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가 알려준 한마디
저승사자가 알려준 단 한마디, 가난뱅이를 부자로 만들다” 『계서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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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300자 내외)
죽음의 문턱에서 만난 저승사자. 그가 무심코 던진 '단 한마디'가 지독한 가난뱅이의 운명을 통째로 뒤바꿔 놓았습니다. 쌀 한 톨 없던 거지가 하루아침에 만석꾼이 되고, 어리숙한 줄 알았던 그가 나라의 큰일까지 해결하게 됩니다. 과연 저승사자가 알려준 그 한마디에는 어떤 무서운 비밀이 숨겨져 있었을까요? 『계서야담』이 전하는, 운과 복이 기묘하게 얽힌 이야기.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조선 팔도에서 가장 가난했던 사내, 갑수. 굶어 죽기 직전, 우연히 마주친 저승사자에게 "제발 단 한마디만"이라며 매달립니다. 귀찮다는 듯 저승사자가 던진 말 한마디. 갑수는 그 뜻도 모른 채, 닥치는 대로 그 말을 내뱉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가 입을 뗄 때마다 사람들이 벌벌 떨며 돈과 재물을 바치기 시작합니다. 가난뱅이를 조선 최고의 부자로 만든 저승사자의 기묘한 한마디. 그 이야기가 지금 펼쳐집니다.
※ 지독한 가난
옛날 옛적, 조선 땅에 갑수라는 사내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갑수라는 사내로 말할 것 같으면, 조선 팔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지독한 가난뱅이였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 하나와 다 해진 누더기 옷 한 벌이 전부였지요. 끼니를 거른 지 며칠째인지 손가락으로 꼽는 것조차 잊어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남들은 다가올 추위에 볏단이라도 엮어 지붕을 새로 이을 때, 갑수는 그저 푹 꺼진 움막 안에서 뼛속까지 스미는 찬바람을 맨몸으로 견뎌야 했습니다. "아이고 배고프다" 쥐어짜는 목소리조차 기력이 없어 갈라졌습니다. 배고픔은 이제 통증이 되어 온몸을 쑤셔댔고, 삶에 대한 의지란 사치스러운 감정처럼 느껴졌습니다. 쌀이 없으면 죽이라도 끓여 먹고, 죽이 없으면 물이라도 마셔야 하거늘, 갑수는 물을 길어 올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귓가에서는 정체 모를 이명이 윙윙거렸습니다. 이러다 정말 죽는구나. 살아 숨 쉬는 것이 지옥과 다를 바 없으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 싶은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날 밤도 달빛 하나 들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갑수는 차가운 흙바닥에 등을 대고 가쁜 숨만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온몸의 감각이 멀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다시는 뜨지 못하리란 것을 직감했습니다. "누가 누가 나 좀 살려주소" 하지만 그 애처로운 목소리를 들어줄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갑수의 의식이 아득한 심연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 기이한 만남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차갑게 식어가던 갑수의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쇠가 부딪히는 듯, 바람이 우는 듯한 기묘한 소리였습니다. 희미하게 눈을 뜨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칠흑 같던 움막 안이 아니었습니다. 웬 으리으리한 기와집 대문 앞이었습니다. 몸은 여전히 춥고 배가 고팠지만, 정신은 이상하리만치 또렷했습니다. "내가 죽어서 저승에 온 것인가" 갑수가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저만치 검은 도포에 갓을 쓴 사내 하나가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그 사내의 얼굴은 어둠 속에 잠겨 잘 보이지 않았으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는 섣달그믐의 칼바람보다 더 시리고 서늘했습니다. 사내는 육중한 대문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치 물이 스며들 듯 그대로 문을 통과해 안으로 십 리가 넘는 횃불 행렬이 지나가는 듯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이고! 대감 마님!" "의원을 어서 부르거라!" 곡소리와 고함소리가 뒤섞여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갑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습니다. 저 사내는 사람이 아니다. 죽은 이의 혼을 거두러 온 저승사자라는 것을 말입니다. 갑수는 두려움에 온몸이 떨렸지만, 그 순간 묘한 오기가 생겼습니다. 어차피 이리 굶어 죽으나, 저리 맞아 죽으나 죽는 것은 매한가지. 저 기이한 존재에게 뭐라도 매달려보고 싶었습니다. 이 지옥 같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잠시 후, 저승사자는 집안에서 불어온 바람처럼 스르르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의 뒤편으로 방금 전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부잣집 영감의 혼이 넋 나간 표정으로 사슬에 묶인 채 끌려 나오고 있었습니다.
