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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승사자는 뭐하는 존재인가

황금 인생 21 2026. 7. 31.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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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는 뭐하는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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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요? 그저 한 줌의 흙으로 흩어져 영영 사라지고 마는 걸까요? 우리 조상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숨을 거둘 때가 되면, 검은 갓을 쓰고 까만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서늘한 존재가 찾아옵니다. 바로 붉은 적패를 들이밀며 우리의 혼을 저승으로 인도한다는 저승사자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그들은 하필 그토록 차갑고 무서운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는 것일까요? 그저 두렵기만 한 줄 알았던 저승사자의 가슴 따뜻하고 진짜 숨겨진 이야기, 지금부터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귀 기울여 보시지요.

※ 1: 검은 도포의 인도자, 붉은 적패를 쥐고 이승의 마을로 내려오다

우리가 흔히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저승사자의 모습은 대체로 비슷할 것입니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에, 숯처럼 새까만 입술, 그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무장한 두려움과 공포의 상징이지요. 챙이 넓은 까만 갓을 두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게 눌러쓰고, 스산한 밤바람이 불 때마다 까만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 소리 없이 다가오는 자. 그들의 서늘한 손에는 망자의 이름과 태어난 해, 그리고 숨을 거두는 날짜와 시간이 빼곡하게 적힌 붉은색 나무패, 즉 적패가 들려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흔히 저승사자를 우리의 귀한 목숨을 앗아가는 무자비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사냥꾼이라 여기며 극도로 두려워했습니다. 고요한 한밤중에 개가 허공을 향해 까닭 없이 짖어대거나, 낡은 문풍지가 스산한 바람에 파르르 떨리기라도 하면, 혹여나 검은 도포의 저승사자가 우리 집 앞을 서성이는 것은 아닐까 가슴을 치며 졸이곤 했지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람이 죽으면 그저 한 줌의 흙으로 흩어져 사라질 텐데, 왜 굳이 저승사자라는 존재가 우리를 찾아온다고 조상들은 굳게 믿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저승사자가 생명을 강제로 빼앗는 잔혹한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승에서의 주어진 수명이 다하여 정든 육신의 옷을 영원히 벗어 던져야만 하는 외롭고 가여운 영혼들이, 춥고 어두운 길을 잃고 헤매다 구천을 떠도는 무서운 악귀가 되지 않도록 아주 안전하게 저승의 문턱까지 에스코트하는 존재. 말하자면, 우리가 이승을 떠나 낯선 세상으로 갈 때 우리를 지켜주는 가장 든든하고 믿음직한 최후의 길잡이이자 따뜻한 보호자인 셈입니다.

끝없이 깊고 어두운, 서늘한 묵향만이 가득한 명부전의 한구석. 고요한 기운이 감도는 그곳에서 한 저승사자가 염라대왕의 명을 받드는 판관으로부터 피처럼 붉은 적패 하나를 조심스레 건네받았습니다. 그 적패의 표면에는 충청도 어느 깊은 산골 마을에 사는 늙은 촌로의 이름과 사주팔자가 아주 굵고 선명한 붉은 먹물로 뚜렷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 노인의 수명을 알리는 보이지 않는 모래시계의 모래알이 이제 막 마지막 한 줌을 향해 쉼 없이 흘러내리고 있는 참이었습니다. 저승사자는 아무런 동요 없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까만 도포 자락을 단정하고 기품 있게 여몄습니다.

왜 저승사자들은 수천 년의 세월 동안 한결같이 어둡고 칙칙한 검은 옷만을 고집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이승에 남겨진 유족들의 찢어지는 슬픔과 애통함, 망자가 쏟아내는 회한과 미련의 눈물, 그 모든 어둡고 무거운 인간의 감정들을 자신들의 넓은 품으로 묵묵히 다 흡수하여 보듬어주기 위함입니다. 그 어떤 화려하고 눈부신 색깔도 짙은 검은색 앞에서는 그 빛을 잃고 묻혀버리듯, 거대한 죽음 앞에서는 이승의 모든 부귀영화도 권력도 결국엔 덧없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조용하고도 강렬한 철학이 바로 그 까만 도포 자락 속에 묵직하게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저승사자가 이승과 저승의 얇은 경계를 넘어 지상으로 소리 없이 발을 내디뎠을 때, 세상은 늦은 가을의 끝자락에서 매서운 눈보라를 품은 초겨울로 막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잎을 모두 떨구어 앙상해진 나뭇가지 위로 차갑고도 푸르스름한 달빛이 쓸쓸하게 부서져 내렸고, 마을의 초가집 굴뚝마다 저녁 지어 먹은 냄새를 품은 희미한 연기가 가늘게 피어오르다 차가운 밤공기에 허무하게 흩어져버렸습니다. 저승사자는 짚신이 얼어붙은 땅에 닿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마을의 좁은 흙길을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걸어갔습니다. 길가에 피어난 바싹 마른 억새들이 그의 길고 까만 도포 자락이 스칠 때마다 사각사각, 마치 이승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네듯 처연하고도 구슬픈 소리를 내며 흔들렸습니다.

저승사자의 느릿한 발걸음이 마침내 멈춘 곳은, 마을에서도 가장 후미진 산기슭에 자리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낡은 초가집 앞이었습니다. 흙담장 너머로는 흔한 짐승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몹시도 고요하고 적막한, 가난이 짙게 밴 집이었습니다. 저승사자는 굳게 닫힌 낡은 사립문을 유령처럼 통과해 마당 안으로 조용히 들어섰습니다. 평범한 인간의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지만, 저승사자의 깊고 서늘한 눈에는 그 낡은 초가집 지붕 위로 희미하고도 따뜻한 생명의 붉은빛이 촛불처럼 가물가물 꺼져가는 것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이승에서의 길고도 굽이치던 고단한 여행이 이제 곧 마침표를 찍을 시간이 다가왔구나. 수많은 인생의 고비와 매서운 시련을 맨몸으로 넘어오며 참으로 애를 많이 쓴, 고결하고도 위대한 영혼이로구나.'

