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준비하던 가난한 선비
과거 준비하던 가난한 선비, 여인과 선비의 아찔한 만남 【출처-계서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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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Hooking Ment)
밤샘 공부에 지쳐 죽어가던 선비, 그의 앞에 홀연히 나타난 정체불명의 여인. 그녀는 '몸을 바치면 장원급제를 시켜주겠다'는 위험한 제안을 하는데... 과연 그녀의 정체는 선녀일까, 요물일까? 한 선비의 인생을 바꾼 기묘하고도 아찔한 하룻밤의 거래!
디스크립션 (Description)
조선 야담집 『계서야담』에 실린 한 선비의 기묘한 성공담. 가난과 절망 속에서 과거를 준비하던 선비에게 매일 밤 꿈처럼 찾아온 여인. 그녀와의 은밀한 만남은 그의 몸과 정신을 놀랍게 변화시킨다. 과연 그는 꿈에 그리던 장원급제를 이루고, 그녀와의 사랑도 쟁취할 수 있을까?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아찔한 로맨스.
※ 꺼져가는 등불, 스러지는 꿈
조선 시대, 한 인간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단 하나의 관문은 바로 과거 급제였다. 하여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청춘을 검은 먹물과 하얀 종이 위에 모두 태워 바쳤고, 경기도 외딴 산골 마을의 가난한 선비, 박 아무개 또한 그들 중 하나였다. 비록 남들처럼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한번 본 것은 잊지 않는 총명함과 학문에 대한 깊은 열정만큼은 어려서부터 주변의 칭송이 자자했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의 벽은, 재능만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을 만큼 높고 차가웠다. 일찍이 부모님은 병으로 돌아가시고, 피붙이 하나 없이 남은 재산이라고는 비가 새는 낡아빠진 초가삼간이 전부였다. 그는 낮에는 지주의 밭을 대신 갈아주거나 땔감을 해 나르며 겨우 목숨을 부지했고, 뼛골이 쑤시는 고된 노동이 끝난 깊은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스러져가는 꿈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의 공부방이라고 불리는 작은 골방은, 사람의 거처라기보다는 짐승의 굴에 가까웠다. 창호지는 여기저기 찢어져 겨울밤이 되면 칼날 같은 외풍이 그의 살을 파고들었고, 변변한 책상 하나 없어 썩어가는 목판을 괴어 책상으로 삼았다. 가장 큰 문제는 굶주림보다 더 고통스러운, 지식에 대한 갈증이었다. 과거에 필요한 귀한 서책들은 가난한 그에게는 평생 구경도 못 할 그림의 떡과도 같았다. 그는 며칠에 한 번 읍내 서점에 나가, 주인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책을 빌려, 밤을 꼬박 새워가며 그것을 베껴 쓰는 것으로 공부를 대신해야만 했다. 하루 종일 이어진 고된 노동과, 밤늦도록 이어지는 벼랑 끝의 공부. 그의 몸과 마음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갔다. 창백하다 못해 푸른 기운이 감도는 얼굴과, 퀭하게 움푹 들어간 눈, 그리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앙상한 어깨. 그의 모습은 더 이상 학문을 닦는 고고한 선비라기보다는, 삶이라는 거대한 무게에 짓눌려 스러져가는 한 마리 가련한 망령에 가까웠다.