※ 단 한마디
갑수는 마지막 남은 기력을 모조리 쥐어짰습니다. 죽음의 공포보다 더 지독한 굶주림의 고통이, 그리고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나 억울하다는 분노가 그의 마른 몸뚱이를 일으켰습니다. 굶주림으로 풀려버린 다리를 짐승처럼 네 발로 기어, 저승사자의 앞으로 비틀비틀 나아갔습니다. 그리고는, 감히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르고야 맙니다. 냅다 저승사자의 검은 도포 자락, 그 바짓가랑이를 덥석 붙잡은 것입니다. "나 나리! 나리! 제발 제발 저 좀 살려주십시오!" 순간, 얼음장 같던 밤공기가 그 자리에 멈춰 섰습니다. 저승사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갑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의 갓 그림자 아래, 얼굴이랄 것이 없는 시커먼 어둠 속에서, 마치 깊은 우물 바닥에서 반짝이는 얼음 조각 같은 두 개의 눈빛이 갑수를 꿰뚫었습니다. 명부를 집행하는 사자의 길을 산 자가 가로막은 것도 모자라, 감히 그 몸에 손을 대다니. 이는 하늘의 법도를 어지럽히는 대죄였습니다. 저승사자에게 묶여 있던 부잣집 영감의 혼이 그 광경을 보고 겁에 질려 파르르 떨었습니다. 저승사자는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마치 겨울바람이 문틈을 스치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습니다. "네 이놈.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명부의 사자 앞을 가로막느냐. 네놈의 명은 아직 다하지 않았으나, 이리 법도를 어지럽혔으니 당장 거두어 가도 무방하거늘. 썩 손을 놓지 못할까!" 저승사자의 목소리는 갑수의 뼛속까지 차갑게 울렸지만, 갑수는 오히려 도포 자락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습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습니다. 이대로 굶어 죽으나, 저승사자에게 맞아 죽으나, 매한가지였습니다. "나리! 나리! 말씀대로 소인의 명은 아직 다하지 않았으나, 보시다시피 이 꼴로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이리 굶어 죽으나, 저리 얼어 죽으나, 어차피 나리께서 곧 다시 만나실 목숨이 아니옵니까!" 갑수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그것은 서러움의 눈물이자 분노의 눈물이었습니다. "평생 평생 개처럼 일했으나 손에 쥔 것은 쌀 한 톨 없고, 평생 남의 것 탐하지 않았으나 돌아온 것은 이 지독한 굶주림뿐입니다! 이게 정녕 소인의 팔자란 말입니까! 억울합니다! 억울해서 이대로는 눈을 감지 못하겠습니다! 나리! 저승의 법도도 결국 사람이 사는 이치와 다르지 않다면, 이 가여운 목숨 한 번만 굽어살펴 주십시오! 평생 쌀밥 한 번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제발 제발 이 지옥 같은 가난 좀 면하게 해주십시오!" 갑수는 거의 실성에 가까운 상태로 울부짖으며 저승사자의 발치에 이마를 찧었습니다. 저승사자는 잠시 말없이 갑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의 공허한 눈동자에 아주 잠깐, 인간의 '측은함'과는 다른, 마치 정해진 길에서 돌부리를 만난 듯한 '귀찮음'과 '난처함'이 동시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뒤에 묶인 영감의 혼이 "어차피 저놈도 곧 올 것인데, 뭘 그리 신경 쓰십니까. 어서 가시지요."라고 재촉하는 듯 몸부림쳤습니다. 저승사자는 깊고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 한숨에 주변 나뭇가지에 얼음이 서릴 듯 차가웠습니다. "허어, 참으로 귀찮고도 딱한 필부로다. 명부에 없는 자의 청을 들어줄 수는 없으나, 네놈의 그 절박함이 하도 딱하여,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힌트 하나를 주마." 저승사자는 갑수의 귓가에 차가운 입김을 불어넣듯 나지막이 속삭였습니다. "잘 듣거라. 이것은 복도, 화도 아니다. 그저 말 한마디일 뿐. 이것이 복이 될지, 화가 될지는 오롯이 네놈의 그릇에 달린 일이다." 갑수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앞으로 네가 어떤 위급한 상황에 처하든, 어떤 자리에 가든, 그저 이렇게만 말하거라. '둘은 가고, 하나는 남으리라.' 명심해라. 둘은 가고, 하나는 남는다. 이것이 네놈의 억울함을 풀어줄지, 아니면 네놈의 목을 조를지는 나도 모른다. 이제 썩 물러가라!" 그 말을 마친 저승사자는 갑수의 손아귀에서 도포 자락을 스르르 빼내었습니다. 마치 연기가 빠져나가듯 했습니다. 갑수가 고개를 들었을 때, 저승사자도, 부잣집 영감의 혼도, 그 차갑던 기운도 모두 연기처럼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덩그러니 남겨진 갑수는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며 되뇌었습니다. "둘은 가고 하나는 남는다? 이게 이게 대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 첫 번째 행운
