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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의 실수, 운명을 바꾼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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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저승사자, #운명, #인과응보, #착오, #선행, #깨달음,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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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 잘못된 사람의 목숨을 거두게 된 신참 저승사자. 하룻밤의 시간을 벌어주며 벌어지는 예기치 못한 사건과 깨달음을 다룬 이야기.
01
저승의 신입 교육원에서 막 졸업한 저승사자 무령은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의 첫 임무를 받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까만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저승 사무소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한껏 들떠 있었지요.
"무령아." 수백 년 경력의 수석 저승사자가 그를 불렀습니다. "오늘 네가 거둘 영혼은 평양 성 서문 근처에 사는 김부자다. 해가 뜨기 전에 그의 목숨을 거두어 오너라."
무령은 생사명부를 받아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수석 저승사자의 다음 말에 그만 얼굴이 굳어졌지요. "특히 이번 임무는 매우 중요하다. 그가 죽지 않으면 큰 화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야."
한밤중, 무령은 평양 성 서문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했습니다. 생사명부에는 '김씨, 평양 성 서문 근처'라고만 적혀있을 뿐, 정확한 위치는 나와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수석님께 자세히 물어볼 걸 그랬나..." 무령은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때마침 달빛이 구름에 가려 주변은 더욱 어두워졌고, 골목길은 미로처럼 얽혀있었지요.
그때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등불 하나가 보였습니다. 허름한 초가집 안에서 책을 읽고 있는 선비의 모습. 그의 성씨가 김씨였고, 그가 바로 무령이 찾던 김부자라고 확신한 것이었지요.
무령은 서둘러 선비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제 저승으로 가실 시간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까만 도포자락이 휘날렸고, 순식간에 선비의 넋이 몸에서 빠져나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진짜 김부자는 마을 건너편 큰 기와집에 살고 있었고, 무령이 데려간 것은 가난한 선비의 목숨이었던 것입니다.
02
선비의 영혼을 데리고 저승으로 돌아가던 길, 무령의 발걸음이 문득 멈췄습니다. 저 멀리 기와집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그리고 그 웃음소리의 주인공... "내일이면 평양 제일의 부자가 되는 거요!" 술에 취한 사내의 고함 소리가 밤공기를 갈랐습니다.
"김참봉 나리, 아버님께서 오늘 밤 돌아가시면..." 사내의 말에 무령의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자신이 데려와야 할 김부자는 바로 그 기와집의 주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데리고 가는 이는...
무령은 황급히 생사명부를 펼쳤습니다. 달빛에 비친 글자들이 이제야 또렷이 보였습니다. '김만호, 평양 성 서문 안, 큰 기와집...' 무령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데려온 선비는 김만호가 아닌 김선행, 가난하지만 학문을 사랑하는 선비였던 것입니다.
"이 이런...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무령의 한숨 소리에 옆에 서 있던 선비의 영혼이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저승사자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선비의 육신이 이미 식어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승의 법도에 따르면 한번 거둔 목숨은 절대 돌려보낼 수 없습니다. 더구나 육신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영혼을 돌려보내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큰일났다... 큰일났어..." 무령은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이대로 저승으로 돌아가면 분명 큰 벌을 받을 것이고, 그렇다고 이대로 두자니 더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았습니다. 김부자의 아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달빛이 구름 사이로 비치자 선비의 영혼이 희미하게 빛났습니다. 그의 맑은 눈빛을 보며 무령은 더욱 죄책감에 시달렸지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은 듯한 이 선한 영혼을, 자신이 실수로 데려오다니...
03
"하늘의 법도를 어긴 저승사자는 무간지옥에 떨어지게 되어있다..." 무령은 저승사자 학교에서 배운 규율을 떠올렸습니다. 역대로 실수로 잘못된 영혼을 데려온 저승사자들은 모두 영원한 고통 속에서 그들의 잘못을 되씹어야 했지요.
저승의 밤하늘에는 수천 개의 인과의 별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 별들은 모두 인간 세상의 생명들과 연결되어 있었지요. 무령은 자신이 데려온 선비의 별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직 꺼지지 않은 희미한 불빛... 그것은 아직 희망이 남아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보시오, 저승사자님." 선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제가 보니 무슨 곡절이 있는 듯한데... 혹시 제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을까요?" 그의 목소리에는 원망이나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따뜻한 배려가 담겨 있었지요.
