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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에게 거래를 제안

황금 인생 21 2025. 10. 23.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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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가 감동한 선비 , 저승사자에게 거래를 제안 『야담집』

태그 (2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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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300자)

"네 수명은 100일 뒤에 끝난다." 칠흑 같은 밤, 피도 눈물도 없던 냉혈한 이 선비에게 저승사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선비는 목숨을 구걸하는 대신 기묘한 '거래'를 제안합니다. "100일간, 나에게 삶과 죽음의 지혜를 가르쳐주시오." 죽음을 앞둔 100일, 차가웠던 선비의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합니다. 과연 그는 101일째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디스크립션 (300자)

『야담집』에 실린 한 선비의 기이한 이야기. 평생을 자신만을 위해 살던 이 선비가 저승사자에게 100일 시한부 선고를 받습니다. 그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죽음의 문턱에서 비로소 '사람'의 도리를 깨달아가는 한 남자의 마지막 지혜. 저승사자마저 감복시킨 그의 100일간의 여정을 '스르륵 잠드는 야담'에서 들려드립니다.

※ 냉혈한 선비, 이경원

조선 팔도에 글 잘하는 선비는 많았으나, 이경원처럼 영민하면서도 그토록 차가운 사내는 드물었다. 그는 스무 살에 소과(小科)에 급제한 수재였으나, 그의 눈에는 오직 더 높은 벼슬과 지식에 대한 탐욕만이 이글거릴 뿐, 사람에 대한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너른 기와집은 위세 등등했으나, 그 안에는 온기 대신 묵향과 한기(寒氣)만이 감돌았다. 그는 부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책을 사 모으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으나, 굶주린 백성이 문 앞에서 구걸이라도 할라치면, "게으른 것들을 내쫓지 않고 무엇 하느냐!" 호통을 쳐서 내쫓기 일쑤였다.

그런 그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몇 해 전부터 시작된 마른기침이, 이제는 밤잠을 설치게 할 만큼 악화된 것이다. "쿨럭, 쿨럭!" 그는 읽던 책장 위로 피 한 방울을 토해내고는, 역겹다는 듯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그는 병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벼슬길에 오르기도 전에 몸이 망가져 제 뜻을 펼치지 못하게 될까 봐 '짜증'이 났다. 그때, 그의 충직한 종 돌쇠가 뜨거운 약사발을 들고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섰다. "나으리, 약 드실 시간이옵니다. 밤새 기침 소리에"

이경원은 책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차갑게 쏘아붙였다. "시끄럽다. 네놈의 걱정 따위가 내 병을 낫게 하느냐. 약이 어찌 이리 쓰기만 한 게냐! 정성을 다해 달인 것이 맞느냐?" 돌쇠는 묵묵히 고개를 조아렸다. "송구하옵니다, 나으리" 이경원은 그런 돌쇠의 앙상한 팔목을 힐끗 보았다. '저놈도 밥은 먹고 다니는 건가.' 하지만 그 생각은 스쳐 지나갈 뿐, 그는 제 몸의 통증에만 집중했다. 그는 몰랐다. 돌쇠가, 제 주인의 약값을 대기 위해, 자신의 몫으로 나오는 쌀을 팔아치우고 묽은 죽으로 연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의 냉혈함은 집 밖에까지 미쳤다. 며칠 전, 대문 앞에서 한 어린아이가 추위에 떨며 밥 한술을 구걸했다. 이경원은 "어디서 천한 것이 나의 독서(讀書)를 방해하느냐!" 소리쳤다. 돌쇠가 차마 아이를 내치지 못하고, 몰래 주먹밥 하나를 쥐여주는 것을, 이경원은 창문 너머로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는 돌쇠의 다음 달 삭미(朔米)에서 정확히 그 밥 한 덩이 값을 제했다. "내 집의 것은, 내 허락 없이는 먼지 한 톨도 나갈 수 없다." 그것이 이경원의 철칙이었다. 그는 인간의 정(情) 따위는 나약한 자들의 변명이며, 오직 냉철한 이성과 지식만이 세상을 지배하는 힘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가 쌓아 올린 지식의 탑은, 정작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밤도, 그는 지독한 기침과 함께, 뼛속까지 스미는 한기를 느끼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 한기는, 병 때문만은 아니었다.

