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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승사자 실수로 술주정뱅이 대신 데려간 스님 『어우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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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저승사자도 사람, 아니 귀신인지라 가끔은 어이없는 실수를 하곤 합니다. 이름이 똑같다는 이유로 수명이 다한 마을의 술주정뱅이 대신, 깊은 산속에서 평생 불도를 닦던 엉뚱한 스님이 저승사자의 명부에 적혀 끌려가고 말았는데요! 염라대왕 앞에서 밝혀진 기막힌 진실과,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기 위해 벌어지는 좌충우돌 이야기. 따뜻한 이불속에서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기묘한 저승 야담, 지금 시작합니다.

    ※ 1: 이름이 같은 두 사내, 극과 극의 엇갈린 삶

    깊은 산세가 병풍처럼 사방을 아늑하게 둘러싸고, 그 한가운데로 사철 마르지 않는 맑은 개울물이 굽이쳐 흐르는 평화롭고 고즈넉한 마을, 최승골. 겉보기에는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를 바 없이 평온해 보이는 이 산골 마을에는 참으로 기묘하고도 얄궂은 우연이 하나 숨어 있었다. 바로 이름도, 태어난 해와 달도 똑같은 두 명의 사내가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이름은 모두 '최달호'였다. 하지만 불리는 이름만 같을 뿐, 두 사내가 살아가는 모습은 하늘과 땅, 아니 눈부신 빛과 칠흑 같은 어둠의 차이만큼이나 극명하게 엇갈려 있었다.

    산 아래 마을 저잣거리 한가운데 허름한 초가집에 사는 최달호는, 그야말로 동네의 썩은 골칫거리이자 살아 숨 쉬는 재앙이나 다름없는 천하의 구제 불능 술주정뱅이였다. 해가 중천에 떠서 정수리를 뜨겁게 달굴 때까지 퀴퀴한 방구석에 처박혀 천장이 떠나가라 코를 골던 그는, 눈에 낀 찐득한 눈곱을 떼어내기도 전에 퀭하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주막부터 찾았다. 뒤축이 다 닳아빠져 발가락이 튀어나온 낡은 짚신을 질질 끌며 주막 평상에 털썩 주저앉아, 시큼한 막걸리 한 사발을 단숨에 들이켜 타는 목구멍을 지져야만 비로소 그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농사일은 이미 수년 전에 남의 일처럼 뒷전으로 미뤄둔 지 오래였고, 손발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부르트도록 남의 집 밭을 매고 궂은 품팔이를 하며 겨우겨우 쌀자루를 채워오는 불쌍한 아내의 피 같은 돈마저 몰래 훔쳐내어 노름판과 술값으로 탕진하기 일쑤였다.

    그날 아침에도 아내가 눈물바람으로 남편의 바지춤을 붙잡고 매달렸다.

    "아이고, 영감! 제발 정신 좀 차리시오! 어제 내가 윗마을 박 부자네서 콩밭을 매고 받아온 그 엽전 꾸러미, 당장 내놓으시오! 며칠을 굶은 우리 식구 보리쌀이라도 사려고 밤새 끙끙 앓으며 벌어온 돈을, 기어이 술집에 가져다 바쳐야 속이 시원하겠소? 차라리 나를 때려죽이고 가시오!"

    하지만 인간의 탈을 쓴 악귀나 다름없는 주정뱅이 최달호는, 피눈물을 흘리는 아내를 매몰차게 발길질로 걷어차 버리고는 오히려 눈을 부라리며 삿대질을 해댔다.

    "에라이, 재수 없게 아침 댓바람부터 여편네가 울고불고 지랄이야! 내가 술을 퍼마시러 가나? 이 돈으로 산 너머 투전판에서 열 배, 스무 배로 불려서 올 테니 잔말 말고 방구석에 찌그러져 있어! 사내가 큰일을 하려는데 어디 아낙네가 앞길을 막아!"

    그 길로 아내의 피 같은 돈을 털어 주막으로 달려간 달호는 대낮부터 탁주를 들이켰다. 주막 주모가 밀린 두 달 치 외상값을 내놓으라며 부지깽이를 들고 윽박지르면, 그는 오히려 평상을 탕탕 내리치며 큰소리를 쳤다.

    "아, 거참! 사람 야박하게 아침부터 왜 이리 사람을 달달 볶고 닦달이오! 내가 내일 모레면 저기 산 너머 김 부자네 밭을 싹 다 갈아엎어 주고 두둑하게 품삯을 받아올 테니, 잔말 말고 일단 시원한 탁주 한 병만 더 내오시오! 사내대장부가 술을 마셔서 뱃속을 든든하게 데워놔야 힘을 써서 밭일도 할 게 아니오!"

    그의 뻔뻔하고 구역질 나는 호통에 주모는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끌쯧 차며, 마시던 물을 바가지째 평상 아래로 확 흩뿌려버렸다.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도 달호를 보며 저마다 얼굴을 찌푸리며 수군거렸다. 매일같이 저렇게 독한 술에 절어 사니 오장육부가 다 썩어 문드러졌을 거라며, 필시 얼마 못 가 제 명에 죽지 못하고 길바닥에서 짐승처럼 객사할 것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하지만 주정뱅이 최달호는 사람들의 경멸 어린 시선 따위는 털끝만큼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덜 깬 술기운에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마을 골목을 헤집고 다니며, 박자도 맞지 않는 기괴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내 인생, 골치 아프게 살아봐야 뭐 하겠나. 어차피 시원한 탁주 한잔에 훌훌 털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뼈 빠지게 일해봤자 떵떵거리는 양반들 배나 불려주지. 어차피 늙어 죽으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가 썩어질 몸뚱이, 아끼고 아등바등 살아갈 게 뭐 있겠나. 오늘 마시고 내일 뒈지면 그만이지.'

    그는 그렇게 스스로 자신의 명줄을 갉아먹으며, 가족의 고혈을 빨아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허비하고 있었다.

    반면, 마을 뒷산 깊은 곳으로 굽이굽이 산길을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나오는 작고 초라한 암자. 그곳에 머무는 또 다른 최달호, 즉 혜월 스님의 삶은 아침 이슬을 머금은 연꽃처럼 고요하고 투명했다. 스님은 매일 새벽, 산새들이 깨어나기도 전인 캄캄한 시간에 일어나 도량석을 돌고 마당의 낙엽을 쓰는 것으로 하루를 열었다. 낡은 싸리 빗자루가 흙바닥을 일정한 간격으로 스치는 사각사각 소리는 암자의 맑은 정적을 깨우는 유일한 소리였다. 마당을 정갈하게 다 쓴 후에는 어김없이 법당에 들어가 작은 촛불 하나를 켜고, 낡은 목탁을 두드리며 경전을 읽어 내려갔다. 맑고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목탁 소리와 스님의 나지막하고 깊은 독경 소리는, 굶주린 산짐승들의 거친 마음마저 평온하게 쓰다듬어 줄 만큼 신비로운 울림을 품고 있었다.

