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저승의 문턱에서 나눈 대화 『출처 - 어우야담(於于野談)』
태그 (20개)
#조선시대야담, #저승사자, #삶과죽음, #마지막대화, #인생교훈, #시니어, #생사관, #저승이야기, #조선전설, #죽음준비, #인생회고, #효도, #가족사랑, #후회와용서, #태평한화골계전, #어우야담, #용재총화, #전통문화, #옛이야기, #철학
후킹 멘트 (200자)
"죽음의 순간, 저승사자 앞에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조선시대 한 노인이 저승사자와 나눈 마지막 대화가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평생을 돌아보며 털어놓은 후회와 그리움,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 죽음 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준 감동적인 이야기를 지금 들려드립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조선시대 야담집에 전해지는 저승사자와 인간의 대화를 담은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죽음을 앞둔 한 노인이 저승사자와 나누는 마지막 대화를 통해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되돌아봅니다. 효도와 가족사랑, 이웃에 대한 배려 등 우리 선조들의 아름다운 가치관이 담겨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삶에 대한 감사와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따뜻한 이야기로, 시니어 세대에게 큰 위로와 감동을 드릴 것입니다."
※ 한밤중 찾아온 손님
겨울바람이 매섭게 부는 어느 추운 밤이었습니다. 조선 중기, 한양 근교의 작은 마을에 사는 칠십 노인 박영감은 홀로 방 안에 앉아 촛불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며칠 전부터 몸이 좋지 않았는데, 오늘은 유달리 기운이 없었습니다.
"으음... 몸이 많이 무거워졌구나."
박영감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주름진 손을 바라봤습니다. 한때는 논밭을 누비며 일했던 손이었지만, 이제는 젓가락을 드는 것조차 힘겨워졌어요.
박영감은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농부였습니다. 젊은 시절 장가를 들어 삼 남매를 키우며, 부모님을 모시고 이웃들과 화목하게 지냈어요. 특별히 부자가 된 것도 아니고, 높은 벼슬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부인은 먼저 세상을 떠났고, 자식들은 모두 출가하여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어요. 큰아들은 멀리 평안도로 장사를 떠났고, 둘째 아들은 과거 공부를 위해 한양에, 딸은 시집을 가서 경상도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잘 살고 있겠지..."
박영감은 자식들을 생각하며 쓸쓸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이상하게 자식들 생각이 많이 났고, 돌아가신 부인의 꿈도 자주 꾸었어요.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문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어요. 이런 깊은 밤에 누가 찾아온다는 말인가요?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박영감은 천천히 일어나 문 쪽으로 향했어요.
"누구신지요?"
"박영감님, 찾아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낯설었지만 어딘지 친근한 느낌이 들었어요. 박영감이 문을 열어보니, 키가 크고 검은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얼굴은 엄숙해 보였지만, 눈빛만은 따뜻했어요.
"누구시길래 이런 늦은 시간에..."
"저는 먼 곳에서 온 나그네입니다. 영감님을 만나러 왔어요."
박영감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 왠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럼... 들어오시지요. 추운데 밖에 서 계실 것 없습니다."
박영감이 그를 방 안으로 맞아들였을 때,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사람이 들어오자 방 안이 이상하게 따뜻해지고, 촛불도 더욱 밝게 타오르기 시작했어요.
"차라도 한 잔 드시지요."
박영감이 차를 달이려 하자, 손님이 손을 저었습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영감님께 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그제야 박영감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습니다. 손님의 분위기가 보통 사람과는 달랐거든요. 마치 이승 사람이 아닌 것 같은...
"혹시... 혹시 당신은?"
박영감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을 때, 손님은 조용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눈치가 빠르시군요. 네, 맞습니다. 저는 저승사자입니다."
박영감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드디어 자신의 때가 온 것이었어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음 한구석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어요.
"아... 그렇군요. 그럼 제 시간이 된 건가요?"
"네, 영감님.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영감님 같은 분을 모시러 올 때면 항상 기쁩니다."
저승사자의 말에 박영감은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기쁘다고요?"
"네. 평생 착하게 사신 분들을 뵐 때면 제 마음도 따뜻해집니다. 영감님처럼 선하게 사신 분은 저승에서도 편안하실 테니까요."
