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라대왕의 심부름으로 이승에 편지를 전하러 온 저승사자 (어우야담)
염라대왕의 심부름으로 이승에 편지를 전하러 온 저승사자, 수신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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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아니, 명색이 저승사자인데 편지 배달이라니요!" 염라대왕의 불호령에 황금 밀서를 들고 이승에 내려온 저승사자. 하지만 한양 바닥을 샅샅이 뒤져도 편지를 받을 '김돌석'이라는 사내는 보이지 않습니다. 백정부터 동네 똥개까지 온갖 돌석이를 만나며 지쳐가던 사자. 마침내 정확한 주소를 찾아갔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충격적인 진실! 편지의 수신인이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라고요? 저승사자의 황당무계한 이승 출장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 1: 저승의 서류 더미와 염라대왕의 은밀한 특별 지시.
펄펄 끓는 가마솥의 열기와 매캐한 유황 냄새가 진동하는 저승의 제1 관문. 수백 년 묵은 낡은 기와집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곳은 하루에도 수만 명의 망자들을 심사하고 이승과 저승의 명부를 관리하는 염라국의 핵심 관청이었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인 명부 서류들 사이에서 허리가 끊어지라 일하던 저승의 관리들은, 쉴 새 없이 떨어지는 염라대왕의 불호령에 연신 굽은 등을 더욱 조아리고 있었습니다. 저승의 업무는 이승의 백성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고단하고 복잡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망자들의 혼을 거두어들이는 저승사자들의 피로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꼬박 사흘 밤낮을 조선 팔도를 누비며 역병으로 쓰러진 망자들을 호송했더니, 이제는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구나. 저승사자 노릇도 못 해 먹을 짓이지, 원.'
새까만 갓을 깊게 눌러쓰고 검은 도포 자락을 휘날리는 사내는, 저승사자들 중에서도 으뜸가는 베테랑으로 꼽히는 칠성 사자였습니다. 방금 전 험준한 함경도 산골짜기에서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심마니의 혼을 거두어 명부전에 넘긴 참이었습니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피로를 풀기 위해, 관청 뒤뜰의 커다란 고목나무 그늘 아래서 꿀맛 같은 낮잠을 청하려던 찰나였습니다.
"칠성이 이놈! 어디서 농땡이를 피우려 하느냐! 어서 내 앞으로 튀어 오지 못할까!"
천둥 벼락이 치는 듯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저승 관청의 마당을 뒤흔들었습니다. 칠성 사자는 꿀맛 같은 낮잠을 방해받은 원망을 가득 담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저승의 최고 통치자, 염라대왕이었습니다. 칠성 사자는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서류 더미가 산처럼 쌓인 염라대왕의 집무실로 향했습니다.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용 무늬가 화려하게 수놓아진 붉은 비단옷을 입고 이마에 굵은 내천(川) 자 주름을 팍 새긴 염라대왕이 커다란 부채를 부치며 씩씩거리고 있었습니다. 대왕의 책상 위에는 눈부신 황금빛으로 봉인된 두툼한 서찰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칠성 사자는 대왕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며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습니다.
"대왕마마, 부르셨사옵니까. 소인 칠성, 방금 전 함경도 출장을 마치고 복귀하여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사옵니다. 혹여 또 대형 사고라도 터진 것이옵니까?"
염라대왕은 부채를 탁 접으며 칠성 사자를 향해 은밀하게 손짓을 했습니다. 평소의 호통치는 모습과는 다르게 몹시 조심스럽고 비밀스러운 태도였습니다. 칠성 사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왕의 책상 앞으로 바싹 다가가자, 염라대왕이 황금빛으로 봉인된 서찰을 칠성 사자의 가슴팍에 툭 안겨주었습니다.
"네가 지금 당장 이승으로 다시 내려가야겠다. 이 서찰을 한양 북촌에 사는 '김돌석'이라는 자에게 전하고 오너라. 아주 중차대한 일이니, 쥐도 새도 모르게 다녀와야 할 것이다."
칠성 사자는 어안이 벙벙하여 자신의 가슴에 안긴 서찰과 염라대왕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습니다.
"예? 대왕마마, 소인은 망자의 혼을 거두는 저승사자이옵니다. 어찌하여 명색이 저승사자인 제가 이승의 갓 쓴 양반들도 아니고, 이름마저 촌스러운 '김돌석'이라는 자에게 편지 배달을 한단 말씀이옵니까? 저승에 전령(傳令)을 맡은 까마귀들이 수두룩하지 않사옵니까!"
칠성 사자의 볼멘소리에 염라대왕은 미간의 주름을 더욱 깊게 패며 서슬 퍼런 눈빛을 빛냈습니다.
"이놈아! 까마귀 녀석들이 길눈이 어두워 남의 집 굴뚝에 편지를 떨어뜨리는 사고를 친 것이 한두 번이더냐! 이 서찰은 평범한 편지가 아니다. 다가올 조선의 국운과 한 가문의 명운을 뒤바꿀 엄청난 천기(天機)가 담긴, 내 특별한 친서란 말이다! 이토록 중대한 일은 저승 최고의 일꾼인 네놈만이 해낼 수 있기에 특별히 하명하는 것이거늘, 어디서 불평불만이냐!"
염라대왕의 칭찬인지 협박인지 모를 호통에, 칠성 사자는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서찰을 품속 깊이 쑤셔 넣었습니다.
"하아… 알겠사옵니다. 까라면 까야 하는 것이 이 바닥의 생리 아니겠사옵니까. 한양 북촌의 김돌석이라 하셨지요. 내 당장 가서 전해주고 올 터이니, 이번 출장 후에는 반드시 특별 휴가를 챙겨주시옵소서."
