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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방랑시인 김삿갓과 저승사자 2탄 : 인생의 마지막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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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200자)
죽음과의 약속에서 3년의 유예를 얻은 김삿갓! 저승사자 이담과 맺어진 특별한 우정, 그리고 염라대왕이 직접 주관하는 저승 시 대회의 초대장까지? "내 남은 생애의 시를 염라대왕께 바치리라!" 방랑시인의 마지막 여정에서 피어난 가장 아름다운 시향(詩香)을 지금 만나보세요.
디스크립션 (300자)
저승사자 이담과의 시 대결에서 승리해 3년의 유예를 얻은 방랑시인 김삿갓(본명 김병연). 죽음을 앞둔 그는 이제 인생의 마지막 순간들을 의미 있게 채워가고 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시에 담아내는 김삿갓과, 1년마다 그를 찾아와 특별한 우정을 나누는 저승사자 이담. 그리고 염라대왕이 직접 소집한 '저승 시 대회'의 초대장까지 받게 된 김삿갓.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빛나는 진정한 시의 가치를 만나보세요.
※ 유예 첫해, 풍랑을 만난 배 위에서 이담과 재회하는 김삿갓
조선 헌종 13년(1847년) 음력 8월 보름날, 서해안의 풍랑이 거센 밤이었다.
작은 나룻배 한 척이 거친 파도에 휘청거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배 위에는 커다란 삿갓을 쓴 중년의 사내가 배 뒤편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김삿갓(본명 김병연)이었다.
"여보게 뱃사공! 이 풍랑 속에서 과연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겠나?"
김삿갓이 뱃사공에게 외쳤다. 하지만 뱃사공은 노를 저으며 간신히 배의 방향을 잡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시인 나리! 걱정하지 마이소. 이 정도 풍랑은 예사니께요."
뱃사공의 말과는 달리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파도는 점점 더 거세졌고, 하늘에서는 번개가 내리치며 바다를 환하게 비췄다.
김삿갓은 자신의 삿갓을 단단히 여미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는 지난 1년간 전국을 누비며 수많은 시를 지었다. 저승사자 이담과의 약속 이후, 그의 시는 더욱 깊고, 더욱 아름다워졌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전과 달리 더욱 선명하고 찬란했다.
갑자기 배가 크게 흔들리더니 김삿갓이 앉아있던 자리 근처로 큰 파도가 덮쳤다. 그 순간, 김삿갓은 바다에 빠질 뻔했지만 누군가가 그의 팔을 강하게 붙잡았다.
"조심하시오, 김병연."
낯익은 목소리에 김삿갓이 고개를 들어보니, 검은 도포를 입은 사내가 그를 잡고 있었다. 번개가 번쩍이는 순간, 그 사내의 얼굴이 드러났다. 바로 저승사자 이담이었다.
"이담 사자! 자네가 웬일이오? 아직 3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이담은 미소를 지으며 김삿갓 옆에 앉았다. 기이하게도 그의 주변만큼은 비와 파도가 닿지 않는 듯했다.
"염라대왕께서 당신이 지은 시를 보고 크게 감동하셨소. 그래서 나를 다시 보내 당신의 안부를 묻게 하셨소."
김삿갓은 호쾌하게 웃었다. "하하하! 염라대왕이 내 시를 읽고 감동했다고? 이거 참 영광이군!"
그때 또 다시 배가 크게 흔들렸다. 뱃사공이 놀라 외쳤다.
"시인 나리! 누구와 말씀하시는 겁니까? 혼자 중얼거리시지 말고 단단히 잡으이소!"
김삿갓은 그제야 깨달았다. 뱃사공은 이담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이담에게 물었다.
"자네가 오니 이 풍랑이 잦아들 일은 없겠지?"
이담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내 영역이 아니오. 나는 단지 생명을 데려가는 자일 뿐..."
그때 갑자기 더 큰 파도가 배를 덮쳤고, 배는 거의 뒤집힐 듯 흔들렸다. 뱃사공이 균형을 잃고 바다에 빠졌다.
"살려주시오! 살려주...!"
뱃사공의 외침이 파도 소리에 묻혔다. 김삿갓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삿갓을 벗어 던지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차가운 바닷물이 그의 온몸을 감쌌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뱃사공을 향해 헤엄쳤다.
이담은 배 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의 표정은 복잡했다. 저승사자인 그는 이미 이 배에 죽음이 찾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뱃사공인지, 김삿갓인지는 그도 확신할 수 없었다.
김삿갓은 간신히 뱃사공에게 도달했다. 그는 한 손으로 뱃사공의 옷깃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 파도를 가르며 배 쪽으로 헤엄쳤다. 그의 체력은 서서히 소진되고 있었다.