박영감은 저승사자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올바르게 살아왔다는 증명을 받은 기분이었거든요.
"그런데... 바로 가야 하나요?"
"아닙니다. 영감님 같은 분에게는 충분한 시간을 드립니다. 하고 싶은 말씀이나 정리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면 천천히 하세요."
저승사자는 박영감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의 존재감이 무섭기는커녕 오히려 든든한 느낌을 주었어요.
"그럼... 조금 이야기를 나눠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저도 영감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일찍 왔습니다."
박영감의 마음이 놀라울 정도로 평온해졌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차분했어요. 아마도 저승사자의 따뜻한 배려 때문일 것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잠깐... 제가 할 이야기가 좀 있습니다."
※ 삶과 죽음 사이의 대화
박영감은 저승사자 앞에 단정히 앉아 깊은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평생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순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고요했어요.
"사자님... 죽음이라는 게 어떤 건가요?"
박영감의 첫 질문에 저승사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 되곤 했어요.
"영감님,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마치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아요."
"집으로 돌아간다고요?"
"네. 이승에서의 삶은 잠시 머무르는 여행 같은 것입니다. 여행을 마치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죽음도 그런 것이에요."
박영감은 저승사자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돌아가신 부인이 자꾸 꿈에 나타나 손을 내미는 것 같았어요.
"그럼... 먼저 간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기다리고 계셔요. 영감님의 부인도, 부모님도 모두 계십니다."
저승사자의 말에 박영감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습니다. 부인이 떠난 지 벌써 십 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그리움이 가슴을 아프게 했거든요.
"정말... 정말 만날 수 있을까요?"
"네, 영감님.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요. 부인께서 영감님을 얼마나 그리워하셨는지 아세요?"
저승사자의 말에 박영감은 참았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부인이... 저를 그리워했다고요?"
"네. 매일 영감님이 건강하게 지내는지, 제대로 드시는지 걱정하셨어요.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계세요."
박영감은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동안 너무 외로웠는데, 부인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사자님, 그럼 제가 죽는다고 해서 자식들이 너무 슬퍼하지 않을까요? 그게 걱정이에요."
저승사자는 박영감의 걱정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자식들이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슬픔도 사랑의 다른 표현이에요. 영감님이 자식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자식들도 영감님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영감님이 자식들에게 물려주신 것들을 생각해보세요. 돈이나 땅 같은 것이 아니라, 더 소중한 것들 말이에요."
박영감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저승사자가 설명했습니다.
"성실함, 정직함, 이웃에 대한 사랑, 부모에 대한 효심... 이런 것들은 영원히 남는 유산입니다. 자식들이 평생 간직하고 살아갈 보물이에요."
박영감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동안 자식들에게 별다른 재산을 물려주지 못한다고 항상 미안해했는데, 더 소중한 것을 전해주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어요.
"그런데 사자님... 저는 아직도 못다 한 일들이 있어요."
"어떤 일들인가요?"
"큰아들이 장사하러 멀리 갔는데, 편지 한 통 못 받았거든요. 안전한지, 장사는 잘되는지 궁금해요."
저승사자는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말했습니다.
"큰아들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장사도 잘 풀려서 곧 집으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영감님이 걱정하실 것 없어요."
"정말인가요?"
"네. 둘째 아들도 과거 공부가 잘 되어가고 있고, 딸도 시댁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영감님이 잘 기르셨으니까요."
박영감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자식들이 모두 잘 지내고 있다니, 더 이상 걱정할 것이 없었어요.
"그럼... 그럼 저도 마음 편히 갈 수 있겠네요."
"아직 서두르지 마세요. 하고 싶은 말씀이 더 있으실 텐데요."
저승사자의 배려에 박영감은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럼... 제 인생 이야기를 좀 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저도 듣고 싶어요."
※ 평생을 돌아보며
박영감은 촛불을 바라보며 먼 과거를 떠올렸습니다. 칠십 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어요.
"저는 참... 평범한 사람이었어요.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서 평생 흙을 만지며 살았거든요."
"평범하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영감님의 삶을 제가 다 지켜봤는데, 결코 평범하지 않았어요."
저승사자의 말에 박영감이 놀란 듯 쳐다봤습니다.
"제 삶을 지켜보셨다고요?"
