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를 숨겨준 농부
저승사자를 숨겨준 농부 , 죽음이 내린 뜻밖의 선물 『동패낙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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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300자 내외)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말, 정말일까요? 여기, 죽음의 사신(死神)을 쫓던 '상급' 저승사자. 그에게 쫓기던 '하급' 저승사자를 숨겨준 한 농부가 있습니다. "감히 저승의 법도를 어지럽힌 놈을 숨겨?"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 농부의 착한 마음씨 하나가 모든 운명을 뒤바꿉니다. 저승사자가 목숨을 걸고 보답한 '부자의 비밀'. 과연 그에게는 어떤 기적이 일어났을까요?
디스크립션 (300자 내외)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비단결이었던 농부 박 서방. 어느 날, 흉측한 저승사자에게 쫓기던 또 다른 저승사자가 "제발 저 좀 숨겨주시오!"라며 그의 집에 뛰어듭니다. 얼떨결에 저승의 일에 휘말린 박 서방. 그는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요? 『동패낙송』에 기록된, 착한 농부와 은혜 갚은 저승사자의 기묘하고도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
※ 가난하지만 착한 농부
옛날 옛적, 조선 팔도 충청도 어느 깊은 산골 마을에, 박 서방이라 불리는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박 서방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온 고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가난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은, 꼭 박 서방의 집을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흙으로 얼기설기 빚은 담벼락은 비가 올 때마다 흙물이 줄줄 흘러내렸고, 짚으로 엮은 지붕은 성긴 틈 사이로 밤이면 별빛이, 낮이면 햇빛이 그대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아내와 함께 몸 누일 초가삼간, 그리고 돌멩이가 반이 넘는 척박한 밭 한 뙈기가 전부였지요. 하지만 박 서방은, 그 가난 속에서도 온 고을에서 가장 '착한 사람'으로 통했습니다. 그의 마음씨는, 가난과는 정반대로 비단결같이 곱고 넉넉했습니다. 밭에서 일하다 다리가 부러진 고라니 새끼를 발견하면, 제 일은 제쳐두고 집으로 데려와 며칠이고 붕대를 감아주었습니다. 겨울이면, 처마 밑에 둥지를 튼 제비들을 위해 일부러 볏짚을 더 얹어주었고, 가을이면 감나무 꼭대기에 달린 가장 실한 감은 '까치밥'이라 하여 절대 따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식구 입에 들어갈 것도 모자랐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쌀독 바닥을 벅벅 긁어 겨우 한 끼 죽을 쑤어 상에 올렸습니다. 박 서방이 막 숟가락을 들려던 참에, 밖에서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비쩍 마른 어미 개 한 마리가 굶주린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박 서방은 차마 그 눈을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죽 그릇을 통째로 들고나가, 그 어미 개 앞에 부어주었습니다. 컹컹거리며 죽을 핥아 먹는 개를 보며, 박 서방은 허허 하고 웃을 뿐이었습니다. 아내가 기가 막혀 한숨을 내쉬었지요. "여보! 당신은 사람이 너무 무릅니다.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짐승에게!" 박 서방은 그저 아내의 손을 툭툭 치며 말했습니다. "허허, 부인. 저놈도 곧 새끼를 낳을 모양이오. 굶주린 배를 보니 차마 나 혼자 목구멍으로 넘길 수가 없어서 그랬소. 내 오늘 한 끼 굶으면 그만이지" 아내는 그런 남편을 보며, 속이 터지다가도 이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래 저런 양반이니 이 가난에도 내가 웃고 살지'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박 서방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지. 하지만 너무 착해 빠져서 제 몫을 못 챙기니 저리 가난한 게야." 모두가 그의 착한 심성을 칭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착함'이 '어리석음'이라며 혀를 찼습니다. 하지만 박 서방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제 눈에 보이는 가여운 것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 기이한 추격
