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조선 최고 부잣집에 나타난 도깨비 - 인간의 탐욕을 시험한 장난꾸러기

    태그 (20개)

    #도깨비, #용재총화, #조선시대, #전설, #민담, #설화, #옛날이야기, #권선징악, #탐욕, #부자, #구두쇠, #도깨비이야기, #오디오드라마, #야담, #야담도감, #역사, #스토리텔링, #해학, #교훈, #판타지

    후킹멘트 (250자 내외)

    조선 팔도에서 소문난 구두쇠 김 대감. 그의 텅 빈 곳간에 밤마다 쌀가마니가 저절로 쌓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복일까, 아니면 화일까? 재물의 출처를 좇던 김 대감 앞에 나타난 것은 장난기 가득한 도깨비.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시험대에 올린, 기묘하고도 유쾌한 내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용재총화』에 실린 기이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했습니다. 돈만 알던 지독한 구두쇠 영감 앞에 나타난 장난꾸러기 도깨비. 밤마다 재물을 불려주며 인간의 탐욕을 시험합니다. 과연 김 대감은 도깨비의 시험을 통과하고 진짜 부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재물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해학과 교훈이 가득한 우리의 옛날이야기.

    ※ 그의 텅 빈 곳간에 어느 날 밤, 쌀 한 가마니가 나타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조선 팔도에 김 진국 대감이라 하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가 가진 논과 밭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한양 저잣거리의 상점 열에 일고여덟은 그의 소유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한마디로 나라님 다음가는 부자요, 대감이라 불리는 것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대단한 재력가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하면서도, 등 뒤에서는 혀를 차며 손가락질하기 바빴다. 그 이유는 그의 명성만큼이나 자자한 지독한 구두쇠 성품 때문이었다. 그는 곳간에 쌀 한 톨, 엽전 한 푼 쌓아두는 법이 없었다. 가을에 거둬들인 쌀은 그 자리에서 모조리 팔아치워 돈으로 바꿨고, 그 돈은 다시 땅을 사거나 더 큰 이문을 남길 곳에 투자했다. 때문에 그의 거대한 저택에는 언제나 창고가 텅텅 비어있기 일쑤였다. 하인들의 옷은 해지고 닳아 남루했고, 담벼락에 금이 가도 수리할 생각을 않았다. 심지어 겸상하는 아내의 밥그릇에 쌀알이 두 톨 더 많은 것 같다며 타박을 주는 위인이었다. 그에게 돈이란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모으고 불리는 것일 뿐이었다. 그날도 김 대감은 저녁 식사를 마치자마자, 촛불 하나를 달랑 들고 집안 순찰에 나섰다. 그의 유일한 낙이자, 하루도 거르지 않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그는 하인들이 땔감을 허투루 쓰지는 않는지, 부엌의 음식물 찌꺼기 하나라도 쓸만한 것이 있는지를 매서운 눈으로 살폈다. 그의 발걸음이 마침내 저택에서 가장 큰, 하지만 늘 비어있는 북쪽 곳간에 닿았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김 대감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먼지만 자욱한 텅 빈 공간. 이것이야말로 재산이 한곳에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불어나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물쇠가 잘 잠겼는지 확인하고 돌아서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의 눈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저게 무엇인가. 텅 비어있어야 할 곳간 한가운데에, 무언가 우뚝 서 있었다. 그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분명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쌀 한 가마니였다. 그것도 얼마 전에 모두 팔아치웠던, 최상급의 하얀 쌀이 가득 담긴 가마니였다. 김 대감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웬 쌀가마니가 여기에…?” 처음 든 생각은 의심이었다. 필시 어느 놈이 딴마음을 품고 몰래 빼돌려 둔 것이리라. 그는 당장이라도 하인들을 모두 불러내어 범인을 색출하고 곤장을 쳐야 직성이 풀릴 터였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가마니의 매듭은 흠잡을 데 없이 단정했고, 주변에는 발자국 하나 없었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너무나도 깨끗하고 완전한 모습이었다. 혹시… 누가 나를 시험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평생 덕을 쌓은 것을 하늘이 아시고 복을 내리신 것인가? 김 대감은 쌀가마니 주위를 몇 바퀴나 맴돌았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가마니에 손을 얹어 보았다. 묵직하고 풍성한 감촉. 이것은 꿈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에 서서히 탐욕스러운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누가 가져다 놓았든 무슨 상관인가. 내 집 곳간에 들어온 이상, 이것은 내 것이다.’ 그는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마치 보물을 다루듯 쌀가마니를 곳간 가장 구석진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밖으로 나와, 이전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자물쇠를 채우고 또 확인했다. 그날 밤, 김 대감은 난생처음으로 부자가 된 것 같은 포만감에 휩싸여 잠이 들었다. 공짜로 생긴 쌀 한 가마니가, 그의 수만 석 재산보다도 더 달콤하게 느껴지는 기이한 밤이었다.

