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학교에서 배운 교훈
영혼 학교에서 배운 교훈 , 낙제 점수 받고 가족의 품으로 『어우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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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 멘트 (300자 내외)
"여보게, 자네는 이승이라는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평생 돈을 모으고 가문을 일으키느라 앞만 보고 달려온 최 진사. 어느 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눈을 떠보니, 그곳은 무서운 지옥이 아니라 거대한 '학교'였습니다. 염라대왕은 심판관이 아닌 교장 선생님처럼 그를 맞이하는데요. "자네 성적표를 보니 '사랑' 과목이 낙제로군."
뜻밖의 낙제점을 받고, 보충 수업을 위해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최 진사!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은 인생의 진짜 보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가슴 따뜻한 기적의 이야기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조선 숙종 때, 한양의 거부 최 진사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았지만 정작 가족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줄 모르는 무뚝뚝한 가장이었습니다. 예기치 않게 세상을 떠나 저승의 '영혼 학교'에 도착한 그는, 인생이 영혼을 성장시키는 배움터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재물과 명예 점수는 만점이지만, 가족과의 추억 점수는 빵점인 성적표를 받아든 최 진사. 그는 염라대왕에게 간청하여 '보충 수업'의 기회를 얻어 이승으로 돌아옵니다. 죽었다 살아온 아버지가 가족들과 만들어가는 눈물겹고 행복한 인생 2회차 이야기.
※ 평생 일만 하다 병석에 누운 최 진사, 가족들과 서먹한 채 눈을 감다
조선 숙종 임금 시절, 한양 도성 안에서도 으뜸가는 부자로 소문난 최 진사 댁 사랑방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평생을 쉬지 않고 일해 거대한 기와집과 드넓은 논밭을 일궜지만, 정작 예순이 넘은 최 진사의 몸은 낡은 수레바퀴처럼 삐걱거리고 있었습니다.
방 아랫목에 누운 최 진사는 흐릿해져 가는 눈으로 천장을 응시했습니다. 서까래 하나하나, 기둥 하나하나가 모두 자신의 피와 땀으로 세운 것들이었지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은 텅 빈 것처럼 허전했습니다.
"영감, 물 좀 드시겠소?"
평생 고생만 시킨 아내가 조심스레 다가와 물을 권했습니다. 최 진사는 고개를 저으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곱던 얼굴에는 어느새 주름이 자글자글했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애정보다는 안쓰러움과 어려움이 섞여 있었습니다. 자식들도 문밖에서 서성일 뿐, 엄한 아버지가 어려워 선뜻 들어와 손을 잡아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살았단 말인가. 곳간에 쌀이 가득하면 무엇하나.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 하나 없고, 나 또한 저들의 마음을 모르니...'
최 진사는 가슴이 답답해져 왔습니다. 젊은 시절, 자식들이 놀아달라고 보채면 "돈 버는 게 다 너희를 위해서다"라며 호통을 쳤고, 아내가 힘들어하면 "남들 부러워하는 마님 소리 듣게 해 줬으면 됐지, 무슨 불만이냐"며 무시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다시... 다시 살 수만 있다면... 따뜻한 밥 한 끼 웃으며 먹고 싶구나.'
하지만 시간은 야속하게도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창밖의 단풍잎 하나가 바람에 떨어지듯, 최 진사의 거친 숨소리가 점점 잦아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내의 손이라도 한번 따뜻하게 잡아보고 싶었지만, 굳어버린 손가락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여보..."
입안에서 맴돌던 미안하다는 말은 끝내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최 진사의 눈이 스르르 감기자, 방 안을 채우던 가느다란 숨소리가 멈추었습니다. 곧이어 "영감! 영감!" 하는 아내의 통곡 소리가 고요한 집안을 울렸습니다. 한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았다고 자부했지만, 정작 가족과 마음을 나누지 못했던 어느 외로운 가장의 쓸쓸한 퇴장이었습니다.
※ 저승차사의 안내를 받아 평화롭고 아름다운 저승길(영혼 학교)로 향하다
최 진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이 누워 있던 칙칙한 사랑방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몸은 솜털처럼 가벼웠고, 지긋지긋하던 가슴의 통증도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일어나셨습니까, 최 학인(學人)님."
