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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 노인에게 건넨 선물

황금 인생 21 2025. 11. 14. 19:4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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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승길에서 돌아온 노인: 저승사자 노인에게 건넨 선물

    태그 (2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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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300자 내외)

    평생을 악착같이 모으기만 했던 한 노인. 그가 마침내 죽어 저승길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저승사자가 그를 다시 이승으로 돌려보냅니다. 단, 사흘의 시간을 주면서 말입니다. 저승 문턱에서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저승사자가 그에게 건넨 '깨달음의 선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죽음의 강을 건너다 돌아온 노인의 기적 같은 사흘. 그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그 감동적인 이야기가 지금 펼쳐집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한양 최고의 지독한 구두쇠, 최 진사.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엽전 한 푼 손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가 저승사자에게 이끌려 황천길을 걷다, 자신의 삶이 얼마나 텅 비어 있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저승사자는 알 수 없는 실수를 이유로, 그에게 단 '사흘'의 시간을 허락합니다. 저승길에서 돌아온 노인. 과연 그는 남은 사흘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를 되찾게 된 한 노인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입니다.

    ※ 지독한 구두쇠의 임종

    옛날 옛적, 조선의 수도 한양 땅에 '최 진사'라 불리는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젊어서부터 악착같이 돈을 모아, 만석꾼 소리는 못 들어도 천석꾼 소리는 들을 만큼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넓은 기와집에 수십 명의 노비를 거느렸고, 성 안팎으로 그가 가진 논밭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우러러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독종 영감', '자린고비 진사'라며 손가락질하기 바빴지요. 그는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지독한 구두쇠였습니다. 섣달그믐 칼바람이 불어도, 행여 땔감이 축날까 봐 늙은 몸에 솜옷 하나를 더 껴입을지언정, 아랫목에 불을 더 지피는 법이 없었습니다. 자식이라고는 아들 하나가 있었으나, 그 아들은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객지에서 병을 얻어 일찍 죽고, 그저 마음씨 착한 며느리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 둘만 남아 늙은 최 진사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최 진사에게 며느리는 그저 쌀 축내는 식구였고, 손주들은 시끄럽게 뛰어다니며 정신을 사납게 하는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그의 유일한 낙이자 기쁨은, 해가 진 뒤 사랑채에 홀로 앉아 묵직한 궤짝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그 궤짝 안에는 그가 평생 모은 엽전 꾸러미와 땅문서, 노비 문서, 그리고 그가 닳고 닳도록 들춰보던 두꺼운 재물 장부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는 등잔불 기름이 아까워 달빛에 의지해, 차가운 손으로 장부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오늘 들어온 이자와 내일 거둬들일 소작료를 계산하는 것만이 유일한 행복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도 세월은 비껴가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여든을 훌쩍 넘긴 최 진사는, 그해 겨울 지독한 호흡기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콜록 콜록! 에 에 퉤!" 마른기침이 멎지를 않았고, 한때 쩌렁쩌렁했던 목소리는 쇳소리가 되어 갈라졌습니다. 며느리가 밤낮으로 약을 달여 바쳤지만, 그는 약이 쓰다며 사발을 밀어내기 일쑤였습니다. "이 이 약재가 얼마짜리인 줄 아느냐! 네 이년! 내 돈을 물 쓰듯 하는구나! 콜록!" 며느리는 그저 눈물만 훔칠 뿐이었습니다. 병세는 날로 악화되었습니다. 그의 의식은 점점 희미해졌지만, 그럴수록 그는 궤짝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무도 믿지 못하여, 자신의 잠자리 머리맡에 그 궤짝을 가져다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앙상하게 마른 손으로, 궤짝 위를 덮은 재물 장부를 마치 어린아이의 이불을 만지듯, 끊임없이 쓸어만 보았습니다. 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물러가고, 며느리와 어린 손주들이 머리맡에서 "아버님!", "할아버님!" 하고 목놓아 울던 그날 밤. 최 진사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그의 눈은 이미 초점을 잃었으나, 손은 그 앙상한 손은 여전히 재물 장부를 꽉 움켜쥔 채였습니다. "내 내 돈 내 장부"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아귀에서 힘이 탁 풀리며, 장부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한양 최고의 구두쇠, 최 진사. 그렇게 그는 평생을 바쳐 모은 재물 한 푼 가져가지 못한 채, 차가운 안방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습니다.