    스님은 마을에 내려오는 일이 일 년에 손을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한 달에 한두 번 쌀을 구하기 위해 다 해진 잿빛 장삼을 입고 바리때를 든 채 마을 어귀에 나타날 때면, 동네에서 꽤나 방귀를 뀐다는 고관대작 양반들조차 굽은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합장하고 스님을 맞이했다. 주정뱅이 최달호에게는 침을 뱉고 손가락질을 하던 사람들도, 이 맑고 늙은 스님 앞에서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묘한 경외감과 존경심을 느꼈다.

    "스님, 벌써 가을바람이 이리 찬데 어찌 이리 얇은 누더기 장삼만 고집하고 산을 내려오셨습니까. 감기라도 드시면 어쩌시려고요. 마침 여기 저희 집에서 갓 지은 뜨끈한 쌀밥과 나물 반찬이 있으니 넉넉히 시주받으시고, 언 몸도 좀 녹이고 가시지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보살님의 그 따뜻하고 고운 마음씨에 소승은 이미 배가 부르고 온몸이 덥혀집니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절집의 중에게 베풀어주신 이 크나큰 공덕이, 훗날 보살님의 가정에 좋은 열매를 맺고 복이 되어 돌아갈 것입니다."

    스님은 마을에서 쌀과 반찬을 보시받아 험한 산으로 올라갈 때면, 늘 그중 절반을 덜어내어 산속의 굶주린 들짐승과 날짐승들이 먹을 수 있도록 산길 곳곳의 넓적한 바위 위에 고루 뿌려두었다. 그리고 남은 절반의 쌀로 아주 묽은 죽을 끓여 먹으며, 평생을 청빈하고 무소유의 맑은 삶으로 일관했다. 육십 평생을 그렇게 속세의 모든 역겨운 욕심과 번뇌를 내려놓고 오직 중생 구제와 수행에만 매진해 온 혜월 스님. 인간이 지은 불리우는 이름과 태어난 시간만 우연히 같을 뿐, 산 아래의 탁하고 악취 나는 주정뱅이와 산 위의 맑고 향기로운 스님은 마치 빛과 그림자처럼 전혀 다른 인생의 궤적을 그리며, 각자의 늙은 육신을 이끌고 생의 황혼기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란 참으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법.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의 운명이, 머지않아 저승사자의 어처구니없는 실수 하나로 인해 기막히게 얽히고설키게 될 줄은 밤하늘의 시린 달빛조차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 2: 안개 낀 밤, 엉뚱한 곳으로 향한 저승사자의 발걸음

    그해 늦은 가을, 유난히 스산한 기운이 산천을 무겁게 감돌고 끈적한 밤안개가 짙게 깔린 날이었다. 초저녁부터 개울가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한 안개는 점차 짙어지더니, 이내 산의 능선과 마을의 경계조차 모호하게 만들 정도로 온 세상을 하얗고 탁하게 삼켜버렸다.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에서, 이름 모를 밤새들의 기괴한 울음소리와 창호지를 때리는 음산한 바람 소리만이 고요하고 불길한 밤의 장막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바로 그 시각, 저승의 명부전을 관장하는 절대자 염라대왕의 지엄한 명을 받은 흑의 사자, 즉 저승사자 하나가 차갑고 메마른 이승의 땅에 서늘한 발을 내디뎠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게 질린 서늘한 얼굴에 챙이 넓은 검은 갓을 푹 눌러쓰고, 소매가 펄럭이는 길고 검은 도포를 입은 저승사자의 손에는 오늘 밤 이승을 떠나야 할 자들의 이름과 수명이 적힌 두꺼운 명부가 들려 있었다.

    저승사자는 허공에 둥둥 떠 있는 푸른 도깨비불에 의지해 명부의 첫 장을 촤르륵 넘겼다. 누런 한지 위에 인간의 피처럼 붉은 먹물로 쓰인 선명한 글씨가 짙은 안개 속에서 섬뜩하고 기분 나쁘게 빛났다.

    '명(命) 최달호. 나이 예순. 거주지, 이승의 남쪽 최승골 산자락 아래 마을.'

    저승사자는 무미건조하고 권태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차가운 옷깃을 단단히 여몄다. 수명이 다한 인간의 혼을 거두어 명부전으로 질질 끌고 가는 일은, 그에게 수백 수천 번도 더 반복해온 지루하고 귀찮은 일상 업무에 불과했다. 인간들의 살려달라는 울부짖음도, 남겨진 가족들의 통곡도 그에게는 그저 스쳐 가는 바람 소리일 뿐이었다.

    "이승의 덧없는 목숨 하나가 오늘 또 지는구나. 잔말 말고 어서 거두어 가야 지옥의 문이 닫히기 전에 돌아가 쉴 수 있겠지."

    그는 입김처럼 하얀 안개를 가르고 소리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날따라 짙게 깔린 안개는 마치 수백 년 묵은 꼬리 아홉 달린 늙은 여우가 잔망스러운 조화를 부린 것처럼, 저승사자의 시야를 교묘하게 가리고 완벽했던 방향 감각을 흐트러뜨렸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흐려진 탓에, 저승사자가 명부에 적힌 '산자락 아래 마을'이라는 글귀를 다시 한번 눈으로 확인하고 발을 내디뎠을 때, 짙은 안개 너머로 흐릿하고 미약한 촛불 불빛 하나가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흠, 저곳이구나. 명줄이 다하여 오늘 밤 이승의 짐을 벗고 나와 함께 황천길을 건널 자가 머무는 곳이."

    하지만 짙은 안개에 홀린 저승사자의 서늘한 발걸음이 향한 곳은, 주정뱅이 최달호가 술에 취해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산 아래의 허름하고 시끄러운 주막거리가 아니었다. 안개 속에서 길을 완전히 착각해버린 그는 엉뚱하게도 험하고 좁은 산길을 거슬러 올라가, 산 중턱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는 혜월 스님의 작은 암자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암자의 낡은 방문 틈 사이로는 촛불이 바람에 위태롭게 흔들리며 미약한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저승사자는 아무런 의심 없이 거침없는 걸음으로 암자의 닫힌 문을 쓱 통과해 방 안으로 스멀스멀 스며들었다.

    방 안에는 평생을 맑고 깨끗하게 살아온 혜월 스님이 얇고 낡은 이불 하나만을 배 위에 덮은 채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낮 동안 다가올 혹독한 겨울을 대비해 암자의 헐은 곳을 수리하고 땔감을 모으느라 고단했는지, 평소라면 꼿꼿하게 가부좌를 틀고 참선을 하고 있을 시간임에도 오늘은 깊은 수마에 빠져있었다. 저승사자는 잠든 노인의 얼굴을 무표정하게 빤히 내려다보았다. 앙상하게 야윈 뺨과 하얗게 센 눈썹, 그리고 깊게 팬 이마의 주름들. 얼굴만 대충 훑어보아도 나이는 명부에 적힌 예순 즈음과 대충 맞아떨어졌다.

    "때가 되었다. 인간 최달호. 이제 길고 구차했던 이승의 무거운 짐과 껍데기를 모두 내려놓고, 잔말 말고 순순히 나와 함께 저승 명부전으로 가자꾸나."

