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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하게 산 노인과 저승사자

황금 인생 21 2026. 7. 31.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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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직하게 산 노인과 저승사자

    태그(1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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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평생을 바보스러울 만치 정직하게 살아온 노인. 어느 날, 서늘한 바람과 함께 검은 도포를 입은 저승사자가 그의 앞에 나타납니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게 웃음 짓는 이 노인의 마지막 길은 어땠을까요? 차가운 저승사자의 마음마저 녹여버린, 어느 정직한 노인의 따뜻하고 감동적인 저승길 동행기. 지금 시작합니다.

    ※ 1: 달빛 고요한 밤, 노인의 초가집을 찾아온 저승사자와의 만남.

    달빛조차 숨을 죽인 듯 고요한 깊은 밤이었습니다. 마을 어귀에 자리한 허름한 초가집 툇마루 위로, 서늘하고 푸른 안개가 소리 없이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밤이었지만, 마당 한구석에 세워진 낡은 싸리빗자루가 미세하게 흔들렸고, 밤벌레들의 울음소리마저 일순간 멎어버렸습니다. 평생을 흙과 함께하며 굳은살이 박인 손으로 정직하게만 살아온 늙은 농부의 집. 그 소박하고 조용한 뜨락에 불길하고도 서늘한 기운이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방 안에서는 일흔을 넘긴 노인이 낡은 솜이불을 덮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깊게 패인 주름과 앙상한 어깨는 그가 평생 짊어지고 온 삶의 무게를 짐작하게 했지만, 잠든 얼굴만큼은 갓난아이처럼 평온하고 맑았습니다. 그때,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이 삐걱이는 소리 하나 없이 스르륵 열렸습니다. 방 안의 온기를 단숨에 얼려버릴 듯한 냉기와 함께, 칠흑같이 검은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높은 갓을 쓴 거대한 그림자가 방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창백한 얼굴에 감정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 서늘한 눈매, 손에는 붉은 글씨가 빼곡히 적힌 명부를 든 자. 바로 이승의 수명이 다한 자를 데려간다는 저승사자였습니다.

    '때가 되었군. 이승에서의 칠십삼 년, 오늘로 끝이다.'

    저승사자는 차가운 눈빛으로 잠든 노인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수백,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인간의 죽음을 지켜보며 그가 마주한 것은 늘 비명과 통곡, 후회와 살려달라는 애원이었습니다. 방바닥을 긁으며 도망치려는 자, 자신의 재물을 내어놓으며 하루만 명을 연장해 달라는 자, 억울하다며 소리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지요. 저승사자는 이번에도 늘 그랬듯, 노인이 깨어나면 벌어질 소란스러운 저항을 예상하며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김춘배. 명부의 적힌 네 놈의 수명이 오늘 자시를 기해 모두 다하였으니, 이제 이승의 미련을 버리고 나를 따라나서야겠다."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좁은 방 안을 울렸습니다. 그 서늘한 기운에 노인의 감겨 있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잠결에 마주한 낯설고 두려운 존재.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기절초풍을 하거나 덜덜 떨며 자지러졌을 테지만, 노인은 그저 멍하니 저승사자를 올려다볼 뿐이었습니다.

    정적이 흘렀습니다. 저승사자는 노인이 공포에 질려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한 걸음 더 다가가며 재차 압박하려던 찰나, 노인의 입에서 뜻밖의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그것은 비명도, 탄식도 아닌, 아주 작고 부드러운 웃음소리였습니다.

    "허허… 올 분이 오셨구려."

    노인은 놀라거나 허둥대는 기색 없이, 그저 밭일을 마치고 돌아온 손님을 맞이하듯 천천히 몸을 일으켰습니다. 덮고 있던 이불을 반듯하게 개어 방 한구석에 밀어 넣은 뒤, 저승사자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자는 무어냐. 두렵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제정신이 아닌 것인가.'

    저승사자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습니다. 그가 아무 말 없이 서 있자, 노인은 벽에 걸린 부싯돌을 가져다 조심스레 등잔에 불을 밝혔습니다. 노르스름한 불빛이 방 안을 은은하게 채우며 저승사자의 검은 실루엣을 더욱 선명하게 비추었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소이다. 내 비록 수명이 다해 떠나야 할 처지나, 이승의 마지막 밤에 귀한 손님을 맞았으니 어찌 그냥 모실 수 있겠소."

    "네놈은 내가 누군지 정녕 모르는 것이냐? 나는 네 목숨을 거두러 온 저승의 차사다. 당장 숨이 끊어질 마당에 손님 대접이라니, 실성이라도 한 것이냐."

    저승사자의 날 선 목소리에도 노인은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습니다.

    "어찌 모르겠소이까. 검은 도포에 서늘한 기운,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시는 걸 보니 저승에서 오신 사자 나으리시겠지요. 허나, 태어남이 있으면 돌아감도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거늘. 나으리께서는 그저 하늘의 심부름을 하실 뿐인데, 어찌 두려워하고 미워하겠습니까. 마침 아궁이에 미열이 남아있으니, 따뜻한 숭늉이라도 한 그릇 내어 오리다. 잠시만 앉아 쉬시지요."

    노인은 굽은 허리를 두드리며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갔습니다. 저승사자는 자리에 선 채로 멍하니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도망치려는 수작인가 싶어 노기를 띠고 뒤를 따랐지만, 노인은 정말로 부엌으로 들어가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남은 불씨를 살리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노인이로다. 죽음 앞에서 이토록 평온한 인간은 내 차사 노릇 수백 년에 처음 보는구나. 억지로 평온을 가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정 마음을 비운 것인지….'

    아궁이에서 타닥타닥 타오르는 작은 불꽃이 노인의 주름진 얼굴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수한 냄새와 함께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사기그릇 두 개가 소반 위에 올려졌습니다. 노인은 소반을 들고 방으로 돌아와 저승사자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누추한 곳이라 대접할 것이 이것뿐입니다. 이승의 온기라도 조금 채우고 가시지요."

