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불리면 꼼짝없이 따라가야 한다는 저승사자의 부름! 『해동이적』
세 번 불리면 꼼짝없이 따라가야 한다는 저승사자의 부름! 『해동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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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세상 만사,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딨어!" 떵떵거리며 살던 천석꾼 김 대감. 환갑잔치가 무르익던 고요한 밤, 대문 밖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김... 창... 식..." 세 번 이름이 불리면 꼼짝없이 저승으로 끌려가야 하는 절대적인 운명! 과연 억만금을 쥔 김 대감은 저승사자의 서늘한 부름을 피할 수 있을까요? 돈으로 죽음마저 매수하려 했던 한 사내의 기묘하고도 오싹한 야담이 지금 시작됩니다.
※ 1: 억만금도 부럽지 않은 천석꾼의 환갑잔치
산세가 크고 넓은 병풍처럼 마을을 포근하게 둘러싸고, 그 앞으로는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맑은 강물이 비단결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참으로 풍요롭고 살기 좋은 고을이 있었습니다. 이 고을 전체 땅의 절반 이상을 제 소유로 두고 있다는 절대적인 부자,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천석꾼 김 대감이라 불렀습니다. 본명은 김창식. 그의 집은 고을 한가운데 가장 명당자리에 위치한 고래등 같은 으리으리한 기와집이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솟을대문은 웬만한 양반집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만큼 장엄했고, 담장은 어찌나 높고 긴지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평소 김 대감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만큼 깐깐하고, 남에게 쌀 한 톨 내어주는 것도 아까워하는 지독한 구두쇠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이자놀이와 땅 투기로 평생 피도 눈물도 없이 재물을 긁어모았기에, 마을 사람들은 겉으로는 그에게 굽실거리면서도 속으로는 원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 굳게 닫혀있던 김 대감네 곳간 문이 활짝 열려젖혀졌습니다. 바로 오늘은 김 대감이 예순 번째 생일, 즉 환갑(還甲)을 맞이한 참으로 경사스러운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환갑을 무사히 넘기는 것 자체가 하늘이 내린 큰 복이자 무병장수의 상징이었으니, 평생 남부러울 것 없이 재물을 산더미처럼 쌓아 올린 김 대감에게 오늘은 자기 인생의 찬란한 성공과 권력을 온 동네방네 과시하는 최고의 날이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고을의 일꾼들을 총동원하여 꾸며낸 앞마당은 그야말로 거대한 잔치판 그 자체였습니다. 마당 한가운데 수십 개를 이어 붙여 만든 널찍한 평상 위에는 평범한 백성들은 평생 구경조차 해보지 못할 산해진미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떡 벌어지게 차려져 있었습니다. 참기름을 발라 윤기가 좔좔 흐르는 큼직하고 연한 소갈비찜이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고 있었고, 깊은 산속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가 갓 캐왔다는 귀한 송이버섯과 산삼 구이, 그리고 멀고 먼 남해 바다에서 며칠 밤낮을 달려 공수해 온 전복과 문어 등 귀한 해산물들이 빈틈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마당 구석구석에 놓인 커다란 독마다 맑고 향기로운 청주와 탁주가 가득 채워져 있어, 술 냄새와 고기 굽는 냄새가 고을 전체를 진동시키며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았습니다. 마당 한쪽에서는 화려한 옷을 입은 광대들이 흥겨운 풍물놀이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선보이며 연신 구경꾼들의 환호성을 자아냈고, 기생들의 고운 노랫가락이 잔치의 흥을 한껏 돋우고 있었습니다. 고을을 다스리는 사또는 물론이고, 인근에서 내로라하는 양반들과 유지들까지 앞다투어 줄을 지어 찾아와 비단옷을 차려입은 김 대감에게 굽실거리며 아부와 덕담을 쏟아냈습니다.
"아하하! 대감마님, 환갑을 진심으로 경하, 또 경하드립니다요! 대감마님처럼 하늘의 복을 타고나신 분이 이 조선 팔도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곳간에는 사시사철 황금이 썩어 넘치도록 쌓여있고, 자식들은 모두 장성하여 한양에서 번듯하게 벼슬자리를 잡았으니, 대감마님께서는 이대로 백 살, 아니 백이십 살까지 만수무강하시며 부귀영화를 누리실 겁니다!"
"암요, 암요! 세상 천지에 우리 김 대감마님처럼 성공한 인생이 또 어딨겠습니까. 흔히들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라지만, 대감마님은 그 돈을 억만금이나 쥐고 계시니 이제 이승에서 두려울 게 단 하나도 없으실 겝니다! 참으로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요!"