저승사자와의 기이한 만남 이후, 갑수는 비틀거리며 자신의 움막으로 돌아왔습니다. "둘은 가고, 하나는 남는다" 입안에서 그 말을 몇 번이고 굴려보았지만, 굶주림에 쪼그라든 머리로는 도무지 그 뜻을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저승사자가 준 유일한 동아줄이었습니다. 어쩌면 정말 쌀밥을 먹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이었습니다. 다음 날, 갑수는 더 이상 움막에 앉아 죽음을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마을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뭐라도 주워 먹을 것이 없나, 썩은 무 조각이라도 얻을 수 없나 싶어 발길 닿는 대로 걸었습니다. 그러다 그의 코끝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냄새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고기 굽는 냄새, 기름진 전 부치는 냄새, 그리고 잘 익은 술 냄새였습니다. 냄새는 이 고을에서 가장 세도가 당당하고 부유하기로 소문난 김 대감의 집 담벼락 너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갑수는 냄새에 이끌려 홀린 듯 그 거대한 기와집으로 향했습니다. 마침 그날 밤, 김 대감의 집에서는 은밀한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김 대감의 환갑을 미리 축하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상은 얼마 전 새로 부임한 강직한 사또를 몰아내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허수아비 사또를 앉히려 하는 역모에 가까운 모의가 이루어지는 자리였습니다. 그 자리에는 김 대감을 포함하여, 탐욕스러운 아전인 최 서방, 그리고 고을의 상권을 쥐고 있는 박 상인, 이렇게 총 세 사람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의 비밀스러운 계획은 이러했습니다. 최 서방과 박 상인, 즉 '둘'은, 사또가 과거에 저지른 비리를 날조하고 민심을 선동하는 역할을 맡되, 일이 터지면 잠시 몸을 피신하여 '가고', 모든 공은 이 자리를 주선한 김 대감 '하나'가 차지하고 이 고을에 '남아' 새로 부임할 사또를 조종한다는, 실로 치밀하고도 위험한 계획이었습니다. 한참 심각하고도 은밀한 이야기가 술잔과 함께 오가던 바로 그 순간! 흉측한 몰골의 갑수가, 열린 대문 틈으로 스르르 들어와, 그들이 모의를 하던 사랑채 마당까지 쑥 들어와 버린 것입니다. 술에 취해 있던 하인들이 뒤늦게 갑수를 발견하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네 이놈! 웬 거지 놈이 대감마님 사랑채에 함부로 들어오느냐! 여봐라, 저놈을 당장 때려 내쫓아라!" 우락부락한 하인들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들자, 갑수는 굶주림과 공포에 질려 엉겁결에 마당 한복판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때, 사랑채의 문이 활짝 열리며 술기운에 얼굴이 붉어진 김 대감과 최 서방, 박 상인이 험악한 표정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특히 성질이 급한 박 상인이 칼을 빼 들 기세로 소리쳤습니다. "이놈! 네놈이 감히 우리의 이야기를 엿들은 것이냐! 당장 저놈의 혀를 뽑고 광에 가두어라!" 갑수는 이제 정말 죽었구나 싶었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오금이 저려왔습니다. 이대로 몽둥이에 맞아 죽는구나. 그 순간, 갑수의 머릿속에 어젯밤 저승사자가 해준 말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위급한 상황에 처하거든' 이것이 바로 그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갑수는 자신도 모르게, 살기 위한 마지막 발악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그 말을 내뱉었습니다. "저 저기! 두 둘은 가고 하 하나는 남으리라!" 그 순간, 사랑채 마당의 시끄럽던 공기가 마치 한겨울 냇물처럼 차갑게 얼어붙었습니다. 