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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 밖 주막, 떠도는 영혼의 한

황금 인생 21 2025. 9. 14.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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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 밖 주막, 떠도는 영혼의 한 (동야휘집)

※ 태그 (2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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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킹멘트 (250자 내외)

하룻밤 묵어갈 곳을 찾던 선비, 왠지 모를 스산함이 감도는 주막에서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여인을 만납니다. 술기운 때문일까, 달빛 때문일까. 하얀 소복 아래 드러난 매혹적인 자태에 홀린 듯 다가간 순간, 그의 운명은 송두리째 뒤바뀝니다. 과연 이 만남은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넘나드는 가장 애틋하고도 관능적인 하룻밤의 기록!

※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도성을 떠나 과거길에 오른 선비 이생. 궂은 비를 피해 들어간 낡은 주막에서 꿈결처럼 아름다운 여인, 소화를 만납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밤마다 같은 자리를 맴돌아야만 하는 깊은 한이 서려 있었으니... 동야휘집에 실린 이 기묘한 이야기는 단순한 귀신 이야기가 아닙니다.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과 운명을 그린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 비 내리는 밤, 기묘한 주막에서의 첫 만남

장맛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여름밤이었다. 젊은 선비 이생은 한양으로 향하던 걸음을 재촉했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빗줄기는 그의 삿갓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온몸을 사정없이 적셨다. 길은 이미 진창으로 변해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든 지경이었다. 이러다 길 위에서 객사라도 하는 것은 아닐까, 불안감이 엄습할 무렵 저 멀리서 희미한 등불 하나가 깜빡이는 것이 보였다. 구세주라도 만난 듯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보니, 낡고 허름한 주막이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기울어진 기둥과 삭아 내린 지붕이 을씨년스러웠지만, 차가운 빗줄기를 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퀴퀴한 곰팡내와 눅눅한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모는 보이지 않고, 텅 빈 주막 안에는 등잔불만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빗물에 젖은 옷에서 찬 기운이 스며들어 몸을 부르르 떠는 순간, 그의 시선이 창가 구석 자리에 멈췄다. 그곳에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차단된 듯, 여인은 오직 자신만의 시간에 잠겨 있는 듯했다. 비에 젖어 으스스한 주막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고고한 자태. 기름을 바른 듯 윤기가 흐르는 검은 머리는 단정하게 쪽을 쥐었고, 달빛을 그대로 빚어 만든 듯 창백하리만치 하얀 얼굴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입술은 붉은 주를 찍어 바른 듯 선명했고, 긴 속눈썹 아래 그늘진 눈매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을 머금고 있었다. 그녀는 하얀 소복 차림이었다. 상중(喪中)임을 알리는 복장이었으나, 오히려 그 순백의 옷은 그녀의 연약하면서도 매혹적인 분위기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여인은 작은 술잔을 앞에 두고, 마시는 둥 마는 둥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드득,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렸다. 이생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낯선 주막, 비 내리는 밤, 그리고 홀로 술을 마시는 소복의 여인. 모든 것이 기묘하고 비현실적이었다. 어쩌면 길을 헤매다 이승이 아닌 곳으로 잘못 들어선 것은 아닐까 하는 섬뜩한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압도하는 것은 여인을 향한 강렬한 호기심과 끌림이었다. 마치 자석에 이끌린 쇳가루처럼, 그의 발걸음은 저도 모르게 여인이 앉은 자리로 향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은은한 난향(蘭香)이 코끝을 스쳤다. 이생은 헛기침을 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잠시 합석을 청해도 되겠소이까." 여인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이생은 숨을 멈췄다. 슬픔에 잠겨 있으리라 생각했던 그녀의 눈동자는 의외로 맑고 깊었다. 마치 맑은 밤하늘의 별을 담은 듯, 차갑지만 투명한 빛을 내고 있었다. 여인은 이생의 행색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 없는 허락이었지만, 이생에게는 세상 그 어떤 달콤한 말보다 더 황홀하게 느껴졌다. 그는 여인의 맞은편에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정적 속에서 그의 심장 소리만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때, 여인이 자신의 술잔을 채우고는 이생에게도 잔을 내밀었다. "길손께선 어디로 향하시는 길이신지요." 