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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의 검은 두루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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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저승사자가 문을 두드리는 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도망치시겠습니까, 아니면 협상을 거시겠습니까? 이승에서 한 번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가난한 서생이, 검은 두루마리를 들고 찾아온 저승사자와 맞닥뜨려 저승 길목에서 기상천외한 거래를 벌이는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 1: 검은 두루마리가 펼쳐지던 밤
조선 어느 해 가을, 한양 도성 외곽의 허름한 기와집 한 채. 담벼락은 여기저기 금이 가 있었고, 마당에는 풀이 제멋대로 자라 있었으며, 대청마루 기둥에는 이끼가 슬어 있었습니다. 이 집의 주인은 서생 김수재, 나이 스물여덟. 삼 년째 과거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번번이 낙방하여, 이제는 붓을 잡을 기력도 의지도 바닥이 난 청년이었습니다.
수재는 방 안에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밥은 아침부터 굶었고, 방 안에 남은 것이라고는 닳아빠진 붓 한 자루와 먹다 만 벼루, 그리고 낙방 통보가 적힌 종이 한 장뿐이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삼 년을 했어도 안 되고, 오 년을 해도 안 될 것 같고. 글공부만 했더니 장사할 줄도 모르고, 농사지을 줄도 모르고. 아는 것은 글뿐인데 그 글이 쓸모가 없으니,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수재는 눈을 감았습니다. 배가 고팠습니다. 허리가 아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하늘을 원망하고 싶기도 했고,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지만, 그 어느 쪽으로도 감정이 제대로 모이질 않았습니다. 그냥 모든 것이 무겁고, 피곤하고, 막막했습니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는데, 갑자기 창밖에서 바람이 휙 불었습니다. 이상한 바람이었습니다. 가을바람이라기에는 너무 차가웠고, 겨울바람이라기에는 너무 고요했습니다. 촛불이 일렁였다가 꺼졌습니다. 방 안이 순식간에 어둠에 잠겼습니다.
똑, 똑, 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수재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이 시각에 누가 오는 거지? 이웃 어른도 아닐 테고.'
"누구십니까?"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 앞에 무언가 있다는 느낌은 분명했습니다. 인기척이라기보다는, 공기가 달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수재는 마른 침을 삼키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 순간, 수재는 말 그대로 굳어버렸습니다.
문 앞에 서 있는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사람처럼 생긴 무언가였습니다. 검은 갓에 검은 도포,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잿빛이었고, 눈은 깊고 어두워 마치 밤하늘의 구멍처럼 보였습니다. 키는 방문보다 약간 더 커서, 들어오려면 허리를 굽혀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손에는 기다란 검은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습니다.
"김수재?"
목소리가 낮고 울렸습니다. 마치 빈 항아리 안에서 울려 나오는 것 같은 목소리였습니다.
수재는 입이 벌어진 채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맞지요? 본인이 김수재 맞습니까?"
수재는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멈췄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저승사자다. 저게 저승사자다. 어머니 돌아가실 때 마당에서 봤던 그 모습이랑 똑같아. 나 죽는 거야? 오늘 내가 죽는 건가?'
저승사자는 천천히 두루마리를 펼쳤습니다. 두루마리 안에는 빼곡하게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맨 아래 줄에 분명히 김수재, 세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 밤 자시에 가셔야 합니다."
수재의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공포보다 억울함이 먼저 치밀어 올랐습니다.
"잠깐만요!"
저승사자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 눈이 수재를 바라보았습니다.
"저 아직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과거도 못 붙었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고, 장가도 못 갔고, 부모님 산소에 좋은 비석 하나 못 세워드렸습니다. 이렇게 가면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저승사자는 잠시 수재를 바라보다가, 두루마리를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두루마리에 이름이 있으면 가셔야 합니다. 규정이 그렇습니다."
"규정이요? 저승에도 규정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면 규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절차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승사자가 미세하게 멈칫했습니다. 수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저승에 법이 있다면, 법 앞에서 할 말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염라대왕께서 직접 판결하시는 자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저는 그 자리에서 직접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승사자는 한동안 침묵했습니다. 수백 년 이 일을 해왔지만, 이렇게 문 앞에서 법적 이의를 제기하는 인간은 처음이었습니다.
"...가면서 얘기하지요."
수재는 속으로 작게 주먹을 쥐었습니다.
