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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의 재산을 다 빼앗고 길거리에 나앉게 한 악독한 동생의 소름 돋는 최후
눈먼 형의 재산을 가로챈 동생이 원인 모를 병에 걸려 모든 돈을 탕진하고, 우연히 명약으로 눈을 뜬 형이 동생을 용서하며 다시 집안을 일으켜 세운 대인배의 사연 [어우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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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다면, 그 고통이 얼마나 클까요. 조선 시대, 한양에서 멀지 않은 고을에 형제가 살았습니다. 형은 눈이 멀었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맑은 사람이었고, 동생은 두 눈 멀쩡히 뜨고도 형의 재산을 한 푼 남김없이 빼앗아 길바닥에 나앉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늘이 정녕 무심했을까요. 형의 재산으로 호의호식하던 그 동생에게 어느 날 갑자기 원인 모를 병이 찾아옵니다. 온몸에서 피고름이 흐르고, 어떤 의원도 손을 쓸 수 없는 괴질이었습니다. 재산은 약값으로 녹아내렸고, 결국 동생도 거리에 나앉게 되는데... 그 와중에, 산속에서 우연히 약초를 얻어 눈을 뜬 형이 자기를 배신한 동생 앞에 나타납니다. 형은 과연 동생에게 무엇을 했을까요. 오늘 이야기, 끝까지 들으시면 분명 가슴이 먹먹해지실 겁니다.
※ 1: 눈먼 형의 성실한 삶과 동생의 탐욕
경기도 광주 땅, 너른 들판 끝자락에 기와집 한 채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마당에는 감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고, 장독대에는 옹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집의 주인은 윤대수라는 사내였다. 나이 서른다섯, 체격은 크고 어깨는 넓었으나, 두 눈은 어릴 적 앓은 천연두로 빛을 잃은 지 오래였다.
'오늘도 해가 떴겠지. 볼 순 없어도 볕이 따듯하니 좋은 날이야.'
대수는 매일 아침이면 마루에 앉아 햇살을 얼굴에 받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아내 분이가 부엌에서 밥을 짓는 소리, 뒷마당에서 닭이 우는 소리, 그것만으로도 대수는 세상이 넉넉하다 여겼다.
"여보, 진지 다 됐어요. 오늘 콩나물국 끓였는데, 간이 좀 싱거울 수도 있어요."
"아이고, 당신이 끓인 거면 뭐든 맛있지. 어서 먹자고."
대수는 비록 눈은 보이지 않았으나, 손재주 하나만큼은 타고난 사람이었다. 짚신을 삼고, 빗자루를 엮고, 삼베를 짜는 일이라면 동네에서 대수를 따를 자가 없었다. 매달 장날이면 분이가 대수의 물건을 이고지고 장터에 나가 팔았고, 그 돈으로 부부는 가세를 불려 나갔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논 다섯 마지기에 밭 세 마지기, 거기에 직접 장만한 논이 세 마지기 더 붙어, 대수네 살림은 동네에서도 넉넉한 축에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동생이었다. 대수보다 다섯 살 아래인 윤대복. 겉으로 보기엔 훤칠한 키에 번지르르한 외모, 말재주도 좋아서 동네 사람들 앞에선 늘 웃음을 달고 다녔다. 하지만 속은 달랐다.
'형이 눈도 안 보이는 주제에 재산은 나보다 많으니, 이게 말이 되나. 아버지가 형이라고 논을 더 물려주신 게 처음부터 잘못이지.'
대복은 어릴 때부터 형에 대한 시기심이 뼛속까지 박혀 있었다. 아버지 윤 진사는 생전에 장남인 대수에게 재산의 육할을, 차남 대복에게 사할을 나누어 주었다. 조선의 법도로 보면 당연한 일이었으나, 대복은 그것을 단 한 번도 납득한 적이 없었다.
"형님, 요즘 농사 잘 되시오? 올해 벼가 실하다던데."
"아, 대복이냐. 덕분에 뭐, 그럭저럭이다. 너는 어떠냐?"
"저야 뭐, 늘 그렇지요. 형님처럼 복이 많지 않아서요."
대복은 형 앞에서 늘 공손했다. 존대를 썼고,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서면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런 대복의 두 얼굴을 알지 못했다. 오히려 형을 잘 챙기는 우애 깊은 아우라며 칭찬하는 이들도 있었다.