무령의 마음속에서 갈등이 일었습니다. 이대로 실수를 인정하고 벌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무언가 다른 방법을 찾아볼 것인가. 그때 멀리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선임 저승사자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심했습니다." 무령이 갑자기 일어섰습니다. 그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지요. "선비님, 저와 함께 돌아가시겠습니까? 비록 하룻밤뿐이지만... 당신의 육신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저승의 가장 큰 금기를 깨는 일이었습니다. 한번 거둔 영혼을 돌려보내는 것도 큰 죄인데, 게다가 자신의 실수를 숨기고 시간을 벌려 하다니... 하지만 무령은 이미 마음을 정했습니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무고한 영혼이 고통받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04
달빛이 스며드는 빈 골목길, 무령은 선비의 영혼을 그의 집 앞으로 데려왔습니다. 이제 막 식어가기 시작한 육신이 방 안에 고요히 누워있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달이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비님, 잘 들으십시오." 무령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해가 뜨기 전까지만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 전에 꼭 돌아오셔야 합니다. 만약 해가 떠오를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시면..." 무령은 잠시 말을 멈추었습니다. 차마 그 끔찍한 결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육신과 영혼이 완전히 분리되어 영원히 떠돌게 된다는 뜻이군요." 선비가 차분히 말했습니다. 저승사자도 모르는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의 통찰에 무령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무령은 검은 도포 속에서 푸른빛이 도는 염주를 꺼냈습니다. "이 염주를 가지고 계십시오. 시간이 다 되면 염주가 붉게 변할 것입니다. 그때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곳으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선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염주를 받아들었습니다. "저승사자님, 혹시... 제가 알아야 할 다른 것이 있을까요?" 그의 목소리에는 이상하게도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깊은 이해와 동정이 담겨 있었지요.
"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무령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습니다. "돌아가실 때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오늘 밤 일어난 모든 일을 누구에게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달빛이 구름에 가려지자, 무령은 마지막 주문을 외웠습니다. 순간 선비의 영혼이 푸른 빛을 내뿜으며 그의 육신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부디... 무사히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05
선비는 마치 긴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방 안에는 여전히 책들이 가지런히 쌓여있었고, 임종을 지키던 아내는 잠시 밖에 나가 있었지요. 손에 쥐어진 푸른 염주가 아니었다면, 모든 것이 꿈이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하룻밤이구나..." 선비는 책상 위에 놓인 미완성의 글을 바라보았습니다. 평생을 바쳐 쓰려 했던 백성들을 위한 책이었지요. 하지만 이제 그것을 완성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창밖으로 달빛이 스며들었습니다. 선비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시험에 급제하고도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은 것, 대신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치며 보낸 세월, 그리고 눈앞의 이익을 좇지 않고 올곧게 살아온 날들...
"후회는 없다. 하지만..." 선비의 눈가에 잔잔한 물결이 일었습니다. 아직 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병든 어머니께 마지막 인사도 못 드렸고, 제자들에게 남길 글귀도 적어두지 못했으며, 아내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말도 전하지 못했습니다.
염주의 푸른빛이 희미하게 깜빡였습니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고 있다는 신호였지요. 선비는 붓을 들었습니다. "이제라도... 이제라도 해야 할 일을 시작해야겠구나."
그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평소의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대신 단호한 결심이 서려있었지요. 이제 그에게는 단 하룻밤뿐입니다. 하지만 그 하룻밤은 그의 평생보다 더 값진 시간이 될 것입니다.
06
선비는 먼저 아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스무 해 동안 가난한 선비의 아내로 살면서도 단 한 번의 원망도 없었던 그녀에게, 마음속 깊이 간직했던 감사와 사랑을 글자 하나하나에 담았지요.
"당신이 있어 내 삶이 온전했소. 가난했지만 당신의 미소가 있어 따뜻했고, 힘들었지만 당신의 손길이 있어 행복했소." 편지를 쓰는 내내 선비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습니다.
다음으로 그는 제자들에게 남길 글을 썼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 글을 가르치며 보낸 세월... 선비는 각각의 제자들에게 맞는 가르침을 정성스레 적어 내려갔습니다. "학문은 결코 벼슬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사랑하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니라..."
푸른 염주의 빛이 조금 더 어두워졌습니다. 선비는 서둘러 어머니께 드릴 마지막 편지도 써내려갔습니다.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계신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불효였지요.