"오냐, 오냐. 내 특별히 저승의 최고급 유황 온천 이용권을 하사할 터이니, 잔말 말고 다녀오너라. 수신인 본인에게 직접 손에서 손으로 전해야 함을 절대 명심하거라!"
칠성 사자는 염라대왕의 신신당부를 뒤로한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차원의 문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소용돌이치는 짙은 안개 속으로 몸을 던지는 그의 뒷모습에는, '명색이 저승사자인데 우체부 노릇이라니' 하는 깊은 한탄이 가득 서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이 단순해 보이는 편지 배달 출장이, 그의 저승사자 경력 수백 년을 통틀어 가장 황당하고 골치 아픈 사건이 될 줄은 말입니다.
※ 2: 한양 바닥에 널린 돌석이들, 저승사자의 기막힌 헛걸음.
칠흑 같은 안개를 뚫고 나온 칠성 사자의 발이 닿은 곳은,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활기가 넘쳐흐르는 한양 도성의 한복판이었습니다. 갓 구워낸 전 지지는 고소한 기름 냄새와, 땀 흘리며 수레를 끄는 짐꾼들의 땀 냄새, 그리고 온갖 소음이 뒤섞인 이승의 공기는 언제 맡아도 저승사자의 골치를 아프게 했습니다. 칠성 사자는 새까만 갓을 푹 눌러쓰고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한 뒤, 북촌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김돌석, 김돌석이라…. 북촌이라면 벼슬아치들이나 양반들이 모여 사는 동네인데, 이름이 돌석이라니 참으로 기묘하구나. 양반집의 노비 거나 머슴일 가능성이 크겠군.'
칠성 사자는 속으로 추리를 하며 북촌 어귀의 널찍한 저잣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수신인을 찾기 위해서는 동네 사람들에게 묻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습니다. 마침 커다란 도마 위에서 소뼈를 발라내고 있는 덩치 큰 백정이 눈에 띄었습니다. 칠성 사자는 헛기침을 하며 백정에게 다가갔습니다.
"이보시오, 실례 좀 하겠소. 혹시 이 근방에 '김돌석'이라는 사내를 아시오? 아주 중요한 서찰을 전해야 해서 말이오."
그 말에 백정이 뼈를 내리치던 커다란 칼을 탁 내려놓고는 험상궂은 얼굴로 칠성 사자를 힐끗 노려보았습니다.
"돌석이? 내가 김돌석인데, 댁은 뉘시오? 나한테 편지를 전할 사람 따위는 이승 천지에 없는데."
칠성 사자의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이렇게 쉽게 수신인을 찾다니, 자신의 운이 참으로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품속에서 황금빛으로 봉인된 서찰을 꺼내려다 멈칫했습니다. 염라대왕이 조선의 국운을 바꿀 천기가 담겼다고 그토록 신신당부했던 서찰이었습니다. 아무리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지만, 눈앞에서 코를 파며 소뼈의 핏물을 닦고 있는 이 무식해 보이는 백정에게 조선의 명운이 달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진정 당신의 이름이 김돌석이 맞소? 한자로는 어찌 쓰시오? 혹시 옥돌 기(玘) 자에 큰 석(碩) 자라도 쓰시는 게요?"
"한자? 에끼 이 사람아! 백정 놈한테 한자가 어딨어! 그냥 태어날 때 하도 돌처럼 굴러다녀서 부모가 돌석이라 지어준 게지! 돌 돌(石) 자에 돌 석(石) 자다, 왜! 그깟 편지 빨리 내놓기나 하쇼!"
백정이 기름 묻은 손을 쑥 내밀자, 칠성 사자는 기겁을 하며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아… 아니오! 내가 찾는 돌석이는 이 돌석이가 아닌 것 같소! 실례가 많았소이다!"
칠성 사자는 백정의 욕설을 뒤로한 채 황급히 도망을 쳤습니다. 그 후로도 그의 고난은 계속되었습니다. 한양 바닥에 '돌석'이라는 이름은 발에 채일 정도로 널려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찾은 돌석이는 올해 나이 여든이 넘은, 귀가 어두워 제 이름도 제대로 듣지 못하는 노인이었습니다. "돌석이? 내가 돌석인데, 돌떡을 준다고?" 하며 침을 흘리는 노인 앞에서 칠성 사자는 깊은 절망을 느꼈습니다.
세 번째로 찾은 돌석이는 심지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고래등 같은 기와집 마당에서 "돌석아! 돌석아 밥 먹자!" 하고 부르는 소리에 반색하며 달려갔으나, 안주인의 품에 안겨 꼬리를 흔드는 것은 눈이 뎅그렇게 큰 누렁이 똥개였습니다.
'환장하겠구나. 염라대왕님은 대체 주소를 어찌 이리 개떡같이 알려주셨단 말인가! 한양 북촌의 김돌석이 한두 명도 아니고, 개나 소나 다 돌석이인데 내 이 서찰을 누구에게 전한단 말인가!'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고, 칠성 사자는 퉁퉁 부은 다리를 두드리며 주막 앞 평상에 주저앉았습니다. 저승 최고의 엘리트 사자라는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짜증을 내며 품속에서 서찰을 꺼내어, 봉투 겉면에 적힌 수신인 정보를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한번 뚫어지게 들여다보았습니다.
'한양 북촌면 가회방 제3통 제2호… 거주하는 김돌석….'