    저승사자는 가만히 소반 위의 숭늉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그 따뜻한 물 한 그릇에, 왠지 모를 기묘한 감정이 일었습니다. 결코 이승의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 그였지만, 노인의 그 맑고 티 없는 눈빛 앞에서는 차마 거절의 말을 내뱉기 어려웠습니다. 저승사자는 말없이 자리에 앉았고, 노인은 그제야 맞은편에 앉아 천천히 숭늉을 들이켰습니다. 방 안에는 한동안 그릇 부딪치는 작은 소리만이 울려 퍼졌습니다. 달빛은 여전히 고요했고, 노인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 2: 이승에 남겨진 이들을 위한 노인의 담담하고 따뜻한 마지막 정리.

    숭늉 그릇을 정갈하게 비운 노인은 소반을 한쪽으로 치워두고, 방 한구석에 놓인 낡은 나무 궤짝을 조심스레 열었습니다. 저승으로 떠날 자가 이승의 물건을 챙기려는 것인가 싶어 저승사자는 가만히 노인의 행동을 응시했습니다.

    '아무리 달관한 척해도 결국 인간이거늘. 재물이 눈에 밟히는 모양이지.'

    하지만 저승사자의 예상과 달리, 노인이 궤짝에서 꺼낸 것은 엽전이나 귀한 비단이 아니었습니다. 다 해진 삼베옷 한 벌과 닳고 닳아 뭉툭해진 호미 자루, 그리고 곱게 접힌 닥종이 몇 장이 전부였습니다. 노인은 닥종이를 펼쳐 붓에 먹을 푹 적시더니, 떨리는 손으로 무언가를 꾹꾹 눌러 적기 시작했습니다. 방 안에는 오직 먹이 종이에 스미는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가득했습니다. 저승사자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슬쩍 고개를 내밀어 종이의 내용을 훔쳐보았습니다.

    [건넛마을 칠성이 네 보아라. 지난봄에 빌려 간 씨앗 반 말은 내년 보리 타작 때 돌려주기로 하였으나, 내 급히 먼 길을 떠나게 되어 갚을 길이 묘연해졌구나. 내 밭둑에 심어둔 감나무에서 올해는 제법 실한 감이 열릴 터이니, 가을이 되거든 그 감을 모두 따다 네 아이들에게 먹이거라. 그것으로 빚을 대신함에 서운타 생각지 말아다오.]

    또 다른 종이에는 옆집 과부댁에게 남기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앞마당 장독대 밑에 묻어둔 작은 항아리에는 내 겨울을 나려 모아둔 쌀 한 되가 있네. 내게는 이제 필요 없는 물건이니, 다가오는 추위에 댁의 어린것들 주린 배나마 채워주시게. 살아서 더 베풀지 못하고 가는 늙은이의 작은 마음이니 부디 거절치 말아주게나.]

    글을 쓰는 노인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았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자가, 그것도 당장 제 목숨 하나 간수하기 바쁜 상황에서 타인에게 남긴 빚과 이웃의 끼니를 걱정하고 있다니요.

    "노인장."

    저승사자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서늘함을 잃고 조금 흔들렸습니다.

    "이제 곧 이승을 떠나 흙으로 돌아갈 몸이오. 헌데 어찌 남겨진 자들의 사소한 빚과 끼니를 챙긴단 말이오. 죽고 나면 이승의 일은 그저 흩어지는 안개와 같은 것을. 어차피 당신이 떠나면 아무도 그 빚을 재촉하지 않을 터인데, 참으로 부질없는 짓이 아니오."

    노인은 붓을 천천히 내려놓고는 사람 좋은 얼굴로 허허 웃었습니다.

    "나으리 말씀이 맞소이다. 죽고 나면 다 부질없는 일이지요. 허나, 내가 이승에 태어나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고 은혜를 입었거늘, 떠나는 마당에 그 빚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가는 것은 인간 된 도리가 아니지 않겠소이까. 비록 가진 것 없는 가난한 농부로 살았으나, 평생 남의 것 하나 탐내지 않고 내 땀 흘려 얻은 것으로만 연명하며 살고자 했소.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님을 뵈올 때, 적어도 이승에 빚을 남기고 온 파렴치한 놈이라는 꾸지람은 듣고 싶지 않다오."

    '이토록 맑은 영혼이라니….'

    저승사자는 속으로 깊은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명부의 기록만 보아서는 그저 평범하고 가난한 백성이었지만, 그의 영혼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웬만한 성인군자보다도 맑고 깨끗했습니다. 노인은 글을 다 적은 종이를 가지런히 모아 방 한가운데에 잘 보이도록 돌로 눌러두었습니다. 그리고는 벽에 걸린 낡은 무명 두루마기를 꺼내 입고, 닳아빠진 짚신을 단단히 고쳐 신었습니다.

    "나으리. 이제 모든 채비가 끝났소이다. 이승에서의 부질없는 미련은 모두 이 방 안에 남겨두었으니, 이제 가시지요."

    노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섰습니다. 뒤를 따르는 저승사자의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마당을 나서던 노인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는, 평생을 비바람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준 허름한 초가집을 향해 깊이 허리를 굽혀 절을 올렸습니다.

    "잘 있거라. 덕분에 칠십 평생 따뜻하게 잘 머물다 간다."

    그것은 이승이라는 거대한 여관에 잠시 머물렀던 여행자의 진심 어린 감사 인사였습니다. 저승사자는 허공에 손을 휘둘러 이승과 저승을 잇는 짙은 안갯길을 열었습니다.

    "이 길을 넘어서면 다시는 이승을 돌아볼 수 없소. 정말 후회는 없소이까?"

    저승사자의 마지막 물음에 노인은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후회라니요. 정직하게 하루하루를 꽉 채워 살았으니, 비워낼 것도 남길 것도 없소이다. 자, 앞장서시지요."

    차갑고 냉혹하기만 했던 저승사자의 마음 한구석에, 난생처음으로 이 늙고 초라한 인간을 향한 깊은 경외심이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서서히 짙어지는 안개 속으로,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조용히 스며들어갔습니다.