그날 밤도, 박 선비는 마지막 남은 기름 한 방울까지 태우고 있는 등불에 의지해, 며칠 전 베껴온 책을 읽고 있었다. 밖에서는 겨울을 재촉하는 차가운 비가 쉴 새 없이 내리고, 방 안의 공기는 마치 얼음장처럼 차가워 그의 뼛속까지 시려왔다. 그는 며칠째 멀건 죽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운 탓에, 극심한 허기와 현기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눈앞의 글자들이 뿌옇게 아른거리며 이내 두세 개로 겹쳐 보였고, 손에 쥔 붓은 천근만근의 쇠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이래서야… 과연 내가 저 높은 용의 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 분수에 맞게 농사꾼으로 늙어 죽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한번 피어오른 절망적인 생각은, 걷잡을 수 없이 그의 머릿속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읽고 있던 책 위로, 맥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희미한 의식 너머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 안에는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는데. 그는 헛것을 들었으려니 생각하며,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방 안의 등불은 이미 기름이 다해 꺼져 있었는데, 방 안은 이상하게도 보름달이 뜬 밤처럼, 은은하고 신비로운 빛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그의 낡은 목판 책상 건너편에, 난생 처음 보는 한 여인이 소리 없이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달빛을 타고 온 여인, 위험한 제안
박 선비는 너무 놀라,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방 안의 낡은 나무 문은 분명 굳게 닫혀 있었고, 자신이 잠든 사이에 누군가 들어온 기척은 전혀 없었다. 여인은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혹은 찢어진 창호지 틈으로 스며든 달빛이 한데 뭉쳐 사람의 형상으로 변한 것처럼, 고요하고 신비로운 모습으로 그곳에 앉아 있었다. 칠흑같이 검고 긴 머리카락은 어떠한 장식도 없이 비단결처럼 흘러내렸고,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새하얀 소복 아래로 드러난 가녀린 몸매는, 인간 세상의 여인이 아닌 듯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희미한 빛에 가려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를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강렬하면서도 매혹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뉘… 뉘시오…? 귀신이오, 사람이오? 어찌하여 남의 방에 허락도 없이…." 박 선비는 공포에 질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몇 마디를 쥐어짜 내 물었다. 그러자 여인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깊은 겨울밤, 얼어붙은 호수 위로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 차가우면서도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저는 나리 같은 분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밤마다 꺼져가는 등불 아래에서, 자신의 청춘과 목숨을 태우며 고뇌하는 가난한 선비들의 위대한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일을 하지요."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다고요? 그게 대체 무슨 해괴한…." 박 선비는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다. 혹시, 자신이 굶주림과 피로에 지쳐,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마을 노인들이 말하던, 밤에 나타나 잘생긴 사내의 정기를 모두 빨아먹고 죽게 만든다는 여우나 귀매 같은 요물은 아닐까. 그의 경계심 어린 눈빛을 꿰뚫어 보았는지, 여인이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나리의 그 간절한 꿈, 과거 급제의 꿈을 제가 이루어드리겠습니다. 나리께서 가난하여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귀한 책들을 가져다드리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난해한 학문의 이치를 몸소 깨우쳐 드리지요. 그리하면, 나리의 명성은 온 나라에 떨치게 될 것이고, 마침내 장원급제의 영광 또한 결코 헛된 꿈이 아닐 것입니다." 여인의 말은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했다. 하지만 박 선비는 쉽사리 이성을 놓지 않았다. "어찌… 어찌 일면식도 없는 나를 돕겠다는 말이오? 세상에 아무런 대가 없는 호의는 없는 법. 당신이 내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이오?" 그러자 여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짙게 걸렸다.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박 선비가 앉아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난초 향 같기도 하고, 짙은 사향 같기도 한 매혹적인 향기가 그의 코끝을 아찔하게 스쳤다. 그녀는 그의 바로 앞에 멈춰 서서, 그의 턱을 부드럽고 차가운 손으로 감싸 쥐고는, 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거부할 수 없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가 바라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나리의 학문이나 재물이 아니지요. 그저… 나리의 뜨거운 하룻밤이면 족합니다." "하룻밤… 이라니요?" "제가 나리에게 지혜를 주는 매일 밤, 나리께서는 저에게 나리의 몸을 온전히 주시면 됩니다. 그것이 나리와 저 사이의, 유일한 계약 조건입니다." 여인의 제안은 벼락처럼 그의 머리에 내리꽂혔다. 그것은 평생을 지켜온 선비로서의 양심과, 거부할 수 없는 남자로서의 원초적인 욕망 사이에서 그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그녀의 정체는 여전히 의심스러웠지만,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신비로운 매력과, '장원급제'라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은, 그의 마지막 남은 이성마저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그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의 눈앞에서, 여인이 천천히 자신의 어깨에 걸친 하얀 옷고름을, 뱀이 허물을 벗듯 스르르 풀기 시작했다. 희미한 달빛 아래로 드러나는 그녀의 새하얀 어깨와, 옷자락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풍만한 가슴의 실루엣은, 그가 평생 책 속에서나 상상했던 욕망의 화신,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이 기묘한 도박에 걸기로 결심했다. 이대로 절망 속에서 스러져 죽는 것보다, 설령 요물에게 홀려 복상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위험하고도 달콤한 계약을 받아들이기로.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좋소.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그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인의 차갑고도 붉은 입술이, 그의 타는 듯 마른 입술 위로, 지울 수 없는 낙인처럼 찍혀 내려왔다.