사람들의 간사한 아첨과 입에 발린 칭송을 들으며, 최고급 명주 비단옷을 곱게 차려입고 상석에 거드름을 피우며 앉아 있던 김 대감은 호탕하게 껄껄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기름진 음식과 술로 붉게 달아오른 그의 얼굴에는 세상을 다 가진 자 특유의 오만함과 넘치는 여유가 뚝뚝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래, 내 평생 남들 잘 때 안 자고, 남들 먹을 때 안 먹으며 피도 눈물도 없이 독하게 재물을 모아왔지. 남들은 뒤에서 나를 구두쇠라 욕하고 손가락질할지 몰라도, 결국 세상살이 돈이 최고 아니더냐. 내게 억만금의 돈이 있으니 저 콧대 높은 사또 놈도 내 앞에서 개처럼 굽실거리고, 이리 수많은 사람이 내 떡고물이라도 주워 먹으려 벌떼처럼 몰려들지 않는가. 내 비록 오늘 환갑의 나이가 되었으나, 내 몸은 아직 삼십 대 청년처럼 펄펄 끓고 정정하다. 내 곳간에 쌓인 저 금은보화는 천 년을 펑펑 써도 마르지 않을 터. 나는 앞으로 이승에서 온갖 호의호식은 다 누리며, 그 누구보다 떵떵거리고 영원토록 살아갈 것이다! 세상에 내 돈으로 안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김 대감은 손에 든 옥빛 술잔을 단숨에 비워내며 세상을 다 가진 듯 흡족하고 탐욕스러운 미소를 지었습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서산 너머로 붉은 몸을 숨기고 짙은 노을이 기와지붕을 무겁게 덮을 무렵까지도, 잔치의 뜨거운 열기는 도무지 식을 줄을 몰랐습니다. 광대들의 묘기에 사람들은 연신 탄성을 내질렀고, 취기가 기분 좋게 오르기 시작한 김 대감은 머슴들을 불러 귀한 은덩이들을 한 움큼씩 꺼내어 마당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무심하게 툭툭 던져주기까지 했습니다. 은덩이를 차지하려 엎드려 다투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묘한 우월감을 느꼈습니다. 돈으로 사람의 환심을 단숨에 사고, 돈으로 세상의 모든 기쁨과 권력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그에게 오늘은 참으로 빈틈없이 완벽한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뼛속까지 서늘한 밤공기가 어둠과 함께 찾아들면서, 그토록 완벽했던 하루의 끝자락에 상상조차 하지 못한 서늘하고 끔찍한 그림자가 소리 없이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꿈에도 알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천석꾼의 어리석은 오만함이, 결코 인간의 얄팍한 돈으로 통제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과 마주할 시간이 시시각각 그의 턱밑까지 다가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 2: 어둠 속의 불청객, 서늘한 저승사자의 첫 번째 부름
화려하고 시끌벅적했던 잔치가 모두 끝나고, 취한 사람들이 하나둘 비틀거리며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자, 온종일 북적이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은 언제 그랬냐는 듯 무거운 적막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마당 여기저기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빈 술독과 잔치 음식의 찌꺼기들,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진 돗자리들만이 한낮의 그토록 화려했던 흔적을 쓸쓸하게 짐작하게 할 뿐이었습니다. 며칠 밤낮을 쉬지 않고 잔치 준비를 하느라 뼛골이 빠지게 고생했던 일꾼들과 하인들도 모두 밀려오는 피곤에 지쳐 행랑채에 쓰러지듯 곯아떨어졌고, 온종일 사람들의 인사를 받느라 진을 뺀 김 대감 역시 가장 크고 따뜻한 안방의 화려한 비단 이불 위에 몸을 뉘인 채 세상모르고 곤한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창호지 문틈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하고 창백한 달빛만이 어두운 방 안을 고요히 비추고 있는, 인적이 완전히 끊긴 깊은 삼경(三更), 즉 밤 12시 자정 무렵이었습니다.
갑자기, 참으로 쥐죽은듯 고요하던 마당 한구석에서 평소 낯선 사람의 그림자만 비쳐도 맹렬하게 짖어대던 덩치 큰 사냥개 세 마리가 무언가 끔찍한 것에 놀란 듯 미친 듯이 짖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컹! 컹! 컹컹! 그 소리는 평소 도둑을 쫓을 때 내던 경계의 소리가 아니라, 극도의 공포에 질려 발악하는 듯한 처절한 울부짖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납고 시끄럽던 짖음조차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하고 압도적인 공포가 개들의 목을 짓누르기라도 한 듯, 미친 듯이 짖어대던 울음소리는 이내 '깨갱, 깽... 끄으응...' 하는 참으로 구슬프고 가여운 신음으로 바뀌더니, 마침내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쥐죽은듯 조용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끔찍한 침묵과 동시에, 밤하늘을 밝게 비추던 둥근 달이 시커먼 먹구름 뒤로 서서히 모습을 감추며 온 세상이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이더니, 집안 전체에 뼈를 깎아내는 듯한 얼음장같이 차갑고 스산한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곤한 잠에 빠져있던 김 대감은 두꺼운 비단 이불을 뚫고 어디선가 스며드는 지독하고 불길한 한기에 몸을 오들오들 부르르 떨며 서서히 무거운 눈을 떴습니다.
'으음... 이 야심한 밤에 대체 어느 게으른 놈이 문단속을 이리 허술하게 한 게야. 내일 아침이 밝으면 당장 종아리를 쳐야겠다. 아무리 환갑이 지났다지만 벌써부터 뼛속까지 산바람이 스며드는구먼.'