글을 다 쓴 선비는 밤길을 나섰습니다.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서였지요. 먼저 이웃집 과부의 쌀독에 몰래 쌀을 채워넣었습니다. 평소 가진 것이 없어 도와주지 못했던 일을, 이제는 자신의 마지막 양식을 나누는 것으로 갚았습니다.
그리고 마을 입구의 다리 밑에서 자고 있는 걸인에게는 자신의 겨울 도포를 벗어 덮어주었습니다. "이제 제게는 필요 없을 것이니..." 선비의 입가에 맴도는 쓸쓸한 미소가 달빛에 비쳤습니다.
우연히 그의 발걸음은 김부자의 집 근처로 향했습니다. 염주의 빛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선비는 이상한 예감에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07
김부자의 저택 앞에 다다랐을 때, 선비의 눈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습니다. 달빛 아래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담을 넘어 부자의 내실로 숨어들어가는 모습이었지요. 그리고 그 손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번뜩였습니다.
"아버지, 이제 그만 돌아가실 때가 되었소." 담 너머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 선비는 숨을 죽이고 담 틈새로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김부자의 아들이 술에 취한 채 비틀거리며 아버지의 방문을 열고 있었지요.
"이놈아! 네가 감히..." 김부자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재산은 모두 내 마음대로 할 것이다. 네놈같이 패륜적인 자식에게는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
"그래서 이미 다 기부하겠다는 문서를 작성해 두셨다지요? 하하... 그런데 아버님께서 오늘 밤 갑자기 돌아가시면, 그 문서는 무효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들의 목소리에는 광기가 서려있었습니다.
선비의 손에 쥐어진 염주가 흔들렸습니다. 푸른빛은 이제 절반도 채 남지 않았지요.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선비의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이 패륜아! 내가 네놈을..." 김부자의 고함 소리와 함께 쇠물건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어서 누군가가 쓰러지는 소리. 선비는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 살려!" 선비가 목청껏 소리를 질렀습니다. 순간 담 안의 소란이 멈추었고, 멀리서 순라군의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김부자는 그 틈을 타 방문을 잠가버렸지요.
08
선비의 손에 쥐어진 염주가 더욱 어둡게 변해갔습니다. 이제 절반도 채 남지 않은 푸른 빛은 그의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경고하고 있었지요. 그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이대로 돌아가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담 너머에서 들려오는 격렬한 소리에 선비의 마음은 흔들렸습니다. "이 패륜아! 네가 감히..." 김부자의 목소리가 다급했고,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이어졌습니다.
선비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습니다. 스무 해 전, 마을에서 한 노인이 강도를 만났을 때 그저 지나쳤던 일. 그때의 후회가 평생 그를 괴롭혔지요. '이번만큼은... 이번만큼은 달라져야 해.'
"하지만 시간이..." 염주의 빛이 더욱 어두워졌습니다. 선비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일에 휘말리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을 모두 써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내에게 마지막 인사도 못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김부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선비의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고, 달빛에 차가운 칼날이 번뜩였습니다.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습니다.
"사람 살려!" 선비의 외침이 밤공기를 갈랐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전에 없던 힘이 실려 있었지요. 평생을 유약하게 살아온 그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달랐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시간을 옳은 일에 쓰기로 한 것입니다.
09
선비의 외침 소리에 김부자의 아들이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술기운과 광기가 뒤섞인 눈빛으로 선비를 노려보았지요. "이런 곳에서 뭘 보았다고... 당신도 함께 가셔야겠소!"
달빛 아래로 번뜩이는 칼날이 선비를 향해 날아들었습니다. 선비는 겨우 몸을 피했지만, 옷자락이 칼에 베어 찢어졌지요. 그의 손에 쥐어진 염주의 빛이 더욱 희미해져갔습니다.
"순라꾼이 온다! 어서 도망가야..." 하인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김부자의 아들은 이미 이성을 잃은 듯했습니다. "증인을 남길 순 없지... 당신부터 처리하고..."
선비는 후다닥 담을 타고 넘어가 김부자의 방문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어서 문을 여시오! 제가 막아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문이 열렸고, 선비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오..." 김부자는 놀란 눈으로 선비를 바라보았습니다. 방 안에는 이미 여러 장의 기부 문서가 펼쳐져 있었지요. "당신은... 당신은 그 가난한 서생이 아니오?"
그때였습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흔들렸습니다. "아버지! 이 문을 당장 열지 않으면..." 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칼날이 문을 뚫고 들어왔습니다. 그 칼끝이 선비의 어깨를 스쳤지요.