※ 저승사자의 방문

자시(子時)가 막 지났을까. 이경원은 멎을 듯 이어지는 기침에, 결국 잠에서 깨어나 윗몸을 일으켰다. 밖은 비가 오는지, 바람 소리가 스산했다. "쿨럭, 쿨럭!" 그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때였다. 방 안의 촛불이,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는데도 푸른빛을 띠며 거세게 흔들렸다. 방 안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뼛속을 파고드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한기였다. 이경원이 숨을 죽인 순간, 방구석의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스르르 분리되어 나왔다.

검은 갓, 검은 도포. 핏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창백한 얼굴. 감정이라곤 실려 있지 않은 깊은 눈. 한 손에는 이경원의 이름 석 자가 붉게 적힌 명부(名簿)를, 다른 한 손에는 시퍼런 쇠사슬을 들고 있었다. 저승사자였다. "" 이경원은 숨이 멎는 듯했으나, 평생을 갈고닦은 이성이 공포를 억눌렀다. 그는 비명을 지르거나 달아나는 대신, 가슴을 부여잡은 채, 그 존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올 것이 왔구나."

저승사자는 의외라는 듯, 이경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보통 인간들은 자신을 보자마자 울부짖거나, 실성하거나, 살려달라 애원하기 마련이었다. "이경원." 마른 잎이 부서지는 듯한, 메마른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네놈의 시간이 다 되었다." "언제까지지?" 이경원이 물었다. 목소리는 기침 때문에 갈라졌지만, 떨리지는 않았다. 저승사자는 명부를 흘깃 내려다보았다. "정확히, 100일 뒤다." "100일" 이경원은 눈을 감았다. 생각보다 길었다. 아니, 생각보다 짧았다. 그는 평생을 오만하게 살아왔지만, 죽음이라는 절대자 앞에서는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승사자는 이경원의 태도에 기묘한 흥미를 느꼈다. "네놈은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군. 보통은 '실수다', '억울하다', '조금만 더'를 외치기 마련인데." 이경원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대에게 구걸한들, 명부의 글자가 바뀌는가? 그대는 법(法)을 집행하러 온 자일 뿐, 법을 만드는 자가 아니지 않은가." "제법이구나, 선비." 저승사자가 처음으로 희미한 감정을 내비쳤다. "그래, 나는 명을 따를 뿐. 100일 뒤, 축시(丑時)에 다시 오겠다. 그간, 속세의 일들을 잘 정리해 두어라. 재물에 한(恨)이 맺히거나, 인연에 억울함이 남으면 저승길이 고달파진다." 저승사자는 말을 마치고, 다시 어둠 속으로 스며들려 했다.

"잠깐." 이경원이 그를 불러 세웠다. "" 저승사자가 멈칫, 고개를 돌렸다. "그대에게 거래를 제안하고 싶다." "거래? 하찮은 인간 따위가, 감히 나와?" 저승사자의 목소리에 살기가 어렸다. "목숨을 늘려달라는 것이 아니다." 이경원은 기침을 참아가며, 똑바로 말을 이었다. "나는 평생을 지식(知識)을 탐구했으나, 정작 가장 중요한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대는 수천, 수만 명의 죽음을 지켜본 '전문가'가 아닌가." "그래서, 어쨌다는 게냐."

"100일. 나에게는 100일의 시간이 있다. 그동안, 열흘에 한 번씩 나를 찾아와다오. 단 한 시진(時辰)이라도 좋다." "" "나는 그대에게, 죽음과 삶에 대한 '지혜(智慧)'를 묻겠다. 그대는 그저, 그대가 보고 겪은 것을 담담히 답해주면 된다. 그것이, 내가 '속세의 일을 잘 정리'하는 방법이다." "" 저승사자는 침묵했다. 수천 년간 사자 노릇을 했지만, 이런 제안은 처음이었다. 죽음을 앞두고, 지식을 탐하는 선비라니. "그 대가로 나는 무엇을 얻느냐?" "100일째 되는 날. 그대가 나를 데리러 왔을 때, 나는 울거나, 도망치거나, 저항하지 않겠다. 내 발로 그대의 쇠사슬을 받겠다. 그대 또한, 귀찮은 실랑이 없이 망자(亡者) 하나를 깨끗하게 데려갈 수 있으니, 손해 보는 거래는 아닐 터." 이경원의 눈이, 촛불 아래서 형형하게 빛났다.