    ※ 3: 저승길 첫 번째 관문, 굶주린 원귀들을 만난 노인과 사자.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가르는 황천길. 그곳은 빛도 그림자도 없는 잿빛 안개만이 자욱하게 깔린 끝없는 황야였습니다. 발아래로는 생기를 잃은 메마른 흙먼지가 날렸고, 허공에서는 짐승의 울음소리인지 사람의 흐느낌인지 모를 기괴하고 서늘한 바람 소리만이 맴돌았습니다. 살아생전 아무리 큰 권력을 쥐었던 자라도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뼈를 파고드는 두려움과 추위에 벌벌 떨며 주저앉고 마는, 저승의 첫 번째 관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노인의 발걸음은 여전히 꼿꼿하고 평온했습니다. 낡은 짚신을 신은 발이 거친 돌부리에 차이고 차가운 흙바닥에 쓸려도, 노인은 작은 신음조차 내지 않고 묵묵히 저승사자의 뒤를 따랐습니다.

    '보통의 영혼들은 이 안개 속에서 환영을 보며 미쳐가거나 공포에 질려 걸음을 떼지 못하거늘. 참으로 범상치 않은 기백이다.'

    저승사자가 내심 감탄하며 잰걸음을 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안개 속에서 '스스슥' 하는 기분 나쁜 마찰음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짙은 안개가 소용돌이치듯 갈라지더니,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시커먼 그림자들이 이리저리 뒤엉키며 두 사람의 앞길을 가로막았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얼굴, 뼈만 남은 앙상한 손아귀, 원망과 한이 가득 서린 핏발 선 눈동자들. 그것은 이승에서 억울하게 죽거나 제 명을 다하지 못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원귀들이었습니다.

    원귀들은 산 자의 영혼 냄새, 특히 노인처럼 맑고 순수한 영혼의 기운을 탐내며 굶주린 들개들처럼 몰려들었습니다.

    "배가 고프다… 춥다… 네놈의 온기를 내놓아라!"

    "나는 억울하게 죽었다! 왜 너만 편안히 길을 가는 것이냐!"

    찢어질 듯한 괴성과 함께 수십 개의 검은 손아귀가 노인의 옷자락을 향해 뻗어왔습니다. 저승사자는 눈빛을 매섭게 빛내며 도포 자락을 거칠게 펄럭였습니다.

    "이승의 찌꺼기 같은 것들이 감히 사자의 앞길을 막느냐! 물러서지 않으면 지옥의 불꽃으로 영혼마저 태워버릴 것이다!"

    저승사자의 서릿발 같은 호통에 원귀들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지만, 극도의 굶주림과 원한에 사로잡힌 그들은 쉽게 길을 내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승사자가 쇠사슬을 꺼내어 원귀들을 매질하며 강제로 길을 내려던 순간이었습니다.

    "나으리, 잠깐만 고정하시지요."

    줄곧 묵묵히 뒤를 따르던 노인이 저승사자의 소매를 가만히 붙잡았습니다.

    "이깟 원귀들에게 동정심이라도 베푸려는 것이오? 이들은 이성을 잃고 오직 산 자를 원망하는 껍데기일 뿐이오. 비키시오!"

    하지만 노인은 저승사자의 만류를 부드럽게 뿌리치고는, 흉측한 몰골로 으르렁거리는 원귀들 앞으로 성큼 다가섰습니다. 두려움에 뒷걸음질 치기는커녕, 노인은 제멋대로 뻗어오는 원귀들의 차갑고 뾰족한 손을 자신의 따뜻한 두 손으로 살포시 감싸 쥐었습니다.

    "얼마나 춥고 외로웠소. 이승에서의 삶이 얼마나 모질고 아팠기에, 떠나온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차가운 안개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이오."

    노인의 진심 어린 한탄과 젖은 목소리가 안개 속으로 잔잔하게 퍼져 나갔습니다. 원귀들은 노인의 따뜻한 체온과 그보다 더 따뜻한 위로의 말에 일순간 동작을 멈추었습니다. 늘 자신들을 역겨워하며 도망치거나 폭력으로 쫓아내려는 자들만 보아왔을 뿐, 먼저 다가와 손을 잡아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비록 가진 것 하나 없이 빈손으로 온 영혼이라 그대들의 주린 배를 채워줄 음식은 없소이다. 허나, 평생 흙을 일구며 지은 농사꾼의 굳은살 박인 이 두 손으로, 그대들의 얼어붙은 마음이나마 조금 쓰다듬어 주고 싶구려. 이승의 한은 모두 내 옷자락에 닦아내고, 부디 이 차가운 길을 벗어나 따뜻한 빛을 찾아가시구려."

    노인은 앙상하게 마른 원귀들의 등을 일일이 쓰다듬으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노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방울이 잿빛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눈물이 닿은 자리마다 환하고 따뜻한 금빛 연꽃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연꽃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화한 빛이 원귀들의 몸을 감싸자,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던 그들의 얼굴이 서서히 생전의 평온한 모습으로 변해갔습니다.

    "고맙습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한과 저주로 가득했던 괴성 대신, 평온을 되찾은 영혼들의 잔잔한 감사 인사가 맴돌았습니다. 원귀들은 노인을 향해 깊이 절을 올린 뒤, 금빛 연꽃이 만들어낸 따뜻한 길을 따라 저승의 안식처로 스르륵 흩어지듯 사라졌습니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저승사자는 망연자실한 채 굳어버렸습니다. 사자의 무력과 형벌로도 다스리지 못했던 원귀들의 깊은 한을, 이 늙고 초라한 인간의 진심 어린 눈물 한 방울이 녹여버린 것입니다.

    '인간의 선한 마음이 저승의 법도마저 초월하다니….'

    저승사자는 가슴 깊은 곳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언제나 앞장서서 차갑게 길을 인도하던 저승사자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뒷짐을 진 채 환하게 웃고 있는 노인의 굽은 등을 그저 경외로운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승길의 자욱했던 안개가 걷히고, 두 사람의 앞에는 이전에 없던 온화하고 밝은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 4: 저승길 두 번째 관문, 길 잃은 영혼을 위해 자신의 적덕(積德)을 내어주는 노인.