부드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갓을 쓴 젊은 선비 두 명이 서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무시무시한 저승차사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옷자락에서는 은은한 묵향이 났고, 표정은 마치 서당의 훈장님을 모시는 조교처럼 정중했습니다.
"자네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학인이라니? 나는 한양 사는 최 진사일세."
"저승에서는 이승의 직함이 소용없습니다. 이곳은 영혼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학교와 같은 곳이지요. 저희는 어르신을 '영혼 학교'로 안내할 인도자들입니다. 자, 가시지요."
최 진사는 얼떨떨한 마음으로 그들을 따라나섰습니다. 문밖으로 나서자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그곳은 캄캄한 황천길이 아니었습니다. 발아래에는 오색 구름이 양탄자처럼 깔려 있었고, 길가에는 이승에서 보지 못한 신비로운 꽃들이 만발하여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허허, 참으로 아름답구나. 내 평생 비단옷을 입고 산해진미를 먹었어도, 이런 풍경은 본 적이 없네. 여기가 정말 저승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승의 삶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는 영혼들을 환영하는 길이지요. 마음이 맑은 분들에게는 꽃길로 보이고, 죄가 많은 분들에게는 가시밭길로 보인답니다. 어르신 눈에 꽃이 보이니, 참으로 열심히 사셨나 봅니다."
인도자의 칭찬에 최 진사는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그럼,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데. 남한테 손가락질받을 짓 안 하고, 제사 꼬박꼬박 지내고, 자식들 굶기지 않았으니 이 정도 대접은 받아야지.'
그는 발걸음도 가볍게 구름 위를 걸었습니다. 길을 걷다 보니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다리가 나왔습니다.
"이곳은 '망각의 시내'입니다만, 지금은 건너지 않고 바로 학교로 가실 겁니다. 어르신의 성적표를 먼저 확인해야 하니까요."
"성적표? 허허, 내가 과거 급제는 못 했어도 장부 정리는 기가 막히게 했지. 내 인생 결산서라면 자신 있네."
최 진사는 자신만만했습니다. 자신이 쌓아 올린 재산과 가문의 영광이 저승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길 끝에는 거대한 기와집들이 웅장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곳은 심판의 장소가 아니라, 마치 거대한 성균관처럼 학구적이고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영혼 학교'의 본관이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배움의 시작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 심판정이 아닌 강의실 같은 명부전에서 염라대왕과 '인생 성적표'를 마주하다
안내자들을 따라 최 진사가 당도한 곳은 '명부전(冥府殿)'이라 적힌 거대한 강의실이었습니다. 이곳은 죄인을 심판하는 법정이라기보다는, 우주의 모든 지혜가 모여 있는 거대한 도서관이나 학당에 가까웠습니다.
높은 천장은 뚫려있는 듯 밤하늘의 별자리가 그대로 수놓아져 반짝이고 있었고, 벽면 가득 꽂힌 수만 권의 책들에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세상을 다녀간 모든 사람들의 이름과 행적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공기 중에는 은은한 묵향과 오래된 종이 냄새가 감돌아, 최 진사의 들뜬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습니다.
그리고 그 중앙, 높은 단상 위에는 붉은 관복을 입은 염라대왕이 앉아 있었습니다. 전설 속 무시무시한 도깨비 형상이 아니었습니다. 흰 수염을 가슴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두꺼운 안경을 쓴 채 장부를 들여다보는 모습은 영락없이 인자하고 학식 높은 노교장 선생님의 모습이었습니다.
"한양의 최 진사, 어서 오게. 먼 길 오느라 수고가 많았네. 기다리고 있었네."
염라대왕의 목소리는 우렁차면서도 따뜻한 울림이 있었습니다. 최 진사는 저도 모르게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생전 벼슬아치들을 대할 때보다 더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절을 올렸습니다.
"소인 최가, 대왕님을 뵙습니다. 살아서도 뵙기 힘든 분을 죽어서 뵙게 되니 영광입니다."
