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와 7일간의 논쟁
저승사자와 7일간의 논쟁 , 지옥의 열쇠를 거부한 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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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약 250자):
살아있는 사람에게 저승의 열쇠를 쥐여 주겠다는 제안이 떨어졌다면, 여러분은 받으시겠습니까? 조선의 한 사찰.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내 삶을 바꾸겠다”던 승려 앞에 저승사자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승려는 뜻밖에도 그 열쇠를 거절하고, 이들의 논쟁은 무려 7일 동안 이어지지요. 생과 사, 은혜와 업보, 자비와 질서가 맞부딪히는 흥미진진한 공방전. 끝에 남는 한마디가, 여러분의 밤을 환하게 비출지도 모릅니다.
디스크립션(약 300자):
본 영상은 조선시대 야담을 바탕으로 재창작한 이야기입니다. 지옥의 문을 여는 열쇠를 제안받고도 거부한 한 승려와, 원칙을 지키려는 저승사자의 7일간 논쟁. 죽은 이를 살릴 수 있다면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은혜와 업보는 어디서 만나는가를 유쾌하면서도 깊이 있게 풀어냅니다. 시니어 시청자분들이 좋아하실 정취 어린 사찰 풍경, 한지 등불의 따스함, 그리고 마지막에 전하는 삶의 뜻을 담았습니다.
※ 한겨울 산사에 나타난 저승사자와 첫 논쟁의 불씨
눈이 산문을 파묻을 듯 쌓이던 한겨울, 울력 마치고 돌아온 승려는 낡은 법당 앞에 서서 한지 등 하나를 더 달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등불이 가늘게 떨리며, 그 속에 들어앉은 불씨가 작게 호흡을 했다. 그때였다. 마치 바람이 모양을 바꿔 사람으로 서는 것처럼, 검은 갓과 검은 도포를 입은 이가 눈발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발자국이 없었다. 승려는 합장을 했다. 생사의 냄새를 맡아온 산중의 개들도 꼬리를 내리고 울지 않았다. “스님, 동토의 밤에 수고가 많소.” 목소리는 차갑지 않았으나, 어쩐지 먼 데서 울리는 북소리처럼 귓속을 울렸다. 저승사자였다. 승려는 그 사실을 새삼스럽지 않게 받아들였다. 산사에 살다 보면 풀잎 흔들림에서도 생사의 소식이 들리는 법이라, 눈빛 하나만으로도 온기가 있는 자인지 없는 자인지 분간할 수 있었다. 그는 조용히 되물었다. “그대가 이 산까지 올라온 까닭이 무엇이오?” 저승사자는 소매 속에서 작은 쇠뭉치를 꺼내 보였다. 눈송이가 닿자 맑은 종소리 같은 울림을 냈다. 열쇠였다. “지옥의 둘째 문에 드는 열쇠요. 스님께 드리러 왔소.” 승려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 같은 미천한 중에게 무슨 까닭으로.” 사자는 어깨를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사람 하나를 살릴 수 있소. 아니, 단지 한 사람뿐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의 업보 길을 바꿀 수도 있소. 당신의 맑은 기도와 서원을 염라전에 올렸더니, 상벌을 맡은 아전들이 이례로 허락하였소. 오늘 밤, 이 열쇠를 받아들면, 내일 새벽이 오기 전 스님이 원하는 문 하나쯤은 열어주겠다는 뜻이오.” 승려는 가만히 눈을 내다보았다. 저 산 아래 마을에서 아침저녁으로 올라오는 소식은 늘 같았다. 추위, 아픔, 가난, 그리고 기다림. 특히 그중 하나, 오래 앓아 누운 노모의 숨 가쁜 숨은 밤마다 그의 목탁 소리에 섞여 들렸다. 그의 어머니였다. 출가 후에도 그는 어머니만 생각하면 목이 메었다. “한 문을 연다… 누구를 위하여?” 