네 양반, 이 이야기 듣자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닐 텐데 말이여."

    할머니가 멋쩍게 웃자, 저승사자는 나직이 대꾸했습니다.

    "아닙니다. 어르신 말씀… 계속 듣고 싶습니다."

    그 말에 할머니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지요. 그러고는 밤이 이슥하도록 지나온 세월 이야기를 도란도란 들려주었습니다. 저승사자는 그 곁에서 밤새 그 이야기를 들었더랍니다.

    그날 밤, 저승사자는 곧바로 할머니의 목숨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어인 일인지 자꾸만 손이 멈칫거려졌지요. 그는 스스로도 그 까닭을 알 수 없었습니다. 수백 년간 단 한 번도 없던 일이었으니까요.

    '날이 밝으면. 그래, 날이 밝으면 데려가리라.'

    그렇게 하룻밤을 미룬 저승사자는, 이튿날 나그네인 척 마을에 며칠 더 머물기로 했습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그의 발길을 붙잡았던 것이지요.

    그리고 마을에 머무는 동안, 저승사자는 참으로 낯선 광경들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할머니의 오두막에는 마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지요. 누구는 아픈 아이를 업고 오고, 누구는 앓아누운 노모를 위해 죽을 얻으러 왔습니다. 할머니는 그 누구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지요. 제 끼니를 거르는 한이 있어도, 찾아온 이들에게는 꼭 뜨끈한 호박죽 한 그릇을 안겨 보냈습니다.

    "할머니,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아요."

    "은혜는 무슨. 이웃끼리 서로 돕고 사는 게지. 어여 가서 아이 먹이게."

    저승사자는 그 모습을 한 발짝 떨어져 가만히 지켜보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할머니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저승사자가 이제껏 인간 세상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지요. 바로 진심에서 우러난 사랑과 고마움이었습니다. 할머니 또한 그들을 바라볼 때면, 그 야윈 얼굴 가득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빛이 어렸더랍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로다. 제 것을 덜어 남에게 주면서, 어찌 저리 기쁠 수가 있단 말인가.'

    저승사자는 그러다 문득, 이상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지요.

    할머니가 죽 한 그릇을 남에게 내줄 때마다, 그 야윈 몸에서 희미한 빛 한 줄기가 스르르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승의 존재인 그의 눈에만 보이는, 바로 생명의 빛이었지요.

    '저것은… 설마.'

    저승사자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이제야 호박죽의 진짜 비밀을 알아챈 것이지요. 그 죽이 남의 병을 고치고 명을 늘려 주는 까닭은, 다름 아닌 할머니가 제 목숨을 조금씩 덜어 그 죽에 담아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을 살리는 그 죽 한 그릇 한 그릇이, 실은 할머니 자신의 수명을 깎아 만든 것이었지요.

    '그래서였구나. 명부에 적힌 저 노인의 명이 이토록 짧아진 까닭이. 제 목숨을 남에게 다 나누어 주었으니….'

    저승사자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버렸습니다. 수백 년을 냉정하게 살아온 그의 가슴에, 난생처음 겪어 보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일렁였지요. 그것은 안타까움이었을까요, 아니면 존경이었을까요. 그 자신도 미처 알 수 없는 뜨거운 무언가가, 얼음장 같던 가슴 한구석을 자꾸만 두드렸습니다.

    할머니는 제 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듯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찾아오는 이를 단 한 번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지요. 마치 마지막 남은 촛불이 제 몸을 다 태워 어둠을 밝히듯, 할머니는 그렇게 제 남은 생을 남김없이 나누어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저녁, 할머니는 여느 때처럼 저승사자에게 죽 한 그릇을 내밀었습니다.

    "나그네 양반, 오늘도 안 자실 텐가? 통 입에 안 대시니 이 늙은이가 다 서운하구먼."

    저승사자는 그 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입을 열었습니다.

    "할머니. 어찌하여… 당신의 목숨을 깎아 가면서까지 남을 살리려 하십니까. 그러다간 당신 명이 다 스러지고 말 터인데."

    그 말에 할머니의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아무도 몰랐던 비밀을 이 낯선 나그네가 어찌 아는지,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지요. 허나 할머니는 이내 잔잔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허허, 나그네 양반이 그걸 어찌 아셨누. 하기야… 이제 와 숨길 것도 없지."