'좋아. 일단 끌려가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 2: 저승 가는 길에 협상을 걸다
저승으로 가는 길은 수재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무시무시한 불구덩이도, 무서운 강도 없었습니다. 그냥 안개가 잔뜩 낀 길이었는데, 발을 내디딜 때마다 땅이 아래로 살짝 꺼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변은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이상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는 말없이 앞서 걸어가고, 수재는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수재는 걸으면서 저승사자의 뒷모습을 관찰했습니다.
'몸집은 크지만 걸음은 빠르지 않네. 두루마리를 왼손에 쥐고, 오른손은 항상 비어 있고. 표정은 무표정이지만, 아까 내가 이의 제기 얘기 꺼냈을 때 분명히 잠깐 멈칫했어. 규정에 어긋나는 말을 들으면 당황하는 스타일인 것 같은데.'
수재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습니다.
"저기, 사자님."
"..."
"사자님, 제가 말을 걸어도 됩니까?"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자님, 이 일을 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저승사자가 잠시 걸음을 늦추는 듯했습니다.
"오래 됐습니다."
"힘드시지 않습니까? 매일 이렇게 사람들을 데리러 다니시는 게. 아무래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직업이잖습니까."
저승사자가 돌아보았습니다. 그 눈에 처음으로 미묘한 무언가가 스쳤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인간은 처음이군요."
"다들 무서워서 도망가기 바빴을 테니까요. 저는 어차피 이미 끌려가는 중이라 무서워할 여유가 없습니다. 하하."
수재는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저승사자는 다시 앞을 보고 걸었습니다. 그러나 아까보다는 걸음이 조금 느려진 것 같았습니다.
"사자님, 한 가지 여쭤봐도 됩니까?"
"또 뭡니까."
"염라대왕께서는 어떤 분이십니까? 성격이 어떠신지요. 제가 뵙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저승사자가 걸음을 뚝 멈췄습니다. 그리고 수재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왜 마음의 준비를 합니까. 그냥 판결을 받으면 되는 것을."
"아, 저는 그냥 받아들이는 스타일이 아닌지라요. 말씀드렸다시피 이의를 제기하러 가는 것이거든요. 상대방의 성격을 알아야 설득 방법을 고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승사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원칙을 중시하십니다. 두루마리에 이름이 있으면 무조건 데려오라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의 제기 제도가 있는 것을 보면, 완전히 막힌 분은 아니시겠군요."
"이의 제기 제도는 있습니다만, 받아들여진 사례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얼마나 됩니까?"
"...기억에 세 번 있었습니다."
"세 번이나 있었군요! 그러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네요."
저승사자는 이 인간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승 길을 걸으면서 성공 사례를 분석하는 인간은 수백 년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안개 속을 한참 걸어가자 저 멀리 커다란 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거대하고 검은 대문이었는데, 문 위에 크게 저승문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앞에는 문지기가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지기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습니다. 졸고 있었습니다.
"저, 사자님."
"왜요."
"저 문지기분 주무시는 것 같은데, 괜찮습니까?"
저승사자가 문지기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습니다.
"저승 문지기가 조는 것은... 좀 문제가 있긴 합니다."
"그렇지요? 저라면 깨워드릴 텐데요."
저승사자는 문지기를 깨웠고, 문지기는 화들짝 놀라며 문을 열었습니다. 수재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저승도 사람 사는 동네랑 별반 다를 게 없구나. 조는 문지기에, 당황하는 저승사자에. 좋아. 무서울 것 없다. 할 말 똑바로 하고 올라가자.'
저승문이 열리며 그 너머의 세계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수재는 두 주먹을 꼭 쥐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 3: 염라대왕 앞에서 재판이 열리다
저승 법정은 수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그리고 훨씬 더 어수선했습니다. 거대한 전각 안에는 이미 여러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판관들이 두루마리를 펼쳐 이름을 불러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울고, 어떤 사람은 화를 내고, 어떤 사람은 그냥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마치 관아의 재판정 같기도 하고, 장날의 장터 같기도 한 분위기였습니다.
저승사자가 수재를 데리고 가장 앞쪽의 커다란 자리로 향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거대한 탁자가 놓여 있었고, 탁자 뒤에 염라대왕이 앉아 있었습니다.
수재는 조심스럽게 염라대왕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무시무시한 형상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평범하게 생긴 노인이었습니다. 흰 수염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고, 눈은 반쯤 감겨 있었으며, 손에는 붓을 들고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탁자 위에는 먹다 만 떡 한 조각이 놓여 있었습니다.