저승사자는 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리며 손에 쥔 적패에 적힌 이름을 다시 한번 눈으로 천천히 훑어 내렸습니다. 가난하고 척박한 땅에서 태어나 평생을 흙투성이로 살며, 오직 가족들을 위해 묵묵히 땅만 파고 자식들을 길러낸 늙은 농부. 손마디가 거친 나무뿌리처럼 굵어지고 허리가 활처럼 휘어지도록 일만 하다가, 이제는 모든 기력이 쇠하여 조용히, 아주 평온하게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평범하고도 숭고한 인간의 이름이었습니다. 저승사자는 구멍 난 문풍지 사이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흔들리는 호롱불 빛을 가만히 응시했습니다. 보통의 집이라면 죽음을 코앞에 둔 노인의 거친 숨소리와 가족들의 근심 어린 흐느낌이 밖으로 새어 나와야 할 터인데, 이 집의 마당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하고 경건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승사자는 마당 한가운데 놓인 아주 작은 상 하나를 발견하고는, 늘 굳어있던 창백한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아주 희미하고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승의 가족들이 먼 길을 찾아온 자신들을 위해 정성껏 차려놓은 밥상, 사자상(使者床)이었습니다.

※ 2: 사자상(使者床)을 정성껏 차려놓고 평온히 죽음을 맞이하는 늙은 노인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낡은 초가집 안마당에는, 은은한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조그마하고 낡은 나무 소반 하나가 아주 정갈하고 반듯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그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봉으로 담긴 하얀 쌀밥 세 그릇과, 우물에서 갓 길어온 시원하고 맑은 냉수 세 대접, 그리고 거칠지만 가족들의 정성스러운 손길로 단단하게 삼은 새 짚신 세 켤레가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는 보통 세 명이 한 조를 이루어 다닌다는 옛사람들의 오랜 믿음 때문에, 망자의 가족들은 먼 길을 찾아온 저승사자들이 시장기를 든든하게 달래고, 다 해진 헌 신발을 새것으로 갈아 신고서 자신들의 아버지를 험한 저승길로 편안하게 인도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렇게 사자상을 차려두곤 했습니다. 가난한 살림에도 자신들이 먹을 쌀을 아껴 지어 올린, 요즘 세상에는 참으로 보기 드문 이승의 따뜻한 정성과 지극한 효심이 고스란히 깃든 상차림이었습니다. 저승사자는 그 소반 앞에 가만히 우두커니 서서, 인간들이 바치는 그 투박하고도 다정한 온기를 잠시나마 말없이, 그리고 깊이 음미했습니다. 이승의 온기가 그의 차가운 검은 도포를 은은하게 데워주는 듯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삐그덕, 하는 낡은 경첩 소리와 함께 초가집의 안방 문이 천천히 열렸습니다. 살가죽과 뼈만 앙상하게 남은 늙은 노인이, 손때 묻은 지팡이에 위태롭게 의지한 채 후들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마루로 걸어 나왔습니다. 노인의 얼굴은 세월의 모진 풍파와 고된 노동을 온몸으로 맞은 듯 깊은 주름이 겹겹이 골짜기처럼 패어 있었고, 두 눈은 퀭하게 푹 꺼져 있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겨울 밤하늘에 뜬 별처럼 한없이 맑고 평온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죽음을 앞둔 이 늙은 노인이 마당 한가운데 서 있는 검은 도포의 저승사자를 피하지 않고 똑바로, 아주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승에서의 명줄이 다하여 죽음의 문턱에 바싹 다가선 자만이 열 수 있다는 영안(靈眼)이 드디어 뜨인 것입니다. 노인은 두려움에 사시나무 떨듯 떨거나 살려달라 도망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리던 반가운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아주 온화하고 평화로운 얼굴로 저승사자를 향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명부를 받들고 먼 길 오시느라 참으로 고생이 많으셨소. 날이 몹시도 차가운데, 없는 살림에 차려놓은 소박한 밥이 입에 맞으실는지 모르겠소이다. 신발은 내 며느리가 어젯밤 지극정성으로 삼은 것이니 발이 편하실 겝니다."

노인의 갈라지고 쉰, 그러나 한없이 다정한 목소리가 얼어붙은 밤공기를 타고 고요하게 마당을 울려 퍼졌습니다. 저승사자는 노인의 그 담담한 인사에 조금도 놀란 기색 없이, 특유의 서늘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무겁고 든든한 목소리로 정중하게 대답했습니다.

"참으로 정갈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상차림이오. 이승의 온기와 정성이 이토록 가득 담긴 밥과 신발을 내어주시니, 먼 길을 건너온 나의 피로가 단숨에 씻은 듯이 가시는 듯하오. 진심으로 감사드리오. 허나, 내 이리 무서운 검은 도포를 입은 모습을 보고도 어찌 그리 두려워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으시오? 내가 겪은 보통의 인간들은 내 검은 도포 자락과 적패만 보아도 사시나무 떨듯 바닥에 주저앉아, 제발 하루만 더 살려달라며 오열하고 매달리기 일쑤인데 말이오."