"이담 사자! 이 사람을 도와주시오!" 김삿갓이 외쳤다.
이담은 배 위에서 안타깝게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오, 김병연. 나는 생명을 구할 수 없소. 그것은 내 역할이 아니오."
김삿갓은 필사적으로 힘을 내어 배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그때 또 다른 거대한 파도가 덮쳐왔다. 김삿갓과 뱃사공은 파도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며, 김삿갓은 죽음의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 '아직 2년이 남았는데...' 그의 의식이 희미해지는 순간, 누군가가 그의 팔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물 위로 나온 김삿갓은 기침을 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옆에는 이담이 뱃사공을 붙잡고 있었다. 이담은 어느새 바다 속으로 들어와 그들을 구하고 있었다.
"이담, 자네가...!"
이담은 말없이 두 사람을 배로 끌어올렸다. 신기하게도 풍랑은 갑자기 잦아들기 시작했고, 하늘에서는 별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배 위에 올라온 김삿갓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누워있었다. 이담이 그의 옆에 앉았다.
"저승사자가 생명을 구하다니, 이건 규칙 위반 아니오?" 김삿갓이 힘없이 웃으며 물었다.
이담은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죽기로 예정된 날은 아직 오지 않았소. 나는 단지... 그 약속이 지켜지길 바랐을 뿐이오."
김삿갓은 깊이 감동했다. 저승사자가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일은 분명 전례 없는 일이었다.
"고맙네, 이담. 내가 지은 시 한 수를 들려주겠네."
김삿갓은 천천히 일어나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시를 읊기 시작했다.
"태산같은 파도 속에 목숨이 오락가락 (巨浪中命懸一線)
죽음의 사자가 오히려 생명을 구하니 (死神反救生)
인생이란 바다 위 작은 배와 같아 (人生如海上小舟)
운명의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네 (隨風搖曳)"
이담은 김삿갓의 시를 듣고 깊이 감동했다. 그는 천천히 일어서며 말했다.
"당신의 시는 점점 더 깊어지고 있소, 김병연. 염라대왕께서 틀림없이 기뻐하실 것이오."
김삿갓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남은 시간 동안 최고의 시를 짓겠네. 저승에 가져갈 선물로 말이야."
이담은 미소 지으며 안개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1년 후에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겠소. 그때까지 무사하시길..."
이담이 완전히 사라진 후, 김삿갓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뱃사공을 돌보았다. 밤하늘에는 이제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고, 바다는 거울처럼 잔잔해져 있었다.
"이상한 일이군..." 뱃사공이 정신을 차리며 중얼거렸다. "갑자기 풍랑이 멈추다니..."
김삿갓은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삿갓은 바다에 떠내려갔지만, 마음만큼은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남은 생애가 어쩌면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임을.
"자네는 오늘 운이 좋았네. 우리 모두 말이야." 김삿갓이 뱃사공에게 말했다.
배는 이제 별빛 아래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 두 번째 해, 눈 덮인 산사에서 펼쳐지는 저승 시 대회 초대
헌종 14년(1848년) 음력 12월, 강원도 오대산 자락의 작은 절.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깊은 산속 고즈넉한 암자에는 촛불 하나만이 방 안을 밝히고 있었다. 그 불빛 아래 김삿갓이 앉아 붓을 들고 있었다.
자신과의 약속 이후, 김삿갓은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며 시를 짓고 있었다. 오늘도 그는 밤이 깊도록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찌 이리 추운지... 이런 날씨라면 주막에서 술 한 잔 하는 게 더 좋았을 텐데."
김삿갓은 중얼거리며 양초를 하나 더 밝혔다. 방 안은 여전히 춥고 쓸쓸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따뜻한 시상(詩想)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제 1년밖에 남지 않았군... 죽음을 앞둔 자의 시, 어떤 것이 좋을까?"
그는 천천히 먹을 갈기 시작했다. 먹이 갈리는 소리만이 적막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때, 문 밖에서 가볍게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김삿갓은 의아했다. 이 깊은 산속 암자에 한밤중에 누가 찾아온 것일까?
"들어오시오."
김삿갓이 말하자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곳에는 눈이 잔뜩 내린 검은 도포를 입은 사내가 서 있었다. 바로 저승사자 이담이었다.
"자네인가! 왜 이리 일찍 왔나? 아직 1년이 남았는데."
이담은 미소를 지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기이하게도 그의 도포에는 눈이 쌓여 있었지만, 그의 발자국에는 눈이 묻어있지 않았다.
"오늘은 당신을 데리러 온 것이 아니오, 김병연."