그해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밤이었습니다. 달빛조차 구름에 가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밤이었습니다. 낮에 불던 바람이 심상치 않아, 박 서방은 늦은 밤임에도 짚신을 꿰어 신었습니다. "여보 아무래도 밭에 묶어둔 볏단이 걱정되어 한번 다녀와야겠소. 바람에 날아가기라도 하면 우리 내년 봄은 굶어야 하니"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횃불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선 박 서방은, 밭으로 향하는 좁은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바람 소리가 마치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기괴하게 들려왔습니다. '스산하다' 그가 밭 어귀에 거의 다 다다랐을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철커덕 척 철커덕 척' 쇠사슬이 땅에 끌리는 소리였습니다. '이 깊은 밤에 웬 쇠사슬 소리란 말인가 혹 관아에서 죄인을 압송하는 것인가?' 박 서방이 횃불을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비추었을 때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저 어둠 속에서 두 개의 형체가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앞서 달려오는 자는, 낡고 해진 검은 도포를 입고 갓을 썼으나, 그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갓은 반쯤 찢어졌고, 도포 자락은 갈기갈기 찢겨 피 같은 검은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며 비틀거리듯 뛰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자. 그 자는 더욱 끔찍했습니다. 앞선 자보다 족히 머리 하나는 더 컸으며, 온몸을 감싼 검은 도포는 마치 어둠 그 자체를 엮어 만든 듯 짙었습니다. 그는 뛰는 것이 아니라, 마치 땅 위를 미끄러지듯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그의 한 손에는 사람 팔뚝만 한 검은 쇠사슬이 들려 있었고, 갓 그림자 밑으로 번뜩이는 두 개의 눈은 붉은 숯불처럼 이글거렸습니다. 박 서방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습니다. 짐승도 귀신도 아니었습니다. '저 저승사자!' 뒤쫓는 강림이 천지를 울리는 목소리로 고함을 쳤습니다. "네 이놈, 월직! 감히 명부(名簿)를 어지럽히고 도주한 죄! 당장 거기 서지 못할까! 네놈을 사로잡아 소멸 시키고야 말 것이다!" 쫓기던 월직은 이미 기력이 다했는지, "흐 흐윽!"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렸습니다. 박 서방은 너무 놀라 횃불을 떨어뜨리고 길가 수풀 속에 엎드렸습니다. 그의 심장이 쿵 쿵 방망이질 쳤습니다. '내가 내가 지금 무엇을 본 것인가 저승의 일을 내가 봐 버렸구나!'
※ 저 좀 숨겨주시오
박 서방은 수풀 속에 엎드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습니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 거칠게 뛰었습니다. '제발 제발 나를 보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그는 속으로 빌고 또 빌었습니다. 저승의 일을 목격한 자는, 그 자리에서 혼을 빼앗긴다는 옛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쫓기던 저승사자, 월직은 이제 거의 탈진한 듯했습니다. 그는 비틀거리다 그만 박 서방이 엎드린 수풀 바로 앞에서 '쿵' 하고 넘어져 버렸습니다. "헉 헉 허" 월직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그 숨결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습니다. 뒤쫓던 상급 저승사자, 강림은 천천히 그러나 무섭게 거리를 좁혀 왔습니다. '철커덕 척 철커덕' 쇠사슬 소리가 박 서방의 귓전을 때렸습니다. 이제 불과 열 걸음 남짓. 월직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주변을 살피다, 수풀 속에 웅크리고 있는 박 서방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 박 서방은 비명을 지를 뻔했습니다. 월직의 눈은 공포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가 느끼는 '죽음'의 공포는 사람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 제발!" 월직이 쥐어짜는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바로 그때, 월직은 박 서방의 등 뒤, 산길 아래쪽에 희미하게 보이는 불빛을 발견했습니다. 박 서방의 집이었습니다. 월직은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몸을 일으키더니, 박 서방의 집을 향해 비틀거리며 내달렸습니다. "거기 서라!" 강림이 쇠사슬을 '휙!' 하고 휘둘렀습니다. 쇠사슬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월직의 등을 스쳤습니다. "끄 악!" 월직은 비명을 지르며 굴러 박 서방의 집 사립문 안으로 떨어졌습니다. '쿵!' 소리에 놀란 박 서방의 아내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가, 흉측한 몰골로 마당에 쓰러진 월직을 보고 기겁을 했습니다. "아 아이고! 여 여보! 이 이게 무슨!" 박 서방도 뒤늦게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 들어왔습니다. 월직은 피 같은 검은 액체를 토하며 박 서방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습니다. "살 살려주시오 나리 제발 저 좀 숨겨 주시오!" "여 여보! 안됩니다! 이 이건 저승의 일이오! 우리가 끼어들!" 아내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박 서방의 눈에는 오직 공포에 질려 살려달라 애원하는 월직의 모습만 보였습니다. 그것은 저승사자가 아니라, 그저 '목숨을 구걸하는 가엾은 존재'였습니다. 박 서방의 그 '어리석은 착함'이 또다시 발동한 것입니다. "알겠소! 이 이리!" 박 서방은 월직의 팔을 잡아 끌었습니다. "어 어디로?" "뒤 뒤주!" 집안에서 숨을 곳이라고는 부엌 한구석에 놓인 낡은 뒤주 뿐이었습니다. 마침 쌀이 떨어진 지 오래라 뒤주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박 서방은 월직을 뒤주 안에 억지로 구겨 넣었습니다. "숨도 쉬지 마시오!" 그리고는 묵직한 뒤주 뚜껑을 닫았습니다.