※ 100일의 거래, '지혜'를 구하다

저승사자는 이 기묘한 선비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공포에 질린 것도, 체념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알기'를 원하고 있었다. "좋다." 저승사자의 메마른 입술이 열렸다. "수천 년 만에, 참으로 별난 인간을 만났구나. 네놈의 거래를 받아들이겠다. 열흘 뒤, 자시(子時)에 다시 오겠다. 첫 번째 질문을 준비해 두어라." 그 말을 끝으로, 저승사자는 촛불이 꺼지듯, 어둠 속으로 완벽하게 사라졌다. 방 안의 살을 에는 듯한 한기도 가셨지만, 이경원의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100일"

다음 날 아침, 이경원은 돌쇠를 불렀다. "돌쇠야." "예, 나으리." "나는 100일 뒤에 죽는다." "예? 네? 나으리! 그게 무슨!" 돌쇠가 새파랗게 질려 무릎을 꿇었다. "어젯밤, 저승사자가 다녀갔다. 울지 마라. 우리는 할 일이 많다. 당장, 내 이름으로 된 모든 재산 목록과, 토지 문서, 노비 문서를 가져오너라." 돌쇠는 주인의 담담한 태도에, 울음도 삼킨 채 황망히 서류들을 챙겨 왔다.

이경원은 붓을 들었다. 그는 평생을 모으고, 지키는 데만 급급했던 재산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저승사자가 말했다. 한이 맺히면, 저승길이 고달프다고.' 그는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처음으로 붓을 들었다. 그는 가장 먼저, 돌쇠의 노비 문서를 불태웠다. "너는 오늘부로 자유다, 돌쇠야. 그리고 이것은, 네가 20년간 나를 모신 아니, 내가 너에게 진 빚이다." 그는 재산의 상당 부분을 떼어 돌쇠의 손에 쥐여주었다. 돌쇠는 돈을 받기는커녕, 땅바닥에 엎드려 통곡했다. "나으리! 이러지 마십시오! 저는 저는 나으리를 떠날 수 없사옵니다! 이 돈으로 용한 의원을"

이경원은 돌쇠의 어깨에 처음으로 손을 얹었다. "돌쇠야 너는, 20년간 나를 '주인'으로 모셨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너를 '사람'으로 대한 적이 없구나. 이것이, 내가 너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다. 어서 이 집을 떠나, 네 삶을 살아라." 그는 돌쇠를 거의 쫓아내다시피, 집을 떠나보냈다. 홀로 남은 집은 더욱 휑했지만, 이경원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조금 가벼워졌다.

그리고 열흘째 밤이 되었다. 어김없이, 저승사자가 방 안에 나타났다. "준비는 되었느냐, 선비. 첫 번째 질문이 무엇이냐." 이경원은 정좌한 채 그를 맞았다. "그대는 수많은 인간의 마지막을 보았을 터. 내가 오늘, 20년간 나를 모신 종을 해방시켰다. 그는 나를 떠나며, 고마움이 아니라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자유를 얻었는데, 왜 우는가? 내가 그에게 베푼 것이라곤 모욕과 착취뿐이었는데."

저승사자는 무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인간들은 참으로 어리석지. 그들은 '이성'이 아니라, '미련'으로 움직인다. 네놈은 그 종에게 '천대'를 주었으나, 그 종은 네놈에게 '연민'을 품었다. 네놈이 오늘 그를 해방시킨 것은, '지식'이 시킨 일이냐, 아니면 '마음'이 시킨 일이냐?" "" 이경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본 바, 저승길에서 가장 무거운 짐은 재물이 아니라, 바로 그 '미련'이라는 것이다. 주지 못한 미련, 받지 못한 미련. 네놈은 오늘, 그 종의 마음에 맺힌 '미련' 하나를 풀어준 게야. 하지만, 네놈의 마음은 아직도 무겁구나. 90일 남았다."

※ 첫 번째 깨달음: 쌀 한 줌의 무게

저승사자의 첫 번째 방문이 끝나고, 이경원은 깊은 상념에 빠졌다. '미련'. 그는 평생 그 단어를 경멸했다. 나약하고, 비이성적인 감정의 찌꺼기라 여겼다. 하지만, 돌쇠가 울며 떠나던 모습과, '네놈의 마음은 아직도 무겁구나'라는 저승사자의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재산 목록을 다시 펼쳤다. 그가 가진 것은, 그가 맺은 '관계'의 증표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그의 탐욕이 만들어낸 '악연(惡緣)'이었다.

