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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의 고민
태그:
#조선시대 #저승사자 #효도 #가족애 #전설 #운명 #저승 #효자 #부모자식 #인간미
디스크립션:
병든 어머니를 홀로 모시는 효자를 데려가야 하는 저승사자의 이야기. 인간의 효심 앞에서 고민하는 저승사자의 내면, 그리고 그가 선택한 특별한 결정을 담은 전설입니다.
씬 1: 저승의 명령
저승의 서기관이 붓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오늘도 여러 저승사자들이 명단을 받으러 줄을 서 있었습니다.
"다음은 강원도 담당 박 사자."
키가 크고 마른 저승사자가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는 저승에서 가장 성실한 사자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번 명단은 좀 특별하다. 염라대왕님께서 직접 지명하신 건이니 잘 처리하도록."
서기관이 건넨 명단에는 단 한 명의 이름만 적혀있었습니다.
'김달호, 스물여덟, 이번 달 보름날 자시에 데려올 것.'
"이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병든 어머니를 모시는 효자일세. 하지만 자신의 병을 치료하지 않아 수명이 다했다고 하더군."
박 사자는 잠시 멈칫했습니다. 효자라... 그동안 수많은 영혼을 데려왔지만, 효자의 영혼을 데려가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걱정할 것 없네. 자네는 늘 그래왔듯이 임무를 수행하면 되는 것이야."
하지만 박 사자의 마음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과거 자신도 늙으신 부모님을 두고 죽어야 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되면 그를 데려오게.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겠네."
서기관의 말에 박 사자는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습니다. 저승의 차가운 바람이 그의 검은 도포 자락을 흔들었습니다.
씬 2: 첫 만남
깊은 산골 마을, 달빛이 가득한 밤이었습니다. 박 사자는 작은 초가집 앞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병든 어머니를 위해 밤늦도록 약을 달이는 젊은이가 보였습니다. 그가 바로 김달호였습니다. 창백한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지만, 약을 달이는 손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이번 약은 분명 효과가 있을 거예요."
달호의 목소리에는 희망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박 사자의 눈에는 그의 수명이 촛불처럼 흔들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약을 구하러 다닌다고 자신의 병을 방치하다니..."
박 사자는 중얼거렸습니다. 달호의 가슴에는 이미 심한 병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약을 구하러 다니느라 자신의 치료는 미뤄둔 것이었습니다.
"아들아... 너도 쉬었다 하거라..."
병석의 어머니가 말씀하셨지만, 달호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괜찮아요 어머니. 이 약만 드시면 분명 나아지실 거예요."
달호의 모습을 보며 박 사자의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저승사자가 된 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아들을... 내가 어떻게 데려갈 수 있단 말인가..."
박 사자는 그날 처음으로 임무 수행을 망설였습니다. 저승의 법도대로라면 당장 데려가야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쉽사리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씬 3: 효자의 일상
저승사자는 며칠 동안 달호의 일상을 지켜보았습니다. 동이 트기도 전에 달호는 산에 올랐습니다. 어머니의 기침에 좋다는 더덕을 캐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달호는 자신의 가쁜 숨을 무시한 채 산을 올랐습니다. 얼굴은 창백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점심때가 되면 달호는 어머니의 밥상을 정성껏 차렸습니다. 죽 한 그릇도 정성들여 끓이고, 반찬 하나하나를 어머니 입맛에 맞게 준비했습니다.
"어머니, 이 나물은 산에서 직접 캐온 거예요. 이걸 드시면 기운이 나실 거예요."
어머니는 아들의 정성이 안타까워 한숨만 쉬었습니다.
밤이 되면 달호는 어머니 발을 주물렀습니다. 자신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지만, 어머니를 위한 마음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저승사자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런 효자를 데려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처음으로 자신의 임무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씬 4: 저승사자의 망설임
달이 뜨는 시각, 저승사자는 마을 입구 느티나무 아래에 서 있었습니다. 이제 이틀 후면 달호의 수명이 다하는 날입니다.
