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저승사자와 스님의 특별한 3일
태그
#조선시대, #전설, #저승사자, #한국불교, #스님, #구전설화, #조선이야기, #야담, #저승, #불교이야기, #한국문화, #ASMR, #Korean_folklore, #Joseon, #Buddhist_story
디스크립션
조선시대, 한 스님과 저승사자의 특별한 3일간의 이야기
깨달음을 얻은 저승사자는 어떻게 변화했을까요?
구독과 좋아요는 더 많은 조선 이야기 제작의 힘이 됩니다.
후킹멘트 (도입부)
"산사의 종소리가 울리는 달빛 아래, 검은 도포를 입은 저승사자가 서 있었습니다. 오늘 그가 만날 이는 평범한 스님이 아닌, 그의 운명을 바꿀 한 존재였지요. 저승사자와 스님의 3일간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1 산사의 만남
달빛이 흐르는 깊은 산사의 새벽, 고요한 적막을 깨고 은은한 목탁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무학선사는 여느 때처럼 새벽 예불을 준비하고 있었지요. 팔순의 나이에도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단정했습니다. 낡은 장삼 자락이 차가운 새벽 공기에 살짝 흔들렸습니다.
법당으로 향하는 돌계단을 오르던 무학선사의 발걸음이 문득 멈췄습니다. 달빛 아래 검은 그림자 하나가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긴 도포를 입은 그 모습은 분명 저승사자였지요. 하지만 무학선사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없었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온 손님을 맞이하듯, 그의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만이 맺혔습니다.
"도포자락이 달빛에 젖었구나. 이리 와서 차 한 잔 하고 가시게나."
저승사자는 당황했습니다. 수천 년간 자신의 모습을 본 인간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었건만, 이 늙은 스님은 마치 오랜 벗을 대하듯 편안한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스님... 제가 누군지 아시고도 그리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무학선사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부처님의 법연이거늘, 당신의 방문도 다르지 않을 터. 차 한 잔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찌 나쁘겠소?"
저승사자는 처음으로 망설임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신기한데, 오히려 차를 대접하겠다니. 천 년을 넘게 살아오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선방으로 들어선 두 사람. 무학선사는 천천히 차를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장작불에 물이 끓는 소리, 차를 우리는 스님의 고요한 움직임, 그리고 달빛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어우러져 마치 그림 같은 광경을 만들어냈습니다.
"스님, 제가 왜 왔는지 아시겠지요?"
무학선사는 차를 건네며 미소 지었습니다.
"그대가 올 때가 되었기에 오신 것이겠지요. 하지만 아직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 그대에게 청이 있습니다."
저승사자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습니다. 보통 인간들이 목숨을 연장해달라 애원할 때면 단호히 거절하곤 했는데, 이 스님의 청은 왠지 가볍게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말씀해 보시지요."
"그대와 함께 3일간의 여정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이 늙은 중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전할 기회를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저승사자는 처음으로 혼란스러움을 느꼈습니다. 자신에게 가르침을 전하겠다니, 이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하지만 스님의 눈빛에는 깊은 통찰이 서려있었고, 그의 미소에는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달빛은 여전히 고요히 선방을 비추고 있었고, 멀리서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순간, 천 년을 살아온 저승사자의 운명이 크게 바뀌려 하고 있었지요.
2 예정된 인연
차 한 잔이 다 마려가고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는 오랜 시간 침묵 속에 잠겨있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제가 올 것을 미리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만..."
무학선사는 빈 찻잔을 살며시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산문 밖 느티나무에 첫 잎이 날 때부터 알고 있었지요. 새들이 그 나뭇가지에서 더 이상 지저귀지 않게 되었거든요. 자연은 늘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해주고 있답니다."
저승사자는 스님의 말씀에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예감하고도, 도망가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평온하게 기다렸다는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피하지 않으셨습니까? 다른 곳으로 떠나실 수도 있었을 텐데요."
무학선사는 창 밖 달빛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습니다.
"이 세상 어디를 간들 인연의 끝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어떻게 맺어진 인연을 마무리 짓느냐'하는 것이지요. 나의 마지막 인연이 당신과 함께라면, 그것 또한 부처님의 뜻일 터이니..."