김 대감은 속으로 하인들을 매섭게 투덜거리며 열린 문틈을 닫으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굳게 닫힌 거대한 솟을대문 밖,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짐승이 긁어대는 쇳소리 같기도 하고, 끝을 알 수 없는 깊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웅웅거리며 울려 퍼지는 끔찍한 바람 소리 같기도 한 참으로 기괴하고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김... 창... 식..."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김 대감의 심장이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듯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그것은 결코 평범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 소리는 분명 멀리 떨어진 대문 밖에서 들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김 대감의 바로 옆에 바짝 붙어 귓가에 대고 직접 얼음장처럼 차갑게 속삭이는 것처럼 안방 한가운데를 쩌렁쩌렁 울리며 그의 고막을 날카롭게 파고들었습니다. 순식간에 온몸의 솜털이 머리끝까지 쭈뼛 솟아오르고, 숨이 턱 막혀 헐떡이게 만드는 엄청나고 기괴한 위압감이었습니다.
'누, 누구냐... 감히 어느 미친놈이 이 야심한 밤에, 뉘 안전이라고 내 본명을 이리 함부로 부른단 말인가...'
김 대감은 바짝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덜덜 떨리는 손을 뻗어 창호지 문을 아주 살짝, 소리가 나지 않게 열고 밖을 조심스럽게 엿보았습니다. 옅은 구름 사이로 아주 희미하게 비치는 달빛을 받은 대문 앞에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키가 장승처럼 훌쩍 큰 시커먼 그림자가 미동조차 없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낡고 챙이 넓어 얼굴을 반쯤 가린 검은 갓을 깊게 눌러쓰고, 발끝까지 길게 질질 끌리는 칠흑같이 어두운 도포를 입은 사내. 갓 아래로 언뜻언뜻 비치는 그의 창백하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듯한 얼굴에는 살아있는 사람의 감정이나 핏기라곤 단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오직 서늘하고 날카롭게 번뜩이는 두 눈동자만이 짙은 어둠 속에서 귀기 어린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사내의 길고 창백한 한쪽 손에는 누런 종이로 엮어진 낡고 두꺼운 명부(冥府)가 들려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피처럼 붉은 먹물이 뚝뚝 떨어지는 커다란 붓이 단단히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 끔찍하고 이질적인 형상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도한 김 대감은, 순간 두 다리의 힘이 맥없이 풀려버리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저, 저승사자다! 명부에 적힌 수명을 거두러 온다는 저승사자가 분명해! 아니,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내가 오늘 환갑을 맞아 이제 겨우 인생을 즐기려 하는데, 어찌 벌써 나를 데리러 온단 말인가! 내 곳간에 평생 쓰고도 남을 금은보화가 아직 태산처럼 쌓여있거늘, 내 이대로 허무하게 늙어 죽을 수는 없다!'
어릴 적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듣던 예로부터 전해지는 무서운 전설 하나가 벼락처럼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저승사자가 명부를 들고 한밤중에 찾아와 문밖에서 사람의 이름을 세 번 온전히 부르게 되면, 그 사람의 혼은 저항할 새도 없이 육신을 빠져나와 영원히 저승으로 끌려가게 된다'는 참으로 끔찍한 이야기였습니다. 방금 전 첫 번째 이름이 불렸으니, 이제 단 두 번만 더 이름이 불리면 천하의 억만장자 김 대감이라 할지라도 꼼짝없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북망산천으로 떠나야 할 가혹한 운명이었습니다.
"김... 창... 시..."
저승사자가 다시 한번 핏기 없는 메마른 입술을 천천히 열어 두 번째 부름을 끝마치려는 찰나,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는 짐승 같은 처절한 생존 본능이 김 대감의 온몸을 맹렬하게 지배했습니다. 그는 세 번째 이름이 온전히 불려 자신의 혼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고 안방 문을 거칠게 박차고 나가 칠흑 같은 마당을 향해 미친 듯이 뛰쳐나갔습니다.
※ 3: 사자(使者)를 향한 은밀한 제안, 돈과 진수성찬의 유혹
"자, 잠깐만요! 잠깐만 기다리시옵소서, 사자(使者) 어른! 제발 이름을 멈추어 주시옵소서!"
김 대감은 신발조차 제대로 신지 못한 하얀 버선발로 차가운 흙바닥이 깔린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미친 듯이 달려갔습니다. 그는 굳게 잠겨있던 거대한 솟을대문의 빗장을 덜덜 떨리는 손으로 황급히 풀고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살을 에는 듯 얼음장처럼 차가운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며, 눈앞에 서 있는 저승사자의 시커먼 도포 자락 끝을 두 손으로 생명줄처럼 꽉 부여잡았습니다. 코앞에서 마주한 저승사자의 기운은 그야말로 숨이 단번에 멎을 듯한 죽음의 냉기, 그 끔찍한 공포 자체였습니다. 도포 자락을 붙잡힌 사자는 두 번째 이름 부르는 것을 잠시 멈추고, 붉은 먹물이 묻은 붓을 든 채 발밑에 초라하게 엎드려 있는 천석꾼 김 대감을 아무런 감정 없는 차갑고 무표정한 눈빛으로 고요히 내려다보았습니다.