"내가 망설이는 것이 옳은 것인가..."
저승의 법도는 엄격했습니다. 정해진 수명이 다하면 어떤 이유로도 미룰 수 없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효자를 데려간다면, 저승에서도 평안할 수 있을까..."
문득 달호의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아들이 떠나면 그녀는 누구의 보살핌도 없이 홀로 남게 될 것입니다.
"한번만... 한번만 법도를 어기면 안 될까..."
저승사자의 망토가 달빛에 흔들렸습니다. 그의 마음도 그처럼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 저승사자의 숙명이다..."
하지만 그 말조차 이제는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으로 저승사자의 검은 눈동자에 망설임이 깃들었습니다.
씬 5: 어머니의 한숨
"달호야... 이젠 그만하거라..."
깊은 밤, 어머니는 자는 척하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달호는 이제 걸음을 걸을 때마다 숨이 가빠졌고, 기침도 잦아졌습니다.
"내가 이렇게 오래 살아서... 네가 이런 고생을..."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창가에 서 있던 저승사자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차라리 내가 먼저 가는 게 낫겠구나. 너를 이렇게 볼 수는 없어..."
어머니의 독백이 이어졌습니다. 아들의 병든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자신의 병보다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제발 이 아이의 병을 거두어 주소서..."
어머니의 기도가 달빛 속에 울렸습니다. 저승사자는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를 들으면서도, 아들의 목숨을 거두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이 너무나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씬 6: 저승법정
저승법정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저승사자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습니다. 십대왕이 모두 모인 가운데, 염라대왕이 입을 열었습니다.
"박 사자, 너는 지금 법도를 어기고자 하는가?"
"대왕님, 청을 올리고 싶습니다. 김달호의 수명을 조금만 연장해 주십시오."
법정이 술렁였습니다. 저승 천 년 역사에 저승사자가 영혼의 수명 연장을 청원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 자의 수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것이 하늘의 이치다."
"하지만 대왕님, 그는 너무나 지극한 효자입니다. 어머니를 위해 자신의 병을 돌보지 않은 것이 그의 죄라면, 그것은 오히려 그의 효심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승사자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염라대왕이 생사부를 펼쳤습니다.
"그대의 말대로다. 하지만 법도는 법도다. 이를 어기면 저승의 질서가 무너질 것이다."
"대왕님, 그렇다면 제가 제안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저승사자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습니다. 그의 눈빛에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저의 수명을 나누어 그에게 주고 싶습니다. 제가 가진 영생의 절반을..."
씬 7: 염라대왕의 시험
"네 수명을 나누겠다고? 그만한 각오가 되어있느냐?"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법정에 울렸습니다. 순간 저승법정의 공기가 얼어붙었습니다.
"저승사자의 영생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대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좋겠는가?"
"네, 대왕님. 제가 본 그의 효심은 제 영생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었습니다."
염라대왕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의 손에는 거대한 저승 거울이 들려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거울을 보아라. 이는 과거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니..."
거울 속에 달호의 미래가 비쳤습니다. 그가 살아남는다면 어머니는 완쾌되어 천수를 누리게 될 것이고, 달호는 많은 이들에게 효를 가르치게 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대는..."
거울 속에 비친 저승사자의 모습은 점점 흐려지다가 마침내 사라져갔습니다. 영생을 포기한다면 그는 결국 사라지게 될 운명이었습니다.
"그대의 선택은 변함이 없는가?"
"네, 대왕님. 제 진심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염라대왕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것은 마치 이 모든 것을 예상했던 것 같은 미소였습니다.
씬 8: 특별한 제안
"그대의 진심을 확인했다. 이제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하라."
염라대왕의 허락이 떨어지자, 저승사자는 달호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달빛이 밝은 밤이었습니다.
"김달호, 이제 나를 볼 수 있겠지..."
저승사자가 모습을 드러내자 달호는 놀라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그대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저승사자는 자신의 검은 지팡이를 들어 달호를 가리켰습니다. 순간 달호의 몸 주위로 푸른 빛이 맴돌았습니다.