※ 하룻밤의 계약, 몸으로 얻는 지혜
여인과의 위험하고도 은밀한 계약이 시작된 첫날밤. 박 선비는 평생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한 기묘하고도 황홀한 경험을 했다. 여인의 입맞춤은 뜨거우면서도 차가웠고, 얼음장 같던 그녀의 몸은 그의 몸과 닿자마자, 마치 용광로처럼 뜨겁게 타올랐다. 그녀는 서툰 그를, 마치 오랜 세월을 함께한 부부처럼 능숙하고도 대담하게 이끌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이 그의 지친 몸 구석구석을 어루만질 때마다, 그는 단순한 쾌락 이상의,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기운이 자신의 몸속으로 폭포수처럼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메마르고 쩍쩍 갈라진 논에 생명수가 흘러 들어오듯, 그의 지친 몸과 고갈된 마음 구석구석을 채우는 신비롭고도 강력한 활력이었다. 밤새도록 이어진 격렬하고도 탐닉적인 정사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머리는 수정처럼 맑아졌고, 온몸에는 백 명의 장정과 씨름이라도 할 수 있을 듯한 기운이 샘솟는 듯했다. 동이 트기 직전의 푸른 어둠 속에서, 여인은 "내일 밤에 다시 오겠습니다."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아침 안개처럼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렸다.
아침 햇살에 눈을 뜬 박 선비는, 지난밤의 일이 마치 한바탕의 야하고 긴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의 몸에 넘쳐흐르는 생기와, 어젯밤의 일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나는 머릿속은, 그것이 결코 꿈이 아니었음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낡은 목판 책상 위에는, 그가 그토록 읽고 싶어 했으나,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도 살 수 없었던 귀하디귀한 고서 한 권이 놓여 있었다. 그는 허겁지겁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평소라면 며칠 밤낮을 끙끙대며 읽어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을 난해하고 심오한 구절들이, 마치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지식처럼 머리에 쏙쏙 들어오며 완벽하게 이해되었다. 지난밤, 여인과 몸을 섞으며 나누었던 뜨거운 대화들이 책의 내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학문의 가장 깊은 이치를 깨닫게 해준 것이다.
그날 밤, 여인은 약속대로 다시 찾아왔다. 두려움과 설렘, 그리고 참을 수 없는 기대감 속에서 그녀를 맞이한 박 선비는, 이제 더 이상 어젯밤처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어제보다 더 적극적이고, 더 강렬하게 그녀를 원했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마치 오랜 가뭄 끝에 비를 만난 땅처럼, 서로의 몸을 뜨겁게 탐했다. 그녀의 몸은 그에게 최고의 쾌락을 선사하는 지상낙원인 동시에, 가장 위대하고 심오한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 되어주었다. 그녀는 그의 단단한 몸 위에 올라탄 채, 그의 귓가에 경전의 가장 어려운 구절을 요염하게 속삭여주었고, 그는 그녀의 뜨거운 숨결과 비단결 같은 살결의 감촉 속에서, 그 심오한 의미를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깨우쳤다. "학문이란, 그저 눈으로 읽고 머리로만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온몸으로 부딪히고, 느끼고, 마침내 그 이치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죽은 지식이 아닌 살아있는 진정한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지요." 그녀의 가르침은 유학의 도리에는 어긋나는 파격적인 것이었지만, 그 효과는 실로 놀라웠다.
그렇게 매일 밤, 기이하고도 은밀한 둘만의 수업은 계속되었다. 낮에는 여인이 주고 간 귀한 책들을 읽으며 방대한 지식을 쌓고, 밤에는 그녀와의 깊고도 관능적인 육체적 교감을 통해 그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완벽하게 소화했다. 박 선비의 몸과 정신은 하루가 다르게 놀랍도록 변화했다. 앙상했던 몸에는 보기 좋게 살이 오르고, 구부정했던 어깨는 넓고 단단해졌으며, 자신감 넘치는 기백이 온몸에 서리기 시작했다. 그의 학문적 깊이는 일취월장하여, 읍내의 다른 선비들과 학문을 논할 때면 모두가 그의 막힘없는 논리와 해박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는 더 이상 남의 밭을 갈지 않아도 되었다. 그의 명성을 들은 인근의 부자들이, 자신의 어리석은 자식들의 교육을 맡아달라며 앞다투어 그에게 귀한 재물과 음식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선비의 마음속에는, 그녀를 향한 감정이 단순한 계약 관계나 학문적 동경을 넘어, 걷잡을 수 없는 연모의 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정체가 무엇이든, 설령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요물이라 할지라도 상관없었다. 그저 평생을 그녀와 함께, 이 기묘하고도 황홀한 밤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 샘솟는 기운, 피어나는 의심