    저승사자가 앙상하고 창백한 손을 높이 치켜들어 잠든 스님의 가슴팍을 자비 없이 세게 후려쳤다. 그 순간, 잠들어 있던 낡은 육신에서 투명하고 푸른빛이 감도는 가벼운 혼백이 '쑥' 하고 단숨에 빠져나왔다. 깊은 잠에 빠져있다가 갑작스럽게 혼백의 상태로 방바닥에 서게 된 혜월 스님은, 바닥에 꼼짝 않고 죽어있는 자신의 낡은 육신과 눈앞에 저승의 냉기를 뿜으며 서 있는 검은 도포의 저승사자를 번갈아 보며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아... 이것이 말로만 듣던 죽음의 순간이구나. 드디어 무겁고 낡은 육신의 허물을 온전히 벗어 던지고,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곁으로 돌아갈 시간이 온 것인가.'

    하지만 놀라움도 잠시, 혜월 스님은 평범한 인간들처럼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려달라 울부짖거나 도망가려 발버둥 치지 않았다. 오히려 두 손을 가슴 앞에 가지런히 모아 합장하며, 세상 그 누구보다 평온하고 온화한 목소리로 저승사자에게 입을 열었다.

    "이 깊고 추운 밤, 이승까지 먼 길을 오시느라 참으로 수고가 많으십니다. 소승, 평생 불도를 닦으며 이승의 덧없는 미련과 욕심을 버린 지 오래입니다. 이제 육신을 떠날 때가 되었으니, 순순히 그 뒤를 따라가겠습니다. 앞장서서 길을 안내해 주시지요."

    그 태연한 모습에 오히려 저승사자가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인간의 혼을 갑작스레 거두면 이승에 남겨둔 돈과 자식들이 아까워 살려달라 바닥을 기며 짐승처럼 통곡을 하거나, 어떻게든 도망치려 발악을 하기 마련인데, 이 늙은이는 어찌 이리도 덤덤하고 고고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단 말인가. 게다가 명부에는 분명 '평생 독한 술에 절어 살며 패악을 부리고 가족을 괴롭힌 몹쓸 인간'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눈앞에 선 이 혼백에서는 역겨운 탁주 냄새나 속세의 구린내는커녕 오히려 마음을 맑게 씻어주는 은은한 연꽃 향내만이 진하게 감돌고 있었다.

    "허... 참으로 기묘한 별종이로군. 평생을 술에 절어 산 구제 불능 주정뱅이라더니, 죽을 때가 턱밑까지 다가오니 이제야 세상 이치가 깨달아져 부처 행세를 하는 모양이지? 네놈의 그 가식적이고 얄팍한 변명은 염라대왕 앞에서나 늘어놓거라. 잔말 말고 당장 따라와라. 황천길이 멀고 험하니 지체할 시간이 없다."

    저승사자는 품에서 붉고 굵은 오랏줄을 꺼내어 스님의 혼백을 단단히 묶고는 거칠게 앞장섰다. 혜월 스님은 저승사자가 자신을 향해 뜬금없이 '술주정뱅이'라고 부른 것이 조금 의아하게 느껴졌지만, 이제 와서 이승에서의 호칭 따위가 무슨 큰 의미가 있으랴 싶어 따지지 않았다. 그는 묶인 손으로 조용히 가상의 목탁을 두드리는 시늉을 하며 반야심경을 외우며 그의 뒤를 잠자코 따랐다. 짙은 안개를 뚫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가르는 차갑고 스산한 황천길로 두 사람의 형체가 서서히 녹아들 듯 사라졌다.

    같은 시각, 산 아래 허름한 주막에서는 진짜 오늘 밤 명줄이 끊어지고 피를 토했어야 할 진상 주정뱅이 최달호가, 여전히 평상에 엎어져 막걸리 냄새를 풍기며 코를 드르렁거리며 곯고 있다는 기막힌 사실은 하늘의 달빛도 모른 채 까맣게 묻히고 말았다.

    ※ 3: 명부전의 심판, 염라대왕 앞에서 밝혀진 어이없는 실수

    이승의 덧없는 시간을 훌쩍 넘어, 짙은 안개와 스산한 그림자만으로 이루어진 끝없는 황천길을 걷고 또 걸었다. 이윽고 망자의 피처럼 붉은 잎을 피워낸 끔찍한 피안화 군락을 지나자, 이승과 저승을 완벽하게 가로막고 있는 깊고 검은 삼도천 너머로 웅장하고 거대한 저승의 문이 나타났다. 구름을 뚫고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거대한 붉은 기둥의 명부전 앞에는, 이미 이승에서 생을 마감하고 심판을 받기 위해 끌려온 수만 명의 혼백들이 벌벌 떨며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을 서서 통곡하고 있었다.

    저승사자의 거친 손길에 이끌려 명부전 안으로 깊숙이 들어선 혜월 스님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불경에 쓰여 있던 아비규환 지옥의 생생한 묘사 그 자체였다. 머리에 커다란 뿔이 솟고 짐승의 송곳니가 튀어나온 무시무시한 옥졸과 도깨비 나졸들이, 날이 시퍼렇게 선 창을 들고 죄인들을 위협하며 매질을 하고 있었다. 대청 양옆으로는 시뻘건 업화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거대한 가마솥이 끓고 있었고, 죄인들의 살이 튀겨지는 끔찍한 비명 소리가 귀를 찢을 듯 끔찍하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혜월 스님만은 이 지옥 한가운데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마치 고요한 산사에서 가부좌를 틀고 참선을 하듯 흔들림 없이 고요하고 평온한 자태를 꼿꼿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명부전 대청의 가장 높은 곳, 수십 마리의 거대한 호랑이 가죽이 겹겹이 깔린 의자에는 저승의 절대 권력자인 염라대왕이 천둥 번개가 치는 듯한 무서운 안광을 번뜩이며 위풍당당하게 앉아 있었다. 염라대왕의 커다란 흑단 탁자 앞에는 사람의 키보다 훨씬 큰 두꺼운 명부 책이 펼쳐져 있었고, 그 좌우로는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십여 명의 판관들이 일사불란하게 먹을 갈며 혼백들이 이승에서 지은 죄업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었다.

    "다음 죄인, 이승의 최달호를 당장 내전으로 끌어 들라 하라!"

    판관의 우렁차고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명부전을 쩌렁쩌렁 울리자, 저승사자가 혜월 스님을 거칠게 끌고 염라대왕 앞으로 나섰다. 염라대왕은 턱수염을 거칠게 쓸어내리며 날카로운 눈으로 명부를 훑어보더니, 이내 분노에 찬 불호령을 내렸다.

    "네놈이 바로 이승의 남쪽 최승골 마을에 산다는 최달호가 맞느냐! 이 명부에 붉은 글씨로 적힌 바에 따르면, 너는 일 평생토록 짐승처럼 독한 술을 퍼마시며 방탕하게 살았고, 밤낮으로 뼈 빠지게 고생하는 아내의 피눈물을 쏙 빼놓았으며, 동네 사람들에게 매일같이 상욕과 패악을 부린 천하의 몹쓸 인간말종이라지? 귀한 인간으로 태어나 일 평생을 이토록 무가치하게 허비하고 남에게 상처만 준 죄가 하늘을 찌를 듯 무거우니, 내 당장 너를 저기 펄펄 끓는 가마솥 지옥에 던져넣어 살가죽이 천 번 만 번 녹아내리는 고통으로 그 죗값을 치르게 할 것이다!"