저승사자의 묵직한 물음에 노인은 툇마루에 힘겹게 조용히 걸터앉으며,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던 옛 벗과 다과를 나누며 담소를 하듯 껄껄껄,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두려울 것이 대체 무어 있겠소. 이 세상에 생명을 얻고 태어난 것은 언젠가 때가 되면 반드시 그 근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하늘과 땅의 변함없는 이치 아니겠소. 따뜻한 봄날에 눈부시게 피어난 벚꽃이 찬 바람 부는 가을이 되면 아무런 미련 없이 땅으로 떨어져 썩어 거름이 되듯, 내 육신도 팔십 평생을 이리저리 거친 세상에 부대끼며 닳고 닳을 만큼 썼으니, 이제는 나를 낳아준 자연으로 깨끗이 돌려주는 것이 마땅한 일이지요. 척박한 자갈밭을 맨손으로 일구어 내 귀한 자식들 배불리 먹였고, 거친 비바람과 폭풍우 속에서도 내 가족들 뿔뿔이 흩어지지 않게 이 두 팔로 잘 지켜냈으니, 내 인생 참으로 단 한 줌의 후회 없이 꽉 채워 잘 살았다 생각하오. 그러니 나를 데리러 온 당신의 모습이 무섭고 끔찍하기는커녕, 오히려 한평생 무거웠던 지게를 이제 그만 내려놓게 해주는 참으로 고맙고 다정한 벗처럼 느껴진다오."

'이토록 맑고 단단하며 티끌 하나 없는 영혼을 마주하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로구나.'

저승사자는 노인의 담담하고도 깊은 인생의 통찰이 담긴 말에 내심 깊고 뜨거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데려가야 할 대부분의 망자들은 죽음의 순간에 다다라서야 이승에 남겨둔 알량한 재물, 풀지 못한 지독한 원한, 전하지 못해 가슴에 맺힌 사랑을 떠올리며 뼈저린 후회와 미련에 사로잡혀 발버둥을 치곤 합니다. 하지만 이 늙은 노인은 삶의 그 모든 굽이치던 희로애락을 모두 자신의 온몸으로 껴안아 인정하고, 그 모든 이승의 집착을 미련 없이 훌훌 털어버린 채 온전한 빈손으로 떠날 준비를 완벽하게 마치고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는 노인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가, 자신의 차갑고 커다란 손을 노인의 굽은 어깨 위에 살포시, 아주 부드럽게 올려놓았습니다.

"참으로 귀하고 위대하며 아름다운 삶을 사셨소. 흙투성이가 된 그대의 거친 두 손과 활처럼 굽은 등은, 이승에서 당신이 얼마나 치열하고 숭고하게 가족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아왔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주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훈장이오. 이제 이 무겁고 고단했던 육신의 굴레를 훌훌 벗어 던지고, 편안히 눈을 감고 잠들 시간이오. 내가 그대의 길이 결코 어둡거나 춥지 않도록 길 잃지 않는 따뜻한 등불이 되어, 평화로운 저승의 입구까지 내 목숨을 다해 안전하게 모셔다드리겠소."

노인은 저승사자의 그 무겁고도 가슴 뭉클한 위로의 말에, 굳게 다물었던 핏기 없는 입술을 바르르 떨며 결국 참았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고맙소... 참으로 고맙소. 내 곁에서 자고 있는 내 늙은 아내와 불쌍한 자식들이 깰까 두려우니, 소란 떨며 눈물 흘리지 말고 이제 그만 조용히, 우리끼리 길을 나섭시다."

노인이 천천히 두 눈을 감고 깊고 편안한 숨을 마지막으로 길게 뱉어내는 순간, 저승사자의 펄럭이는 소매 속에서 붉은 적패가 은은하고도 신비로운 붉은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승사자는 허리춤에서 서늘한 기운을 뿜어내는 명부를 꺼내어 들고는, 이승과 저승의 법도에 따라 망자의 이름을 아주 묵직하고 거룩하게 세 번 불렀습니다.

"김해 김씨 김순택. 김해 김씨 김순택. 김해 김씨 김순택."

그 엄숙한 세 번의 부름은, 혼을 낡은 육신에서 온전히 분리하여 자유롭게 해주는 거룩한 초혼(招魂)의 의식이자, 이승과의 길고 길었던 인연을 미련 없이 끊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 작별 인사였습니다.

※ 3: 육신을 벗어난 영혼, 저승사자의 안내를 받으며 안개 자욱한 황천길에 오르다

저승사자의 묵직하고 서늘한 세 번의 호명 소리가 차가운 겨울 밤하늘에 잔잔한 메아리처럼 흩어지자, 툇마루의 기둥에 편안히 기대어 앉아 눈을 감은 노인의 몸에서 아주 신비롭고도 경이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노인의 주름지고 뼈만 남은 육신은 마치 그동안 짊어졌던 모든 짐을 내려놓은 텅 빈 허물처럼 툭 하고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고, 그 고요한 육신 위로 희미하고 투명한 은빛의 형상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피어오르더니 마침내 깃털처럼 가볍게 허공으로 둥둥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노인이 팔십 평생 머물렀던 낡은 껍데기를 완벽하게 벗어난 순수하고 티 없는 영혼이었습니다. 육신을 짓누르던 관절의 고통도, 찌든 병마와 무거운 세월의 주름진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영혼의 모습은 그가 가장 평온하고 맑았던 젊은 날의 생기 있는 기운을 고스란히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노인의 영혼은 허공에 둥둥 뜬 채, 툇마루에 쓸쓸하게 널브러져 있는 자신의 늙고 마른 육신을 가만히, 아주 애틋하고도 낯선 시선으로 한참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저것이... 내가 팔십 평생을 이승의 비바람에 부대끼며 살아온 나의 껍데기란 말이오. 참으로 낡고 볼품없이 해어졌구려. 저렇게 마르고 굽은 낡은 몸으로 그 모진 흉년과 폭풍우를 어찌 다 견뎌냈는지. 내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참으로 수고가 많았다, 내 불쌍한 몸뚱어리야."