이담은 자리에 앉아 품에서 작은 비단 봉투를 꺼냈다. 봉투는 붉은색이었고, 그 위에는 금색 실로 '초대장'이라는 글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이게 무엇이오?" 김삿갓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염라대왕께서 당신을 초대하시오." 이담이 정중히 봉투를 건넸다. "저승 시 대회에 말이오."
김삿갓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저승 시 대회라고? 그게 무엇이오?"
이담은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매 천 년마다 한 번씩, 염라대왕께서는 인간 세상과 저승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시인들을 모아 대회를 여십니다. 그곳에서는 살아있는 시인과 이미 저승에 간 시인들이 함께 모여 시를 겨루지요."
김삿갓은 해맑게 웃었다. "그런 대회가 있다니! 그런데 어찌 나같은 방랑시인이 초대를 받게 된 것이오?"
"당신의 시가 염라대왕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오. 지난 2년 동안 당신이 지은 시들은 단순한 글자의 나열이 아니라, 영혼의 울림이 담겨 있었소."
김삿갓은 감동했다. 그는 천천히 봉투를 열어 그 안의 초대장을 꺼냈다. 초대장에는 금색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저승 시 대회 초대장
시간: 음력 12월 마지막 날 자정
장소: 저승 강 너머 시인의 정원
초대인: 김병연(김삿갓)
대왕의 명에 따라, 당신을 저승 시 대회에 초대합니다.
천 년에 한 번 열리는 이 대회에서,
당신은 역대 최고의 시인들과 함께 시를 겨루게 될 것입니다.
승자에게는 특별한 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김삿갓은 초대장을 읽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자네가 말한 '특별한 상'이란 무엇이오?"
이담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대회에 참석해보면 알게 될 것이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대회는 당신에게 남은 1년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할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이오."
김삿갓은 문득 떠올랐다. "잠깐, 이 대회는 저승에서 열린다고 했는데... 내가 어떻게 그곳에 갈 수 있단 말이오? 아직 내 시간이 남았는데."
이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시오. 대회 당일 내가 당신을 데리러 올 것이오. 당신의 육신은 이곳에 남겨두고, 영혼만 잠시 저승을 방문하게 될 것이오. 대회가 끝나면 다시 이승으로 돌아올 수 있소."
김삿갓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곳에서 누구를 만날 수 있을까? 혹시 이백이나 두보 같은 대시인들도?"
이담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지요.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고려 시대 이규보, 최치원, 그리고 당신이 존경하는 다른 시인들도 모두 참석할 것이오."
김삿갓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평생 시를 통해 세상을 노래했던 그에게,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었다.
"좋소! 내 꼭 참석하겠소. 이제 남은 시간 동안 최고의 시를 준비해야겠군."
이담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일어섰다. "기대하겠소, 김병연. 염라대왕께서도 당신의 참석을 기다리실 것이오."
김삿갓은 문득 궁금한 것이 있어 물었다. "이담 사자, 자네도 시를 짓나? 지난번 우리의 시 대결에서 자네의 시가 꽤 훌륭했는데."
이담은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단지 생명을 인도하는 자일 뿐이오. 시를 짓는 것은 내 역할이 아니지요."
그의 말에서 어딘가 외로움이 느껴졌다. 김삿갓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담에게 다가갔다.
"이담, 내가 자네를 위해 한 수 지어주겠네."
김삿갓은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시를 읊기 시작했다.
"천 년 동안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그대 (千年往來生死間)
차가운 손길로 영혼을 이끄는 외로운 사자 (冷手引魂孤使者)
그러나 그대의 눈빛에서 보았네 (然吾見汝眼中)
인간의 슬픔을 이해하는 따뜻한 마음을 (解人間悲溫心)"
이담의 눈에 감동의 빛이 어렸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김병연, 당신은 정말 특별한 시인이오. 천 년을 살며 수많은 영혼을 데려갔지만, 당신처럼 타인의 마음을 읽는 이는 드물었소."
김삿갓은 웃으며 말했다. "자네와 나 사이에는 이제 시인과 독자의 인연이 생긴 것 같군. 저승 시 대회에서도 내 최고의 시를 보여주겠네."
이담은 천천히 안개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음력 12월 마지막 날 자정, 이곳으로 찾아오겠소. 그때까지 준비하시오, 김병연."
이담이 완전히 사라진 후, 김삿갓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그는 책상에 앉아 붓을 들었다.
"이제 내 인생 최고의 시를 지어야겠군. 저승의 시인들에게 보여줄 나의 마지막 작품을..."
※ 마지막 해, 병든 어린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수명을 나누는 김삿갓
헌종 15년(1849년) 봄, 전라도 작은 마을.