    ※ 김 대감은 희열에 빠지지만, 집안에서는 온갖 기괴한 장난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다음 날 밤, 김 대감은 어제보다 한층 더 설레는 마음으로 북쪽 곳간을 찾았다. 혹시나 밤사이 쌀가마니가 사라지지는 않았을까, 혹은 누군가에게 들키지는 않았을까 온종일 노심초사했던 터였다. 쿵, 쿵, 쿵. 묵직한 자물쇠를 풀고 곳간 문을 여는 그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김 대감은 저도 모르게 헙,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쌀가마니가… 두 개가 되어 있었다. 어제 그 자리에, 마치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쌀가마니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다가가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심지어 가마니에 귀를 대보기까지 했다. 틀림없는 현실이었다. “허허, 이것 참…. 세상에 이런 일이….” 김 대감의 입이 귀에 걸렸다. 이것은 필시 하늘이 내린 복이 틀림없었다. 자신의 지독한 근검절약 정신에 감복한 조상님이 복을 내리시는 것이리라. 그는 껄껄 웃으며 두 개의 쌀가마니를 어루만졌다. 하루가 지나자 가마니는 네 개가 되었고, 또 하루가 지나자 여덟 개로 불어났다. 열흘이 지나자, 먼지만 날리던 거대한 곳간은 어느새 최상급 쌀가마니로 반쯤 들어차게 되었다. 김 대감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는 더 이상 다른 재산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의 온 신경은 오직 밤마다 불어나는 쌀가마니에 쏠려 있었다. 그는 매일 밤 곳간에서 쌀가마니의 수를 세고 또 세었다. 마치 자식이라도 되는 양 가마니 하나하나를 쓰다듬고, 그 위에서 뒹굴며 희열을 느꼈다. 그는 평생 느껴보지 못한 행복에 겨워, 밤마다 곳간에서 혼자 춤을 추기까지 했다. 하지만 기이한 일은 곳간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김 대감이 쌀가마니에 정신이 팔린 사이, 그의 저택 안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멀쩡하던 밥그릇이 저절로 금이 가고, 그가 아끼던 벼루가 한밤중에 깨져 있었다. 대청마루를 정성껏 닦아 놓으면, 다음 날 아침 어지럽게 흙 발자국이 찍혀 있기도 했다. 심지어 한밤중에는 빈방에서 남자들의 껄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오거나, “씨름 한판 할까?” 하는 굵직한 목소리가 들린다는 하인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하인들은 겁에 질려 하나둘씩 보따리를 싸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대감 마님, 이 댁에는 귀신이 붙었습니다요!” “제발 여기서 일하게 해주십시오. 목숨만은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김 대감은 하인들의 아우성에 버럭 화를 낼 뿐이었다. “이놈들! 게을러 터져서 일하기 싫으니 헛것이 보이고 헛소리가 들리는 게지! 썩 꺼지거라! 너희에게 줄 녹봉이면 내가 쌀을 한 섬은 더 사겠다!” 그는 하인들에게 줄 녹봉이 아까워 그들을 모두 내쫓아 버렸다. 이제 거대한 저택에는 김 대감과 그의 늙은 아내, 단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아내는 불안에 떨며 제발 무당이라도 불러 굿이라도 한번 하자고 애원했지만, 김 대감은 돈이 아깝다며 길길이 날뛸 뿐이었다. 그의 눈에는 오직 밤마다 불어나는 쌀가마니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집안이 난장판이 되든, 귀신이 곡을 하든 상관없었다. 그는 오늘도 곳간을 가득 채운 쌀가마니 위에서 뒹굴며 외쳤다. “그래, 더! 더! 곳간이 넘쳐흐를 때까지 더 쌓여 보거라! 하하하하!” 그의 탐욕은 쌀가마니와 함께 날마다 무섭게 불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탐욕의 그림자 뒤에서, 정체 모를 존재의 장난기 어린 웃음소리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 마침내 장난기 가득한 도깨비와 마주치고, 도깨비는 그에게 기묘한 내기를 제안한다.