    ※ 황천길의 동행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방금 전까지 온몸을 짓누르던 기침과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솜이불의 감촉도, 며느리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지독한 한기(寒氣)가 뼛속까지 스며들었습니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몸이 몸이 이토록 가벼울 수가" 최 진사가 어리둥절하여 눈을 떴습니다. 그가 누워있던 안방이 아니었습니다.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발밑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여 여봐라! 춘삼아! 며늘아! 아무도 없느냐!" 그가 평생의 습관처럼 호통을 쳤으나, 제 목소리가 마치 물에 젖은 솜처럼, 힘없이 퍼져나갔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저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아주 낮고도 차가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습니다. "최 진사. 아니 망자(亡者) 최 아무개." 최 진사가 화들짝 놀라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모를 한 사내가, 그를 무표정하게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사내는 검은 도포에 챙이 넓은 갓을 쓰고 있었는데, 그 얼굴이 어둠에 잠겨 마치 오래된 종이처럼 하얗게 보였습니다. 그는 손에 두루마리 책 한 권과,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검은 쇠사슬을 들고 있었습니다. "네 네놈은 누구냐!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내 이름은 필요 없다. 나는 그저 너를 데리러 온 자. 명부(名簿)에 적힌 대로, 네놈의 명(命)이 오늘부로 다하였으니, 썩 일어나 길을 가자." 저승사자였습니다. 책에서나 보던, 그 무시무시한 저승의 사자가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서 있었습니다. 최 진사는 그제야 자신이 죽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습니다. "아 안 돼 이 이럴 수는 없다! 나는 나는 아직 죽을 수 없다! 내 돈! 내 장부! 그것을 그것을 가져와야 한단 말이다!" 그가 미친 듯이 뒤를 돌아, 자신이 온 길을 찾아보려 했지만, 그곳에는 어둠과 안개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승사자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쯧쯧. 인간이란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까지, 저 부질없는 종이 쪼가리와 쇠붙이를 찾는구나." 저승사자가 쇠사슬을 '철커덕' 하고 내밀었습니다. 쇠사슬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최 진사의 손목을 옭아맸습니다. '악!' 소리조차 지를 수 없는, 영혼까지 얼어붙는 듯한 차가움이었습니다. "가자. 갈 길이 멀다." 저승사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최 진사를 끌고 어둠 속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길이,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황천길'이었습니다. 황천길은 지독히도 외롭고 쓸쓸한 길이었습니다.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없었고, 새 우는소리,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안개 낀 어둠 속을, 수많은 망령들이 저승사자에게 이끌려 묵묵히 걸어갈 뿐이었습니다. 최 진사는 평생 비단신만 신고 다녔던 자신의 발이, 이제는 맨발로 날카로운 돌부리를 밟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울부짖었습니다. "사자님! 사자님! 제발 제발 한 번만 돌아가게 해주시오! 내 평생 모은 재산이 있소! 그 절반을 아니, 전부를 드리리다! 제발!" 저승사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저 차갑게 말했습니다. "네놈의 엽전 한 푼이, 이 저승길에서 무슨 소용이며, 네놈의 땅문서 한 장이, 염라대왕의 분노를 막아줄 것 같으냐. 닥치고 걸으라." 최 진사는 절망했습니다. 평생을 목숨처럼 여겼던 그의 재물이, 이 저승길에서는 한낱 휴지 조각만도 못하다는 것을 너무도 늦게 깨달아 버린 것입니다.

