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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도 울린 3일의 기적 [어우야담]
사흘만 말미를 주시오 — 젖먹이를 두고 갈 수 없던 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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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제발... 제 핏덩이 같은 아기가 젖을 뗄 때까지만, 딱 사흘만 말미를 주십시오..."
스물여섯, 꽃다운 나이에 저승사자를 마주한 젊은 어미. 차갑게 식어가는 방구석에서 젖을 찾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처절하게 메아리칩니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검은 도포의 저승사자는 어미의 눈물 앞에 걸음을 멈추고 맙니다. 과연 이 젊은 어미는 핏덩이를 두고 무사히 이승을 떠날 수 있을까요? 저승사자가 문밖에서 발걸음을 돌리지 못한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 1: 스물여섯 꽃다운 어미의 갑작스러운 병환과 남겨질 젖먹이
천지를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몰아치는 한겨울의 칼바람이 문풍지를 찢어낼 듯 때리며 울어대는 깊고 깊은 산골짜기의 밤이었습니다. 겹겹이 둘러싸인 험준한 산봉우리들 사이로 앙상하게 마른 나뭇가지들이 서로 기괴하게 부딪치며 스산한 비명 소리를 토해내고 있었고, 세상을 온통 하얗게 얼려버린 폭설은 이 외딴 초가집을 세상과 완전히 고립시켜 버렸습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낡고 허름한 초가집의 비좁은 방 안에는, 매서운 외풍을 견디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롭게 파르르 흔들리는 작은 호롱불 하나만이 어둠을 힘겹게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그 희미하고 창백한 불빛 아래, 방 한가운데 깔린 낡고 얇은 요 위에는 이제 겨우 스물여섯이라는 꽃다운 나이의 젊은 아낙네 연화가 누워 있었습니다. 불과 한 해 전, 이 깊은 산골 마을로 시집을 올 때만 해도 온 동네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할 만큼 고운 자태와 복숭아처럼 붉고 생기 넘치는 뺨을 자랑하던 그녀였습니다. 가난하지만 심성이 비단결처럼 고운 사냥꾼 지아비를 만나, 비록 조밥에 나물 찬으로 끼니를 때울지언정 매일같이 웃음꽃을 피우며 살아가던 어여쁜 새댁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연약한 몸을 무자비하게 갉아먹기 시작한 이름 모를 몹쓸 병마는, 마치 가을 서리에 무참히 시들어버린 들꽃처럼 그녀의 눈부신 젊음과 생기를 순식간에 앗아가 버렸습니다. 용하다는 의원을 불러 진맥 한 번 받아볼 엽전 한 닢조차 없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그녀의 남편이 매일같이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 덮인 험한 산을 맨발로 헤매며 캐어 온 쓴 약초의 뿌리를 달여 먹이는 것이 이들 부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지아비의 그 피나는 정성에도 불구하고 야속한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깊어만 갔고, 이제 연화의 얼굴에는 핏기라고는 단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은 채 밀랍처럼 창백하게 굳어가고 있었습니다.
"콜록... 콜록... 쿨럭!"
연화의 흉통을 찢어낼 듯한 거친 기침 소리가 마치 날카로운 쇳소리처럼 좁은 방 안을 긁어댈 때마다, 그녀의 앙상한 가슴팍에 안겨 있던 작은 생명체가 화들짝 놀라며 꼬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의 빛을 본 지 이제 갓 백일을 넘긴 핏덩이, 연화의 목숨보다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아직 초점도 제대로 맞추지 못해 허공을 응시하는 맑은 눈망울을 가진 아이는, 오로지 어미의 품에서 피어오르는 젖 냄새와 따스한 체온만을 세상의 전부이자 우주로 알고 있는 가여운 생명이었습니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저으며 어미의 품을 파고들었고, 배고픔에 지쳐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마른 젖가슴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열흘이 넘도록 미음 한 숟가락조차 제대로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한 연화의 바짝 말라붙은 가슴에서는, 아이의 주린 배를 채워줄 젖이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빈 젖을 빨다 지친 아이가 이내 신경질적으로 버둥거리며 칭얼대기 시작하자, 연화의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휩싸였습니다.
"아가... 내 불쌍한 아가... 어미가 참으로 미안하다... 미안해..."
연화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 나뭇가지처럼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간신히 들어 올려, 아이의 포동포동하고 부드러운 뺨을 애처롭게 쓸어내렸습니다. 그녀의 푹 패인 커다란 눈망울에서 참아왔던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려, 아이를 감싸고 있던 낡고 해진 이불깃을 축축하게 적셨습니다. 그것은 점차 자신의 목을 조여오는 죽음의 검은 그림자가 두려워서 흘리는 이기적인 눈물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이대로 허무하게 눈을 감고 나면, 이 혹독하고 무자비한 겨울의 세상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겨져, 결국 굶주림과 추위에 허덕이다 끝내 제 어미를 따라 숨을 거두고 말지도 모르는 이 어린 핏덩이에 대한 애끓는 슬픔과 끔찍한 죄책감이 그녀의 영혼마저 짓이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방구석 한편에는 며칠 밤낮을 쉬지 않고 얼어붙은 산비탈을 구르며 약초를 구하러 다니느라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남편이, 마치 죽은 사람처럼 까무러치듯 깊은 선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의 거칠고 규칙적인 코골이 소리마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 같은 연화에게는 가슴 미어지는 서글픔과 절망으로 다가왔습니다.
'서방님... 이 첩첩산중 외딴곳에서 당장 내일 아침 젖동냥을 다닐 이웃집 하나 없거늘... 제가 이대로 숨을 거두면 우리 가여운 아가는 뉘 품에서 젖을 물고 살아남는단 말입니까. 제 한 몸 이승에서의 인연이 이리도 짧아 사랑하는 서방님 곁을 먼저 떠나야 하는 것은 제 운명이라 받아들이겠으나, 세상에 태어나 아직 미음 한 숟갈 넘겨보지 못한 이 어린 핏덩어리를 두고는 도저히, 도저히 눈을 감을 수가 없습니다. 천지신명님, 어찌 이리도 가혹한 형벌을 내리신단 말입니까...'