박 선비의 변화는 실로 기적과도 같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병색 완연한 모습으로 동냥하듯 책을 빌리러 오던 그가, 이제는 웬만한 명문가의 자제보다도 더 훤칠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학문적 성취에서 비롯된 깊은 자신감이 넘쳤고, 그의 눈빛은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듯한 예리한 통찰력으로 빛났다. 그의 명성은 이제 좁은 산골 마을을 넘어,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한양의 선비들 사이에서도 ‘초야에 묻힌 대학자’라 불리며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갑작스럽고 드라마틱한 변화는, 주변 사람들에게 경외감과 동시에 짙은 시기와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대대로 이 지역의 가장 큰 부자로 군림해 온 양반가의 김 진사 댁 아들은, 박 선비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미워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박 선비의 타고난 총명함을 못마땅하게 질투해왔는데, 가난하고 미천한 그가 자신보다 더한 명성을 얻게 되자, 참을 수 없는 모멸감과 분노를 느꼈다. 그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박 선비를 깎아내리기 위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필시 요사스러운 술법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는 것일 게야. 제아무리 똑똑한들, 몇 달 만에 저리 사람이 바뀔 수는 없는 노릇이지. 저놈의 집에 밤마다 여우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소문도 있더군." "맞아. 듣자 하니, 밤마다 찾아오는 젊은 과부 귀신에게 자신의 정기를 팔아넘기고, 그 대가로 재주를 얻었다는 말도 있어." 근거 없는 악소문은 사람들의 시기심을 자양분 삼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독버섯처럼 퍼져나갔다.
이런 흉흉한 소문들은 당연히 박 선비의 귀에도 들어왔다. 그는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불안감과 의심의 싹이 자라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사실, 그 자신도 월영의 정체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언제나 달이 뜨면 홀연히 나타났다가, 동이 트기 직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자신의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았고, 그저 '월영(月影)', 달의 그림자라 불러달라고만 했다. 만약, 사람들의 말처럼 그녀가 정말 자신의 정기를 파먹는 요물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지금이야 몸에 기운이 넘치는 것 같지만, 그것이 모두 소진되고 나면, 언젠가 자신은 말라비틀어진 껍데기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의심은 한번 싹트자, 걷잡을 수 없이 그의 마음속에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날 밤, 월영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하지만 박 선비는 예전처럼 그녀를 뜨겁게 맞이하지 못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수심과 경계심이 가득했다. 그의 미묘한 변화를 즉시 알아챈 월영이 조용히 물었다. "나리, 무슨 근심이라도 있으십니까? 나리의 눈빛이, 처음 저를 만났던 그날 밤처럼 저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박 선비는 망설이다가, 결국 사람들에게서 들은 흉흉한 소문과 자신의 마음속에 피어난 불안감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부인의 정체가 무엇이오? 정말… 나를 해칠 생각은 없는 것이오? 부인과 함께하는 밤이 깊어질수록, 나는 환희와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오." 그의 말에, 월영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모든 표정이 사라졌다. 그녀의 눈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과 차가운 실망감이 서려 있었다.
"나리의 총명함을 믿었습니다. 나리의 지혜라면, 저를 그저 홀리는 요사스러운 존재가 아닌, 나리의 위대한 꿈을 향한 간절한 염원이 불러낸 존재로 알아봐 주실 줄 알았습니다. 저를 믿지 못하신다면, 우리의 계약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녀는 냉정하게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지려 했다. 그 순간, 박 선비는 자신의 어리석음과 편협함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녀가 요물이든, 귀신이든, 대체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녀는 자신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주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준 은인이었다. 그는 황급히 달려가 그녀의 앞을 막아서고, 그녀의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 "내가… 내가 어리석었소. 부디 용서하시오. 나는 당신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소. 당신의 정체가 무엇이든, 나는 당신을 믿고, 진심으로 연모하오!" 그의 진심 어린 고백과 뜨거운 눈물에, 월영의 얼음장 같던 눈빛이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날 밤, 두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서로를 격렬하게 갈망하고 탐했다. 그것은 단순한 육체의 결합이 아니었다. 모든 의심과 불안을 걷어내고,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믿음과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두 영혼의 완전한 맹세와도 같은 밤이었다.