※ 일촉즉발의 대치
박 서방이 뒤주 뚜껑을 닫고 채 숨을 고르기도 전에, 밖에서 시끄럽게 불던 바람이 '휙' 하고 멎었습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소리가 한순간에 빨려 들어간 듯 기묘한 정적이 흘렀습니다. 닭장 속의 닭들도, 마당 귀퉁이의 귀뚜라미도 일순간에 울음을 그쳤습니다. 박 서방의 아내는 이미 안방 구석에 주저앉아, 얼굴을 감싸 쥔 채 넋이 나간 채 떨고 있었습니다. '쿵!' 닫혀 있던 사립문이 저절로 열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낡아 빠진 문짝 자체가 산산조각 나며 마당으로 부서져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부서진 문 너머로 상급 저승사자, '강림'이 칠흑 같은 어둠을 등지고 서 있었습니다. 그는 천천히 마당으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그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젖은 땅이 '서걱' 하고 얇게 얼어붙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월직이 흘렸던 검은 피자국이 강림의 발 앞에서 멈춰 있었습니다. "보았다." 강림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방 안의 그릇들을 덜덜 떨리게 만들었습니다. "이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내 놓아라." 박 서방은 죽을 용기를 내어 부엌 문을 가로막고 섰습니다. "어 어르신 무 무슨 말씀이신지 소인은 밭에 다녀오는 길이라 아무것도 보지 못 하였습니다 바람이 하도 거세어 횃불도 잃고" "네 이놈." 강림이 박 서방의 코앞까지 다가왔습니다. 박 서방은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강림에게서는 오래된 무덤 속 쇠 냄새, 그리고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듯한 지독한 한기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갓 그림자 밑의 붉은 두 눈이 박 서방의 영혼을 꿰뚫어 보는 듯했습니다. "감히 하찮은 인간 따위가 저승의 법도를 막아서는 것이냐? 네놈의 그 얕은 거짓말 냄새가 이 집 마당에 진동을 하는구나." 강림이 손에 든 쇠사슬을 '철커덕' 하고 마당 바닥에 내리쳤습니다. 흙바닥이 얼어붙으며 '쩍' 갈라졌습니다. "네놈의 명(命)을 보니 아직 스무 해는 더 남았구나. 튼튼한 명줄을 타고 났어. 허나 저승의 공무를 방해한 죄는 그 자리에서 명을 거두어 가도 무방하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그 명부(名簿)를 더럽힌 놈 어디 숨겼느냐." 박 서방은 다리가 후들거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죽었다 저 뒤주만 열면 나는 죽는다' 공포가 그의 목을 조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뒤주 속에서 "흐 흐윽" 하고 공포에 질린 월직의 흐느낌 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새어 나왔습니다. 그 소리는 박 서방의 어리석은 마음에 다시 불을 지폈습니다. '이미 숨겨주기로 약조했다 내가 여기서 물러서면 저자도 죽고, 나도 저승에 가서 약조를 어긴 놈이라 손가락질 받을 것이다. 이왕 이리된 것 내가 죽더라도 약조는 지켜야 한다' 박 서방은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소인은 정말 모릅니다! 억울합니다! 정 녕 제 목숨을 거두어 가시겠다면 그리 하십시오! 하지만 소인은 정말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강림은 그런 박 서방을 뚫어져라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붉은 눈이 안방 구석에서 기절한 박 서방의 아내를 훑고, 텅 빈 방 안을 훑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박 서방이 버티고 선 부엌 입구, 낡은 뒤주에 시선이 멎었습니다. 강림이 '큭' 하고 비웃었습니다. "어리석은 놈 네놈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 소리가 내 귓가에 천둥처럼 들린다. 비켜라." 강림이 박 서방을 가볍게 밀쳤습니다. 