그렇게 자신의 육신과 무언의 작별을 나누던 바로 그 순간, 굳게 닫혀 있던 안방의 방문이 거칠게 열리며 잠에서 깬 늙은 아내와 장성한 아들 부부가 사색이 된 얼굴로 마루로 뛰쳐나왔습니다. 싸늘하게 식어 미동조차 없는 노인의 육신을 발견한 가족들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끔찍한 충격에 휩싸여 그 자리에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아이고, 영감! 영감! 어찌 이리 한마디 작별의 말도 없이 홀연히 두 눈을 감으셨소!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내 손을 잡고 멀쩡히 밥술을 뜨셨건만, 나만 홀로 두고 이리 무정하게 가시면 남은 저는 어찌 살라고요! 눈 좀 떠보시오, 영감!"
"아버지! 아버지! 제발 눈 좀 떠보십시오! 평생 일만 하시다가 이제야 등 따숩게 모시려 했는데, 이 불효자를 두고 어찌 이리 황망하게 가신단 말입니까! 아버지!"

가족들이 뻣뻣하게 굳어가는 노인의 시신을 부여잡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피를 토하듯 오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가슴 찢어지는 구슬픈 곡소리가 적막했던 밤공기를 날카롭게 찢으며, 잠든 온 마을을 깨우듯 구슬프게 퍼져나갔습니다. 가족들의 처절한 눈물과 울부짖음을 바로 위에서 지켜보던 노인의 영혼은,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승과 가족에 대한 애틋한 미련이 한순간에 왈칵 밀려오는 듯 깊은 슬픔에 잠겨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영혼의 투명한 눈가에도 진주 같은 이슬이 맺혔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투명한 손을 길게 뻗어 엉엉 울고 있는 늙은 아내의 주름진 뺨을 쓰다듬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승과 저승의 경계는 냉혹했습니다. 그의 손은 그저 허공을 헛돌며 아내의 얼굴을 스쳐 지나갈 뿐, 이승의 남겨진 존재에게는 그 어떤 위로의 온기도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내 늙은 사람아. 내 가여운 자식들아. 제발 울지 마오. 내 비록 몸은 이렇게 흙으로 돌아가 떠나지만, 당신들을 향한 내 깊은 마음만은 항상 바람이 되어 당신들 곁에 머물며 지켜줄 것이오. 부디 나를 잃은 남은 생애를 깊은 슬픔의 늪에 빠져 허비하지 말고, 서로 의지하며 평안하게 살아주오.'

노인의 영혼이 안타까움과 슬픔에 뒤돌아서지 못하고 곁을 맴돌며 머뭇거리자, 묵묵히 그 모든 이별의 과정을 곁을 지키고 서서 지켜보던 저승사자가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저승사자는 노인의 투명한 어깨를 향해, 자신의 까만 도포 자락을 두른 팔을 아주 부드럽고도 단단하게 감싸 안았습니다.

"이별의 순간은 죽은 자에게나 산 자에게나 언제나 예리한 칼날에 가슴이 베인 듯 뼈저리게 아프고 고통스러운 법이오. 남겨진 자들의 저 애통한 눈물은 산 자들이 앞으로 견뎌내야 할 살아있음의 무거운 무게이며, 이승을 떠나는 자가 짊어져야 할 마지막 슬픔의 짐이지요. 허나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시간이라는 위대한 약이 결국 저들의 찢어진 상처를 서서히 아물게 할 것이고, 당신과의 따뜻하고 아름다웠던 추억만이 그들의 가슴속에 단단한 씨앗처럼 남아, 저들을 평생 굳건하게 살아가게 하는 따뜻한 힘이 되어줄 것이오. 이제 그만 미련의 끈을 당신이 먼저 놓아주어야 저들도 비로소 평안을 찾고 당신을 보내줄 수 있소. 자, 이제 이승의 아픈 문을 닫고 저승의 새로운 길을 열 시간이오. 나와 함께 가시지요."

저승사자의 그 서늘하지만 바위처럼 굳건하고 따스한 진심 어린 위로에, 노인의 영혼은 마침내 체념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젖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승사자가 손에 쥔 붉은 적패를 허공에 대고 무겁게 한 번 긋자, 눈앞의 마당과 초가집 등 이승의 풍경이 물결처럼 일렁이며 흐려지더니, 발밑으로 자욱하고 시퍼런 안개가 끝없이 깔린 낯설고 신비로운 길이 스르륵 소리 없이 열렸습니다. 이승의 끝과 저승의 시작을 잇는 유일한 영혼의 통로, 바로 망자들이 외롭게 걸어야 할 황천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달빛도 별빛도 없고 그림자조차 생기지 않는, 오직 무거운 잿빛 안개만이 소용돌이치는 끝을 알 수 없는 아득하고 서늘한 길이었습니다. 첫발을 내디딜 때마다 차가운 한기가 영혼을 꿰뚫고 지나갔지만, 앞장서서 걷는 저승사자의 태평양처럼 넓고 검은 등판과 펄럭이는 까만 도포 자락만큼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망자가 의지할 수 있는 가장 믿음직하고 뚜렷한 이정표가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는 행여나 뒤따라오는 노인의 영혼이 길을 잃어버리거나 두려움에 떨지 않도록, 자신의 발걸음을 늦추고 때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길의 방향을 일러주며, 묵묵히 잿빛 안개 속으로 아주 깊숙하게, 영원한 안식을 향해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 4: 저승길을 위협하는 악귀들, 검은 도포 자락이 망자의 방패가 되다

끝없이 이어지는 잿빛 안갯속 황천길. 이 춥고 아득한 길은 단순히 이승의 끝과 저승의 시작을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단순한 통로가 아니었습니다. 망자가 이승에서 평생 짊어지고 살았던 수많은 삶의 무거운 기억들과, 얽히고설킨 감정의 찌꺼기들을 걸음걸음마다 하나씩 내려놓으며 영혼의 무게를 가볍게 덜어내는 기나긴 영적인 수행의 길이었습니다. 노인의 영혼은 묵묵히 앞장서서 걷는 저승사자의 넓고 새까만 등판만을 유일한 이정표 삼아, 발소리조차 나지 않는 허공의 길을 마치 둥둥 떠가듯 조심스레 걸어갔습니다. 사방은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쥐 죽은 듯 고요했고, 가끔씩 불어오는 서늘하고 비릿한 바람결에 섞여 이승에서 남겨진 가족들의 아득한 곡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 슬픈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노인의 영혼은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멈칫하며 뒤를 돌아보려 했지만, 저승사자는 그때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묵직하고도 단호한 목소리로 길을 재촉했습니다.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시오. 이 황천길에서 이승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 미련의 끈이 영혼의 발목을 거미줄처럼 칭칭 감아 영영 이 안갯속 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원귀가 되고 맙니다. 당신이 이제 돌아갈 곳은 이승의 초가집이 아니라, 당신의 남은 영혼이 영원한 안식을 취할 저승의 명부전이오. 오직 내 펄럭이는 검은 도포 자락만 똑바로 보고 따라오시오."