    원귀들의 한을 달래주고 잿빛 안개를 벗어난 두 사람 앞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가혹한 절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저승의 두 번째 관문이라 불리는 한빙검수, 즉 얼음과 칼날의 산이 그 거대한 위용을 드러낸 것입니다. 산등성이는 온통 날카로운 짐승의 송곳니처럼 뾰족하게 깎인 검은 얼음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바위틈마다 시퍼렇게 날이 선 쇠 가시덤불이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얽혀 있었습니다. 이승에서 지은 죄가 많거나 남에게 베푼 덕이 없는 자들이, 오직 맨발로 피를 흘리며 넘어야만 하는 잔혹한 형벌의 고개였습니다. 하늘에서는 살점을 베어낼 듯한 차가운 얼음바람이 미친 듯이 몰아쳤고, 허공에는 고개를 넘다 지쳐 쓰러진 수많은 영혼들의 고통스러운 신음만이 처절하게 메아리치고 있었습니다. 평범한 영혼이라면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 압도적인 공포와 추위에 짓눌려 바닥에 엎드린 채 살려달라 애원하기 마련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승사자의 뒤를 따르는 노인의 발걸음은 평지에 있을 때와 다름없이 꼿꼿하고 평온하기만 했습니다. 노인의 낡은 짚신은 얼음처럼 차가운 바윗길 위를 걷고 있음에도 신기하게 젖거나 해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노인의 깡마른 몸 주변으로 아주 옅지만 따뜻한 금빛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며 살을 에이는 삭풍을 온화하게 막아주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은 노인이 평생을 살며 이웃에게 대가 없이 베풀었던 작은 친절과 정직함이, 저승에 와서 영혼을 지켜주는 적덕의 빛으로 발현된 것이었습니다. 저승사자는 앞장서서 걸으면서도 곁눈질로 노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온화한 기운을 경이롭게 바라보았습니다. 수많은 망자를 인도해 보았지만, 제왕이나 고승이 아닌 일개 촌부의 몸에서 이토록 순수하고 단단한 공덕의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은 실로 처음 보는 광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지독한 얼음과 가시의 고개도 이 맑은 노인에게는 그저 동네 뒷산의 평탄한 언덕길에 불과할 것이라 생각하며, 저승사자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렇게 얼음바람을 뚫고 험준한 산 중턱쯤에 다다랐을 때였습니다.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매서운 바람 소리 사이로, 가늘고 날카로운 아이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습니다. 두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길가에 빽빽하게 자라난 시퍼런 쇠 가시덤불 한가운데에 일고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의 영혼이 웅크린 채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영혼은 너무 일찍 생을 마감한 탓에 스스로 쌓아올린 공덕이 전혀 없었고, 그로 인해 살을 파고드는 가시덤불과 뼈를 얼리는 얼음바람의 고통을 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의 투명하고 작은 발에서는 붉은 피가 끊임없이 배어 나와 하얀 얼음 바닥을 붉게 적시고 있었습니다.

    "흑흑… 엄마… 무서워, 너무 추워… 아파요…."

    아이의 처절하고 가엾은 울음소리에, 묵묵히 산을 오르던 노인의 발걸음이 돌부리에라도 걸린 듯 우뚝 멈춰 섰습니다. 저승사자는 노인의 시선이 향한 곳을 보고는 직감적으로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급히 노인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안 되오. 쳐다보지도 마시오. 저 아이는 이승에서 머문 시간이 너무 짧아 선업을 쌓지 못했기에, 저승의 엄격한 법도에 따라 스스로 이 고통의 고개를 넘어야만 하오. 그것이 저 아이가 감당해야 할 저승의 이치요. 타인의 영혼에, 그것도 저승길 한가운데서 함부로 관여해서는 절대 아니 되오."

    저승사자의 경고는 평소보다 훨씬 빠르고 다급했으며, 그 목소리에는 차가운 단호함이 배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인의 시선은 저승사자를 지나쳐, 가시덤불 속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가는 가엾은 아이에게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노인의 깊게 패인 주름진 얼굴에 애끊는 듯한 깊은 슬픔이 번져갔습니다.

    "사자 나으리. 저리도 작고 여린 핏덩어리가 어찌 이 모진 고통을 감내하며 산을 넘는단 말입니까. 이승에서 꽃 한번 제대로 피워보지 못하고 이른 나이에 스러진 것도 서러워 통곡할 일인데, 남은 저승길마저 이토록 가혹하고 참담하다면 그것은 너무도 불공평한 처사가 아니겠소이까. 내 자식 같고, 내 손주 같은 저 어린것을 눈앞에 두고, 어찌 모른 척 발걸음을 뗄 수 있단 말이오."

    "노인장! 지금 당장 제정신을 차리시오! 당신의 몸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는 그 금빛 기운은, 당신이 칠십 평생을 바쳐 뼈를 깎는 수고로움으로 쌓아온 참으로 귀하고 고결한 적덕이오. 그것이 있기에 지금 이 끔찍한 길을 상처 하나 없이 무사히 건널 수 있는 것이란 말이오. 만약 그 기운을 저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내어준다면, 당신은 그 즉시 이 산을 덮고 있는 살인적인 추위와 날 선 가시들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하오. 뼈가 깎이고 살이 갈기갈기 찢기는 그 지옥 같은 고통을 정녕 당신이 대신 겪고 싶단 말이오!"

    저승사자는 필사적으로 팔을 뻗어 노인을 막아섰습니다. 수백 년 동안 수천수만의 영혼을 인도했지만,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구원의 빛을 생면부지의 남에게, 그것도 영혼이 찢기는 형벌을 감수하면서까지 내어주려는 바보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인은 저승사자의 그 절박한 외침과 경고 앞에서도 오히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빙그레 웃어 보였습니다.

    "허허, 다 늙어빠진 이 고목나무 같은 몸뚱이 하나 좀 찢기고 상한들 무에 그리 대수겠습니까. 이승에서도 평생 거친 흙바닥을 뒹굴며 굳은살 하나로 버텨온 몸이오. 낫질하다 베인 상처도 수두룩하고, 겨울이면 찬바람에 살이 트는 것도 일상이었지요. 가시밭길 좀 맨몸으로 걷는다고 당장 죽기야 하겠소. 아, 생각해보니 나는 이미 죽어 이곳에 온 몸이니, 두 번 다시 죽을 일도 없겠구려."

    노인은 놀라 굳어버린 저승사자를 가볍게 지나쳐, 피비린내 나는 가시덤불 속으로 거침없이 걸어 들어갔습니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쇠 가시들이 노인의 무명 바짓가단을 갈기갈기 찢고 앙상한 종아리에 깊은 생채기를 내기 시작했지만, 노인은 작은 신음조차 내지 않고 묵묵히 아이의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노인은 덜덜 떨고 있는 아이의 작은 몸을 자신의 거칠고 커다란 두 팔로 따뜻하게 품어 안았습니다.

