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길에서 돌아온 사내, 그가 본 것은?
저승길에서 돌아온 사내, 그가 본 것은?
태그 (20개)
#조선시대, #전설, #야담, #저승사자, #저승, #전설따라삼천리, #오디오드라마, #이야기, #역사, #설화, #운명, #인과응보, #권선징악, #삶과죽음, #옛날이야기, #역사이야기, #한국신화, #미스터리, #사후세계, #시니어극장
후킹멘트 (200자)
어느 날 갑자기 저승사자가 찾아와 당신의 목숨을 거두어 간다면? 하지만 그게 실수였다면? 조선시대, 저승 명부에 잘못 올라 저승 문턱까지 갔다가 기적처럼 돌아온 한 사내의 기가 막힌 이야기. 그가 저승에서 보고 들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디스크립션 (300자)
조선시대, 평범한 가장이었던 김서방.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저승사자에게 끌려 낯선 저승길을 걷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저승의 착오였으니! 이승으로 돌아온 그는 저승에서 겪은 놀라운 경험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합니다. 운명은 정해진 것일까? 바꿀 수 있는 것일까?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 평온한 일상, 그리고 갑작스러운 방문자
때는 바야흐로 조선 중기, 충청도 어느 자락에 자리한 작은 초가마을. 저녁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흙담을 넘나드는 평화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이 마을에는 유난히 성실하고 마음씨 곱기로 소문난 사내, 김서방이 살고 있었지요. 그날도 김서방은 밭에서 고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아이들에게 줄 요량으로 깎은 예쁜 나무 토끼 한 마리가 들려 있었고, 등에는 땀이 흥건했지만 입가에는 고된 삶 속에서도 가족을 생각하는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죠. 흙먼지 풀풀 나는 길을 걸어 집에 다다르니, 아내가 끓이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그의 코를 간질였습니다. "애비, 오셨소." 마당으로 마중 나온 아내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가득했고, 툇마루에 앉아 있던 어린 아들과 딸은 제 아비를 보자마자 버선발로 뛰어나와 와락 안겼습니다. "아버지! 제 토끼는요?" "아버지, 오늘 장에 다녀오셨어요?"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김서방에게 그 어떤 음악보다도 달콤한 휴식이었습니다. 그는 땀을 닦으며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고, 아내가 차려준 소박하지만 정성 가득한 저녁상에 둘러앉았습니다. 보리밥 한 그릇에 된장찌개, 그리고 풋고추 몇 개가 전부인 단출한 밥상이었지만, 네 식구의 웃음소리가 더해지니 세상 그 어떤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김서방은 고된 하루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습니다. '이만하면 족한 인생이다. 비록 몸은 고될지언정, 아리따운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들이 곁에 있으니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 바로 그때였습니다. 온 집안을 따스하게 감싸던 공기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했습니다. 방금 전까지 시끄럽게 울어대던 바깥의 귀뚜라미 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그치고, 마당을 지키던 누렁이마저 낑낑거리며 꼬리를 감추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상한 정적이 흐르는 순간,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립문이 저절로 스르르 열렸습니다. 김서방과 그의 아내는 불안한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았고, 아이들은 겁을 먹고 제 어미의 치맛자락 뒤로 숨었습니다. 그리고 마당으로 들어선 것은, 사람이되 사람이라 할 수 없는 기이한 존재였습니다. 머리에는 검은 갓을 쓰고, 온몸에는 빛 한 점 통과시키지 못할 것처럼 칠흑같이 검은 도포를 두른 사내. 창백하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은 오직 방안의 김서방만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빨아들이는 듯한 침묵 속에서, 그 사내가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한겨울 칼바람처럼 차갑고 날카로웠습니다. "충주 땅에 사는 김 아무개, 네 명이 오늘로 다하였으니, 나를 따라 길을 나서야겠다." 저승사자. 이야기로만 듣던 그 존재가 자신의 눈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김서방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버렸습니다. 숟가락을 든 채 굳어버린 그의 귓가에 아내의 비명이 날카롭게 파고들었습니다. "서, 서방! 이게 무슨 말이오! 여보!" "아, 아버지… 무서워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저승사자의 눈빛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김서방은 정신을 차리고 다급하게 외쳤습니다. "아니, 아니오! 뭔가 잘못됐을 것이오! 나는 아직 젊고, 병든 곳 하나 없는데 어찌 내 명이 다했다는 말이오! 내게는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있소, 제발… 제발 한 번만 살펴주시오!" 그가 애원하며 매달렸지만, 저승사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어명(御命)이 아닌 명부(冥府)의 부름이다. 