자세히 보니 그저 북촌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통과 호수까지 적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칠성 사자는 자신의 멍청함을 자책하며 자신의 이마를 탁 쳤습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보소! 이렇게 정확한 번지가 적혀 있는 것을, 그저 이름만 보고 동네를 헤매고 다녔으니 똥개나 만나고 다녔지!"
칠성 사자는 다시 기운을 차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이제 정확한 주소를 알았으니, 그 집에 살고 있는 진짜 '김돌석'을 만나 서찰을 던져주고 뜨거운 유황 온천으로 달려갈 일만 남은 것이었습니다.
※ 3: 마침내 찾은 북촌의 기와집, 그리고 울려 퍼지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어스름한 저녁놀이 깔리기 시작한 북촌의 좁은 골목길을 누비며, 칠성 사자는 봉투에 적힌 번지수를 더듬어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랐습니다. 가회방 제3통 제2호. 그곳은 북촌의 화려하고 으리으리한 권세가들의 저택들과는 달리, 기와지붕 한구석이 허물어지고 담장이 낡은 제법 소박하고 빈티가 나는 기와집이었습니다.
칠성 사자는 목을 가다듬고 굳게 닫힌 대문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집 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마당 안쪽에서 다급하게 오가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함께, 대청마루 위를 끊임없이 서성이는 사내의 불안한 그림자가 창호지에 비치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삼신할망! 부디 우리 마누라가 이번에는 무사히 순산하게 해 주시옵소서! 가문의 대를 이을 튼튼한 사내아이를 점지해 주시옵소서!"
사내는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며 마당 한가운데 떠 있는 차가운 달을 향해 간절히 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방 안에서는 산고를 겪는 여인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간헐적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칠성 사자는 잠시 난감해졌습니다. 하필이면 집안에 새 생명이 태어나느라 정신이 없는 산통의 현장에 도착한 것입니다. 하지만 염라대왕의 엄명을 지체할 수는 없었습니다. 칠성 사자는 인간의 모습으로 위장한 채, 낡은 대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습니다.
"이리 오너라! 안에 뉘 계신가!"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마당을 서성이던 사내가 화들짝 놀라며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수심이 가득한 얼굴에 낡은 도포를 걸친, 전형적인 몰락한 양반의 행색을 한 선비였습니다. 그는 불쑥 찾아온 낯선 검은 옷의 사내를 경계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뉘시오? 보시다시피 지금 우리 집사람이 해산을 앞두고 있어 경황이 없소이다. 시주를 온 스님이시라면 내일 다시 오시지요."
칠성 사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품속에서 황금빛 서찰을 살짝 꺼내 보였습니다.
"아, 놀라게 해 드렸다면 미안하오. 나는 시주를 온 것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서찰을 전하러 온 심부름꾼이오. 혹시 이 댁에 '김돌석'이라는 분이 계시오? 그분에게 이 편지를 직접 전해야만 해서 말이오."
선비는 칠성 사자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김돌석이라니요? 우리 집안은 대대로 벼슬을 지낸 안동 김씨 가문이오. 내 이름은 김진사이고, 우리 댁에는 머슴이나 종놈들 중에도 돌석이라는 상스러운 이름을 가진 자는 없소이다. 번지수를 단단히 잘못 찾아오신 모양이니 이만 돌아가시오."
선비가 대문을 매몰차게 닫으려 하자, 칠성 사자는 황급히 발을 집어넣어 문을 막아섰습니다.
"잠깐, 잠시만 기다려 보시오! 주소가 한양 북촌면 가회방 제3통 제2호가 맞지 않소?"
"주소야 맞지만, 그딴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다 하지 않았소!"
칠성 사자의 머릿속이 하얗게 엉켜버렸습니다. 분명 염라대왕의 친서에 적힌 주소와 번지수는 이 낡은 기와집이 정확했습니다. 그런데 집주인은 그런 사람이 없다며 펄펄 뛰고 있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이런 제기랄! 대왕마마께서 또 명부 기록을 잘못 보시고 사고를 치셨구나. 치매가 오신 게 틀림없어!'
칠성 사자는 속으로 염라대왕을 원망하며, 마지막 확인을 위해 자신의 품속에서 저승사자들의 전용 장비인 '명부 수첩'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승의 인간들에게는 그저 낡은 첩자로 보이지만, 사자들에게는 모든 인간의 호적과 수명이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신물(神物)이었습니다.
칠성 사자는 눈에 침을 바르고 수첩의 기록을 빠르게 훑어 내려갔습니다. '가회방 제3통 제2호, 김진사의 집… 거주자 명단…'
그 순간, 칠성 사자의 두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습니다. 명부 수첩의 맨 마지막 줄에, 먹물조차 마르지 않은 새로운 이름 하나가 방금 전 반짝거리며 갱신된 것이었습니다.
[이름: 김돌석 / 출생 연월일: 바로 오늘, 지금 이 시각!]
그와 동시에, 굳게 닫혀 있던 안방의 방문이 활짝 열리며 늙은 산파가 환희에 찬 목소리로 마당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나왔시유! 나리! 드디어 고추가 달린 건강한 사내아이가 태어났시유!"
"응애! 응애!"
세상을 향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갓난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북촌의 밤하늘을 쩌렁쩌렁하게 울렸습니다. 칠성 사자는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자신이 들고 있는 염라대왕의 황금 서찰과 안방에서 들려오는 아기의 울음소리를 번갈아 바라보았습니다.
'맙소사… 염라대왕님이 말씀하신 그 위대한 예언의 주인공, 김돌석이라는 수신인이… 방금 전 태어난 저 핏덩이 갓난아기란 말인가!'
※ 4: 수신인은 갓난아기, 염라대왕의 편지를 읽어보는 아비.
