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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승사자의 휴가, 이승에서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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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크립션

    "천 년간 영혼을 거두어온 노저승사자가 마지막 임무를 앞두고 특별한 선물을 받습니다. 단 하루 동안 인간으로 살아볼 수 있는 기회. 차가운 저승사자의 마음이 이승에서 보낸 하루를 통해 조금씩 녹아내립니다. 그런데 그날, 자신이 마지막으로 데려가야 할 영혼과 마주치게 되는데... 과연 저승사자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특별한 선물

    천 년을 영혼을 거두어온 최장수 저승사자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임무를 하루 앞둔 날, 염라대왕은 그를 법정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천 년 동안 단 하루의 실수도 없었다. 자네가 거둔 영혼만 해도 십만이 넘을 터인데..." 염라대왕의 목소리에는 깊은 감회가 서려있었습니다.

    노저승사자는 담담히 대답했습니다. "마지막 임무도 흔들림 없이 수행하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희미한 아쉬움이 비쳤습니다.

    "무엇이 가장 아쉬운가?" 염라대왕의 질문에 노저승사자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천 년 동안 수많은 인간의 마지막을 지켜봤지만... 그들이 왜 그토록 삶을 아쉬워하는지, 진정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염라대왕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렇다면 자네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겠네. 마지막 임무 전까지 하루 동안 인간으로 살아볼 기회를 주지."

    노저승사자의 눈이 커졌습니다. 천 년 동안 저승사자에게 주어진 휴가는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 조건이 있네. 해가 지기 전에 돌아와야 하고... 자네가 마지막으로 데려가야 할 그 영혼과는 절대 마주치면 안 된다."

    하지만 운명이란 것은 참 아이러니한 법입니다. 때론 피하려 할수록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니까요.

    인간으로의 변신

    한양 도성 새벽, 노저승사자는 처음으로 인간의 몸을 얻었습니다. 차가운 공기가 폐로 들어오는 순간, 그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천 년 만에 처음 느끼는 호흡이었습니다.

    "이것이 숨쉬는 것이란 말인가..." 가슴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며 그는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이제까지 수많은 영혼을 거두며 보았던 마지막 숨결, 그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싶었습니다.

    갑자기 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습니다. 처음 느끼는 허기였습니다. 천 년 동안 단 한 번도 배고픔을 느낀 적 없었던 그는 당황했습니다.

    "이래서 인간들이 마지막 순간에도 밥을 찾았던 것인가..." 수많은 임종을 지켜보며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하나둘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발걸음을 떼는 것도 새로웠습니다. 이제까지는 허공을 떠다녔지만, 이제는 땅을 딛고 걸어야 했습니다. 첫 걸음을 떼자 그만 넘어질 뻔했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던가." 그의 중얼거림에는 새로운 깨달음이 묻어났습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기적 같은 순간들이었음을.

    아침의 발견

    한양 시장에 아침이 찾아왔습니다. 노저승사자는 생전 처음 맡아보는 음식 냄새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죽을 파는 노점 앞에서 그의 발걸음이 멈췄습니다.

    "처음 보는 손님이구려. 한 그릇 드시겠소?" 주인장의 말에 그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천 년 동안 단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을 앞에 두고, 그의 손이 떨렸습니다.

    첫 숟가락을 입에 넣는 순간, 그의 눈이 커졌습니다. "이것이 맛이란 것인가..." 평생 수많은 이들이 마지막 순간에 그리워하던 그 맛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시장은 더욱 북적이기 시작했습니다. 생선을 파는 아낙의 외침, 과일을 고르는 사람들의 흥정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였습니다. 그동안 그저 소음으로만 여겼던 것들이 이제는 삶의 활기로 들렸습니다.

    "이보시오, 이 감 좀 드시고 가시오." 과일 장수 할머니가 건넨 감 하나에 그는 또다시 놀랐습니다. 낯선 이에 대한 이 따뜻한 마음이 인간의 정이란 것이구나.

    이제까지 그가 본 것은 늘 삶의 마지막 순간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시장 한복판에서 그는 처음으로 삶의 시작과 중간을 보고 있었습니다.

    우연한 만남

    시장 구경을 마치고 돌아서는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온 공에 노저승사자가 넘어질 뻔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그를 붙잡아주었습니다.

    "괜찮으신가요?" 순간 노저승사자의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그를 붙잡아준 사람은 다름 아닌 내일 아침 그가 마지막으로 데려가야 할 영혼의 주인, 스물셋 송하정이었습니다.