이름과 생년월일, 시간이 정확하니 길을 서둘러야 한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김서방의 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의 발은 땅에 닿아있지 않은 듯 허공에 뜬 채 문밖으로 끌려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안 돼요! 여보! 제발 우리 서방을 데려가지 마시오!" "아버지! 가지 마세요, 아버지!" 아내와 아이들의 절규가 등 뒤에서 심장을 찢는 듯 들려왔지만, 그의 몸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흙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는 아내와 두 아이의 모습, 그리고 마루에 나뒹구는 자신의 밥그릇이었습니다. 그렇게, 평범하고도 행복했던 김서방의 하루는 예고 없이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에 의해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 낯설고 기이한 저승으로의 여정
김서방이 저승사자에게 이끌려 집을 나서는 순간, 익숙했던 세상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빛을 잃고 아득한 안갯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방금 전까지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와 흙냄새가 가득했던 공간은 온데간데없고, 사방은 온통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잿빛으로 가득했습니다. 해와 달, 별조차 없는 기이한 하늘 아래, 끝도 없이 펼쳐진 황량한 벌판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발밑의 흙은 부드럽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이상한 감각이었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먼지 하나 일지 않았습니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은 살을 에는 듯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소름이 돋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살아있는 자의 감각이 아니었기 때문일까요. 김서방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저승사자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자신처럼 저승사자에게 이끌려오는 수많은 영혼들이 마치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얀 소복을 입은 노인, 관복을 입은 채 망연자실한 표정의 관리, 그리고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젊은 어미까지. 그들의 모습은 각기 달랐지만, 얼굴에 서린 깊은 슬픔과 미련, 그리고 체념의 빛은 모두 똑같았습니다. 아무도 소리 내어 울거나 말을 하지 않았고, 그저 묵묵히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습니다. 그 침묵의 행렬은 살아생전의 그 어떤 통곡 소리보다도 더 구슬프게 느껴졌습니다. 김서방은 문득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밭일로 굳은살이 박이고 거칠었던 자신의 손이, 이제는 마치 허깨비처럼 반투명하게 비쳐 보였습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정말로 죽었다는 사실을, 다시는 아내와 아이들을 만질 수도, 안아줄 수도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지만, 이상하게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앞서가는 저승사자의 등을 바라보았습니다. 감정이라곤 한 올도 느껴지지 않는 그 뒷모습을 보며, 김서방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었던가? 남의 것을 탐한 적도 없고, 이웃에게 해코지를 한 적도 없는데. 그저 내 가족의 배를 곯지 않게 하려고, 남들보다 조금 더 부지런히 땀을 흘렸을 뿐인데. 어찌하여 나란 말인가.' 억울함과 슬픔이 뒤섞인 감정이 소용돌이쳤습니다.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고된 시집살이에도 늘 미소를 잃지 않았던 아내. 자신이 주는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했을 텐데도, 단 한 번 불평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림을 꾸려나갔던 현명한 아내였습니다. 아이들의 얼굴도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아비의 주름진 손을 세상에서 가장 큰 손이라며 좋아했던 아들, 아비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잠드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여겼던 딸. 이제 막 아비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나야 할 아이들이 졸지에 아비 없는 설움을 겪게 될 것을 생각하니, 차라리 자신의 영혼이 그대로 소멸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잿빛 황야의 저편으로, 무언가 거대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거대한 성문과도 같았는데, 성벽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고 그 빛깔은 마치 핏물이 마르고 굳어버린 듯 검붉은 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성문 위에는 기이한 글씨로 '풍도(酆都)'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저곳이 바로 모든 망자가 거쳐 가야 하는 저승의 입구, 풍도성이었습니다. 