사자는 미소라 하기에도 애매한, 그림자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야 스님의 뜻일 터. 다만 대가가 있을 뿐.” 승려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지옥의 문을 여는 자가 아니오. 열쇠는 그대 것, 문도 그대의 일.” 사자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소. 당신이 오래 세운 서원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있소. ‘어머니가 고통을 덜게 하소서.’ 명호를 세 번 외우고 절을 백 팔십 배 올릴 때마다, 산 바람이 당신의 체온을 데워주지 않았나. 그 정성으로 이 열쇠가 허락된 것이오.” 승려는 허공에 이를 굳게 다물었다. 누군가 오래 들여다본 마음은 부끄럽다. 그러나 부끄럼을 피한다고 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대가가 무엇이라 했소.” “간단하오. 생사의 질서를 흔들지 않겠다는 서약.” 승려는 웃음도 눈물도 아닌 표정을 지었다. “그럼 문을 열고도 흔들지 않는 길이 있단 말이오?” 사자는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있소. 바로 스스로 열지 않고, 내가 여는 문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 당신은 바라보고 기도만 하시오. 손대지 않는 것이 손을 대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아니, 그 어려움을 대가로 치르라는 것이오.” 승려는 잠시 눈을 감았다. 분명한 유혹이었다. 어머니의 신음을 덜 수 있다면, 그 한밤만이라도, 차라리 자신의 체온을 덜어 어머니의 이마를 덮어줄 수 있다면. 그러나 문이라는 것은 한번 열면 바람길이 바뀐다. 산문도 그렇고 마음문도 그렇다. “돌아가시오.” 짧은 말이었으나 단호했다. 사자는 의외라는 듯 고개를 들었다. “돌아가라니, 무슨 말씀.” “열쇠는 그대의 것이니 그대가 지키시오. 나는 내 기도를 지키겠소. 문은 그대가 지키고, 기도는 내가 지키는 법.” 사자의 눈빛이 어두워졌다가 이내 환해졌다. “그렇다면 논해봅시다. 오늘을 첫째 날로. 일곱 날 동안 당신을 설득하겠소. 그 사이 당신이 한 번이라도 마음을 바꾸면, 그때는 늦지 않을 것이오.” 승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논쟁이라, 좋소. 허나 눈보라 속에서도 등불은 꺼뜨리지 말아야 하니, 말씀은 따뜻하게 합시다.” 그렇게 첫날 밤, 사찰의 처마 끝에 매달린 등불 하나가 서로 다른 세계의 두 손님을 비추었다. 하나는 따뜻한 기도를 지키려 했고, 하나는 차가운 질서를 지키려 했다. 그러나 둘 모두의 얼굴에는 이상하게도 비슷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책임이라는 이름의 그늘이었다.
※ 어머니의 병과 승려의 서원, 그리고 첫 번째 반박
둘째 날 새벽예불이 끝나자, 승려는 법당 마루에 맨발을 올렸다. 차가운 나무 결이 발바닥을 깨웠다. 설선(雪禪)이라 했던가, 눈밭 위에서 숨을 지켜보며 하는 명상. 그때 저승사자가 다시 왔다. 이번에는 눈 더미를 밟아 발자국을 남겼다. 어제와 달리, 사람의 흉내를 내려는 듯했다. “스님, 어제의 거절은 이해하오. 하지만 은혜와 업보가 만나는 자리를 생각해 보시오. 어머니의 고통은 누구의 업보요? 어머니의가요, 당신의가요, 아니면 세상 그 자체의가요?” 승려는 눈을 뜨지 않은 채 대답했다.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은 걸 묻는군.” “대답해 보시오.” “은혜는 나의 빚이고, 업보는 모두의 그림자요. 빚을 갚는 마음으로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다면, 그게 자비요.” 