봄바람이 따스하게 불어오는 날이었다. 마을 어귀에 있는 초가집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둡고 슬펐다.
집 안에서는 어린아이의 앓는 소리와 어머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의원님, 우리 아이가 살 수 있을까요?"
어머니가 절박한 목소리로 물었다.
"죄송합니다만... 이제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하늘의 뜻을 따를 수밖에..."
의원의 말에 어머니는 더욱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를 들은 김삿갓이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1년 전 저승 시 대회의 초대장을 받은 후, 마지막 1년을 더욱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전국을 누비고 있었다. 오늘도 그는 우연히 이 마을에 들렀다가 슬픈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이 아이가 어떻게 된 것이오?" 김삿갓이 물었다.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며 대답했다. "열흘 전부터 갑자기 고열이 나기 시작했어요. 마을의 의원님도, 멀리서 모셔온 큰 의원님도 모두 속수무책이라고 하시네요."
김삿갓은 침상에 누워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겨우 일곱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고, 숨소리도 매우 미약했다. 그는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어보았다. 뜨거웠다.
"이 아이는 무슨 꿈을 꾸었소?" 김삿갓이 문득 물었다.
어머니는 의아한 눈빛으로 김삿갓을 바라보았다. "꿈이요? 열이 오르기 전날 밤,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자기를 데리러 왔다는 꿈을 꾸었다고 했어요..."
김삿갓의 눈빛이 변했다. 그는 즉시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했다. '저승사자... 이담이 이 아이를 데리러 왔었구나.'
"모두 밖으로 나가주시오. 내가 이 아이를 한번 보겠소."
사람들은 의아했지만, 김삿갓의 진지한 눈빛에 모두 밖으로 나갔다. 방 안에 홀로 남은 김삿갓은 천천히 눈을 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담 사자, 내 목소리가 들리는가? 자네를 부르네."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차가워지더니, 구석에서 검은 도포를 입은 이담의 모습이 서서히 나타났다.
"김병연, 오랜만이오." 이담이 말했다. "왜 나를 부른 것이오?"
김삿갓은 병든 아이를 가리켰다. "이 아이를 데리러 왔었지?"
이담은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이 아이의 수명이 다해가고 있소. 며칠 안에 내가 다시 와서 데려가게 될 것이오."
김삿갓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문득 결심한 듯 이담을 바라보았다.
"이담 사자, 내가 제안이 있네. 내게 남은 1년의 수명 중 절반을 이 아이에게 주고 싶소."
이담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씀이오? 그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오!"
김삿갓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 아이는 겨우 일곱 살이오. 아직 세상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소. 내게는 이미 충분한 삶이 있었소. 나는 전국을 누비며 수많은 시를 짓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인생을 만끽했소. 하지만 이 아이는..."
그의 눈에 진심 어린 연민이 담겨 있었다. 이담은 복잡한 표정으로 김삿갓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마음은 알겠소. 하지만 그것은 내 권한 밖의 일이오."
"그렇다면 염라대왕께 물어보시오." 김삿갓이 간곡히 부탁했다. "내가 저승 시 대회에 참석하는 대신, 내게 남은 시간 중 절반을 이 아이에게 주는 것으로 말이오."
이담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염라대왕께 당신의 제안을 전하겠소. 잠시 기다리시오."
이담은 안개처럼 사라졌다. 김삿갓은 아이의 곁에 앉아 기다렸다. 시간이 흐르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 다시 이담이 나타났다.
"김병연, 염라대왕께서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셨소. 당신의 선행에 감동하셨다고 하시오."
김삿갓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고맙소, 이담."
"하지만 조건이 있소." 이담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은 여전히 저승 시 대회에 참석해야 하오. 그리고 대회가 끝난 후, 당신에게 남은 6개월의 시간을 보낸 뒤 저승으로 와야 하오."
김삿갓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 조건을 받아들이겠소."
이담은 김삿갓에게 다가와 그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김삿갓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고, 그 빛은 천천히 아이에게로 흘러갔다. 빛이 아이의 몸을 감싸자, 아이의 창백했던 얼굴에 점차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끝났소." 이담이 말했다. "이 아이는 이제 살 것이오. 당신의 수명 6개월이 그에게 전해졌소."
김삿갓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갑자기 피로함을 느꼈지만, 마음만큼은 가벼웠다.
"고맙소, 이담. 내가 지은 시 한 수를 들려주겠네."
김삿갓은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고, 조용히 시를 읊었다.