저승사자의 그 서슬 퍼런 경고에 노인은 황급히 시선을 거두고 다시 묵묵히 앞을 향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더 걸어, 황천길에서도 가장 빛이 닿지 않는 깊숙하고 음산한 골짜기에 다다랐을 무렵이었습니다. 잔잔하고 평온하던 잿빛 안개가 갑자기 소용돌이치듯 거칠게 춤을 추기 시작하더니,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기괴한 웃음소리와 살이 찢어지는 듯한 끔찍한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히히히… 향긋한 냄새가 난다! 싱싱하고 맑은 영혼이 오고 있어! 이승의 따뜻한 기억이 잔뜩 묻어있는 저 늙은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 뜯어먹자꾸나!"

시퍼런 안개를 뚫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하게 일그러지고 피눈물을 뚝뚝 흘리는 수십 마리의 악귀 떼가 노인의 영혼을 향해 굶주린 승냥이 떼처럼 미친 듯이 달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과거 황천길을 걷다가 이승에 대한 탐욕과 집착을 끝내 버리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무사히 길을 통과하지 못하고 영겁의 세월 동안 이 차가운 안개 속에 갇혀버린 가여우면서도 끔찍한 원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새로 들어온 맑은 망자의 영혼을 탐하여 자신들의 끝없는 고통과 굶주림을 덜어보려는 끔찍한 요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노인의 영혼은 사방에서 덮쳐오는 그 끔찍한 악귀들의 모습에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며 그 자리에 돌처럼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악귀들의 뾰족하고 날카로운 손톱이 노인의 영혼을 무자비하게 낚아채려던 바로 그 절체절명의 찰나, 번개처럼 빠르게 몸을 돌린 저승사자가 노인의 앞을 거대한 태산처럼 떡하니 가로막아 섰습니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천박하고 더러운 잡귀들이 함부로 나대느냐! 저승의 엄격한 율법과 염라대왕의 거룩한 명이 적힌 이 적패가 두 눈에 보이지 않느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저승사자가 품에서 붉게 빛나는 거룩한 적패를 꺼내어 허공으로 번쩍 치켜들자, 적패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슬 퍼런 붉은빛이 악귀들의 흉측한 몸을 강력하게 강타했습니다. 악귀들은 펄펄 끓는 불에 덴 듯 고통스러운 비명과 괴성을 지르며 뒤로 나동그라졌습니다. 하지만 지독한 굶주림과 원한에 두 눈이 완전히 멀어버린 악귀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고, 다시 둥그렇게 진형을 짜며 저승사자의 빈틈을 노리려 발악을 하며 으르렁거렸습니다.

저승사자는 한 치의 흔들림이나 두려움도 없이, 자신의 넓고 까만 도포 자락을 양팔로 거칠게 펄럭이며 노인의 영혼을 완벽하게 자신의 넓은 등 뒤로 감싸 숨겼습니다.

"내 등 뒤에 바짝 붙어 숨을 죽이고 있으시오. 사람들은 이 까만 도포가 죽음을 부르는 불길한 옷이라 욕하지만, 이 도포는 이승의 슬픔을 품어주는 그릇이자, 동시에 저승의 악귀들로부터 망자를 완벽하게 지켜내는 무쇠보다 단단하고 거룩한 방패이기도 하오. 내 저승사자의 목숨을 모두 걸고서라도 당신의 그 맑은 영혼에 작은 생채기 하나 나지 않게 끝까지 지켜낼 터이니, 절대 내 도포 밖으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마시오."

저승사자의 그 한없이 낮고 든든한 목소리에, 노인은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도 알 수 없는 깊고 따뜻한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저승사자는 품에서 서늘한 은빛을 뿜어내는 저승의 긴 칼을 빼어 들고는, 사방에서 달려드는 악귀들을 향해 무자비하고도 날렵하게 검을 휘둘렀습니다. 저승사자의 차가운 칼날이 허공을 춤추듯 가를 때마다 짙은 안개가 찢겨 나가며 악귀들이 혼비백산하여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맡은 혼령을 명부전까지 무사히 인도해야 한다는 저승사자의 그 절대적이고도 숭고한 사명감 앞에서는, 그 어떤 사악하고 굶주린 악귀 무리도 결코 감히 범접할 수 없었습니다.

한참 동안 이어진 피 말리는 팽팽한 사투 끝에, 마침내 악귀 떼가 시퍼런 안개 속으로 꼬리를 감추고 완전히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저승사자는 거친 숨을 고르며 칼을 거두어 품에 넣고는, 등 뒤에 숨어 덜덜 떨고 있는 노인을 향해 천천히 돌아보며 안심하라는 듯 옅고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이제 모두 끝났고 안전하오. 험난한 고비는 다 넘겼으니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길을 나섭시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시오."