사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림자는 햇빛이 있어야만 생기오. 생사를 갈무리하는 질서가 바로 그 햇빛이오. 당신이 문을 열면, 빚을 갚는 대신 그림자가 더 길어질 수도 있소.” 승려는 마루 끝에서 일어나 눈밭으로 나섰다. 바람이 매서웠다. “그렇다면 묻겠소. 열쇠를 내게 주는 까닭은 무엇이오. 내 마음을 시험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그대의 어딘가가 흔들리는 것인가.” 사자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영혼을 살리는 일에 흔들리지 않는 자는 없소. 다만 우리에게는 장부가 있소. 명부라 불리지. 그 장부에 쓰인 자들의 시각과 호흡, 마지막 말까지도 기록되어 있소. 그 기록이 뒤엉키면,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방황하게 되오.” 승려는 잠시 미소를 지었다. “기록이 뒤엉키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기록의 바깥에서 울리는 소리는 누가 듣소.” 사자는 말없이 그의 발걸음을 따라 눈밭을 걸었다. 산 아래 마을로 내려가는 길목에 작은 산죽이 있었는데, 그 잎들이 눈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닿아 있었다. 승려가 그 잎을 가볍게 털어 올리자, 초록 잎맥이 한숨을 쉬듯 되살아났다. “스님, 당신의 어머니를 구하고 싶은 마음, 그것이 은혜라면 나도 막을 수 없소. 다만 업보의 문을 열지 않고 은혜만 살리는 길이 있는가, 그게 내 질문이오.” 승려는 산죽을 어루만졌다. “있소. 내가 대신 추위를 맞으면, 어머니의 밤이 더워질 수 있소. 내가 대신 배고프면, 어머니의 밥이 조금 더 늘어날 수 있소. 내가 대신 기도하면, 어머니의 마음이 덜 흔들릴 수 있소.” 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시간은 늘 제 값을 치르오. 당신의 밤과 배고픔은 한순간의 위로일 뿐, 병을 거두지는 못하오.” 승려는 눈발 사이로 산그늘을 바라보았다. “병을 거두는 일과 마음을 거두는 일이 꼭 같을 필요는 없소. 어머니가 가실 길이 편안하다면, 그 또한 구제요.” 사자가 갑자기 되물었다. “그렇다면 왜 출가를 하였소. 어머니를 가까이에서 모시며 효를 다할 수도 있었을 터.” 승려는 잠시 말이 없었다. 오래전 겨울, 젊고 어리석어 마음이 불처럼 타던 시절, 그는 세상의 고통에 분개했다. 자기 분노를 달래려 출가했는지, 세상을 덜 아프게 하려 출가했는지 스스로도 분간이 어려웠다. “나는 나를 다스리려 출가했소. 그러나 다스린다는 말은 늘 부족하오. 그래서 기도하오. 내 기도가 모자라 어머니의 고통이 남아 있다면, 모자람을 인정하는 것이 내 수행이오.” 사자는 한숨을 쉬었다. “둘째 날의 논쟁은 여기까지. 오늘 밤, 열쇠는 여전히 내 소매 속에 있소. 내일이 오면, 당신은 더 흔들릴 거요. 왜냐면, 명부에 새로운 기록이 붙었기 때문이오.” 승려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어떤 기록?” “당신의 어머니 이름 아래, 작은 점 하나. 그 점은 눈송이처럼 가볍지만, 해가 기울면 돌덩이처럼 무거워져요. 이틀 뒤, 그 점이 획으로 변하면, 우리는 부르러 가야 하오.” 승려는 눈을 감았다 떴다. 바람이 잦아들며 한지 등불이 곧게 섰다. “그 점이 획으로 변하기 전까지, 나는 기도를 더하겠소. 그리고, 그 시간이 다할 때까지도 나는 열쇠를 받지 않겠소.” 사자는 그 말에 묘하게 위로받은 얼굴을 했다. “스님, 은혜와 업보의 경계에서 당신이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지, 점점 알 것 같소. 하지만 셋째 날, 나는 더 깊이 묻겠소. 생사의 저울 앞에서, 당신은 어디에 모래 한 줌을 더할 것인지.”