"어리석은 인간아, 내 옷자락을 놓아라. 나는 염라대왕의 지엄하신 명을 받고 명부의 기록에 따라 너의 다한 수명을 거두러 온 저승의 일직사자다. 너의 명은 오늘 밤 삼경에 완벽히 다하였으니, 쓸데없는 발버둥으로 천기를 어지럽히지 말고 순순히 오라를 받아 북망산천으로 갈 채비를 하라."
저승사자의 목소리는 차가운 쇳덩이가 바위에 부딪히는 듯 무미건조하고 단호하여 그 어떤 타협의 여지도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평생을 돈과 사람 사이의 치열한 거래로 살아남아 천석꾼의 자리에 오른 노련한 장사꾼 김 대감은, 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참으로 기막힌 꾀를 머릿속으로 떠올렸습니다. 세상사 아무리 지독한 저승의 귀신이라 할지라도, 이승의 화려한 대접을 받고 묵직한 뇌물을 손에 쥐여주면 그 차가운 마음도 결국 흔들리지 않겠냐는 그의 오랜 썩은 지론이 무의식중에 발동한 것입니다. 돈으로 안 되는 것은 없다는 그의 철학은 저승사자 앞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사자 어른! 제발 제 말씀을 한번만 들어주시옵소서. 제가 오늘 환갑을 맞아 평생 모은 재물로 이제 겨우 인생의 참된 즐거움을 누려보려 하는데, 이리 하루아침에 허망하게 끌려갈 수는 없사옵니다. 제발 간곡한 부탁이옵니다. 그 머나먼 험한 저승길에서 이승까지 저를 데리러 오시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으시고 시장하셨습니까. 정녕 제 목숨을 거두어가시더라도, 그 전에 이 미천한 자가 정성을 다해 올리는 대접이라도 한번 든든히 받고 가시옵소서! 그리해 주신다면 여한이 없겠사옵니다!"
김 대감은 사자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허둥지둥 다시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는 행랑채에서 세상모르고 잠든 머슴들을 발로 마구 걷어차서 깨우며 고래고래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이 게으른 놈들아! 당장 일어나지 못할까! 솥에 당장 불을 짚이고, 오늘 낮에 잔치하고 남은 최고급 고기와 귀한 술을 모조리 다시 차려내오너라! 가장 좋은 나전칠기 상에 비단 방석을 깔고 진수성찬을 내오지 않으면, 오늘 밤 너희 놈들 목부터 다 쳐버리겠다!"
영문도 모른 채 한밤중에 혼비백산하여 일어난 일꾼들은 김 대감의 서슬 퍼런 호통에 잠이 확 깨어, 서둘러 불을 피우고 부엌을 오가며 진수성찬을 차려내기 시작했습니다. 김 대감은 집안에서 가장 비싸고 화려한 자개가 박힌 나전칠기 상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부드러운 소갈비찜과 육즙이 흐르는 산적, 그리고 깊은 산속에서 백 년을 묵었다는 귀한 산삼을 통째로 우려낸 독한 술을 가득 채워 대문 밖에 비단 돗자리를 깔고 정성스레 바쳤습니다. 하지만 김 대감의 뇌물은 고작 음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안방 깊숙한 곳, 이중 삼중으로 자물쇠를 채워둔 금고를 열어젖히고,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눈이 부시게 번쩍이는 황금 두꺼비와 커다란 은덩이들을 한가득 품에 안고 나와 저승사자의 발치에 조심스럽고도 은밀하게 밀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먼 길을 걷느라 다 해진 사자의 낡은 짚신을 대신할, 최고급 명주로 정성껏 지은 비단 신발 세 켤레까지 가지런히 상 앞에 올렸습니다.
"사자 어른, 이것을 보시옵소서. 이 눈부신 금은보화면 저승으로 돌아가셔서도 그 어떤 신들에게 뒤지지 않는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리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리고 상에 올린 이 음식들은 이승의 왕조차 쉽게 맛보지 못하는 진귀한 것들이니, 부디 딱딱한 노여움을 푸시고 든든하게 요기라도 하시옵소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무표정하게 서 있던 저승사자는, 김 대감이 호들갑을 떨며 차려낸 산더미 같은 진수성찬과 달빛을 받아 눈부시게 번쩍이는 황금 두꺼비를 가만히 내려다보았습니다. 죽음을 다루는 저승사자라 할지라도 먼 길을 오가며 체력이 지친 데다, 이승의 탐스러운 묵직한 재물과 코를 찌르는 기름진 고기 냄새는 그의 묘한 호기심과 식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던 모양입니다. 사자는 말없이 스르르 자리에 앉아, 김 대감이 두 손으로 연거푸 따라주는 백년 묵은 산삼주를 단숨에 목울대로 들이켰습니다.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뜨거운 술기운과 입안에서 살살 녹아내리는 갈비찜의 고기 맛에, 굳어있던 사자의 차가운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참으로 알 수 없는 미묘한 빛으로 누그러지는 듯했습니다.
'오호라, 통한다! 내 말이 맞았어! 저승 귀신도 결국은 뇌물과 정성스러운 접대 앞에서는 장사가 없는 법이지! 이깟 황금 덩어리 몇 개로 내 소중한 목숨을 살 수만 있다면, 열 번이고 백 번이라도 이 상을 바칠 수 있다!'