그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토지 외에, 빚 대신 빼앗은 토지도 상당수 가지고 있었다. 그중, 유독 눈에 밟히는 땅이 있었다. 3년 전, 역병으로 남편을 잃은 한 과부(寡婦)의 땅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약값을 치르기 위해 이경원에게 돈을 빌렸고, 이경원은 정확히 법정 최고 이율을 매겨, 결국 석 달 만에 그 좁은 논을 빼앗았다. '법대로 처리한 일이다.' 그는 스스로를 합리화했지만, 저승사자의 눈을 떠올리자, 그 합리화가 부끄러워졌다.

그는 남은 재산을 정리해, 그 과부를 수소문했다. 그녀는 '박씨 부인'이라 불리며, 갓난아이와 함께 읍내 끄트머리, 다 쓰러져가는 초가에서 삯바느질로 겨우 연명하고 있었다. 이경원은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직접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누 누구신지요?" 문을 열고 나온 박씨 부인은, 고된 삶에 찌들어, 미색은 간데없고 퀭한 눈으로 그를 경계했다. "나 나는 이경원이오."

박씨 부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초가마저 빼앗으러 온 줄 알고, 아이를 끌어안으며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서 선비님! 제발 이 집만은! 제가 제가" "" 이경원은, 그녀의 그 지독한 공포가 바로 자신이 만들어낸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가슴을 치는 듯한 기침을 참아내며, 준비해 온 땅문서를 내밀었다. "그대의 논이오. 돌려주러 왔소."

"예?" 박씨 부인은 제 귀를 의심했다. "이 이게 어찌 된 선비님, 무슨 속셈이" "속셈 없소. 그저 내 셈이 틀렸었소." 이경원은 땅문서와 함께, 그간 그 땅에서 나온 소출을 계산한 쌀과 돈이 든 자루를 마당에 내려놓았다. "이것은 3년간의 소출이오. 법대로라면 줄 필요 없는 것이나 내 마음이 그리하라고 시키는구려." 박씨 부인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이경원은 그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고, 돌아서려 했다. 그때, 박씨 부인이 다급하게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서 선비님! 어인 은혜를 밥이라도!" 이경원이 돌아본 순간, 박씨 부인은 거친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그에게 깊이 절을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의 뜨거운 눈물 몇 방울이, 이경원의 마른 손등 위로 떨어졌다. 뜨거웠다.

그날 밤. 스무 번째 날. 저승사자가 다시 나타났다. "네놈의 집이 점점 비어가는군. 두 번째 질문은 무엇이냐?" 이경원은 손등에 남은, 그 뜨거운 눈물의 감촉을 느끼며 물었다. "나는 오늘 한 여인의 눈물을 보았다. 나는 그녀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았고, 오늘은 그저, 당연히 돌려주어야 할 것을 돌려주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나에게 '은혜'라며 울었다. 왜지?"

저승사자는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네놈은 '법'을 따랐으나, '인정(人情)'을 버렸지. 오늘 네놈이 한 일은, 법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내가 본 바, 인간들은 '쌀 한 줌'에 원한을 품기도 하지만, '마음 한 자락'에 목숨을 걸기도 하더구나. 네가 돌려준 것은 '땅'이 아니다. 그 여인에게 '숨 쉴 구멍'을 돌려준 게지." 저승사자의 눈이, 이경원의 손등을 향했다. "그 눈물, 참으로 뜨거웠더냐? 80일 남았다."

※ 두 번째 깨달음: 눈물의 온기

저승사자가 다녀간 뒤, 이경원의 삶은 급격하게 변했다. 그는 더 이상 책상에 앉아 탁상공론을 펼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가진 '지식'이, 사람을 해치는 데 쓰일 수도, 살리는 데 쓰일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남은 재산을 모두 털어, 억울하게 옥에 갇힌 자들을 변호하고,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곳간을 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박씨 부인의 초가로 발길을 옮겼다. '그저 잘 사는지 확인만 할 뿐이다.' 스스로에게 변명했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에서 느꼈던 그 '뜨거움'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가 다시 찾아갔을 때, 박씨 부인은 그가 준 쌀로 죽을 쑤어, 며칠 전의 그보다 더 초라한 행색의 노파에게 나누어주고 있었다. "어 어찌" "아, 선비님! 오셨습니까. 이분은 저보다 더 딱한 분이시라" 박씨 부인은, 자신이 받은 것을, 더 어려운 이에게 나누고 있었다. 이경원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평생 '채우는' 것만 알았지, '나누는' 기쁨은 몰랐다. 그는 말없이 박씨 부인의 곁에 앉아, 아궁이에 불을 때는 것을 도왔다.