바람이 한 번 세차게 불어와 초가집의 지붕을 뒤흔들 때마다 문창호지가 파르르 비명을 질렀고, 방 안의 공기는 뼛속의 골수까지 꽁꽁 얼려버릴 듯 시리도록 차가워졌습니다. 연화는 마지막 남은 안간힘을 쥐어짜 내어 아이를 자신의 품속 가장 깊숙한 곳으로 끌어안았습니다. 자신의 몸에서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는 마지막 온기 한 줌이라도 모두 아이에게 전해주어, 이 매서운 밤을 무사히 넘기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젖이 나오지 않아 서럽게 칭얼거리던 아이도, 잦아드는 어미의 미약한 심장 고동 소리에 얼굴을 기댄 채 어느새 지쳐 쌕쌕거리며 잠이 들었습니다. 연화의 시야가 점차 뿌옇게 흐려지고,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차가운 얼음장 같은 기운이 핏줄을 타고 온몸으로 스멀스멀 퍼져나가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승의 공기를 마실 시간이 이제 모래시계의 마지막 모래알처럼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녀의 짐승 같은 본능이 또렷하게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점점 닫혀가는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부릅뜨며,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도 오직 제 품에 안긴 천사 같은 아이의 얼굴만을 눈동자 깊숙한 곳에 영원히 새겨 넣으려 안간힘을 쓰고 또 썼습니다.
※ 2: 칠흑 같은 밤, 검은 도포 자락을 끌며 찾아온 저승사자
깊은 산속의 적막을 깨고, 마을 어귀를 지키던 늙은 사냥개들이 갑자기 무언가에 홀린 듯 허공을 향해 스산하고도 맹렬하게 짖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아우우우- 컹! 컹!" 그 소리는 평소 산짐승을 쫓을 때의 기세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마치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결코 마주쳐서는 안 될 끔찍하고 불길한 존재를 향한 원초적인 공포의 경고처럼 밤하늘에 기괴하게 메아리쳤습니다. 그리고 개들의 짖는 소리가 일순간 숨을 죽이듯 뚝 끊기자, 폭풍처럼 몰아치던 산바람마저 거짓말처럼 멈추며 온 세상이 쥐죽은 듯한 기괴한 정적에 휩싸였습니다. 방 안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던 호롱불이 갑자기 시퍼런 빛깔로 기분 나쁘게 일렁이더니 '푸드득' 소리를 내며 불씨가 절반 이하로 사그라들었고, 동시에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의 무쇠 문고리가 밖에서부터 하얗게 성에가 끼며 얼어붙는 듯 "쨍그랑" 하는 날카롭고 섬뜩한 금속음을 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가물거리던 연화의 눈동자가 그 소리에 놀란 듯 번쩍 뜨였습니다.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이 열리지도 않았건만, 살을 에고 뼈를 깎아내는 듯한 지독한 냉기와 함께 캄캄한 방 안으로 스르륵 스며들어오는 거대한 칠흑의 그림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살아 숨 쉬며 붉은 피가 흐르는 사람의 형상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낮은 천장 에 닿을 듯 훌쩍 큰 키에, 어둠보다 더 짙고 시커먼 도포 자락을 발끝까지 질질 늘어뜨린 채 소리 없이 서 있는 거대한 사내. 그의 머리에는 창백하게 부서지는 달빛마저 모두 집어삼킬 만큼 챙이 널찍하고 새까만 갓이 깊게 씌워져 있었고, 그 갓 아래로 반쯤 드러난 얼굴은 인간의 핏기라고는 단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이 밀랍처럼 희고 기괴하게 창백했습니다. 생기와 감정이라고는 완벽하게 거세된, 텅 빈 두 눈동자는 마치 한 번 빠지면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는 끝을 알 수 없는 캄캄한 심연과도 같았습니다. 그의 뼈만 남은 듯 창백하고 길쭉한 손에는 이승을 하직할 망자의 이름이 붉은 먹물로 섬뜩하게 적힌 낡은 명부와, 망자의 목을 옭아맬 거칠고 굵은 오랏줄이 단단히 쥐어져 있었습니다. 바로 옥황상제와 염라대왕의 엄중한 명을 받고, 수명이 다한 이승의 혼백을 거두어 명부의 길로 압송하러 온 저승사자였습니다.
저승사자가 방 한가운데로 소리 없이 서늘한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가 밟고 지나가는 방바닥의 낡은 짚자리가 순식간에 하얗게 얼어붙으며 "바스락, 바스락"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습니다. 사자는 방구석에서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진 남편과 어미의 품을 파고드는 어린 핏덩이를 무심한 시선으로 한 번 훑고 지나쳐,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경악에 찬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연화의 머리맡에 조용히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어떤 감정의 고저도 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팽팽하게 당겨진 방 안의 공기를 찢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연화야. 너의 이승에서의 인연과 명운이 이 시각 부로 모두 다하였으니, 이제 그만 헛된 미련을 버리고 나와 함께 험난한 명부의 길을 나서자꾸나. 네 이름 석 자가 붉게 적힌 명부의 시각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도래하였도다."
사자의 그 목소리는 연화의 귀를 통해 들려오는 것이 아니라, 마치 뇌리 한가운데로 직접 칼날을 꽂아 넣듯 서늘하게 울려 퍼지는 듯했습니다. 사자가 창백하고 긴 손가락을 천천히 들어 올려 연화의 차가운 이마를 향해 뻗는 그 짧은 순간, 연화는 갑자기 자신의 무겁고 고통스럽던 몸이 한여름 바람에 날리는 가벼운 깃털처럼 한없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가슴을 짓누르던 끔찍한 흉통도, 뼛속까지 스며들던 지독한 추위도, 그리고 숨을 쉴 때마다 느껴지던 병마의 무거운 굴레도 순식간에 안개처럼 사라져버렸습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그녀가 눈을 두어 번 깜빡였을 때, 참으로 놀랍고도 끔찍한 광경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그녀는 낡은 이불 위에 눈을 반쯤 뜬 채 뻣뻣하게 굳어버린 자신의 초라한 육신을, 허공에 둥둥 떠서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승사자의 손길 한 번에 혼백이 육신을 빠져나와 이승의 경계를 넘어버린 것입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어미의 품에서 나던 따뜻하고 포근한 체온이 순식간에 차갑고 뻣뻣한 얼음덩어리로 변해버린 것을 짐승 같은 직감으로 알아챈 백일 된 핏덩이 아기가, 마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낀 것처럼 자지러지듯 비통한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응애! 응애애애액! 으앙!"