"내 수명의 절반을 그대에게 주겠다. 그대의 효심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며..."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저승사자님은..."
"그렇다. 나도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 선택이다."
달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차가운 저승사자의 얼굴에도 따뜻한 미소가 어렸습니다.
씬 9: 어머니의 회복
저승사자의 지팡이에서 흘러나온 푸른 빛이 달호의 몸을 감쌌습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달호의 창백했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고, 가쁘던 숨소리도 잔잔해졌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그때, 옆방에서 어머니의 기침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른 기침이었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쌓였던 병이 빠져나가는 듯한 소리였습니다.
"어머니!"
달호가 어머니의 방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머니는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이상하구나... 몸이 이렇게 가벼워진 게..."
어머니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습니다. 오랫동안 침상에 누워계시던 어머니가 홀로 일어나 앉으셨습니다.
"달호야, 내가 꿈을 꾸었단다. 하얀 빛이 우리 집에 내려와 병을 모두 가져가는 꿈을..."
저승사자는 조용히 이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의 몸이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평화로운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이제 그대들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씬 10: 효자의 선택
달호는 점점 투명해져가는 저승사자를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영생을 포기한 저승사자의 희생이 가슴 깊이 와닿았습니다.
"저승사자님, 저에게도 제안이 있습니다."
달호가 저승사자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건강해지셨고, 저도 병이 나았습니다. 하지만 저승사자님은 사라지실 것이고... 그렇다면 제가 그 자리를 이어받고 싶습니다."
저승사자의 눈이 커졌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저승사자의 길은 외롭고 고독한 것이다. 이제 막 새 생명을 얻은 그대가 왜..."
"제가 받은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저승사자님처럼 저도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달호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저승사자는 잠시 달호를 바라보다가 지팡이를 들어올렸습니다.
"그대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나의 마지막 힘을 그대에게 전하겠다."
지팡이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와 달호를 감쌌습니다. 그의 모습이 점점 저승사자의 모습으로 변해갔습니다.
씬 11: 새로운 동료
저승법정에 새로운 저승사자가 섰습니다. 검은 도포를 입은 달호의 모습은 이제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너는 저승의 일원이 되었다. 하지만 특별한 임무가 하나 있다."
염라대왕이 말씀하셨습니다.
"네 전임자처럼, 너는 효심 깊은 이들을 판단하는 특별한 저승사자가 될 것이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자는 너뿐이기 때문이다."
달호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의 앞에는 이제 희미해져가는 전임 저승사자가 서 있었습니다.
"스승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스승님께서 보여주신 자비와 이해의 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전임 저승사자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의 모습이 점점 투명해지며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나의 시간이 다 되었구나. 하지만 후회는 없다. 그대같은 제자를 얻었으니..."
마지막 순간, 전임 저승사자의 모습은 아름다운 빛이 되어 저승의 하늘로 사라졌습니다. 달호의 손에는 스승의 지팡이가 남았습니다.
씬 12: 특별한 인연
달이 밝은 밤, 어느 산골 마을에 한 저승사자가 서 있습니다. 그의 앞에는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스승님이 저를 이해해주셨듯이..."
달호는 이제 자신과 같은 처지의 효자를 만나면, 그들의 사연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그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의 효심을 저승에 전하기도 했습니다.
매년 그날이 되면, 달호는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갑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저승사자가 된 것을 모르지만, 달빛 아래서 차가운 바람이 불 때면 아들을 떠올립니다.
"이상하게도 달이 밝은 밤이면 우리 달호가 곁에 있는 것 같구나..."
저승에서는 이제 '효심 사자'라는 별명이 생겼습니다. 효자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저승사자, 그것이 바로 달호의 새로운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승의 어딘가에는 전임 저승사자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갑니다. 한 효자를 위해 자신의 영생을 포기한 저승사자의 이야기를...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더 재미있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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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음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