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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태연히 웃었던 한 조선 선비의 이야기

    태그 (20개)

    #용재총화, #조선시대, #저승사자, #선비, #죽음, #담담함, #지혜, #철학, #야담, #전설, #시니어콘텐츠, #옛이야기, #교훈, #감동, #오디오드라마, #한국전통, #민담, #삶과죽음, #여유, #깨달음

     

    후킹멘트 (200자)

    저승사자가 찾아와 "네 수명이 다했다"고 선고했는데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차 한 잔을 권했던 조선의 한 선비!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 태연하게 만들었을까요? 용재총화에 전해지는 이 놀라운 이야기 속에는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진정한 지혜가 담겨있습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용재총화에 기록된 조선시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적인 야담입니다. 죽음의 사자 앞에서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오히려 여유롭게 대응한 한 선비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삶의 자세와 죽음에 대한 철학적 통찰을 전해드립니다. 시니어분들께서 인생의 깊이와 지혜를 되새겨볼 수 있는 의미 있는 내용으로, 두려움보다는 평안함과 깨달음을 주는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조선 선비들의 달관한 정신을 만나보세요.

    ※ 평범한 하루, 특별한 방문객

    조선 중종 때의 이야기입니다. 한양 북촌에 이학도라는 선비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독서와 명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은둔 선비였지요. 나이는 쉰을 조금 넘었고, 세상사에 얽매이지 않는 초탈한 마음가짐으로 유명했습니다.
    어느 가을날 저녁, 이학도는 평소처럼 마루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마당의 단풍잎들이 바스락거렸고,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가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해주었지요.
    "참으로 좋은 저녁이구나. 이런 날이면 차 한 잔이 생각나는데..."
    그는 책을 덮고 차를 우리려고 일어서는데, 갑자기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똑똑똑!"
    "누구십니까?"
    "문을 열어주십시오."
    목소리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뭔가 냉기가 서려 있는 듯한, 섬뜩한 느낌이 들었지요. 하지만 이학도는 전혀 놀라지 않고 천천히 문을 열었습니다.
    문 앞에는 검은 옷을 입은 키 큰 사내가 서 있었습니다.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깊숙이 들어가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벌써 기겁을 했을 모습이었지요.
    "어서 들어오십시오. 날이 쌀쌀한데 바깥에 계시면 몸이 차가워지겠습니다."
    이학도는 마치 평소에 알던 손님을 맞이하듯 자연스럽게 말했습니다. 검은 옷의 사내는 잠시 당황한 것 같았지만, 곧 집 안으로 들어왔지요.
    "마루에 앉으시지요. 차라도 한 잔 드시겠습니까?"
    "차요?"
    "네, 방금 좋은 차를 우리려던 참이었습니다. 혼자 마시기 아까운 차인데, 마침 손님이 오셨으니 함께 드시면 좋겠습니다."
    검은 옷의 사내는 더욱 당황스러워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은 처음 봤거든요.
    이학도는 정성스럽게 차를 우려서 사내 앞에 놓았습니다.
    "어디서 오셨는지요? 이 늦은 시간에 찾아오시는 걸 보니 급한 일이 있으신 것 같은데..."
    "저는..."
    사내는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저승사자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이학도는 전혀 놀라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마치 '아, 옆 동네에서 오셨군요'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지요.
    저승사자는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저승사자라고 하면 기절하거나 울부짖거나 도망치려고 하는데, 이렇게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처음이었거든요.
    "저승사자라고... 하셨지요?"
    "네, 맞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데리러 오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이학도, 당신의 수명이 다했습니다."
    저승사자는 엄숙하게 말했지만, 이학도는 여전히 평온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차는 어떠신지요? 이 차는 제가 직접 따온 산수로 우린 것인데, 맛이 꽤 괜찮습니다."
    저승사자는 완전히 당황했습니다. 지금 자신이 죽음을 선고했는데, 상대방은 차 맛을 묻고 있었거든요.
    "선비님, 제 말을 들으셨습니까? 당신의 수명이 다했다고 했습니다."
    "네, 잘 들었습니다. 그래서 언제 가야 하는지요?"
    "지금 당장..."
    "아, 그렇다면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이 차를 다 마시고 가면 안 될까요? 좋은 차를 버리기엔 너무 아깝습니다."
    저승사자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수백 년 동안 죽은 자들의 혼을 거두어왔지만, 이런 사람은 정말 처음이었거든요.
    "그리고 저승사자님도 차를 좀 드세요. 길이 멀 텐데 허기지지 않으신지요?"
    "저, 저는 그런 걱정은..."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잠시만요."
    이학도는 일어나서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저승사자는 그를 따라가려다가 멈췄습니다. 도망갈 것 같지도 않았고, 실제로 도망간다고 해도 소용없을 일이었거든요.
    잠시 후 이학도가 나왔습니다. 손에는 편지 한 통을 들고 있었지요.
    "이것은 제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니, 집안 정리를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이웃에 사는 김 서방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해도 될까요?"
    "지금 그런 것을 하실 때입니까?"
    "아, 물론 시간이 급하시다면 그냥 가도 됩니다. 하지만 산 자들에게는 작별 인사 정도는 남겨두는 것이 예의 아니겠습니까?"