그 목소리는 마치 이슬이 굴러가는 듯 맑고 청아했다.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는 길이오. 나는 이몽현이라 하오." "저는… 소화라 합니다." 소화. 짧은 소개였지만, 그 이름은 이생의 마음에 깊은 파문을 남겼다. 두 사람은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주막 안의 시간은 바깥세상과는 다른 속도로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이생은 취기가 오르는 것을 느꼈다. 술 때문인지, 아니면 눈앞의 신비로운 여인 때문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는 다만 이 기묘하고도 매혹적인 밤이 끝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술잔에 담긴 슬픈 사연과 깊어지는 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어색했던 공기는 조금씩 누그러졌다. 이생은 용기를 내어 소화에게 물었다. "이런 궂은 날, 어찌하여 홀로 이 외딴 주막에 계시는 것이오? 혹, 무슨 근심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그의 물음에 소화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아득한 허공을 향했다. 마치 아주 먼 과거를 되짚어보는 듯했다. "저는… 이 주막을 떠날 수 없는 몸이랍니다." "떠날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소화는 잠시 망설이다가, 체념한 듯 나직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본래 이 주막이 있던 마을의 양반가 여식이었다고 했다. 정혼한 낭군이 있었고, 혼례 날짜까지 받아둔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러나 새로 부임한 고을 사또가 그녀의 미색을 탐하여 억지로 첩으로 삼으려 했다. 그녀가 완강히 거부하자, 앙심을 품은 사또는 그녀의 아버지가 역모를 꾀했다는 거짓 누명을 씌워 옥에 가두고 집안을 풍비박산 냈다. 아버지는 옥에서 억울하게 돌아가셨고, 정혼자는 변방으로 쫓겨났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그녀는 결국 사또의 겁탈을 피하려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한 맺힌 영혼은 차마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매일 밤 이 주막에 나타나 누군가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생의 얼굴은 충격과 분노로 굳어졌다. 눈앞의 어여쁜 여인이 사람이 아닌, 원혼(冤魂)이라는 사실보다 그녀가 겪어야 했던 억울한 사연에 대한 연민이 더욱 크게 밀려왔다. 만약 그녀가 귀신이라면, 자신은 지금 귀신과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셈이었다. 등골이 서늘해졌지만, 이상하게도 두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가녀린 여인을 지켜주고 싶다는, 그녀의 깊은 한을 풀어주고 싶다는 강렬한 마음이 솟구쳤다. "믿기 힘든 이야기겠지만… 이것이 저의 운명이랍니다. 이제 제 정체를 아셨으니, 무서우시겠지요.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소화는 고개를 떨군 채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짙은 체념이 배어 있었다. 이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떨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차갑고 서늘한 기운이 그의 손바닥을 통해 전해져 왔다. 그녀가 사람이 아님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무섭지 않소. 오히려… 당신이 가여워 마음이 아플 뿐이오. 어찌 곱디고운 당신에게 그런 끔찍한 일이…." 그의 진심 어린 위로에 소화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가에 투명한 이슬이 맺혔다. 그것이 눈물인지, 아니면 그저 영혼의 서글픔이 맺힌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수많은 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주막을 거쳐 갔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두려워하거나 미친 사람 취급하지 않고 이토록 따뜻하게 안아준 사람은 이생이 처음이었다. 그녀의 얼어붙었던 마음 한구석이 아주 조금씩 녹아내리는 듯했다. "어찌하여… 저를 믿으시는 겁니까." "믿음이란 본디 마음에 달린 것이 아니겠소. 내 마음이 당신을 믿으라 하니, 나는 그저 따를 뿐이오." 이생은 소화의 젖은 눈가를 손으로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그의 손길이 닿은 곳마다, 소화는 마치 온기가 전해지는 듯한 기묘한 감각에 휩싸였다. 죽은 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따스함이었다. 밤은 더욱 깊어졌고, 빗소리는 자장가처럼 나직해졌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그 어떤 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연민은 어느새 연정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위로는 애틋한 감정으로 깊어지고 있었다. 산 자와 죽은 자. 결코 이어질 수 없는 두 존재는, 비 내리는 외딴 주막에서 운명처럼 서로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그들의 만남이 앞으로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그 순간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 산 자와 죽은 자, 경계를 허무는 하룻밤