김 대감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눈웃음을 치고는 더욱 허리를 굽혀 굽실거렸습니다.
"사자 어른, 입맛에는 맞으시는지요. 저기... 제 명부에 적힌 그 죽을 날짜를 아주 조금만... 딱 십 년, 아니 오 년만이라도 뒤로 늦춰주실 수는 없겠습니까요? 이 큰 은혜는 제가 죽어 백골이 되어서도 뼈에 새기고, 매년 제사상에 이보다 백 배는 더 화려한 금은보화를 올려드리겠사옵니다!"
기름진 음식으로 서서히 배를 채우고 김 대감이 내어온 비단 신발까지 발에 꼭 맞게 챙겨 신은 저승사자는, 시커먼 품속으로 황금 두꺼비를 쓱 챙겨 넣으며 헛기침을 큼큼 내뱉었습니다. 명부를 꽉 쥐고 있던 사자의 창백한 손이 잠시 멈칫하더니,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매서운 눈을 가늘게 떴습니다. 죽음을 엄격하게 관장하는 저승의 사자와, 생을 어떻게든 연장하려는 이승의 탐욕스러운 부자 사이의 참으로 기묘하고도 아슬아슬한 뒷거래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 4: 기적처럼 얻어낸 사흘의 시간, 살기 위한 몸부림
두둑하게 바친 눈부신 금은보화와 정성껏 차려낸 진수성찬으로 주린 배를 불린 저승사자는, 거나하게 취기가 오르는지 붉은 먹물이 뚝뚝 떨어지는 붓을 든 손으로 앙상한 턱을 쓰다듬으며 헛기침을 연거푸 내뱉었습니다. 얼음장처럼 차갑고 무자비했던 그의 두 눈동자에 이승의 탐욕이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스며드는 듯했습니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사자의 굳게 다문 입술에서 떨어질 처분만을 노심초사 기다리던 김 대감은, 귀신같이 그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고 더욱 구슬프고 간절한 목소리로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애원했습니다.
"사자 어른, 부디 이 미천하고 가련한 자의 처지를 한 번만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제가 이대로 눈을 감고 저승으로 떠나버리면, 저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인 재물들은 모조리 주인 잃은 쓸모없는 돌덩이가 될 것이옵니다. 딱 오 년! 아니, 정 어려우시다면 3년, 아니 1년만이라도 제 목숨을 연장해 주신다면, 제가 매달 보름마다 사자 어른을 위해 극락왕생을 비는 천도재를 성대하게 올리고, 오늘 바친 것보다 열 배, 스무 배는 더 화려한 산해진미와 황금을 바치겠사옵니다! 제발 제 목숨을 거두는 것을 조금만 미루어 주시옵소서!"
저승사자는 김 대감이 바친 눈부신 황금 두꺼비를 칠흑 같은 도포 소매 자락 깊숙한 곳으로 은밀하게 밀어 넣으며, 다른 한 손에 쥐고 있던 낡고 누런 명부를 천천히 펼쳤습니다. 그리고는 피처럼 붉은 붓끝에 자신의 침을 묻혀 명부의 한 구석, 김창식이라는 이름이 적힌 곳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낮고 묵직한 쇳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네놈이 목숨을 구걸하며 바친 정성이 하도 갸륵하여 내 차가운 마음이 잠시 흔들리기는 하나, 염라대왕의 지엄하신 명부에 붉은 글씨로 적힌 천기(天機)를 일개 일직사자인 내 마음대로 십 년, 일 년씩 함부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대왕마마께서 내가 뇌물을 받고 수명을 조작한 사실을 아시게 되면, 네놈은 당장 펄펄 끓는 화탕지옥에 떨어져 뼈가 녹을 것이요, 나 역시 사자의 직분을 영원히 박탈당하고 빛 한 점 없는 무간지옥에 떨어져 영겁의 고통을 받을 것이다. 하늘의 법도는 그토록 무겁고 엄한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김 대감의 붉게 달아올랐던 얼굴이 다시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갔습니다. 억만금의 돈으로도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그 거대한 절망감이 뼛속까지 시리게 때렸습니다. 하지만 저승사자는 이내 명부의 글귀를 붉은 붓으로 쓱쓱 덧칠하며 묘한 여운을 남기며 말을 이었습니다.
"허나... 네놈이 바친 뇌물, 아니 그 간절한 정성이 이토록 갸륵하니 내 이번 한 번만 특별히 눈을 감고 자비를 베풀어주마. 본래 오늘 밤 자시(子時)에 너의 혼을 거두어 명부전으로 압송해야 마땅하나, 내 이 명부의 기록을 살짝 고쳐 너에게 딱 사흘! 사흘이라는 짧은 시간을 더 주겠다. 이 사흘은 네놈이 수명을 연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신변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자식들에게 유언을 남기며 재산을 처분할 수 있도록 하늘이 허락한 마지막 유예기간이라 여겨라. 사흘 뒤 밤, 자시가 땡 치는 이맘때, 내 다시 이곳으로 찾아와 네 세 번째 이름을 온전히 부를 것이니, 그때는 그 어떤 핑계도 대지 말고 꼼짝없이 나를 따라나서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사, 사흘이옵니까? 고작 사흘..."