그 압도적인 위용 앞에 서자, 수많은 영혼들 사이에서 나지막한 탄식과 흐느낌이 새어 나왔습니다. 김서방 역시 저 문을 넘어서면 다시는 이승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가던 한 저승사자가 앞서가던 저승사자에게 말을 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보게, 자네가 데려온 저 영혼, 충주 땅의 김 아무개 맞나?" "그렇다만, 무슨 일인가?" "방금 명부 담당 판관에게서 전갈이 왔는데, 명부에 착오가 있었다는군. 오늘 데려와야 할 영혼은 충주 김 아무개가 아니라, 한양에 사는 동명이인 김 아무개였다고 하네. 생년월일이 같아 그만 실수를 한 모양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김서방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습니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고개를 돌리자, 두 명의 저승사자가 난처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 염라대왕 앞, 운명이 뒤바뀌다
김서방의 영혼이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두 명의 저승사자는 잠시 동안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명부의 착오, 그것은 저승의 질서를 뒤흔드는 중대한 실수였기 때문입니다. 잠시 침묵하던, 김서방을 데려온 저승사자가 마침내 입을 열었습니다. "큰일이군. 이미 이만큼이나 저승길을 걸어왔으니, 내 임의로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 할 수 없지. 염라대왕님의 처결을 기다리는 수밖에." 그 말에 다른 저승사자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승사자들은 잠시 길을 벗어나, 수많은 영혼들이 향하는 풍도성과는 다른 샛길로 김서방을 이끌었습니다. 그 길은 이전보다 더욱 어둡고 스산했으며, 걷는 내내 어디선가 죄지은 영혼들의 비명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거대한 궁궐의 문이었습니다. 육중한 문에는 푸른 불꽃이 이글거리는 용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고, 문을 지키는 귀신 병사들의 눈에서는 서릿발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이곳이 바로 저승의 시왕(十王) 중 다섯 번째 왕이자, 모든 망자를 심판하는 염라대왕의 궁, 염라전이었습니다. 김서방은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저승사자에게 이끌려 들어간 염라전 내부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대전,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천장, 그리고 대전 양옆으로 도열한 채 서 있는 수많은 저승의 관리들. 그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죄인처럼 끌려온 김서방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 대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거대한 옥좌에는 산처럼 거대한 몸집의 염라대왕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분노한 듯 붉었으며, 길게 기른 수염은 마치 먹물을 풀어놓은 듯 검었습니다. 불꽃이 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은 인간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듯하여, 김서방은 감히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김서방을 데려온 저승사자가 염라대왕 앞에 엎드려 자초지종을 고했습니다. 명부의 착오로 엉뚱한 사람을 데려왔다는 보고에, 염라대왕의 표정이 더욱 험악해졌습니다. "이런 어리석은 놈들! 너희는 저승의 관문을 지키는 자들로서 어찌 이리도 부주의하단 말이냐! 한 사람의 생사가 너희의 손에 달려있거늘, 이 실수를 어찌 감당하려느냐!" 염라대왕의 목소리는 천지를 뒤흔드는 우레와도 같아, 거대한 염라전이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두 명의 저승사자는 머리를 조아린 채 벌벌 떨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염라대왕은 한참 동안 그들을 노려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 엎드려 있는 김서방을 향해 물었습니다. "고개를 들라. 네가 바로 충주 땅의 김 아무개더냐." 김서방은 떨리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염라대왕을 바라보았습니다. "예, 대왕님. 소인 김 아무개가 맞사옵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은 곁에 있던 한 판관에게 명했습니다. "저 자의 명부를 가져와 일생의 행적을 낱낱이 고하라." 판관이 거대한 두루마리 하나를 펼쳐 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김서방의 삶이 기록된 '생령부'였습니다. 판관은 엄숙한 목소리로 생령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김 아무개. 그는 스무 살 되던 해, 굶주려 쓰러진 걸인을 보고 자신의 유일한 밥 한 그릇을 내어주었으며, 스물다섯 되던 해 겨울에는 얼어 죽어가는 나그네에게 자신의 겉옷을 벗어주었나이다. 서른 되던 해에는 빚에 쪼들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이웃을 설득하고, 자신의 곳간을 털어 그 빚을 대신 갚아주었으며…" 판관의 입을 통해 읊어지는 것은 김서방 자신이 까맣게 잊고 있었던, 혹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지난날의 작은 선행들이었습니다. 