노인은 방금 전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 저승사자의 까만 도포 자락 끝부분이 귀신들의 손톱에 찢겨 갈기갈기 해어진 것을 보고는, 벅차오르는 깊은 감동과 미안함에 뜨거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이승의 사람들은 생명을 앗아가는 저승사자라 하여 그토록 끔찍하게 두려워하고 욕했건만, 정작 죽음 이후의 황천길에서 가장 외롭고 위험한 순간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영혼을 든든하게 지켜준 자는 다름 아닌 이 차갑고 서늘해 보이는 저승사자 한 명뿐이었습니다. 노인은 저승사자의 찢어진 도포 자락을 보며, 저승사자야말로 망자들을 위한 가장 자비롭고 위대한 수호자임을 마음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 5: 이승의 미련을 씻어내는 망각의 강과 묵묵히 지켜보는 저승사자의 속마음

무시무시했던 악귀들의 습격을 무사히 넘기고 다시 깊은 침묵이 내려앉은 황천길을 나란히 걷던 두 사람의 귓가로, 저 멀리서 아득하게 물결이 거칠게 부서지는 듯한 서늘하고도 기괴한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앞을 가로막고 있던 두꺼운 잿빛 안개가 조금씩 옅어지며 마침내 시야가 넓게 열린 곳에는, 끝이 도무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고 시커먼 강물이 무섭게 소용돌이치며 굽이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강은 망자가 이승에서 맺었던 모든 인연과 기억, 그리고 미련을 완전히 씻어내어 완벽하게 망각하게 만든다는 저승의 두 번째 관문이자 슬픔의 강, 바로 '삼도천(三途川)'이었습니다.

삼도천의 스산한 나루터에는 망자들을 저승의 심판대인 명부전으로 실어 나르기 위한 거대하고 낡은 나무 나룻배 한 척이 끼익끼익 기괴한 마찰음을 내며 정박해 있었습니다. 찰랑거리는 시커먼 강가에는 수많은 망자의 영혼들이 배에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이승의 하늘을 돌아보며 가슴을 치고 바닥을 구르며 통곡을 하거나, 흐르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미련의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습니다. 이 무서운 삼도천을 한 번 건너고 나면 이승에서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와 자식들의 얼굴도, 피땀 흘려 치열하게 살아왔던 삶의 흔적도, 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도 모두 하얗게 지워져 영원한 망각의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것을 그들 모두가 영혼의 본능으로 절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인의 영혼 역시 삼도천의 거센 물살을 가만히 바라보며 깊고 서글픈 상념에 빠져들었습니다. 가난했지만 늙은 아내와 함께 마루에 앉아 둥근 달을 보며 웃음 짓던 여름밤, 귀한 자식들이 태어나 처음 아장아장 걷던 그 경이롭고 가슴 벅차던 순간, 지독한 흉년에 굶주린 가족을 어떻게든 먹이려 얼어붙은 흙바닥을 맨손으로 파헤치며 피눈물을 삼키던 그 처절했던 기억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이 모든 피가 끓는 아름답고도 아픈 인생의 기억들을 모조리 백지장처럼 잊어버려야만 다음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잔혹한 사실이, 노인에게는 방금 겪은 죽음 그 자체보다 훨씬 더 쓸쓸하고 가혹한 형벌처럼 느껴졌습니다.

"저승사자 어르신... 이 시커먼 강물을 건너면… 정말로 내 곁을 평생 지켜준 사랑하는 아내의 주름진 얼굴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보석 같은 자식들의 이름조차도 모두 하얗게 지워져 영영 잊어버리게 되는 겝니까? 평생을 내 심장 속에 품고 살아온 그 따뜻한 기억들을 모두 무참히 지워버려야만 비로소 저승의 문이 열린단 말이오?"

노인의 목소리는 깊은 물기를 잔뜩 머금은 채 가을 낙엽처럼 가늘게 바르르 떨리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뱃사공에게 나룻배의 자리를 수배하던 저승사자는 노인의 그 애처롭고 절박한 물음에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묵직하고도 한없이 쓸쓸한 눈빛으로 시커먼 강물을 가만히 응시했습니다.

"그렇소. 삼도천의 저 차가운 강물은 망자의 영혼 구석구석에 끈질기게 들러붙은 이승의 모든 무거운 집착과 감정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잔인하지만 자비로운 세례의 물이오. 기억이라는 것은 이승에서는 참으로 따뜻하게 영혼을 데워주는 보물이기도 하지만, 죽은 자가 저승에 미련을 남겨 환생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무겁고 잔인한 족쇄이기도 하오. 그 수많은 기억의 짐을 이곳 나루터에 온전히 내려놓아야만 당신의 영혼이 티끌 하나 없는 온전한 백지상태가 되어, 저승의 공정한 재판을 받고 새로운 삶의 굴레로 얽매임 없이 홀가분하게 다시 환생할 수 있기 때문이오. 그것이 우주의 섭리요."

저승사자의 그 덤덤하지만 뼈저리게 시린 설명에, 노인은 마침내 체념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차가운 나루터 바닥에 주저앉아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저승사자는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수천, 수만의 외로운 망자들을 바로 이 강가로 인도하면서 이와 똑같은 눈물과 절망의 절규를 마주해왔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런 감정 없이 차갑게 굳어있는 조각상처럼 보였지만, 저승사자의 가슴속 가장 깊은 곳 역시 늘 인간의 그 절절한 이별의 고통을 곁에서 지켜보며 함께 피 흘리듯 저릿하게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저승사자란 이승의 감정을 완벽히 도려낸 자들이라지만, 그들 역시 망자들의 그 무거운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내어 주는 가장 지독하고도 외로운 감정의 피난처 역할을 수백 년간 묵묵히 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승사자는 통곡하는 노인에게 천천히 다가가 무릎을 굽혀 쪼그려 앉고는, 소리 내어 우는 노인의 굽은 등을 자신의 거칠지만 난로처럼 따뜻한 손으로 아주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너무 섧게 슬퍼하지 마시오. 이 거센 강물이 당신의 뇌리에 깊게 새겨진 가족들의 이름과 얼굴의 형태를 모두 지워버릴 수는 있어도, 당신이 평생토록 가족들과 치열하게 부대끼며 주고받았던 그 깊고 숭고한 '사랑의 온도'마저 강물에 씻어내지는 못할 것이오. 얕은 기억은 머리에서 잊혀 지워지지만, 진짜 사랑은 영혼의 가장 깊은 밑바닥에 지워지지 않는 불도장처럼 강하게 새겨져 억겁의 세월이 흐르고 천 번을 다시 태어나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법이오. 당신이 다음 생에 완전히 다른 낯선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훗날 당신의 옛 가족을 우연히 길에서 스쳐 지나갈 때 까닭 없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날 것 같이 따뜻해진다면, 그것은 바로 삼도천의 무서운 강물조차 끝내 씻어내지 못한 당신 영혼 속 위대한 사랑의 기억이 다시 깨어나는 경이로운 순간일 것이오. 그러니 이별을 두려워 마시오."