"선비님 손이 다치십니다." 박씨 부인이 그의 거친 손을 보고 말했다. "괜찮소 불은 따뜻하구려." 그는 난생처음, 제 손으로 누군가를 위해 불을 지폈다. 퀭하던 그의 얼굴에, 아궁이 불빛이 비쳐, 희미한 혈색이 도는 듯했다. 그날 이후, 그는 거의 매일같이 박씨 부인의 집을 찾았다. 그는 그녀의 아이에게 천자문을 가르쳤고, 그녀는 그에게 '사람'의 도리를 가르쳤다. 그녀는 그가 지병으로 심하게 기침을 할 때면, 말없이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 따뜻한 손길에, 이경원은 100일 뒤에 죽는다는 사실을, 아주 가끔 잊곤 했다.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것은 남녀 간의 뜨거운 연정이라기보다, 서로의 가장 깊은 외로움을 알아보고, 상처를 보듬어주는 '연민(憐愍)'이었다. "선비님 어찌 그리 많은 것을 나누어 주십니까. 선비님은 정작 아무것도 드시질 않는 듯한데" "나는 시간이 없소. 하지만 부인은 살아야 하오. 아이와 함께 잘 살아야 하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염원이 담겨 있었다.

쉰 번째 날. 저승사자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이경원의 서재가 아닌, 박씨 부인의 집 앞, 달빛 아래서였다. 저승사자는 아궁이 앞에서 조용히 불을 지피는 이경원과, 그 곁에서 바느질하는 박씨 부인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네놈 장소를 옮겼군." "" "표정이 참으로 편안해 보인다. 50일 전의, 독기 서린 얼굴이 아니야. 오늘은, 질문이 없는 게냐?" 이경원은 불씨를 들여다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는 내일 죽어도,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지. 저 여인과 아이를 보고 있으면 단 하루라도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삶에 미련이 생긴다. 어찌해야 하는가."

저승사자는 달을 올려다보았다. "네놈의 첫 번째 질문을 기억하느냐. '미련'이 무엇이냐고 물었지. 그것이, 네가 지금 느끼는 것이다. 쌀 한 줌의 무게, 눈물의 온기 그것들이 모여 '인연(因緣)'을 만들고, 그 인연이 '미련'을 만든다. 저승길에 가장 무거운 짐이라 하였으나 또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지. 네놈은, 50일 만에 '사람'이 되었구나. 50일 남았다."

※ 마지막 10일: 저승사자와의 문답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아흔 번째 날이 되었다. 이경원의 너른 기와집은 이제 완전히 비어, 곳간의 쌀은 굶주린 자들에게, 서책은 가난한 학자들에게, 토지는 소작농들에게 모두 돌아갔다. 그는 이제, 박씨 부인의 집, 광 한편에 마련된 작은 방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고고한 '선비님'이 아니었다. 박씨 부인의 아이가 "아버지!" 하고 불렀다가, 제 실수에 놀라 "아 이 서방님!" 하고 고쳐 부르는 그저 '이 서방'이었다.

그의 병세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뚜렷이 깊어져,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걷는 것조차 힘겨웠다. 창백한 얼굴, 움푹 팬 눈,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기침.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그가 평생 가졌던 그 어떤 오만한 순간보다도, 맑고 깊고, 평화로웠다. 박씨 부인은, 그가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아니, 이젠 확실히 눈치챘지만, 차마 묻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그의 곁을 지키며, 제 남편에게도 못 다했던 정성으로 그를 간호했다. 묽은 미음을 쑤어 식혀가며 입에 넣어주고, 식은땀으로 젖은 그의 등을 마른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부인 쿨럭 쿨럭 아이 아이는 오늘 글공부를 많이 하였소?" "예, 이 서방님. 오늘은 '아버지 부, 어머니 모'를 배웠답니다." 박씨 부인이, 애써 눈물을 참으며, 붉어진 눈시울로 대답했다. "아이가 이 서방님을 참 좋아합니다 꼭 친아버지처럼" 그녀의 목소리가 결국, 울음에 잠겼다. 이경원은 앙상하게 뼈만 남은 손을 들어, 그녀의 거친 뺨을 닦아주려 했지만 그 짧은 거리조차, 손이 닿지 않았다. "울지 마시오 부인 나는 괜찮소 정말 괜찮소"