'두고 봐라. 눈 먼 네가 언제까지 저 재산을 지키고 앉아 있을 수 있을지.'
대복의 속마음 깊은 곳에서, 검은 탐욕의 씨앗이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밤마다 형의 기와집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고, 장날에 형의 물건이 잘 팔려 나간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리고 그 씨앗은 어느 해 흉년이 들면서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 2: 재산 문서를 위조하고 관아에 거짓 소송을 걸다
그해 가을, 대복은 마침내 마음속에 품고 있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때마침 고을에 새로 부임한 현감은 뇌물에 눈이 먼 탐관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대복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현감이 돈을 밝힌다고? 이건 하늘이 나를 돕는 거야.'
대복은 먼저 한양에서 이름 석 자 정도 알려진 송사꾼을 찾아갔다. 거짓 문서를 만드는 데 귀신같은 솜씨를 가진 자였다. 대복은 그자에게 쌀 열 가마 값을 쥐어 주고, 아버지 윤 진사의 유서를 위조하게 했다. 위조된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장남 대수에게는 논 두 마지기와 집 한 채만 남기고, 나머지 전 재산은 차남 대복에게 물려준다는 내용이었다.
"이 정도면 진짜와 구별하기 힘들 겁니다. 종이도 묵은 한지를 구해 썼고, 먹물도 일부러 빛이 바랜 걸 썼으니."
"수고했네. 입 단단히 다물고 있게."
대복은 위조된 유서를 품에 넣고 관아로 향했다. 현감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짜내기 시작했다.
"현감 나으리, 억울하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서가 분명히 있사온데, 눈먼 형이 고집을 부리며 재산을 내놓지 않사옵니다. 형은 눈이 보이지 않아 농사도 제대로 짓지 못하면서, 소인이 피땀 흘려 일군 땅까지 제 것이라 우기고 있사옵니다."
현감은 대복이 미리 바친 은자 스무 냥에 이미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다.
"음, 유서가 있다면 마땅히 유서대로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 형을 불러오너라."
며칠 뒤, 대수가 아내 분이의 손을 잡고 관아에 나왔다. 대수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형님, 아버지 유서를 보셨을 텐데, 왜 재산을 내놓지 않으시오?"
"유서라니? 대복아, 무슨 소리냐. 아버지께서 생전에 우리 앞에서 직접 재산을 나누어 주셨잖느냐. 별도의 유서 같은 건 없었다."
"현감 나으리, 보시다시피 형은 눈이 멀어 유서를 본 적도 없다 하지 않습니까. 소인이 가지고 온 이 유서가 아버지의 뜻이옵니다."
대수는 속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으나, 눈이 보이지 않으니 유서의 진위를 스스로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설마 대복이가... 아니야, 동생이 이럴 리가 없어. 무슨 오해가 있는 거겠지.'
하지만 현감은 이미 판결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유서가 분명하니, 재산은 유서대로 나누도록 하라. 윤대수는 논 두 마지기와 가옥 한 채를 제하고 나머지를 동생에게 넘기도록 하라."
"나으리! 억울합니다! 이것은 거짓 유서입니다!"
분이가 울며 호소했으나, 관아의 아전들이 분이를 밀쳐냈다. 대수는 아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이내 힘없이 풀었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세상이 나를 이렇게 속이는구나.'
그런데 대복의 욕심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판결이 난 지 보름도 되지 않아, 대복은 다시 관아에 소장을 올렸다. 형이 남은 논 두 마지기마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으니 자신에게 넘겨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현감의 손에는 은자가 쥐어져 있었다.
결국 대수 부부는 집에서까지 쫓겨나게 되었다.
※ 3: 쫓겨난 대수, 산골 움막에서 처절한 삶을 시작하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수와 분이는 고을을 떠나 산 아래 개울가에 움막 하나를 지었다. 나뭇가지를 엮고 짚으로 지붕을 덮었으나, 바람이 불면 흙먼지가 날렸고, 비가 오면 빗물이 새어 들었다.
"여보, 미안하오. 내가 두 눈 멀쩡한 사람이었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무슨 말씀이에요. 당신 탓이 아니잖아요. 잘못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아요. 우리가 바르게 살았으니, 분명 하늘이 도울 날이 올 거예요."
분이는 눈물을 삼키며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대수의 거칠어진 손이 가슴을 아프게 했지만, 분이는 내색하지 않았다. 대수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이 사람이 더 무너질 것 같았다.