"응애! 응애! 응애!"
세상의 모든 어둠과 정적을 한순간에 찢어발길 듯한, 참으로 우렁차고도 생명력 넘치는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낡은 기와집의 밤공기를 가르고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그 경이롭고도 벅찬 첫 울음소리에, 대문 앞을 서성거리며 피가 마르도록 초조하게 기다리던 김 진사는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밤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미친 듯이 환호성을 내질렀습니다.
"오오, 조상님들! 천지신명님! 진심으로 감사하옵니다! 늙은 나이에 대가 끊길까 밤낮으로 전전긍긍하던 이 못난 후손에게, 드디어 우리 가문의 대를 이을 튼튼하고 우렁찬 사내아이를 점지해 주셨군요! 내 평생 부처님과 옥황상제님을 모시며 이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사옵니다!"
김 진사가 기쁨에 겨워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맨발로 산방을 향해 헐레벌떡 달려가려던 바로 그 찰나였습니다. 대문을 떡하니 막아서고 있던 칠성 사자가 길고 단단한 팔을 뻗어, 펄럭이는 김 진사의 낡은 도포 자락을 덥석 하고 억세게 붙잡았습니다.
"이보시오, 진사 양반! 내 진심으로 축하하오! 그런데 저기 방금 막 태어나 저토록 우렁차게 울고 있는 저 사내아이 말이지요. 혹시 부인과 미리 지어두신 태명이나, 앞으로 부를 이름 같은 것을 미리 정해두신 게 있소?"
마음이 급해 죽겠는데 갑자기 옷자락을 끄잡아당기는 불청객의 행동에, 김 진사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칠성 사자를 짜증스럽게 쳐다보았습니다.
"아니, 이 사람이 눈치가 없어도 분수가 있지! 이름이고 뭐고 이제 막 어미 뱃속에서 나온 핏덩이인데 무슨 번듯한 이름이 벌써 있겠소! 그저 우리 부부가 늙은 나이에 천신만고 끝에 얻은 귀한 자식이니, 태어나면 그저 길가의 돌처럼 단단하고 바위처럼 모진 풍파에도 끄떡없이 무병장수하라는 뜻에서 대충 '돌석'이라고 부르기로 우리끼리 약조는 했소만! 대체 남의 집 귀한 자식 이름을 왜 이리 꼬치꼬치 캐묻는 게요! 어서 내 옷자락을 놓으시오!"
그 퉁명스러운 대답을 듣는 순간, 칠성 사자의 머릿속에서는 거대한 벼락이 치듯 모든 퍼즐 조각이 완벽하게 맞춰지는 경이로운 쾌감이 밀려왔습니다. '김돌석.' 한양 바닥을 헤매며 숱한 백정과 노인네와 심지어 누렁이 똥개까지 만나며 원망했던 그 이름. 칠성 사자는 염라대왕이 노망이 나서 주소를 잘못 적어준 것이라 의심했던 자신의 끔찍한 불충을 뼈저리게 반성하며, 속으로 무릎을 탁 쳤습니다.
'아하! 명계의 주인이신 대왕마마께서는 이 핏덩이 아기가 태어날 정확한 시각과 부모가 지어줄 태명까지 이미 천기록을 통해 꿰뚫어 보시고, 시간에 딱 맞추어 내게 편지 배달 심부름을 보내신 것이구나! 이 얼마나 소름 돋도록 완벽하고도 징그러운 혜안이신가! 역시 명계의 일인자 자리는 아무나 해 먹는 것이 아니었어!'
칠성 사자는 꼬박 하루 동안 한양 바닥을 헤매느라 곯아버린 배와 퉁퉁 부어오른 다리의 통증도 잊은 채, 더없이 환하고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김 진사의 코앞으로 황금빛 봉투를 쑥 내밀었습니다.
"허허허! 이거 참으로 기막히고도 소름 돋는 우연이 아닐 수 없소이다! 내가 그토록 다리가 붓도록 한양 바닥을 헤매며 애타게 찾던 이 위대한 편지의 수신인이, 바로 방금 전 응애 하고 태어난 당신의 귀한 아들 '김돌석' 아기씨올시다! 자, 수신인을 찾았으니 어서 이 편지를 받으시오!"
김 진사는 이 낯선 사내가 드디어 미쳤구나 싶어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크게 쳤습니다.
"이보시오, 검은 옷을 입은 객객 양반. 지금 나와 장난하시는 게요? 방금 막 태어나 젖도 못 떼고 눈도 못 뜬 핏덩이에게 누군가 편지를 보낸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요? 당신이 뉘신지는 모르겠으나, 남의 집 귀한 경사에 실없는 농담이나 늘어놓을 작정이면 당장 이 댁에서 물러가시오!"
김 진사가 몹시 불쾌하다는 듯 매몰차게 손을 내저으며 돌아서려 했지만, 칠성 사자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그 두툼하고 묵직한 황금빛 봉투를 김 진사의 가슴팍에 억지로 콱 쥐여주었습니다.
"진사 양반. 나는 남의 집 문전에서 헛농담이나 할 만큼 한가롭고 여유로운 사람이 아니오. 이 서찰은 이승의 흔해 빠진 종이부스러기가 아니라, 저 아득히 높고 무서운 곳에 계신 분께서 당신의 귀한 아들에게 내리는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예언'이 담긴 밀서요. 아비 된 자로서 아들의 목숨과 가문의 운명이 걸린 이 경고를 끝내 외면하겠다면 굳이 멱살을 잡고 말리지는 않겠소만, 훗날 멸문지화를 당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땅을 쳐도 그때는 아무 소용없을 것이오!"