아이는 차갑게 식어 생명을 잃어버린 연화의 육신을 향해 작은 두 손을 버둥거리며, 기필코 살아야겠다는 듯 젖을 찾으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굳게 닫힌 눈꺼풀 새로 서러운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고, 극도의 배고픔과 생존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인 아이의 찢어지는 울음소리가 비좁고 캄캄한 방 안을 가득 채우며 메아리쳤습니다. 하지만 이미 육신을 잃고 허공을 떠도는 가벼운 혼백이 되어버린 연화는, 그토록 사랑하는 아이를 다정하게 안아줄 수도, 마른 젖이나마 입에 물려줄 수도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자신의 육신 위에서 죽어가는 어미를 찾으며 오열하는 핏덩이의 참혹한 광경을 지켜보던 연화의 혼백은, 죽은 자는 결코 흘릴 수 없다던 뜨거운 피눈물을 비 오듯 쏟아내며 허공에서 미친 듯이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안 됩니다! 우리 아가... 내 불쌍한 핏덩이가 어미를 찾고 있습니다! 사자님, 저는 아직 갈 수 없습니다! 여보! 서방님! 제발 굽어살피시어 잠에서 깨어나 아이를 안아주세요! 제발 우리 아이 좀 살려주세요!"
연화가 목에 핏대가 서도록 소리를 질렀지만, 그 찢어지는 절규는 이승의 공기를 진동시키지 못하는 혼령의 무음일 뿐이었고, 깊은 잠에 빠진 남편의 귓가에는 결코 닿지 않았습니다. 오직 아이의 처절한 울음소리만이 남편을 깨우려 했으나, 며칠 밤낮을 혹사당한 그의 육체는 쉽사리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저승사자는 그 참혹한 이별의 풍경 앞에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로, 연화의 혼백을 향해 거친 오랏줄을 던질 채비를 하며 차갑게 말했습니다.
"이승의 인연은 방금 전 네 숨이 멎음과 동시에 완전히 끊어졌다. 네가 허공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는다고 해서, 죽은 자가 산 자를 보살피고 안아줄 수는 없는 법이다. 이제 그만 부질없는 미련의 눈물을 거두고, 명부의 길을 재촉하여 너의 죄업을 심판받으러 가자꾸나."
사자의 차가운 쇳덩이 같은 손이 연화의 혼백을 무자비하게 움켜쥐려 성큼 다가오는 순간, 연화는 끓어오르는 모성애로 죽음의 공포마저 완전히 잊은 채, 상처 입은 들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저승사자의 앞을 온몸으로 가로막았습니다.
※ 3: 젖을 찾는 아기의 울음, 사자 바지가랑이를 붙잡은 어미의 절규
"안 됩니다! 사자님, 제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제 알량한 목숨을 지금 당장 거두어 가시는 것은 조금도 억울하지 않사오나, 저 어린 핏덩이를 이 차가운 방구석에 홀로 두고는 도저히,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연화는 허공에서 바닥으로 몸을 내던지듯 납작 엎드려, 사자의 새까만 도포 자락을 두 손으로 생명줄이라도 되는 양 꽉 부여잡았습니다. 이미 육신을 벗어나 무게조차 없는 가벼운 혼백의 몸이었으나, 자식을 살려야겠다는 어미의 모성애라는 강렬하고도 원초적인 염원이 빚어낸 그녀의 힘은 참으로 놀라워서, 수백 년을 살아온 사자조차 순간 당황하여 휘청일 만큼 거세고 결연했습니다. 사자가 불쾌한 듯 미간을 깊게 찌푸리며 펄럭이는 도포 자락을 거칠게 뿌리치려 했지만, 연화는 얼어붙은 방바닥에 이마를 묻고 피를 토하듯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그의 뻣뻣한 바지가랑이에 찰거머리처럼 매달렸습니다.
"천지간의 질서를 유지하는 명부의 엄격한 법도를 이 미천한 아낙네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허나, 사자님! 제발 저 가여운 아이를 한 번만 굽어살펴 주십시오. 아직 세상에 나와 흰 죽 한 숟갈, 미음 한 숟갈조차 넘겨보지 못하고 오로지 어미의 마른 젖만 찾으며 생을 연명하고 있는 불쌍한 생명입니다! 제가 이대로 사자님의 오랏줄에 묶여 저승길로 끌려간다면, 산짐승이 우글거리고 이웃 하나 없는 이 첩첩산중 깊은 산골짜기에서 저 아이는 어미의 젖을 찾다 단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굶어 죽고 말 것입니다! 어미 된 자로서 어찌 제 속으로 낳은 자식이 서서히 말라 죽어가는 참혹한 꼴을 뻔히 알면서도 눈을 감고 길을 나설 수 있단 말입니까!"
연화의 피맺힌 절규에 화답이라도 하듯, 방바닥에 뉘어진 아이의 울음소리가 더욱 크고 날카롭게 메아리쳤습니다. 아이는 생명력을 잃고 뻣뻣하게 굳어가는 연화의 시신을 향해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어미의 가슴에서 젖 한 방울이라도 얻어내려는 듯 필사적으로 파고들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애처롭고 가슴 저미는 광경에, 수백 년 동안 감정 없이 망자를 거두어왔던 사자의 무표정했던 창백한 얼굴에도 순간 미세한 파동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사자는 이내 흔들리는 눈빛을 감추고 표정을 굳히며, 얼음처럼 단호하고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산 자의 운명은 하늘에 계신 칠성님의 소관이요, 정해진 수명을 다해 죽은 자를 거두는 것은 오로지 나의 소관이다. 어미를 잃은 저 아이가 굶어 죽든, 아니면 기적처럼 살아남아 천수를 누리든 그것은 오직 이승의 이치와 운명일 뿐, 내 알 바가 아니다. 저승의 엄중한 법도를 어기면서까지 네 사사로운 정을 봐줄 수는 없다. 어서 순순히 오라를 받아라! 더 이상 지체하면 지옥의 불구덩이가 너를 기다릴 것이다!"
'아아, 정녕 하늘은 이토록 잔인하고 무심하단 말인가. 내 목숨 하나 내어놓는 것으로는 저 아이를 살릴 수 없단 말인가.'