스님의 말씀에 저승사자는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천 년을 살며 수많은 생명을 저승으로 데려갔지만, 이처럼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는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스님, 아직 제가 마음에 걸립니다. 스님께서 3일을 더 살고 싶다 하신 것이..."
"아, 그것은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네. 그대를 위한 시간이지."
무학선사의 말에 저승사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자신을 위한 시간이라니,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스님의 눈빛은 마치 오랜 세월의 지혜가 담긴 듯 깊고 평화로웠습니다.
"그대는 천 년을 살았지만, 아직 진정한 죽음의 의미를 모르는 것 같구려. 내가 그대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싶은데... 어떠신지요?"
달빛은 여전히 고요히 선방을 비추고 있었고, 멀리서 산새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저승사자는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깊은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3 깨달음의 제안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 무학선사는 저승사자를 데리고 절 뒤편의 낡은 나무다리로 향했습니다. 계곡의 물소리가 새벽 안개 속에서 은은하게 울렸고, 멀리서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이 다리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네."
무학선사는 다리 난간에 기대어 서서 아래로 흐르는 물을 바라보았습니다.
"오십 년 전, 이 다리를 건너던 젊은 스님이 있었소. 그는 깨달음을 구하는 일에 조급했던 나머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탐욕과 성냄을 보지 못했지요. 어느 날 이 다리를 건너다가 깊은 절망에 빠져 몸을 던지려 했답니다."
저승사자는 스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때 한 노스님이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네가 찾는 깨달음은 저 계곡 아래가 아니라 네 마음 안에 있다'고. 그 말씀에 젊은 스님은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소. 그 젊은 스님이 바로 나였다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계곡을 바라보며 무학선사는 잠시 침묵했습니다. 저승사자는 처음으로 인간의 삶이 지닌 깊이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제 나는 그대에게 같은 가르침을 전하고 싶소. 그대는 천 년 동안 수많은 이들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았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은 들여다보지 않았을 터. 그대에게 삶과 죽음은 단순한 일정표와 같은 것이 되어버린 게지요."
스님의 말씀에 저승사자는 가슴 한켠이 묵직해짐을 느꼈습니다. 자신이 늘 기계적으로 행해온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사흘 동안, 그대에게 진정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보여주고 싶소. 이는 단순히 나의 마지막 가르침이 아니라, 그대를 위한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오."
아침 햇살이 서서히 계곡을 비추기 시작했고, 물안개 사이로 무지개가 피어올랐습니다. 마치 부처님께서 이 순간을 축복하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첫째 날에는 자비를, 둘째 날에는 지혜를,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깨달음을 이야기하고자 하오. 그대는 이미 죽음을 알고 있지만, 이제 삶을 알게 될 것이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진정한 죽음의 의미도 깨닫게 될 것이오."
무학선사의 눈빛은 새벽 햇살처럼 맑고 투명했습니다. 저승사자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천 년을 살며 처음으로 누군가의 제자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스님... 저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좋소. 그럼 이제 첫 번째 여정을 시작해볼까요? 마을로 내려가 보시지요. 오늘은 그대가 늘 데려가던 이들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것이오."
두 사람은 천천히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다리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마치 오래된 경전을 읽는 소리처럼 들려왔습니다.
4 첫째 날 - 자비의 실천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무학선사와 저승사자는 마을의 가장 가난한 골목에 들어섰습니다. 허름한 초가집들 사이로 괴로움에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곳은 제가 자주 오는 곳입니다. 병들고 가난한 이들이 많아서..."
무학선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집 앞에 멈춰 섰습니다. 그 집에서는 어린아이의 기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들어가 보시지요."
방 안에는 열병에 걸린 아이가 누워있었고, 그 옆에서 어머니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는 본능적으로 명부를 펼쳤습니다.
"아직 이 아이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만..."
"그렇소. 하지만 우리는 잠시 이들과 함께 있어줄 수 있소."
무학선사는 조용히 아이 곁에 앉아 경을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경을 읽는 동안 아이의 숨이 조금씩 편안해져 갔습니다.