    ※ 죽음 앞에서 보인 진정한 지혜

    저승사자는 이학도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 자신을 속이거나 시간을 끌려는 것은 아닐까 의심도 했지만, 이학도의 표정에서는 전혀 그런 기색을 찾을 수 없었지요.
    "선비님, 정말로 두렵지 않으십니까?"
    "무엇이 두렵다는 말씀인지요?"
    "죽음 말입니다. 지금 저와 함께 저승으로 가야 합니다."
    이학도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 그것 말씀이시군요. 두렵지 않습니다."
    "어떻게 두렵지 않을 수 있습니까?"
    "저승사자님, 혹시 해가 지는 것을 두려워하십니까?"
    "해가 지는 것을요? 그건 당연한 일인데..."
    "맞습니다. 해가 뜨면 언젠가는 지는 것이 당연하지요. 마찬가지로 사람이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는 것이 당연합니다. 당연한 일을 왜 두려워해야 하겠습니까?"
    저승사자는 이학도의 말에 놀랐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럼 선비님은 죽음이 무엇인지 아신다는 말씀입니까?"
    이학도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천천히 대답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는 것처럼, 형태만 바뀔 뿐 본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형태만 바뀐다고요?"
    "그렇습니다. 제 몸은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제가 읽었던 책들, 품었던 생각들, 사랑했던 사람들에 대한 마음은 세상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져서 계속 살아갈 것이고요."
    저승사자는 이학도의 말에 깊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 저승사자님, 죽음이 정말로 나쁜 것일까요?"
    "나쁘다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만약 죽음이 없다면 어떨까요? 사람들이 영원히 산다면 말입니다."
    저승사자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영원히 산다면 사람들은 게을러질 것입니다. 시간이 무한하니까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내일 할 일을 모레로 미루겠지요. 그리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자리도 없어집니다."
    "그런 면도 있겠군요."
    "죽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을 소중히 여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더욱 귀하게 생각하고, 할 수 있는 일을 미루지 않고 최선을 다하게 되지요."
    이학도는 마당에 핀 국화를 바라보며 계속했습니다.
    "저 국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히 피어있다면 누가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겠습니까? 곧 시들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것입니다."
    저승사자는 이학도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명령을 받아 혼을 거두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관점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거든요.
    "선비님의 말씀을 들으니 죽음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됩니다."
    "저승사자님도 처음에는 사람이셨겠지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죽음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아실 텐데, 어찌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안 해보셨습니까?"
    저승사자는 잠시 당황했습니다. 정말로 그 동안 자신은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저는... 그저 명령을 따를 뿐이었습니다."
    "명령도 중요하지만, 왜 그런 명령이 있는지 이해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저승사자님의 일은 단순히 혼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순환을 돕는 것입니다."
    이학도는 일어나서 편지를 저승사자에게 건넸습니다.
    "이제 갈 시간인가요?"
    "네, 그렇습니다만... 선비님, 정말로 후회되는 일은 없으십니까?"
    "후회요?"
    이학도는 잠시 생각하더니 웃으며 말했습니다.
    "후회라면... 이 좋은 차를 저승사자님과 나누어 마실 수 있어서 오히려 기쁩니다. 혼자 마셨다면 이렇게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을 텐데요."
    "선비님..."
    "그리고 저승사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죽음에 대해 한번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는 이학도의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일에 대해 이렇게 감사를 표하는 사람을 본 것도 처음이었거든요.
    "그럼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이학도는 집을 마지막으로 한 번 둘러보고, 정성스럽게 차를 치웠습니다. 그리고 저승사자와 함께 문밖으로 나섰지요.
    "저승길은 어떤 곳입니까?"
    "음침하고 어두운 곳입니다."
    "그렇다면 이 달빛을 마지막으로 잘 봐둬야겠군요."