등잔불이 파르르 떨리다 스러지자, 주막 안에는 창문으로 스며드는 희미한 달빛만이 남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숨소리는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생은 여전히 소화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있었고, 소화는 그의 품에 조용히 기대어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냉기는 이질적이었지만, 이생은 오히려 그 냉기를 자신의 온기로 덥혀주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그는 소화의 턱을 부드럽게 들어 올려 자신을 보게 했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살아있는 사람보다 더 생생하고 아름다웠다. 붉은 입술은 잘 익은 앵두처럼 도톰했고, 깊은 눈동자는 그를 온전히 담아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이생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차가운 입술에 자신의 뜨거운 입술을 포개었다. 입술이 닿는 순간, 소화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놀란 듯, 그러나 거부하지 않는 그녀의 반응에 이생은 더욱 대담해졌다. 그는 그녀의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머금고, 혀를 움직여 조심스럽게 그녀의 입안을 탐했다. 처음에는 닫혀 있던 그녀의 입술이 이내 조심스럽게 열리고, 두 사람의 혀가 수줍게 얽혔다.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과의 입맞춤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서늘하면서도 달콤하고, 애틋하면서도 관능적인, 기묘한 황홀경이었다. 한참 동안의 입맞춤이 끝나고, 두 사람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소화의 창백했던 뺨이 희미하게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선비님…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저는… 산 사람이 아닙니다." "상관없소. 내 눈에는 그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만 보일 뿐이오. 내 심장이… 오직 당신만을 원하고 있소." 이생은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소화의 몸은 놀랄 만큼 가벼웠다. 그는 그녀를 안고 주막 안쪽에 딸린 작은 방으로 향했다. 낡은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두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방 안은 주막보다 더 어둡고 눅눅했다. 이생은 소화를 조심스럽게 자리에 눕혔다. 그리고는 그녀의 하얀 소복 고름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의 손길은 떨리고 있었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소화는 눈을 감은 채 그의 손길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옷고름이 풀리고, 얇은 저고리 사이로 그녀의 하얀 속살이 달빛에 드러났다. 이생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녀의 몸은 마치 정교하게 깎아 만든 백옥 조각상처럼 완벽하고 아름다웠다. 그는 정신없이 그녀의 몸을 애무했다. 차가운 살결 위로 그의 뜨거운 입술이 지나갈 때마다, 소화는 여린 신음을 흘렸다. 그것은 고통의 소리가 아닌, 난생 처음 느껴보는 쾌감에 대한 순수한 반응이었다. 그녀의 몸은 죽어 있었지만, 그녀의 영혼은 이생의 손길에 의해 다시 깨어나고 있었다. 마침내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고 두 사람의 몸은 하나가 되었다. 이생은 그녀의 차가운 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질적이고도 강렬한 쾌감이었다. 그는 맹렬하게 움직였다. 그녀의 한을, 그녀의 슬픔을, 자신의 뜨거운 정기로 모두 씻어내 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소화 역시 그의 움직임에 온전히 몸을 맡겼다. 그녀는 두 팔로 그의 등을 단단히 끌어안았다. 살아생전 정혼자와 손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했던 그녀였다. 죽어서야 비로소, 낯선 사내의 품에서 여인으로서의 기쁨을 알아가고 있었다. 밤은 깊었고, 두 사람의 격정적인 사랑은 멈출 줄 몰랐다. 그것은 단순한 육체의 결합이 아니었다. 산 자의 온기가 죽은 자의 한을 위로하고, 죽은 자의 애틋함이 산 자의 영혼을 흔드는, 성스러운 의식과도 같았다. 몇 번의 절정이 지나간 후, 이생은 지친 몸을 소화의 곁에 뉘었다. 땀으로 젖은 그의 몸과 그녀의 서늘한 몸이 맞닿았다.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소화가 나직이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이생은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아니. 이제부터 시작이오. 내가 반드시 당신의 한을 풀어주겠소. 그리고… 당신을 내 사람으로 만들 것이오." 그의 단호한 약속에 소화는 아무 말 없이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창밖에서 닭 우는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길고도 기묘했던 밤이 끝나가고 있었다.