    할머니는 굽은 등을 천천히 펴며, 저물어 가는 창밖 노을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눈빛이 어찌나 맑고 평온하던지, 저승사자는 그만 말을 잃고 말았더랍니다. 죽음을 관장하는 그가, 도리어 죽음을 앞둔 한 노인의 그 잔잔한 눈빛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지요.

    ※ 4: 밝혀지는 진실

    한참을 노을만 바라보던 할머니가, 이윽고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젊어 자식을 잃고 넋을 놓고 있을 적에 말이여. 어느 날 꿈에 산신령님이 나타나셨더랬지. 그러고는 늙은 호박씨 한 줌을 손에 쥐여 주시며 이리 말씀하시더구먼. 이 씨를 심어 거둔 호박으로 죽을 쑤면, 아픈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게다. 허나 명심하거라. 그 죽에는 네 정성만으로는 아니 되고, 네 목숨의 한 자락을 함께 담아야 하느니라."

    할머니는 그때를 떠올리듯 아련한 눈빛이 되었습니다.

    "산신령님이 그러시더구먼. 남을 하나 살릴 때마다, 네 명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그래도 하겠느냐고. 나는 한 치 망설임도 없이 그러겠노라 대답했지. 어차피 자식 잃고 살 마음도 없던 목숨, 그렇게라도 남을 살리는 데 쓸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나 싶었거든."

    저승사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지요.

    "그렇게 삼십 년을 살았다우. 내 목숨을 한 술 한 술 덜어, 아픈 이 낫게 하고 서러운 이 보듬으면서 말이여. 이상하지. 남 주는 재미로 사니까, 외려 내 사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더라고. 자식 잃은 그 서러움도, 사람들 웃는 얼굴 보다 보니 어느새 다 아물었지 뭐여."

    할머니는 잠시 말을 멈추고, 가마솥에서 김이 오르는 호박죽을 그윽이 바라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저희를 살렸다고 고마워하지만, 실은 저 사람들이 나를 살린 거여. 내가 저 사람들 아니었으면, 진작에 그 서러움에 삭아 없어졌을 테니께. 살면서 그걸 알았지. 남한테 베푸는 정이라는 게, 실은 나 좋으라고 하는 일이더라고.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한 법이여."

    저승사자는 그 말을 가슴 깊이 되새겼습니다. 수백 년을 살며 그토록 많은 죽음을 보아 왔건만, 이토록 삶을 곱게 매듭짓는 이는 처음이었으니까요.

    할머니는 고개를 돌려 저승사자를 지그시 바라보았습니다. 그 눈빛에는 두려움이라곤 조금도 없었지요.

    "나그네 양반. 아니… 이제 그만 정체를 밝히시게. 자네가 누구인지, 나는 진작에 알아봤다우."

    저승사자는 흠칫 놀랐습니다. 할머니는 잔잔히 웃으며 말을 이었지요.

    "이 산골에 자네처럼 서늘한 기운을 몰고 다니는 손님이 어디 흔한가. 게다가 밥 한 술 안 뜨고, 잠 한숨 안 자면서 며칠을 앉아만 있으니. 눈치 없는 늙은이라도 알아채고 남지."

    할머니의 목소리는 참으로 담담했습니다. 마치 오랜 벗에게 말을 건네듯 말이지요.

    "자네, 나 데리러 온 게지? 내 명이 다 됐다고 말이여. 괜찮아. 나는 하나도 안 무섭다우. 살 만큼 살았고, 나눌 만큼 나눴으니 여한이 없어. 그러니 어려워 말고 데려가시게."

    저승사자는 그제야 갓을 벗고 제 본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러고는 오랫동안 가슴에 맺혀 있던 말을 힘겹게 꺼냈지요.

    "할머니. 나는 수백 년을 저승사자로 지내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데려갔습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마음이 흔들린 적이 없었지요. 죽음 앞에서 인간은 하나같이 추하고 부질없다, 나는 늘 그리 여겨 왔습니다. 헌데…."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습니다.

    "헌데 할머니를 뵈니, 내가 여태 알던 인간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겠습니다. 제 목숨을 덜어 남을 살리면서도 그리 환히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죽음을 앞두고도 이토록 평온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말입니다."

    할머니는 저승사자의 손을 가만히 잡아 주었습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그 손을, 따뜻한 두 손으로 꼭 감싸 쥐었지요.

    "허허, 저승사자도 눈물을 흘릴 줄 아는구먼. 자네도 참 외로운 세월을 살았겠어. 궂은 일만 도맡아 하며, 아무한테도 따뜻한 소리 한번 못 듣고 말이여."