"스님, 어떻게 이런 일이..."
"나는 그저 자비의 마음으로 경을 읽었을 뿐이오. 중요한 것은 이 순간, 이들과 함께 아파하고 희망을 나누는 것이지요."
저승사자는 처음으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정해진 때에 맞춰 생명을 거두어가는 것만이 자신의 일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다른 방법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떠나려 할 때, 아이의 어머니가 감사의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머니는 저승사자의 모습도 볼 수 있는 듯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검은 도포를 입은 나리께서도..."
무학선사가 미소를 지었습니다.
"진정한 자비는 때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만들기도 하지요. 이제 조금 이해하겠습니까?"
저승사자는 처음으로 자신의 차가운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5 연기의 이치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무학선사는 저승사자를 데리고 마을 근처 강가의 낡은 정자로 향했습니다. 정자 아래로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있었고, 꽃잎들이 물결 따라 춤추듯 흘러갔습니다.
"자비를 실천하는 것을 보았으니, 이제는 그 의미를 깊이 이해할 차례요."
무학선사는 정자 난간에 기대어 강물을 바라보았습니다. 저승사자도 그 옆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 꽃잎 하나를 보시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 같습니까?"
저승사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저 꽃잎은 상류의 어느 나무에서 떨어져, 바다를 향해 흘러가고 있겠지요."
"그렇다면 그 꽃잎은 나무에서 시작되어 바다에서 끝나는 것일까요?"
무학선사의 질문에 저승사자는 처음으로 혼란스러움을 느꼈습니다.
"아닙니다. 그 나무는 땅에서 자랐을 것이고, 씨앗은 또 다른 나무에서 왔겠지요. 그리고 바다로 간 꽃잎은 물이 되어 다시 비가 되어 내릴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오. 이것이 바로 연기의 이치요.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는 것이지요. 죽음도 마찬가지요."
강물 위로 한 떨기 꽃잎이 더 떨어져 내렸습니다. 무학선사는 그것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었습니다.
"그대는 지금까지 죽음을 하나의 끝으로 보았을 것이오. 하지만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며, 큰 순환의 한 부분일 뿐이오. 아까 본 아이와 어머니를 생각해보시오. 그들의 인연은 이생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며, 이생에서 끝나는 것도 아닐 것이오."
저승사자는 문득 자신이 수천 년간 해온 일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늘 죽음만을 보았지, 그 뒤에 이어지는 새로운 시작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스님, 그렇다면 제가 하는 일은..."
"그대의 일도 이 큰 순환의 한 부분이오. 다만 지금까지는 그것을 알지 못했을 뿐이지요.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에게 그대는 단순한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다음 생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존재가 될 수 있소."
강물은 계속해서 흘러갔고, 꽃잎들은 그 물결 위에서 춤추듯 흘러갔습니다. 저승사자는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가 가진 더 깊은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보이시나요? 저 꽃잎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흘러가는 모습을. 우리 모두가 그렇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오. 산 자와 죽은 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하나로 이어져 있지요."
먼 산에서 종소리가 울려퍼졌습니다. 마치 부처님께서 이 깨달음의 순간을 축복해주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6 둘째 날 - 집착의 버림
해가 저물어갈 무렵, 무학선사는 저승사자를 마을 외곽의 화장터로 데려갔습니다. 멀리서 시신을 태우는 연기가 하늘로 피어올랐고, 곡소리가 바람에 실려 왔습니다.
"스님, 이곳은 제가 가장 자주 찾는 곳 중 하나입니다."
"그렇겠지요. 하지만 오늘은 다른 눈으로 보시기 바라오."
화장터 한켠에서는 한 노파가 딸의 시신 앞에서 오열하고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는 그 딸의 혼령을 데려온 것이 바로 자신이었음을 기억해냈습니다.
"보시오, 저 어머니의 슬픔은 사랑이 만든 것이오. 하지만 동시에 집착이 만든 것이기도 하지요."
무학선사가 천천히 걸어가 노파 곁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경을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경문이 울려 퍼질수록 노파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습니다.