그는 그저 어려운 사람을 보면 마음이 아파 지나치지 못했을 뿐인데, 저승에서는 그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판관의 보고가 끝나자, 염라대왕은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침묵을 지켰습니다. 대전 안에는 숨 막히는 정적만이 흘렀습니다. 마침내 눈을 뜬 염라대왕이 장엄한 목소리로 판결을 내렸습니다. "저승사자의 실수가 분명하고, 망자의 평생 행적이 선하기 그지없으니, 이는 하늘의 뜻이 아직 그에게 머물러 있다는 증거다. 그의 본래 수명은 예순 하고도 다섯 해. 아직 스무 해가 넘는 세월이 남아있으니, 즉시 이승으로 돌려보내 남은 삶을 마저 살게 하라!" 그 판결이 내려지는 순간, 김서방은 온몸의 힘이 탁 풀리며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그는 염라대왕을 향해 이마가 땅에 닿도록 엎드려 절하며 외쳤습니다. "대왕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텅 빈 염라전 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 이승으로의 기적적인 귀환
염라대왕의 판결이 떨어지자, 김서방을 데려왔던 저승사자가 다가와 그의 팔을 부축했습니다. 아까와는 달리 저승사자의 얼굴에는 미안함과 겸연쩍음이 뒤섞인 표정이 서려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불찰로 그대를 놀라게 하였소. 미안하게 되었소. 이제 이승의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오." 저승사자는 김서방을 데리고 염라전을 나와 다시 잿빛 황야로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걷는 길은 아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올 때에는 한없이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졌던 길이, 돌아갈 때에는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볍고 빠르게 느껴졌습니다.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은 마치 꿈속의 장면처럼 흐릿하게 번져나갔습니다. 저 멀리서 들려오던 죄지은 영혼들의 비명 소리는 잦아들고, 대신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한 부드러운 노랫소리가 그의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잿빛으로만 가득했던 세상의 저편에서, 아주 작고 따스한 빛 한 줄기가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빛과 함께, 김서방에게 아주 익숙한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꼬끼오-' 하고 우는 수탉의 울음소리, '멍멍' 짖어대는 누렁이의 목소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심장을 울리는 아내와 아이들의 애절한 울음소리였습니다. "여보… 여보… 눈 좀 떠보시오… 이렇게 가면 나는 어찌 살라고…흑흑…" "아버지… 일어나세요… 아버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김서방의 영혼은 거센 파도처럼 일렁였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 "여보! 내가 여기 있소! 얘들아, 아비가 여기 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그들에게 닿지 않았습니다. 저승사자가 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습니다. "자, 이제 그대의 자리로 돌아갈 시간이오. 눈을 감으시오." 김서방이 눈을 감는 순간, 저승사자는 그의 등을 힘껏 밀었습니다. '쿵!' 하고 거대한 종을 치는 듯한 충격과 함께, 김서방의 의식은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온몸으로 지독한 한기와 묵직한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꽁꽁 얼어붙었던 손발의 감각이 돌아오고, 멈췄던 심장이 다시금 쿵, 쿵, 하고 고동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습니다. 눈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자신의 방 천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자, 자신의 몸을 붙들고 통곡하고 있는 아내와 두 아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미 그의 몸은 차갑게 식어 있었고, 동네 어른들은 그의 장례를 준비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내를 부르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목에서는 가느다란 바람 소리만 새어 나올 뿐이었습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손가락을 까딱거렸습니다. 바로 그때, 그의 미세한 움직임을 발견한 아내가 비명을 삼키며 외쳤습니다. "서, 서방…? 지금… 손가락이…?" 아내의 말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김서방에게로 향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그의 몸을 쳐다보았고, 김서방은 다시 한번 온 힘을 다해 눈을 깜빡거렸습니다. 그러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의 가슴이 희미하게 오르락내리락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거친 숨소리와 함께 그의 입이 열렸습니다. "여…보…" 그 한마디에,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습니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온 것입니다. 아내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남편의 뺨을 어루만졌습니다. 