    "아가야, 이제 괜찮다. 이 할애비가 안아주마."

    그 순간, 노인의 몸을 든든하게 감싸고 있던 따뜻한 금빛 기운이 마치 둑이 터진 강물처럼 물결치며 아이의 작은 몸으로 빠르게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공덕의 빛을 온전히 넘겨받은 아이의 얼굴에서 일순간 모든 고통과 두려움이 사라졌고, 파랗게 질려있던 뺨에는 평온하고 따뜻한 혈색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노인을 감싸고 있던 빛은 완전히 사그라져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런 미련하고 답답한 늙은이를 보았나…!'

    저승사자는 차마 그 끔찍한 결과를 두 눈 뜨고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리며 이를 악물었습니다. 노인이 자신의 유일한 보호막인 적덕을 모두 아이에게 건네주었으니, 이제 노인은 저 가시덤불 속에서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끔찍한 형벌을 받으며 기어서 산을 넘어야 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노인의 따뜻한 품 속에서 마치 천사처럼 맑고 예쁜 미소를 지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듯 눈을 감았고, 이내 깃털처럼 가벼워진 몸으로 허공으로 사르르 떠올라 가시밭길 너머의 안전한 길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아이를 무사히 보내고 난 후, 노인은 이제 그 어떤 보호막도 없는 텅 빈 맨몸으로 잔혹한 가시밭길 위에 홀로 섰습니다. 매서운 얼음바람이 굶주린 승냥이처럼 달려들어 노인의 앙상한 몸을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저승사자는 노인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고꾸라질 것을 예상하고, 차마 버려두지 못해 황급히 손을 뻗으며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뻗었던 저승사자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했습니다. 그의 눈앞에 도무지 저승의 이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다시 한번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노인이 피투성이가 된 낡은 짚신을 이끌고 뾰족한 얼음 바위와 날 선 가시덤불 위로 다시 첫발을 내디딘 순간이었습니다. 칼날처럼 날카롭던 가시들이 노인의 발이 닿기가 무섭게 부드럽고 푹신한 푸른 이끼로 변해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살을 찢어발기던 끔찍한 얼음바람은 노인의 주변에 닿자마자 이른 봄날의 산들바람처럼 훈훈하고 따뜻하게 바뀌어 노인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맴돌았습니다.

    노인이 베푼 대가 없는 순수한 희생과 숭고한 사랑이, 저승의 잔혹하고 차가운 법도마저 산산이 무너뜨리고 험준한 지옥의 가시산을 부드러운 융단이 깔린 평화로운 길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노인은 마치 이 모든 기적이 당연한 자연의 섭리라도 되는 양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피 묻은 바짓가단을 툭툭 털고는 다시 뒷짐을 진 채 여유로운 걸음으로 산등성이를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작고 앙상하지만 너무도 거룩한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저승사자는 자신이 수백 년간 들고 다니며 저승의 절대적인 권력이라 믿어왔던 명부의 무게가 오늘따라 한없이 가볍고 덧없게만 느껴졌습니다.

    ※ 5: 삼도천에 다다라서야 밝혀지는 노인의 과거 선행과 저승사자의 눈물.

    가시덤불과 얼음의 고개를 무사히 넘고 나자, 두 사람 앞에는 저승에서 가장 크고 두려운 경계인 삼도천이 그 웅장하고도 소름 끼치는 위용을 드러냈습니다. 끝을 알 수 없이 아득하게 펼쳐진 삼도천의 물결은 벼루에 고인 먹물보다 더 칠흑같이 검었고, 마치 진흙처럼 끈적이는 물결 위로는 영원히 강을 건너지 못한 채 갇혀버린 수백만 망자들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짙은 물안개와 함께 끊임없이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강기슭에는 나룻배를 타기 위해 수많은 영혼들이 서로를 밀치며 아우성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 저주받은 강을 무사히 건너기 위해서는 이승에서 올 때 염습을 하며 입에 물고 온 노잣돈 엽전을 뱃사공에게 내어주거나, 그것조차 없다면 살아서 지은 훌륭한 선행의 무게로 당당히 물 위를 걸어서 넘어야만 했습니다. 그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가지지 못한 가련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굶주린 독사들이 득실거리는 저 시퍼런 강물에 맨몸으로 뛰어들어 영겁의 시간 동안 뼈와 살이 녹아내리는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끝없이 헤엄을 쳐야만 하는 끔찍한 형벌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저승사자와 노인이 소란스러운 강기슭에 도착하자, 낡은 삿갓을 쓴 뱃사공이 기분 나쁜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스산한 소리를 내는 노를 저어 다가왔습니다.

    "크히히, 저승사자 나으리께서 새로운 손님을 모시고 오셨군. 자, 늙은이. 강을 편안히 건너려거든 이승에서 챙겨 온 노잣돈을 당장 내놓으시지. 만약 엽전 한 닢 챙겨오지 못한 가난한 영혼이라면, 네놈이 살아생전 피땀 흘려 지은 공덕의 빛이라도 내어놓아 보아라. 그마저도 없다면 저 시커먼 강물 속에 뛰어들어 뱀들의 밥이 되는 수밖에 없느니라!"

    뱃사공의 표독스러운 호통에 노인은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묵묵히 자신의 낡은 무명옷 품을 뒤적였습니다. 이승에서 떠나올 때 낡은 궤짝에서 다 해진 삼베옷 한 벌만을 겨우 챙겨 입고 온 터라, 노잣돈으로 쓸 엽전 한 닢 따위가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게다가 방금 전 얼음 고개를 넘으며 가엾은 어린 영혼에게 자신이 평생 모은 적덕의 기운마저 한 줌 남김없이 모두 내어주었기에, 뱃사공에게 대신 건넬 공덕의 빛조차 단 한 줌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노인은 텅 빈 손을 들어 보이며 덤덤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참으로 딱하게 되었구려. 나는 평생 흙이나 파먹고 살던 가난한 농부라 죽을 때 땡전 한 푼 가져온 것이 없소이다. 또한, 이곳으로 오는 길에 내게 있던 아주 작은 선한 기운마저 모두 털어버렸으니 이 강을 건널 노임이 전혀 없소. 배를 탈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겠소. 내 비록 몸은 늙었으나, 내 두 발과 두 팔로 저 험한 강을 직접 헤엄쳐 건너가도록 하겠소이다."