연화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끔찍한 절망의 나락에 빠졌지만, 결코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사자의 묵직한 발등에 자신의 이마가 찢어지고 혼백이 흩어지도록 쿵쿵 찧으며, 마지막 남은 영혼의 밑바닥 염원까지 모두 끌어모아 처절하게 애원했습니다.
"제발... 제발 저 핏덩이 같은 아기가 제 젖을 온전히 뗄 때까지만... 아니, 그것이 명부의 법도에 정 어긋난다면, 저 애처로운 아이를 맡아줄 젖동냥 할 곳이라도 온전히 찾을 수 있도록 딱 사흘만... 제발 단 사흘만 말미를 주십시오! 사흘 뒤 이 시각에 다시 찾아오신다면, 사자님께서 저를 굵은 쇠사슬로 묶어 당장 저승의 끓는 불구덩이에 처넣으신대도 단 한마디 군말 없이 웃으며 따르겠습니다. 제발 이 불쌍한 어미의 마지막 소원을 넓은 자비로 거두어 주시옵소서!"
연화의 눈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진 뜨거운 혼백의 눈물이 사자의 새까만 가죽 신발 위로 툭툭 떨어져 내렸습니다. 이승의 눈물은 차갑게 식어 허공으로 사라져야 마땅하건만, 연화의 그 붉은 피눈물은 마치 펄펄 끓는 뜨거운 불도장처럼 사자의 차가운 발등을 시리도록 깊게 파고들며 타올랐습니다. 저승사자는 화들짝 놀란 듯 흠칫하며 발을 빼려다 그 자리에 멈칫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시선이 연화의 간절하고 처절한 얼굴에서, 방바닥에 누워 울다 지쳐 헐떡이면서도 끝내 어미의 품을 향해 작은 손을 뻗는 핏덩이 아기에게로 천천히 향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늘 얼음장처럼 차갑고 공허하기만 하던 저승사자의 흐릿한 눈동자 속으로, 수백 년 전 자신이 아직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이승의 사람이었던 시절의 아주 오래되고 파편화된 슬픈 기억 하나가 환영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름 모를 지독한 열병에 걸려 검붉은 피를 토하며 죽어가던 쇠약한 자신과, 그 옆에서 '아비, 아비, 제발 나를 두고 떠나지 마시오' 하며 낡은 바지가랑이를 부여잡고 서럽게 울어대던 자신의 어린 딸자식의 애처로운 잔상. 죽음의 문턱에서 그 가여운 어린 자식을 홀로 험한 세상에 두고 억지로 떠나야만 했던 아비의 그 지독한 고통과 피맺힌 미련이, 완전히 잊힌 줄만 알았던 사자의 메마른 가슴 한구석을 찌르르하고 건드려버린 것입니다.
방 안에는 오직 배고픈 아이의 거친 숨소리와 어미의 처절한 흐느낌만이 가득 찼고, 바깥의 거센 눈보라 소리마저 숨을 죽인 듯 고요해졌습니다. 굳게 닫힌 명부의 책을 쥔 사자의 창백한 손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습니다. 한참 동안이나 굳은 듯 침묵하며 서 있던 사자가, 마침내 길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연화에게 붙잡혀 있던 도포 자락을 조용히 거두어들였습니다.
"지독하고도 지독한 미련이로구나... 정해진 명부의 시각을 어기는 것은 이승과 저승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며, 사자인 내게도 가혹한 형벌이 따르는 큰 죄악이다. 허나, 네 어미 된 자의 끓어오르는 피눈물을 내 모른 척하고 베어낼 수가 없으니... 좋다. 딱 사흘. 네게 단 사흘의 말미를 주마. 그 사흘 동안 어떻게든 저 아이의 살길을 마련해 두거라. 사흘 뒤 이 깊은 밤, 내 다시 문밖에서 너의 이름을 부를 것이니, 그때는 어미의 정을 매몰차게 끊어내고 군말 없이 나를 따라 명부로 가야 할 것이다."
사자의 묵직하고도 장엄한 선고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연화의 혼백은 강렬한 빛과 함께 다시 자신의 뻣뻣하게 굳어있던 차가운 육신 속으로 무섭게 빨려 들어갔습니다.
"헉! 허어억!"
가라앉았던 바다 밑바닥에서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듯,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번쩍 눈을 뜬 연화. 그녀는 기적처럼 심장이 다시 뛰고 핏줄에 온기가 도는 것을 느끼며, 옆에서 훌쩍이고 있는 아이를 미친 듯이 제 가슴에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굳게 닫힌 방문 너머, 칼바람이 부는 문밖의 짙은 어둠 속으로 스르륵 몸을 감추며 기다림을 시작한 검은 그림자를 향해, 바닥에 엎드려 무언의 뼈저린 감사의 절을 올렸습니다. 기적처럼 얻어낸 사흘, 그것은 연화에게 주어진 핏빛보다 붉고 강렬한 마지막 이승의 시간이었습니다.
※ 4: 문밖에서 기다리는 사자, 사흘이 석 달이 되고 삼 년이 된 사연
기적처럼 사흘이라는 피 같은 말미를 얻어내고 다시 뻣뻣한 육신으로 숨을 불어넣은 연화가, 짐승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윗목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였습니다. 캄캄한 방 안을 숨 막히게 짓누르고 있던 서늘하고도 끔찍한 저승의 냉기는 일순간 아침 안개처럼 온데간데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파르르 꺼져가던 호롱불도 다시금 노란빛을 내며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죽음의 문턱까지 가며 핏기가 완전히 가셨던 그녀의 가슴에서 기이하게도 꽉 막혀 있던 젖이 뜨겁게 다시 돌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극도의 배고픔과 서러움에 지쳐 까무러칠 듯 울부짖던 핏덩이 아기는, 어미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뜻하고 달큰한 젖을 기운 차게 빨아들이며 이내 새근새근 평온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연화는 아이의 작고 보드라운 머리통을 부서질세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행여나 곯아떨어진 남편이 깰까 봐 소리를 죽인 채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자신을 굽어살펴준 천지신명과, 차가운 명부의 엄격한 법도를 스스로 어기면서까지 자신에게 핏덩이를 살릴 말미를 허락해 준 그 무섭고도 고마운 저승사자의 자비에 뼛속 깊이 감사하며 흘리는 뜨거운 눈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도감도 잠시뿐, 연화의 가슴 속에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사흘'이라는 죽음의 기한에 대한 지독한 불안감이 맹독을 품은 독버섯처럼 무섭게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사자가 허락한 시간은 고작 사흘. 그 짧고도 야속한 시간 안에, 이 눈으로 뒤덮인 깊고 외딴 산골짜기에서 핏덩이를 거두어줄 젖동냥 할 곳을 찾는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다음 날 동이 트자마자 연화는 뼈마디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을 억누르고 일어나, 밤새 남편의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제발 읍내로 내려가 젖동냥을 알아봐 달라며 피눈물을 흘리며 애원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아내의 절박한 부탁을 받은 남편은, 허리까지 차오르는 폭설을 뚫고 짚신이 다 해지도록 이웃 마을들을 미친 듯이 헤집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지독한 흉년과 혹독한 추위 속에 가난한 사냥꾼 부부의 핏덩이를 거두어 제 자식의 젖을 나누어줄 만큼 여유가 있는 집은 이 얼어붙은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빈손으로 돌아와 방문 앞에서 절망스러운 한숨을 푹푹 내쉴 때마다, 연화의 가슴은 시퍼런 비수에 찔린 듯 난도질당했습니다.