박 서방은 짚단처럼 나가 떨어졌습니다. 강림이 부엌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뒤주 앞에 섰습니다. 박 서방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안에 있구나." 강림이 쇠사슬을 높이 들어 뒤주 뚜껑을 내리치려던 바로 그 순간! "꼬끼오---! 꼬끼오---!" 뜬금없이 마당 한편의 닭장 안의 수탉이 목청껏 울었습니다. 아직 새벽이 되려면 한참이나 남았는데 말입니다. 강림이 '흠칫' 하며 동작을 멈추었습니다. "네 이놈 미물!" 강림이 닭장을 노려보았습니다. 하지만 수탉은 아랑곳하지 않고 횃대 위로 올라가 다시 한번 "꼬끼오---!" 하고 우렁차게 울었습니다. 그것은 박 서방이 예전에 다리가 부러진 것을 구해준 바로 그 닭이었습니다. 저승사자는 첫 닭이 울면 이승의 기운이 살아나므로 물러가야 하는 법도. 비록 진짜 새벽은 아니었으나, 닭이 울어버린 이상 강림은 더 이상 이승에 머물 명분이 약해졌습니다. "네 이놈 인간 하찮은 미물 짐승까지 네놈 편을 드는구나" 강림은 분하다는 듯 쇠사슬을 거두었습니다. "좋다. 하지만 명심해라. 그놈은 내가 반드시 잡는다. 그리고 네놈 인간 네놈의 그 어리석은 선행(善行)이 복(福)이 될지 화(禍)가 될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그 말을 마친 강림은 검은 연기가 되어 뚫린 문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집 안을 감돌던 지독한 한기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박 서방은 그 자리에 다리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 은혜와 비밀
박 서방은 부엌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방금 전까지의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습니다.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은 식은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심장은 여전히 제 것이 아닌 듯 미친 듯이 뛰고 있었습니다. "여 여보!" 안방 구석에서 정신을 차린 아내가 짐승처럼 네 발로 기어 나와 박 서방에게 매달렸습니다. "괜찮으신 게요? 아 아이고 무서워라 우린 이제 어떡해요? 저승사자 눈에 났으니 우린 이제 죽은 목숨 아니오!" 박 서방은 아내를 다독여 안심시키고는 천천히 뒤주로 다가갔습니다. '강림'이라 불리던 그 무시무시한 사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네놈의 그 어리석은 선행이 복이 될지 화가 될지' 그는 뒤주 뚜껑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저 저기 사자 양반 이제 가셨소 그만 나오시오"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박 서방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뒤주 뚜껑을 잡았습니다. "살아 계시오?" 한참 뒤에야 뒤주 뚜껑이 '삐걱' 하는 마찰음과 함께 아주 천천히 열렸습니다. 그 안에서 쫓기던 사자, '월직'이 덜덜 떨며 기어 나왔습니다. 그의 몰골은 아까보다 더 엉망이었습니다.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온몸은 공포로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처럼 이가 딱딱 부딪히는 소리를 냈습니다. 월직은 박 서방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 넙죽 엎드렸습니다. "은 은인이십니다 나리 나리의 은혜로 소멸(消滅)을 면했습니다 흑 흑" 박 서방은 한숨을 푹 내쉬며 그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일단 진정하시오 도대체 어찌된 일이오? 아까 그 양반이 당신을 '소멸'시킨다 하던데 같은 저승사자 끼리 어찌 그리 죽자고 쫓고 쫓기는 게요?" 월직은 눈물을 훔치며 자초지종을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저승의 명부를 받아 이승의 명(命)이 다한 자를 데려가는 말단 사자입니다. 저 '강림' 어르신은 저승의 법도를 감찰하는 상급 감찰사자 이시고요 헌데 제가 어제 큰 죄를 지었습니다." "죄라니?" "어제 명부에 적힌 대로 데려가야 할 영혼이 아흔 넘은 노인이었습니다. 