    염라대왕의 무시무시한 사형 선고가 벼락처럼 대청에 떨어졌지만, 혜월 스님은 변명을 하거나 살려달라 억울하다며 매달리지 않았다. 그저 묶인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나지막하고도 한없이 깊은 목소리로 불경을 읊기 시작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놀랍게도 스님의 그 맑고 청아한 불경 소리가 명부전 안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자, 타오르며 끔찍한 열기를 뿜어내던 업화의 불길이 일순간 스르르 잦아들고, 죄인들의 비명으로 가득했던 피비린내 대신 마음을 씻어주는 성스러운 연꽃 향기가 대청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 기이하고 경이로운 현상에 염라대왕은 흠칫 놀라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자리에서 몸을 앞으로 쑥 숙여 눈을 가늘게 뜨고 스님의 혼백을 위아래로 자세히 훑어보았다. 이승의 온갖 더러운 탁기와 때가 묻어있어야 할 주정뱅이의 혼백은 온데간데없고, 빛바랜 잿빛 승복을 단정하게 입은 채 머리를 깎은 맑은 노스님의 형상이 눈부신 빛을 내고 있었다. 염라대왕의 굵은 미간에 깊고 복잡한 주름이 잡히며 호통을 쳤다.

    "잠깐, 심판을 당장 멈추어라! 흑의 사자야, 네가 이승에서 끌고 온 저 자의 몰골이 어찌 저리 맑고 투명하단 말이냐? 분명 평생 술독에 빠져 살던 패악질꾼이라더니, 어찌하여 불도를 닦은 성스러운 스님의 옷을 입고 있으며, 이 무서운 염라대왕의 심판 앞에서도 두려움 하나 없이 고고하게 독경을 한단 말인가! 판관아! 당장 저승의 진실을 비추는 거울인 업경대를 대령하여 저 자의 진짜 이승 삶을 비추어 보아라!"

    염라대왕의 다급한 불호령에 판관들이 허둥지둥 거대한 거울인 업경대를 낑낑대며 대청 한가운데로 밀고 왔다. 스님의 혼백이 업경대 거울 앞에 서자, 거울 표면에 푸른 파동이 일렁이더니 이내 이승의 최승골 마을 풍경이 생생하고 투명하게 떠올랐다.

    하지만 업경대 거울 속에 비친 것은 도를 닦는 암자의 스님이 아니었다. 거울 속에서는 산 아래 마을 주막에서 대낮부터 막걸리에 취해 붉은 얼굴로 평상을 발로 걷어차고, 주모에게 상욕을 퍼부으며 그릇을 집어 던지는 진짜 주정뱅이 최달호의 흉측한 모습이 훤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분명 죽어서 지옥 불에 떨어졌어야 할 놈이, 이승에서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숨 쉬며 술주정을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 충격적인 광경에 명부전의 판관들과 사자들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한 늙은 판관이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리는 손으로 명부의 책장을 미친 듯이 넘기며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대, 대, 대왕마마...! 천지신명도 노할 끔찍하고 치명적인 실수가 벌어졌사옵니다! 이승의 최승골 마을에는 애초에 이름과 나이가 완전히 똑같은 동명이인 최달호가 두 명이나 살고 있었사옵니다! 그런데 이 미련하고 멍청한 흑의 사자가 안개에 홀려 길을 잃는 바람에, 마땅히 오늘 데려와야 할 술주정뱅이 최달호 대신... 산속 깊은 암자에서 육십 평생 맑게 불도를 닦아온 고결한 혜월 스님, 즉 애먼 최달호 대사님의 혼을 강제로 거두어 온 것이옵니다! 대왕마마! 이 혜월 스님의 명부에 적힌 남은 수명은 아직 무려 십 년이나 더 쌩쌩하게 남아 있사옵니다!"

    그 기막히고 황당한 진실에 염라대왕은 극대노하여 대청의 흑단 탁자가 두 동강이 나도록 주먹으로 거세게 내리쳤다.

    "이런 멍청하고 눈이 먼 사자 놈아! 네놈이 단단히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저승의 생사를 관장하는 자가 동명이인 하나 똑바로 구분하지 못하고, 아직 명줄이 십 년이나 남은 산 사람의 혼을 함부로 생이별시켜 끌고 온단 말이냐! 그것도 부처님을 평생 모시는 귀한 대사님을 말이다! 당장 이 무능하고 미련한 사자 놈을 포박하여 혹한 지옥에 하옥시키고, 스님의 귀한 혼을 서둘러 이승의 육신으로 온전히 돌려보내어라!"

    명부전이 발칵 뒤집혀 도깨비 나졸들이 뛰어다니고 염라대왕이 노발대발하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이 모든 황당한 상황을 완전히 파악한 혜월 스님만은 그저 헛기침을 하며 허허 웃고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이승의 무능한 관아에서나 벌어질 법한 어설픈 일들이, 생사를 엄격하게 가르는 이 무서운 저승에서도 똑같이 일어나는 법이로구나. 아직 내가 무거운 육신을 벗고 부처님 곁으로 돌아갈 때가 아니었단 말인가.'

    얼굴이 흙빛이 된 판관들이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납작 엎드려 스님에게 사죄를 올렸다.

    "대사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저희 저승의 멍청한 관리가 크나큰 실수를 범하여 대사님의 귀한 수행의 시간을 방해하였습니다. 엎드려 사죄드리오니, 부디 맑고 깊은 자비심으로 노여움을 푸시고 지금 당장 이승에 누워계신 육신으로 무사히 돌아가 주시옵소서. 저희 판관들이 직접 황천길을 거슬러 안전하게 모시겠사옵니다!"

    염라대왕 역시 당황하고 민망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헛기침을 연거푸 해댔다.

    "어흠, 흠. 큼. 스님, 참으로 면목이 없게 되었소이다. 저승의 법도가 하늘처럼 엄격하나 밑에 수족으로 부리는 놈들이 미련하여 이런 어이없는 실수가 생겼구려. 어서 이승의 육신으로 무사히 되돌아가, 명부에 적힌 남은 십 년의 귀한 수명을 다 채우시길 바라오. 훗날 십 년 뒤, 스님께서 진짜로 수명을 다해 이 명부전에 다시 오시는 영광스러운 날에는, 내가 친히 마중을 나가 극락정토로 가는 황금 문을 활짝 열어드리겠소."

    그렇게 저승사자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머나먼 저승까지 끌려왔던 혜월 스님은, 다시 수십 명의 판관과 나졸들의 극진한 호위를 받으며 이승을 향한 먼 길을 되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저승에서의 짧은 몇 시간이 이승에서는 이미 며칠이라는 긴 시간으로 흘러가 버렸다는 치명적인 사실을, 속세를 떠나있던 스님도, 당황하여 허둥대던 판관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님의 혼백이 이승에 도착했을 때 마주하게 될 그 기막히고 황당한 상황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채, 영혼의 발걸음은 다시 이승의 짙은 안개를 뚫고 산속 암자를 향해 바쁘게 내달리고 있었다.