"네. 저희는 모든 사람의 삶을 기록하고 있어요. 영감님이 한 일들, 도움을 준 사람들, 나눈 사랑들...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박영감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럼... 제가 잘못한 일들도 다 아시겠네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영감님의 잘못은 선행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들뿐이었어요."
저승사자는 공중에 손을 휘두르자, 박영감의 인생이 마치 그림처럼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 가난해서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지만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했던 모습이 보였어요.
"아, 저때가..."
스무 살 때 장가를 들어서는 아름다운 부인과 함께 작은 초가집에서 행복해했던 모습도 나타났습니다.
"부인이... 정말 예뻤지."
박영감의 눈에 그리움이 어렸습니다.
이어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키우느라 고생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갔어요. 가난해서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옷도 사주지 못했지만, 사랑만큼은 넘치도록 주었던 모습들이었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해준 게 별로 없는데..."
"아닙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해주셨어요."
그때 한 장면이 나타났습니다. 큰아들이 열 살 때, 다른 아이들과 싸우고 와서 울고 있었어요. 박영감이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달래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들아, 싸우는 건 좋지 않다. 하지만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면 포기하지는 마라. 다만 주먹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저런 말을 했었나요?"
"네. 그때 큰아들이 영감님의 말을 가슴에 새겨두었어요. 지금도 장사를 하면서 정직하게 사는 것은 그때 배운 교훈 때문이에요."
박영감은 자신도 모르게 뿌듯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또 다른 장면이 나타났습니다. 이웃집에 흉년이 들어서 굶고 있을 때, 박영감이 자신의 쌀을 나누어주는 모습이었어요.
"아, 그때 김서방네 일이군요."
"네. 영감님은 자신도 넉넉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이웃을 도왔어요."
그때 부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던 모습도 나타났습니다.
"여보, 우리도 넉넉하지 않은데 이렇게 나누어주면 어떡해요?"
박영감이 부인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어요.
"당신, 우리가 굶어 죽지는 않을 거요. 하지만 저 사람들은 정말 굶어 죽을 수도 있어요.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실 거요."
"정말 그랬네요. 그 후로 농사가 더 잘 되었잖아요."
저승사자가 미소를 지었습니다.
"선행에는 반드시 복이 따르는 법입니다."
이어서 부모님을 모시던 모습들이 나타났어요. 부모님이 병드셨을 때 밤낮으로 간병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정성껏 모셨던 모습들이었습니다.
"부모님... 제대로 모셨을까요?"
"충분히 잘 하셨어요. 부모님께서 얼마나 고마워하셨는지 아세요?"
부모님이 임종하실 때의 모습도 나타났습니다.
"영감아... 너 덕분에 우리가 편안히 갈 수 있겠다..."
"어머니..."
박영감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그리고 부인을 간병하셨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부인이 병들어 누웠을 때, 박영감이 약을 구하러 다니고 정성껏 돌봤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어요.
"여보... 고생만 시켜서 미안해요."
병상의 부인이 미안해하자, 박영감이 대답했습니다.
"무슨 소리요. 당신과 함께한 시간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어요."
"그때... 정말 그랬어요."
박영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부인도 같은 마음이셨어요. 영감님과 함께한 시간을 평생의 보물이라고 하셨어요."
저승사자의 말에 박영감은 더욱 울컥했습니다.
"정말...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살았구나."
"네. 그리고 영감님도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었어요."
※ 마지막 소원들
박영감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 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되는 것들이 있었어요.
"사자님... 제가 가면 이 집은 어떻게 될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큰아들이 곧 돌아와서 집안을 정리할 거예요. 영감님이 평생 가꾸신 것들이 헛되지 않을 겁니다."
박영감이 고개를 끄덕이며 방 안을 둘러봤습니다. 낡았지만 정성스럽게 관리해온 가구들, 부인이 쓰던 바느질 도구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쓰던 물건들... 모든 것에 추억이 서려 있었어요.
"저 장롱 속에 편지들이 있어요. 자식들이 보낸 편지들인데... 그것들을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어요."
"무슨 편지인가요?"
"큰아들이 처음 장사하러 떠날 때 써준 편지, 둘째가 과거 보러 가면서 남긴 편지, 딸이 시집갈 때 저에게 쓴 편지... 모두 소중한 것들이에요."