"모든 것은 무상한 것이오. 우리가 움켜쥐려 할수록, 더 큰 고통이 찾아오는 법이지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그대가 해야 할 일은, 집착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오."
저승사자는 처음으로 자신의 역할이 단순히 영혼을 데려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이승의 사람들이 집착을 내려놓고, 자연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이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스님, 어떻게 하면 그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까요?"
"자비의 마음으로 바라보시오. 그들의 슬픔을 함께 나누되, 그 슬픔에 휩쓸리지는 말아야 하오. 마치 달이 물에 비치되 물에 젖지 않는 것처럼..."
멀리서 해가 저물며, 노을이 화장터의 연기와 어우러져 붉은 빛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속에서 저승사자는 처음으로 죽음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7 마음의 거울
동이 트기 전 새벽, 무학선사는 저승사자를 데리고 깊은 산속의 폭포로 향했습니다. 아직 어둠이 깊었지만, 폭포수가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만은 선명하게 들려왔습니다.
"이곳은 내가 젊었을 때 깨달음을 얻은 장소요. 폭포수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법문이지요."
무학선사는 폭포 앞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습니다. 저승사자도 그 옆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천 년을 살아오면서, 그대의 마음에는 많은 것이 쌓였을 것이오.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느낀 감정들, 그들의 한과 슬픔, 그리고 원망까지도..."
저승사자는 끄덕였습니다. 실제로 자신의 마음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있었습니다. 매 순간 마주한 이별의 슬픔, 원망 어린 눈빛들, 그리고 삶에 대한 미련들이 마치 무거운 바위처럼 자리잡고 있었지요.
"이제 그 모든 것을 내려놓을 시간이오. 저 폭포를 보시오.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줄기는 바위를 때리지만, 그 물방울은 다시 안개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지요. 마치 우리의 마음처럼..."
동이 서서히 트기 시작하며, 폭포에 아침 햇살이 비치자 무지개가 피어올랐습니다.
"스님, 제 마음도 저 폭포처럼 정화될 수 있을까요?"
"그대의 마음은 본래 맑은 거울과 같았을 것이오. 다만 세월이 지나며 먼지가 쌓였을 뿐이지요. 이제 그 거울을 닦을 때가 된 것이오."
무학선사는 천천히 염주를 꺼내 저승사자에게 건넸습니다.
"이 염주로 마음을 가라앉히며 천천히 셈을 해보시오. 그대가 만났던 모든 영혼들, 그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는 것이오."
저승사자는 처음으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한 알 한 알 염주를 굴릴 때마다, 자신이 저승으로 데려갔던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부자부터 거지까지... 그들 모두를 위해 기도를 올리는 동안, 저승사자의 마음에서는 묵직한 무언가가 조금씩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보이시나요? 저 폭포 아래 고인 물이 맑아지는 것처럼, 그대의 마음도 점점 맑아지고 있소. 이제 그대는 단순한 저승사자가 아니라, 영혼들의 안내자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오."
해가 완전히 떠오르자, 폭포의 무지개는 더욱 선명해졌고, 물안개 사이로 부처님의 미소 같은 것이 어렸습니다. 저승사자의 검은 도포에도 무지개 빛이 어려 신비로운 광채를 발했습니다.
8 셋째 날 - 대자대비
동이 트기 전 새벽, 무학선사는 저승사자를 데리고 깊은 산속의 폭포로 향했습니다. 아직 어둠이 깊었지만, 폭포수가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만은 선명하게 들려왔습니다.
"이곳은 내가 젊었을 때 깨달음을 얻은 장소요. 폭포수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법문이지요."
무학선사는 폭포 앞 바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습니다. 저승사자도 그 옆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천 년을 살아오면서, 그대의 마음에는 많은 것이 쌓였을 것이오.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느낀 감정들, 그들의 한과 슬픔, 그리고 원망까지도..."
저승사자는 끄덕였습니다. 실제로 자신의 마음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있었습니다. 매 순간 마주한 이별의 슬픔, 원망 어린 눈빛들, 그리고 삶에 대한 미련들이 마치 무거운 바위처럼 자리잡고 있었지요.