"이곳에서는 대왕이라 부르지 않아도 되네. 나는 그저 자네들이 이승이라는 학교에서 인생 공부를 잘 마치고 왔는지 확인하고, 다음 과정을 안내해 주는 교장이라 생각하게. 자, 어디 자네의 '인생 생활기록부'를 한번 볼까?"
염라대왕은 책상 위에 놓인 두툼한 황금색 장부를 펼쳤습니다. 최 진사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습니다. 마치 서당 훈장님 앞에서 회초리를 기다리는 학동이 된 기분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내 인생이야말로 한 점 부끄러움이 없지. 남의 돈 떼먹은 적 없고, 도둑질한 적 없고, 오로지 내 손발이 부르트도록 일해서 자수성가했으니. 아마 상장이라도 주시려나?'
염라대왕은 돋보기를 고쳐 쓰고 장부를 꼼꼼히 읽어 내려갔습니다.
"흠... 보자. 어디 보자... 허허, 이거 대단하구만. '성실함' 과목은 수석일세, 수석. 새벽닭이 울기 전에 일어나서 밤이 늦도록 쉬지 않고 일했어. 60 평생 게으름을 피운 날이 단 하루도 없구만."
"예, 그렇습니다! 제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논밭을 지켰습니다."
"어디 그뿐인가. '책임감' 과목도 최우수야. 무너져가던 가문을 일으키고, 자식들 굶기지 않고 서당까지 보내 공부시켰으니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해. '절약' 과목도 만점이고. 짚신 한 켤레도 기워 신고 또 기워 신었더군."
최 진사의 입가에 감출 수 없는 미소가 번졌습니다. 어깨가 절로 으쓱해졌습니다. 역시 자신의 치열했던 삶은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승에서도 이렇게 인정받으니 지난 세월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장 선생님! 제가 평생 남들보다 덜 자고 덜 먹으며 일궜습니다. 이만하면 우등상이라도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좋은 곳으로 보내주십시오."
하지만 염라대왕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습니다. 그는 안경 너머로 최 진사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장부의 뒷장을 넘기며 쯧쯧 혀를 찼습니다.
"헌데... 이거 큰일이구만. 선택 과목 점수는 훌륭한데, 정작 제일 중요한 '필수 과목'에서 점수가 형편없어. 아니, 이건 거의 낙제 수준이야."
"예? 나, 낙제라니요? 제가 무슨 과목을 못 했단 말입니까? 계산을 잘못하신 건 아닙니까?"
최 진사는 당황하여 되물었습니다. 염라대왕은 돋보기를 내려놓고, 안타까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최 진사를 바라보았습니다.
"자네, 이승 학교의 설립 이념이 무엇인지 아는가? 우리가 영혼들을 왜 육신이라는 옷을 입혀 이승으로 유학 보내는지 아는가? 그건 바로 '사랑'을 배우고 오라는 뜻일세. 재물을 모으고 명예를 얻는 건 그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실습 도구일 뿐이지. 그런데 자네의 '사랑' 과목 점수를 보게나."
염라대왕이 허공에 손을 휘젓자, 공중에 커다란 동그라미 모양의 거울이 나타났습니다. '업경대(業鏡臺)'라 불리는 그 거울 속에는 최 진사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니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지난날의 모습들이 안개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 재물은 쌓았으나 마음을 나누지 못한 지난 삶을 후회하며 눈물 흘리다
거울 속에 비친 장면은 30년 전 어느 매서운 겨울밤이었습니다. 단칸방에서 어린 아들이 열이 펄펄 끓어 끙끙 앓고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최 진사는 호롱불 아래서 장부를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여보, 아이가 많이 아파요. 숨소리가 이상해요. 의원 좀 불러주세요, 네?"
젊은 아내가 울먹이며 매달렸지만, 거울 속의 최 진사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주판알만 튕겼습니다.
"지금 이 계산이 틀리면 돈이 얼마가 날아가는데! 의원 부르면 돈이 한두 푼 드는 줄 알아? 애들은 다 아프면서 크는 거야. 물수건이나 올려줘. 시끄러워서 집중이 안 되잖아!"