무심하고 야속한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단 한 번의 자비도 없이 빠르게 흘러내렸습니다. 첫날은 아이의 천사 같은 얼굴을 들여다보며 하염없이 눈물로 지새웠고, 이튿날은 차마 다가오는 죽음을 입에 올리지 못한 채 숯덩이처럼 타들어 가는 가슴을 부여잡고 남편의 거친 손을 쓰다듬으며 속으로 끔찍한 이별의 슬픔을 삼켜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운명처럼 잔혹한 사흘째 밤의 깊은 어둠이 기어코 찾아왔습니다. 칼바람이 다시금 문풍지를 매섭게 때리며 창호지를 비명 지르듯 파르르 떨게 만들었고, 문밖에서는 얼어붙은 눈밭을 밟는 짚신 소리가 "바스락, 바스락" 무겁게 다가오더니 이내 방문 앞에 우뚝 멈추어서는 기척이 들려왔습니다. 방 안의 온기는 일순간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내렸습니다.
"나와 약조한 사흘의 시간이 모두 지났다. 이승에서의 구차한 연을 이제 그만 끊어내고, 미련 없이 문밖으로 나오너라."
굳게 닫힌 방문 너머로 들려오는 저승사자의 목소리는, 사흘 전보다 더욱 서늘하고 날이 선 듯 단호했습니다. 연화는 공포와 절망 속에서도 젖을 먹던 아이를 가슴 깊이 꽉 끌어안고는, 방문 앞으로 기어가 납작 엎드린 채 다시 한번 피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사자님... 제가 이리도 어리석고 염치없는 줄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아오나, 이 첩첩산중에서 제 핏덩이를 거두어줄 이를 끝내 찾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이대로 눈을 감고 끌려가면, 이 아이는 어미의 식은 몸 위에서 빈 젖을 빨다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고통 속에 굶어 죽고 말 것입니다. 제발... 제발 백일만, 아니 딱 석 달만이라도 말미를 더 연장해 주시옵소서! 아이가 어미의 젖 없이 곡기로 쑨 미음이라도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을 때까지만 이 몹쓸 어미의 목숨을 붙여 주신다면, 기한이 차는 그날 결단코 단 한마디의 군말 없이 쇠사슬을 받겠습니다!"
문밖에서는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 소리만 몰아칠 뿐, 아주 오랫동안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창호지 위로 짙게 어른거리는 사자의 거대한 칠흑 같은 그림자는, 마치 이승과 저승을 가로막은 거대한 태산처럼 굳건하고 위압적이었습니다. 명부의 사자가 이승의 혼을 제때 거두지 않고 시간을 지체하면 지옥의 끔찍한 형벌을 받는다는 것을 연화도 짐작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가슴은 바싹바싹 타들어 갔습니다. 피를 말리는 기나긴 침묵 끝에, 마침내 문밖에서 짙은 한숨과 함께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석 달이 지난다 한들, 네가 미련 없이 그 아이의 손을 온전히 놓을 수 있겠느냐. 참으로 질기고도 모진 것이 인간 어미의 정이로구나... 좋다. 내가 내 목에 지옥의 칼날을 걸고서라도 석 달 뒤 이 시각에 다시 올 터이니, 그때는 진정 어미의 정을 모두 거두어야 할 것이다."
바스락거리는 무거운 발소리가 눈밭을 지나 멀어지고 나서야, 연화는 그 자리에 털썩 쓰러져 짐승처럼 꺽꺽거리며 통곡했습니다. 그렇게 벼랑 끝에서 또다시 석 달이라는 아슬아슬한 목숨의 유예 기간이 주어졌습니다. 혹독했던 겨울이 서서히 지나가고 처마 끝에 매달려 있던 고드름이 눈물처럼 녹아내리는 봄이 찾아왔지만, 연화의 몸을 갉아먹는 병세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살이 내리고 뼈가 튀어나와 살아있는 송장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아이는 미음을 삼키려 하지 않았고 젖을 떼기는커녕 어미의 품을 더욱 깊이 파고들며 칭얼거렸습니다. 연화는 그야말로 자신의 피와 뼈, 살을 깎아내어 아이에게 젖을 물렸습니다.
어느덧 야속한 석 달의 기한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산속에 연분홍빛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어느 따스한 봄밤, 어김없이 문밖에는 봄의 온기를 얼려버리는 서늘한 냉기와 함께 검은 도포 자락을 질질 끌며 저승사자가 찾아왔습니다. 연화는 다시 한번 피가 나도록 문고리를 부여잡고, 목이 쉬어라 애원했습니다.
"사자님! 아이가, 우리 불쌍한 아이가 아직도 제 젖을 놓지 못하고 미음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제발, 제발 아이가 제 발로 땅을 딛고 걸어 다니며 어미의 젖을 온전히 뗄 수 있을 때까지만, 딱 삼 년만! 단 삼 년만 말미를 주시옵소서! 삼 년만 허락해 주신다면, 기꺼이 펄펄 끓는 저승의 불구덩이에 뛰어들겠습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인간이여! 사흘이 석 달이 되고, 그 석 달이 다시 삼 년이 된다 한들 네 징글징글한 미련이 끊어질 것 같으냐! 천지자연의 명부 율법이 어찌 한낱 인간의 사사로운 정에 이리도 끝없이 휘둘릴 수 있단 말이냐!"