"이제 그 모든 것을 내려놓을 시간이오. 저 폭포를 보시오.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줄기는 바위를 때리지만, 그 물방울은 다시 안개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지요. 마치 우리의 마음처럼..."
동이 서서히 트기 시작하며, 폭포에 아침 햇살이 비치자 무지개가 피어올랐습니다.
"스님, 제 마음도 저 폭포처럼 정화될 수 있을까요?"
"그대의 마음은 본래 맑은 거울과 같았을 것이오. 다만 세월이 지나며 먼지가 쌓였을 뿐이지요. 이제 그 거울을 닦을 때가 된 것이오."
무학선사는 천천히 염주를 꺼내 저승사자에게 건넸습니다.
"이 염주로 마음을 가라앉히며 천천히 셈을 해보시오. 그대가 만났던 모든 영혼들, 그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는 것이오."
저승사자는 처음으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한 알 한 알 염주를 굴릴 때마다, 자신이 저승으로 데려갔던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부자부터 거지까지... 그들 모두를 위해 기도를 올리는 동안, 저승사자의 마음에서는 묵직한 무언가가 조금씩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보이시나요? 저 폭포 아래 고인 물이 맑아지는 것처럼, 그대의 마음도 점점 맑아지고 있소. 이제 그대는 단순한 저승사자가 아니라, 영혼들의 안내자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오."
해가 완전히 떠오르자, 폭포의 무지개는 더욱 선명해졌고, 물안개 사이로 부처님의 미소 같은 것이 어렸습니다. 저승사자의 검은 도포에도 무지개 빛이 어려 신비로운 광채를 발했습니다.
9 윤회의 수레바퀴
해가 저물어갈 무렵, 무학선사는 저승사자를 데리고 절의 종각으로 올라갔습니다. 오래된 나무 계단이 발걸음 소리에 삐걱거렸고, 저녁 바람이 종각 처마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 종소리는 중생을 깨우는 소리라 하지요. 하지만 오늘은 그대를 위해 울리고 싶구려."
무학선사는 천천히 종을 칠 준비를 했습니다. 저녁 노을이 종각으로 스며들어, 청동 종에 붉은 빛을 드리웠습니다.
"스님, 이제 저는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한 가지 의문이 남아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수많은 영혼을 저승으로 데려갔지만, 그들은 그 후에 어떻게 되는 걸까요?"
무학선사는 미소를 지으며 종을 울렸습니다. 첫 번째 종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듣고 있나요? 이 종소리가 퍼져나가는 것처럼, 모든 영혼도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지요."
두 번째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 있소.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생명도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이지요."
세 번째 종소리와 함께 까마귀 한 마리가 종각 위를 날아갔습니다.
"보시오, 저 까마귀도 전생에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오. 어쩌면 인간이었을 수도 있고, 나비였을 수도 있지요. 그대가 저승으로 데려간 영혼들도 마찬가지요. 그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또 다른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이오."
네 번째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맑은 소리가 났습니다.
"그대의 역할은 바로 그 순환의 고리를 이어주는 것이오. 마치 이 종소리가 하늘과 땅을 이어주듯이, 그대는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다리인 것이지요."
다섯 번째 종소리는 유난히 길게 울렸습니다. 그 소리가 멀리 퍼져나가는 동안, 저승사자는 자신의 존재가 우주의 거대한 순환 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해하시겠소?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문이오. 그리고 그대는 그 문을 열어주는 존재인 것이지요."
마지막 여섯 번째 종소리가 울렸을 때, 저녁 노을이 완전히 저물어 첫 별이 떴습니다. 그 별빛은 마치 어딘가에서 새롭게 태어난 영혼의 반짝임 같았습니다.
10 저승사자의 변화
깊어가는 밤, 달빛이 가득한 절 마당에 무학선사와 저승사자가 마주 앉았습니다. 밤공기는 맑았고, 은은한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제 그대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구려. 검은 도포 사이로 달빛 같은 광채가 비치는군요."
저승사자도 스스로의 변화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천 년 동안 차갑게 얼어있던 가슴 속에서 따뜻한 빛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 제가 지금까지 얼마나 큰 잘못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죽음을 두려움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저였군요."