    노인은 한 치의 망설임이나 주저함도 없이, 낡은 짚신을 벗어 강기슭에 가지런히 놓아두고는 검고 끈적이는 삼도천의 끔찍한 강물로 걸어 들어가려 했습니다. 노인이 다가가자 강물 속에서는 망자들의 혼과 살을 파먹으며 기생하는 집채만 한 거대한 독사 수십 마리가, 노인의 맑은 영혼을 탐내며 소름 끼치는 쇳소리를 내며 물결을 가르고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끔찍하고 아찔한 광경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던 저승사자는, 더 이상 차가운 이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노인의 무명옷 어깨를 거칠게 낚아채며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지금 제정신이오! 이 강은 이승의 냇가에 흐르는 평범한 물이 아니란 말이오. 발을 들이는 순간 살이 잿더미처럼 녹아내리고, 영혼마저 수만 갈래로 찢기며 뱀들에게 갉아먹히는 진짜 지옥의 강이오. 어찌 당신같이 티 없이 맑고 고결한 분이 저토록 더럽고 흉측한 뱀들의 먹잇감이 되어 그 고통을 당해야 맞는단 말이오! 절대, 절대 들어갈 수 없소!"

    저승사자는 분노와 절박함이 섞인 고함을 지르며 자신의 품 안 깊숙한 곳에서 차사의 절대적인 권위와 영력을 상징하는 검은빛의 '흑단패'를 꺼내 들었습니다. 자신의 영력의 근원이자 저승사자로서의 지위 그 자체인 이 패를 뱃사공에게 건네어, 노인의 노임을 자신이 대신 지불할 요량이었습니다. 수백 년이라는 길고 긴 차사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인간을 위해 사사로운 감정을 드러내거나 저승의 율법을 어긴 적이 없었던 그였습니다. 그러나 이 늙고 초라한, 하지만 너무도 위대한 농부의 영혼만큼은 도저히 저 끔찍한 고통 속에 내버려둘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이, 뱃사공! 닥치고 당장 배를 대어라! 이 자의 노임은 내가 치르겠다. 내 수백 년의 영력이 담긴 이 흑단패를 담보로 할 터이니, 당장 잔말 말고 이분을 정중히 모시란 말이다!"

    저승사자가 흑단패를 던지려던 찰나, 노인의 투박하고 거친 두 손이 저승사자의 차가운 손을 아주 부드럽고 단단하게 감싸 쥐었습니다.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사자 나으리. 저를 아껴주시는 참으로 고맙고 분에 넘치는 말씀이나 부디 그리하지 마십시오. 이승이든 저승이든 각자의 업보는 각자의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것이 순리이자 자연의 이치입니다. 나으리께서 어찌 다 늙어빠진 저 하나 때문에 그토록 귀하고 중한 영력을 낭비한단 말입니까. 저는 본래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미천하고 먼지 같은 몸. 저 물속을 거닐며 살이 찢기는 고통 또한, 제가 이 여정에서 묵묵히 감당하고 치러내야 할 제 몫일 뿐입니다."

    노인은 저승사자의 간절한 만류를 부드럽게 밀어내고는, 기어이 독사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시퍼렇고 검은 강물 속으로 첫발을 쑥 내디뎠습니다. 첨벙,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노인의 마른 발끝이 흉측한 강물에 닿는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거칠게 요동치며 영혼들을 집어삼키려 들끓던 칠흑 같은 물결이 일순간 거짓말처럼 멈추더니, 숨 막히는 고요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노인의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기적의 빛이 강물을 타고 번져나가며, 시커멓던 강물이 수정처럼 맑고 투명한 옥빛으로 정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맑아진 수면 위로는 거대한 환영이 마치 병풍처럼 떠오르며 찬란한 빛을 뿜어냈습니다. 그것은 노인이 살아생전 이승에서 남몰래 묵묵히 행해왔던,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숭고한 삶의 궤적들이었습니다.

    수면 위 환영 속에는, 온 마을이 굶어 죽어가던 지독한 흉년의 겨울, 길가에 쓰러진 떠돌이 거지 모녀에게 자신의 마지막 남은 쌀바가지를 모두 털어 내어주고는, 정작 본인은 구석에 앉아 얼음장 같은 찬물로 헛배를 채우며 빙그레 미소 짓는 젊은 시절의 노인이 비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환영의 물결 속에서는, 끔찍한 역병이 돌아 부모마저 자식을 버리고 도망치던 때에, 홀로 버려져 피를 토하는 이웃집 고아를 제집으로 거두어 밤낮으로 피고름을 닦아내며 간호하다 끝내 그 아이의 생명을 살려내고야 마는 장엄한 장면이 이어졌습니다. 평생을 살며 누구 하나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았고, 단 한 번의 칭찬도 듣지 못했지만, 그는 단 한 순간도 세상을 원망하거나 자신의 궁핍한 처지를 비관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의 뼈와 살을 깎아 타인의 불행을 덮어주는 삶을 숨 쉬듯 자연스럽게 살아왔던 것입니다.

    노인이 얼음 고개에서 아이에게 건네주었던 적덕은, 그가 평생 쌓아온 태산 같은 선행에 비하면 아주 작은 먼지 한 톨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삼도천의 강물은 그의 영혼 깊숙한 곳에 켜켜이 새겨진 그 거대하고 숭고한 자비심의 무게를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고 그저 스스로 정화되어 복종해버린 것입니다. 노인의 살을 파먹으려 달려들던 수백 마리의 거대한 뱀들은 물결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노인의 발아래 엎드려 마치 순한 양 떼처럼 얌전히 길을 터주었습니다. 맑은 옥빛으로 변한 넓은 강물 위로는, 눈부시게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수천 송이의 황금빛 연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며 노인이 걸어갈 튼튼하고 아름다운 꽃의 다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엄청나고 믿을 수 없는 기적 앞에서, 교만하던 뱃사공은 들고 있던 노를 바닥에 내동댕이친 채 배 위에서 납작 엎드려 사시나무 떨듯 조아렸습니다. 저승사자는 그 자리에 돌부처처럼 굳어버린 채, 황금빛 연꽃 다리를 유유히 걸어가는 노인의 뒷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영혼의 비명과 피눈물 속에서도 얼음장처럼 차갑게만 굳어 있던 저승사자의 심장 가장 깊은 곳에서, 도무지 형언할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 화산처럼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리고 차사로 임명된 이후 단 한 번도 흘리지 않았던 맑고 투명한 눈물 한 방울이, 그의 창백하고 서늘한 뺨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습니다.