사자의 불호령이 천둥 번개처럼 방 안으로 떨어져 내렸지만, 연화는 포기하지 않고 문지방에 이마를 찧으며 살갗이 찢어지고 피투성이가 되도록 빌고 또 빌었습니다.
"제 알량한 목숨을 살려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저 어린 생명이 홀로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을 얻을 때까지만, 부디 어미 된 자의 도리를 다하게 해 주십시오! 제발... 제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놀랍게도 문밖의 짙은 그림자는 이번에도 거칠게 방문을 열어젖히거나 쇠사슬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창백한 달빛 아래 묵묵히 서 있던 사자는, 이윽고 조용히 몸을 돌려 마당 한구석에 자리한 늙고 커다란 감나무 아래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연화는 숨을 죽인 채 떨리는 손으로 창호지 틈을 아주 조금 열어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사자는 그날부터 저승으로 발길을 돌려 돌아가지도, 그렇다고 방 안으로 들어와 연화를 끌어내지도 않은 채, 그 감나무 아래에 거대한 검은 바위처럼 우두커니 선 채로 연화의 집을 묵묵히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봄비가 쏟아지면 그 차가운 비를 고스란히 맞았고, 한여름의 불볕더위가 내리쬐어도 갓 아래의 미동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삼 년이라는 그 기나긴 세월 동안, 저승사자는 어미의 그 처절하고 피 맺힌 맹세가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저승의 형벌을 각오한 채 문밖에서 묵묵히 기다려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 5: 차가운 저승사자의 눈물, 그가 이승에 두고 온 자식에 대한 기억
세월은 산골짜기를 굽이쳐 흐르는 계곡물처럼 쏜살같이 흘러, 마당 한구석의 커다란 감나무가 세 번의 새하얀 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내고 또 세 번의 주황빛 달콤한 열매를 맺어 땅으로 떨어뜨리는 동안, 죽음을 유예받은 연화의 품속 핏덩이 아이는 어느새 젖내를 온전히 벗어던지고 어엿한 세 살배기 사내아이로 훌쩍 자라났습니다. 아이는 이제 제법 튼튼하고 오동통한 두 다리로 마당의 흙바닥을 쿵쿵거리며 씩씩하게 뛰어다녔고, 흙투성이가 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장난을 치다가는 "어마! 어마아!" 하며 제법 또렷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방 안의 연화를 부르며 해맑게 웃어대곤 했습니다. 뼈만 남아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버거웠던 연화였지만, 방 안에서 문창호지 틈새로 그 경이롭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볼 때면 눈가에는 기쁨과 슬픔이 지독하게 뒤섞인 뜨거운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아이가 하루하루 눈부시게 성장하여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어가는 그 기적 같은 순간들은, 곧 연화 자신이 문밖의 저승사자와 약조한 죽음의 시각, 영원한 이별의 순간이 턱밑까지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하는 잔혹한 모래시계였기 때문입니다.
그 3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감나무 아래에 짙은 그림자처럼 우두커니 서서 그 가난하지만 애틋한 모자의 모습을 소리 없이 지켜보던 저승사자의 시퍼런 심중에도, 겉모습과는 다르게 거대한 감정의 폭풍이 미친 듯이 일고 있었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 아무리 망자가 억울함을 호소하고 금은보화를 싸 들고 와 바짓가랑이를 붙잡아도 단 한 치의 자비 없이 혼을 거두어 명부의 차가운 감옥으로 압송하는 끔찍한 형벌의 화신. 그것이 수백 년이라는 억겁의 시간 동안 사자가 저승에서 살아온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존재의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대체 어찌하여 핏덩이를 끌어안고 처절하게 피눈물을 흘리던 저 스물여섯 젊디젊은 어미의 절규 앞에서는, 그토록 엄중한 명부의 율법마저 번번이 내팽개치고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이승에 머무르고 말았단 말인가. 사자는 굳게 다문 창백한 입술 새로 길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시린 가을밤 하늘에 떠오른 처연한 달빛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아아... 그래, 나 역시 한때는 이승의 땅을 밟고 서서, 뜨거운 피가 끓고 가슴 미어지는 눈물을 흘리던 한 아이의 아비가 아니었더냐.'
사자의 감정 없이 텅 비어 있던 깊은 눈동자 속으로, 수백 년 전 망각의 강물 속 켜켜이 쌓인 먼지 속에 영원히 묻어두었던 전생의 아프고도 잔혹한 기억이 뜨거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역시 인간의 피와 살을 가졌던 시절, 매일같이 뙤약볕 아래서 흙을 파먹고 살던 가난하고 힘없는 농부였습니다. 그러다 원인 모를 역병이 돌던 해, 끔찍한 열병에 걸려 검붉은 피를 한 움큼씩 토해내며 썩어가는 초가집 방구석에 쓰러져 죽어갔습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시야가 캄캄해지던 그 죽음의 문턱, 그의 곁에는 해진 낡은 저고리를 입고 "아비, 아비! 제발 나를 두고 죽지 마시오..." 하며 숨이 넘어가라 서럽게 울어대던 다섯 살배기 어린 딸자식이 있었습니다. 저승으로 끌려가는 죽음 자체는 억울하지도 두렵지도 않았으나, 어미도 없이 홀로 남겨질 가여운 딸자식을 험악한 세상에 내버려 두고 가야 한다는 사실에, 그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도 허공을 향해 앙상한 손을 허우적거리며 하늘을 향해 피 섞인 저주를 울부짖었습니다. 저승의 사자가 되어 망각의 강물을 들이마시고 전생을 지웠음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두고 떠나야 했던 아비의 그 지독하고 원초적인 부성애의 파편만은 가슴 가장 깊숙한 곳에 화석처럼 단단히 박혀 있었던 것입니다.
사자는 마당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도 칭얼거리지 않은 채, 옷에 묻은 흙을 툭툭 털고 벌떡 일어나는 연화의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어미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살과 뼈를 깎아내는 헌신적인 정성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아, 이제는 그 어떤 잡초보다도 강인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그 사내아이의 씩씩한 모습에서, 수백 년 전 차가운 방구석에 홀로 웅크려 울고 있었을 자신의 불쌍한 어린 딸의 얼굴이 투명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내 비록 육신을 잃고 저승의 명을 받드는 사자라 할지라도, 제 핏덩이를 살리기 위해 지옥불의 고통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저 숭고하고 지독한 어미의 정을 어찌 내 손으로 억지로 끊어낼 수 있었겠는가. 죽어가는 어린 자식을 눈앞에 두고 홀로 저승길을 나서야 하는 그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을 알면서도, 내 어찌 율법만을 들먹이며 모른 척 등 돌릴 수 있었겠는가.'