박영감이 일어나서 장롱을 열자, 정성스럽게 보관된 편지들이 나왔습니다. 하나하나가 모두 아이들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보물이었어요.
"아이들이 이 편지들을 다시 받으면 어떨까요?"
"분명 감동받을 거예요. 아버지가 얼마나 소중하게 간직했는지 알게 되면 더욱 효심을 다할 겁니다."
저승사자가 편지들을 하나씩 살펴보더니 감동받은 듯 고개를 끄덕였어요.
"특히 이 편지를 보세요."
그가 꺼낸 것은 딸이 시집가기 전날 밤에 쓴 편지였습니다.
'아버지, 내일이면 저는 다른 집 사람이 됩니다. 그동안 부족한 딸을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버지의 사랑 덕분에 저는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었어요. 시댁에 가서도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겠습니다.'
"아... 우리 딸이..."
박영감의 눈에서 또 눈물이 흘렀습니다.
"딸이 시댁에서도 이 편지에 쓴 대로 잘 살고 있어요. 시어머니도 며느리 자랑을 하실 정도로요."
"정말인가요?"
"네. 영감님이 잘 가르치신 덕분입니다."
박영감은 편지들을 다시 정성스럽게 정리했어요. 그리고는 저승사자에게 부탁했습니다.
"이 편지들을 아이들에게 꼭 전해주세요. 그리고... 이것도 같이요."
박영감이 꺼낸 것은 작은 나무 상자였습니다. 안에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만들어준 작은 장난감들과 첫니가 빠졌을 때 모아둔 젖니들, 그리고 아이들이 처음 쓴 글씨들이 들어 있었어요.
"이런 것들까지 간직하고 계셨군요."
"별 것 아닌 것들이지만... 저에게는 보물이었어요. 아이들도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해요."
저승사자는 조용히 상자를 받았습니다.
"반드시 전해드리겠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기뻐할지..."
그때 박영감이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말했어요.
"아, 그리고 이웃 할머니께도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어떤 말씀인가요?"
"옆집 최 할머니요. 혼자 살고 계시는데, 제가 가끔 밭에서 나는 채소를 갖다 드렸거든요. 제가 없으면 누가 돌봐드릴지 걱정이에요."
박영감의 걱정에 저승사자가 미소지었습니다.
"걱정 마세요. 할머니 아들이 곧 모셔갈 예정이에요. 그리고 영감님의 큰아들도 돌아오면 할머니를 잘 돌봐드릴 거예요."
"정말인가요? 다행이네요."
박영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요.
"그런데... 제가 한 가지 더 걱정되는 게 있어요."
"뭐든지 말씀해보세요."
"우리 집 뒤뜰에 있는 감나무요. 부인이 살아계실 때 함께 심은 건데... 누가 돌봐줄지 모르겠어요."
박영감은 창문을 통해 뒤뜰의 감나무를 바라봤습니다. 몇십 년 동안 정성스럽게 가꾼 나무였고, 매년 가을이면 달콤한 감을 맺어서 이웃들과 나누어 먹곤 했어요.
"그 나무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네. 부인과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 함께 심었어요. '우리 사랑처럼 오래오래 자라라'고 말하면서요."
박영감의 목소리에 그리움이 가득했어요.
"부인이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말씀하셨어요. '여보, 내가 죽어도 감나무만은 잘 돌봐줘요. 그 나무를 볼 때마다 우리의 사랑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고요."
저승사자는 감동받은 듯 잠시 침묵했습니다.
"영감님, 큰아들이 그 나무의 의미를 알고 있어요. 부인께서 살아계실 때 얘기해주신 모양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인가요?"
"네. 그리고 그 나무는 앞으로도 계속 열매를 맺을 거예요. 영감님과 부인의 사랑이 깃든 나무니까요."
박영감은 마침내 마음의 짐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자식들 걱정, 이웃 걱정, 심지어 감나무 걱정까지... 모든 것이 잘 정리될 것이라는 안심이 들었어요.
"고맙습니다, 사자님.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어요."
"영감님, 아직 하고 싶은 말씀이 더 있으실 텐데요."
"그럼... 조금 더 이야기해도 될까요?"