헌데 그 노인의 며느리가 갓난아기를 업고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아버님 아버님 이 아이 첫걸음 뗄 때까지만 보시고 가시지요' 하고 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승의 법도대로라면 당장 쇠사슬을 걸어 데려가야 마땅했으나 그 며느리의 효심과 갓난아기의 눈망울이 하도 서럽고 가여워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명부에 적힌 시간을 어기고 딱 하루를 묵인해 주었습니다. 그 노인은 오늘 아침 정말로 손주가 제 힘으로 일어서는 것을 보고 웃으며 편히 눈을 감았지만 저는 명부의 시간을 어긴 대역죄를 짓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발각되어 저리 '강림' 어르신께 '소멸'될 뻔 하다가 쫓기던 중이었습니다." 박 서방은 월직의 이야기를 듣고 혀를 찼습니다. "쯧쯧 딱하기는 이 양반도 나 못지않은 바보구먼" 박 서방은 자신과 너무도 닮은 그 '어리석은 마음', 그 '정(情)' 때문에 큰 곤경에 빠진 그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습니다. '남의 사정 봐주다가 제 목숨이 위태롭게 생겼으니' 박 서방은 아내에게 눈짓했습니다. 아내는 비록 무서워 떨고 있었지만, 남편의 마음을 아는 지라 말없이 부엌으로 가 쌀독 바닥에 붙어있던 마지막 쌀을 털어 묽은 죽을 쑤었습니다. 월직은 따뜻한 죽 한 그릇을 받아 들고 다시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리 나리 댁의 사정도 넉넉지 못해 보이는데 저승의 죄인에게 이리 따뜻한 죽까지 흑" 그는 죽을 먹는 것이 아니라 눈물과 함께 삼키고 있었습니다.
※ 부자가 되는 길
월직은 죽 그릇을 깨끗이 비웠습니다. 따뜻한 기운이 돌자, 비로소 공포에 질렸던 얼굴이 조금 펴지고 핏기가 돌았습니다. 그는 박 서방과 아내에게 다시 한번 깊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나리 저는 이제 떠나야 합니다." "어디로 말이오? 또 잡히면 어쩌려고" "강림 어르신은 첫닭이 울어 물러가셨지만, 곧 해가 뜨면 반드시 다시 오실 겁니다. 그 전에 몸을 피해야 합니다. 저승의 법도를 어겼으니 돌아가 염라대왕님께 벌을 받는 것은 마땅하나, '소멸'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이 은혜는 저승에 가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월직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서진 문을 향해 걸어가다 멈칫 했습니다. 그는 박 서방의 남루한 집안을 다시 한번 천천히 둘러보았습니다. 텅 빈 뒤주, 낡아서 날이 무뎌진 농기구, 박 서방 부부가 입은 해진 옷 "나리." "왜 그러시오?" "나리 덕분에 제 목숨을 구했으나 나리께서는 저 무서운 '강림' 어르신의 눈에 띄고 말았습니다. 저 분은 한번 본 것을 잊지 않으십니다. 나리께서 오늘 지은 '죄'는 나리의 명부(名簿)에 고스란히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이 어찌 저의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박 서방은 그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하지만 나리의 목숨을 구해주신 이 은혜를 갚지 않고는 저승에 돌아가서도 발을 뻗지 못할 것 같습니다." 월직은 박 서방 곁으로 다가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나리께서는 재물이 필요하십니다." 박 서방은 손을 내저었습니다. "됐소 사람 목숨 구한 일을 어찌 재물로 따지겠소. 어서 몸이나 피하시오." "아닙니다 나리." 월직은 단호했습니다. "저승의 법도를 어기고 인간사에 개입하는 것은 저 또한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허나 이미 나리 때문에 큰 죄를 지었으니, 죄 하나를 더 짓는 셈 치겠습니다. 이것은 저승의 법도를 어기는 천기누설(天氣漏泄)입니다. 저 또한 소멸 다음가는 벌을 받을 각오로 나리께만 드리는 것입니다." 박 서방의 아내가 그 말에 마른 침을 삼키며 다가왔습니다. 월직은 박 서방의 귀에 대고 아주 나지막이 속삭였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이곳에서 백 리(里) 떨어진 한양 읍내 고을 원님의 집 앞입니다. 