    집안의 기괴한 일들이 극에 달하던 어느 날 밤이었다. 김 대감은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았다. 곳간의 쌀은 이제 천장을 뚫을 기세로 쌓여가고 있었지만, 그만큼 집안에서 벌어지는 장난질도 대담해지고 있었다. 어젯밤에는 자고 있는 그의 상투를 몰래 풀어헤쳐 놓기까지 했다. 이만하면 되는데, 왜 자꾸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혹시 이 쌀을 가져다주는 놈이, 이런 장난도 함께 치는 것은 아닐까. 놈의 정체를 알아내야겠다. 그래야 이 장난을 멈추게 하든, 아니면 더 큰 복을 내리게 하든 할 것이 아닌가. 마침내 김 대감은 큰 결심을 했다. 그는 몽둥이 하나를 손에 들고, 쌀가마니가 산처럼 쌓인 북쪽 곳간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쌀가마니 더미 뒤에 몸을 숨기고, 숨을 죽인 채 밤이 깊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자정이 지나고, 새벽이 가까워 오자 꾸벅꾸벅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김 대감이 깜빡 잠이 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쿵! 쿵! 쿵! 조용하던 곳간 안에서, 갑자기 묵직한 무언가가 나타나는 소리가 들렸다. 김 대감은 정신이 번쩍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텅 비어있던 공간에, 허공에서부터 쌀가마니가 하나씩 툭, 툭, 하고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옆에는, 생전 처음 보는 기괴한 형상의 사내가 서 있었다. 키는 장대같이 컸지만, 몸에는 누더기 같은 가죽 옷 하나만을 걸치고 있었다. 머리에는 작은 뿔이 하나 돋아 있었고, 피부는 시뻘건 흙을 발라놓은 듯 붉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상황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입이 귀에 걸리도록 히죽거리고 있는 그의 표정이었다. 그의 손에는 울퉁불퉁한 방망이 하나가 들려 있었다. 김 대감은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귀신? 요물? 아니, 저것은 옛날이야기 속에서나 듣던… 도깨비였다. 도깨비는 쌀가마니를 모두 쌓아 올린 뒤, 만족스럽다는 듯 손뼉을 한번 쳤다. 그리고는 쌀가마니 더미 뒤에 숨어 벌벌 떨고 있는 김 대감을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영감, 거기서 언제까지 숨어 있을 텐가? 내 다 알고 있네.” 그 목소리는 마치 낡은 가죽 북을 두드리는 듯, 낮고 굵게 울렸다. 들켰다! 김 대감은 이왕 이렇게 된 것, 죽기 살기로 덤벼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몽둥이를 꽉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네 이놈! 네놈이 내 집에 들어와 온갖 못된 장난을 친 요물이로구나!” 하지만 도깨비는 그의 고함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더 재미있다는 듯 배를 잡고 웃었다. “하하하! 못된 장난이라니, 이 영감 보게. 내가 밤마다 곳간을 채워주는 것은 고맙고, 작은 장난은 못된 짓이란 말인가? 참으로 재미있는 인간일세.” 도깨비는 방망이를 어깨에 척 걸치고는 김 대감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김 대감은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내, 내게 무얼 원하는 것이냐! 돈이냐, 쌀이냐!” “돈? 쌀? 하하하! 그런 건 나에겐 얼마든지 있다네.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야.” 도깨비는 김 대감의 코앞까지 다가와,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그저… 심심해서 그랬다네. 이 집에 워낙 욕심 많은 영감이 산다고 소문이 자자하길래,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한번 시험해보고 싶었지. 그런데 과연 소문대로더군. 자네, 아주 마음에 들어.” 그러더니 도깨비는 기막힌 제안을 하나 했다. “영감, 나와 내기를 하나 하지 않겠나?” “무, 무슨 내기?” “이 곳간의 쌀, 전부 자네에게 주겠네. 내가 앞으로도 밤마다 와서 이 곳간이 넘쳐흐르도록 채워주지. 대신 조건이 하나 있네.” 도깨비의 눈이 장난기로 번뜩였다. “이 쌀 전부를 써서, 이 마을 전체에 아주 큰 잔치를 열어주게. 갓난아이부터 아흔 노인까지, 모두가 배가 터지도록 먹고 마실 수 있는 그런 잔치를 말이야. 만약 자네가 내 제안대로 잔치를 벌여준다면, 내가 이 쌀보다 훨씬 더 귀한 보물을 선물로 주겠네. 하지만 만약, 쌀 한 톨이라도 네 욕심을 채우는 데 쓴다면….” 도깨비는 말을 마치지 않고, 그저 씩 웃으며 자신이 들고 있던 방망이를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그 순간, 옆에 있던 쌀가마니 하나가 순식간에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김 대감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평생 돈 한 푼 남에게 베풀어 본 적 없는 자신에게, 전 재산과도 같은 이 쌀로 마을 잔치를 열라니. 그것은 죽기보다 더 끔찍한 형벌이었다. 그의 눈앞에서, 장난기 가득한 도깨비가 히죽거리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 평생 돈만 알고 산 김 대감은 일생일대의 고민에 빠지고, 도깨비의 장난은 더욱 심해진다.