몽둥이를 치켜들었던 하인들도, 칼을 빼려던 박 상인도, 험악한 표정의 최 서방도,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주도하던 김 대감도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 섰습니다. 그들의 얼굴에서 붉은 술기운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하얀 백지장처럼 질려버렸습니다. '둘은 가고, 하나는 남는다.' 방금 전까지 자신들 셋만이 알고 있던, 목숨을 건 비밀스러운 약조를, 저 거지 몰골을 한 사내가 정확히 꿰뚫어 본 것입니다! 김 대감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이 이놈은 필시 보통 놈이 아니다! 저 흉측한 몰골은 눈속임이다! 우리의 거사를 어찌 알고 혹 새로 부임한 사또 놈이 보낸 첩자이거나, 아니면 아니면 천기를 읽는 신통한 도사가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 위장한 것이리라!' 갑수는 갑수대로 어리둥절했습니다. 그저 죽기 싫어서 아무 말이나 내뱉었을 뿐인데, 저 무섭던 사람들이 갑자기 왜 저러고 멈춰 서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 뜻밖의 재물
김 대감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곳간에서 가장 묵직한 전대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것을 갑수의 손에 쥐여주며 거의 울먹이듯 말했습니다. "도사님! 이것은 소인의 작은 아주 작은 성의입니다. 부디 오늘 보신 것은 그저 뜬구름이라 여기시고 잊어 주십시오! 네? 제발 제발 그리해 주십시오!" 갑수는 얼떨결에 차가운 엽전과 묵직한 은자가 가득 담긴 전대를 받아들었습니다. 밥알이 아직 목에 반쯤 걸려있는 듯, 숨이 턱 막혔지만, 이 상황이 꿈이 아님을 전대의 묵직한 무게가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이 이게 다 돈이란 말인가' 평생 구경도 못 해본 거금. 아니, 돈이라는 것 자체를 손에 쥐어본 것이 얼마 만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했습니다. 갑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저승사자에게 배운 대로, 무심한 듯 묘한 표정을 지으며 김 대감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둘은 가고 하나는 남는 법이지' 속으로 다시 한번 그 말을 되뇌자, 김 대감의 어깨가 더욱더 움츠러들었습니다. "허허 알겠소이다." 갑수는 그 한마디만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 거대한 기와집을 유유히 걸어 나왔습니다. 대문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애써 태연한 척 걸음을 옮겼습니다. 혹시나 저 김 대감이 마음을 바꿔 다시 쫓아 나와 돈주머니를 빼앗아 가진 않을까, 아니면 이 수상한 거지를 당장 관아에 고발하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그는 몰랐습니다. 김 대감은 갑수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가 혹시나 '관아' 쪽으로 방향을 틀지 않을까 싶어 심장을 졸이며 대문 안쪽에서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갑수는 전대를 품속 깊이 찔러 넣고는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움막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일단 사람이 없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전대를 풀어보았습니다. 눈이 부셨습니다. 은자와 엽전이 평생 만져볼 쌀을 다 사고도 남을 만큼의 돈이 그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그는 한참을 멍하니 돈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굶주림의 서러움도, 지난날의 비참함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 눈물이 났습니다. "저승사자 나리 고맙소 고맙소" 그날, 갑수는 난생처음으로 쌀밥에 고기반찬을 사 먹었습니다. 주모가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지만, 엽전 하나를 떡하니 던져주자 금세 함박웃음이 되어 상다리가 부러져라 음식을 내왔습니다. 허겁지겁 음식을 밀어 넣으면서도, 갑수는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이 행복이 금방이라도 연기처럼 사라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그 길로 가장 번듯한 기와집을 한 채 샀습니다. 