※ 목숨을 살리는 일과 질서의 균형을 두고 벌이는 날 선 공방
셋째 날 정오, 산사는 햇살이 얼음을 핥듯 미끄러졌다. 장경판전 뒤편에서 경판을 닦고 돌아온 승려에게 저승사자가 먼저 합장을 했다. 늘 검은 그림자 같던 눈빛이 오늘은 이상하게도 사람빛을 띠었다. “스님, 생사의 저울 이야기를 합시다. 당신이 열쇠를 받아 한 사람을 살리면, 저울 한쪽이 올라가고 다른 쪽이 내려가오. 그 내려가는 쪽에는 누가 있을까요.” 승려는 마당의 법고를 바라보았다. 한겨울에도 고목은 비어 있는 속을 울릴 줄 알았다. “먼저 태어날 아이, 또는 아직 떠나지 못하고 미적거리는 노인, 혹은 약속된 그 누군가. 하지만 나는 저울에 사람을 올리고 내리는 장수가 아니오.” 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거기요. 당신은 장수가 아니오. 그러니 장수의 일을 넘보지 말라는 것이오.” 승려는 웃음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넘본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넘보는 게 무엇인지 아시오? 바로 마음이지. 마음은 어제의 나를 넘보고, 남의 허물을 넘보고, 심지어 죽음까지 넘보오. 하지만 넘본다고 다 훔치는 것은 아니오. 넘봄을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것이 수행이오.” 사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렇다면 또 묻겠소. 당신의 어머니가 살고, 다른 이가 가는 저울을 본다면,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 있소?” 승려의 눈동자에 파문이 일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웃음, 가마솥 뚜껑에서 새어 나오던 밥 냄새, 어린 그를 업고 장터를 건너던 굳은살 박인 손바닥. “가만히 있지 못하겠지요.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내 마음을 보겠지요. 그리고 그 마음을 놓치지 않으려 다시 합장하겠지요.” 사자는 이마를 짚었다. “그 마음이야말로 저울을 흔드는 바람이오. 바람이 거세면, 가벼운 영혼들이 먼저 넘어지오.” 승려는 조용히 답했다. “그래서 이 산사는 바람이 센 날에 더 많은 등을 답니다. 바람이 등불을 꺼뜨리는 날엔, 우리는 등불을 더 달지요. 꺼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불은 없소. 다만 서로의 불씨를 나눠 꺼짐을 미루는 것, 그게 우리의 일.” 사자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법고 채를 들여다봤다. “스님, 당신의 말 속에서 나는 내 일의 의미도 같이 본다오. 꺼질 불을 꺼지지 않게 붙들어 두는 것이 우리의 일이 아니오. 꺼짐을 알아듣게 도와, 길 잃은 이가 없도록 인도하는 것. 그 길 위에서, 당신의 등불이 길잡이가 되는 것을 나는 부정하지 않소.” 승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우리 둘이 다투되 미워하지 맙시다. 당신이 저울을 지키는 동안, 나는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릴 때 붙잡을 한 가닥 끈을 준비하겠소.” 사자는 애써 딴청을 부리듯 손을 흔들었다. “좋소. 다만 오늘 오후, 마을로 내려가야 하오. 장정 하나가 술에 취해 얼음물에 발을 담갔으니, 오래 두면 곧 굳어버릴 터. 그도 명부에 작은 점이 찍혔소. 내가 부르면 돌아오겠지만, 당신이 한 번 들러 따뜻한 죽 한 그릇을 내어 준다면, 그 점이 사라질 수도 있소.” 승려가 눈을 치켜떴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 우리 둘이 협력할 수도 있단 말이오.” 사자는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문을 여는 일은 아니오. 그대의 죽 한 그릇은 질서를 흔들지 않소. 다만 마음 하나를 돌려놓을 수는 있지.” 그렇게 셋째 날 저녁, 둘은 함께 산길을 내려갔다. 얼음 강가에서 떨고 있는 장정에게 승려는 뜨거운 죽을 내밀었다. 저승사자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그의 등에 담요 같은 온기를 덮었다. 장정의 눈동자에서 거친 빛이 서서히 가셨다. 명부의 점 하나가 눈송이처럼 녹았다는 것을, 둘 다 말하지 않았지만 알고 있었다. 산으로 오르는 길에 사자가 입을 열었다. “스님, 오늘은 내가 져도 된다고 느꼈소.” 승려가 물었다. “논쟁에서 지면 무엇을 얻소?” 사자는 대답했다. “사람 하나의 숨. 그리고 나 자신의 흔들림.” 승려는 고개를 숙였다. 흔들림을 아는 자만이 다시 곧게 설 수 있다는 것을, 두 사람은 말하지 않고도 알았다.