그때부터 분이는 날마다 산을 오르내렸다. 봄이면 산나물을 뜯고, 여름이면 약초를 캐어 장에 내다 팔았다. 가을이면 밤과 도토리를 주웠고, 겨울이면 짚신을 삼아 파는 것으로 끼니를 이었다. 대수도 가만있지 않았다. 눈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짚을 꼬고 새끼를 엮으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했다.
'내가 비록 눈은 보이지 않지만, 손은 아직 살아 있다. 분이한테 짐이 되지 말자.'
하지만 겨울은 잔인했다. 움막 안에서도 입김이 하얗게 피어올랐고, 솜이 빠진 이불 한 장으로 두 사람이 몸을 웅크려야 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먹을 것이 물 한 사발뿐인 날도 있었다. 한번은 분이가 산에서 나물을 캐다가 발을 헛디뎌 비탈을 굴렀다. 무릎이 찢어지고 팔에 피가 흘렀으나, 분이는 캔 나물을 놓치지 않으려고 보따리를 꼭 움켜쥐고 있었다.
"여보, 오늘은 내가 죽이라도 쑤어 올게요. 어제 이 아낙네가 보리쌀을 좀 얻어왔으니까."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나 같은 못난 사내한테 시집와서 이 고생을..."
"또 그런 소리. 나는 당신한테 시집온 것,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
분이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울먹이면서도 단단했다. 대수는 아내의 그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살아야 할 이유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떤 밤에는 분이가 먼저 잠든 줄 알고 대수가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하늘이시여, 제 눈은 되찾지 못해도 좋사오니, 제 아내만은 건강하게 해주소서. 이 여인이 없으면 저는 하루도 살 수 없사옵니다.'
그 기도 소리를 듣고 분이는 등을 돌린 채 소리 없이 울었다.
그러는 사이 계절은 바뀌고 또 바뀌었다. 움막 생활이 삼 년째에 접어들었을 무렵, 대수와 분이는 마을 사람들의 동정을 조금씩 얻게 되었다. 근처 마을의 아낙네들이 가끔 보리쌀이나 콩을 가져다주었고, 동네 아이들이 나무를 해다 주기도 했다. 사람들은 대수 부부의 사정을 듣고 혀를 찼다.
"눈먼 형의 재산을 빼앗다니, 그 동생이란 놈은 사람 탈을 쓴 짐승이야."
"그러게 말이야. 하늘이 그냥 두겠나. 두고 봐."
마을 사람들의 그 말이, 나중에 정말로 들어맞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 4: 대복의 호화로운 삶 속에 원인 모를 괴질이 찾아오다
형의 재산을 모조리 가로챈 대복은 그야말로 호의호식했다. 기와집을 새로 고쳤고, 하인을 두었으며, 매일같이 술상을 벌였다. 형이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물 쓰듯 썼다.
"아이고, 역시 돈이 있어야 세상이 내 편이지. 형님이 그 돈 안고 뭘 했겠나. 눈도 안 보이는데. 차라리 내가 가진 게 낫지."
대복은 자신의 행동에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옳았다고 믿었다. 눈먼 형이 재산을 관리할 수 없으니 자기가 대신 맡은 것이라는 기가 막힌 논리를 스스로에게 적용했다.
그런데 재산을 빼앗은 지 이 년째 되던 해 봄,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대복의 손등에 붉은 반점이 하나 생겼다. 처음에는 벌레에 물린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에이, 벌레 물린 거겠지 뭐."
그러나 보름이 지나자 반점은 팔뚝 전체로 번졌다. 한 달이 지나자 등과 가슴에까지 퍼졌다. 피부가 갈라지며 진물이 흘렀고, 밤이면 가려움과 통증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병이란 말이냐!"
대복은 고을의 의원을 불렀다. 그러나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의술을 펼친 지 삼십 년이 넘었사온데, 이런 증세는 처음 봅니다. 피부병도 아니고, 종기도 아닙니다. 마치 몸 안에서부터 독이 올라오는 것 같사온데..."
대복은 한양에서 이름난 의원을 불러왔다. 침을 맞고, 탕약을 달여 마시고, 온갖 약재를 써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병은 점점 더 심해져서, 이제는 얼굴에까지 종기가 번졌다. 피고름이 흘러 옷깃을 적셨고, 악취가 나서 하인들조차 가까이 오기를 꺼렸다.