최 진사는 아내에게 소리를 버럭 지르고는 등돌려 앉았습니다. 아내는 아픈 아이를 업고 밤새도록 차가운 마당을 서성이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날 밤, 아내의 눈물이 고드름처럼 얼어붙는 것을 거울 밖의 늙은 최 진사는 비로소 보았습니다.
장면이 바뀌었습니다. 10년 전, 최 진사의 환갑잔치 날이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였고, 자식들이 정성껏 준비한 비단 옷과 선물을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최 진사는 선물을 뜯어보지도 않고 툭 던지며 말했습니다.
"돈도 없는 것들이 겉치레는... 이런 거 살 돈 있으면 저축이나 해라. 내가 비단 옷 입는다고 쌀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쓸데없는 짓거리들 하고는."
무안해진 자식들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고, 며느리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잔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그날 이후 자식들은 아버지를 어려워하며 점점 멀어졌습니다. 최 진사는 그것이 가장의 위엄이라 생각했으나, 거울 속 자식들의 눈빛에는 두려움과 상처만이 가득했습니다.
또 다른 장면. 아내가 며칠을 고아 정성껏 끓여온 보약을 마시며 최 진사가 뱉은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습니다.
"약재는 좋은 거 쓴 거 맞아? 당신이 뭘 알아야지. 약재상한테 속아서 싼 거 쓰고 비싼 돈 줬을까 봐 걱정이네. 맛이 왜 이리 밍밍해?"
아내는 말없이 돌아서서 부엌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소리 죽여 울었습니다. 그녀의 등은 너무나 작고 초라해 보였습니다.
최 진사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차마 똑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기억하는 '가족을 위한 헌신'이, 가족들에게는 '차가운 폭력'이었음을, '절약'이라 믿었던 행동들이 실은 '인색함'이었음을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보게나. 자네는 가족을 위해 일한다고 했지만, 정작 가족들의 마음은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어. 자네가 집에 들어오면 집안에 온기가 도는 게 아니라, 찬바람이 불었지. 가장 가까운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고, 그들의 마음에 상처만 남겼는데, 어찌 인생을 잘 살았다고 할 수 있겠나?"
염라대왕의 준엄한 꾸짖음에 최 진사는 그만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변명할 말이 없었습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후회가 밀려와 목구멍을 막았습니다.
"제가...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돈만 벌어다 주면 내 할 도리 다 하는 줄 알았습니다. 쌀독만 채우면 행복인 줄 알았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다정한 눈빛 한 번이 돈보다 귀한 줄 몰랐습니다. 아이고, 이 일을 어찌합니까..."
최 진사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명부전의 바닥을 적셨습니다. 그것은 억울함의 눈물이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과 사랑에 대한 사무치는 참회의 눈물이었습니다. 평생 쌓아 올린 금자탑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염라대왕님... 아니, 교장 선생님. 제가 잘못 살았습니다. 이대로 졸업할 수는 없습니다. 낙제생으로 남아 지옥에 가도 할 말이 없습니다만, 제발... 제발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이라도 하게 해주십시오."
최 진사는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읍소했습니다. 염라대왕은 그런 최 진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습니다.
"이곳의 규칙은 엄격하네. 한번 육신을 벗은 영혼은 다시 돌아갈 수 없어. 허나... 자네가 흘리는 그 눈물이 진심이군. 자네의 성실함 점수가 아까워서 특별히 '보충 수업'의 기회를 줄 수도 있지."
"보, 보충 수업이요? 그게 무엇입니까?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시키시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자네에게 시간을 조금 돌려주겠네. 길지는 않아. 1년, 딱 1년일세. 그 시간 동안 자네가 낙제한 '사랑' 과목을 이수하고 오게. 가족들에게 자네의 진심을 전하고, 그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고 오게나. 만약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자네는 영원히 낙제생으로 남게 될 거야. 할 수 있겠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절대, 절대 낙제하지 않겠습니다! 제 목숨을 걸고 사랑하겠습니다!"
염라대왕이 붓을 들어 최 진사의 이마에 붉은 점을 하나 찍자, 최 진사의 시야가 하얗게 변하며 아득한 현기증과 함께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기회를 향한, 간절하고도 눈물겨운 여행의 시작이었습니다.