무학선사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잘못이 아니오. 그저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요. 이제 그대는 진정한 인도자가 된 것이오. 달빛이 길 잃은 나그네를 비추듯, 그대도 영혼들의 길을 밝혀줄 수 있게 되었소."
마당의 풀잎 사이로 반딧불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그 작은 빛이 저승사자의 도포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보시오, 저 반딧불도 그대를 두려워하지 않는군요. 이제 그대에게서는 죽음의 그림자가 아닌, 새로운 시작의 빛이 느껴지기 때문이오."
달빛 아래에서 저승사자의 모습이 점점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칠흑 같던 도포는 이제 은은한 광채를 띠었고, 차가운 기운 대신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내일이면 나는 그대와 함께 떠나게 되겠군요. 하지만 이제 두렵지 않습니다. 그대의 손을 잡고 가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되었으니까요."
11 스님의 미소
한밤중, 석등 아래에서 무학선사와 저승사자는 마지막 차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밤바람이 절 마당의 풀잎을 스치고 지나갔고, 멀리서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스님, 이제 저는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왜 하필 저를 선택하신 것인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무학선사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미소 지었습니다.
"그대야말로 가장 깊은 깨달음이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오. 천 년을 살면서도 진정한 생사의 이치를 모른 채, 외로운 길을 걸어왔으니 말이오. 나는 그저 그대의 길에 잠시 멈춰 선 나그네일 뿐이었소."
저승사자는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자신을 위해 이토록 깊은 배려를 해준 이가 있었다는 사실이 가슴 깊이 와닿았기 때문입니다.
"그대의 존재는 참으로 고귀한 것이오. 생과 사의 경계에서 영혼들을 인도하는 일은,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또 다른 방법이니까요. 다만 그동안은 그대 스스로가 그것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요."
석등의 불빛이 흔들리며 두 사람의 그림자가 마당에 길게 드리워졌습니다. 마치 이승과 저승이 만나 하나가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앞으로 그대가 만날 모든 영혼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시오. '두려워하지 마시오.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며, 이것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입니다'라고. 그리고 그들의 손을 잡고, 다음 생으로 가는 길을 밝혀주시오."
무학선사는 천천히 일어나 석등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그의 모습이 달빛과 석등불 사이에서 신비로운 광채를 발했습니다.
"나의 마지막 가르침이 하나 더 있소.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할 때는, 항상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시오. 모든 생명은 저마다의 소중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들의 기쁨과 슬픔, 후회와 희망을 함께 나누다 보면, 그대도 더욱 성장할 것이오."
바람이 불자 석등의 불빛이 더욱 크게 흔들렸고, 무학선사의 모습은 마치 부처님의 모습처럼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이제 동이 틀 때가 되었구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이 있소. 앞으로 그대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오늘 밤 우리가 나눈 깨달음을 조금씩 전해주시오. 그것이 나의 마지막 소원이오."
12 아름다운 이별
동이 트기 시작한 법당, 첫 햇살이 부처님의 금빛 얼굴을 비추었습니다. 무학선사는 평소처럼 단정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았고, 저승사자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스님,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그렇구려. 참으로 좋은 아침이오. 부처님께서 마지막 순간을 이토록 아름답게 마련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오."
무학선사의 얼굴에는 평화로운 미소가 어려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에 슬픔 대신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스님의 제자가 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인연이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오. 내가 그대의 스승이 된 것이 아니라, 그대와 내가 함께 깨달음을 이룬 것이지요."
법당 처마 끝에서 방금 깃든 새가 지저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부처님께 아침 인사를 올리는 것 같았습니다.
무학선사는 마지막으로 부처님을 향해 삼배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저승사자를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이제 가시지요."
저승사자가 무학선사의 손을 잡는 순간, 찬란한 빛이 법당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이별의 순간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축복의 빛이었습니다.
엔딩멘트
"그 후로 저승사자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다음 세상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자비로운 인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가끔 산사에 머무르다 보면, 종소리에 실려 오는 스님의 가르침이 아직도 들리는 듯합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다음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