※ 마지막 가르침, 모든 것을 건 시험
마침내 길고 길었던 과거 시험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박 선비는 지난 몇 달간 월영과의 기묘하고도 은밀한 동거를 통해, 학문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감히 따라올 자가 없을 최고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수만 권의 책들이 질서정연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그의 몸에는 사흘 밤낮을 잠들지 않고 글을 써도 지치지 않을 강력한 기운이 넘쳐흘렀다. 이 모든 것은 오롯이 월영 덕분이었다. 그녀는 이제 단순한 계약의 대상을 넘어, 그의 앞길을 열어준 위대한 스승이자, 그의 고독을 위로해 준 연인이자, 그의 삶의 모든 것이 되어 있었다.
시험을 하루 앞둔 마지막 밤. 월영은 평소보다 더욱 신경 써서 단장한,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를 찾아왔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기쁨의 미소와 함께, 어딘지 모를 깊은 슬픔이 함께 어려 있었다. "나리, 제가 나리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오늘 밤이 마지막입니다." "마지막이라니… 그것이 대체 무슨 말이오?" 박 선비는 불길한 예감에, 그녀의 차가운 손을 꽉 잡았다. 월영은 그의 손을 마주 잡으며,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와의 계약은, 나리께서 내일 아침 과거 시험장에 들어서는 그 순간 끝이 납니다. 그 이후의 길고 험난한 길은, 온전히 나리 자신의 힘과 지혜로 나아가셔야 합니다." 그녀의 말은 명백한 이별의 선고였다. 박 선비는 그녀를 영원히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멎는 듯한 고통과 함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가지 마시오… 제발… 과거 급제 따위는 이제 필요 없소. 나는 당신만 있으면 되오! 평생 이 산골에서 당신과 함께 살게 해 주시오!" 그의 절박한 외침에, 월영은 슬픈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저으며, 그의 뜨거운 입술에 자신의 부드러운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나리, 이것이 나리와 저의 운명입니다. 부디, 저와의 약속을, 그리고 나리 자신의 꿈을 저버리지 마십시오. 나리의 꿈을 이루는 것이, 곧 저의 존재 이유이자 저의 꿈을 이루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눈에는 거부할 수 없는 단호함과 함께, 그를 향한 깊은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밤을, 그 어떤 밤보다도 뜨겁고 애절하게 보냈다. 그것은 단순한 정사가 아니었다. 월영이 가진 모든 지혜와 신비로운 기운, 그리고 박 선비를 향한 모든 사랑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그에게 불어넣어 주는, 신성하고도 장엄한 의식과도 같았다. 그의 몸을 격렬하게 탐하는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에는, 그의 장원급제를 염원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박 선비 또한, 그녀를 잃지 않겠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그녀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였다. 칠흑 같은 밤이 새하얗게 타들어가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통해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여인은 약속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녀가 머물던 자리에는 싸늘한 냉기와 함께, 그녀의 체향만이 희미하게 남아 그의 심장을 아프게 할 뿐이었다. 박 선비는 텅 빈 방 안에서 한참을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다가, 이내 허탈한 마음을 다잡고, 그녀의 마지막 염원을 가슴에 품은 채 과거 시험장으로 향했다. 시험장에 앉아 시제를 받아 든 순간, 그는 잠시 아찔함을 느꼈다. 평소라면 막힘없이 써 내려갔을 텐데, 그녀가 이제 곁에 없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듯했다. 그때, 그의 귓가에 그녀의 다정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뚜렷하게 들려왔다. '나리, 정신을 차리십시오. 나리의 힘을 믿으십시오. 저는 언제나 나리의 마음속에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지난밤, 그녀와 나누었던 뜨거운 교감과, 그녀가 자신의 몸속에 불어넣어 준 모든 지혜와 기운이 온몸의 혈관을 타고 뇌리로 용솟음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다시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총명하고 단단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붓을 들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안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붓끝에서는, 막힘없는 논리와 현란한 문장이 마치 신들린 듯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 꿈은 이루어지다