칠성 사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말은 결코 평범한 심부름꾼의 가벼운 투정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겉모습은 평범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그의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과 낮게 깔린 목소리에는 저승사자 특유의 서늘하고도 압도적인 저승의 기운이 짙게 서려 있었습니다. 김 진사는 자신도 모르게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싹한 한기를 느끼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그리고 마치 거대한 신령의 힘에 홀린 사람처럼, 자신도 모르게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그 묵직한 황금빛 봉투를 공손히 받아 들고 말았습니다.
'이토록 눈이 부시게 화려한 금빛 봉투라니… 게다가 봉투를 만지는 순간 찌릿하게 전해오는 이 기이한 열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필시 사람이 만든 보통의 물건이 아니다. 대체 어느 귀신이, 방금 태어난 내 핏덩이 아들에게 이토록 무서운 예언을 내린단 말인가.'
김 진사가 극도의 호기심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교차하는 복잡한 눈빛으로 봉투에 찍힌 붉은 밀랍을 조심스레 뜯어내려 하자, 칠성 사자는 마침내 징글징글했던 임무를 완수했다는 홀가분하고 후련한 표정으로 삐딱하게 썼던 갓을 바로 고쳐 썼습니다.
"그럼 내게 주어진 할 일은 여기서 끝났으니, 나는 이만 바쁜 길을 가보겠소. 편지의 내용은 절대 이 집 밖의 그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아니 되며, 아기가 장성하여 스스로 운명을 개척할 때까지 아비가 곁에서 잘 간직하고 명심하시구려. 그럼 앞으로 닥칠 모진 풍파를 잘 견뎌내시길 바라오!"
칠성 사자는 뼈 있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기가 무섭게, 마치 연기처럼 휙 하고 몸을 돌려 칠흑같이 어두운 골목길 너머로 쏜살같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펄펄 끓는 저승의 최고급 유황 온천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풀 생각뿐이었습니다. 홀로 휑한 마당에 덩그러니 남겨진 김 진사는 귀신에 단단히 홀린 듯한 아득한 기분으로, 떨리는 손끝을 애써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어 그 안에 담긴 서찰을 꺼내 펼쳤습니다.
구름 사이로 잠시 얼굴을 내민 밝은 달빛에 비친 편지지는 이승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하학적 무늬가 들어간 최고급 한지였으며, 검은 먹물로 쓰인 글씨는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용이 종이 위를 꿈틀거리며 하늘로 승천하는 듯 엄청난 기백과 유려함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편지에 적힌 그 웅장한 내용을 소리 내어 읽어 내려가던 김 진사의 두 눈동자는 이내 경악과 공포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편지를 꽉 쥔 두 손은 겨울밤 찬바람을 맞은 사시나무처럼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명부의 주인이 이승의 핏덩이 김돌석의 아비에게 엄히 고하노라. 이 아이는 본디 하늘의 뜻을 받들어 나라를 지킬 무신(武神)의 기운을 뼛속 깊이 타고났으나, 만약 양반의 허울에 갇혀 붓을 쥐고 글을 읽게 만든다면, 열다섯이 되는 해에 끔찍한 역모의 누명을 뒤집어쓰고 가문을 철저히 멸망시킬 참혹한 흉성(凶星)을 품고 태어났다. 만약 네가 이 귀한 아이의 목숨과 뼈대 있는 가문을 살리려거든, 대대로 내려오는 문관의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고 절대 아이에게 천자문 한 글자도 가르치지 말라. 대신 열 살이 되기 전 그 손에 붓 대신 무거운 칼을 쥐여주고 피나는 무예를 연마하게 하라. 그리하면 장차 닥쳐올 거대한 전란 속에서 조선을 위기에서 구해낼 가장 위대한 대장군으로 성장할 것이다.]
김 진사는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혀오며 핑 도는 현기증과 함께 차가운 흙바닥에 털썩 하고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역모라니. 역모의 누명을 쓰고 가문이 멸망한다니! 대대로 이름난 문관을 배출하며 먹물 냄새를 긍지로 여기고 살아온 뼈대 있는 안동 김씨 가문의 귀한 장손에게, 붓을 꺾어버리고 그 무식하고 쌍스러운 칼을 쥐어주라니!
"이… 이것이 대체 무슨 해괴망측하고도 저주스러운 예언이란 말인가! 천신만고 끝에 얻은 내 귀한 아들이 가문을 멸문지화로 이끌 흉성을 품고 태어나다니, 말도 안 돼! 이건 미친놈의 악랄한 장난질이 분명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김 진사는 극도의 공포와 주체할 수 없는 혼란 속에서 당장이라도 그 불길한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발겨 화로에 던져버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두 손에 힘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편지 봉투 겉면에 희미하게 붉은빛을 내뿜으며 찍혀 있는 거대한 인장. 그것은 아주 오래전 기이한 야담 책에서나 그림으로 보았던 명계의 절대적인 주인, 염라대왕의 무시무시한 도장이 너무나도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습니다.
※ 5: 편지에 담긴 황당한 예언과 가문을 덮친 절체절명의 위기.