    도깨비가 사라진 후, 김 대감은 텅 빈 곳간에 홀로 남아 망연자실했다. 그의 머릿속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었다. 평생을 한 푼 두 푼 악착같이 긁어모아 온 자신에게, 이 산더미 같은 쌀로 마을 잔치를 열라니. 그것은 살점을 떼어내고 피를 뽑아내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그는 밤새 곳간을 서성이며 고민에 빠졌다. ‘안 돼. 이 쌀은 모두 내 것이야. 하늘이 내린 복을 어찌 남들에게 나눠준단 말인가. 절대로 안 될 일이지.’ 그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하지만 귓가에는 도깨비의 마지막 말이 쟁쟁하게 울렸다. 쌀 한 톨이라도 네 욕심을 채우는 데 쓴다면…. 섬뜩한 기억과 함께, 그는 자신의 탐욕과 도깨비의 시험 사이에서 밤새 번민했다. 다음 날부터 김 대감의 수난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도깨비의 장난은 이제 단순한 희롱을 넘어, 그의 탐욕 자체를 직접적으로 공격해왔다. 그가 애지중지하는 엽전 꾸러미를 들고 방에 들어와 세어보면, 어느새 반짝이던 엽전이 죄다 시커먼 조약돌로 변해 있었다. 기겁하여 조약돌을 마당에 내던지면, 그것들은 다시 짤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엽전으로 돌아갔다. 그는 돈을 만지는 즐거움마저 빼앗겨 버렸다. 밥상에 앉아 밥을 한술 뜨면, 입안에서 쌀밥이 모래알처럼 서걱거렸다. 국을 마시면 구수한 장맛은 온데간데없고 흙탕물 맛이 났다. 그는 며칠 동안 제대로 된 식사 한 끼 할 수 없었다. 가장 끔찍한 것은 밤이었다. 잠자리에 누우면, 푹신해야 할 명주솜 이불이 마치 가시덤불처럼 온몸을 찔러댔다. 편히 눕지도 못하고 밤새 뒤척이다 보면, 귓가에서는 “잔치는 언제 열 건가, 영감? 쯧쯧, 욕심이 과하면 배 터져 죽는다는데.” 하는 도깨비의 조롱 섞인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으니, 그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갔다. 얼굴은 반쪽이 되었고, 눈은 퀭하게 들어갔다. 산더미처럼 쌓인 쌀을 볼 때마다 ‘이것만 없었으면!’ 하는 원망이 들다가도, ‘그래도 이걸 포기할 수는 없지!’ 하는 욕심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탐욕이 만들어낸 지옥에 갇혀 버린 셈이었다. 보다 못한 아내가 눈물로 호소했다. “영감, 제발 고집 그만 부리세요. 곳간의 쌀이 다 무어란 말입니까. 저러다 큰 병이라도 나시면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그깟 쌀, 다 나눠주고 우리 편안하게 삽시다. 네?” 아내의 애원에도 그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는 마침내 한계에 다다랐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 거울을 보았는데, 그 속에는 탐욕과 피로에 절어 해골처럼 변해버린 자신의 흉측한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그는 깨달았다. 재물은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자신은 생전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이 쌀은 복이 아니라, 자신을 말려 죽이는 저주였다. 그는 마침내 두 손을 들었다. 그는 마당으로 뛰쳐나가 허공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알았다, 알았어! 이놈의 도깨비야! 네놈 말대로 하마! 그놈의 잔치, 열어주면 될 것 아니냐! 열어주고 말 테다!” 그의 외침은 체념이자, 항복 선언이었다. 그 순간, 지긋지긋하게 그를 괴롭히던 이명과 환청이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다. 김 대감은 마당에 털썩 주저앉아, 오랜만에 맑아진 정신으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 그는 난생처음으로 베푸는 기쁨을 깨닫고, 마을 사람들의 웃음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김 대감이 잔치를 열겠다고 선언하자, 죽은 듯이 조용했던 거대한 저택이 오랜만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는 소문을 내어 도망쳤던 하인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물론 이전보다 훨씬 후한 품삯을 약속하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하인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달라진 대감의 모습에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왔다. 