    '인간이란 그저 눈앞의 욕심에 눈이 멀어 허우적대는 어리석고 연약한 존재라 여겼거늘…. 이 작고 초라한 늙은이 하나가, 저승에서 가장 깊고 추악한 어둠마저 스스로의 빛으로 걷어내고 밝혀내는구나.'

    저승사자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방울은 삼도천의 맑은 강물 위로 떨어져 은은하고 눈부신 빛의 파장을 만들어냈습니다. 저승의 가장 엄격하고 냉혹한 사자마저 끝내 무릎 꿇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만든 노인은, 자신이 얼마나 위대하고 경이로운 기적을 일으켰는지 전혀 모른다는 듯, 그저 굽은 허리를 툭툭 두드리며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 연꽃 다리를 건너 평온한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 6: 염라대왕의 판결, 그리고 노인에게 내려진 뜻밖의 보상.

    삼도천의 황금 연꽃 다리를 무사히 건너 마침내 도달한 곳은, 저승의 모든 율법을 관장하는 최고 재판소이자 두려움의 상징인 명부전이었습니다. 검은 구름을 뚫고 하늘을 찌를 듯이 거대하게 솟아오른 웅장한 전각 안에는, 저승의 절대적인 지배자인 염라대왕이 뼈와 불꽃으로 장식된 거대한 옥좌에 앉아 압도적인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옥좌 양옆으로는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형상을 한 수십 명의 판관들과, 쇠몽둥이를 든 험악한 도깨비들이 눈에 불을 켠 채 대전 중앙에 선 망자를 잡아먹을 듯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망자의 일생 동안 지은 모든 죄업과 선업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심판하여, 천상의 극락으로 갈지, 불타는 지옥으로 떨어질지, 혹은 짐승으로 환생하여 죗값을 치를지를 결정짓는 저승에서 가장 엄숙하고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공간이었습니다.

    노인이 낡은 무명옷을 입은 채 대전의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자, 붉은 관복을 입은 수석 판관 하나가 이승에서의 낱낱의 죄업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내는 거대한 거울인 업경대 앞의 덮개 천을 확 걷어냈습니다. 사람이 살아생전 단 한 번이라도 남을 속이거나, 악한 마음을 품거나, 생명을 해하는 죄를 지었다면 그 끔찍한 진실이 예외 없이 거울 속에 끔찍한 형상으로 비춰지는 무자비한 거울이었습니다.

    "망자 김춘배는 고개를 들라! 네놈이 이승의 칠십 평생 동안 구석구석 숨겨놓은 더럽고 추악한 죄업을, 이 진실의 거울이 머리카락 한 올 남김없이 밝혀낼 것이다!"

    판관의 쩌렁쩌렁한 호통과 함께 거대한 업경대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응축되며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보통의 망자들이라면 이 순간 자신의 부끄럽고 추악한 과거가 대전 안에 낱낱이 비춰질까 두려워, 바닥에 엎드린 채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며 눈물을 쏟아내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얼굴에 미동조차 없는 참으로 평온하고 호수 같은 얼굴로, 담담히 업경대를 똑바로 응시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명부전 안의 모든 이들이 숨을 죽이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죄를 비추어야 할 업경대의 거울 속에는 그 어떤 끔찍한 영상이나 어두운 그림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두 눈을 제대로 뜨고 쳐다볼 수조차 없을 만큼 눈부시고 따스하며 영롱한 백색의 광채만이 거울 안에서 폭발하듯 뿜어져 나와 거대하고 어두운 명부전 전체를 대낮처럼 환하게 채워버린 것입니다. 그것은 살아생전 지은 죄의 흔적이라고는 단 한 톨의 먼지조차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하게 결백하고 숭고하게 정화된 영혼만이 뿜어낼 수 있는 천상의 순수한 빛이었습니다.

    거울의 빛에 눈이 부신 판관들과 도깨비들은 기겁하며 바닥에 엎드려 눈을 가렸고, 옥좌에 비스듬히 앉아있던 염라대왕의 커다란 두 눈마저 경악과 충격으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이승의 권력자, 영웅, 도인들을 심판해왔지만, 저 무서운 업경대가 이토록 찬란하고 온화한 빛만을 대전에 쏟아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염라대왕은 황급히 몸을 일으켜 노인의 일생이 빼곡히 적힌 거대한 명부를 낚아채듯 펼쳐 들었습니다. 명부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숨죽여 읽어 내려가는 염라대왕의 험악했던 표정은, 이내 깊은 탄식과 함께 놀라움으로, 그리고 마침내 이 초라한 노인에 대한 깊은 경외감으로 서서히 변해갔습니다.

    "허허… 참으로 경이롭고도 믿기 힘든 일이로다. 이 척박한 이승에서 평생을 가난과 굶주림, 고된 노동의 굴레 속에서 살았음에도, 단 한 번도 세상을 탓하거나 남을 원망한 적이 없구나. 오히려 헐벗은 자신의 피와 살을 깎아 타인을 배불리 먹이고 살려내었어. 게다가 이곳 명부전으로 향하는 멀고 험한 저승길에서조차, 네놈을 잡아먹으려는 굶주린 원귀들을 따뜻하게 위로하여 성불시키고, 이름 모를 가엾은 어린 영혼에게 네가 평생 모은 공덕을 한 줌의 미련 없이 모두 내어주었다니. 너의 그 한결같이 바위 같은 선함과 맑은 정직함은, 감히 우리 저승의 얕은 잣대로 왈가왈부 심판할 수 있는 경지를 이미 아득히 넘어섰구나."