    ※ 저승길에서 펼쳐진 특별한 대화

    저승사자와 이학도는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갔습니다. 저승길은 정말로 음침하고 서늘했지만, 이학도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걸었지요.
    "저승사자님, 이 길을 얼마나 많이 다니셨나요?"
    "수백 년은 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셨겠네요. 어떤 사람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저승사자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대답했습니다.
    "대부분은 울거나 애원하거나 도망치려고 합니다. 가끔은 화를 내거나 저를 저주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렇겠군요. 갑작스러운 이별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니까요."
    "하지만 선비님 같은 분은 처음입니다."
    "제가 특별한 건 아닙니다. 단지 준비가 되어 있었을 뿐이지요."
    "준비라고 하시면?"
    이학도는 길가에 핀 야생화를 보며 말했습니다.
    "평소에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해봤습니다. 사람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니까, 매일 밤 잠들 때마다 '내일 아침에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런 생각을 하면 무섭지 않았습니까?"
    "처음에는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자꾸 생각하다 보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어요. 죽음을 받아들이니까 하루하루가 더 소중해졌고, 사소한 일에 화내거나 걱정하는 일도 줄어들었습니다."
    저승사자는 이학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저는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선현들의 가르침을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지요."
    "어떤 가르침이 가장 도움이 되었습니까?"
    "공자께서 하신 말씀 중에 '미지생 언지사(未知生 焉知死)'라는 말이 있습니다. '삶도 제대로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는 뜻이지요."
    "그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셨습니까?"
    "저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진정으로 삶을 이해한 사람은 죽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이에요.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니까요."
    길을 걷던 중 갑자기 앞에 큰 강이 나타났습니다. 강물은 검푸르게 흘러가고 있었고, 건너편은 아득히 멀어 보였지요.
    "이것이 삼도천입니다. 이 강을 건너면 저승에 도착합니다."
    "아, 그 유명한 삼도천이군요. 생각보다 넓네요."
    강가에는 나룻배 한 척이 있었고, 사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공은 해골 같은 얼굴에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있어서 보는 사람을 섬뜩하게 만들었지요.
    "사공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이학도는 사공에게도 정중히 인사했습니다. 사공은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에게 이렇게 예의를 갖춰 인사하는 죽은 자는 처음이었거든요.
    "어... 네, 배에 타십시오."
    배에 오른 이학도는 강물을 바라보며 감탄했습니다.
    "이 강물도 참 신기하네요. 어디서 흘러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요?"
    "그런 건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사공이 대답했습니다.
    "모든 물은 바다로 향한다고 했는데, 이 물도 결국 어딘가의 바다로 흘러가겠지요. 그리고 증발해서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땅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순환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자연의 모든 것은 순환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저승사자는 이학도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일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혼을 나르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자연의 순환을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더 의미 있게 느껴졌거든요.
    배가 강 중앙에 이르렀을 때, 이학도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왜 웃으시는 것입니까?"
    "문득 옛날 일이 생각나서요. 제가 젊었을 때 친구들과 함께 한강에서 배를 타고 놀던 일 말입니다."
    "그때가 그리우십니까?"
    "그립다기보다는... 고맙습니다. 그런 좋은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 말이에요."
    "후회는 정말 없으십니까?"
    이학도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대답했습니다.
    "후회가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후회한다고 해서 과거가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후회하십니까?"
    "부모님께 더 효도하지 못한 것, 좋은 책을 더 많이 읽지 못한 것, 어려운 사람들을 더 도와주지 못한 것... 그런 것들이요."
    "그렇다면 아쉬우실 텐데..."
    "아쉽지만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 저승 입구에서 일어난 놀라운 일