그는 숨을 골랐다가, 다시 힘겹게 말을 이었다. "나는 내 평생 지금이 가장 행복하오. 가장 따뜻하오 평생을 차가운 지식 속에 나를 가두고 살았는데 부인과 저 아이가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소. 고맙소 쿨럭" "서방님! 제발 그런 말씀 마셔요" 박씨 부인이 그의 손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이 병들고 죽어가는 선비를 연모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100일째 되는 날.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이경원은 박씨 부인에게, 아이에게 줄 마지막 편지 한 통과, 훗날 아이가 자라 공부할 때 쓰라며 마지막 남은 붓과 벼루를 남겼다. 그리고, 깨끗한 무명옷으로 갈아입었다. "오늘 밤은 아무도 찾지 말라 하시오 그대가 나를 위해 밤새 삼아준 그 짚신 그것만 머리맡에 놓아주시오. 조용히 가고 싶소." 박씨 부인은 피눈물을 흘렸지만, 그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자시(子時). 어김없이, 방 안의 공기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며, 저승사자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연민이나 흥미가 아닌, '임무'를 완수하려는 듯, 그의 손에는 쇠사슬이 들려 있었다. "이경원. 약속한 100일째 밤이다." 저승사자의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100일 전의 그 메마른 소리가 아니라, 아주 조금 낮아져 있었다. 마치, 마주하기 싫은 순간을 맞이한 것처럼.

"왔는가 쿨럭 나의 벗이여." 이경원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 저승사자는 '벗(友)'이라는 그 한마디에, 처음으로 당황한 듯, 굳어버렸다. 수천 년간, 수억의 망자를 거두었지만 울부짖는 자, 저주하는 자, 애원하는 자는 보았어도, 자신을 '벗'이라 부른 영혼은 단 하나도 없었다. "네놈 준비는 되었느냐." 저승사자가, 애써 감정을 누르며, 무겁게 물었다.

"되었네. 그대 덕분에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네 내 마지막 질문을 해도 되겠는가." "허락하겠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이경원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남은 생명의 불꽃을 태워, 또렷하게 물었다. "그대는 수천, 수만 년을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었다. 그대가 본 '가장 위대한 지혜'는 무엇인가? 내가 평생을 바친 책 속의 지식인가, 아니면 저 임금이 가진 권력인가, 혹은 내가 버린 그 재물인가 도대체 인간이 평생을 바쳐 찾아야 할, 단 하나의 가장 위대한 지혜가 무엇인가?"

저승사자는, 대답 대신 방 한쪽에 놓인, 작은 짚신 한 켤레를 바라보았다. 박씨 부인이, 이경원의 저승길이 험할까 봐, 제 손이 부르트도록 밤새 삼은 작고, 투박한 짚신이었다.

"지식? 권력? 재물?" 저승사자가 나직이 읊조렸다. "그런 것들은 저승의 강을 건널 때, 가장 먼저 영혼을 발목 잡아, 심연으로 끌어내리는 무겁고 차가운 돌덩이에 불과하다." "" "내가 본 바 가장 위대한 지혜는 '아는 것(知)'이 아니라 '행하는 것(行)'이다. 그리고, 그 모든 행함의 근원은 '사랑'이다." 저승사자의 시선이, 짚신을 바라보는 이경원의 평화로운 얼굴을 향했다. "네놈이 지난 99일 동안, 그 병든 몸으로 깨달은, 바로 그것. 쌀 한 줌을 나누고, 타인의 눈물을 닦아주며,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바로 그 마음."