차갑게 식어있던 남편의 뺨에서, 미약하지만 분명한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세상에… 세상에! 서방! 내 서방!" 아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기쁨의 눈물을 터뜨렸고, 아이들은 "아버지!"를 외치며 그의 품으로 와락 달려들었습니다. 동네 사람들 역시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이내 저마다 감탄과 환호를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김서방은 자신을 끌어안고 우는 아내와 아이들을 마주 안으며, 차가운 저승길에서 그토록 그리워했던 가족의 온기를 느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 사랑하는 가족의 곁에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이 꿈처럼 아득하면서도 현실처럼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한참 동안 가족들을 부둥켜안고 따뜻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돌아온 기적의 순간이었습니다.
※ 저승에서 본 것을 말하는 사내
김서방이 다시 살아 돌아왔다는 소문은 그야말로 삽시간에 온 마을, 아니 인근 고을까지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헛소문이거나 헛것을 본 것이라며 믿지 않았지만, 멀쩡하게 두 발로 걸어 다니며 밭을 가는 김서방의 모습을 직접 본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의 집 문턱은 저승에서 돌아온 사내의 기이한 경험담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연일 닳아 없어질 지경이었습니다. 호기심 어린 젊은이부터, 삶의 끝자락에 선 노인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에게 물었습니다. "여보게, 정말 저승에 다녀온 게 맞는가?", "저승은 어떻게 생겼던가? 염라대왕은 정말 소문처럼 무섭게 생겼던가?" 처음 며칠 동안 김서방은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의 경험은 그에게 너무나도 생생하고 두려운 기억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특히나 삶의 마지막을 걱정하는 노인들의 간절한 눈빛을 마주하게 되자, 그는 자신이 겪은 일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것이 자신을 살려 돌려보내 준 하늘의 뜻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저녁, 김서방은 자신의 집 마당에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멍석 위에 정좌하고 앉은 그의 표정은 이전의 평범한 농부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깊은 연못처럼 고요하고 지혜로운 눈빛을 가진 그의 모습에, 시끄럽던 마당은 이내 조용해졌습니다. 김서방은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저승사자가 찾아왔던 그 순간부터, 잿빛 저승길을 걸었던 경험, 그리고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을 받았던 이야기까지. 그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했던 것은, 바로 염라전에서 펼쳐졌던 '생령부'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김서방은 말했습니다. "여러분, 저 역시 제가 대단한 선행을 베풀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배고픈 이에게 밥 한 술 나누고, 추운 이에게 옷 한 자락 덮어준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저승에서는 그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길가에 쓰러진 작은 새 한 마리를 살려준 것까지도 말이오." 그의 말에 사람들 사이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제가 저승에서 깨달은 것은 단 하나입니다. 하늘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졌는지, 얼마나 높은 지위에 올랐는지를 보지 않더이다. 그저 우리가 살아생전 다른 이에게 얼마나 따뜻한 마음을 나누었는지, 얼마나 작은 생명을 소중히 여겼는지를 빠짐없이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염라대왕께서 저의 지난날을 칭찬하며 말씀하시더군요. '네가 쌓은 덕이 스스로를 구했다'고 말이오." 김서방의 이야기는 단순한 기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울림과 교훈을 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이웃과 사소한 문제로 다투었던 일, 욕심 때문에 남에게 상처 주었던 일들이 떠오르며 얼굴을 붉히는 이도 있었고,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노인도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김서방은 더 이상 평범한 농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저승에 다녀온 현자'로 불리며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교만해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묵묵히 밭을 갈고, 가족을 돌보았으며, 찾아오는 모든 이에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삶의 지혜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퍼져나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등불이 되었습니다.