저승사자는 따뜻한 미소로 대답했습니다.
"얼마든지요."
※ 용서와 화해의 시간
박영감은 깊은 한숨을 쉬며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사자님... 사실 제가 평생 후회하는 일이 하나 있어요."
"어떤 일인가요?"
"젊었을 때 일인데... 친구 하나와 크게 다투고 평생 말을 안 했어요."
박영감의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무슨 일로 다투셨나요?"
"땅 경계 문제였어요. 서로 자기 땅이라고 우기다가... 결국 법정까지 가게 되었죠."
박영감은 사십여 년 전의 일을 떠올리며 계속 말했어요.
"김서방이라고,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죽마고우였어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는... 참 어리석었어요."
"결국 어떻게 되었나요?"
"제가 이겼어요. 그 땅이 제 것이 맞았거든요. 하지만... 이기고 나니까 더 허전했어요."
박영감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났어요.
"김서방은 그 일로 마을을 떠났어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죠. 그 후로 한 번도 못 봤어요."
"많이 후회되셨겠네요."
"네... 평생 후회했어요. 땅 한 뙈기가 뭐라고... 친구를 잃어버렸을까요?"
저승사자는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말했습니다.
"영감님, 김서방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네?"
"김서방도 영감님을 그리워했어요. 평생 후회하면서 살았습니다."
박영감의 눈이 커졌습니다.
"정말인가요?"
"네. 김서방은 5년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마지막에 가족들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박영감에게 미안하다고... 어리석은 일로 우정을 잃어서 후회한다고 전해달라'고요."
박영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랬구나... 그 친구도..."
"그리고 김서방이 이사 간 후에도 영감님 소식을 계속 물어보고 다녔대요. 건강하게 잘 지내는지, 가족들은 어떤지..."
"세상에... 저도 그 친구 생각을 안 한 날이 없었는데..."
박영감은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영감님, 저승에서 김서방을 만나게 되면 모든 오해가 풀릴 거예요. 진짜 친구로 다시 만날 수 있어요."
"정말...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진정한 우정은 죽음으로도 끊어지지 않아요."
박영감은 마음속 깊은 곳의 응어리가 풀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평생 짊어지고 다닌 짐을 내려놓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또 다른 후회도 있어요."
"말씀해보세요."
"둘째 아들한테 너무 엄했나 싶어요. 공부를 열심히 시키려고 했는데, 가끔은 너무 다그쳤던 것 같아요."
박영감은 아들을 생각하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어요.
"아들이 어렸을 때 한 번은 글공부를 소홀히 했다고 호되게 꾸짖은 적이 있어요. 그때 아이가 펑펑 울면서... '아버지는 저를 미워하세요'라고 했거든요."
"그때 어떻게 하셨나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얼른 아이를 안고 '아버지가 너를 어떻게 미워하겠느냐,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거다'라고 말했죠."
박영감의 목소리가 떨렸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너무 엄했나 싶어요."
저승사자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닙니다. 둘째 아들은 영감님의 그 사랑을 잘 알고 있어요."
"그런가요?"
"네. 아들이 친구들에게 자주 이런 말을 해요. '우리 아버지는 엄하셨지만, 그만큼 저를 사랑하셨어요. 덕분에 제가 올바른 길을 갈 수 있었어요'라고요."
박영감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정말... 정말 그런 말을 해요?"
"네. 그리고 과거 공부를 하면서도 항상 영감님을 생각해요. '아버지께서 기대하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면서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박영감은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그럼... 제가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겠네요."
"네. 영감님의 사랑이 아이들에게 잘 전해졌어요."
그때 박영감이 또 다른 걱정을 털어놓았어요.
"사실... 부인한테도 미안한 게 있어요."
"부인께요?"
"살림이 어려울 때 한 번은... 술을 마시고 와서 부인에게 화를 낸 적이 있어요. 부인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박영감의 목소리가 작아졌어요.
"다음 날 정신이 들고 나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 사과했지만... 평생 미안했어요."
저승사자는 따뜻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영감님, 부인은 그런 거 기억도 안 해요."
"정말인가요?"
"네. 부인께서 말씀하시길, '한평생 함께 살면서 그 정도야 당연한 거 아니냐, 그보다 좋은 일이 훨씬 많았다'고 하세요."