※ 최 진사의 진심 어린 반성, 가족을 다시 사랑할 기회를 얻다
"아이고, 영감! 이렇게 허망하게 가시면 우리는 어찌 살라고... 눈 좀 떠보시오, 제발!"
귀청을 찢는 듯한 아내의 통곡 소리에 최 진사는 번쩍 눈을 떴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일 줄 알았는데, 눈앞이 흐릿하게 밝아오더니 익숙한 천장의 서까래가 보였습니다. 코끝에는 매캐한 향 냄새가 진동했고, 온몸은 뻣뻣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최 진사는 있는 힘을 다해 손가락을 까딱여 보았습니다. 영혼 학교에서 느꼈던 깃털 같은 가벼움은 온데간데없고, 천근만근 무거운 육신의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 무거움조차 감사했습니다. 다시 이승의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 다시 내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최 진사는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습니다. 목구멍이 모래밭처럼 까칠했습니다.
"여... 여보..."
쇠 긁는 듯한 갈라진 목소리가 정적을 깨고 흘러나왔습니다.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습니다. 엎드려 울던 아내가 고개를 번쩍 들었고, 상복을 입고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던 자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병풍 뒤에 놓인 관, 그리고 자신의 영정사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입관 직전, 정말 간발의 차이로 돌아온 것입니다.
"어머나! 어머나! 아, 아버지가!"
"어머니! 아버지가 눈을 뜨셨어요!"
집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문상 왔던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귀신이다!"를 외치며 뒷걸음질 쳤고, 며느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하지만 최 진사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떨리는 손을 허공으로 뻗어, 기절할 듯 놀란 아내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따뜻했습니다. 거칠고 주름진 아내의 손에서 느껴지는 이 온기. 이것이 바로 살아있음의 증거였습니다. 최 진사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베개를 적셨습니다.
"놀라지 마라... 귀신이 아니다. 내가... 내가 잠시 먼 길을 다녀왔다. 염라대왕님께 빌고 또 빌어... 너희들에게 못다 한 말이 있어서 다시 왔다."
최 진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가족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습니다. 두려움 반, 반가움 반으로 떨고 있는 자식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아내. 그들의 얼굴에서 자신이 그동안 주었던 상처의 깊이가 보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왜 이렇게 소란스럽냐"며 호통을 쳤겠지만, 지금은 그들의 존재 자체가 보석처럼 빛나 보였습니다.
"여보... 미안하오. 정말 미안하오."
최 진사의 목소리가 울먹임으로 떨렸습니다.
"내 평생 당신 고생만 시키고...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같이 못 먹었구려. 당신이 끓여준 된장찌개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는데... 그 말을 한 번도 못 해줬어. 그게 뭐라고... 그 쉬운 말을 평생 아꼈어."
아내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40년 넘게 살면서, 남편의 입에서 '미안하다', '맛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남편의 뺨을 어루만졌습니다. 온기가 있었습니다. 꿈이 아니었습니다.
"영감... 정말 영감이오? 돌아오신 게요?"
"그래, 나요. 당신 남편이오. 얘들아, 이 못난 애비를 용서해라. 너희가 내 자랑이었는데, 욕심에 눈이 멀어 칭찬 한 번 못 해줬구나. 큰애야, 너 어릴 때 쓴 글솜씨 참 좋았다. 내가 몰래 읽고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둘째야, 네가 그린 그림... 버린 척했지만 사실 내 서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다."
자식들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엄하고 무섭기만 했던 아버지, 돈 버는 기계처럼 차갑기만 했던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진심 어린 고백은 그동안 쌓였던 원망의 벽을 순식간에 허물어뜨렸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 영혼의 학교에서 낙제점을 받고 돌아온 늙은 학생의 절절한 반성문이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자식들이 하나둘 울음을 터뜨리며 최 진사의 품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최 진사는 앙상한 팔로 그들을 힘껏 안았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이, 누군가를 안을 수 있다는 것이 이토록 황홀한 일인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그의 '보충 수업' 첫 시간은 눈물바다 속에서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 장례식장에서 깨어난 최 진사, 놀란 가족들을 품에 안고 사랑을 고백하다
한양 바닥에 최 진사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염라대왕도 구두쇠 영감의 고집에 혀를 내두르고 돌려보냈다더라"며 수군거렸지만, 며칠 뒤 최 진사 댁의 대문이 활짝 열리면서 그 소문은 경이로움으로 바뀌었습니다.