이경원은 그 말을 듣고, 환하게 웃었다. 마치, 십 년 묵은 체증이 아니, 평생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가슴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그렇 군 그랬 어 나는 평생을 저 멀리, 하늘에서 지식을 찾아 헤맸는데 정답은 내 발밑,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구나 나는 이제 다 배웠네. 고맙네 벗이여 이제 가세." 이경원은,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저승사자는 명부(名簿)를 펼쳐 들었다. "이경원 때가" 그때였다. 저승사자가 멈칫했다. 명부에 적힌 이경원의 이름 석 자가 붉은색에서, 점차 황금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 새로운 삶: 101일째의 아침

저승사자는 제 눈을 의심했다. 이런 일은 수천 년 만에 처음이었다. 망자의 이름이 사라진 적은 있어도, 이토록 눈부신 황금빛으로 변한 적은 없었다. 황금빛은, '공덕(功德)'이 하늘에 닿아, 속세의 업(業)을 모두 씻어낸 자, 혹은 아직 속세에서 그가 베풀어야 할 자비가 '남은' 자에게만 나타나는, 천계(天界)의 빛이었다. "이럴 리가." 저승사자가 명부를 다시 보았지만, 황금빛은 더욱 밝아졌다. 그리고 그 밑으로, 젖은 먹물처럼, 새로운 글자가 스며 나오듯 나타났다.

'죄(罪) 소멸(消滅). 공(功) 신생(新生). 수(壽) 삼십 년(三十年).'

"" 저승사자는, 시퍼런 쇠사슬을 들었던 손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등 뒤로 감추었다. 이경원은, 숨이 멎은 듯 마치 깊고 평화로운 잠에 빠진 듯, 고요했다. 저승사자는, 처음으로 제 임무를 망설였다. 아니, 이것은 망설임이 아니었다. '새로운 명(命)'이었다. 그는 이경원의 곁에, 박씨 부인이 두고 간 새 짚신을 가지런히 놓아주었다. 그가 신을 수 있도록. 이승의 길을 다시 걸을 수 있도록.

"선비." 저승사자의 목소리는 더 이상 메마르지 않았다. "네놈의 마지막 질문에 나 또한, 하나를 배웠다. 인간의 '진심'은 하늘의 '명부'마저 바꾸는구나. 네놈의 100일은 '죽음'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새 삶'을 얻기 위한 혹독한 '시험'이었구나." 저승사자는 명부를 덮었다. "101일째의 아침을 맞이하도록 하라. 나는 30년 뒤에, 다시 오겠다. 그때는, 그대의 '벗'으로서 마중하마." 저승사자는, 경의를 담아 아주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한 점 연기처럼 방 안의 한기와 함께,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101일째의 아침 해가 밝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햇살이었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따뜻했다. 박씨 부인은, 밤새 울다 지쳐, 문 앞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녀는, 이 서늘한 방 안에 차갑게 식어있을 이 서방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흑흑 이 서방님 부디 부디 좋은 곳으로"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었을 때, 그녀는 제 눈을 의심했다.

"부 부인?"

이경원이 이경원이, 자리에 기대어 앉아, 창문 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서 서방님! 이 이게 어찌!" 그녀는, 헛것을 보는가 싶어, 제 볼을 꼬집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수척했으나, 그를 평생 괴롭혔던 그 지독한 '죽음'의 그림자가 밤사이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그는 기침을 하지 않았다. 그의 숨소리는, 갓난아이처럼 고르고, 깊었다.

"부인 날이 참 밝구려." 이경원이, 박씨 부인을 향해 따뜻하게, 아주 따뜻하게 미소 지었다. 기적이었다. 저승사자와의 100일간의 거래는, 그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 아니라, 그의 얼어붙었던 심장을 녹이고, 그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한 것이었다.

그 후, 이경원은 아니, '이 서방'은 박씨 부인과 정식으로 혼례를 올렸다. 그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대신, 그가 머물던 그 초가집 마당에, 작은 서당(書堂)을 열었다. 그는, 가난하여 글을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을 모아, '지식'이 아닌, '지혜'를 가르쳤다. '쌀 한 줌'을 나누는 법을 가르쳤고, '눈물의 온기'를 아는 법을 가르쳤다. 그는 박씨 부인과 함께, 염라대왕이 허락한 30년간의 세월을 참으로 따뜻하고, 행복하게 보냈다.

그리고 30년 뒤, 약속한 그 날. 그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역시 백발이 된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마당에 핀 난초를 바라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의 얼굴에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미소가 어려 있었다고 한다.

유튜브 엔딩멘트

저승사자와의 100일의 거래, 재미있게 들으셨나요? 냉혈한이었던 이 선비는, 죽음의 문턱에 서서야 비로소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요. 하지만, 그 끝을 안다고 해도 오늘 이 선비처럼, 누군가를 위해 따뜻한 불씨 하나를 지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저승사자도 감복시킬 '가장 위대한 지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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