박영감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정말... 좋은 사람과 결혼했구나."
"네. 그리고 부인도 영감님을 만난 게 인생 최고의 행복이었다고 하세요."
※ 평안한 이별
모든 이야기를 마친 박영감의 얼굴에는 평화로운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마음의 짐을 다 내려놓고 나니, 몸도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어요.
"사자님... 덕분에 정말 많은 걸 정리할 수 있었어요. 고맙습니다."
"저도 영감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런 분을 모시는 것이 제 일의 가장 큰 보람입니다."
저승사자의 말에 박영감이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이 뭐가 그렇게 특별한가요?"
"영감님, 평범함 속에 담긴 위대함을 모르세요. 사랑하고, 베풀고, 용서하며 살아오신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삶이에요."
저승사자는 일어서서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동쪽 하늘이 살짝 밝아오고 있었어요.
"이제... 시간이 된 것 같네요."
박영감도 천천히 일어났습니다.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어요. 오히려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설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자님... 부인을 정말 만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부인께서 영감님을 기다리고 계세요. 그리고..."
저승사자가 잠시 미소를 지었어요.
"부모님도, 김서방도 모두 기다리고 계세요."
박영감의 눈에 기쁨의 눈물이 맺혔습니다.
"정말... 정말 다시 만날 수 있다니..."
"네. 그리고 영감님이 사랑했던 모든 분들을 다시 만나실 거예요."
박영감은 마지막으로 방 안을 둘러봤습니다. 칠십 년을 살아온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아쉽지 않았습니다.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니까요.
"자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해주세요."
"어떤 말씀을 하실 건가요?"
박영감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말했어요.
"아버지는 행복했다고... 너희들 덕분에 정말 행복한 인생이었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서로 사랑하며 살라고... 부모님께 효도하듯 형제끼리도 아끼고 살라고요."
"꼭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웃들과도 잘 지내라고.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게 인생이니까요."
저승사자가 고개를 끄덕였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박영감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하늘님... 좋은 인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시고, 사랑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어린 감사가 담겨 있었어요.
"그럼 이제... 갈까요?"
저승사자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박영감은 주저 없이 그 손을 잡았어요.
"네, 가요."
두 사람이 문을 나서는 순간,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따뜻한 빛이 박영감을 감쌌고,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졌어요.
"아... 이런 기분이군요."
"어떤 기분이세요?"
"마치...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저승사자가 미소를 지었습니다.
"맞습니다. 진짜 집으로 가는 거예요."
멀리서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환한 빛 속에서 친숙한 실루엣들이 보였어요.
"여보... 여보!"
부인의 목소리였습니다. 박영감은 눈물을 흘리며 그쪽으로 걸어갔어요.
"당신... 정말 당신이야?"
"오래 기다렸어요. 수고 많았어요."
부인의 따뜻한 품에 안기는 순간, 박영감은 완전한 평안을 느꼈습니다.
"아들아, 잘 왔다."
부모님의 목소리도 들렸어요.
"영감! 미안했다!"
김서방의 목소리까지...
박영감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는 그 아름다운 재회를 지켜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어요. 또 한 분의 선한 영혼을 무사히 인도했다는 보람이 가슴을 따뜻하게 했습니다.
"잘 가세요, 박영감님."
그의 작은 속삭임이 새벽 바람에 실려 흩어져 갔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어떠셨나요? 조선시대 야담집에 전해지는 저승사자와의 마지막 대화 이야기였습니다. 죽음을 앞둔 한 노인이 평생을 돌아보며 나눈 감동적인 대화를 통해,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박영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사랑하고, 베풀고, 용서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주죠. 효도와 가족사랑, 이웃에 대한 배려... 이런 것들이 바로 인생의 진짜 보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재회라는 따뜻한 메시지도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더욱 신비로운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저승사자의 초대장" - 평범한 사람이 받게 된 저승으로의 특별한 초대와 그곳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일들. 구독과 좋아요로 계속해서 우리 선조들의 지혜로운 이야기들을 만나보세요!
#조선시대야담 #저승사자 #삶과죽음 #인생교훈 #시니어이야기
https://claude.ai/public/artifacts/4c1a3be2-83d3-4233-b91c-d52f130c0d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