    삼도천을 건넌 이학도와 저승사자는 저승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거대한 성문이 우뚝 서 있었고, 그 위에는 '황천문(黃泉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문 양쪽에는 무시무시한 문지기들이 서서 지키고 있었지요.
    "드디어 도착했군요."
    이학도는 저승의 입구를 보며 감탄했습니다.
    "생각보다 웅장하네요. 이 문을 지은 사람들의 정성이 대단했겠어요."
    문지기 중 하나가 나서며 물었습니다.
    "누구냐? 이름과 생년월일을 대라!"
    보통 죽은 자들은 이 시점에서 벌벌 떨며 대답하곤 했는데, 이학도는 침착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학도라고 합니다. 생년월일은..."
    그런데 문지기가 장부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어? 이상한데... 이학도의 이름이 여기 없다."
    "없다고요?"
    저승사자도 놀랐습니다.
    "분명히 명부에서 이학도의 이름을 확인하고 데리러 갔는데..."
    문지기는 다시 한 번 꼼꼼히 장부를 뒤져봤지만, 이학도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이네... 잠깐만, 상부에 확인해보겠다."
    문지기가 어디론가 사라진 후, 이학도와 저승사자는 문 앞에서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이상한 일이군요."
    저승사자가 당황하며 말했습니다.
    "분명히 명부에 있었는데..."
    "저승사자님, 혹시 실수를 하신 것은 아닐까요?"
    "그럴 리가... 아, 혹시!"
    저승사자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이마를 쳤습니다.
    "뭔가 생각나셨나요?"
    "선비님, 혹시 형제가 있으십니까?"
    "네, 동생이 한 명 있습니다. 이름은 이학동입니다."
    "이학동!"
    저승사자는 크게 소리쳤습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이학도가 아니라 이학동을 데려와야 했는데..."
    이때 문지기가 돌아왔습니다.
    "확인해보니 정말로 이학동이 맞다. 이학도는 아직 수명이 20년이나 남았어."
    저승사자는 얼굴이 새빨갛게 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선비님! 제가 큰 실수를 저질렀네요!"
    하지만 이학도는 전혀 화내지 않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하지만 선비님을 이렇게 고생시켜 드렸는데..."
    "고생이라니요. 오히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저승사자님과 좋은 대화도 나누었고, 저승길도 구경해볼 수 있었으니까요."
    문지기가 말했습니다.
    "그럼 이제 돌아가셔야겠네요. 하지만 한 번 저승에 온 사람을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어요. 염라대왕님께 인사를 드리고 가셔야 합니다."
    "염라대왕님을요?"
    "네, 이런 특별한 경우는 반드시 염라대왕님께 보고해야 하거든요."
    이학도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다면 뵙겠습니다. 염라대왕님이라니, 영광스러운 일이네요."
    저승사자와 이학도는 염라전으로 향했습니다. 길을 걸으면서 저승사자는 계속 미안해했지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부주의했습니다."
    "저승사자님, 이것도 인연입니다. 혹시 제가 죽음에 대해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는지 미리 확인해보라는 하늘의 뜻일지도 모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20년 후에 다시 만날 때는 더 준비된 마음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년 후에..."
    "네, 그때는 실수하지 마시고요."
    이학도는 농담처럼 말하며 웃었습니다. 저승사자도 따라서 웃었지요.
    염라전에 도착했습니다. 웅장한 건물 앞에서 이학도는 잠시 멈춰 섰습니다.
    "정말 대단한 건물이네요. 이런 곳을 구경할 수 있다니, 정말 좋은 기회입니다."
    "선비님, 염라대왕님 앞에서는 조심스럽게 행동하셔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예의를 갖춰야지요."
    하지만 이학도의 마음은 여전히 평온했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게 염라대왕이 무섭게 느껴질 리 없었거든요.
    "그런데 저승사자님, 이런 실수가 자주 있나요?"
    "아니요, 저는 처음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선비님 같은 분에게..."
    "혹시 제게 배울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배울 것이요?"
    "네, 저승사자님도 처음에는 사람이셨을 텐데, 죽음에 대해 이렇게 깊이 생각해볼 기회는 별로 없으셨을 것 같아서요."
    저승사자는 이학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말로 오늘 많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선비님 말씀이 맞습니다. 오늘 정말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럼 이 일도 의미가 있었던 거네요."