    그 말에 저승사자는 그만 목이 메었습니다. 수백 년을 살며 아무도 그에게 그런 말을 건네준 이가 없었으니까요.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고 원망할 뿐, 단 한 번도 그의 외로움을 헤아려 준 적이 없었지요.

    "자, 이 죽 한 그릇 들고 가시게. 저승길이 멀 텐데, 뱃속이라도 따뜻해야지."

    할머니가 다시 죽 그릇을 내밀자, 저승사자는 이번만은 차마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저승의 존재가 인간의 죽을 먹으면 아니 된다는 법도 따위, 이 순간만은 아무래도 좋았지요. 그는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들어, 난생처음 인간의 음식을 입에 넣었습니다.

    따뜻했습니다. 그 어떤 말로도 다 할 수 없이, 뜨겁고 또 따뜻했지요. 그 온기가 목을 타고 내려가, 수백 년 얼어붙어 있던 그의 가슴속까지 사르르 녹여 주었습니다. 저승사자의 두 눈에서, 그예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더랍니다.

    '이것이… 정이라는 것인가.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이 따뜻한 마음이라는 것이.'

    한 그릇 죽을 다 비우는 동안, 저승사자의 머릿속에는 수백 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습니다. 그가 데려간 수많은 혼들, 그들이 남기고 간 눈물과 원망들. 그는 여태 그것이 인간의 전부라 여겼지요. 허나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 삶들 속에도, 저 할머니처럼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산 이들이 분명 있었으리라는 것을. 다만 자신이 그것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할머니. 이 죽 맛을, 나는 영영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저승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할머니는 그저 인자하게 웃어 보였습니다.

    "잊지 말게. 잊지 말고, 자네가 데려가는 그 많은 혼들한테도 이런 따뜻함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 주게. 그럼 자네 그 궂은 일도, 조금은 덜 외롭지 않겠는가."

    그날 밤, 저승사자는 끝내 할머니를 데려가지 못했습니다. 명부에 적힌 때를 어기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면서도, 도무지 그 손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는 밤새 오두막 앞에 서서, 곤히 잠든 할머니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마침내 한 가지 결심을 굳혔더랍니다. 이 갸륵한 노인을, 결코 이대로 데려갈 수는 없다고 말이지요.

    ※ 5: 저승사자의 청

    날이 밝자, 저승사자는 무거운 마음으로 저승으로 돌아갔습니다.

    명부에 적힌 이를 데려오지 못한 저승사자는, 곧장 염라대왕 앞에 불려 갔지요. 저승의 가장 깊고 웅장한 전각, 그 높은 자리에 진홍빛 곤룡포를 걸치고 머리에 면류관을 쓴 염라대왕이 근엄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 위엄이 어찌나 서슬 퍼렇던지, 수백 년을 저승사자로 지낸 그마저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지요.

    "어인 일로 명부의 혼을 데려오지 않았느냐. 네 어찌 저승의 법도를 어겼단 말이냐!"

    염라대왕의 노한 음성이 전각을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저승사자는 그 앞에 엎드려, 그간의 사연을 낱낱이 아뢰었지요.

    "대왕님. 소인이 데려가야 할 이는 다래울 마을의 삼월이라는 노인이옵니다. 헌데 그 노인은 지난 삼십 년간, 제 목숨을 한 자락씩 덜어 호박죽을 쑤고, 그 죽으로 수많은 병든 이를 살리고 서러운 이를 어루만져 왔사옵니다. 명부에 적힌 그 짧은 명 또한, 실은 남을 살리느라 제 목숨을 다 나누어 준 까닭이었사옵니다."

    염라대왕은 말없이 그 사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저승사자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간절히 아뢰었지요.

    "소인, 수백 년간 단 한 번도 사사로운 정에 흔들린 적이 없사옵니다. 허나 그 노인 앞에서만은, 도무지 차마 손을 쓸 수가 없었사옵니다. 부디…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 갸륵한 노인에게, 조금만 더 살 수 있는 명을 내려 주실 수는 없겠사옵니까."

    전각 안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저승사자는 엎드린 채 감히 숨도 크게 쉬지 못했지요. 명부를 어긴 죄만으로도 크나큰 벌을 받아 마땅한데, 도리어 그 혼을 살려 달라 청하고 있으니, 이는 실로 목숨을 건 청이었던 것입니다.