※ 사라진 여인과 남겨진 단서

밤새 내리던 비가 그치고, 낡은 주막의 창문 틈으로 아침 햇살이 스며들었다. 이생은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온몸이 나른하고, 지난밤의 격정적인 기억이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는 옆자리를 더듬었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차가운 공기와 텅 빈 자리뿐이었다. "소화 낭자!"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킨 그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방 안에는 자신 외에 아무도 없었다. 주막 전체를 다 뒤져보아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 그녀와 술을 마셨던 자리에는 먼지만 쌓여 있었고, 그가 누웠던 자리 외에는 사람이 머문 흔적조차 없었다. 모든 것이 한바탕의 봄꿈이었던가. 혹여 길 위에서의 노곤함과 술기운에 헛것이라도 본 것은 아닐까. 이생은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몸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그녀와의 뜨거웠던 흔적과 코끝에 여전히 맴도는 은은한 난향은 지난밤의 일이 결코 꿈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는 망연자실한 채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가 한 맺힌 영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룻밤 사이에 이토록 깊이 정을 주게 될 줄은 몰랐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 슬픔을 머금은 눈동자, 그리고 그의 품에서 수줍게 피어나던 모습 하나하나가 심장에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이대로 그녀를 잃고 싶지 않았다. 반드시 그녀의 한을 풀어주고, 그녀의 영혼을 구원해주고 싶었다. 이대로 한양으로 떠날 수는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그녀가 남긴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찾아야만 했다. 그때, 그의 눈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들어왔다. 그가 누웠던 자리 머리맡에 작은 비녀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소박하지만 단아한 모양의 은비녀였다. 비녀 끝에는 작은 옥 나비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어젯밤, 그녀의 머리에서 보았던 바로 그 비녀였다. 이생은 떨리는 손으로 비녀를 집어 들었다. 비녀에서는 그녀의 몸처럼 차가운 냉기가 느껴졌다. 이것은 꿈이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히 존재했고, 이 비녀는 그녀가 자신에게 남기고 간 유일한 단서이자 약속의 징표였다. 그는 비녀를 소중하게 품에 안았다. 그리고 굳은 결심을 했다. 과거 시험, 입신양명. 그가 지금까지 좇아왔던 모든 것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소화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그는 주막을 나섰다. 어젯밤과는 달리 햇살은 맑고 하늘은 푸르렀다. 그는 인근 마을로 향했다. 그리고 탐문을 시작했다. 소화라는 이름을 가진, 억울하게 죽은 양반가 여식에 대해 묻고 다녔다. 처음에는 모두들 쉬쉬하며 입을 다물었다. 새로 부임한 사또의 위세가 그만큼 대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 선비의 집요한 질문에, 몇몇 노인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들의 증언은 소화가 들려주었던 이야기와 정확히 일치했다. 김 진사 댁의 외동딸이었던 소화 낭자의 고운 자태, 새로 부임한 변 사또의 탐욕과 악행, 그리고 하루아침에 멸문당한 김 진사 댁의 비극까지.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 심지어 변 사또가 소화 낭자의 시신마저 제대로 거두지 못하게 하여, 원한 맺힌 그녀의 혼이 밤마다 주막 근처를 떠돈다는 소문까지 흉흉하게 돌고 있었다. 모든 사실을 확인한 이생의 눈에 분노의 불꽃이 타올랐다.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품속의 비녀를 굳게 움켜쥔 그는, 소화의 원수가 있는 관아를 향해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손에는 붓과 벼루 대신, 한 맺힌 여인의 슬픔과 한 사내의 굳은 의지가 들려 있었다.