'이건... 설마 형 때문인가? 아니야. 그런 허황된 소리가 어딨어.'
대복은 스스로 부정했지만,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눈먼 형이 나타나 자신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 형의 얼굴이, 대복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약값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한양의 명의를 부를 때마다 쌀 수십 가마 값이 들었고, 귀한 약재는 은자 수십 냥씩 들었다. 일 년이 지나자 논 두 마지기가 약값으로 나갔다. 이 년이 지나자 밭까지 팔아야 했다.
"영감, 이러다가 우리도 거지가 되겠어요!"
대복의 아내가 울며 소리쳤지만, 대복은 병을 고치지 않으면 죽을 판이었다.
"닥쳐! 내가 이 병만 고치면 다시 벌면 될 것 아니냐!"
하지만 병은 절대 낫지 않았다. 마치 하늘이 내린 벌처럼, 한 치의 호전도 없이 대복의 몸을 갉아먹었다. 그리고 결국, 형에게서 빼앗은 기와집마저 약값과 빚으로 남의 손에 넘어갔다. 대복은 자기 발로 걸어 나온 것이 아니라, 빚쟁이들에게 쫓겨 나온 것이었다.
세상은 참으로 묘한 곳이었다. 형을 길바닥에 나앉게 한 동생이, 똑같이 길바닥에 나앉게 된 것이었다.
※ 5: 산속 약초로 눈을 뜬 대수, 세상의 빛을 다시 보다
대수와 분이가 움막에서 네 번째 겨울을 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느 날 분이가 산에서 나물을 캐다가 절벽 아래 좁은 틈새에서 이상한 풀을 발견했다. 줄기는 붉고, 잎은 짙은 초록이었으며, 꽃은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분이는 평소 약초를 캐며 익힌 지식으로도 이 풀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이게 뭘까. 이런 풀은 처음 보는데..."
분이는 그 풀을 조심스럽게 캐어 움막으로 가져왔다. 그날 저녁, 우연히 움막 근처를 지나던 떠돌이 약쟁이가 그 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것이... 세상에, 이게 석견초가 아니오!"
"석견초요? 그게 무엇인데요?"
"옛 의서에만 나오는 풀이오. 백 년에 한 번 피어난다는 전설의 약초인데, 특히 눈병에 효험이 있다 하오. 이 풀을 달여서 눈에 바르면, 실명한 지 수십 년이 된 사람도 빛을 되찾을 수 있다고 전해지오."
분이의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설마... 이 풀로 여보의 눈을...'
"정말입니까? 정말 이 풀로 눈을 뜰 수 있다는 겁니까?"
"나도 의서에서만 읽은 것이라 확신은 못하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소. 달이는 법을 알려줄 테니, 한번 해보시오."
약쟁이는 석견초를 맑은 샘물에 사흘간 담가두었다가 약한 불에 반나절을 달여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분이는 떨리는 손으로 약을 만들었다. 사흘 밤을 뜬눈으로 새우며, 불 조절을 하고, 약이 끓어 넘치지 않도록 지켜보았다.
"여보, 무슨 약을 달이는 거요? 무슨 냄새가 이상하오."
"당신 눈에 좋다는 약초를 구했어요. 혹시... 혹시 모르잖아요."
"허, 내 눈은 벌써 이십 년도 넘게 안 보이는 눈인데, 무슨 약이 듣겠소."
대수는 기대하지 않았다. 이미 오래전에 눈을 뜨겠다는 희망을 접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분이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약이 완성된 날 아침, 분이는 깨끗한 천에 약물을 적셔 대수의 눈에 천천히 올려놓았다.
"좀 따가울 수 있어요. 참아요, 여보."
"...으, 따갑구만."
대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분이는 그 약을 아침저녁으로 정성껏 발라주었다. 하루, 이틀, 사흘... 칠 일이 지났다.
그리고 여드레째 되던 날 아침이었다.
"분이야... 분이야!"
"왜요? 왜 그래요, 여보?"
"빛이... 빛이 보여. 어둡지만, 뭔가 어른거리는 게 보여!"
분이가 숨을 멈추었다. 대수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흐릿하지만, 정말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분이는 약을 계속 발랐다. 보름이 지나자 대수는 사물의 윤곽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고, 한 달이 지나자 완전히 눈을 떴다.
대수가 세상의 빛을 되찾고 처음으로 본 것은, 아내 분이의 얼굴이었다.
"당... 당신이 분이야?"