사자의 밀랍처럼 창백하고 차가운 뺨 위로, 3백 년이라는 억겁의 세월 만에 처음으로 뜨거운 한 줄기 물길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죽은 자는, 더구나 저승의 사자는 결코 흘릴 수 없다던 기적 같은 이승의 눈물이었습니다. 그 맑고 뜨거운 눈물은 사자의 뺨을 타고 턱을 지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려, 마당의 마른 흙을 축축하게 적셨습니다. 그 눈물이 스며든 자리에서는, 훗날 이듬해 봄이 오면 이름 모를 아름답고 새하얀 들꽃이 피어날 것이었습니다. 사자는 커다란 갓챙을 더욱 깊숙이 눌러쓰며 자신의 축축하게 젖은 눈가를 어둠 속으로 감추었습니다. 이 감나무 아래에서의 3년이라는 기다림. 그것은 단순히 가엾은 어미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준 일방적인 자비가 아니었습니다. 죽어가면서도 자식을 두고 온 지독한 죄책감에 갇혀, 수백 년 동안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던 사자 자신의 깊은 영혼의 상처를 따뜻하게 치유하고 구원받는 숭고한 시간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제 약속된 삼 년의 기나긴 말미가 단 며칠밖에 남지 않은 어느 서늘한 늦가을 밤, 사자는 더 이상 나무 아래의 짙은 그림자 속에 숨어 있지 않고 뚜벅뚜벅 무거운 걸음을 옮겨 연화의 방문 앞까지 다가갔습니다. 서늘하고 압도적인 저승의 기운을 단번에 알아챈 연화는, 곯아떨어진 아이의 이불 깃을 꼼꼼히 여며 덮어주고는 방문 너머를 향해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정갈하게 앉았습니다.
"어미 된 자여, 듣거라. 네가 애원하고 약조했던 삼 년의 시간이 이제 모두 그 끝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아이는 무사히 젖을 떼었고, 이제 제 다리로 굳건히 서서 이승의 험한 풍파를 헤쳐 나갈 힘을 얻었으니, 이승을 향한 네 모진 미련도 참으로 애틋하게 여기까지로구나."
문밖에서 창호지를 뚫고 들려오는 사자의 목소리는, 삼 년 전 연화의 목을 조르던 그 살벌하고 차가웠던 기운이나 위압감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습니다. 오히려 억겁의 세월을 뛰어넘어 인간의 끔찍한 고통을 함께 나누어 짊어지고 이해하게 된 늙은 도인의 그것처럼, 한없이 깊고 애잔한 울림마저 다정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연화는 감히 방문을 열어 사자의 얼굴을 뵙지 못한 채, 방바닥에 깊이 고개를 숙여 문지방을 향해 엎드려 큰절을 올렸습니다.
"사자님, 참으로, 참으로 망극하옵니다. 명부의 시각을 어기어 당장 끌려가 불에 타 죽어 마땅한 제게 천금보다 귀하고 바다보다 넓은 삼 년의 세월을 베풀어 주시어, 아이에게 이 어미의 젖을 배불리 먹이고 살려낼 수 있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이 보잘것없는 어미의 얼굴과 체온을 아이의 가슴속에 영원히 새겨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아가가 제 손으로 스스로 숟가락을 쥐고 밥을 뜰 수 있으니, 저는 이제 죽어 지옥에 떨어져도 하늘을 향해 아무런 원망도 후회도 남지 않았습니다. 부디 남은 며칠 동안만, 홀로 남겨질 가엾은 서방님과 커가는 우리 아이가 다가오는 추운 겨울을 춥지 않게 견딜 수 있도록 솜옷을 지을 수 있게 허락해 주신다면, 옷이 완성되는 그날 기꺼이 제 목에 사자님의 오랏줄을 받겠습니다."
연화의 목소리는 산속의 옹달샘처럼 맑고 흔들림 없이 평온했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한낱 나약한 인간의 두려움이나 미련은 그녀의 영혼에서 완전히 정화되어 사라져 있었고, 오직 제 목숨을 던져 자식을 훌륭히 살려냈다는 거룩한 안도감과 숭고한 헌신만이 달빛처럼 은은하고 성스럽게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사자는 문밖에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연화가 이승에서의 숭고한 마지막 이별을 조용히 준비할 수 있도록 다시 감나무 아래로 물러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 6: 젖을 뗀 아이와의 애틋한 이별, 그리고 사자와 함께 떠나는 길
연화가 눈물과 피땀으로 얻어낸 3년이라는 약조의 마지막 날 아침, 첩첩산중 산골짜기에는 지난밤부터 하늘이 이별의 슬픔을 위로하듯 포근하고 새하얀 첫눈이 소리 없이 소복소복 내리고 있었습니다. 온 세상이 하얗게 정화된 듯한 그 고요한 새벽, 연화는 닭이 울기도 전인 이른 시각에 누구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뼈마디가 부서질 듯한 병마의 고통이 여전히 그녀의 육신을 짓누르고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정갈한 표정으로 낡은 부엌으로 나갔습니다.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 물을 끓이고, 3년 동안 죽어가는 아내와 어린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묵묵히 칼바람을 맞으며 산을 타며 고생한 남편을 위해, 장독대 깊숙이 숨겨두었던 귀한 쌀을 박박 씻어 모처럼 하얀 쌀밥을 안쳤습니다. 부엌 한구석에서 밤새 정성스레 달여낸 약초 물을 떠서 창백한 자신의 얼굴을 깨끗이 씻어내고, 오랫동안 빗지 않아 엉켜 있던 머리를 참빗으로 곱게 빗어 넘긴 뒤, 시집올 때 남편이 사주었던 빛바랜 비녀를 정갈하게 꽂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조용히 들어가, 아직 세상모르고 새근새근 평온한 숨을 쉬며 잠들어 있는 세 살배기 아들의 머리맡에 가만히 앉았습니다.