※ 그녀의 한을 풀기 위한 여정

관아의 문은 높고 위압적이었다. 이생은 잠시 심호흡을 가다듬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변 사또에게 면회를 신청했다. 일개 선비가 사또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는 끈질기게 버텼다. 그의 기세에 눌린 아전이 마지못해 사또에게 고했고, 마침 무료하던 차에 유생의 글재주나 시험해볼 요량이었던 변 사또는 그를 안으로 들였다. "네가 바로 김 진사 댁의 잔당과 내통한다는 그 놈이렷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게로구나." 변 사또는 오만하게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배는 기름져 남산만 했고, 얼굴은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이생은 그 자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에서 역겨움이 치밀어 올랐지만, 애써 평정심을 유지했다. "사또께서는 어찌하여 무고한 사람을 역모로 몰아 죽이고, 그 여식까지 욕보이려 하셨습니까. 하늘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이생의 당돌한 말에 변 사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네 이놈! 저 미친놈의 주리를 당장 틀어라!" 사또의 불호령에 포졸들이 달려들어 이생을 포박하려 했다. 하지만 이생은 물러서지 않고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김소화 낭자의 억울한 죽음을 모르는 이가 없거늘, 이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십니까! 그녀의 한 맺힌 영혼이 매일 밤 사또의 악행을 지켜보고 있음을 정녕 모르신단 말입니까!" '김소화'라는 이름과 '영혼'이라는 말에 변 사또의 얼굴이 순간 하얗게 질렸다. 사실 그 역시 소화가 죽은 이후,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불안에 떨고 있었던 것이다. 이생은 그 찰나의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품속에서 은비녀를 꺼내 보였다. "이것이 바로 소화 낭자의 것입니다. 그녀가 제게 직접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 청하며 남긴 징표입니다. 만약 사또께서 지금이라도 죄를 뉘우치고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저는 이 비녀를 가지고 한양으로 가 암행어사에게 고발할 것입니다!" 변 사또는 비녀를 보고 경악했다. 그것은 분명 자신이 소화에게 주려다 거절당했던 비녀였기 때문이다. 어째서 저 선비 놈이 저것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정말로 소화의 원혼이 저자를 찾아갔단 말인가. 극심한 공포에 휩싸인 변 사또는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저놈은 요물이다! 저놈이 소화 그 계집의 원혼과 내통하여 나를 저주하려 한다! 당장 저놈을 하옥하고, 저 비녀를 빼앗아라!" 이생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수적으로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는 포졸들에게 제압당해 차가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비녀마저 빼앗긴 채 꼼짝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된 것이다. 캄캄한 감옥 안에서 이생은 절망했다. 소화와의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제 목숨 하나 부지하지 못하게 된 자신의 무력함에 치를 떨었다.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순간,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며 은은한 난향이 풍겨왔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소화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들려왔다. '선비님… 저 때문에 위험에 빠지셨군요. 부디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제가 선비님을 도울 것입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생의 마음에 다시 불씨가 피어올랐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그녀가 자신의 곁에서 함께 싸워주고 있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감옥 안을 살폈다. 그리고 우연히 벽 구석에 쥐구멍이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적은 짧은 서신을 쓰고, 그것을 옷고름에 매달아 쥐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쥐가 그것을 물고 밖으로 나가 주기를 바라는,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그리고 기적처럼, 그 서신은 감옥 밖을 순찰하던 마음씨 착한 아전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 한이 풀린 영혼, 그리고 새로운 인연의 약속