    ※ 염라대왕과의 만남과 예상치 못한 제안

    염라전의 거대한 문이 열리자, 웅장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높은 옥좌에 앉은 염라대왕은 위엄 있는 모습으로 이학도를 내려다보았지요. 보통의 죽은 자라면 벌벌 떨며 무릎을 꿇었을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학도는 공손히 절을 올리며 차분하게 인사했습니다.
    "염라대왕님께 인사드립니다. 이학도라고 합니다."
    염라대왕은 이학도의 태도에 놀랐습니다. 저승에 온 사람 중에 이렇게 당당하면서도 예의 바른 사람은 처음 봤거든요.
    "이학도로구나. 들어보니 저승사자가 실수를 했다고 하던데."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승사자님을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거든요."
    "좋은 경험이라고?"
    "네, 평소에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해왔지만, 실제로 저승길을 걸어보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은 더욱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럼 네가 생각하는 죽음이란 무엇이냐?"
    "죽음은 변화입니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고, 자연의 순환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흥미롭구나. 그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이냐?"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려워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두려워하면 남은 시간을 제대로 살지 못하게 되니까요."
    염라대왕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수천 년간 수많은 죽은 자들을 만나봤지만, 이렇게 지혜로운 사람은 드물었거든요.
    "네 말을 들어보니, 이미 깨달음에 이른 것 같구나."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계속 배우고 성장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겸손하기까지 하구나."
    염라대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놀라운 제안을 했습니다.
    "이학도야, 본왕이 너에게 제안이 있다."
    "무슨 제안이신지요?"
    "너를 이곳 저승의 관리로 임명하고 싶다. 네 지혜와 인품이면 저승 일을 훌륭히 해낼 것 같구나."
    이 말에 주변의 모든 저승 관리들이 놀랐습니다. 산 사람을 저승 관리로 임명한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거든요.
    하지만 이학도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습니다.
    "큰 영광이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사양한다고? 왜냐?"
    "저에게는 아직 이승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무슨 일인데?"
    이학도는 차분하게 설명했습니다.
    "늙으신 어머니를 모셔야 하고, 제가 모은 책들을 후학들에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웃들을 도울 일도 남아 있고요."
    "그런 일들은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
    "물론 다른 분들도 하실 수 있겠지만, 그것은 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맡은 역할을 끝까지 완수하고 싶습니다."
    염라대왕은 이학도의 답변에 깊이 감동받았습니다. 높은 지위를 제안받고도 자신의 의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거든요.
    "훌륭한 생각이다. 그럼 20년 후에 다시 만날 때를 기약하자."
    "네, 그때는 더 준비된 마음으로 오겠습니다."
    "그리고 저승사자야."
    염라대왕이 저승사자를 불렀습니다.
    "네, 염라대왕님."
    "오늘 실수를 했지만, 덕분에 본왕도 좋은 것을 보았다. 앞으로 더 신중하게 일하되, 오늘의 경험을 잊지 말아라."
    "네, 명심하겠습니다."
    염라대왕은 다시 이학도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학도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묻겠다."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네가 이승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오늘의 경험을 이야기한다면, 그들이 믿겠느냐?"
    이학도는 잠시 생각하더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믿는 사람도 있고 안 믿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믿고 안 믿고가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라고 생각합니다."
    "지혜로운 답이구나."
    염라대왕은 만족스러워하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갑자기 이학도 주위에 환한 빛이 감돌기 시작했지요.
    "이제 이승으로 돌아가거라. 그리고 남은 20년을 보람되게 살아라."
    "감사합니다, 염라대왕님. 오늘의 가르침을 잊지 않겠습니다."