잔치의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김 대감은 이왕 이렇게 된 것, 도깨비와의 약속을 확실하게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곳간의 문을 활짝 열고, 산더미처럼 쌓인 쌀가마니를 마당으로 실어 나르게 했다. 그리고는 장터를 돌며 살진 돼지와 소를 수십 마리나 사들이고, 싱싱한 채소와 생선, 귀한 과일까지 아낌없이 사들였다. 수십 년간 굳게 닫혀 있던 그의 돈궤가 난생처음으로 활짝 열리는 순간이었다. 돈이 나갈 때마다 속이 쓰리고 아팠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도깨비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마침내 잔칫날이 밝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 김 진국 대감이 잔치를 연다고?’ 하며 도무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몇몇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김 대감의 집에서 풍겨 나오는 고소한 고기 굽는 냄새와 구수한 술 익는 냄새는, 그 모든 의심을 이겨낼 만큼 강력했다. 하나둘씩 모여든 마을 사람들은 곧 김 대감의 저택 마당을 가득 메웠다. 마당에는 거대한 가마솥이 내걸렸고, 하얀 쌀밥과 뜨끈한 고깃국이 쉴 새 없이 퍼져 나갔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진 음식 앞에서, 사람들은 허리띠를 풀고 정신없이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김 대감은 처음에는 팔짱을 낀 채, 마당 한구석에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저놈은 고기를 세 점이나 먹는구나. 저 아이는 밥을 두 그릇이나 비우네. 아이고, 내 돈… 내 쌀….’ 그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구두쇠의 본성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허리가 희끗한 한 노인이 다가와,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대감 마님, 복 받으실 겁니다. 평생 이렇게 배불리 먹어보긴 처음입니다요. 정말 고맙습니다.” 노인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 순간, 김 대감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쿵’하고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난생처음으로 느껴보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쌀가마니가 늘어날 때의 희열과는 전혀 다른,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따뜻하고 벅찬 감정이었다. 그 뒤로도 사람들은 연신 그에게 다가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아이들은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할아버지, 최고예요!” 하며 외쳤다. 김 대감의 굳어 있던 얼굴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다가가, “많이들 드시게! 아직 음식은 많다네!” 하고 외치고 있었다. 그는 직접 국자를 들고 사람들에게 국을 퍼주었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얼굴에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진심 어린 웃음꽃이 피어났다. 돈을 세는 외로운 즐거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함께 나누는 풍요로운 기쁨을 그는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잔치는 사흘 밤낮으로 이어졌고, 온 마을은 웃음소리와 노랫소리로 가득 찼다. 김 대감은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며, 자신이 평생을 모아온 재산보다도 더 값진 것을 얻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 김 대감의 변화에 만족한 도깨비는 마지막 선물로 곳간을 진짜 금은보화로 가득 채워주고 홀연히 사라진다.