'저승 염라대왕이 재판 중에 떡을 드시는구나.'
수재 앞의 사람들이 하나둘 불려나가 판결을 받았습니다. 수재는 기다리면서 주변을 관찰했습니다. 판관들이 어떤 식으로 질문하는지, 염라대왕이 어떤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는지, 어떤 경우에 인상을 찌푸리는지를 유심히 살폈습니다.
'음. 울면서 사정하는 경우에는 대왕께서 별로 반응이 없으시고, 구체적인 이유를 조목조목 말하는 경우에는 잠깐씩 귀를 기울이시는 것 같은데. 떡을 드실 때는 기분이 좋으신 것 같고, 붓을 탁 놓으실 때는 짜증이 나신 것 같고.'
"다음, 김수재."
판관이 이름을 불렀습니다. 수재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앞으로 나갔습니다.
염라대왕이 반쯤 감긴 눈을 들어 수재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름이 무엇이오?"
"김수재이옵니다, 대왕마마."
"나이는?"
"스물여덟이옵니다."
"사인은?"
판관이 두루마리를 뒤적였습니다.
"수명이 다하였습니다."
수재가 얼른 말을 받았습니다.
"대왕마마, 그 부분에 대해 이의가 있사옵니다."
염라대왕이 붓을 멈추었습니다. 주변 판관들이 일제히 수재를 바라보았습니다.
"이의라고?"
"그러하옵니다. 소인의 수명이 다하였다 하시는데, 소인은 한 번도 제대로 산 적이 없사옵니다. 이것이 과연 살았다고 할 수 있겠사옵니까?"
법정 안이 잠시 술렁였습니다.
"못 살았으면 이미 죽은 것이거늘, 그게 무슨 이의란 말이오?"
"대왕마마, 비유를 하나 들어도 되겠사옵니까?"
"...해보시오."
"밥을 한 그릇 받았는데 먹지 못하고 빼앗겼다면, 그것을 밥 한 끼를 먹었다고 할 수 있겠사옵니까? 소인의 이승에서의 삶이 꼭 그러하였사옵니다. 스물여덟 해를 살았다 하나, 제대로 먹은 날도, 제대로 웃은 날도, 제대로 무언가를 이룬 날도 없었사옵니다. 그것을 삶이라 부를 수 있겠사옵니까? 소인은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삶을 버텨온 것이옵니다."
염라대왕이 천천히 붓을 탁자에 내려놓았습니다. 수재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지만, 계속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대왕마마께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신다면, 그 삶이 진정한 삶이었는지도 함께 판단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니옵니까? 소인의 두루마리에는 스물여덟 해가 적혀 있사오나, 그 해수에 걸맞은 삶의 내용이 없사옵니다. 내용 없는 세월을 산 것으로 치는 것은 억울하옵니다."
법정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염라대왕은 잠시 눈을 완전히 감았다가, 천천히 다시 떴습니다.
"판관, 이 자의 두루마리를 가져오너라."
판관이 황급히 두루마리를 가져왔습니다. 염라대왕이 천천히 펼쳐 읽기 시작했습니다. 수재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습니다.
"흠."
염라대왕이 짧게 소리를 냈습니다. 수재는 그 소리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네 말이 아주 틀리지는 않구나."
수재의 가슴이 쿵 뛰었습니다.
"그렇다고 이의를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느니라. 여기 있는 자들이 다들 할 말이 없는 자가 없으니. 네가 살아 돌아가야 할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거라."
수재는 이 순간을 위해 저승 길을 걸어오는 내내 생각해 두었던 말을 꺼냈습니다.
"대왕마마, 소인이 이승으로 돌아간다면 반드시 세 가지를 이루고 오겠사옵니다. 첫째, 어머니 산소에 번듯한 비석을 세우겠사옵니다. 둘째, 어려운 이들에게 소인이 가진 것을 나누겠사옵니다. 셋째, 단 하루라도 제대로 살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오겠사옵니다. 이 세 가지를 이루고 나면, 소인은 기꺼이 다시 이 자리에 오겠사옵니다."
염라대왕은 오랫동안 수재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옆에 서 있던 저승사자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자를 데려온 것이 너냐?"
저승사자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러하옵니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저승사자는 잠시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대답했습니다.
"저승 오는 길에서도 포기하지 않았사옵니다."