집주인은 누더기 옷을 걸친 갑수를 보고 쫓아내려 했지만, 갑수가 품에서 은자 덩어리를 툭 던지자 입을 떡 벌리고는 당장 방을 내주었습니다. 몸종을 들이고 비단옷을 사 입었습니다. 하지만 비단옷의 감촉은 짚단보다 더 까끌거렸고, 넓은 방은 움막보다 더 허전하고 추웠습니다. 그는 여전히 밥을 먹을 때 밥그릇을 손에 쥐고 허겁지겁 먹었고, 잠을 잘 때는 가장 구석진 방에서 웅크리고 잤습니다. 그런 갑수에게 '갑수 도사'라는 별명이 붙기 시작한 것은, 그가 들인 몸종 때문이었습니다. 몸종이 어느 날 갑수가 밥을 먹다 말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것입니다. "음 둘은 가고 하나가 남는구나" 몸종은 이 말을 주인어른이 그저 밥 두 그릇을 먹고 한 그릇이 남았다는 뜻으로 한 줄 알았으나, 그날 저녁 시장에 나갔다가 자기 집 소 두 마리를 도둑맞고 한 마리만 남은 이웃의 푸념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니, 우리 도사님이 아침에 그러시던데! '둘은 가고 하나는 남는다'고! 용하다, 용해!" 이 말은 순식간에 퍼져나갔습니다. 닭 두 마리가 족제비에게 물려가고 알 하나만 남은 집에서도, 짚신 두 켤레를 팔러 나갔다가 한 켤레만 팔고 돌아온 장사꾼도, 모두 '갑수 도사'의 신통력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갑수는 영문도 몰랐습니다. 그는 그저 저승사자가 알려준 그 말을 뜻도 모른 채 중얼거렸을 뿐인데, 사람들이 제멋대로 그 말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를 살아있는 부처처럼 떠받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아침에 가난뱅이에서 거부가 되고, 거부에서 '도사'가 된 갑수.
※ 왕의 시험
소문이란 것이 이토록 무서운 것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살이 붙고 부풀려진 '갑수 도사'의 명성은, 마침내 바람을 타고 파도를 넘어 한양의 대궐 담장까지 넘어갔습니다. 하필이면 그 무렵, 나라에는 발칵 뒤집힐 만한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바로 나라의 근본이자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 옥새가 하룻밤 사이에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도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왕의 정통성에 흠집이 가고, 나라의 기강이 무너질 수도 있는 중대한 사태였습니다. 임금은 진노했습니다. 당장 옥새를 찾으라 명했지만, 포도청과 의금부의 수색에도 불구하고 옥새는커녕 쥐새끼 한 마리 찾지 못했습니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점쟁이며 무당, 도인들이 모두 궁으로 불려 왔지만, 왕의 서슬 퍼런 기세에 눌려 "송구하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습니다. 왕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습니다. 바로 그때, 한 늙은 신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전하 듣자 하오니, 저 아랫마을에 '갑수'라는 기인이 있다 하옵니다. 그 자는 '둘은 가고 하나는 남는다'는 단 한마디 선문답으로 온갖 길흉화복을 꿰뚫어 본다고 하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자의 신통력을 빌려보심이 어떠할까 하옵니다." 밑져야 본전이었습니다. 아니, 이미 본전도 다 까먹은 상황이었습니다. 왕은 당장 갑수를 잡아 아니, 모셔 오라 명했습니다. 갑수는 난데없이 들이닥친 금군들에게 팔다리가 들려, 비몽사몽간에 한양으로 압송되었습니다. 으리으리한 기와집과 비단옷도, 그가 뼛속까지 가난뱅이라는 사실을 가려주진 못했습니다. 그는 용이 그려진 천장과 임금의 황금빛 용상 앞에서, 밥 먹는 법도 잊어버린 사람처럼 벌벌 떨었습니다. "네 이놈! 네가 감히 천기를 누설하고 민심을 어지럽힌다는 갑수 도사더냐!" 왕의 목소리는 천둥과도 같았습니다. 갑수는 땅바닥에 이마를 처박고 죽을죄를 지었다고 빌었습니다. "전하! 소인은 소인은 아무것도 모르옵니다! 그냥 그냥 저승" 저승사자 이야기를 꺼내려다, 이 미친놈 소리를 듣고 당장 목이 달아날까 싶어 황급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왕은 갑수의 그런 비굴한 모습에 더욱 화가 치밀었습니다. '저런 좀먹은 놈팡이 같은 자가 도사 행세를 했단 말인가!' "시끄럽다! 네놈이 진짜 도사인지, 아니면 백성을 홀리는 사기꾼인지는 내 알 바 아니다. 