다시 태어난 최 진사는 '보충 수업' 시간을 단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아내의 이부자리를 봐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부인, 잘 잤소? 밤새 다리는 아프지 않았소? 오늘도 당신 덕분에 눈이 부시게 좋은 날이오."
처음에 아내는 영감이 노망이 났나 싶어 의원을 부르려 했지만, 남편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맑고 진지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수줍은 새색시처럼 얼굴을 붉히며 웃게 되었습니다. 최 진사는 아내를 위해 시장에서 꽃신을 사 오고, 머리빗을 선물했습니다. 돈 아깝다며 평생 해본 적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최 진사의 변화는 집안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굳게 닫혀있던 곳간 문을 활짝 열어젖혔습니다.
"여봐라, 마당에 멍석을 깔아라!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라!"
하인들이 쌀가마니를 나르는 동안, 최 진사는 마을 사람들 앞에 섰습니다. 예전의 거만하고 날카로운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넉넉하고 인자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번져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쌀과 비단들은 다 제 것이 아닙니다. 여기 있는 제 아내가 평생 아끼고 모은 것이고, 또 소작농 여러분이 땀 흘려 농사지은 덕분입니다. 제가 잠시 저승 문턱까지 갔다 와보니, 갈 때는 쌀 한 톨도 못 가져가더이다.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니 부담 갖지 말고 가져가십시오."
그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쌀을 나누어주고, 갚기 힘든 빚문서들을 그 자리에서 불태웠습니다. 소작농들을 불러 막걸리 잔치를 벌이고, 그들의 거친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고맙네, 김 서방. 자네 덕분에 내가 밥 먹고 살았어. 미안하네, 박 서방. 그동안 내가 너무 야박했지?"
사람들은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해하다가, 나중에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최 진사가 저승 물을 먹고 오더니 사람이 바뀌었다", "아니, 저승에서 도를 깨치고 오신 게 분명하다"며, 이제는 그를 '구두쇠 영감'이 아니라 '최 부처님', '최 도사님'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밥 먹는 소리조차 내기 힘들었던 살벌한 식사 시간이, 이제는 웃음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손자들은 할아버지 무릎에 매달려 수염을 당기며 재롱을 떨었고,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농담에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최 진사는 숟가락을 놓고 흐뭇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았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보다, 가족들의 얼굴에 핀 웃음꽃이 더 배부르게 느껴졌습니다.
'이것이로구나... 염라대왕님이 말씀하신 인생의 진짜 맛이 바로 이것이었어. 이렇게 쉽고 행복한 것을, 왜 그리 어렵고 멀게만 돌아왔을꼬.'
그의 가슴속 텅 비어있던 구멍이 따뜻한 온기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곳간의 쌀은 줄어들었지만, 마음의 곳간은 사랑과 행복으로 넘쳐흐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보충 수업' 성적표는 이미 만점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최 진사는 밤하늘의 달을 보며 염라대왕에게 윙크를 보냈습니다.
'교장 선생님, 보고 계십니까? 저 이제 공부 좀 잘하지 않습니까?'
※ 확 달라진 최 진사의 행복한 노년, 그리고 훗날 진정한 졸업을 맞이하다
그렇게 봄, 여름이 지나고 다시 붉은 단풍이 드는 늦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최 진사가 깨어난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동안 최 진사의 집은 매일이 잔칫날 같았고, 가족들의 사랑은 더욱 깊고 단단해졌습니다.
그날 아침, 최 진사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몸을 정갈하게 씻고, 아내가 지어준 깨끗한 흰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염라대왕이 허락한 보충 수업 시간이 이제 끝났음을. 하지만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숙제를 완벽하게 마친 학생처럼 마음이 홀가분했습니다.
최 진사는 가족들을 사랑방으로 불렀습니다. 하지만 1년 전,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흘렸던 비탄의 눈물은 없었습니다. 방 안에는 따뜻한 햇살과 은은한 국화 향기가 감돌고 있었습니다.