※ 명부에서 지워진 글자 한 줄,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다
넷째 날 새벽, 명부를 들고 나타난 저승사자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소매 끝에서 하얀 서리가 떨어졌고, 그가 펼친 장부의 한 귀퉁이는 비어 있었다. 승려는 숨을 골랐다. “왜 비었소.” 사자는 낮게 답했다. “당신 어머니의 이름 아래, 어젯밤 분명 점이 획으로 바뀌어야 했소. 그런데 새벽녘에 확인하니, 이름이 흐릿해졌다 지워졌다가, 지금은 아예 보이지 않소.” 승려의 심장이 미세하게 떨렸다. “지워졌다?” 사자는 장부를 접으며 말했다. “세상에는 세 가지 경우가 있소. 첫째, 누군가 우리를 속였거나, 둘째, 그분이 이미 다른 길로 건너갔거나, 셋째…” 말을 잇지 못했다. 승려가 대신했다. “셋째, 누군가가 그분의 이름을 자기 가슴에 옮겨 새겼거나.” 사자는 고개를 들었다. “스님, 당신은 어젯밤 무엇을 했소.” 승려는 생각을 더듬었다. 어젯밤, 그는 법당 뒤 은행나무에 기대어 오래된 목탁을 쥐고 잠시 졸았다. 꿈에서 그는 한 여인을 만났다. 검정 고무신과 누비 저고리를 입은, 그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말없이 그의 목탁을 가져가 자신의 가슴에 대고 톡톡 두드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때 목탁 소리가 아닌 심장 소리가 들렸고, 고요가 눈빛처럼 떨어졌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소. 다만… 꿈을 꾸었소.” 사자는 한숨이 길어졌다. “꿈과 명부 사이에는 우리가 모르는 길이 많소.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오. 이름이 사라졌다는 것은, 아직 부를 때가 아니라는 뜻. 누군가가 그분을 잠시 붙들었거나, 그분 스스로 돌아누우셨거나.” 승려의 어깨가 놓였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라진 이름이 돌아오지 않으면, 길을 잃지 않겠소?” 사자는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같이 가야 하오. 당신의 마을, 당신의 집. 문턱에 남은 발자국, 부엌의 그을음, 베개 모서리에 박힌 바늘 하나까지도 우리는 살피오. 그 흔적에서 길을 찾을 수 있소.” 넷째 날 해가 중천에 오르자 둘은 마을로 내려갔다. 승려의 집은 오래전 그가 출가한 뒤로 이웃들의 손에 조금씩 고쳐진 듯했다. 마루는 눌어붙은 장국 냄새가 배어 있고, 부엌에는 말리던 나물꾸러미가 걸려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어머니가 반듯이 누워 있었다. 숨은 가늘었으나 고르게 오갔다. 그 곁에는 낡은 베개와 손바느질 상자가 있었다. 사자가 방 안을 한 바퀴 돌더니 벽의 손때 묻은 자리를 가리켰다. “여기, 오래 기대어 앉던 자리.” 승려가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가 바느질하며 창밖을 보던 곳이오.” 사자는 그 자리에 가만히 손을 대었다. “이 집에는 기도가 먼저 살았고, 그다음에 사람이 살았소. 기도가 사람이 되는 집이 길을 잃을 리 없지.” 그때 어머니가 눈을 떴다. 승려는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합장을 했다. 어머니의 시선이 저승사자를 스치고, 아들의 얼굴에 머물렀다.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춥지 않니.” 그 평범한 한마디가 방 안의 겨울을 물러나게 했다. 승려는 이불 모서리를 여며주며 낮게 속삭였다. “어머니, 꿈에서라도 제 목탁을 두드리셨습니까.” 어머니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너의 소리로 내 속이 덜 외로웠다.” 