염라대왕이 붓을 다시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루마리 위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수재는 목을 길게 빼고 보려 했지만 글씨가 너무 작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김수재."
"예, 대왕마마."
"조건부로 돌려보내주겠다."
수재는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꾹 참았습니다.
"감사하옵니다, 대왕마마."
"조건은 내일 들어라.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거라."
수재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저승에서 자고 가라는 말씀이십니까?"
"대기실이 있느니라."
'저승 대기실. 생전 처음 듣는 말이로군.'
수재는 판관에게 이끌려 저승 대기실로 향했습니다. 그 방에는 이미 몇몇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저마다 이의를 제기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이들이었습니다. 수재는 그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벽을 바라보며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습니다.
'여기까지 왔다. 내일 조건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어떤 조건이든 받아들이고 이승으로 돌아가자. 반드시.'
※ 4: 조건부 환생, 그 황당한 조건들
저승 법정 안이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관리들이 선반에서 두루마리를 하나씩 꺼내 펼치고, 들여다보고, 다시 꽂고, 또 다른 것을 꺼내는 작업이 쉴 새 없이 이어졌습니다. 두루마리가 어찌나 많은지, 선반에서 꺼낸 것들이 법정 바닥에 수북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관리 하나가 두루마리 더미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옆에 있던 관리까지 도미노처럼 쓰러졌습니다.
"아이고!"
"이거 좀 치워주십시오!"
"제가 어디까지 찾았는지 표시해 두었는데 누가 건드렸습니까!"
법정은 순식간에 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염라대왕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습니다. 수복은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슬며시 한 발짝 앞으로 나섰습니다.
"대왕,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염라대왕이 짙은 눈썹 아래로 수복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네가?"
"저는 훈장입니다. 평생 문서를 읽고 정리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저 두루마리들, 제가 보기에 분류 체계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역별로, 연도별로 나뉘어 있어야 할 것이 한데 섞여 있으니 찾는 데 시간이 배로 걸리는 것입니다."
관리들이 일제히 수복을 쳐다보았습니다. 염라대왕도 미간을 약간 풀었습니다.
"저승 문서 정리에 이승 사람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이냐?"
"감 놔라 배 놔라가 아니라, 제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입니다. 제 두루마리를 빨리 찾아야 제가 억울하게 잡혀온 것이 증명되지 않겠습니까. 저도 빨리 이승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염라대왕이 잠시 생각하더니 손을 들어 허락의 뜻을 내보였습니다.
"해보아라."
수복은 두루마리 더미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바닥에 쌓인 것들을 하나씩 들어 훑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관리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수복 주변에 모여들었습니다.
"이것 보십시오. 여기 경상도 김수복이 있습니다. 직업란을 보니 농부라고 적혀 있군요. 이것도 아니고요. 이것은 전라도 김씨 어르신이고, 이것은 충청도 김수 뭔가인데 글씨가 번져서 잘 보이지 않는군요."
관리 하나가 수복 옆에 쭈그려 앉아 두루마리를 함께 들여다보며 물었습니다.
"저기, 그러면 어떻게 분류하면 됩니까?"
"우선 도별로 나눠야 합니다. 경기, 경상, 전라, 충청, 강원, 황해, 평안, 함경. 그 다음에 각 도 안에서 군현별로 나누고, 그 안에서 기일 순으로 정렬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원하는 두루마리를 단숨에 찾을 수 있습니다."
관리들이 눈이 번쩍 뜨이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아니, 저희가 수백 년 동안 이 일을 했는데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수백 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만 하면 더 좋은 방법이 있어도 눈에 안 보이는 법입니다."
키 큰 사자가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키 작은 사자에게 속삭였습니다.
"저분, 저승에서 오히려 더 활약하고 계십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수복의 지휘 아래 관리들이 두루마리를 분류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한 관리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찾았습니다! 경상도 안동 두들막 마을 훈장 김수복!"
모두의 시선이 쏠렸습니다. 수복이 성큼 걸어가 두루마리를 받아 들었습니다. 펼쳐보니 이름은 같았습니다. 김수복, 훈장, 두들막 마을. 그런데 나이가 달랐습니다.
"대왕, 여기 보십시오. 이 두루마리의 김수복은 나이가 예순 둘입니다. 저는 마흔 셋이고요. 이름도, 직업도, 마을 이름도 같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전혀 다릅니다. 경상도 안동에 같은 이름, 같은 직업, 같은 마을 이름을 가진 사람이 두 명 있었던 것입니다."