    ※ 저승의 강가에서

    얼마나 걸었을까. 칠흑 같던 어둠 저편에서, 무언가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쏴아 쏴아' 그것은 물소리였습니다. 하지만 이승에서 듣던 맑은 냇물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수천수만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울부짖는 듯한, 구슬프고도 음산한 소리였습니다. 안개가 걷히고, 거대한 강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강물은 검붉은 빛을 띠고 있었고, 그 안에서는 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저 저것은?" 최 진사가 공포에 질려 물었습니다. 저승사자가 무심하게 대답했습니다. "요하(遼河). 너희 인간들이 '삼도천'이라 부르는,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강이다." 강가에는 최 진사처럼, 저승사자에게 이끌려 온 수많은 망령들이 끝도 없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강의 흉흉한 기세에 눌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 저편에서는 낡은 나룻배 한 척이 유유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최 진사는 그 순간, 잊고 있던 마지막 희망, 그의 '재물'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래 뱃사공에게 뱃사공에게 뇌물을 주면 혹시 나를 다시 이승으로 데려다줄지 모른다!' 그는 저승사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습니다. "사자님! 사자님! 제발 제발 부탁이오! 나를 한 번만 이승에 돌려보내 주시오! 내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그는 쇠사슬에 묶인 손을 들어, 자신의 품을 미친 듯이 더듬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비단옷 속에는, 평생을 품고 다녔던 엽전 한 푼, 은자 한 톨도 없었습니다. "없 없어! 내 돈이 내 장부가 어디 갔느냐! 내 장부를 돌려다오!" 최 진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생을 모으고, 아끼고, 집착했던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자신의 존재 이유였던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 전체를 부정당한 기분이었습니다. 저승사자는 그런 최 진사를, 마치 길가의 돌멩이를 보듯 무심하게 내려다보았습니다. "네놈의 장부? 네놈의 돈? 그것이 그리도 중요하더냐." "그 그것은 내 평생이다! 내 피와 땀이다! 그것 없이는 나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최 진사가 절규했습니다. 저승사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 한숨은, 이 황천길의 바람보다도 더 차갑고 쓸쓸했습니다. "쯧짯. 너희 인간들은 어찌 그리도 어리석은가. 손에 쥔 것은 '재물'이라 부르며 목숨처럼 아끼고, 정작 네놈이 평생 동안 쌓아 올린 '업(業)'은 어찌 그리도 하찮게 여기느냔 말이다." "업? 그게 그게 무엇이오?" "네가 진정 네놈의 '장부'를 보고 싶으냐. 좋다. 이승의 그 종이 쪼가리 장부가 아닌 네놈의 영혼에 새겨진 진짜 '삶의 장부'를 똑똑히 보여주마." 저승사자는 그렇게 말하며, 쇠사슬처럼 차가운 손을 들어 최 진사의 이마를 짚었습니다.

    ※ 깨달음의 선물

    저승사자의 차가운 손가락이 이마에 닿는 순간, 최 진사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검붉은 요하의 강물도, 울부짖는 망령들도, 차가운 저승사자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익숙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그가 방금 전까지 누워있던, 그의 안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그는 방 한구석에 서 있었고, 방 한가운데에는 '자기 자신'이, 하얀 소복을 입은 채 뻣뻣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서는 며느리와 아들(일찍 죽은 아들의 환영일까, 아니면 사위일까, 아니, 며느리였다), 그래, 며느리와 어린 손주들이 서럽게 울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아버님 아이고!" 며느리는 울고 있었지만, 그 울음소리에는 슬픔만큼이나 깊은 '안도감'이 서려 있음을, 영혼이 된 최 진사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며느리가 잠시 울음을 그치고, 어린 아들의 어깨를 다독였습니다. "그래 이제 이제 고생 끝났다 네 할아버님은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게다" 그 목소리는, 시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지긋지긋한 시집살이와 구두쇠 영감의 등쌀에서 벗어난 해방감에 가까웠습니다. 최 진사는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바로 그때, 문이 열리고 동네 사람들이 조문을 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 어디에도 슬픔은 없었습니다. "쯧쯧 저 독종 영감 죽어서도 저 궤짝은 끌어안고 가려 했나 보군." "그러게 말일세. 저 많은 재산, 이제 며느리하고 손주들은 밥이라도 제대로 먹게 되겠구먼." "글쎄 저 영감 성질에 어딘가에 꽁꽁 숨겨두고, 저승에서도 며느리 못살게 굴지" 그들은 최 진사의 시신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재산을 이야기하고, 그를 조롱하고 있었습니다. 최 진사는 분노에 몸이 떨렸습니다. '이 이놈들! 감히!'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아무에게도 닿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때, 광경이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자신의 으리으리한 기와집이 아닌,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가난한 '박 서방'의 초가집이었습니다. 박 서방은 최 진사의 논을 부치던 가난한 소작농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최 진사와 같은 날, 지병으로 세상을 뜬 것이었습니다. 박 서방의 집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마당에는 조문객이라고 해봐야, 동네 가난뱅이 몇몇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의 풍경은, 최 진사의 집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박 서방의 아내와 자식들은, 정말 목이 터져라, 가슴을 치며 울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여보! 이 사람아! 우리만 두고 어찌 어찌 먼저 갔소!" "아부지! 아부지! 우리 아부지!" 그들의 울음에는, 안도감이나 해방감이 아닌, 뼈를 깎는 듯한 진짜 '슬픔'과 '상실감'이 담겨 있었습니다. 한 이웃이, 쌀 한 줌도 안 되는 조의금을 내밀며 박 서방의 아내 손을 잡았습니다. "힘내게 박 서방 참 좋은 사람이었지 지난가을에, 자기 먹을 것도 없으면서 나한테 옥수수 한 자루를 쥐여주던 그 따뜻한 손을 잊을 수가 없네" 또 다른 이가, 막걸리 한 사발을 따르며 울먹였습니다. "그렇고말고 우리 애가 아플 때, 자기 일처럼 업고 읍내 의원에게 달려가 주지 않았나 그 은혜를 은혜를 갚지도 못했는데" 최 진사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평생, 단 한 번도 남에게 옥수수 한 자루, 따뜻한 손길 한 번 건네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평생 '재물 장부'만 채웠을 뿐, 그가 지금 보고 있는 저 '마음의 장부'에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기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최 진사는 자신의 텅 비어버린 '삶의 장부'를 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난생처음으로 통곡했습니다.