저승사자의 그 철학적이고도 영혼을 울리는 깊은 위로에, 노인은 흐르던 눈물을 천천히 닦아내고 깊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지워지는 것은 한낱 껍데기 같은 단편적인 기억일 뿐, 본질적인 사랑의 감정은 영원히 내 영혼과 함께 남는다는 그 말이 노인의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가슴을 몹시도 평온하게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노인은 마침내 이승의 모든 무거운 미련을 내려놓은 홀가분하고도 맑은 얼굴로 저승사자를 향해 희미한 감사의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당신의 그 바다같이 깊은 위로 덕분에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소. 내 영혼에 단단히 새겨진 그 따뜻한 사랑의 온도만을 품고 기꺼이 이 슬픔의 강을 건너겠소. 자, 저승을 향해 안내해 주시오."

노인은 저승사자가 내민 단단한 손을 꽉 잡고 흔들리는 낡은 나룻배에 올랐습니다. 삐걱거리는 나룻배가 서서히 시커먼 강물을 가르며 짙은 안개 너머의 명부전을 향해 멀어져 갈 때, 노인의 맑은 영혼은 짐을 벗어던진 듯 점점 더 투명해지고 평온해지며, 이승의 모든 아프고도 아름다웠던 기억의 짐을 강물 위에 한 송이 꽃잎처럼 아름답게 내려놓고 있었습니다.

※ 6: 염라대왕 앞에서의 심판, 그리고 저승사자가 망자에게 건네는 마지막 위로

망각의 강 삼도천을 무사히 건넌 노인의 맑은 영혼과 묵묵한 저승사자가 마침내 당도한 곳은, 억겁의 세월 동안 수많은 망자의 죄업을 저울에 달아 심판해 온 저승의 절대적인 중심부, '명부전(冥府殿)'이었습니다. 까마득하게 높아 끝이 보이지 않는 천장을 위엄 있게 받치고 있는 흑요석 기둥들 사이로, 시퍼런 도깨비불들이 소리 없이 둥둥 떠다니며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명부전의 가장 높은 심판석 위에는, 삼라만상의 모든 진실과 거짓을 단숨에 꿰뚫어 볼 듯한 날카롭고 무서운 눈빛을 번뜩이는 저승의 절대 수장, 염라대왕이 시뻘건 용포를 입고 태산처럼 굳건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노인의 영혼은 뿜어져 나오는 그 거대한 염라대왕의 기세에 완전히 짓눌려, 자신도 모르게 차가운 바닥에 납작 엎드려 덜덜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노인을 든든한 방패처럼 지켜주었던 저승사자는, 이제 뒤로 한 걸음 조용히 물러서서 최대한의 예를 갖추고 염라대왕을 향해 손에 쥔 붉은 적패를 두 손으로 공손히 들어 올렸습니다.

"대왕마마, 명부의 지엄한 부름을 받고 이승으로 내려가 충청도에 사는 김해 김씨 김순택의 영혼을 길 잃지 않고 무사히 심판대 앞까지 인도하여 모셔 왔나이다."

염라대왕은 무성한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저승사자가 올린 적패의 붉은 글씨를 확인하고는, 옆에 놓인 거대한 업경대(망자의 전생을 한 치의 거짓 없이 비추어 죄를 가려내는 거룩한 거울)를 향해 육중한 손짓을 했습니다.

"수고가 많았다, 저승사자여. 뒤로 물러가 있거라. 자,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아라, 망자여. 이제 저 업경대가 네가 이승에서 살아온 팔십 평생의 모든 궤적과 숨겨진 진실을 낱낱이 비추어, 네가 빛나는 천국으로 갈지 고통스러운 지옥으로 떨어질지를 공정하고 엄격하게 심판할 것이다."

염라대왕의 쩌렁쩌렁한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업경대의 맑은 거울 위로 노인이 이승에서 살아온 일대기가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지독히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며칠을 굶주려 배를 곯으며 눈물을 훔치던 어린 시절, 마음씨 고운 아내를 만나 손발이 닳아 없어지도록 척박한 자갈밭을 일구며 농사를 짓던 고단한 나날들, 흉년이 들어 자식들을 어떻게든 먹이기 위해 남의 집 머슴살이를 자처하며 양반의 모진 채찍질을 말없이 견뎌내던 처절하고도 숭고한 가장의 모습, 그리고 한겨울 길가에 쓰러진 병든 낯선 거지를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하나뿐인 밥그릇을 기꺼이 내어주며 그의 언 손을 녹여주던 그 따뜻하고 위대했던 순간들까지.