"어린 생명 한 줌 불꽃 같아 꺼져가는데 (幼命一束火將滅)
내 생의 반을 나누어 불씨를 살리니 (分我半生救火種)
인생이란 무엇인가, 서로 돕는 정이라네 (人生何物相助情)
어린이여 이제 편히 잠들고 깨어나라 (童子安眠今覺醒)"
이담은 김삿갓의 시에 깊은 감동을 받은 듯했다. "당신은 정말 특별한 시인이오, 김병연. 저승에서도 당신 같은 시인을 만나기 어려울 것이오."
김삿갓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은 6개월뿐이구려. 그 시간 동안 최고의 시를 지어 저승 시 대회에서 선보이겠소."
이담은 고개를 끄덕이고 안개처럼 사라졌다. 김삿갓은 문을 열고 밖에서 기다리는 어머니를 불렀다.
"들어오세요. 아이가 이제 괜찮을 것이오."
어머니가 달려들어와 아이를 살펴보았다. 아이의 얼굴에는 이미 혈색이 돌고 있었고, 숨소리도 훨씬 편안해져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김삿갓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김삿갓은 담담하게 웃었다. "이제 아이를 잘 돌보시게. 6개월 뒤에 내가 다시 찾아올 것이오. 그때 이 아이가 어떻게 자랐는지 보고 싶소."
그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초가집을 나섰다. 그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비록 수명은 짧아졌지만, 그의 마음은 더없이 충만했다.
※ 염라대왕이 주관하는 저승 시 대회, 김삿갓의 등장과 충격
음력 12월 마지막 날 자정, 강원도 오대산 자락의 작은 암자.
창밖으로는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김삿갓은 촛불 하나를 켜놓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는 지난 6개월 동안 자신의 인생 최고의 시를 준비해왔다. 오늘은 바로 저승 시 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이제 곧 이담이 올 시간이군..." 김삿갓은 중얼거렸다.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방 안의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창문이 열리지 않았는데도 촛불이 흔들렸고, 이내 이담의 모습이 나타났다.
"시간이 되었소, 김병연." 이담이 말했다.
김삿갓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기다리고 있었소, 이담."
"준비는 되셨소?" 이담이 물었다.
"물론이지. 내 평생 지은 시 중 가장 좋은 작품들을 골랐소."
이담은 김삿갓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제 당신의 영혼만 저승으로 데려갈 것이오. 육신은 이곳에 남겨두고, 대회가 끝나면 다시 돌아올 수 있소."
김삿갓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순간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오는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마치 가벼운 연기처럼, 그의 영혼이 육신에서 분리되었다. 그는 이제 자신의 몸이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느낌이라니... 신기하군." 김삿갓은 감탄했다.
이담은 손을 내밀었다. "가시죠."
김삿갓이 이담의 손을 잡자, 주변 풍경이 급속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암자의 방은 사라지고, 두 사람은 어둠 속을 빠르게 지나갔다. 잠시 후, 그들은 넓은 강가에 도착했다. 강물은 검은빛으로 흐르고 있었고, 그 너머로 아름다운 정원이 보였다.
"저승강이오." 이담이 설명했다. "저 너머가 바로 시인의 정원이오."
그들은 강을 건너 정원으로 들어갔다. 정원은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사계절의 꽃들이 동시에 피어있었고, 신비로운 빛이 모든 것을 감싸고 있었다. 정원 한가운데에는 넓은 원형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 주변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저기 계신 분들이..." 김삿갓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소. 역사 속 위대한 시인들이오." 이담이 대답했다.
김삿갓은 경외심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중국의 이백, 두보, 왕유, 그리고 우리나라의 이규보, 정철, 윤선도와 같은 위대한 시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저승에서도 시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자, 이쪽으로 오시오." 이담이 김삿갓을 안내했다.
그들이 무대 가까이 다가가자, 모든 시선이 김삿갓에게 향했다. 저승의 시인들은 살아있는 인간이 그들 사이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누구신가? 살아있는 인간이 저승에 왔단 말인가?"
"생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과연 어떤 시인이길래..."
시인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무대 위에 장엄한 왕좌가 나타났다. 그 위에는 위엄 있는 모습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바로 염라대왕이었다.
"모두 조용히 하라." 염라대왕의 목소리가 정원 전체에 울려 퍼졌다. "오늘 특별한 손님을 모셨다. 살아있는 인간 중 가장 뛰어난 시인, 김병연이다."
모든 시인들이 경의를 표하며 김삿갓을 바라보았다. 김삿갓은 긴장된 마음으로 무대 앞으로 나아갔다.
"감사합니다, 대왕님." 김삿갓이 공손히 절을 올렸다.
염라대왕은 미소를 지었다. "김병연, 너는 이미 내 마음을 사로잡은 시인이다. 오늘 이 저승 시 대회에서 네가 어떤 시를 보여줄지 기대가 크다."