    ※ 저승의 실수

    "이제 알겠느냐."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최 진사가 고개를 들자, 눈물겨운 박 서방의 장례식 풍경은 간데없고, 다시 검붉은 요하의 강가가 눈앞에 펼쳐졌다. 저승사자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이 그것이 내 장부란 말이오?" 최 진사의 목소리는 완전히 기어들어가 있었다. 그는 평생 쌓아 올린 자신의 부(富)가, 이 저승에서는 박 서방의 옥수수 한 자루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래. 네놈이 이승에서 쌓은 '업(業)'의 장부다. 보아하니 네놈의 장부는 아주 깨끗하구나. 선(善)을 베푼 기록이 단 한 줄도 적혀있지 않아." 저승사자의 말은 비수처럼 최 진사의 영혼에 박혔다.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평생의 자부심이었던 '부(富)'가, 이제는 평생의 '수치(羞恥)'가 되어 그를 짓눌렀다. 이제 그는 아무런 미련도 없었다. 이대로 심판을 받고, 지옥 불에 떨어져도 할 말이 없었다. "가 가십시다, 사자님 내 내가 죄인이오" 그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쇠사슬에 이끌려 강가로 발을 내디디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흐음?" 저승사자가, 손에 들고 있던 명부를 펼쳐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무 무엇이 말이오?" "네놈의 명부 분명 네놈의 명(命)이 오늘 밤 자시(子時)에 다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저승사자는 하얀 손가락으로 명부에 적힌 글자를 꼼꼼히 짚어 내려갔다. "아 아 이럴 수가" 저승사자의 무표정하던 얼굴에, 아주 희미하게 '당황'의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무 무슨 일이오! 사자님!" "실수다." "예?" "저승의 실수다. 네놈과 이름이 같은 저 아랫마을의 최 진사 놈을 데려왔어야 했는데 그놈은 한 시진(時辰) 뒤에 명(命)이 다하는 놈이었다. 명부가 꼬였구나." 최 진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 그렇다면 나는 나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니었단 말이오?" "아니다." 저승사자는 냉정하게 말을 잘랐다. "네놈의 명도 오늘이 마지막인 것은 맞다. 허나, 정확히는 오늘 밤 자시가 아니라 사흘 뒤, 술시(戌時)였구나." "사 사흘이라니! 그렇다면 나에게는 사흘의 시간이!" 최 진사의 눈이, 꺼졌던 등잔불처럼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저승사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했다. "사자님! 사자님! 보셨지 않소! 내 장부는 내 장부는 텅 비어있소! 이대로는 이대로는 억울해서 못 가겠소! 제발 제발 그 사흘 그 사흘만!" 저승사자는 귀찮다는 듯, 아니,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다는 듯, 굳은 표정으로 최 진사를 내려다보았다. "저승의 법도는 엄격하다. 한번 황천길에 오른 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하지만 실수가 아니오! 사자님의 실수가!" "시끄럽다!" 저승사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황천길의 바람이 멈추고, 요하의 강물이 출렁였다. "허나 명부의 기록이 그러하니 법도를 따를 수밖에. 네놈에게 남은 시간은 정확히 사흘이다." 저승사자가 최 진사를 옭아맸던 쇠사슬을 '철커덕' 하고 풀었다. 자유로워진 손목은, 쇠사슬의 한기만큼이나 차가웠다. "가 가도 되는 것이오?" "가라."