    허나 저승사자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 할머니를 생각하면, 제 한 몸의 벌쯤이야 조금도 두렵지 않았으니까요.

    "대왕님. 소인, 이 청이 얼마나 무엄한 것인지 잘 아옵니다. 벌을 내리신다면 달게 받겠사옵니다. 허나 그 노인만은… 부디 그 노인만은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한평생 남을 위해 제 목숨을 다 태운 그 마음이, 그저 명부의 숫자대로 스러지는 것은 너무도 애석한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한참 만에, 염라대왕이 천천히 입을 열었지요.

    "네 말이 참이라면, 그 노인은 참으로 보기 드문 인물이로다. 허나 명부의 법도는 하늘의 이치, 함부로 어길 수 없는 것이니라. 정해진 명을 늘리고 줄이는 것은, 결코 가벼이 할 일이 아니야."

    저승사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허나 그때, 염라대왕이 문득 무언가를 명하였지요.

    "명부를 가져오너라. 그 삼월이라는 노인의 명부를 내 직접 살펴보리라."

    이윽고 명부가 펼쳐지자, 염라대왕의 눈이 가늘어졌습니다. 그러고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요.

    "이럴 수가. 이 노인이 본디 타고난 명은 백 살을 훌쩍 넘기는 장수의 명이었구나. 헌데 이 남은 세월을 죄다 남에게 나누어 주어, 명이 이토록 짧아졌단 말이냐. 삼십 년간, 무릇 사백 명이 넘는 목숨을 살렸도다. 제 손으로 제 명을 깎아 가면서 말이야."

    염라대왕은 명부에 적힌 이름들을 하나하나 짚어 보았습니다. 그 노인이 살린 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지요. 열병에 스러질 뻔한 아이, 벼랑에서 굴러 죽을 뻔한 나무꾼, 슬픔에 잠겨 목숨을 놓으려던 젊은 아낙…. 그 하나하나가, 삼월 할머니가 제 목숨을 덜어 되살린 귀한 목숨들이었습니다.

    "이 이름들을 보아라. 이 노인이 아니었다면, 여기 적힌 이들은 진작에 내 앞으로 끌려왔을 것이다. 한 사람이 제 목숨을 나누어, 이토록 많은 목숨을 세상에 붙들어 두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로다."

    염라대왕은 명부를 오래도록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근엄하던 얼굴에, 어느새 깊은 감동의 빛이 스쳤지요.

    "내 저승을 다스린 지 수천 년이 되었으되, 이토록 제 몸을 아끼지 않고 남을 위해 산 이는 참으로 드물었느니라. 재물을 산처럼 쌓은 부자도, 큰 벼슬로 이름을 떨친 대감도 무수히 보아 왔지만, 정작 제 목숨을 덜어 남을 살린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지."

    염라대왕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습니다.

    "하늘은 스스로를 아끼지 않고 남을 살린 자를 결코 그냥 두지 않는 법. 그것이 바로 인과응보요, 하늘의 이치이니라. 남에게 목숨을 나누어 준 자에게는, 마땅히 그만한 복이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저승사자는 숨을 죽이고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염라대왕의 입에서, 마침내 뜻밖의 명이 떨어졌지요.

    "내 특별히 명하노라. 삼월이라는 노인이 여태 남에게 나누어 준 그 모든 세월을, 고스란히 그 노인에게 되돌려 주어라. 그리고 앞으로는 호박죽으로 남을 살리더라도, 다시는 제 목숨이 깎이지 않도록 하여라. 이는 그 갸륵한 정성에 대한, 하늘의 마땅한 보답이니라."

    그 말에 저승사자는 그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엎드려 거듭 절을 올렸지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대왕님! 참으로 망극하옵니다!"

    염라대왕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내려와 저승사자를 손수 일으켜 세웠습니다.

    "고개를 들라. 네가 명부를 어긴 것은 분명 죄이나, 그 죄가 인정에서 비롯되었으니 내 어찌 벌하겠느냐. 도리어 칭찬할 일이지. 수백 년을 얼음처럼 살아온 네가, 비로소 사람의 따뜻함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염라대왕은 잠시 지그시 저승사자를 바라보다, 나직이 말을 이었습니다.

    "내 오랜 세월 저승을 다스리며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느니라. 죽음이란 결코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이 남긴 온기를 거두어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저 삼월이라는 노인이 세상에 뿌린 그 따뜻한 온기는, 그가 떠난 뒤에도 오래도록 사람들 가슴에 남아 또 다른 온기를 낳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참된 삶이요, 죽음마저 이기는 힘이니라."