김삿갓은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부족한 시이지만, 정성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좋다." 염라대왕이 말했다. "이제 대회를 시작하겠다. 주제는 '영원과 찰나'다. 모든 시인들은 이 주제로 시를 지어라. 가장 뛰어난 시를 지은 자에게는 특별한 상을 내릴 것이다."
김삿갓은 갑자기 긴장감을 느꼈다. '영원과 찰나'... 심오한 주제였다. 그는 자신이 준비해온 시 중에서 이 주제에 맞는 것을 골라야 했다.
"걱정 마시오." 이담이 옆에서 속삭였다. "당신의 시는 충분히 뛰어나오."
김삿갓은 고개를 끄덕이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윽고 대회가 시작되었고, 한 명씩 무대에 올라 시를 읊기 시작했다. 이백, 두보와 같은 대시인들의 시는 정말 놀라웠다. 그들의 시에는 천 년의 지혜와 깊이가 담겨 있었다.
마침내 김삿갓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깊은 숨을 들이쉬고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수많은 위대한 시인들 앞에 선 그는, 생전 처음으로 긴장감을 느꼈다.
"나는 김병연, 세상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으로는 김삿갓이라 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전국을 떠돌며 시를 지었고, 이제 저승의 위대한 시인들 앞에 서게 되어 영광입니다."
김삿갓은 잠시 침묵했다가, 천천히 자신의 시를 읊기 시작했다.
"찰나의 삶 속에서 영원을 꿈꾸는 인간이여 (剎那生中夢永生)
한 잔 술에 백 년의 슬픔을 담고 (一杯酒中百年愁)
한 수 시에 천 년의 웃음을 담네 (一詩千載笑)
꽃이 피고 지는 것은 한순간이나 (花開花落一瞬間)
그 향기는 바람 타고 영원히 남으리 (香隨風永存)
나의 삶은 짧은 봄날의 꿈이었으나 (吾生如短春夢)
시 속에서 나는 영원한 방랑자가 되었네 (詩中永流浪者)"
김삿갓의 시가 끝나자, 정원에는 깊은 침묵이 흘렀다. 모든 시인들이 그의 시에 감동한 듯했다. 특히 이백은 감탄의 눈빛으로 김삿갓을 바라보았다.
염라대왕은 천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이내 모든 시인들이 함께 박수를 보냈다.
"훌륭하다, 김병연." 염라대왕이 말했다. "살아있는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본 '영원과 찰나'는 우리 저승의 시인들과는 또 다른 깊이가 있구나."
김삿갓은 겸손히 고개를 숙였다. 그는 비록 저승의 위대한 시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만의 진실된 시를 보여주었다는 데 만족했다.
"이제 모든 시인들의 시를 들었으니, 우승자를 발표하겠다." 염라대왕이 선언했다.
정원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김삿갓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우승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저승의 시인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염라대왕은 잠시 침묵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 저승 시 대회의 우승자는..."
모든 시선이 염라대왕에게 집중되었다.
※ 살아 있는 인간과 죽은 시인들 간의 역사적인 시 대결
"이번 저승 시 대회의 우승자는..." 염라대왕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두 명이다. 김병연과 이백이다!"
정원에는 놀라움과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김삿갓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가 위대한 시인 이백과 함께 우승을 차지했다니!
이백이 김삿갓에게 다가와 공손히 예를 갖췄다. "김 형제, 자네의 시는 진정 살아있는 영혼의 울림이 있네. 나는 오랜 세월 저승에서 시를 지었지만, 자네처럼 생의 찰나를 절실히 노래한 이는 드물었네."
김삿갓은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이백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이 부족한 시골 시인이 대시인 이백님과 같은 상을 받다니, 이보다 큰 영광이 없습니다."
염라대왕이 두 사람을 무대 위로 불렀다. "두 사람 모두 훌륭한 시를 보여주었다. 이제 약속한 상을 주겠다. 먼저 이백에게는 천 년 동안 저승의 시인들을 이끌 시선(詩仙)의 직위를 내린다."
이백은 기쁜 마음으로 염라대왕에게 절을 올렸다. 염라대왕은 이어서 김삿갓을 바라보았다.
"김병연, 너에게는 특별한 상을 주겠다. 너는 6개월 후 저승에 오기로 되어 있지만, 네가 원한다면 지금 바로 저승에 남아 시선 이백과 함께 저승의 시인들을 이끌 부시선(副詩仙)의 자리를 줄 것이다. 아니면, 이승으로 돌아가 남은 6개월을 살 수도 있다. 선택은 너에게 맡기겠다."