거울 속에 비친 노인의 삶은 남들이 부러워할 화려한 부귀영화나 권력과는 거리가 아주 멀고 한없이 초라해 보였지만, 그 고단한 인생의 굽이굽이 속에는 오직 자신을 희생하여 묵묵히 가족과 타인을 보듬어 안은 가장 순수하고도 위대한 인간의 '사랑과 헌신'이 찬란한 보석처럼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업경대의 영상이 모두 끝나자, 명부전 안에서 매일같이 죄인들을 꾸짖던 그 무섭고 냉혹하던 판관들조차 노인의 그 이타적인 삶에 감복하여 고개를 숙이고 숙연해졌습니다. 항상 굳어있던 염라대왕 역시 미간의 주름을 부드럽게 풀고, 한없이 자비롭고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업경대가 분명하게 증명하듯, 네 비록 이승에서 가진 것 하나 없이 흙바닥을 뒹굴며 짐승처럼 고단하게 살았으나, 네가 평생을 바쳐 이웃과 가족에게 베푼 그 숭고한 사랑과 헌신의 무게는 저승의 그 어떤 보물보다 무겁고 고귀하구나. 너의 영혼은 지금 이 명부전의 거울처럼 티끌 하나 없이 맑고 깨끗하니, 지옥의 형벌을 완벽히 면하고 가장 평화롭고 따뜻한 빛이 쏟아지는 천상 낙원으로 올라가 영원한 안식을 누리도록 하라!"

염라대왕의 성은이 망극한 판결이 명부전을 울리며 떨어지자, 바닥에 엎드려 있던 노인은 감격과 환희에 겨워 굵은 눈물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며 수없이 절을 올렸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대왕마마! 참으로, 참으로 감사합니다!"

위대한 재판이 모두 끝나고, 노인이 천상으로 오르는 거대한 황금빛 계단 앞에 섰을 때였습니다. 줄곧 노인의 뒤에 묵묵히 서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저승사자가 펄럭이는 도포를 이끌고 천천히 노인의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는 저승사자로서의 모든 임무를 완수하고, 정들었던 노인과 영원한 이별을 고해야 할 순간이었습니다. 저승사자는 늘 그렇듯 창백하고 표정 없는 얼굴이었지만, 챙이 넓은 갓 아래로 빛나는 그의 두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따뜻하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나의 임무는 완벽하게 여기까지요. 당신의 그 아름답고도 치열했던 삶의 마지막 여정을 내 손으로 직접 인도할 수 있어서, 늘 외로운 이 차가운 저승사자인 내게도 참으로 큰 영광이었소. 참으로 수고 많으셨소."

노인은 자신을 끔찍한 악귀로부터 목숨을 걸고 지켜주었고, 삼도천에서 절망의 눈물을 닦아주었던 저승사자의 두 손을 덥석 맞잡고 자신의 가슴에 대며 꽉 쥐었습니다.

"저승사자 어르신, 아니 나의 마지막 든든한 벗이여. 당신의 그 따뜻한 위로가 없었다면 저는 악귀에게 잡아먹혀 구천을 떠돌거나, 삼도천의 깊은 눈물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영원히 길을 잃었을 것입니다. 이승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대체 왜 당신을 무섭다고 피하는지 모르겠소. 당신이 두르고 있는 그 까만 도포는 이승을 떠나는 저를 외풍으로부터 지켜준 가장 따뜻하고 포근한 어미의 품이었습니다. 베풀어주신 이 깊은 은혜, 제가 영원토록 잊지 않겠소."

저승사자는 빙그레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노인의 손을 마주 잡아 부드럽게 감싸 쥐었습니다.

"내가 이 검은 옷을 입고 존재하는 이유는 생명을 강제로 앗아가는 두려움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순간 길을 잃고 떨고 있는 영혼들이 홀로 외롭지 않게 그 차가운 손을 굳게 잡아주는 가장 듬직한 길잡이가 되는 것이오. 자, 이제 이승의 무거운 짐과 슬픔은 모두 내가 이 까만 도포 자락에 영원히 파묻어두고 갈 터이니, 당신은 홀가분하고 맑은 영혼으로 저 눈부신 천상의 빛을 향해 평안히 올라가시오. 부디 다음 생에서는 고단함 없이 꽃길만 걸으시길 내 진심으로 바라오."

저승사자는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고개를 숙이며 깊은 예를 표했고, 노인 역시 환하고 눈부신 미소로 화답하며 찬란한 황금빛 계단을 따라 천상의 낙원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습니다. 노인의 모습이 따뜻한 빛 속으로 완전히 녹아들어 사라질 때까지, 저승사자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묵묵히, 그리고 애틋하게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잘 가시오, 아름답고 위대한 영혼이여. 당신의 그 훌륭한 삶은 천상을 누리기에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었소.'

명부전의 서늘한 기운 속에서 홀로 남겨진 저승사자는 다시 챙이 넓은 까만 갓을 바르게 고쳐 쓰고, 찢겨진 까만 도포 자락을 단정하고 기품 있게 여몄습니다. 그리고 품속에서 또 다른 망자의 이름이 붉게 적힌 새로운 적패를 조심스레 꺼내어 들었습니다. 세상 어딘가에서 이승의 고단한 소풍을 마치고 두려움에 떨며 홀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외로운 영혼의 차가운 손을 굳게 잡아주기 위해. 저승사자는 다시 묵묵히, 아주 부드럽고 든든한 발걸음으로 잿빛 안개 속을 향해 이승을 향한 기나긴 여정을 다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구독자 여러분, 오늘 들려드린 저승사자의 숨겨진 이야기 어떠셨나요? 우리는 흔히 저승사자를 죽음을 몰고 오는 두렵고 무서운 존재로만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그 까만 도포 자락 속에 숨겨진 진짜 임무는, 우리가 마지막 순간 외롭고 두렵지 않도록 악귀들로부터 지켜주고 황천길을 동행해 주는 가장 따뜻하고 든든한 길잡이 역할이었습니다. 오늘 밤, 어쩌면 죽음이라는 것이 무조건 두렵고 무서운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위로가 여러분의 가슴에 닿았기를 바랍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오늘 이야기가 좋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꾹 눌러주시고, 다음에도 여러분의 마음을 다독여줄 따뜻한 야담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평안한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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