"네, 접니다, 여보."
대수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울었다. 고운 얼굴이었을 분이의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패여 있었고, 손은 갈라져 있었으며, 머리카락에는 허연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대수는 단번에 알았다.
"미안하오... 고맙소... 당신 덕에, 내가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소."
두 사람은 움막 안에서 한참을 안고 울었다. 바깥에서는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 6: 거지꼴이 된 동생을 찾아가 용서하고 품에 안다
눈을 뜬 대수는 가장 먼저 고을에 내려가 형편을 살폈다. 세상은 많이 변해 있었다. 탐관이었던 현감은 파직되어 쫓겨났고, 새로 부임한 현감은 강직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러나 대수가 가장 먼저 찾은 것은 관아가 아니었다.
"여보, 대복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봐야겠소."
"뭐라고요? 당신한테 그런 짓을 한 사람을 왜 찾으려고 해요!"
분이가 벌컥 화를 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대복은 형의 재산을 빼앗고 길바닥에 나앉게 만든 원수가 아닌가. 그런데 대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동생이야. 내 피를 나눈 동생이란 말이오."
"당신은... 정말이지, 너무 착한 게 탈이에요."
분이는 입술을 깨물었지만, 남편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대수의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분이였기 때문이었다.
대수는 고을 이곳저곳을 수소문했다. 대복의 소식은 금방 들렸다. 기와집을 빼앗긴 뒤 고을 변두리 움막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수가 그곳을 찾아갔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참담했다.
허름한 움막 안에 누더기를 걸친 사내가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얼굴과 몸에는 종기 자국이 가득했고, 악취가 코를 찔렀다. 옆에는 대복의 아내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 역시 초췌하기 짝이 없었다.
'이게... 대복이란 말인가.'
대수는 가슴이 철렁했다. 형을 속이고 재산을 빼앗았던 그 번지르르한 동생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자리에는 병에 쓸려 뼈만 남은 폐인 하나가 누워 있을 뿐이었다.
"대복아."
"...누, 누구야."
대복이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형의 얼굴을 보는 순간, 대복의 눈이 크게 떠졌다.
"형, 형님...? 형님 눈이...!"
"그래, 나 대수다. 눈을 떴다."
대복의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공포인지, 수치인지, 아니면 그 두 가지가 뒤섞인 것인지, 대복은 울음을 터뜨렸다.
"형님, 나를... 나를 죽이러 온 거요? 죽여도 싸지. 나 같은 놈은 죽어도 싸요."
대복이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이 되어 흙바닥에 떨어졌다.
"형님, 내가 짐승 같은 짓을 했소. 눈 먼 형의 재산을 빼앗다니, 나는 사람도 아니오. 이 병도 하늘이 내린 벌이겠지. 형님, 나는 이대로 죽어도 할 말이 없소."
대수는 한참 동안 동생을 내려다보았다. 분이도, 대복의 아내도, 아무 말 없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움막 안에는 대복의 흐느낌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대수가 입을 열었다.
"대복아, 일어나거라."
"일어나라고 했다, 이 사람아."
대수가 허리를 굽혀 동생의 팔을 잡았다. 그 순간, 대복이 고개를 들었다. 형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 있었지만, 그 눈빛에는 미움이 없었다.
"네가 나쁜 짓을 한 건 맞다. 하지만 너도 충분히 벌을 받지 않았느냐. 너는 내 동생이다. 내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동생이란 말이다. 내 어찌 동생을 이 꼴로 버려두겠느냐."
"형님...!"
대복이 형의 품에 엎어져 통곡했다. 대수는 피고름이 묻은 동생의 등을 토닥이며 함께 울었다. 분이도 옆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움막 안에서, 묵은 원한이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 7: 형제가 화해하고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우다
대수는 동생을 움막으로 데려왔다. 분이는 속으로야 복잡한 심정이었지만, 남편의 뜻을 따랐다. 대수는 눈을 뜨게 해준 석견초의 남은 뿌리를 달여 동생의 종기에 발라주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석견초는 눈병뿐 아니라 피부의 독기를 빼내는 데에도 효험이 있었던 것이다.
"형님, 이 약이... 종기에 듣는 거요?"
"모르겠다. 하지만 해가 될 것은 없을 테니 일단 발라보자꾸나."