법정이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염라대왕이 두 두루마리를 나란히 놓고 꼼꼼히 비교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확인되었다. 오늘 기일은 예순 둘의 김수복이 맞고, 마흔 셋의 김수복은 아직 기일이 아니다."
수복은 그 말에 숨을 크게 내쉬었습니다. 그러나 곧 표정을 가다듬고 다시 앞으로 나섰습니다.
"대왕, 그렇다면 한 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염라대왕이 눈썹을 치켜올렸습니다.
"또 있느냐?"
"예. 저는 오늘 밤 멀쩡히 살아있다가 억울하게 이곳까지 끌려왔습니다. 오는 길에 길도 잃고, 주막에서 노자도 없이 제가 대신 막걸리 값을 냈습니다. 이 억울함과 수고에 대해 어떤 조치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키 작은 사자가 그 자리에서 고개를 더 깊이 숙였습니다. 관리들이 다시 술렁거렸습니다. 염라대왕은 잠시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 이승 사람이 저승에서 이렇게 따지는 경우는... 전례가 없는데."
"억울한 일에는 전례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법정 안이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수복은 반듯하게 서서 염라대왕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눈빛이 어찌나 또렷한지, 염라대왕이 먼저 시선을 잠깐 딴 곳으로 돌렸습니다.
※ 5: 이승으로 돌아온 서생의 대역전
염라대왕은 잠시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법정 안은 숨소리도 들릴 것 같은 고요함이 흘렀습니다. 관리들은 붓을 든 채 멈춰 있었고, 두 사자는 고개를 숙인 채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수복만이 그 자리에 반듯하게 서 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이 마침내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김수복, 네 말이 맞다. 이번 일은 저승 측의 실수가 분명하다. 이승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겠다."
수복이 두 손을 모아 예를 표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왕."
"다만."
염라대왕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다."
수복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조건이라 하시면요?"
"네가 이곳에 온 것을 이승 사람들에게 함부로 떠들고 다니면 안 된다. 저승의 일을 이승에서 입방아에 올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다만 네가 겪은 일에서 배운 것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람이 어떤 행실을 해야 하는지, 그것은 가르쳐도 좋다."
"저는 훈장입니다. 가르치는 것이 본업이니 그 조건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수복이 다시 고개를 기울였습니다.
"오늘 네가 저승 문서 정리에 도움을 주었다. 덕분에 수백 년 묵은 분류 체계가 하루 만에 바로잡혔다. 그 공을 모른 척할 수는 없으니, 네가 이승으로 돌아가거든 하나를 알려주겠다."
염라대왕이 기록 관리를 향해 손짓을 했습니다. 관리가 조심스럽게 작은 두루마리 하나를 가져와 수복에게 건넸습니다. 수복이 펼쳐보니 글자가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읽으려 하자 글자가 눈 앞에서 아른거리며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이승에 돌아가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알 필요가 없다."
그때 키 큰 사자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습니다.
"대왕, 저희가 이번 실수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지면 되겠습니까?"
염라대왕이 두 사자를 바라보았습니다. 두 사자는 고개를 한껏 숙이고 있었습니다. 수복은 그 모습을 보다가 뜻밖에도 입을 열었습니다.
"대왕, 두 사자분들께 너무 무거운 책임을 묻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두가 수복을 바라보았습니다. 염라대왕도 눈썹을 치켜올렸습니다.
"왜냐?"
"저도 처음에는 무척 억울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두 분이 고의로 저를 잡아온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두루마리에 적힌 대로 따른 것이고, 담당이 아닌 상황에서도 일을 맡아 수행한 것이니 불성실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확인이 부족했을 뿐입니다. 확인 절차를 더 꼼꼼히 하도록 하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법정 안이 또 한 번 조용해졌습니다. 키 큰 사자가 고개를 들어 수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형형한 눈빛 안에 뭔가 흔들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저분이... 저희를 감싸고 있는 겁니까?"
키 작은 사자도 고개를 들었습니다. 수복은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억울한 것은 따져야 하지만, 억울함이 풀리고 나면 원한을 쌓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게 제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염라대왕은 잠시 수복을 바라보다가 낮게 웃었습니다. 저승 법정에서 염라대왕이 웃음을 보이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었습니다. 관리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좋다. 두 사자는 이번 한 번은 불문에 부치겠다. 다만 앞으로 담당 구역 외의 업무는 반드시 이중 확인을 거치도록 규정을 세워라."