"여보, 그리고 얘들아. 다들 이리 가까이 오너라."
최 진사의 목소리는 작지만 힘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눈시울을 붉히며 최 진사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녀 또한 이 이별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1년은... 내 70 평생을 다 합친 것보다 더 행복하고 값진 시간이었다. 너희들 덕분에 내가 '사랑'이라는 과목을 무사히 마치고 졸업할 수 있게 되었구나. 나를 따뜻하게 받아줘서 고맙다."
"영감... 가시려거든 마음 편히 가시오. 당신이 보여준 지난 1년의 사랑 덕분에, 우리는 평생 잊지 못할 행복을 맛보았소. 당신은 최고의 남편이자, 최고의 아버지였소. 다음 생에도 꼭 다시 만나주구려."
아내의 진심 어린 고백에 최 진사는 환하게 미소 지었습니다.
"고맙소. 내 당신을 만나 참으로 과분한 사랑을 받았소. 저승에 가서도 당신을 기다리리다. 먼저 가서 좋은 집 짓고, 꽃밭 가꾸며 기다릴 테니 천천히 오시구려."
최 진사는 자식들 하나하나를 안아주며 축복해 주었습니다.
"울지 마라. 이것은 슬픈 이별이 아니다. 나는 이제 진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너희들이 베푼 사랑을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가는 것이니, 웃으면서 보내다오."
최 진사는 창밖의 붉은 단풍을 바라보았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마치 자신을 부르는 손짓 같았습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 누워, 가족들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습니다.
'교장 선생님, 저 이제 숙제 다 마쳤습니다. 이번 성적표는 꽤 괜찮겠지요?'
따스한 햇살이 창살 틈으로 들어와 최 진사의 얼굴을 비추었습니다. 그는 아주 깊고 편안한 잠에 빠져들듯 스르르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입가에는 세상 그 누구보다 평온하고 행복한 미소가 걸려 있었습니다. 마치 소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꿀잠을 자는 아이의 얼굴 같았습니다.
장례식은 슬픔이 아닌 축제와 같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나와 진심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덕을 기렸으며, 가족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아버지가 남긴 사랑의 유산을 되새겼습니다.
다시 저승 입구에 도착한 최 진사. 멀리서 오색 구름 위에 염라대왕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두 명의 안내자가 아니라, 수많은 천사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그를 맞이했습니다.
"허허, 최 학인. 어서 오게! 얼굴빛이 아주 좋아졌어. 1년 전 쭈글쭈글하던 영혼이 아주 반짝반짝 빛이 나는구먼."
염라대왕이 펼쳐 든 성적표에는 황금빛 글씨가 가득했습니다.
"이번엔 낙제가 아닐세. '사랑' 과목 수석일세, 수석! 자네가 이승에 심어놓은 사랑의 씨앗이 벌써 싹을 틔웠더군. 자, 들어가세. 이번엔 우등생들을 위한 특별반일세."
최 진사는 환하게 웃으며 영혼 학교의 정문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의 발걸음 뒤로 향기로운 꽃들이 피어나고, 나비들이 춤을 추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마지막 1년 동안 이승에 남기고 온 사랑의 흔적들이 피워낸 기적의 꽃들이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사랑을 완성한 영혼의 아름다운 졸업식이었습니다.
[유튜브 엔딩 멘트] (400자 내외)
여러분, 오늘 들려드린 최 진사의 이야기, 편안하게 들으셨나요?
우리는 때로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성공'이나 '돈' 같은 선택 과목에만 매달리느라, 정작 필수 과목인 '사랑'을 잊고 살아가곤 합니다. 하지만 최 진사가 깨달았듯이, 우리 삶의 마지막 성적표에 남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곁에 있는 가족에게, 친구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보세요. "고맙다", "사랑한다"는 그 말 한마디가, 훗날 우리 영혼을 가장 빛나게 할 보물이 될 테니까요.
오늘 밤은 모든 걱정 내려놓으시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행복한 꿈 꾸시길 바랍니다. 이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되었기를 바라며, 구독과 좋아요 눌러주시면 더 따뜻한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