    ※ 4: 이승으로의 귀환, 그러나 이미 땅에 묻혀버린 육신

    이승과 저승을 가로막고 있는 아득하고 차가운 경계, 끝을 알 수 없는 짙은 안개와 스산한 그림자로 뒤덮인 황천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발걸음은 참으로 다급하고도 혼란스러웠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염라대왕의 불호령을 맞은 저승의 판관들과 나졸들은, 행여나 혜월 스님의 귀한 혼백에 흠집이라도 날까 노심초사하며 스님을 에워싸고 허둥지둥 이승을 향해 내달렸다. 저승에서는 불과 반나절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황당한 소동이었지만, 이승의 시간은 저승의 시계와는 전혀 다른 속도로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승의 하늘은 이미 세 번의 해가 장엄하게 뜨고 졌으며, 차가운 가을바람은 산자락의 낙엽을 수없이 떨어뜨린 뒤였다.

    마침내 짙은 안개가 걷히고, 혜월 스님과 판관들은 낯익은 산속의 고즈넉한 암자 마당에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고요하고 평화로워야 할 암자의 분위기는 어딘지 모르게 부산하고 스산하게 변해 있었다. 매일 아침 스님이 정갈한 마음으로 비질을 하여 티끌 하나 없어야 할 마당의 흙바닥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거친 짚신 발자국이 어지럽고 깊게 파여 있었다. 굳게 닫혀있어야 할 법당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앞에는 누군가 피워놓은 향의 독한 연기가 허공을 맴돌며 매캐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혜월 스님은 반투명한 혼백의 상태로 그 생경한 풍경을 둘러보며 조용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승의 시간이 저승의 그것과 다르게 흐른다는 것은 불경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으나, 벌써 이리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단 말인가. 고요하던 산사에 이리 많은 사람의 흔적이 남다니,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로다.'

    스님의 곁에서 길을 안내하던 판관 하나가 이마에 맺힌 차가운 식은땀을 소매로 닦아내며 사시나무 떨듯 다급하게 외쳤다.

    "대사님! 지체할 시간이 없사옵니다! 인간의 혼백이 육신을 떠난 지 사흘이라는 시간이 넘어가 버리면, 육신에 남은 마지막 생기의 끈이 완전히 끊어져 영영 그 몸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어서 대사님이 기거하시던 방 안으로 들어가, 바닥에 누워있는 육신에 서둘러 스며드셔야만 합니다!"

    판관의 재촉에 혜월 스님은 서둘러 자신이 평생을 기거하며 참선하던 작고 허름한 방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있어야 할 자리에 마땅히 누워있어야 할 자신의 육신이 보이지 않았다. 냉기만이 감도는 방 안은 텅 비어 있었고, 자신이 입고 자던 낡고 해진 이불만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단정하게 개어져 방 한쪽 구석에 치워져 있을 뿐이었다. 서늘하고도 기묘한 불길함이 스님의 투명한 혼백을 스치고 지나갔다. 판관들 역시 텅 빈 방 안을 확인하고는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려 서로의 얼굴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바로 그때, 암자 뒤편의 볕이 잘 드는 산비탈 쪽에서 흙을 파내는 소리와 함께 낯익은 마을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아이고, 우리 스님. 참으로 원통하고 애통한 일일세. 평생을 이 깊고 외로운 산속에서 부처님만 모시며 이슬처럼 청빈하게 사시더니, 어찌 아프다는 말씀 한마디 없이 이리 주무시는 듯이 허망하게 열반에 드셨단 말인가. 쯧쯧,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그러게 말일세. 내가 며칠 전 아침 일찍 겨울 채비하실 쌀을 시주하러 산에 올라왔다가, 방바닥에 차갑게 식어 계신 스님을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는가. 날이 생각보다 따뜻해서 시신이 며칠 내로 상할까 봐, 내가 서둘러 동네 장정들 열댓 명을 불러다 산에서 다비식(불교식 화장)을 치르지 않았나. 육신을 깨끗하게 불에 태워 뼛가루를 모아 이 뒤편 양지바른 곳에 묻어드리는 길이니, 스님께서도 부처님 곁으로 편안히 가셨을 걸세."

    마을 사람들의 그 참담한 대화 내용이 귓가에 닿는 순간, 스님을 호위하던 저승 판관들과 나졸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대, 대, 대사님! 이,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저 무지하고 성급한 이승의 인간들이, 대사님의 육신이 일시적으로 혼이 빠져 잠들어 있는 것을 진짜 죽은 줄로만 착각하고 벌써 불에 태워 땅에 묻어버렸사옵니다! 이제 대사님이 돌아가실 육신의 껍데기가 한 줌의 잿더미로 변해버렸으니, 이 끔찍한 사태를 도대체 어찌 수습한단 말입니까!"

    혜월 스님은 소스라치게 놀라는 판관들을 뒤로하고, 반투명한 발걸음을 옮겨 마을 사람들이 내려간 산비탈 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아직 흙냄새가 가시지 않은, 새로 판 듯한 작은 봉분 하나가 봉긋하게 솟아 있었고, 그 앞에는 나무를 대충 깎아 만든 팻말에 '혜월 스님지묘'라는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혀 꽂혀 있었다. 자신이 묻힌 자신의 무덤을 홀로 내려다보는 기분은 참으로 기묘하고도 허탈했다. 육십 평생을 맑게 살아온 흔적이 고작 이 작은 흙더미 하나란 말인가.

    판관들은 땅을 치고 가슴을 뜯으며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염라대왕의 무시무시한 불호령을 받고 스님을 살려내기 위해 이승으로 모셔왔건만, 정작 스님이 들어가 숨을 쉬어야 할 육신이 타버렸으니, 이제 저승으로 돌아가면 염라대왕의 분노를 사서 가마솥 지옥의 펄펄 끓는 기름물에 튀겨질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아이고! 하늘이시여! 저희는 이제 염라대왕님께 뼈도 못 추리고 죽은 목숨입니다! 대사님, 진정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돌아갈 집이 불타 없어졌으니, 이제 대사님의 혼백은 육신을 찾지 못해 이 구천을 떠도는 원귀가 되시거나, 아니면 수명이 십 년이나 남았음에도 다시 저승으로 가셔야 할 참담한 판국이옵니다!"

    눈물 콧물을 쏟으며 호들갑을 떠는 저승의 관리들을 내려다보며, 정작 당사자인 혜월 스님은 얼굴에 은은한 미소를 띠며 자신의 무덤을 향해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자네들, 너무 그렇게 슬피 울 것 없네. 본디 인간의 육신이란 흙에서 와서 잠시 이승의 바람을 쐬다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그저 잠시 빌려 입은 낡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을 어찌 그리 집착하는가. 내 육신이 이승의 인연을 다하여 한 줌의 재가 되어 산자락에 흩어졌으니, 이 또한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순리요 부처님의 깊은 뜻이 아니겠는가. 내 이대로 껍데기 없는 혼백의 몸으로 저승으로 다시 돌아가 염라대왕께 자초지종을 낱낱이 설명하고 오해를 풀 터이니, 자네들은 너무 상심하여 통곡하지 말게나."