    ※ 기적적인 회생

    최 진사가 멍하니 서 있자, 저승사자가 그의 등을 거칠게 떠밀었다. "가서 네놈의 그 텅 비어버린 '장부'에 뭐라도 한 줄 채워보거라. 그것이 네놈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리고 저승사자는 무서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단, 명심하라. 정확히 사흘 뒤, 술시(戌時) 정각이다. 그때는 네놈이 천 리(千里) 땅끝에 숨어있든, 부처의 발밑에 매달려있든 내가 반드시 다시 데리러 올 것이다. 그때도 네놈의 장부가 텅 비어있다면 네놈은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 말을 마친 저승사자는, 안개 속으로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사자님! 사자님!" 최 진사가 그를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왔던 어두운 길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사흘 나에게 사흘이 주어졌다! 늦지 않았다 아직 늦지 않았어!'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흡!" 숨이 턱 막히는 기분과 함께, 지독한 통증이 온몸을 다시 짓눌렀다. 뼛속까지 스며들던 황천길의 한기는 사라지고, 대신 묵직한 솜이불의 무게와, 지독한 약 냄새, 그리고 며느리와 손주들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왔다. "콜록 콜록! 커헉!" 최 진사가 격렬하게 기침을 하며 눈을 떴다. "으 으아아아악!" 가장 먼저 그를 발견한 것은, 그의 머리맡에서 곡(哭)을 하던 며느리였다. 며느리는, 방금 전까지 숨이 멎어 차갑게 식어가던 시아버지가,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기침을 해대자, 혼비백산하여 뒤로 나자빠졌다. "귀 귀 귀신이다! 아버님께서 귀신이 되셨다!" "할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살아났어! 으아앙!" 어린 손주들까지 자지러지게 울며 방구석으로 도망쳤다. 최 진사는 아직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앙상하고 주름진, 하지만 분명히 살아있는 따뜻한(아니, 미지근한) 피가 도는 자신의 손이었다. '돌아왔다 내가 내가 정말로 돌아왔다!' 그는 쇳소리가 나는 목소리로, 며느리와 손주들을 불렀다. "며 며늘아 아가 내 손주야 무서워 무서워 말거라 나 나다! 네 시아비고 네 할아비다!" 하지만 이미 공포에 질린 며느리와 손주들은, 방문을 부서져라 열고 마당으로 도망쳐 버렸다. "아 안 돼 얘들아!" 최 진사는 그들을 붙잡으려, 평생 처음으로 자신의 힘으로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일어나야 한다 나에게는 사흘밖에 시간이 없단 말이다!'