지금 당장 사라진 옥새를 찾아내거라! 옥새가 어디에 있는지, 범인은 누구인지 소상히 밝혀내라! 내가 네놈에게 닷새의 시간을 주겠다. 만약 닷새가 지나는 날까지 옥새를 찾지 못한다면, 네놈은 임금을 기만한 대역죄인이 되어 네놈의 그 잘난 목이 궁궐 광장에 내걸릴 것이다! 알겠느냐!" 갑수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옥새라니 내가 옥새를 아이고! 저승사자 나리! 이게 어찌 된 일이오! 나를 부자로 만들어준다더니, 황천길로 등 떠밀고 있었구려!' 갑수는 울부짖고 싶었지만,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즉시 궁궐의 가장 깊숙한 별채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도망칠 수도, 숨을 수도 없는 완벽한 감옥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도사님'의 명상을 돕는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상은 옴짝달싹 못 하는 죽음의 대기실이었습니다. 닷새의 시간. 하루가 지날 때마다 갑수는 피가 말랐습니다. 왕은 옥새를 못 찾은 도사를 대접한다며, 매일같이 임금님 수라상 부럽지 않은 산해진미를 들여보냈습니다. 하지만 쌀밥 한 그릇이 소원이라던 갑수에게, 그 기름진 음식들은 모래알보다 더 거북했습니다. 첫날은 울다 지쳐 잠들었고, 둘째 날은 벽에 머리를 박으며 저승사자를 원망했습니다. 셋째 날은 혹시나 정말 옥새가 보일까 싶어 눈을 부릅떠 봤지만 보이는 것은 별채의 낡은 서까래뿐이었습니다. 넷째 날, 그는 모든 것을 체념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닷샛날 밤이 찾아왔습니다.
※ 마지막 행운
닷새째 되는 날 밤. 창밖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야경꾼의 목탁 소리만이 시간의 흐름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갑수는 방 한가운데 넋 나간 사람처럼 우두커니 앉아있었습니다. '이제 내일 아침이면 내 목이 저잣거리에 걸리겠구나. 굶어 죽으나, 얼어 죽으나, 목이 잘려 죽으나 참으로 내 팔자 한 번 기구하다.' 그는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 빌었더니, 이렇게 화려한 궁궐에서, 왕이 내린 비단옷을 입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에이, 퉤! 더러운 팔자!" 그는 마지막 용기를 내어 상 위에 차려진 술을 한 잔 들이켰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지난 며칠간 입에 붙어버린 그 말을 주문처럼 읊조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둘은 가고, 하나는 남으리라" 여기서 '둘'이란, 이제는 감각조차 무뎌진 자신의 두 다리를 뜻하는 것이요, '하나'란 내일이면 몸뚱이와 이별할 자신의 '목숨' 하나를 뜻하는, 그야말로 처절하기 짝이 없는 독백이었습니다. 그는 창살 너머로 희미하게 빛나는 달을 보며 한탄을 이어갔습니다. "내가 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다 그놈의 옥새 때문이 아니더냐! 그놈의 옥덩어리 때문에 내 명줄이 끊어지게 생겼으니 아이고, 옥단이로구나! 옥단이야!" 그는 이어서 자신의 코끝을 스치는 방 안의 향 냄새를 맡았습니다. 도사 대접을 한다고 피워놓은, 값비싼 침향이었습니다. "흥! 이 좋은 향 내음도 오늘 밤이면 다 끝이로구나! 내일이면 피비린내만 진동할 터 아이고, 향단이로다! 향단이야!" 갑수는 그렇게 '옥단'과 '향단'을 목놓아 부르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번에도 기가 막힌 우연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별채의 창문 밖에는, 어둠 속에 몸을 숨긴 두 여인이 숨죽여 방 안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임금의 총애를 받다가 최근 그 사랑이 식어 불만을 품고 있던 궁녀 '옥단'과 '향단'이었습니다. 질투심에 눈이 먼 그들은, 임금의 총애를 새로이 받게 된 한 후궁을 모함하기 위해 옥새를 훔쳐 그 후궁의 처소 깊숙한 곳에 몰래 숨겨두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계획대로라면, 옥새가 발견되고 후궁이 폐위되어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닷새가 지나도록 옥새가 발견되지 않고, 엉뚱하게 '갑수 도사'라는 자가 궁에 불려 와 모든 이목이 그에게 쏠리자, 그들은 덜컥 겁이 났습니다. '만약 만약 저 도사가 정말 신통력이 있다면?' 