    ※ 이승으로의 귀환과 새로운 깨달음

    이학도가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의 집 마루에 누워 있었습니다. 환한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오고 있었고,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왔지요. 마치 긴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습니다.
    "꿈이었나?"
    하지만 어젯밤의 일들이 너무나 생생했습니다. 저승사자와 나눈 대화, 삼도천을 건넌 일, 염라대왕과의 만남... 모든 것이 꿈치고는 너무 현실적이었거든요.
    그때 이웃집에서 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선비님! 큰일 났습니다!"
    이학도는 급히 일어나 문을 열었습니다. 이웃집 김 서방이 헐떡이며 서 있었지요.
    "무슨 일입니까?"
    "이 선비님의 동생분이... 이학동 선비님이 어젯밤에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이학도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저승사자가 잘못 데려간 사람이 바로 동생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언제 돌아가셨다고 하셨습니까?"
    "어젯밤 해시(밤 9-11시) 경에... 아무 병도 없이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이학도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신 대신 동생이 세상을 떠난 것이 마음 아팠지만, 동시에 어젯밤 일들이 꿈이 아니었다는 확신도 들었지요.
    "김 서방님, 고맙습니다. 지금 당장 가보겠습니다."
    동생의 집에 도착해보니 정말로 이학동이 평안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병으로 고생한 흔적도 없이 마치 잠든 것처럼 안식하고 있었지요.
    "형님, 동생이 어젯밤에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동생의 아내가 말했습니다.
    "이상한 말이요?"
    "잠들기 전에 '형님이 나 대신 저승사자를 만나주었다'고 하더군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이학도는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동생이 어떻게 그런 일을 알았을까요?
    장례를 치르는 동안 이학도는 계속 생각했습니다. 어젯밤의 경험이 정말 현실이었다면, 자신에게는 특별한 사명이 주어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이에요.
    며칠 후, 이학도는 평소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의 할아버지들을 찾아가서 인생의 지혜를 듣기도 하고, 젊은이들에게는 책을 가르치기도 했지요.
    "선생님, 요즘 뭔가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제자 중 하나가 말했습니다.
    "어떻게 달라졌다고 하느냐?"
    "더 여유로워지신 것 같아요. 그리고 죽음에 대해 자주 말씀하시는데, 전혀 무섭게 들리지 않습니다."
    이학도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죽음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 의미 있게 사는가이다."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되셨습니까?"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다."
    "경험이요?"
    이학도는 어젯밤의 일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사람들도 이학도의 진솔한 태도와 변화된 모습을 보며 점차 믿게 되었지요.
    "정말 놀라운 경험이시네요."
    "그런데 왜 하필 선생님께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아마도 내가 죽음에 대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라는 뜻일 것이다."
    그날부터 이학도의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죽음을 앞둔 노인들,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 인생의 의미를 찾고 있는 젊은이들... 모든 사람들이 이학도의 지혜를 구하고 싶어했지요.
    "선생님 덕분에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하루하루를 더 소중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이학도는 이런 반응을 보며 자신의 경험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의 지혜를 전했고, 자신도 계속 성장해나갔습니다. 그리고 약속된 그 날이 다가왔을 때, 이학도는 또 다시 태연하게 저승사자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요.
    이 이야기는 후에 용재총화에 기록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죽음에 대한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교훈이 되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여러분, 오늘의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던 조선 선비 이학도의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그의 태연함과 지혜는 저승사자마저 감동시킬 정도였지요. 이 야담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교훈은 참으로 깊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받아들이는 자세, 그리고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모두도 이학도처럼 삶과 죽음에 대한 올바른 철학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청구야담에서 전해지는 또 다른 감동적인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저승사자를 사랑한 조선 기생의 로맨스"라는 제목으로, 인간과 저승사자 사이에 피어난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여러분의 따뜻한 댓글로 함께해주세요!
    Next 예고편: 저승사자를 사랑한 조선 기생의 로맨스 (출처: 청구야담)
    한양 최고의 미인 기생 월향, 그녀가 사랑에 빠진 상대는 다름 아닌 저승사자였습니다! "당신이 누구든 상관없어요. 사랑하는 마음만은 진실이니까요." 하지만 인간과 저승사자의 사랑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애절하고 아름다운 이들의 로맨스 뒤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과 감동적인 결말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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