※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다
김서방의 이야기가 퍼져나간 마을에는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했던 사람들이 서로의 형편을 살피기 시작했고, 사소한 다툼으로 척을 지고 지내던 이웃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화해했습니다. 마을 어귀에는 오갈 데 없는 나그네들을 위한 작은 쉼터가 만들어졌고, 수확철에는 너나 할 것 없이 품앗이를 하며 서로의 고됨을 나누었습니다. 누군가 말하지 않아도, 마을 사람들은 '하늘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새기게 된 것입니다. 작은 선행이 모여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었듯, 그 선행들이 다시 모여 마을 전체의 운명을 더욱 풍요롭고 따뜻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김서방은 염라대왕이 알려준 자신의 수명대로, 예순 하고도 다섯 해까지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어느새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되었고, 그의 아이들은 장성하여 가정을 꾸리고, 또 그들의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김서방은 툇마루에 앉아 자신의 무릎에 매달리는 손주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가장 큰 낙으로 삼았습니다. 특히 손주들이 가장 좋아했던 것은 물론, 할아버지가 저승에 다녀온 이야기였습니다. "할아버지, 그래서 저승사자는 정말 무섭게 생겼어요?" "허허, 무섭고말고.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죄를 짓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마음이란다. 늘 착한 마음을 품고 살면, 저승사자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법이지."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를 다음 세대에게 아낌없이 물려주었습니다. 그렇게 스무 해가 넘는 시간이 흘러, 마침내 그에게 약속된 마지막 날이 찾아왔습니다. 그날 밤, 김서방은 앓는 소리 하나 없이 조용히 잠자리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때가 왔음을 직감하고 있었지요. 모든 가족이 그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방안에 모여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스무 해 전 그날처럼, 방안의 공기가 조용히 내려앉으며 한 인영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그 저승사자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나타난 저승사자의 모습은 예전처럼 차갑고 위압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방안에 들어서며, 슬퍼하는 가족들을 향해 잠시 묵례를 한 뒤, 조용히 김서방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예를 갖추어 말했습니다. "김 아무개, 이제는 정말 때가 되었습니다. 명부의 약속에 따라 그대를 모시러 왔소." 김서방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는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랜 친구를 만난 듯 평온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가족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며 말했습니다. "다들 너무 슬퍼하지 마라. 나는 이만하면 족한 삶을 살았다. 하늘이 덤으로 주신 지난 이십 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이었느니. 부디 너희들도 서로 아끼고 도우며 착하게 살아가거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평안함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는 잠시 고개를 숙여 그의 마지막을 지켜본 뒤, 이제는 한 점 미련도 남지 않은 그의 맑은 영혼을 이끌고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김서방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오랫동안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빛나며, 삶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저승길에서 돌아온 사내'의 이야기,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한 남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운명이란 그저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작은 선행과 따뜻한 마음으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여러분의 삶은 어떤 기록으로 채워지고 있을까요? 시청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는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 "저승사자가 인간에게 준 신비한 힘 – 인간이 저승사자의 능력을 얻은 이야기" [출처: 어우야담]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는 다음 이야기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