"무엇이냐? 그마저도 싫고 아깝다면 지금 당장 네놈의 세 번째 이름을 마저 부르겠다. 김..."
"아이고,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사흘이라도 엎드려 절하며 감지덕지하옵니다! 이 은혜, 제가 죽어 백골이 되어서도 뼛속 깊이 새기겠사옵니다! 감사합니다, 사자 어른!"
김 대감은 황급히 바닥에 머리를 쿵쿵 찧으며 연거푸 큰절을 올렸습니다. 사자는 챙이 넓은 갓을 다시 깊게 고쳐 쓰더니, 밤안개가 스르르 밀려오듯 순식간에 짙은 어둠 속으로 연기처럼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대문 앞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가운 새벽바람만이 스산하게 불고 있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한 발짝 살아 돌아온 김 대감은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 다리에 힘이 풀려 엉금엉금 기어서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여명이 밝아오기가 무섭게 김 대감의 머릿속은 미친 듯이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이승에서의 시간은 단 사흘, 일흔두 시간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천만금을 창고에 쌓아두어도 숨이 멎으면 그만이라는 무서운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은 그는, 이승의 삶에 대한 지독한 집착과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처절하고 짐승 같은 본능에 완전히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래,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딨어! 어제 똑똑히 보지 않았느냐! 그 피도 눈물도 없다던 무시무시한 저승 귀신도 결국 번쩍이는 황금 덩어리와 기름진 고기 앞에서는 마음이 약해져 내게 사흘이라는 시간을 내어주지 않았더냐! 고작 황금 두꺼비 하나에 사흘을 벌었다면, 내가 이번엔 아예 내 전 재산의 절반을 바쳐서라도 그놈의 입을 완벽하게 틀어막고 내 수명을 십 년, 이십 년 통째로 사버리고야 말겠다! 염라대왕이 알기 전에 내가 저승사자 입에 황금을 쏟아부어 주마!'
김 대감은 즉각 읍내에서 제일간다는 백정들을 수십 명이나 거액을 주고 불러모아, 자신의 외양간에 있던 가장 살진 소 스무 마리와 돼지 쉰 마리를 모조리 그 자리에서 잡으라고 서슬 퍼런 지시를 내렸습니다. 또한, 수백 명의 하인들을 사방으로 풀어 고을의 장터란 장터는 다 뒤져 가장 귀하다는 산삼과 녹용, 꿀, 그리고 전복을 싹쓸이해 오도록 명했습니다. 안방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평생 한 번도 남에게 보여준 적 없던 진짜 금괴 상자들과 은정 꾸러미들도 몽땅 마당 한가운데로 끄집어냈습니다. 그는 남은 사흘 동안 한숨도 잠을 자지 않고 두 눈을 붉게 부릅뜬 채, 저승사자를 완벽하게 매수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부귀영화를 총동원하여 조선 팔도에 전무후무할 거대하고 기괴한 뇌물 제사상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살기 위해 자신의 피 같은 재산을 미친 듯이 허공에 탕진하는 천석꾼의 발악은 참으로 처절하고도 소름 끼치도록 기괴했습니다.
※ 5: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장난, 세 번째 이름이 불리는 밤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듯한 극도의 초조함과 광기 속에서 하루, 이틀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가고, 마침내 저승사자가 서늘하게 예고했던 운명의 셋째 날 밤이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김 대감의 으리으리한 집 앞마당은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고 혼이 나갈 만큼 엄청난 규모의 제사상으로 빈틈없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소와 돼지를 통째로 구워낸 거대한 고기 더미가 마을의 뒷산처럼 붉게 쌓여 있었고, 그 비싸다는 백년 묵은 산삼을 넣고 달인 귀한 술독 수백 개가 줄지어 끝없이 늘어서 있었으며, 그 끔찍하리만치 거대한 상의 맨 앞에는 황금괴와 은정들이 달빛을 받아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하고 번쩍이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 규모의 엄청난 재물과 정성이라면, 일개 저승사자가 아니라 저승을 호령하는 염라대왕이 직접 온다 할지라도 깊이 감동하여 자신의 수명을 이십 년은 거뜬히 늘려줄 것이라는 헛되고도 오만한 확신이 김 대감의 마음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밤이 깊어 온 세상이 쥐죽은듯 고요해지고 약속한 자시(子時)가 가까워져 오자, 김 대감은 가장 비싸고 화려한 명주 비단옷을 단정히 차려입고 마당 한가운데 엎드려 무릎을 꿇은 채,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초조하게 저승사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며칠 전 그 무서웠던 밤과 똑같이, 마당 구석의 사냥개들이 낑낑거리며 바닥에 납작 엎드리고, 뼈가 시리도록 차가운 죽음의 음기가 솟을대문 담장을 넘어 마당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달빛마저 짙은 먹구름에 가려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마침내 낡은 갓을 쓴 시커먼 그림자가 스르르 허공을 가르며 나타났습니다.
"김... 창... 식..."