김삿갓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염라대왕이 제안한 부시선의 자리는 분명 엄청난 영광이었다. 이백과 함께 저승의 시인들을 이끌며 영원히 시를 짓는 삶. 그것은 시인으로서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미련이 남아있었다.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아직 이승에서 보고 싶은 풍경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자신의 수명을 나눠준 그 어린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대왕님, 저는..." 김삿갓이 입을 열었다. "이승으로 돌아가 남은 6개월을 살고 싶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 동안 더 많은 풍경을 보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마지막 시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염라대왕은 깊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음, 이해한다. 하지만 염려 말거라. 6개월 후 네가 저승에 오면, 여전히 부시선의 자리가 너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김삿갓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깊이 절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대왕님."
이백이 김삿갓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네가 돌아오면 함께 좋은 시를 짓세. 내가 천 년 동안 모아둔 좋은 술도 있으니 함께 마시세."
김삿갓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약속, 꼭 지키겠습니다."
그때 정원의 한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시인들이 웅성거리며 길을 비켜주자,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는 흰 수염을 길게 기르고 있었으며, 눈빛에는 심오한 지혜가 담겨 있었다.
"최치원!" 누군가가 속삭였다.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이다!"
김삿갓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고운(孤雲) 최치원은 신라 말의 위대한 학자이자 시인으로, 그의 문장은 당나라에서도 인정받을 정도로 뛰어났다.
최치원은 김삿갓 앞에 멈춰 서서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대가 바로 김병연인가? 내가 저승에서도 그대의 시 소식을 들었네."
김삿갓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깊이 인사했다. "고운 선생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최치원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대가 저승으로 돌아오기 전에, 나와 이백, 두보가 그대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네. 우리 셋이 함께 지은 연시(聯詩)일세. 이것을 이승에 가져가 그대의 마지막 시에 영감으로 삼게."
최치원은 오래된 비단 두루마리를 꺼내 김삿갓에게 건넸다. 김삿갓은 감격에 겨워 두루마리를 받아들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염라대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시간이 다 되었다. 김병연, 이승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김삿갓은 이백, 두보, 최치원을 비롯한 모든 시인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이담과 함께 저승의 정원을 떠나 저승강을 건넜다.
"다시 육신으로 돌아가면 이곳의 기억이 희미해질 수 있소." 이담이 말했다. "하지만 시인의 감각으로 이 경험을 간직하시오."
김삿갓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말게, 이담. 내 이 경험을 내 마지막 시에 담아낼 것이네."
두 사람은 다시 어둠 속을 지나 김삿갓의 육신이 있는 암자로 돌아왔다. 김삿갓의 영혼이 다시 육신과 하나가 되는 순간, 그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김삿갓의 마지막 선택과 저승으로 떠나는 길
헌종 16년(1850년) 음력 6월, 황해도 토산군의 작은 주막.
3년 전, 김삿갓이 처음 저승사자 이담을 만났던 바로 그 주막이었다. 이제 약속한 3년의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다.
주막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모두가 소문으로 들은 김삿갓의 시를 듣기 위해 모여든 것이었다. 김삿갓은 지난 6개월 동안 자신이 만난 저승의 시인들과의 경험을 시로 지어왔다. 그 시들은 어느 때보다도 깊고 신비로웠고, 사람들은 그의 시를 듣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김 선생님, 또 한 수 읊어주십시오!" 주막의 손님이 외쳤다.
김삿갓은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들었다. 지난 6개월 동안 그의 얼굴은 더욱 수척해졌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어느 때보다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자, 이 김삿갓이 특별히 지은 시 한 수를 들려주겠소."
그는 천천히 자신의 삿갓을 벗고, 저승에서 받은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는 최치원, 이백, 두보의 연시를 참고하여 자신만의 시를 완성했던 것이다.
"인생이란 한바탕 꿈과 같으니 (人生如一場夢)
태어남과 죽음이 모두 한순간 (生死皆一瞬)
찰나와 영원이 서로 맞닿아 (刹那永恒相接)
시간의 강물은 끝없이 흐르네 (時間江水無盡流)
마지막 술잔을 비우고 (最後杯盡)
마지막 시를 읊으니 (最後詩誦)
이승과 저승이 하나 되는 이 순간 (此時此刻生死一體)
내 영혼은 자유롭게 날아오르네 (吾魂自由飛揚)"
김삿갓의 시가 끝나자, 주막 안에는 깊은 침묵이 감돌았다. 그의 시는 단순한 언어의 나열이 아니라, 이승과 저승을 아우르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마치 저승을 다녀온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에 놀라움과 경외심을 느꼈다.