염라대왕의 그 불길하고도 기이한 편지가 배달된 그날 밤 이후, 김 진사의 삶은 돌석이를 향한 지독한 번뇌와 피 말리는 딜레마로 엉망진창 얼룩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그 괴상한 편지를 그저 자신을 시기하는 누군가가 꾸며낸 미친놈의 장난질이라 치부하며 억지로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려 애를 썼습니다. 사대부 가문에서 태어난 장손이 글을 읽지 않고 칼을 잡는다는 것은 가문의 수치이자 조상님을 뵐 면목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돌석이가 무럭무럭 자랄수록, 편지에 적힌 예언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이의 주변에서는 도저히 믿기 힘든 기이한 현상들이 끊임없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돌석이는 불과 세 살배기 핏덩이일 적부터 자신의 몸집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빨랫방망이를 장난감처럼 휙휙 휘두르며 동네의 맹견들을 쫓아내어 동네 사람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습니다. 다섯 살이 되던 해에는 쌀가마니를 나르는 장정 둘이 장난삼아 아이에게 덤벼들었다가, 아이의 엄청난 완력에 밀려 마당에 나동그라지는 기상천외한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반면, 어떻게든 양반의 명맥을 잇게 하려 김 진사가 아이를 책상 앞에 앉히고 작은 붓을 쥐여주며 천자문을 가르치려 할 때면, 돌석이는 금세 온몸에 붉은 반점과 두드러기가 돋아나며 불덩이처럼 열병을 앓아눕곤 했습니다. 그러나 병석에 누워 앓다가도, 마당에 나가 굵은 목검을 쥐고 허공을 향해 휘두를 때면 언제 아팠냐는 듯 펄펄 날며 물 만난 고기처럼 온몸에 무서운 생기가 넘쳐흘렀습니다.
이 기막힌 상황을 지켜보던 아내와 집안의 늙은 노비들은 "우리 쇠락해 가는 가문에 필시 훗날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나라를 구할 엄청난 장군감이 났다!"며 손뼉을 치며 기뻐했지만, 홀로 진실을 알고 있는 김 진사의 가슴속에는 십 년 전 저승사자가 전해주었던 염라대왕의 그 끔찍한 예언이 거대한 시한폭탄처럼 매일 밤 째깍거리며 그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습니다.
'붓을 쥐면 가문이 멸망하고 역적으로 몰릴 것이며, 칼을 쥐면 대장군이 되어 목숨을 건질 것이다….'
결국 김 진사는 수백 번의 통곡과 고민 끝에, 뼈대 높은 명문가의 알량한 자존심을 꺾고 신의 얄궂은 예언에 처절하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의 목숨과 가문의 생존이 달린 일 앞에 양반의 체면 따위는 사치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아들 돌석이가 열 살이 되던 해의 어느 밤, 눈물을 머금고 아이의 방에 있던 수백 권의 귀한 사서삼경과 서책들을 모조리 아궁이에 던져 불태워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 도성에서 가장 이름이 높고 무예가 출중하다는 퇴역한 무관을 거금을 주고 스승으로 모셔와 아들의 두 손에 붓 대신 차갑고 무거운 진검을 쥐여주었습니다. 돌석이는 마치 전생에서부터 칼을 다뤄온 무신처럼 무예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배우는 속도가 경이로울 정도로 빨랐습니다. 불과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이르러서는, 도성의 내로라하는 장정 열 명을 맨손으로 가볍게 제압하고 말을 타며 활을 쏘는 솜씨가 가히 신의 경지에 이른 무서운 소년 장수로 폭풍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돌석이가 정확히 열다섯 살 생일을 넘기던 그해 가을, 조선 팔도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거대한 비극적 사건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북방 국경을 지키던 장수들이 배신을 하고, 수만 명의 잔혹한 오랑캐들이 대규모 군사를 이끌고 국경을 넘어 도성을 향해 파죽지세로 진격해 온 것입니다. 조정의 썩어빠진 대신들은 백성들을 버리고 공포에 휩싸여 벌벌 떨었고, 무능한 임금은 서둘러 피난봇짐을 싸며 몽진을 준비하며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었습니다.
도성 전체가 불바다가 되고 피난민들로 아수라장이 된 어느 어두운 밤, 남겨진 김 진사의 집 굳게 닫힌 대문이 벼락을 맞은 듯 박살 나며 부서지더니, 수십 명의 금부도사와 횃불을 든 나졸들이 살기를 띠고 들이닥쳤습니다.
"역적 김진사 일가는 당장 마당으로 기어 나와 무릎을 꿇고 어명을 받들라!"
금부도사의 서슬 퍼런 호령에, 안방에서 떨고 있던 김 진사 일가는 사색이 되어 포승줄에 묶인 채 마당으로 무참히 끌려 나왔습니다.
"여… 역적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평생을 향촌에 묻혀 조용히 늙어가는 우리 가문이 어찌 나라를 팔아먹는 역모를 꾸몄단 말이오! 어찌 이리 무도한 짓을 한단 말이오!"
"조정에 불만을 품은 북촌의 몹쓸 양반 놈들이, 이 혼란을 틈타 오랑캐 장수와 은밀히 내통하여 내일 밤 도성의 문을 몰래 열어주기로 한 은밀한 서찰과 명단이 방금 전 발각되었다! 그 간악한 역적들의 명단 맨 윗줄에 바로 네놈, 김 진사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거늘 어디서 발뺌을 하려 드느냐! 당장 이 반역자 놈들을 모조리 옥에 가두고 멸문지화의 형벌을 내리리라!"
김 진사는 하늘이 두 쪽으로 무너지는 듯한 극도의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평소 불의를 참지 못하고 꼿꼿한 성품으로 부정부패를 일삼던 조정 대신들의 미움을 단단히 샀던 터라, 이 국가적인 대혼란의 틈을 타 누군가 그를 제거하기 위해 억울하고도 악독한 누명을 씌운 것이 너무도 분명했습니다.