사흘이 지나자 종기에서 진물이 멈추었다. 보름이 지나자 새살이 돋기 시작했고, 한 달이 지나자 대복의 피부는 거의 깨끗해졌다. 의원 수십 명이 손을 쓰지 못한 괴질이, 산속 약초 하나로 씻은 듯이 나은 것이었다.
대복은 몸이 나으면서 정신도 함께 돌아오는 것 같았다. 더 이상 교활한 눈빛은 없었다. 그 자리에는 깊은 회한과 감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형님, 나는 평생 이 은혜를 갚으며 살겠소. 내가 형님께 한 짓을 생각하면, 이 몸이 천 번 죽어도 모자라오."
"됐다, 지난 일은 다 잊어라. 앞으로가 중요한 거야."
대수는 눈을 뜬 뒤 다시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갔다. 새로 부임한 현감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했다. 현감은 전임 현감의 비리를 조사하던 중이었기에, 대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위조된 유서를 다시 조사하자 거짓임이 밝혀졌고, 대복도 자신의 죄를 모두 자백했다.
"제가 형의 재산을 빼앗은 죄인이옵니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사옵니다."
현감은 대복의 죄를 물으려 했으나, 대수가 나서서 동생을 변호했다.
"나으리, 동생이 잘못한 것은 맞사오나, 이미 하늘이 벌을 내려 충분히 고통을 겪었사옵니다. 형인 제가 용서했으니, 관아에서도 너그러이 봐주시옵소서."
현감은 대수의 너그러움에 감탄했다.
"그대 같은 사람을 대인이라 하는 것이로다. 좋다, 그대의 뜻을 따르겠다. 다만 재산은 원래대로 되돌릴 것이며, 위조 문서를 만든 자는 따로 처벌하도록 하마."
이렇게 하여 대수는 빼앗겼던 재산의 상당 부분을 되찾았다. 물론 대복이 탕진한 부분은 되돌릴 수 없었지만, 대수는 그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남은 재산을 종잣돈 삼아 다시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눈을 뜬 대수의 손끝은 이전보다 더 부지런했다.
대복도 달라졌다. 형 곁에서 묵묵히 땀을 흘리며 농사를 도왔다. 이전에는 손에 흙 한 번 묻히기 싫어하던 대복이, 이제는 새벽부터 논에 나가 일을 했다. 형제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들판에 서서, 벼가 익어가는 것을 함께 바라보았다.
"형님, 올해 벼가 실하오."
"그래, 하늘이 도왔지. 아니, 우리가 정직하게 땀을 흘렸으니까 하늘도 도운 거겠지."
삼 년이 지나자 대수네 살림은 예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대수는 동생에게도 논을 나누어 주었다. 대복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숙였다.
"형님, 나는 형님 같은 형을 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이오."
"나도 네가 돌아와서 좋다. 형제가 함께 있어야 집안이 서는 법이니까."
그 뒤로 형제는 한평생 우애를 잃지 않았다. 대복은 다시는 탐욕에 눈이 멀지 않았고, 대수는 다시는 세상의 어둠 속에 갇히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형제의 이야기를 두고두고 전했다.
세상에 무서운 것이 무엇이냐. 탐욕이 무섭고, 배신이 무섭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업보다. 하늘은 반드시 보고 있고,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하지만 그 모든 업보보다 더 강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용서다. 용서는 원한을 녹이고, 미움을 씻어내며,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운다. 눈먼 형 윤대수가 보여준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세상의 빛을 잃었으되 마음의 빛은 잃지 않았던 한 사내의 이야기, 이것이 바로 어우야담이 전하는 대인배의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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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 이미지 프롬프트 (영어, 16:9, 실사, no text)
A cinematic photorealistic scene set in Joseon-era Korea, 16:9 aspect ratio. On the left side, a blind middle-aged Korean man in humble worn hanbok sits on a dirt road looking helpless, with an empty expression and clouded eyes, his clothes ragged and patched. On the right side, a wealthy younger Korean man in luxurious silk hanbok stands arrogantly in front of a traditional Korean tile-roof house (giwa-jip), clutching a land deed scroll with a greedy smirk on his face. Between them, golden coins and rice bags are scattered on the ground, symbolizing stolen wealth. The background shows a rural Korean village with autumn foliage and dramatic golden-hour lighting. Moody, dramatic atmosphere with strong contrast between the two brothers — one in poverty, one in ill-gotten luxury. Hyper-realistic, cinematic color grading, shallow depth of field, no text, no watermark, no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