이생의 서신을 발견한 아전은 그의 의로운 기개와 억울한 사연에 감복했다. 그는 목숨을 걸고 이 사실을 인근을 순행하던 암행어사에게 알렸다. 보고를 받은 암행어사는 즉시 군사를 이끌고 들이닥쳐 변 사또의 비리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변 사또가 그동안 백성들에게서 수탈한 재물과 부정하게 축재한 장부들이 속속들이 발견되었고, 김 진사를 역모로 몰았던 증거들이 모두 조작되었다는 사실 또한 명백히 밝혀졌다. 궁지에 몰린 변 사또는 결국 자신의 모든 죄를 자백했고, 법에 따라 참수형에 처해졌다. 마침내 김 진사 부녀의 억울한 누명이 벗겨지고, 그들의 신원이 복권되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이생은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소화와 그녀의 아버지의 묘를 양지바른 곳에 정성껏 만들어주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이생이 소화의 무덤 앞에 마지막 술잔을 올리던 그날 밤이었다. 그의 꿈에 소화가 나타났다. 하얀 소복이 아닌, 곱디고운 색동옷을 입은 그녀는 예전처럼 창백하고 슬픈 모습이 아니었다. 환한 달덩이처럼 밝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선비님, 덕분에 저의 모든 한이 풀렸습니다. 이제 저는 아버지 곁으로 편안히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맑고 경쾌했다. 이생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려왔다. 이제 정말 그녀를 보내주어야 할 시간이었다. "낭자,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오.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한 많은 삶이 아닌, 행복한 삶을 사시오." '선비님도 부디 행복하셔야 합니다. 저를 잊고, 과거에 급제하시어 훌륭한 관리가 되십시오. 그리고…' 소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수줍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다음 생에서는… 우리가 반드시 인연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그때는 제가 선비님의 지어미가 되어 평생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이생에게 다가와 그의 입술에 가벼운 입맞춤을 남겼다. 그것은 차갑지 않았다.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입맞춤이 끝나자, 그녀의 몸이 점점 투명해지며 밝은 빛으로 변해갔다. "기다리겠소! 다음 생에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난다 해도 나는 낭자를 기다리겠소!" 이생의 외침을 뒤로한 채, 그녀는 환한 빛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꿈에서 깨어난 이생의 뺨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슬픔의 눈물이 아닌, 기쁨과 약속의 눈물이었다. 이후 이생은 다시 한양으로 향했고, 그 해 과거에 장원 급제했다. 그는 훌륭한 관리가 되어 백성들을 위해 선정을 베풀었고,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세월이 흘러 그가 혼기가 찼을 무렵, 왕은 그의 인품을 높이 사 이조판서의 여식과의 혼사를 주선했다. 그리고 마침내 성사된 혼례식 날, 붉은 연지곤지를 찍고 수줍게 고개를 숙인 신부의 얼굴을 본 순간, 이생은 숨을 멈췄다. 신부의 모습이, 꿈속에서 보았던 소화의 환한 미소와 너무나도 똑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신부는 고개를 들어 이생을 바라보며,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는 듯이 따스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생 역시 그녀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의 첫날밤을 위해 마련된 신방에는 타오르는 촛불만이 붉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가 먼저 침묵을 깼다.
"부인." 그의 부름에 신부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촛불 아래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낮에 보았던 것보다 더욱 소화를 닮아 있었다.
"혹… 꿈을 꾸시는지요." 이생이 나직이 물었다.
신부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예? 어떤 꿈을 말씀하시는지요."
"아니오, 아무것도…." 그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녀는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 그녀에게는 더 행복한 일일 터였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약속대로 자신의 곁으로 돌아와 주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살아있는 여인의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신부는 그의 손길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이내 수줍게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 역시 이 사내에게 알 수 없는 편안함과 끌림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이생은 그녀의 옷고름을 천천히 풀었다.
그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손길을 기다렸다는 듯, 가만히 몸을 맡겼다.
얇은 속적삼이 벗겨지고, 봉긋한 젖가슴과 잘록한 허리가 촛불 아래 수줍게 드러났다.
그는 경건한 마음으로 그녀의 어깨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점차 아래로 내려가며 그녀의 온몸을 자신의 입술로 매만졌다.
"아…" 신부의 입에서 가녀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전생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몸은 이생의 손길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짜릿한 전율이 흘렀고,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이윽고 두 사람의 몸은 하나로 겹쳐졌다. 이생은 천천히, 그리고 깊숙이 그녀의 안으로 들어갔다.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마침내 하나가 된 두 영혼의 완전한 결합이었다.
신부는 그의 품에 안겨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낯선 사내와의 첫날밤이 두렵고 어색해야 마땅하건만, 이상하게도 그의 품은 너무나도 아늑하고 그리웠다.
그녀는 두 팔로 그의 등을 힘껏 끌어안았다. 마치 잃어버렸던 반쪽을 되찾은 듯한 충만함이 온몸을 감쌌다.
"소화야…" 이생은 절정의 순간, 저도 모르게 그녀의 옛 이름을 불렀다.
그 부름에 신부는 잠시 눈을 크게 떴다.
'소화'라는 이름이 마치 자신의 진짜 이름인 것처럼 가슴 깊은 곳을 울렸다.
아득한 기억의 파편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지만, 이내 남자의 뜨거운 숨결과 격렬한 움직임에 모든 상념이 흩어졌다.
붉은 촛농이 밤새도록 녹아내렸고, 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탐하며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맺어진 인연의 기쁨을 남김없이 나누었다.
죽음도 갈라놓지 못했던 그들의 기묘하고도 애틋했던 사랑은, 마침내 새로운 생에서 따스하고 행복한 첫날밤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 유튜브 엔딩멘트 (400자 내외)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하룻밤의 사랑이 억울한 영혼의 한을 풀어주고, 행복한 인연으로 다시 태어나는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동야휘집에 실린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이란 시간과 공간, 심지어 삶과 죽음마저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청구야담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고고한 남산골 샌님의 집에 밤마다 찾아오는 수상한 손님, 그 손님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더욱 기묘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돌아올 테니, 구독과 알림 설정으로 다음 야담도감을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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