    "명심하겠사옵니다, 대왕님."

    "그리고 너, 저승사자야. 수백 년 만에 처음으로 사람의 정을 알게 되었으니, 그 또한 큰 복이니라. 앞으로 혼을 데려갈 때에는, 그들이 세상에 남기고 온 정도 함께 헤아려 주거라. 그리하면 네 그 궂은 일도 한결 따뜻해질 것이다. 자, 어서 그 노인에게 돌아가, 이 기쁜 소식을 전하거라."

    저승사자는 벅찬 마음을 안고, 한달음에 다래울 마을로 향했더랍니다. 그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또 따뜻했지요.

    ※ 6: 죽음마저 바꾼 한 그릇

    저승사자가 다래울 마을에 돌아왔을 때, 삼월 할머니는 여느 때처럼 가마솥에 호박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이제 곧 저세상으로 떠날 채비를 하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남을 위해 죽을 끓이고 있었던 것이지요.

    "할머니!"

    저승사자가 반갑게 부르자, 할머니가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어이구, 다시 오셨는가. 나는 또 그새 날 데려가려고 온 줄 알았지 뭐여."

    "할머니, 기뻐하십시오. 염라대왕께서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저승사자는 그간의 일을 낱낱이 전했습니다. 할머니가 여태 남에게 나누어 준 세월이 모두 되돌아온다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는 아무리 남을 살려도 다시는 목숨이 깎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눈시울을 붉히며 조용히 중얼거렸지요.

    "허허… 내 그저 남 살리는 재미로 한 일인데, 이런 복이 다 돌아오는구먼. 하늘이 참말로 무심치 않았어."

    그 순간, 참으로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할머니의 굽었던 등이 스르르 펴지고, 야위었던 볼에 발그레 화색이 돌기 시작한 것이지요. 저물어 가던 노을 같던 그 얼굴에, 다시금 환한 아침 햇살 같은 생기가 피어올랐습니다. 나누어 준 세월이 고스란히 돌아오니, 할머니는 다시 정정한 모습을 되찾은 것이었지요.

    "아이고, 이게 웬일이여. 몸이 이렇게 가뿐할 수가."

    할머니는 제 손과 발을 신기한 듯 내려다보았습니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몸 어디 하나 쑤시고 결리는 데가 없었지요.

    마을 사람들은 그 신기한 광경에 저마다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다 늙어 저물어 가던 할머니가 하루아침에 정정해졌으니, 다들 그저 놀랍고 반가울 따름이었지요.

    "할머니,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래요? 얼굴이 십 년은 젊어지셨어요!"

    "허허, 다 하늘이 도우신 게지 뭐. 이 늙은이가 복이 많아서 그래."

    할머니는 그저 껄껄 웃을 뿐, 그 진짜 사연은 끝내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다만 곁에 선 나그네, 아니 저승사자를 향해 슬며시 고마운 눈길을 보냈지요. 저승사자 역시 그 눈길에 따뜻한 미소로 화답했더랍니다.

    그날 이후, 삼월 할머니는 예전보다 더욱 정정하게, 그리고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여전히 마을 사람들에게 호박죽을 쑤어 나누어 주었지만, 이제는 아무리 남을 살려도 제 목숨이 축나는 일이 없었지요. 마음 놓고 마음껏 정을 베풀 수 있게 되었으니, 할머니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날 날이 없었더랍니다.

    "이제야 아무 걱정 없이 죽을 실컷 나눠 줄 수 있게 됐구먼. 이보다 더한 복이 어디 있겠어."

    할머니는 그 뒤로 더 많은 이들을 살리고,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졌습니다. 다래울 마을에는 예전보다 더 구수한 호박죽 냄새가 온종일 피어올랐지요.

    그리고 저승사자는 어찌 되었을까요.

    염라대왕의 말씀을 가슴에 새긴 그는, 그날 이후로 사뭇 달라졌습니다. 혼을 데려갈 때면, 그가 세상에 남기고 온 정과 사랑을 함께 헤아려 주었지요. 두려움에 떠는 이에게는 나직이 위로를 건네고, 미련을 놓지 못하는 이에게는 그 마음을 가만히 다독여 주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저승길에 오르는 이들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졌더랍니다. 수백 년을 원망과 눈물 속에서 일해 온 저승사자에게, 그것은 참으로 큰 변화였지요.