그 집 앞마당에는 고을 전체를 덮을 만큼 거대한 감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그 나무는 고을의 수호목(守護木)으로 불리며 원님 또한 지극히 아끼는 나무지요." "그 감나무가 어쨌다는 게요?" "정확히 사흘 뒤 해가 질 녘 그 거대한 나무가 맑은 하늘에 벼락을 맞아 쓰러질 것입니다. 원님은 필시 불길한 징조라 여겨 난리가 나겠지요. 그리고 그 나무를 당장 파내라 명할 것입니다." "벼락?" "그렇습니다. 원님이 사람들을 시켜 그 뿌리를 파내다 보면 그 아래에서 백 년 묵은 거대한 쇠 궤짝이 나올 것입니다. 그것은 백 년 전 지독한 탐관오리가 백성의 고혈을 짜내 숨겨둔 재물이라 본래 주인이 없는 재물입니다." "그럼 그걸 내가 어찌" "물론 그 큰 궤짝은 원님이 발견하는 즉시 '흉물'이라 부르며 국고로 환수할 것입니다. 나리께서 감히 손댈 수 없는 물건이지요. 하지만 나리." 월직의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났습니다. "그 탐관오리가 가장 아끼던 진짜 비자금은 그 궤짝에 넣어두지 않았습니다. 그 거대한 나무 뿌리 정반대편 즉, 원님의 집 담벼락 밑 구석진 자리입니다. 그곳을 사흘 뒤 나무가 쓰러진 그날 밤 아무도 없는 자시(子時)에 가셔서 정확히 세 척(尺)만 파 보십시오. 작은 검은색 흙항아리가 하나 묻혀 있습니다. 그것 역시 그 탐관오리가 몰래 빼돌린 비자금입니다. 그 항아리의 존재는 이승의 아무도 모르고 오직 저승의 명부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취하십시오. 그것이 나리께 드리는 저의 목숨 값입니다." 박 서방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부디 이 재물로 나리처럼 선한 마음을 잃지 마시고 부인과 함께 행복하게 사십시오. 나리께서 부자가 되셔야, 저 '강림' 어르신도 나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이만 갑니다. 부디 만수무강 하십시오." 월직은 마지막 큰절을 올리고는, 열린 문 틈으로 스며드는 희미한 새벽빛 속으로 안개처럼 스르르 사라져 버렸습니다.
※ 선한 부자의 탄생
박 서방은 월직이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부서진 사립문 사이로 차가운 새벽바람이 불어 들어왔습니다. "여보 방금 저 저승사자가 한 말 들었소? 이게 꿈이오 생시요?" 아내가 박 서방의 팔을 붙잡고 흔들었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 대신 희망이 서려 있었습니다. "여보! 꿈이라도 좋습니다! 가 가보셔야지요! 백 리 길 한양 읍내 원님 댁 말입니다! 사흘 뒤 해 질 녘! 저 사자 양반 말이 맞소, 우린 이 가난을 면해야 하오! '강림'이라는 그 무서운 사자가 언제 다시 닥칠지 모르는데 이리 굶주리고 힘없이 살 수는 없지 않소!" 박 서방은 갈등했습니다. '저승사자의 말을 믿어도 되는 것인가 게다가 남의 재물을 훔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아내의 말이 맞았습니다. "그것은 주인이 없는 재물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탐관오리의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어쩌면 하늘이 당신의 그 어리석도록 착한 마음에 감동하여 주신 기회일 겁니다!" 박 서방은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날이 밝자마자 이웃에게 쌀 한 줌을 꾸어 주먹밥을 싸 노잣돈을 마련하고 즉시 한양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꼬박 이틀을 걷고 또 걸어 사흘째 되는 날 해 질 녘, 그는 간신히 한양 읍내 고을 원님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숨이 멎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정말 하늘을 찌를 듯 거대한 감나무가 원님의 집 앞마당에 떡 하니 버티고 있었습니다. 박 서방이 나무 근처 주막에서 숨을 죽이고 기다리던 바로 그 순간. 맑고 청명하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콰 콰 쾅!" 하는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시뻘건 불줄기가 감나무 한가운데를 정확히 내리쳤습니다. 