저승사자는 나타나자마자 아무런 감정 없는, 마치 쇳덩이를 긁는 듯한 서늘한 목소리로 김 대감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사흘 전 김 대감의 숨통을 조이다 중단되었던 그 끔찍한 세 번째 부름의 시작이 다시 이어지는 순간, 김 대감의 심장이 멎을 듯 요동쳤습니다.
"아이고, 사자 어른! 오셨습니까! 제가 사자 어른을 위해, 사자 어른의 자비로운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제 전 재산의 반을 털어 이승 최고의 대접을 준비했사옵니다. 이 산처럼 쌓인 고기와 술, 그리고 저 번쩍이는 황금 덩어리들을 보시옵소서! 부디 이것들을 모조리 거두어 가시고, 제 명부에 적힌 글귀를 지워 저를 제발 살려주시옵소서! 제발 제 수명을, 제 남은 인생을 제 돈으로 사게 해주십시오!"
김 대감은 땅바닥에 이마가 찢어지도록 머리를 비비며 콧물과 눈물을 정신없이 쏟아내며 애원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언가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습니다. 사흘 전 김 대감이 내민 고작 황금 두꺼비 하나에 눈이 멀어 마음이 흔들렸던 그 비루한 저승사자의 기운이 아니었습니다. 짙은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저승사자의 얼굴은 며칠 전보다 훨씬 더 압도적으로 무섭고 차가웠으며, 그의 등 뒤로는 똑같이 시커먼 도포를 입은 또 다른 두 명의 건장한 사자가 시퍼렇게 날이 선 쇠사슬을 들고 함께 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네 이놈! 어디서 감히 요사스러운 이승의 썩은 재물로 명부의 지엄한 법도를 더럽히고 저승의 일직사자를 매수하려 드느냐!"
순간, 밤하늘을 찢어놓을 듯한 벼락같은 호통이 김 대감의 정수리로 떨어졌습니다. 김 대감이 뇌물을 바쳤던 첫 번째 하급 사자 대신, 염라대왕의 특명을 받아 저승의 모든 옥졸들을 호령하는 가장 높고 무서운 사자, 강림도령(降臨道令)이 직접 저승사자들을 이끌고 그를 잡으러 온 것이었습니다. 강림도령의 눈빛은 마치 시뻘건 불기둥처럼 김 대감을 태워버릴 듯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대왕마마께서 네놈이 감히 이승의 더러운 재물로 하늘이 내린 수명을 연장하려 한 참으로 괘씸하고 불경한 죄를 아시고 크게 대노하셨다! 너에게 어리석게 뇌물을 받고 명부를 조작하려 했던 그 멍청한 사자는 이미 사자 직을 박탈당하고 펄펄 끓는 무간지옥에 떨어져 형벌을 받고 있느니라. 인간의 생명은 하늘이 내린 것이고 죽음은 만민에게 평등하거늘, 썩어 없어질 이승의 황금 나부랭이로 지엄한 천기를 거스르려 한 네놈의 죄는 백 번, 천 번 고통받으며 죽어 마땅하다!"
강림도령의 서슬 퍼런 꾸짖음에 김 대감은 눈앞이 하얗게 점멸하며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이 완벽하다고 믿었던 마지막 동아줄이, 사실은 자신의 목을 옭아매는 가장 끔찍하고 썩은 동아줄이었음이 참혹하게 판명 난 순간이었습니다.
"아, 안 돼... 이럴 수는 없다! 내가 평생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며 긁어모은 내 돈인데! 이 세상에 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단 말이냐! 싫다! 나는 안 간다!"
"듣기 싫다! 명부의 명에 따라 마지막 세 번째 이름을 부르겠다! 김... 창... 식!"
강림도령의 굳게 다문 입술에서 김 대감의 세 번째 본명이 완벽하고 온전하게 밤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지는 순간, 마당을 매섭게 휩쓸던 찬 바람이 보이지 않는 칼날이 되어 김 대감의 몸을 강하게 관통했습니다. "헉!" 하는 짧고 끔찍한 비명과 함께, 김 대감의 육신은 마치 실이 툭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바닥으로 힘없이 푹 고꾸라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뻣뻣하게 굳어버린 육신 위로, 허연 소복을 입은 김 대감의 반투명한 혼백이 스르르 기괴하게 빠져나왔습니다.
※ 6: 돈으로 살 수 없는 단 한 가지, 허무하게 저문 천석꾼의 생
육신에서 분리되어 온전한 혼백이 된 김 대감은, 차가운 흙바닥에 볼품없이 널브러져 있는 자신의 시신을 믿을 수 없다는 듯 허망하게 내려다보았습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말을 듣던 그 몸뚱이는 이제 그저 아무런 온기도 없는 핏기 가신 고깃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찰그랑! 하는 소름 끼치는 금속음과 함께, 강림도령이 무자비하게 던진 시퍼렇고 차가운 쇠사슬이 김 대감의 혼백의 목을 뱀처럼 칭칭 옭아매었습니다. 그 쇠사슬의 무게는 그가 평생 짊어지고 살았던 업보만큼이나 무겁고 차가웠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네놈이 평생을 바쳐 끌어안고 살았던 저 부질없는 고깃덩어리와 금은보화는 모두 이승에 그대로 두고, 오직 네가 지은 탐욕과 악업만을 무겁게 짊어진 채 명부의 심판을 받으러 가자꾸나."