    스님의 그토록 초연하고 깊은 깨달음의 경지에 판관들은 감격하여 엎드려 절을 했지만, 저승의 엄격한 법도와 염라대왕의 명은 그들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대사님의 그 끝없는 불심과 자비로움에 저희는 뼈가 녹도록 감복하였사옵니다. 하오나 대사님의 명부에 붉은 글씨로 선명하게 적힌 남은 수명 십 년을, 반드시 이승의 땅에서 사람의 몸으로 다 채우지 않으시면 극락정토로 가는 문이 절대 열리지 않사옵니다! 그것이 우주의 법칙이옵니다! 어떻게든 대사님이 이승에서 십 년의 세월을 온전히 살아갈 '다른 인간의 육신'을 지금 당장 찾아내야만 합니다!"

    그때, 바닥에 엎드려 울고 있던 늙은 판관 하나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번쩍 고개를 쳐들더니, 허공을 응시하며 눈을 크게 뜨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옳지! 생각났습니다! 대사님 대신 원래 저승으로 끌고 가 명부전에 무릎을 꿇렸어야 했던 그 진짜 최달호! 산 아래 마을의 그 흉악한 술주정뱅이 놈 말입니다! 제가 아까 명부를 다시 확인했을 때, 그놈의 지독한 명줄이 바로 오늘 해 질 녘에 완전히 끊어지도록 운명 지어져 있었습니다! 그놈의 더럽고 탁한 육신에서 혼이 빠져나가는 찰나의 순간을 노려, 그 빈 껍데기에 대사님의 맑은 혼을 불어넣으면, 이승에서 남은 십 년의 수명을 어찌어찌 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술주정뱅이의 육신이라..."

    혜월 스님의 반투명한 눈썹이 가볍게 꿈틀거렸다. 평생을 이슬처럼 맑고 깨끗하게 불도를 닦아오며 육신의 때를 벗겨내려 애썼건만, 술과 탐욕에 찌들어 악취가 나는 탁한 주정뱅이의 육신에 들어가 남은 생을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지옥의 업화에 뛰어드는 것만큼이나 곤혹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스님은 자신 때문에 곤경에 처하여 목숨을 잃게 생긴 저승의 나졸들을 모른 척 외면할 수 없는 자비로운 성정이었다. 또한 가만히 돌이켜보니, 평생 죄업만 쌓아온 그 불쌍한 주정뱅이의 육신에 들어가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그의 삶을 맑게 씻어내고 바른길로 인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부처님께서 자신에게 내리신 마지막이자 가장 거룩한 보살의 길이 아닐까 하는 깊은 깨달음이 뇌리를 스쳤다.

    "좋네. 인간의 껍데기가 금이건 진흙이건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내 기꺼이 그 탁한 육신으로 들어가 남은 십 년의 세월 동안 그 자의 죄업을 씻어내고 도를 닦아보겠네. 어서 나를 그곳으로 안내하시게."

    판관들은 살았다며 안도의 환호성을 지르며 스님의 혼백을 조심스럽게 이끌고 서둘러 산 아래 마을을 향해 날아갔다. 저 멀리 서산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온 세상을 피처럼 붉게 물들이고 있는 쓸쓸하고도 다급한 황혼의 시간이었다.

    ※ 5: 죽음을 앞둔 주정뱅이의 몸을 빌린 스님의 환생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다 쓰러져가는 최달호의 낡은 오두막. 지붕의 이엉은 다 벗겨져 하늘이 보이고, 마당에는 깨진 술독들만 나뒹구는 그 처참한 공간에는 이제 진짜 죽음의 짙은 그림자가 스멀스멀 드리워져 있었다. 외풍이 매섭게 들이치는 싸늘한 마루 위에는 마을의 골칫거리였던 주정뱅이 최달호가 뼈만 남은 앙상하고 흉측한 몰골로 누워 가쁜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고 있었다. 며칠 전, 대낮부터 주막에서 곤드레만드레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으로 오던 중 깊고 찬 도랑에 굴러떨어진 것이 화근이었다. 진흙탕에 박힌 채 밤새 얼어붙었던 그는 지독한 열병과 폐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마침내 오늘 해 질 녘 자신의 명줄이 완전히 다해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곁에서는 남편의 모진 핍박과 폭언 속에서도 도망치지 못하고, 평생 남의 집 밭을 매고 품팔이를 하며 가정을 지켜온 가엾은 아내가 눈물 콧물을 훔치며 그의 차가워져 가는 거친 손을 두 손으로 꼭 부여잡고 있었다.

    "아이고, 이 몹쓸 양반아... 평생을 그 독한 술만 처먹고 내 속을 시커멓게 썩이더니, 결국 이렇게 허무하고 비참하게 가는구려. 이 험한 세상에 자식 하나 없이 날 홀로 남겨두고 이대로 눈을 감으면, 남은 나 혼자 늙은 몸을 이끌고 어찌 살라고... 흑흑."

    아내는 남편이 뼛속 깊이 미웠고 수십 번도 더 죽기를 바랐건만, 막상 수십 년을 부대끼며 살아온 지아비가 숨통이 끊어지며 죽어가는 참혹한 모습을 보니 핏줄보다 질긴 미운 정 때문에 서러운 통곡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여, 여보... 마, 마누라. 내가 참으로 미안하오. 내 평생 당신 눈에 피눈물만 흘리게 했지... 다음 생에는... 다음 생에는 내가 당신을 꼭 호강시켜 주리다. 아, 목이 타는구려. 죽기 전에 시원한 막걸리... 탁주 한 사발만 입에 축여주오..."

    최달호는 자신의 폐가 굳어가며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 끔찍한 순간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술을 찾으며 컥컥거렸다. 이윽고 그의 두 눈이 허공을 향해 치켜떠지더니, 목구멍에서 덜컥! 하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힘없이 고개를 옆으로 떨구고 말았다. 그의 코끝에서 희미하게 맴돌던 마지막 숨결이 완전히 멎어버렸다. 명부의 기록대로 진짜 최달호의 수명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다한 것이다.

    "아이고! 영감! 영감! 어찌 이리 눈을 감으시오! 영감! 눈 좀 떠보시오!"

    아내의 찢어지는 듯한 곡소리가 오두막의 허름한 지붕을 뚫고 하늘로 울려 퍼지는 그 순간, 마당의 짙은 그림자 속에 숨어 대기하고 있던 판관들이 혜월 스님의 혼백을 최달호의 식어가는 육신 위로 맹렬하게 밀어 넣었다.

    "대사님! 육신의 기운이 차갑게 식어 문이 닫히기 전에 어서 저 껍데기 속으로 스며드셔야 합니다! 서두르시옵소서!"

    혜월 스님의 맑고 푸른 혼백이, 방금 숨을 거두고 누워있는 최달호의 탁한 가슴팍으로 쑥! 하고 무섭게 빨려 들어갔다. 그 찰나의 순간, 영원히 멈추어 썩어갈 줄 알았던 최달호의 가슴이 거대한 풀무질을 하듯 크게 한 번 들썩이더니, '우웨엑! 쿨럭! 쿨럭!' 하는 짐승 같은 거친 기침 소리와 함께 막혔던 숨통이 탁! 하고 트였다.