두 사자가 깊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왕."
그리고 키 큰 사자가 수복을 향해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훈장님."
수복은 손을 내저었습니다.
"별말씀을요. 오는 길에 막걸리 값만 갚아주시면 됩니다."
법정 안에 웃음이 번졌습니다. 관리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참지 못했고, 염라대왕조차 입가를 손으로 가리는 것이 역력했습니다.
이승으로 돌아가는 절차가 시작되었습니다. 수복은 관리들에게 둘러싸여 이런저런 확인 도장을 받고, 두루마리에 서명을 하고, 귀환 절차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저승도 서류 절차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네. 이승이랑 다를 게 없구만.'
키 큰 사자가 절차를 안내하며 수복 옆을 따라다니다가 낮게 물었습니다.
"훈장님, 이승에 돌아가시면 무얼 하실 겁니까?"
"전과 똑같이 훈장 일을 하겠지요. 그런데 오늘 여기서 본 것들이 있으니, 아이들에게 좀 더 가르칠 것이 생겼습니다."
"어떤 것을요?"
수복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억울한 일은 당당하게 따질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억울함이 풀리면 원한을 오래 품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바쁘고 높은 자리에 있어도 확인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는 것. 저승에서 배운 것치고는 꽤 쓸 만하지 않습니까?"
키 큰 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훈장님은 저승에 오셔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가시는 것 같습니다."
"덕분입니다. 억울하게 끌려오지 않았으면 이런 경험을 어디서 했겠습니까."
키 작은 사자가 뒤에서 끼어들었습니다.
"그, 그건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수복이 빙긋 웃었습니다.
모든 절차가 끝났습니다. 관리가 수복 앞에 서서 안내했습니다.
"자, 이제 이승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눈을 감으시고 이승의 자기 몸을 떠올리십시오. 아, 그리고 저승에서 받으신 그 두루마리, 이승에 가시면 펼쳐보십시오. 잊지 마십시오."
수복은 작은 두루마리를 품에 꼭 안았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기 전에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습니다. 바빠서 허둥대는 관리들, 선반을 새로 정리하고 있는 저승 관리들, 그리고 멀찍이 서서 바라보는 두 사자.
"어르신들, 저승 일 잘 하십시오. 확인은 꼭 두 번씩 하시고요."
키 큰 사자가 손을 들어 인사했습니다.
"이승에서 건강히 잘 사십시오, 훈장님."
수복은 빙긋 웃으며 눈을 감았습니다.
※ 6: 저승사자가 다시 찾아온 날
수복이 눈을 뜨자, 낯익은 천장이 보였습니다. 기름 등잔이 가물가물 타고 있었고, 바깥에서는 닭 우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내가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고, 문틈으로 새벽 냉기가 스며들었습니다. 수복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습니다. 손이 움직였습니다. 발도 움직였습니다. 숨도 쉬어졌습니다.
'살아있다.'
수복은 그 자리에 누운 채로 한동안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저승에서 보고 들은 것들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검은 두루마리, 저승 주막의 막걸리, 두루마리 더미 속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내던 순간, 염라대왕의 짙은 눈썹, 그리고 두 사자의 형형한 눈빛.
'꿈이 아니었어. 분명히 다녀왔어.'
수복은 몸을 일으켜 앉았습니다. 그리고 품 안을 더듬었습니다. 무언가가 만져졌습니다. 꺼내보니, 작은 두루마리였습니다. 저승에서 염라대왕이 건네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승에 돌아오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수복은 조심스럽게 두루마리를 펼쳤습니다. 이번에는 글자가 또렷하게 읽혔습니다. 거기에는 딱 세 줄이 적혀 있었습니다.
베풀어라. 그러면 돌아온다.
따져라. 그러나 원한을 쌓지 마라.
확인하라. 두 번, 세 번.
수복은 그 세 줄을 한참 동안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두루마리를 접어 품 안에 다시 넣었습니다.
'염라대왕이 직접 써준 가르침이라니. 이걸 받은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날이 밝았습니다. 아내가 눈을 떴다가 수복이 멀뚱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여보,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요? 얼굴빛은 또 왜 이렇게 이상합니까?"
"어, 아니오. 그냥 잠을 좀 설쳤소."