두 궁녀는 마지막 날 밤, 갑수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별채로 숨어들었던 것입니다. 창호지에 침을 발라 구멍을 낸 그들의 귀에, 갑수의 첫 번째 한탄이 들려왔습니다. "둘은 가고 하나는 남으리라" 옥단과 향단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하얗게 질렸습니다. '틀림없다! '둘이 간다'는 것은 우리 '두 년'이 역모를 꾸몄다는 것이요, '하나가 남는다'는 것은 그 '옥새 하나'가 후궁의 처소에 남아있다는 뜻이 아니더냐!' 두 궁녀가 공포로 몸을 떨고 있을 때, 갑수의 절규가 다시 한번 그들의 고막을 찢었습니다. "아이고! 옥단아! 향단아! 내일이면 다 끝장이다! 이놈들아!" 옥단과 향단은 그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습니다. 저 도사가 저 도사가 귀신같이 자신들의 이름까지 정확히 불러대며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꾸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습니다. "꺄아악!" 두 궁녀는 비명을 지르며 문을 박차고 방 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술에 취해 눈이 반쯤 풀린 갑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며불며 애원했습니다. "도사님! 도사님! 잘못했습니다! 저희가 저희가 옥새를 훔쳤습니다! 질투에 눈이 멀어 후궁마마 처소 궤짝 밑에 숨겼나이다! 제발 제발 저희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갑수는 술이 확 깨는 것을 느꼈습니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습니다. 이 어리석은 궁녀들이 제 발로 들어와 모든 것을 자백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밤새 두 궁녀를 묶어두고 뜬눈으로 지새운 갑수는, 동이 트자마자 곤룡포도 제대로 꿰어입지 못하고 달려온 왕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는 두 궁녀를 앞으로 밀치고, 옥새가 숨겨진 장소를 고했습니다. 옥새는 무사히 제자리로 돌아왔고, 왕은 크게 기뻐하며 갑수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과연! 그대는 진정한 도사로다! 과인이 사람을 잘못 볼 뻔했구나!" 왕은 갑수에게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의 금은보화와 넓은 토지를 상으로 내렸습니다. 갑수는 저승사자가 알려준 '둘은 가고 하나는 남으리라'는 그 알쏭달쏭한 한마디 덕분에, 평생 만져볼 수 없는 거대한 재물을 얻고, 죽을 고비를 무사히 넘겼으며, 조선 팔도에 모르는 이가 없는 '행운의 도사'가 되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더 이상 그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저 조용히, 자신이 얻은 재물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눠주며, 언제 다시 그 저승사자가 자신을 찾아올지 모른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묵묵히 살다가 편안히 눈을 감았다고 전해집니다. 참으로 사람의 운명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기도 하고, 이처럼 벼락부자를 만들기도 하니, 참으로 기묘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들려드린 『계서야담』 속 '저승사자의 한마디' 이야기, 어떠셨나요?
지독한 가난뱅이 갑수는 저승사자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로 부와 명예를 모두 얻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갑수의 어리석음이, 또 어찌 보면 기가 막힌 행운이 만들어낸 한바탕 소동극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처럼 뜻 모를 말 한마디가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낼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께 찾아온 '저승사자의 한마디'는 과연 복이었을까요, 아니면 화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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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밤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