선비의 손에서 염주가 떨어졌습니다. 이제 그 빛은 거의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선비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비록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이 될지라도,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0
동이 트기 직전, 하늘이 가장 어두운 그때였습니다. 무령이 김부자의 집 마당에 나타났습니다. 그의 검은 도포자락이 바람에 흩날렸고, 손에는 붉게 변한 염주를 들고 있었지요.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무령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습니다. 하지만 그의 앞에 펼쳐진 광경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습니다. 마당에는 순라꾼들이 김부자의 아들을 결박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는 상처 입은 선비가 김부자를 부축한 채 서 있었지요.
무령은 망설였습니다. 지금 당장 선비의 영혼을 거두어야 하지만, 뭔가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때, 멀리서 또 다른 저승사자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잠깐만요..." 선비가 힘겹게 입을 열었습니다. "김부자님의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만... 조금만 더 시간을..." 하지만 그의 말은 끝나지 못했습니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로 그의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들었습니다. 그리고 무령의 손에 한 통의 두루마리가 떨어졌지요. 저승에서 온 새로운 명령이었습니다. 무령이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펼쳤습니다.
"이것은..." 무령의 눈이 커졌습니다. 두루마리에는 뜻밖의 내용이 적혀 있었고, 그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선비님, 제가 전할 말씀이 있습니다. 염라대왕님의 새로운 명령입니다."
11
"네가 구한 그 김부자가 바로 내가 데려가려던 이였다." 무령이 두루마리를 읽어내려갔습니다. "하지만 네 선행으로 인해 그의 수명이 늘어났고, 너의 수명 또한 늘어나게 되었다. 이것이 천도의 섭리이니라..."
김부자가 놀란 눈으로 선비를 바라보았습니다. "당신이... 저를 위해..." 그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제가 오늘 죽을 운명이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무령이 대답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밤 아드님의 칼에 쓰러지실 운명이었지요. 하지만 선비님의 용기 있는 행동이 그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순라꾼들이 패륜아를 끌고 간 자리에 고요가 내려앉았습니다. 김부자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지요. "내가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하려 했던 것이 이런 화를 부를 줄이야..."
"아닙니다." 선비가 힘겹게 입을 열었습니다. "당신의 선행이 오히려 더 큰 선행을 낳은 것이지요. 제가 오늘 밤 당신의 기부 문서를 보지 못했다면, 그토록 용기 있게 나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무령은 두루마리를 마저 읽어내려갔습니다. "이에 선비의 수명을 이십 년 더하고, 김부자의 수명도 십 년을 더하노라. 이것이 하늘의 뜻이니..."
새벽하늘에 붉은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선비의 어깨에서 흐르던 피가 멈추었고, 창백하던 얼굴에도 조금씩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무령의 손에 들려있던 염주가 갑자기 밝은 빛을 내뿜더니, 푸른빛으로 다시 물들어갔지요.
12
세월이 흘러 평양 성 근처의 마을에는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학당이 세워졌고, 병든 사람들을 위한 약방도 생겼습니다. 김부자와 선비는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고 하지요.
저승에서 돌아온 선비의 책상머리에는 늘 푸른 염주 하나가 걸려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달이 밝은 밤이면 그는 마당에 나와 하늘을 바라보았지요. 그럴 때마다 까만 도포 자락이 스치는 듯한 바람이 불어왔다고 합니다.
"실수라 하기에는 참으로 기묘한 일이었다오." 무령이 선비에게 들려줬다는 이야기입니다. "평양 성 근처에 같은 성을 가진 두 사람이 있었고, 우연히 그들의 운명이 뒤바뀌었지요. 하지만 그 실수로 인해 한 사람은 깨달음을 얻었고, 다른 한 사람은 목숨을 구했으니..."
사람들은 지금도 말합니다. 달빛이 유난히 밝은 밤, 평양 성 근처를 지나다 보면 검은 도포를 입은 젊은 저승사자와 선비가 돌담 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운명에 관한 것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선행과 깨달음에 관한 것일까요? 달빛은 그저 그들을 조용히 비추어줄 뿐, 그 대화의 내용을 알려주지는 않는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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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오늘의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실수로 시작된 일이 더 큰 선행으로 이어지고, 용기 있는 선택이 운명을 바꾸어 놓은 이야기...
우리도 살다 보면 선택의 기로에 서는 순간이 있지요. 그때마다 이 선비의 용기가 우리에게 작은 울림을 주지 않을까요?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조선 시대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여러분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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