    그는 그 뒤로도 이따금, 나그네의 모습을 하고 다래울 마을을 찾았습니다. 궂은 일에 지치고 마음이 시릴 때면, 슬며시 할머니의 오두막을 찾아와 뜨끈한 호박죽 한 그릇을 얻어먹고 가곤 했지요.

    "어이구, 우리 저승사자 양반 또 오셨는가. 얼굴 보니 요새도 고단한 게로구먼. 어여 앉게. 죽 한 그릇 뜨끈하게 쑤어 줄 테니."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 주면, 저승사자의 서늘하던 얼굴에도 어느새 따뜻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죽음을 관장하는 그에게도, 이 세상에 마음 붙일 곳이 한 군데 생긴 것이지요. 수백 년을 홀로 외롭게 떠돌던 그가, 비로소 따뜻한 정 한 자락을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삼월 할머니도 마침내 천수를 다하고 편안히 눈을 감는 날이 왔습니다. 백수를 훌쩍 넘긴, 참으로 복된 죽음이었지요. 그날, 할머니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는 여느 혼을 데려갈 때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는 할머니를 아주 정중히, 그리고 더없이 따뜻하게 저승길로 모셨더랍니다.

    "할머니, 그동안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할머니 덕분에, 나 같은 저승사자도 사람의 정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지요. 이제 편히 쉬시러 가십시다. 저세상에서는 먼저 가신 서방님도, 자식도 다 만나실 수 있을 겝니다."

    할머니는 그 말에 환하게 웃으며, 저승사자의 손을 마주 잡았습니다. 두려움도 미련도 없는, 참으로 평온한 얼굴이었지요.

    "고맙네, 저승사자 양반. 자네 덕분에 이 늙은이가 참말로 복된 세월을 더 살았어. 자, 우리 이제 그만 가세. 가는 길에 자네 심심할까 봐, 내 마지막으로 호박죽 이야기나 하나 들려줌세."

    그렇게 할머니는 웃으며 저승길에 올랐습니다. 저승사자도 오랜만에, 참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그 길을 함께 걸었지요.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의 부고를 듣고 저마다 눈물을 쏟았지만, 이내 이렇게들 말했더랍니다. 그토록 곱게, 그토록 오래 사시다 편안히 가셨으니 이보다 더한 복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이지요.

    훗날, 다래울 마을에는 할머니의 호박죽 끓이는 법이 대대로 전해 내려왔다고 합니다. 비록 예전처럼 신묘하게 병을 낫게 하지는 못했지만, 그 죽에는 여전히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깃들어 있었지요. 마을 사람들은 그 죽을 나누어 먹을 때마다, 제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남을 살렸던 삼월 할머니를 오래오래 기억했더랍니다.

    죽음마저 변화시킨 호박죽 한 그릇. 그 따뜻한 온기는, 저승사자의 얼어붙은 마음마저 녹였고, 오늘날까지도 이 이야기를 듣는 우리네 가슴을 이렇듯 뭉클하게 데워 주고 있는 것이지요.

    유튜브 엔딩멘트

    만약 목숨을 거두러 온 저승사자마저 마음을 돌릴 만큼 따뜻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귀한 일일까요. 삼월 할머니는 제 목숨을 한 술 한 술 덜어 남을 살렸고, 그 갸륵한 정성은 죽음마저 감동시켜 큰 복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음에도 따뜻한 온기 한 자락을 남겼기를 바랍니다. 우리 곁의 작은 정 하나가, 때로는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이 되기도 하니까요.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아요와 구독 부탁드립니다. 다음에도 마음을 데우는 따뜻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1. 목숨 거두러 온 저승사자가 호박죽 한 그릇에 무릎 꿇은 이유
    → '무릎 꿇은 이유'로 반전을 암시해 궁금증 유발. 시니어 시청자가 좋아하는 '이유' 후킹형 제목입니다.

    2. 저승사자도 눈물 흘린 할머니의 호박죽… 그 안에 숨겨진 비밀
    → 감정(눈물) + 미스터리(비밀)를 함께 걸어 클릭을 유도. 감동 코드가 강해 시니어층 반응이 좋은 유형입니다.

    3. "이 죽을 드시면 안 됩니다" 저승사자가 마주한 할머니의 정체
    → 대사 인용 + 정체 반전으로 강한 호기심 자극. 극적이고 스크롤을 멈추게 하는 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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