    ※ 마지막 사흘

    최 진사는,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아니, 수십 년을 굶은 사람처럼 후들거리는 다리로, 덜덜 떨리는 팔로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비틀거리며, 방문을 짚고 마당으로 나갔다.
    차가운 밤공기가 그의 폐부를 찔렀다. 그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실감했다.
    며느리와 손주들은, 그가 정말 귀신인 줄 알고, 장독대 뒤에 숨어 돌부처처럼 굳어 벌벌 떨고 있었다.
    "얘 얘들아 내 내 며늘아 나 귀신 아니다 정말이다"
    최 진사는, 평생 단 한 번도 자식들에게, 아니, 그 누구에게도 지어본 적 없는 가장 온화하고 미안하고 절박한 표정으로, 그들을 향해 앙상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는 그 평생 꼿꼿하기만 하던 그 '진사'라는 체면으로 똘똘 뭉쳤던 그가
    며느리와 손주들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의 뻣뻣하던 등이 굽어지고 그의 이마가 차갑고 거친 마당 바닥에 닿았다.
    "아 아버님! 이 이러지 마십시오! 제발!"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그 기괴한 행동에 더욱더 기겁을 했다.
    "아가 며늘아 이 이 못난 시아비가 내가 내가 잘못했다. 평생 너를 고생만 시켰구나 저승 문턱에서 너의 그 안도의 한숨 소리를 들었다 내가 죽일 놈이다 용서 용서해 다오"
    최 진사는, 마른 땅에 이마를 찧으며 진심으로 사죄했다. 피눈물인지 그냥 눈물인지 모를 뜨거운 것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며느리는 그제야 시아버지가 귀신이 아니라 정말로 '달라져서' 돌아왔음을 어렴풋이 깨닫고, 엉엉 울며 그를 부축했다.
    "아버님 어서 어서 방으로"
    그날부터, 최 진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며느리에게 가장 먼저 명했다.
    "아가! 저 저기 내 머리맡에 궤짝이 궤짝이 있느냐?"
    며느리는, '역시나 도로 재물 생각이 나신 건가' 싶어, 가슴이 철렁했지만 최 진사의 다음 말에 귀를 의심했다.
    "그 그 궤짝을 당장 당장 이 마당으로 끌어내어 불을 불을 지펴라!"
    "예? 아버님! 그 그것은 아버님의 평생이!"
    "시끄럽다! 어서 어서 불을 지피라 하라! 그 종이 쪼가리들 당장 태워버려야 한다!"
    최 진사는 며느리가 벌벌 떨며 가져온 궤짝에서, 자신이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던 재물 장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잠시 그것을 바라보더니 망설임 없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집어던졌다.
    종이가 타들어 가며, 그의 평생의 집착과 옹졸함이 검은 재가 되어 밤하늘로 날아갔다. 그는 그 불빛을 보며 난생처음으로 가벼움을 느꼈다.
    "그리고 저 뒤주 뒤주를 열어라! 쌀을 쌀을 모조리 퍼내어 저 담 너머 박 서방네 초상집에 보내거라. 넉넉히 아주 넉넉히 보내서 조문객들 배불리 먹이고도 남게 전하거라 그리고 내 이름으로 가장 좋은 비단 수의(壽衣)도 한 벌 지어 보내고"
    며느리는,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도 신들린 사람처럼 시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했다.
    최 진사의 집 뒤주가 열리고, 쌀이 산더미처럼 쏟아져 나와 박 서방의 초상집으로 향했다. 동네 사람들은 해가 서쪽에서 떴다며, 최 진사 영감이 죽었다 살아나더니 미친 게 아니냐며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최 진사의 남은 사흘은 그렇게 폭풍처럼 흘러갔다.
    그는 더 이상 안방에 누워있지 않았다. 그는 며느리가 정성껏 끓여준 쌀미음을 남김없이 먹고 기운을 차려, 마당에 볕이 잘 드는 툇마루에 나와 앉았다.
    그는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두 손주를 불러 무릎에 앉히고 그 까칠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 내 강아지들 할애비가 그동안 못되게 굴어서 미안했다 이 이 과자라도 먹으려무나"
    손주들은, 처음에는 어색해하고 무서워했지만, 이내 따뜻해진 할아버지의 품이 좋은지, 그 품에 안겨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이틀째, 그는 남은 땅문서와 노비 문서를 모두 가져오라 하여, 집안의 노비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복순아 마당쇠야 너희는 오늘부로 모두 자유다. 이 문서는 불태울 것이니 각자 먹고 살 작은 땅이라도 조금씩 나눠 줄 터이니 가서 부디 행복하게 살아라"
    그는 처음으로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노비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다가, 이내 최 진사 앞에 엎드려 울며불며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마지막 사흘째 되는 날.
    해는 저물어 서산으로 넘어가고 저승사자가 말한 술시(戌時)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최 진사는 며느리에게, 자신을 깨끗이 목욕시켜 달라 부탁했다.
    그리고 가장 깨끗하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안방에 조용히 단정하게 앉았다.
    그는 며느리와 손주들의 손을 꼭 잡았다.
    "아가 고마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그는 평생 처음으로 자신의 가족들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되었다 이제 가도 여한이 없겠다 내 장부에 비록 석 줄 뿐이지만 그래도 빈 종이는 아니니"
    며느리가 눈물을 흘리며, "아버님 아버님" 하고 불렀을 때.
    최 진사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는 사흘 전, 황천길에서 보았던 그 검은 도포의 저승사자가 방 한구석에 묵묵히 서 있었다.
    이번에는 쇠사슬을 들고 있지 않았다.
    저승사자는, 최 진사가 사흘간 채워 넣은 그 보이지 않는 '삶의 장부'를 읽어 내린 듯 아주 희미하게 정말 알아볼 수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최 진사는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저승사자를 따라 두 번째 황천길을
    이번에는 아주 가볍고 따뜻하고 평화로운 발걸음으로
    나섰다고 한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들려드린 '저승길에서 돌아온 노인'의 이야기, 어떠셨나요?
    평생을 움켜쥐는 데만 급급했던 최 진사는, 죽음의 문턱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의 장부'가 텅 비어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승사자가 그에게 건넨 '사흘'이라는 시간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요?

    우리의 '삶의 장부'에는 과연 무엇이 기록되고 있을까요?
    재물이나 명예가 아닌, 박 서방의 '옥수수 한 자루'와 같은 따뜻한 마음의 기록을 우리도 늦기 전에 채워 넣어야겠습니다.

    재미있게 들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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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저희는 더욱 흥미진진한 옛이야기를 가지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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