밤새 한 땀 한 땀, 자신의 수명이 줄어드는 것도 잊은 채 손끝이 찔려 피가 나도록 정성 들여 지은 두툼한 겨울 솜옷이었습니다. 그 옷 안에는 자신이 떠난 뒤에도 매서운 겨울바람으로부터 아이를 지켜주고 싶은 어미의 뜨거운 사랑이 솜처럼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연화는 그 작은 솜옷을 아이의 머리맡에 가지런히 개어 놓고는, 허리를 굽혀 잠든 아이의 통통하고 따뜻한 볼에 조심스레, 아주 오래도록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이의 살결에서 나는 특유의 단내를 마지막으로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그녀의 가슴 속에서는 폭풍 같은 오열이 일었지만 결코 소리 내어 울지 않았습니다.
'내 목숨보다 사랑하는 아가. 험하고 차가운 세상에 너를 덩그러니 남겨두고 먼저 눈을 감아 떠나는 이 몹쓸 어미를 부디 용서하거라. 비록 이승에서의 내 보잘것없는 육신은 불타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갈지언정, 내 혼백만은 명부의 지옥에서도 결코 너를 잊지 않고 밤낮으로 너의 곁을 맴돌며 거센 비바람을 막아줄 것이다. 그러니 밥 거르지 말고, 넘어지더라도 씩씩하고 굳건하게 자라거라. 내 천사 같은 아가...'
눈가에 맺힌 눈물이 아이의 뺨에 떨어질세라 재빨리 소매로 훔쳐낸 연화는, 반대편에서 거친 숨을 내쉬며 곯아떨어진 남편의 굳은살 박인 투박한 손을 잠시 두 손으로 꽉 부여잡았습니다. '서방님, 참으로 고마웠고 뼈저리게 미안합니다.' 속으로 가슴 미어지는 무언의 마지막 인사를 건넨 연화는, 이내 모든 미련을 훌훌 털어버리듯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장롱 깊숙한 곳에서 꺼내둔 가장 깨끗한 하얀 무명 저고리를 단정하게 여미고, 주저함 없이 방문을 열어젖히며 눈 쌓인 마당으로 나섰습니다.
하얀 눈이 발목까지 푹푹 빠지도록 소복하게 쌓인 마당 한가운데에는, 지난 3년의 세월을 비바람을 맞으며 묵묵히 견뎌낸 저승사자가 칠흑 같은 검은 도포 위로 하얀 눈을 고스란히 맞으며 고요하고도 위엄 있게 서 있었습니다. 연화는 눈밭을 가로질러 걸어가 사자의 발치 앞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앉아, 얼어붙은 땅에 이마가 닿도록 정중하게 큰절을 세 번 올렸습니다. 그녀의 하얀 무명옷과 눈밭, 그리고 사자의 검은 도포가 묘하고도 성스러운 대비를 이루었습니다.
"사자님. 그동안 이 미천하고 어리석은 어미의 억지스러운 떼를 단 한 번의 내침 없이 군말 없이 받아주시고, 명부의 형벌을 각오하시면서까지 이토록 기나긴 3년의 자비를 베풀어 주신 그 바다 같은 은혜, 제가 죽어 저승의 불구덩이 속에서 억만년을 탄다 해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 제 아이는 이 어미의 품과 젖이 없어도 이승을 굳건히 살아갈 수 있으니, 제 목에 지체 없이 오랏줄을 묶어 주시옵소서."
연화가 고개를 숙인 채 묶이기 위해 두 손을 다소곳이 내밀었지만, 사자는 품속에 지니고 있던 거칠고 무서운 오랏줄을 끝내 꺼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자는 창백하지만 예전처럼 차갑지 않은 손을 천천히 내밀어, 연화의 가녀린 어깨를 가만히 부축해 일으켜 세웠습니다. 놀란 연화가 고개를 들자, 사자의 갓 아래로 드러난 얼굴에는 수백 년 만에 처음으로 은은하고도 자애로운 미소가 번져 있었습니다.
"연화야, 고개를 들거라. 이승에서의 네 숭고한 소임은 참으로 눈부시고 훌륭하게 끝이 났다. 죽음의 공포마저 뛰어넘어 젖먹이를 지켜낸 네 그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은, 얼음장 같던 저승의 서늘한 명부마저 따뜻하게 데우고 나를 구원하였으니, 너는 이제 오라에 묶여 압송될 죄인이 아니라 하늘이 감복한 숭고한 어미로서 대우를 받을 것이다. 네게는 오랏줄이 필요 없으니, 그저 내 뒤를 따라 편안하고 당당하게 걸음을 옮기거라."
사자의 그 깊고도 장엄한 목소리에 연화는 참아왔던 뜨거운 눈물을 조용히 흘리며 감격에 찬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자가 천천히 몸을 돌려 눈 덮인 험한 산등성이를 향해 첫걸음을 내딛자, 연화도 그 뒤를 따라 마치 구름 위를 걷듯 평온하고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새하얀 눈밭 위로는 이승을 떠나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나란히 남겨졌지만, 어디선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산바람이 불어와 이내 그 흔적조차 눈송이로 하얗게 덮어 지워버렸습니다.
얼마 뒤 방 안에서 잠이 깬 아이가 "어마! 어마아!" 하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지만, 텅 빈 마당에는 온기를 남기고 떠난 어미의 모습도, 거대한 그림자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이는 울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 나풀나풀 춤추듯 내리는 포근한 함박눈이 마치 어미의 따뜻한 손길처럼 아이의 통통한 뺨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냉혹한 사자마저 눈물 흘리며 굴복하게 만든, 위대하고 숭고한 어머니의 그 끝없는 사랑은, 살을 에이는 겨울의 모진 한파 속에서도 남겨진 아이의 작은 심장 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따스한 불씨로 남아, 아이의 굳건한 평생을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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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오직 자식만을 걱정했던 스물여섯 젊은 어미의 절규, 그리고 그 눈물 앞에 명부의 율법마저 미루고 3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기다려준 저승사자의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나요? 이승과 저승의 경계마저 허물어버린 위대한 모성애와, 냉혹한 사자의 가슴 한구석에 숨겨져 있던 따스한 부성애가 깊은 감동을 남깁니다. 오늘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리며, 다음 시간에도 더욱 애틋하고 기묘한 전설로 찾아뵙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