금부도사들이 섬뜩한 살기를 띠며 시퍼런 칼을 빼 들고 김 진사의 목을 향해 칼끝을 들이미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내 아버님 몸에 터럭 하나라도 대는 놈은, 그 자리에서 당장 목통을 베어 짐승의 먹이로 던져버리겠다!"
마치 산을 울리는 호랑이의 벼락같은 고함 소리와 함께, 마당 한쪽 어둠 속에서 무시무시한 기백을 내뿜으며 튀어나온 거대한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열다섯 살의 소년 장수, 돌석이였습니다. 그의 커다란 손에는 달빛을 받아 시퍼렇게 번뜩이는 묵직한 장검이 쥐어져 있었고, 그의 두 눈빛은 피에 굶주린 맹수처럼 무서운 살기를 띠고 붉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이… 이 건방진 놈! 감히 금부도사의 앞을 칼로 막아서고 위협하다니, 정녕 네놈이 역모를 스스로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능지처참을 당해 죽고 싶은 게냐!"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집어치워라! 오랑캐가 코앞에 닥쳐 백성들이 도륙을 당하고 있는데, 그들을 버리고 도망칠 궁리나 하는 썩어빠진 조정의 개들이 무슨 염치로 죄 없는 충신에게 역적 누명을 씌운단 말이냐! 내 오늘 이 칼로 너희들의 썩은 목을 단숨에 치고, 내친김에 성문 밖 오랑캐들의 목까지 썰어버릴 것이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돌석이는 한 마리 거대한 맹수처럼 칼을 꼬나쥐고 금부도사들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습니다. 그가 무거운 장검을 허공에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훈련받았다는 정예 나졸들이 마치 추풍낙엽처럼 비명을 지르며 팔다리가 꺾인 채 마당 위로 뒹굴고 나가떨어졌습니다. 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엄청난 무력과 귀신같은 살기에 완전히 압도된 금부도사들은 오줌을 지리며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치다 급기야 무기를 버리고 대문 밖으로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그 피 튀기고 참혹한 아수라장 속에서, 바닥에 주저앉아 덜덜 떨고 있던 김 진사의 머릿속에 십오 년 전 그 기묘했던 저승사자가 전해주고 간 염라대왕의 편지 내용이 번쩍하는 섬광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열다섯이 되는 해에 끔찍한 역모의 누명을 뒤집어쓰고 가문을 철저히 멸망시킬 참혹한 흉성을 품고 태어났다. 절대 글을 가르치지 말고 무거운 칼을 쥐여 피나는 무예를 연마하게 하라….'
김 진사는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전율했습니다. 만약 돌석이가 저승의 예언을 무시하고 예전대로 칼이 아닌 붓을 쥔 유약하고 힘없는 선비로 자라났더라면, 지금쯤 온 가족이 저 간악한 금부도사들의 칼날 아래 무기력하게 목이 날아가고 멸문지화를 당해 길바닥의 시체로 뒹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결단으로 붓을 꺾고 칼을 쥔 돌석이는, 억울한 역모의 누명과 무력 앞에서도 가문 전체의 목숨을 든든하게 지켜낼 수 있는 압도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이 보낸 그 기괴한 편지는 가문을 향한 저주가 아니라, 위기에 빠질 가문을 미리 살려내기 위해 하늘이 내려준 기적의 동아줄이었던 것입니다.
※ 6: 예언이 적중한 운명의 날, 붓 대신 칼을 쥔 아기의 놀라운 반전.
돌석이의 압도적인 무력과 기백에 완전히 제압당한 금부도사 무리는 혼비백산하여 어둠 속으로 도망쳤고, 김 진사 일가는 그야말로 구사일생으로 억울한 죽음의 위기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생존을 기뻐할 틈도 없이, 조선을 뒤덮은 거대한 국가적 위기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던 북방의 잔혹한 오랑캐들이 마침내 도성 북쪽 성문 앞까지 진격해 와 진을 치고 성벽을 부수려 발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조정의 정규 군대마저 두려움에 빠져 무기를 버리고 뿔뿔이 흩어져버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돌석이는 마당에 무릎을 꿇고 아버지 김 진사에게 큰절을 묵직하게 올렸습니다.
"아버님. 소자 이제 가문의 목숨을 구했으니, 밖으로 나가 나라와 짓밟히는 백성을 구하기 위해 참혹한 전장으로 뛰쳐나가겠습니다. 비록 제 나이 어리오나 내 나라를 유린하는 저 야만족의 무리를 결단코 살려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아버님과 어머님께서는 이곳에 숨어 몸을 옥체 보존하시옵소서!"
눈물범벅이 된 김 진사는 아들의 듬직한 어깨를 부여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가거라, 내 자랑스러운 아들아! 네 시퍼런 칼끝에 이 위태로운 조선의 명운이 모두 달렸다. 부디 적들의 목을 베고 살아 돌아와, 저승의 예언대로 하늘이 내린 위대한 대장군이 되어 돌아오너라!"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돌석이는 피난을 가지 못하고 도성에 남아있던 젊은 백성들과 노비들을 모아 스스로 강력한 의병 부대를 조직했습니다. 그리고 굳게 닫힌 성문을 스스로 열어젖히고, 성벽을 뚫고 들어오려는 수천 명의 오랑캐 선봉 부대를 향해 홀로 백마를 타고 포효하며 달려 나갔습니다.
"이 더러운 오랑캐 놈들아! 내 오늘 너희들의 피로 이 땅을 붉게 적셔주마!"