마침내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곧 모든 사람들이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김 선생님, 정말 훌륭한 시입니다! 어떻게 이런 깊은 시를 지으실 수 있는지..."
김삿갓은 웃기만 했다. 그는 맛있게 술을 마시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수명을 나눠준 어린아이도 어머니와 함께 이곳을 찾아왔다. 아이는 이제 건강해져 밝게 웃고 있었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선생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김삿갓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자랐구나. 앞으로도 건강하게 자라거라."
밤이 깊어가고, 손님들은 하나둘 주막을 떠났다. 마침내 주막에는 김삿갓 혼자만 남았다.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마지막 술잔을 천천히 마셨다.
"3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줄이야..."
그때, 주막 문이 열리며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김삿갓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늦지 않았나, 이담 사자."
이담이 천천히 주막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3년 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시간이 되었소, 김병연." 이담이 말했다.
김삿갓은 천천히 일어섰다. "자네와의 약속, 잊지 않았네. 내 이제 떠날 준비가 되었네."
이담은 김삿갓의 눈을 바라보았다. "후회는 없소?"
김삿갓은 고개를 저었다. "전혀. 3년 동안 내가 보고 싶은 풍경을 모두 보았고, 짓고 싶은 시도 모두 지었네. 그리고..." 그는 잠시 미소를 지었다. "저승에서 이백, 두보와 함께 시를 짓는 일도 기대되는걸세."
이담은 미소를 지었다. "그들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소. 특히 이백은 당신과 함께 술을 마시며 시를 짓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군요."
김삿갓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삿갓을 바로 썼다. "내 일생일대 가장 긴 여행을 떠날 시간이군."
그는 주모를 불러 숙박비를 치르고, 자신의 유일한 소지품인 붓과 먹, 그리고 종이를 챙겼다.
"주모, 이 삿갓은 당신에게 남기겠네. 내가 평생 쓰던 것이니, 기념으로 간직하게."
주모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김삿갓은 미소를 지었다. "먼 길을 떠나네.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여행일세."
김삿갓과 이담은 함께 주막을 나섰다. 밖은 이미 어두워졌지만, 달빛이 그들의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자네는 천 년 동안 많은 영혼을 데려갔을 텐데, 다들 저승 가는 길에 두려워하지 않던가?" 김삿갓이 물었다.
이담은 천천히 걸으며 대답했다. "대부분은 두려워하지요. 하지만 당신처럼 담대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도 있었소. 그리고... 당신처럼 저승을 이미 다녀온 이는 처음이오."
김삿갓은 웃었다. "나는 운이 좋았네. 자네 덕분에 죽기 전에 저승을 구경하고, 위대한 시인들도 만났으니 말일세."
그들은 언덕 위로 올라갔다. 그곳에서는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였고, 멀리 바다도 보였다.
"여기가 좋겠소." 이담이 말했다.
김삿갓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마지막으로 이승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득 시 한 수가 떠올랐다.
"한번 태어나 한번 죽는 것이 이치라면 (一生一死是道理)
무엇을 아쉬워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리 (何惜何懼之)
이승에서의 삶은 꿈과 같았으니 (生如夢)
이제 새로운 꿈을 꾸러 가는구나 (今往新夢去)"
이담은 김삿갓의 시에 감동했다. "마지막까지도 시를 짓는군요."
김삿갓은 미소를 지었다. "시인은 죽는 순간까지도 시를 짓는 법이지."
이담은 천천히 김삿갓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김삿갓은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육신이 땅에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저승으로 가는 길, 보여주겠네." 이담이 말했다.
김삿갓은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이승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담과 함께 빛나는 길을 따라 저승으로 향했다. 그의 앞에는 이백, 두보, 최치원과 같은 위대한 시인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과 함께 영원히 시를 짓는 새로운, 더 긴 여정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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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김삿갓은 3년간의 유예기간을 마치고 저승사자 이담과 함께 저승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이백, 두보와 같은 위대한 시인들과 함께할 새로운 여정을 기대했지요.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다음 이야기 '조선의 방랑시인 김삿갓과 저승사자 3탄'에서는 저승에 도착한 김삿갓이 펼치는 놀라운 모험을 들려드립니다. 부시선(副詩仙)의 자리에 오른 그가 이백과 함께 저승의 시인들을 이끌며 겪는 특별한 이야기, 염라대왕의 명으로 다시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위대한 시인의 환생을 돕는 임무, 그리고 수백 년 후 현대의 한국에 다시 나타난 김삿갓과 이담의 재회까지...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김삿갓의 시 여정과 저승사자 이담과의 깊어가는 우정을 놓치지 마세요. 구독과 알림 설정으로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