"설친 정도가 아니라 사흘 내내 앓으셨잖습니까!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수복이 눈을 껌뻑였습니다.
"사, 사흘이요?"
"예! 사흘 전에 갑자기 쓰러지시더니 꼼짝도 안 하셨잖습니까! 숨은 붙어 계셨는데 아무리 불러도 깨어나지 않으시니 제가 얼마나 놀랐겠어요! 의원도 다녀갔는데 의원도 모르겠다고 하고!"
수복은 저승에서 하루를 보낸 것이 이승에서는 사흘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저승 시간과 이승 시간이 다르구나. 거기서 하루가 여기서 사흘이라니.'
아내가 수복의 이마를 짚어보며 눈물을 그렁그렁 달았습니다.
"이제 정신이 드세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
"없소. 오히려 아주 멀쩡하오."
"뭘 보셨는지 눈빛이 아까부터 이상합니다."
"이상한 게 아니라, 그냥 여러 가지를 많이 생각한 것뿐이오."
수복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습니다. 마당 감나무에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고, 하늘은 맑고 푸르렀습니다. 수복은 한참 동안 그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이 이렇게 선명하게 느껴진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날부터 수복이 달라졌습니다. 훈장 일을 하면서 이전보다 훨씬 열성으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글 읽는 것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더 오래 앉아 있어주었고, 형편이 어려워 붓과 종이를 살 수 없는 아이들에게는 자기 것을 나눠주었습니다.
마을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발 벗고 나섰습니다. 집을 새로 짓는 집에 일손을 보태고, 아픈 이웃에게 약값을 보태고, 흉년이 들어 끼니를 걱정하는 집에 쌀을 갖다 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수복이 크게 달라진 것을 느끼면서도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훈장님, 요즘 왜 이러십니까? 전에도 좋은 분이셨지만, 요즘은 더 각별하십니다."
수복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냥 살아있는 것이 새삼 고마워서요."
"사흘 앓고 일어나시더니 사람이 달라지셨네요."
"뭔가를 보고 왔다고 해야 할까요. 하하."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수복의 표정이 워낙 편안하고 밝았으므로 더 묻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서당 아이들이 다 돌아가고 혼자 남은 수복이 등잔 앞에 앉아 품 안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꺼냈습니다. 다시 펼쳐보니 그 세 줄이 여전히 또렷했습니다.
베풀어라. 그러면 돌아온다.
따져라. 그러나 원한을 쌓지 마라.
확인하라. 두 번, 세 번.
수복은 그 세 줄을 큰 종이에 옮겨 적어 서당 벽에 붙였습니다. 이튿날 아이들이 와서 그것을 읽고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게 무슨 말입니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란다."
"어디서 배우셨어요?"
수복은 잠시 먼 곳을 바라보다가 빙그레 웃었습니다.
"아주 먼 곳에서 직접 배워왔단다."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선생님의 눈빛이 평소보다 더 깊고 따뜻하다는 것은 느꼈습니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흘렀습니다. 수복은 그날 이후로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웃에게 베풀고, 억울한 일에는 당당하게 따지고, 원한은 오래 품지 않으며, 무슨 일이든 두 번 세 번 확인하며 살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수복을 일컬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승 갔다 온 사람이라더니, 이승에서 제일 잘 사는 사람이 되었구만."
그리고 수복이 세상을 떠나는 날, 저승 법정에서는 아주 일찍부터 분주해졌습니다. 관리들이 새로 정리된 선반에서 두루마리를 단숨에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염라대왕은 그 두루마리를 보더니 아주 오랜만에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승 입구에서 검은 도포를 입은 두 사자가 수복을 맞이했습니다. 키 큰 사자가 단정하게 인사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훈장님."
수복이 빙그레 웃었습니다.
"어르신, 이번엔 담당 구역이 맞으시지요?"
"물론입니다. 두 번 확인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그렇게 훈장 김수복은, 이번에는 당당하고 홀가분하게 저승 문을 넘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이야기,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승사자 앞에서도 조목조목 따지고, 염라대왕 앞에서도 당당했던 훈장 김수복, 어떠셨습니까? 베풀고, 따지되 원한은 품지 않고, 무슨 일이든 두 번 확인하는 삶. 오늘 이 세 가지가 여러분 삶에도 함께하길 바랍니다. 좋아요와 구독으로 응원해 주시고,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도 들려주세요. 다음 이야기에서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