저승사자는 조용히 장부를 펼쳤다. 빈칸이던 자리에 옅은 글씨가 스며들 듯 나타났다. 그러나 또렷하진 않았다. “아직 확정은 아니오.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곳에 계시니, 오늘 밤이 중요하오.” 승려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굳은살과 주름이 얽힌 손바닥에 오래 묵은 햇살이 겹쳐 보였다. “어머니, 제가 오늘 밤, 스님의 기도 소리를 더 낮게, 더 깊게 하겠습니다. 어머니가 두려우시면 제 숨을 빌려 쓰십시오.” 저승사자는 문가에 서서 조용히 말했다. “넷째 날의 논쟁은, 이름이 사라졌다 돌아오는 까닭에 대한 것이었소. 나는 질서를 말했다. 그러나 오늘은 그대의 집이 답을 말했다. 오래된 손바느질, 말린 나물, 벽의 손때, ‘춥지 않니’라는 한마디. 이 모든 것이 길을 잃은 이름을 되불렀소.” 바람이 문풍지를 스쳤다. 저승사자는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향해 가볍게 고개 숙였다. “내일 다섯째 날, 나는 다시 묻겠소. 열쇠의 무게를 체에 걸러낼 수 있는지. 스님, 그대는 오늘 밤 무엇을 내려놓겠소.” 승려는 대답 대신 어머니 이마에 손을 얹었다. 온기가 있었다. 지옥의 문을 여는 열쇠가 아니라, 사람 하나의 이마를 덮는 온기가.
※ 지옥의 문턱에서 승려가 택한 대가와 저승사자의 흔들림
다섯째 날, 산 위에는 해가 늦게 떴다. 승려는 밤새 목탁을 세 번 바꿔 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부르텄고, 한지 등불 아래서 그의 숨은 김이 되어 떨었다. 저승사자가 나타났을 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 사자는 열쇠를 다시 꺼낼 것이다. “스님.” 사자의 목소리는 낮았고, 오래 걸어온 사람의 숨 같았다. 열쇠가 소매 끝에서 반짝였다. “나는 오늘 이 열쇠의 무게를 당신과 함께 들어 보려 하오. 이건 쇳덩이가 아니오. 약속의 무게요. 누군가는 구해지고, 누군가는 떠나며, 누군가는 남아 울게 되는 무게.” 승려는 눈을 감고 양손을 내밀었다. 사자가 열쇠를 그의 손 위에 올렸다. 차갑고 묵직했다. 그러나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것은 금속의 냉기가 아니라, 이름들이 모여 이룬 숨결 같았다. “무겁소.” 승려가 말했다. 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에게는 가볍소. 힘 있는 자의 손에서는 종종 깃털처럼 가벼워지지. 그 가벼움이 세상을 망가뜨리곤 하오.” 승려는 한참 동안 열쇠를 들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열쇠를 사자에게 돌려주었다. “나는 이 무게를 평생 들 자신이 없소. 오늘만 들고 내일 내려놓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오늘의 선택은 내일의 날씨가 되오. 내일을 맑히려면 오늘도 맑아야 하오.” 사자의 얼굴이 흐려졌다 밝아졌다. 눈발 대신 햇살이 내려와 둘의 어깨를 덮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여섯째 날 이전에 한 가지 제안을 하겠소. 문을 열진 않되, 문턱까지 갈 수 있게 해주겠소. 당신 어머니의 길을 내가 인도할 것이니, 당신은 문턱에서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소. 이것은 질서를 흔들지 않는 예외. 열쇠를 쓰지 않는 은혜.” 승려의 입술이 떨렸다. “문턱이라…” 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자리는 문턱이오. 나아가야 할지 돌아서야 할지 정하는 자리. 오늘 밤, 문턱에서 당신의 숨을 어머니께 나누어 주시오. 그러면 이름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스스로 알 것이오.” 