그의 묵직하고 시퍼런 장검이 폭풍처럼 바람을 가를 때마다, 오랑캐 병사들의 목과 팔다리가 마치 가을철 추수할 때의 볏단처럼 숭덩숭덩 허공으로 베어져 나갔습니다. 사방에서 시커먼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는 지옥 같은 전장 한가운데서도, 돌석이는 두려움 하나 없이 적진 깊숙이 파고들어 단칼에 적장의 목을 베어 창끝에 높이 치켜들었습니다. 그 무시무시하고 신들린 듯한 무예와 미친 호랑이 같은 기백에 완전히 기가 꺾인 오랑캐들은, 결국 저놈은 인간이 아니라 하늘이 내린 귀신이라며 비명을 지르고 앞다투어 북쪽으로 꽁지 빠지게 퇴각하고 말았습니다.
불과 열다섯 살 소년의 날카로운 칼끝 하나가, 거센 바람 앞의 위태로운 등불 같던 조선이라는 나라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완벽하게 구해낸 실로 기적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전란이 기적처럼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후,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치려 짐을 쌌던 임금은 자신의 비겁함과 무능함을 깊이 반성하며 부끄러운 얼굴로 도성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구한 전설적인 소년 영웅, 김돌석을 화려한 궁궐의 편전으로 불렀습니다.
"네 나이가 고작 열다섯의 어린 소년이거늘, 어찌 그리 무예가 신의 경지에 이르고 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간장이 두둑하단 말이냐! 네가 없었더라면 과인은 조상님을 뵐 면목이 없었을 것이다! 내 오늘 너를 조선의 전 군대를 통솔하는 최고 훈련대장으로 임명하여, 평생토록 이 나라의 굳건한 기둥으로 삼으리라!"
돌석이는 임금의 극찬과 막대한 상을 받으며 붉은 융복을 입은 늠름하고 위대한 대장군으로 우뚝 섰고, 김 진사 일가에게 씌워졌던 억울한 역모의 누명 역시 철저한 조사를 통해 배후가 밝혀지며 완벽하고 통쾌하게 벗겨졌습니다.
한편, 이승에서 벌어진 이 모든 웅장하고도 기적적인 반전의 광경을, 저승의 깊은 궁궐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수경(水鏡)을 통해 무척이나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허허허! 으하하하! 거 보아라! 내가 명부에 적힌 천기를 읽고 미리 내려준 내 예언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승에서 딱 들어맞지 않았느냐! 칠성이 그 무식한 놈이 궁시렁거리면서도 한양 바닥에서 심부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해냈구나!"
염라대왕이 커다란 부채를 무릎에 탁탁 치며 호탕하게 웃어젖히자, 곁에서 펄펄 끓는 뜨거운 최고급 유황 온천욕을 즐기며 시원하게 때를 밀고 있던 칠성 사자가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두른 채 탕 밖으로 나와 넙죽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과연 명부의 절대적인 주인이신 대왕마마의 깊고도 신묘한 혜안에 소인 칠성, 두 손 두 발 다 들고 넙죽 엎드렸사옵니다. 처음 태어난 핏덩이 갓난아기에게 그 두꺼운 편지를 배달하라고 하실 때는 솔직히 대왕마마께서 드디어 노망이 나시어 제정신이 아니신 줄 알았사오나, 결국 그 황당무계했던 편지 한 장이 한 가문을 억울한 멸문지화에서 구하고 덤으로 위태로운 조선 땅까지 지켜낸 셈이 되었사옵니다. 진실로 감복하였나이다."
염라대왕은 붉은 얼굴에 사람 좋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수경 속에서 장군복을 입고 늠름하게 서 있는 돌석이의 모습을 따뜻하게 어루만졌습니다.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운명이란 본디 명부에 정해져 있는 법이다. 허나 가끔은 저리 훌륭하고 뛰어난 재목이 양반이라는 엉뚱한 껍데기와 길에 얽매여 억울하게 능지처참을 당해 이승을 뜨는 꼴을 내 차마 두고 볼 수가 없었느니라. 칠성이 너도 그날 밤 똥개들 사이에서 고생이 많았으니, 며칠 더 유황 온천 푹 즐기고 푹 쉬면서 체력을 보충하도록 하여라!"
"에이, 대왕마마. 달콤한 특별 휴가는 휴가고, 다음부터는 제발 편지 배달 심부름 같은 것은 저 말고 까마귀 녀석들에게 시키시지요. 그날 한양 바닥에서 백정 돌석이 놈한테 소뼈로 머리통을 맞을 뻔한 걸 생각하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심장이 철렁하고 억울하옵니다!"
저승의 붉고 웅장한 하늘 위로 칠성 사자의 유쾌하고 넉살 좋은 볼멘소리와 염라대왕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사이좋게 울려 퍼졌습니다. 이승의 평화와 한 소년 장수의 위대한 탄생 뒤에는, 이토록 황당하고도 따뜻했던 저승사자의 기막힌 편지 배달 사건이 비밀스럽게 숨어 있었습니다. 하늘이 맺어준 얄궂은 운명도 결국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간의 손으로 어찌 개척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기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명계의 주인 염라대왕이 어리석은 조선 팔도 양반들에게 던진, 세상에서 가장 유쾌하고도 위대한 농담이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야담광장 시청자 여러분, 오늘 들려드린 <저승사자의 황당 편지 배달> 이야기 어떠셨나요? 갓 태어난 아기에게 온 염라대왕의 편지라니, 참으로 황당하지만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이 가문을 살리고 나라를 구하는 짜릿한 반전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의 운명도 어쩌면 주어진 길을 어떻게 걸어가느냐에 따라 기적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이야기가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유쾌한 댓글 꼭 남겨주세요. 다음 이 시간에도 여러분의 피로를 싹 날려줄 재미있는 야담으로 찾아오겠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