    사흘간의 꿈같은 잔치가 끝나고, 마을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김 대감의 거대한 저택 마당에는 축제의 흔적만이 어지럽게 남아 있었고, 북쪽 곳간은 잔치가 시작되기 전처럼 다시 텅 비어 있었다. 마지막 남은 쌀 한 톨까지 모두 사람들을 위해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하인들을 시켜 마당을 깨끗이 치우게 한 뒤, 김 대감은 텅 빈 곳간 앞에 홀로 섰다. 한때는 저곳을 가득 채웠던 쌀가마니를 생각하니 순간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곧 마을 사람들의 행복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더 이상 밤마다 도깨비의 장난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지 않아도 되었다. 곳간은 비었지만, 그의 마음은 평생 중 가장 풍요롭고 평화로웠다. 그날 밤, 김 대감은 오랜만에 깊은 잠을 청했다. 그런데 그의 꿈속에, 며칠 전 만났던 그 도깨비가 나타났다. 도깨비는 예전처럼 히죽거리지 않고,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영감, 약속대로 아주 멋진 잔치를 열어주었더군. 아주 즐거웠네.” 김 대감은 꿈속에서 도깨비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자네 덕분에 내가 평생 모르고 살았던 것을 깨달았네. 고맙네, 도깨비 친구.”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김 대감은 무언가에 이끌린 듯 북쪽 곳간으로 향했다. 그런데 곳간 문을 여는 순간,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텅 비어있어야 할 곳간 안이, 눈부신 황금빛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곳간의 중앙에는 어젯밤 꿈에 보았던 그 도깨비가 서 있었다. 도깨비는 마지막으로 김 대감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영감, 이제야 진짜 부자가 될 자격이 생겼네. 이것이 약속했던 내 마지막 선물이야.” 그 말을 마친 도깨비는, 손에 들고 있던 방망이로 땅을 한번 쿵, 하고 내리쳤다. 그러자 그의 모습이 연기처럼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곳간에는 눈을 멀게 할 만큼 찬란한 금은보화와 산호, 비취 같은 온갖 귀한 보물들이 담긴 궤짝만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쌀가마니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진짜 보물이었다. 김 대감은 한동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황홀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는 조용히 곳간 문을 닫았다. 그는 그 보물들을 예전처럼 혼자 독차지하지 않았다. 그는 가장 먼저 낡고 허름했던 자신의 집을 수리했고, 하인들에게는 새 옷과 두둑한 품삯을 내려주었다. 그리고 마을에는 다리를 놓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곳간의 재물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그는 더 이상 조선 팔도 최고의 구두쇠가 아니었다. 모든 이에게 존경과 칭송을 받는, 마음까지 부유한 진짜 부자가 된 것이다. 그는 가끔 밤하늘을 보며, 자신에게 소중한 깨달음을 주고 떠나간 장난꾸러기 도깨비 친구를 떠올리곤 했다. 진정한 부는 곳간에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손을 열어 나눌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그는 평생 잊지 않았다.

    유튜브 엔딩 멘트

    장난꾸러기 도깨비는 김 대감에게 재물보다 소중한, ‘나누는 마음’을 선물하고 떠났습니다. 이처럼 우리 옛이야기 속 신비로운 존재들은 때로는 인간을 시험하고, 때로는 교훈을 주기도 했지요.

    하지만 모든 존재가 이 도깨비처럼 유쾌하고 선량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음 시간에는, 매혹적인 아름다움과 천변만화하는 둔갑술로 인간을 홀리고 그 간을 빼앗으려 했던, 천 년 묵은 여우의 오싹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용재총화』가 기록한 ‘천 년 묵은 여우의 변신술’, 절대 놓치지 마세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