목에 굵은 쇠사슬이 꽉 감긴 채 강림도령의 손에 질질 끌려가며, 김 대감의 반투명한 혼백은 자신이 사흘 밤낮을 뜬눈으로 새우며 미친 듯이 준비했던 마당의 그 거대한 재물들을 뒤돌아보았습니다. 마을 뒷산처럼 쌓인 화려한 진수성찬, 달빛에 번쩍이는 수만 냥의 황금 덩어리들... 살아생전 그토록 그에게 남들 위에 군림하는 막강한 권력을 주었고 모든 기쁨을 주었던 그 어마어마한 부귀영화가, 죽음이라는 거대하고 절대적인 섭리 앞에서는 한낱 길가의 굴러다니는 돌덩이와 썩어갈 짐승의 뼈다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는 너무도 늦게, 그리고 너무도 처절하게 가슴을 치며 깨닫고 있었습니다.
"아아... 덧없고 덧없구나. 내 평생 사람들을 짓밟고 피도 눈물도 없이 지독하게 재물을 모았건만, 억만금의 돈으로 내 수명 단 하루조차 사지 못하고, 저승 가는 이 멀고 무서운 길에 노잣돈 한 푼 쥐고 가지 못하는 끔찍한 신세가 되었구나. 내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아귀처럼 살았단 말인가..."
김 대감의 처절하고 한 맺힌 통곡 소리가 밤하늘에 구슬프게 메아리쳤지만, 살아 숨 쉬는 이승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창호지를 흔드는 스산한 밤바람 소리로 들릴 뿐이었습니다. 강림도령과 저승사자들은 후회로 오열하는 김 대감의 혼백을 무자비하게 이끌고 짙게 깔린 잿빛 안개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고, 이승에 남겨진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는 싸늘하게 식어가는 천석꾼의 처참한 시신과, 주인을 잃고 어둠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산더미 같은 재물들만이 공허하게 남겨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하인들은 마당 한가운데 산처럼 쌓인 고기 더미 옆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허무하게 죽어있는 김 대감의 시신을 발견하고 기겁하여 하늘이 무너지라 비명을 질렀습니다. 환갑잔치를 고을이 떠나가라 성대하게 치른 지 불과 사흘 만에, 이 고을에서 제일가는 절대 권력의 갑부가 아무런 병도 없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충격적인 소문은 순식간에 온 마을을 넘어 조선 팔도로 퍼져나갔습니다. 사람들은 김 대감이 마당에 미친 듯이 차려놓은 거대한 제사상과 황금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차며 수군거렸습니다.
"쯧쯧,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뭣하나. 천석꾼이면 뭣해. 명부에 이름이 적혀 저승사자가 부르면 억만금을 줘도 절대 못 피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목숨이거늘. 죽을 때 무덤에 가져가지도 못할 썩을 재물에 그리도 평생 욕심을 부리며 남의 눈에 피눈물을 내더니, 결국 저승사자 밥상이나 차려주고 참으로 허망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구먼."
결국 김 대감이 평생을 피도 눈물도 없이 바쳐 모았던 천석꾼의 막대한 재산은, 그가 숨을 거두자마자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생전에 돈 쓰는 법을 모르던 방탕하고 이기적인 자식들은 억만금의 유산을 두고 매일같이 피 터지게 싸우다 노름과 소송으로 가산을 탕진해 버렸고, 김 대감이 가난한 백성들에게 억지로 뺏어 기를 쓰고 넓혔던 땅들은 빚쟁이들의 손에 갈기갈기 찢겨 넘어갔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오만하게 맹신했던 한 사내의 헛된 욕망은, 결국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공평함 앞에서 한 줌의 먼지처럼 허무하게 흔적도 없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칠흑같이 밤이 깊어 자시(子時)가 되면, 탐욕에 눈이 멀어 억만금으로 수명을 연장하려 했던 김 대감의 원혼이 나타나, 어둠 속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세 번 부르지 않을까 벌벌 떨며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오싹하고도 슬픈 이야기. 인간의 소중한 생명은 결코 금전으로 매수할 수 없는 가장 지엄한 하늘의 뜻이라는 깊은 교훈을 남긴 채, 천석꾼 김 대감과 강림도령의 기묘한 야담은 오랜 세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서늘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억만금의 황금으로 하늘의 명을 거스르고 수명을 연장하려 했던 천석꾼 김 대감의 최후, 어떻게 들으셨나요? 세상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늘이 우리에게 공평하게 부여한 시간과 생명일 것입니다. 저승사자에게 뇌물을 바쳐 억지로 사흘이라는 시간을 벌었지만, 결국 그 끝없는 욕심 때문에 더 큰 징벌을 받게 된 그의 씁쓸한 이야기가 참으로 많은 여운을 남깁니다. 욕심을 비우고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베풀며 사는 것, 그것이 가장 가치 있는 장수의 비결이 아닐까요? 오늘 이야기가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잊지 마시고요. 다음 시간에도 더욱 오싹하고 흥미진진한 저승사자 야담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평안한 밤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