    방금 전까지 싸늘하게 식어가며 죽음의 강을 건넜던 남편이, 갑자기 기괴한 기침을 쏟아내며 두 눈을 번쩍 뜨고 상체를 벌떡 일으키자, 옆에서 엎드려 곡을 하던 아내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심장이 멎으며 기절할 뻔했다.

    "여, 영감? 여, 영감! 다시 살아난 게요? 아이고, 천지신명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지옥 문턱까지 갔던 우리 영감이 기적처럼 다시 살아났어요!"

    아내는 오열하며 남편의 두꺼운 몸을 덥석 끌어안았다. 하지만 번쩍 눈을 뜬 최달호, 아니 최달호의 두껍고 추악한 껍데기를 온전히 뒤집어쓰게 된 혜월 스님은, 눈을 뜨자마자 자신의 코를 찌르는 지독하고 역겨운 술 냄새와 수십 년간 씻지 않아 피부에 들러붙은 퀴퀴한 홀아비 냄새에 극심한 헛구역질을 하며 몸을 비틀었다.

    "우욱... 우웩! 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 이게 도대체 무슨 끔찍한 악취란 말인가. 영혼을 가두는 육신이 어찌 이리도 무겁고, 탁하며, 진흙탕을 뒤집어쓴 듯 불결하단 말인가."

    스님은 충격에 휩싸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찬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찢어진 창호지 문, 방구석 여기저기 쓰레기처럼 나뒹구는 빈 술병들, 곰팡이가 피어오른 벽, 그리고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자신을 부둥켜안고 통곡하는 낯선 여인. 육십 평생을 티끌 하나 없이 정갈하고 향기로운 암자에서 청빈하게 참선하며 살아온 스님에게, 이 혼란스럽고 끔찍한 속세의 시궁창 같은 방구석은 가히 지옥의 또 다른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 보살님. 소승에게 어찌하여 이리 무례하게 몸을 밀착하십니까. 몸에서 악취가 심히 진동하여 부끄러우니, 부디 옥체를 조금 떨어뜨려 주시지요."

    "보, 보살님? 소, 소승? 아이고, 이 양반이 도랑에 거꾸로 처박혀 구르더니 머리가 어떻게 완전히 돌아버린 거 아니오? 평생 밥 차려 바친 당신 마누라를 두 눈 뻔히 뜨고 보고도 보살이라니! 쯧쯧, 죽다 살아나더니 귀신이 씌어도 단단히 씌었나 보네!"

    아내는 남편의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고상하고 엉뚱한 소리에 기가 막혀 자신의 가슴을 퍽퍽 내리쳤다. 혜월 스님은 혼란 속에서 자신의 두 손을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평생 염주를 돌리고 불경을 넘기느라 굳은살이 단정하게 박인 정갈한 노스님의 손이 아니었다. 매일같이 술잔을 쥐고 화투패를 쪼느라 미세하게 떨리고, 손톱 밑에 시커먼 때가 잔뜩 낀 흉측한 주정뱅이의 두툼하고 거친 손이었다. 스님은 이 기막힌 현실 앞에서 깊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결국 이 탁하고 무거운 껍데기 속에 완전히 갇히고 말았구나. 인간이 짓는 업보란 참으로 질기고도 기묘한 것이로다. 하지만 이 또한 자비로우신 부처님께서 내게 주신 새로운 시련이자, 가장 낮고 천한 곳에서 시작해야 할 나의 마지막 수행의 길이리라.'

    스님은 마음을 다잡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가부좌를 틀고 합장을 하려 했으나, 최달호의 뚱뚱하게 부푼 뱃살과 오랫동안 방탕하게 살아 뻣뻣하게 굳어버린 관절은 마음처럼 쉽게 움직여주지 않았다.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비틀비틀 마당으로 나선 스님의 시야 끝에, 저 멀리 짙은 밤안개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며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는 저승 판관들의 뒷모습이 아스라이 보였다.

    "대사님, 부디 남은 십 년 동안 그 무거운 육신으로 이승의 어리석은 중생들을 구제하며 덕을 쌓고 평안히 지내시옵소서!"

    이제 혜월 스님은 빼도 박도 못하게 최승골 마을 최고의 진상 망나니 최달호가 되어, 생면부지의 낯선 아내와 낯선 마을 사람들 속에서 남은 십 년의 세월을 뼈를 깎는 인내로 살아가야만 하는 기막히고 황당한 운명에 철저히 내던져지게 된 것이다.

    ※ 6: 낯선 육신으로 살아가는 기막힌 운명과 깨달음

    그날 이후, 평화롭던 최승골 마을에는 귀신이 곡을 할 정도로 기괴하고도 믿을 수 없는 흉흉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다 죽어가던 천하의 술주정뱅이 최달호가 깊은 도랑에서 구른 충격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기적처럼 살아나더니, 사람이 백팔십도 아니 천팔십도 완전히 변해버렸다는 것이었다.

    어느 서늘한 아침, 주막 주모가 밀린 외상값을 기어이 받아내겠다며 빗자루를 들고 씩씩거리며 최달호의 낡은 오두막을 쳐들어갔을 때였다. 평소 같으면 대낮까지 코를 골며 엎어져 있거나, 술이 덜 깬 붉은 눈으로 상욕을 퍼부으며 주모를 쫓아냈을 달호가, 믿을 수 없게도 마당의 흙바닥을 싸리비로 아주 정갈하고 경건하게 쓸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빗자루질을 하는 그의 입에서는 천박한 노름판 타령 대신, 너무나도 고상하고 나지막한 독경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나무아미타불..."

    "아니, 달호 아재! 지금 아침 댓바람부터 이게 뭐 하는 짓거리유?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중얼거리고 앉았어! 어서 밀린 두 달 치 탁주 값이나 싹 다 내놓으시지!"

    주모의 매섭고 앙칼진 호통에, 달호의 탈을 쓴 혜월 스님은 하던 비질을 멈추고 빗자루를 조용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주모에게 천천히 다가와 두 손을 가슴에 가지런히 모아 합장하며, 허리를 깊숙이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보살님, 참으로 송구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소승... 아니, 이 어리석은 몸뚱이가 과거에 무지하여 저지른 죄업과 탐욕으로 보살님께 이토록 큰 심려를 끼쳐드렸습니다. 당장 빚을 청산할 엽전이 수중에 없으니, 오늘부터 제가 매일 주막으로 나가 무거운 장작을 패고 마당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여 그 은혜로운 탁주 빚을 제 몸으로 온전히 갚겠사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허리를 굽혀 깍듯이 존댓말을 쓰며 참회하는 달호의 낯선 모습에 주모는 너무 놀라 들고 있던 빗자루를 떨어뜨리고 뒤로 자빠질 뻔했다.

    "어, 어머나! 세상에나! 이 양반이 진짜 미쳤나 봐! 달호 아재, 왜 이러슈? 소름 돋게 징그럽게시리!"