    염라대왕은 자리에서 천천히 걸어 내려오더니, 노인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우렁찬 갑옷 소리를 내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저승을 호령하는 최고의 지배자가 일개 평범한 인간 망자에게 먼저 예를 표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명부전 안의 콧대 높던 모든 판관과 무시무시한 도깨비들도 일제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노인을 향해 납작 엎드렸습니다.

    "망자 김춘배여. 너의 그 티 없이 맑고 고결한 영혼은, 이 어둡고 탁한 저승의 심판대나 번뇌와 고통이 가득한 이승의 윤회에 다시 갇혀 있을 자격이 없다. 내가 당장 저 하늘 위 천상의 가장 높은 곳, 부처가 머무는 극락의 한가운데 너를 위한 황금 옥좌를 내어줄 것이니, 그곳에서 영원토록 늙지 않으며 영원한 평안과 쾌락을 누리도록 하여라. 혹여 네가 원한다면,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여 세상을 호령하는 위대한 제왕으로 태어나게 해 줄 것이니, 무엇이든 원하는 바를 말해보아라!"

    염라대왕의 파격적이고 엄청난 제안에 대전 안이 거세게 술렁였습니다. 하지만 노인은 그런 엄청난 약속 앞에서도 조금도 당황하거나 기뻐하는 기색 없이, 그저 평소 이웃에게 안부를 묻던 때처럼 부드럽고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대왕마마의 바다와 같이 넓고 크나큰 은혜에 참으로 몸 둘 바를 모르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허나, 마마. 저는 이승에서도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살았던 보잘것없는 촌부에 불과합니다. 천상의 그 화려하고 눈부신 황금 궁전도, 세상을 발아래 두는 제왕의 무거운 권세도, 제게는 그저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듯 답답하고 무겁기만 할 뿐입니다. 저에게 그런 부귀영화는 당치 않사옵니다. 혹시 제게 진정 한 가지 작은 소원을 락해주신다면…."

    노인은 잠시 말을 멈추고, 자신이 평생 땀 흘려 일구고 머물렀던 아득히 먼 이승의 하늘 방향을 고개 돌려 아련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그저,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가벼운 바람이 되고 싶습니다. 추운 겨울이 가고 봄날이 오면 언 땅에 파릇한 싹을 틔워주는 따스한 봄바람이 되고, 무더운 여름날이면 밭에서 구슬땀을 뻘뻘 흘리는 농부들의 뜨거운 이마를 식혀주는 서늘하고 고마운 한줄기 바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이승에 여전히 팍팍하게 남겨진 가난하고 여린 이웃들이, 그리고 제 자식 같은 어린 생명들이 조금이나마 덜 고단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아주 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그들을 감싸 안아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작은 기운으로만 맴돌고 싶습니다. 그것이 이 늙은이의 처음이자 마지막 유일한 바람이옵니다."

    노인의 대답이 끝나자 거대하고 소란스럽던 명부전 안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깊고 먹먹한 정적이 흘렀습니다. 끝끝내 죽음 이후에 주어지는 절대적인 자신의 안위와 영광마저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승에 남겨진 불쌍하고 약한 이들을 먼저 생각하는 노인의 무한하고 숭고한 자애심 앞에, 무서운 염라대왕조차 붉어진 눈시울을 애써 감추며 깊고 긴 탄식을 내뱉고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너의 그 깊은 뜻이 참으로 태평양의 바다와 같이 넓고, 우주의 밤하늘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맑고 깊구나. 좋다! 네 뜻이 정 그러하다면 내 기꺼이 네 소원을 들어주마. 오늘부터 너를 천상과 이승, 그리고 저승을 그 어떤 제약도 없이 가장 자유롭게 오가며 약하고 고통받는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저승 최고의 맑고 고결한 '수호령'으로 임명하노라!"

    염라대왕의 판결이 우렁차게 대전에 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 노인의 낡고 해진 무명옷은 눈부시게 하얀 깃털처럼 가벼운 빛의 망토로 변했고, 수십 년간 굽어 있던 허리는 나무처럼 곧게 펴지며 그의 전신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따뜻하고 거룩한 기운에 휩싸여 떠올랐습니다. 환한 빛으로 일렁이는 노인은 대왕을 향해 마지막으로 정중히 감사의 절을 올린 뒤, 명부전 입구에서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서 있던 저승사자에게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사자 나으리. 비록 시작은 두려웠으나 나으리의 배려 덕분에 이 험하고 어두운 저승길, 조금도 무섭지 않고 참으로 따뜻하고 편안하게 잘 왔습니다. 짧은 동행이었으나 이승을 떠나는 제 마지막 길에 너무도 좋은 길동무가 되어주셨으니, 제가 바람이 되어서도 그 고마운 은혜는 결코 잊지 않으리다. 그럼, 내내 평안하십시오."

    항상 망자들을 위협하고 끌고 다니던 저승사자는, 노인의 따뜻한 인사에 아무런 말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저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려 굳게 다문 입술을 파르르 떨며, 두 손을 단정히 모으고 노인을 향해 허리를 아주 깊숙이 숙여 정중하고 긴 절을 올릴 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영혼을 심판의 자리로 이끄는 냉혹한 차사의 무미건조한 인사가 아니라, 자신에게 진정한 사랑과 희생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성인을 향한, 뼈에 사무치도록 깊은 존경과 벅찬 경배의 의식이었습니다.

    저승사자의 절을 받은 노인의 모습은 점차 따뜻하고 은은한 황금빛 안개로 스르륵 변하더니, 이내 닫혀 있던 명부전의 거대한 문틈 사이를 빠져나가 이승의 하늘을 향해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한 한줄기 바람이 되어 자유롭게 날아갔습니다. 모든 심판이 끝난 텅 빈 명부전의 서늘하고 차가운 기운 속에서도, 노인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그 지극히 따스하고 온화한 바람의 온기는 아주 오랫동안 대전 안을 맴돌며 그 누구도 얼리지 못하는 영원한 따뜻함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평생을 바보처럼 베풀기만 했던 정직한 노인의 저승길. 어쩌면 진짜 기적은 저승의 마법이 아니라, 얼어붙은 저승사자의 마음마저 녹여버린 노인의 변함없는 선한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오늘 밤은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이 노인처럼 따뜻하고 맑은 바람이 불어오길 바랍니다. 오늘의 이야기가 편안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리며, 오늘도 좋은 꿈 꾸시길 바랍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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