    "저... 저기..." 천 년 동안 한 번도 더듬은 적 없는 말이 더듬어졌습니다. 송하정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르신께서는 이 근처 분이신가요?"

    대답을 피하려는 순간, 송하정의 가게 앞에서 아이들이 또다시 공을 찼습니다. "아이고, 저 녀석들 또 장난을 치는구나. 어르신, 잠시 우리 가게에서 차라도 한잔 드시고 가시지요."

    거절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저승사자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송하정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의 가게는 작은 서책방이었습니다. 책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마치 운명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사실 내일이면 이 가게를 떠나게 됩니다.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더 큰 서책방을 열기로 했거든요." 송하정이 차를 내오며 말했습니다. 그의 눈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노저승사자는 알고 있었습니다. 내일 새벽, 이 청년이 마주할 운명을... 그리고 그 운명을 집행해야 할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함께하는 시간

    서책방 안에서 시간은 천천히 흘렀습니다. 송하정은 책 한 권을 꺼내 노저승사자에게 건넸습니다. "이 책은 제가 가장 아끼는 책입니다. 어린 시절 병석에 누워있을 때, 어머니가 읽어주셨지요."

    노저승사자는 책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가 아팠던 그때, 자신이 그의 어머니의 영혼을 거두러 왔었다는 것을 기억해냈기 때문입니다.

    "그때 어머니는 가시면서 약속하셨어요. 내가 잘 자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책을 전하게 되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송하정의 목소리에는 그리움이 묻어났습니다.

    점심때가 되자 송하정은 노저승사자와 함께 국밥을 나누었습니다. "어르신께서는 마치 제 할아버지 같으시네요. 이렇게 편한 것이 신기합니다."

    그들은 오후 내내 책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송하정은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고, 노저승사자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이렇게 따뜻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일이면 더 큰 서책방을 열게 됩니다. 어르신께서도 꼭 와주세요." 송하정의 초대에 노저승사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서는 처음으로 자신의 임무에 대한 의문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해질녘의 고민

    해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노저승사자는 송하정의 서책방 처마 밑에 앉아 붉어져가는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얼마 후면 저승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그리고 내일이면...

    "어르신, 이 책 한 번 보세요." 송하정이 오래된 책 한 권을 들고 나왔습니다. "언젠가 제가 아플 때, 어머니께서 마지막으로 읽어주신 책입니다.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예요."

    노저승사자의 손이 떨렸습니다. 천 년 동안 수많은 영혼을 거두면서도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그의 가슴을 흔들었습니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어요." 송하정의 말에 노저승사자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저녁 노을이 서책방 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먼지 낀 책들 사이로 비치는 붉은 빛이 마치 피처럼 보였습니다. 노저승사자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손으로 내일 아침, 이토록 밝은 영혼을 거둬야 한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그를 괴롭게 했습니다.

    "저는 항상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믿어왔어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어딘가에서 모든 것이 이어져 있을 거라고..." 송하정의 말은 노저승사자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특별한 저녁

    저녁이 깊어가자 송하정은 노저승사자를 작은 주막으로 이끌었습니다. "어르신, 제가 마지막으로 이 동네 사람들과 술 한 잔 하려고 했는데, 함께해주시겠어요?"

    처음 마시는 술이었습니다. 천 년 동안 수많은 이들이 마지막 순간에 그리워하던 막걸리 한 사발이 노저승사자의 앞에 놓였습니다.

    "어르신은 마치 저의 또 다른 아버지 같으세요." 송하정의 말에 노저승사자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천 년 만에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이었습니다.

    주막에는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모두가 송하정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주었습니다. "하정아, 네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셨을까..."

    노저승사자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데려간 영혼들이 남기고 간 것들, 그것은 단순한 슬픔이 아닌 깊은 사랑과 그리움이었다는 것을.

    술이 몇 순배 돌자 노저승사자의 마음도 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웃음이 나왔고, 처음으로 누군가의 손을 잡았으며, 처음으로 삶의 온기를 느꼈습니다.

    "내일, 새로 열 서책방에도 꼭 오셔야 해요." 송하정의 말에 노저승사자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술잔을 비우며 쌓여가는 죄책감을 삼켰을 뿐입니다.

    진실의 순간

    달이 떴을 때, 노저승사자와 송하정은 한강 둑길을 걸었습니다. 술기운이 조금 올랐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았습니다.