    이 기막힌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금세 마을 전체로 퍼져나갔다. 천하의 구제 불능 망나니였던 달호가 주막에서 술은 입에도 대지 않고 차가운 맹물만 마시며 산더미 같은 장작을 묵묵히 패기 시작했고, 길거리에서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 먼저 다가가 허리를 숙여 합장 인사를 올렸다. 불쌍한 아내를 매일같이 구박하고 돈을 빼앗아가던 악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새벽 동이 트기 전 가장 먼저 일어나 직접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짓고, 험한 산에 올라가 무거운 나무를 지게 한가득 해오는 등 뼈가 부서져라 일하며 아내를 부처님 모시듯 끔찍이도 위하는 것이었다. 아내는 처음엔 남편이 죽을 때가 되어 마지막으로 발악을 하거나 실성한 줄 알았으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 두 달이 넘도록 진짜 부처님처럼 자비롭게 구는 남편의 헌신적인 모습에 매일 밤 방구석에서 감격의 눈물을 펑펑 흘렸다.

    "아이고, 부처님! 관세음보살님! 우리 영감이 드디어 철이 들고 진짜 사람 구실을 합니다. 제 평생의 소원인 지아비의 개과천선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 혜월 스님에게도 말 못 할 끔찍한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술주정뱅이의 육신은 무려 수십 년간 독한 탁주에 절어있던 터라, 때때로 뇌를 지배하는 알코올의 지독한 금단현상이 찾아와 온몸의 손발이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거나 헛구역질이 치밀어 오르곤 했다. 뱃속에 거지가 든 것처럼 고기를 갈망하며 식탐이 솟구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스님은 한겨울에도 우물가로 달려가 얼음장 같은 찬물을 머리에 끼얹고, 자신의 굵은 허벅지를 피멍이 들도록 꼬집어가며 밤이 새도록 수천 번씩 독경을 외워 몸이 기억하는 그 더러운 악습을 필사적으로 이겨내야만 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마음을 다스리는 참선을 하려 해도, 달호의 뚱뚱한 뱃살과 뻣뻣하게 굳은 관절 때문에 다리가 끊어질 듯 저려와 고통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아아, 인간 육신의 업보가 이리도 무겁고 끈질기단 말인가. 내 전생에 무슨 큰 죄를 지어 이 뚱뚱하고 냄새나는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속세의 한가운데서 이 지독한 고생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스님은 결코 하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의 의심 어린 시선과 짓궂은 놀림 속에서도 그는 묵묵히 남의 집 밭을 매어주고, 지붕에서 비가 새는 병든 독거노인들의 집을 찾아가 밤새워 고쳐주었으며, 자신이 품팔이로 번 돈의 절반을 가난한 이웃들의 집 문 앞에 몰래 놓아두었다. 한때는 온 동네의 손가락질과 멸시를 받던 최달호의 육신이, 어느새 마을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빛과 소금 같은 존경스러운 존재로 완벽하게 변해가는 것을 보며 혜월 스님은 깊고 웅장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인간의 껍데기가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맑고 고결한 산속 암자에 홀로 고고하게 앉아 나 혼자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려 하는 것보다, 이 탁하고 어지럽고 고통스러운 속세의 진흙탕 한가운데로 직접 뛰어들어 남을 위해 땀을 흘리고 나의 모든 것을 베푸는 이 고단한 삶이야말로...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진짜 보살의 길이자 수행의 완성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달호의 추악한 몸을 빌린 혜월 스님은 최승골 마을에서 염라대왕이 정해준 남은 십 년의 세월을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고 꽉 채워 살았다. 그가 베푼 무한한 자비와 공덕으로 마을의 인심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워졌고, 달호의 가엾은 아내는 평생 겪어보지 못한 따뜻한 지아비의 사랑과 존중 속에서 호강을 누리며, 스님보다 한 해 먼저 아주 평온하고 행복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었다.

    마침내 명부의 책장에 적힌 남은 십 년의 수명이 완벽하게 다하는 날. 낙엽이 떨어지는 낡은 오두막 마당의 평상 위에 정갈하게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고 앉은 최달호의 모습은, 예전의 흉측하고 더러웠던 주정뱅이가 아니라 맑은 기운을 사방으로 뿜어내는 기품 있고 거룩한 노스님의 자태 그대로였다. 이윽고 허공에서 짙고 스산한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십 년 전 암자에서 마주했던 그 검은 도포의 저승사자와 판관들이 다시 허공을 가르고 경건한 모습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붉은 오랏줄도, 험악한 호통도 없었다. 저승사자와 판관들은 가부좌를 튼 달호의 육신 앞에 다가와 엎드려 큰 절을 올렸다.

    "최달호 보살님, 아니 혜월 대사님. 지난 십 년간 그 탁하고 무거운 육신에 갇혀 어리석은 중생들을 구제하시느라 참으로 고생이 많으셨사옵니다. 이제 이승의 그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가시지요. 대사님이 이승에 쌓으신 그 깊고 높은 공덕에 감복하여, 염라대왕께서 친히 마중을 나오시어 극락정토로 가는 황금 문을 활짝 열어두셨사옵니다."

    혜월 스님은 조용히 감았던 눈을 뜨고 빙그레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허허. 고생이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오히려 이 둔하고 미천한 껍데기를 뒤집어쓴 덕분에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진짜 중생의 삶을 보살피는 참된 수행의 길을 걷게 되었으니, 저는 그대들이 십 년 전 저지른 그 황당한 실수에 깊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스님이 마지막으로 편안하게 숨을 거두며 눈을 감는 순간, 달호의 낡고 뚱뚱한 육신에서 사르르 빠져나온 스님의 혼백은 십 년 전보다 훨씬 더 맑고 투명하며, 세상을 비출 듯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을 띠고 있었다. 저승사자마저 그 눈부시고 성스러운 황금빛에 압도되어 고개를 숙이며 경건하게 합장했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혜월 스님의 혼백은 오색구름이 피어나는 극락을 향한 빛의 길을 따라 조용히, 그리고 이승의 어떤 깃털보다도 가볍게 날아올랐다.

    어느 멍청한 저승사자의 황당한 동명이인 실수로 시작된 기막힌 해프닝은, 한 주정뱅이의 오명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온 마을에 따뜻한 부처의 자비와 기적을 남긴 채, 그렇게 아름답고도 신비로운 전설로 승화되어 마을 사람들의 입을 타고 수백 년이 지나도록 오래오래 전해지게 되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저승사자의 어이없는 실수로 엉뚱한 육신에 들어가게 된 혜월 스님의 이야기, 편안하게 잘 들으셨나요? 겉모습은 흉한 술주정뱅이였지만, 그 속에서 묵묵히 십 년간 공덕을 쌓아 극락으로 향한 스님의 모습은 껍데기보다 알맹이가 중요하다는 작은 깨달음을 안겨줍니다. 혹시 주변에 갑자기 딴사람처럼 변한 분이 있다면, 어쩌면 저승사자의 실수가 있었던 건 아닐까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오늘 밤도 따뜻하고 평안한 잠자리 되시길 바라며, 이야기가 즐거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잊지 마세요. 다음 야담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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