나무는 거대한 비명을 지르며 두 쪽으로 쪼개져 마당을 덮치며 쓰러졌습니다. "이 이게 무슨 일이냐! 흉조다! 흉조야!" 원님이 뛰쳐나와 노발대발했습니다. "당장 저 흉물스러운 나무를 뿌리째 파내어 태워버려라!" 모든 것이 저승사자 월직의 말대로 였습니다. 인부들이 동원되어 쪼개진 나무를 치우고, 뿌리를 파내던 중 "으 으악! 여 여기에 궤짝이!"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정말로 거대한 쇠 궤짝이 발견되었고, 원님은 '불길한 물건'이라 하며 즉시 관아로 옮겼습니다. 박 서방은 심장이 터질 듯 뛰는 것을 느끼며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습니다. 인적 끊긴 자시(子時). 박 서방은 쥐 죽은 듯 조용히 담을 넘어 원님의 집 담벼락 밑, 월직이 알려준 그 구석진 자리를 낡은 호미로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세 척' 그리고 '툭'. 호미 끝에 단단한 것이 걸렸습니다. 작은 검은색 흙항아리였습니다. 박 서방은 떨리는 손으로 항아리를 꺼내 품 속에 안고 미친 듯이 도망쳤습니다. 고향 집에 돌아와 문을 걸어 잠그고, 아내와 함께 항아리 뚜껑을 열어본 박 서방은 눈을 의심했습니다. 항아리 안에는 엽전이나 은자가 아니었습니다. 번쩍이는 금괴와 희귀한 구슬, 값비싼 보석들이 항아리 가득 차 있었습니다. 평생 밭 갈던 농부가 만져볼 수 있는 재물이 아니었습니다. "아 아이고 여보! 이 이게 다 얼마요!" 박 서방과 아내는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날 이후, 박 서방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박 서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장 먼저 자신을 믿고 쌀 한 줌을 빌려준 이웃에게 쌀 한 가마니로 갚았습니다. 낡은 초가집을 허물고 번듯한 기와집을 지었지만, 결코 담장을 높이 쌓지 않았습니다. 흉년이 들자, 그는 자신의 재물로 곡식을 사들여 '박 서방 곳간'이라 이름 붙이고 굶주린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낡아서 위태롭던 마을 다리를 제 돈을 들여 튼튼한 돌다리로 새로 놓았고, 배움에 뜻이 있으나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 글공부를 시켰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박 부자', '박 영감'이라 부르며 존경했습니다. 그는 부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밭에 나가 직접 땀 흘려 일했고, 여전히 처마 밑에 까치밥을 남겨두었으며, 여전히 굶주린 짐승을 보면 제 밥을 Toss 덜어 주었습니다. 박 서방은 그 재물로 더 많은 선행을 베풀며, 아내와 함께 백 년 해로 하다가 아주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죽던 날 밤, 동네 사람들은 아무도 본 적 없는 아주 깨끗하고 단정한 검은 도포를 입은 낯선 사내가, 박 서방의 집 대문 앞에서 아주 깊이 고개 숙여 절을 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고 전해집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들려드린 『동패낙송』 속 '은혜 갚은 저승사자' 이야기, 어떠셨나요?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심지어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자신의 착한 마음, 그 선(善)한 본성을 잃지 않았던 박 서방.
그의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한 그 마음씨가 결국 저승의 사자마저 감동시키고, 하늘의 법도를 움직여 기적 같은 복(福)을 가져왔습니다.
재물을 얻었으나, 그 재물에 노예가 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선행을 베푸는 '선한 부자'가 되었네요.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
이 평범하고도 당연한 말이 오늘따라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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