    "어르신, 왜 하필 오늘 저를 만나러 오신 건가요?" 송하정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노저승사자는 걸음을 멈췄습니다.

    "네가... 어떻게 알았지?" 노저승사자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어르신의 눈빛이 마치 제 어머니의 마지막 날, 그때와 같았거든요.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듯한 그런 눈빛이었어요."

    달빛 아래 두 사람이 마주 섰습니다. 노저승사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나는... 저승사자다. 내일 아침, 네 영혼을 데리러 와야 하는..."

    송하정의 얼굴에는 놀라움보다는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를 제게 주신 거군요. 마지막 선물처럼..."

    "천 년을 살며 처음으로... 내 임무가 이토록 힘겨웠다." 노저승사자의 눈에서 처음으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괜찮습니다. 어르신 덕분에 오늘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하루가 되었으니까요." 송하정의 미소는 달빛보다 더 환했습니다.

    시간의 무게

    밤이 깊어갔습니다. 저승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노저승사자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송하정은 여전히 그의 곁에서 걸음을 함께했습니다.

    "저는 알고 있었어요. 오늘이 마지막이 될 거란 걸..." 송하정이 불현듯 말을 꺼냈습니다. "어젯밤 꿈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뵈었거든요. 어머니께서 내일 만나자고 하셨어요."

    노저승사자는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천 년 동안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새 서책방을 열기 위해 모은 돈도, 이제는 동생의 학비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송하정의 말에는 담담함이 묻어있었습니다.

    멀리서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노저승사자의 몸이 서서히 투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곧 저승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어르신... 아니, 저승사자님. 내일 아침에 다시 뵐 수 있을까요?" 송하정의 마지막 질문에 노저승사자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달빛 아래 흐릿해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마지막 결단

    저승으로 돌아온 노저승사자는 생사부를 펼쳤습니다. 송하정의 이름 옆에는 여전히 '다음날 새벽, 강물에 빠져 죽음'이라는 운명이 적혀있었습니다.

    "천 년 동안 한 번도 어기지 않은 법도였건만..." 노저승사자는 자신의 붉은 도장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도장을 찍는 순간, 그 운명은 확정될 것입니다.

    그때 송하정과 함께했던 하루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첫 식사의 맛, 책방에서의 대화, 술자리의 따뜻함... 그리고 그가 보여준 담담한 미소.

    "잠깐!" 도장을 찍으려는 순간, 한 저승사자가 달려왔습니다. "송하정의 생사부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의 동생이 내일 아침 강물에 빠질 운명이 새롭게 기록되었습니다."

    노저승사자는 순간 깨달았습니다. 송하정은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도 동생의 학비를 위해 돈을 남기려 했던 것. 그리고 그 동생을 구하기 위해 강물로 뛰어들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구나..." 노저승사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한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라대왕의 심판

    저승법정이 열렸습니다. 염라대왕 앞에 무릎을 꿇은 노저승사자의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천 년 동안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던 자가, 마지막 임무에서 이럴 줄이야..." 염라대왕의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묻어났습니다.

    노저승사자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대왕님, 제가 천 년 동안 알지 못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죽음이란... 단순히 생명의 끝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희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였습니다. 송하정의 생사부가 갑자기 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습니다. 순수한 희생의 죽음이 기록될 때만 나타나는 현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자네가 휴가를 받은 것도, 송하정을 만난 것도, 모두 하늘이 정한 일이었나 보구나."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습니다.

    "이제 이해하겠소. 왜 제가 마지막 임무에서 인간의 하루를 선물 받았는지... 진정한 죽음의 의미를 알게 하시려는 뜻이었던 거죠."

    새로운 시작

    저승의 시간이 멈춘 듯했습니다. 염라대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노저승사자에게 다가왔습니다.

    "천 년 동안 죽음만을 보아온 자네가 마침내 삶의 의미를 깨달았구나. 이제 자네에게 새로운 임무를 내리겠노라."

    노저승사자의 검은 도포가 하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부터 자네는 생사를 관장하는 수명신이 되어 인간들의 운명을 지켜주게 될 것이야."

    그날 아침, 송하정은 강물에 뛰어들어 동생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둘 다 살아났습니다. 강가에 하얀 도포를 입은 노인이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르신..." 송하정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노수명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이제 네 새로운 서책방에서 많은 이들에게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거라."

    세월이 흘러 송하정의 서책방은 한양에서 가장 큰 서책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이상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달 밝은 밤이면 하얀 도포를 입은 노인이 찾아와 책을 읽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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