며칠 후, 합격자를 알리는 방이 나붙는 날. 수많은 선비들과 그 가족들이 떨리는 마음으로 방이 붙은 게시판 앞으로 몰려들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자신의 이름을 찾고 있을 때, 가장 높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장원, 경기도 박 아무개’라는 여섯 글자가 금빛처럼 선명하게 나붙었다. 박 선비가 마침내, 그 험난하고 길었던 과거 시험에서 수천 명의 경쟁자를 모두 물리치고, 꿈에 그리던 장원급제를 한 것이다. 그의 이름이 낭독되는 순간, 주변의 모든 선비들이 경탄과 부러움, 그리고 시기가 뒤섞인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성공을 그토록 폄훼하고 시기하던 김 진사의 아들마저, 그의 압도적인 실력과 영광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임금은 그의 답안지를 보고, ‘나라의 앞날을 백 년은 내다보는 경이로운 통찰력’이라며 크게 칭찬하고, 그에게 파격적으로 높은 벼슬을 내렸다. 가난한 산골 선비가, 하루아침에 나라의 동량이 되는, 실로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금의환향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그러나 가장 먼저 자신의 허름한 초가집으로 달려갔다. 이 모든 영광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은 단 한 사람, 월영이 혹시라도 돌아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굳게 닫힌 낡은 초가집은 예전처럼 텅 빈 채, 적막감 속에서 그를 맞이할 뿐이었다. 그녀는 정말 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침의 신기루처럼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는 장원급제의 기쁨도 잊은 채, 집안에 주저앉아 깊은 허탈감과 슬픔에 잠겼다. 그녀가 없는 성공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속이 텅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
바로 그때, 집 밖에서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의아해하며 밖으로 나가보니, 그의 허름한 초가집 앞에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가마와 함께, 수십 명의 하인들이 예를 갖추어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그 가마 앞에서, 학처럼 고고한 풍채의 한 점잖은 노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얼마 전 관직에서 물러난 이 판서 대감이라 소개하며, 자신의 귀한 외동딸이 박 선비를 오랫동안 깊이 흠모해왔으니, 부디 한 번만 만나달라고 간곡하게 청했다. 박 선비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나라의 큰 어른인 노인의 청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 가마에 올랐다. 가마가 도착한 곳은, 그가 평생 구경도 못 해본, 궁궐처럼 거대하고 아름다운 저택이었다.
저택의 가장 아름다운 정원, 활짝 핀 작약꽃이 가득한 곳에서, 그는 마침내 운명의 여인을 다시 만났다. 달빛 아래 신비롭고 서늘했던 소복 차림이 아닌, 눈부신 햇살 아래 화려한 비단 옷을 곱게 차려입은, 완벽한 현실 속의 여인이었다. 바로 월영이었다. 박 선비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꿈을 꾸듯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월영… 낭자?" 그녀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와, 양반가의 규수처럼 고아하게 절을 올렸다. 그녀는 요물도, 귀신도 아니었다. 바로 이 판서 대감의 외동딸로, 어릴 적부터 병약하여 집안의 서고에서만 지내며 책읽기를 유일한 낙으로 삼던 지혜로운 규수였다. 그녀는 우연히 아버지가 구해온, 박 선비가 쓴 한 편의 글을 보고 그의 비범한 재능과 꺾이지 않는 인품에 깊이 감명받았다. 그리고 그가 지독한 가난 때문에 꿈을 펼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남몰래 그를 돕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녀는 밤마다 충직한 하인을 시켜 자신의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귀한 책을 몰래 넣어주었고, 자신은 마치 꿈속의 여인처럼 변장하여, 그와 깊은 학문을 논하며 그의 자신감과 의지를 북돋아 주었던 것이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박 선비는, 감격과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낭자의 은혜와 그 깊은 마음에, 평생을 바쳐 보답하겠소." 이 대감 또한 두 사람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자신의 딸의 지혜와 아들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흔쾌히 혼인을 허락했다. 그렇게, 박 선비는 꿈에 그리던 장원급제의 영광과 함께, 자신의 인생을 구원하고 새로운 삶을 열어준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인까지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꿈과도 같았던 기묘하고 은밀했던 만남은, 마침내 완벽한 현실의 행복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유튜브 엔딩멘트
간절히 바라는 꿈과, 그 꿈을 향한 꺾이지 않는 노력이 만났을 때, 때로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기적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야담집 『계서야담』에 실린 박 선비의 이야기는, 어쩌면 그를 도운 신비한 여인 월영이, 정말 선녀나 요물이 아니라, 그의 간절함이 만들어낸 또 다른 형태의 '노력'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여러분의 간절한 꿈은, 지금 어떤 기적을 기다리고 있나요?
오늘 이야기가 간절한 꿈이 현실이 되는 기적이었다면, 다음 이야기는 평화로운 일상에 균열을 내는 미스터리한 공포입니다. 매일 밤, 잠든 아내의 곁에 홀연히 나타나 남편을 유혹하는 낯선 여인. 과연 그녀의 정체는 무엇이며, 이 기묘하고도 아찔한 동침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조선 최고의 야담집 『어우야담』에 기록된, 소름 돋고도 기이한 이야기, '밤마다 나타나는 낯선 여인?'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다음 미스터리를 푸는 데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