승려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허락해 주시오.” 그날 밤, 법당의 한지 창이 달처럼 빛날 때, 둘은 인왕산 자락 같은 어슴푸레한 공간으로 걸어 들어갔다. 발 아래는 빛과 그림자가 얽혀 있었고, 앞에는 높은 문이 있었다. 문은 닫혀 있었으나, 틈새에서 따뜻한 냄새가 났다. 어머니가 문턱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 승려는 무릎을 꿇었다.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춥지 않니.” 이번에도 그 한마디였다. 승려는 웃었다. “춥지 않습니다.” 손을 맞잡는 순간, 어머니의 손이 조금씩 무게를 되찾았다. 저승사자는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반짝이는 것이었다. 몇 번의 심장 박동, 몇 번의 눈꺼풀 떨림, 몇 번의 숨. 그 사이로 어머니의 이름이 다시 명부 위에 스며들었다가, 어느 순간 또렷이 자리 잡았다. 사자가 낮게 말했다. “길이 정해졌소.” 승려는 묻지 않았다.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손이, 이제 더는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손이 되었음을. “가시렵니까.” 승려의 물음에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목탁 소리가 나를 데리고 왔다. 이제 너의 목탁 소리가 너를 데리고 가거라.” 사자가 앞으로 나섰다. 문은 열리지 않았지만, 문턱은 사라졌다. 발끝이 따뜻해졌다. 승려는 마지막으로 어머니 이마에 손을 얹었다. “어머니, 제가 이 산에서 사람들 이마를 덮어주겠습니다. 추울 때마다.” 어머니는 눈을 감았다. 이름은 흔들리지 않았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아무도 갇히지 않았다. 둘은 다시 산사로 돌아왔다. 사자가 물었다. “오늘의 선택은 내일의 날씨가 되었소. 어떤 하늘을 보았소.” 승려는 대답했다. “맑고, 바람이 조금 있고, 등불이 흔들리지만 꺼지지 않는 밤.” 사자는 그 말에 미소라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지었다. “다섯째 날, 열쇠의 무게는 당신의 말로 가벼워졌고, 내 마음에서 더 무거워졌소.”
※ 일곱 날의 끝, 남겨진 사람을 위한 약속과 새로운 서원
여섯째 날, 사찰에는 마을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장정은 빚을 갚듯 죽솥을 지고 올라왔고, 할머니들은 말린 고사리와 무말랭이를 내놓았다. 누구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산은 때때로 이유를 묻지 않는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승려는 법당 문을 열어 두고, 한지 등을 한 줄 더 달았다. 이제 등은 일곱 개였다. 저승사자는 뒤편 처마에 서서 그 등을 세었다. “일곱.” 낮게 중얼거렸다. “일곱 날의 논쟁.” 승려는 합장했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오.” 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오늘 나는 염라전에 돌아가, 열쇠를 다시 반납할 것이오. 당신에게 주려 했으나, 주지 못했으니, 나는 비어 있는 손으로 돌아가야 하오.” 승려는 말했다. “비어 있는 손이 때로는 가장 무거운 손이지요.”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법당에 들어와 조용히 앉았다. 누군가는 눈을 감고, 누군가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저승사자는 사람들의 등을 보았다. 그 등들 위로 눈발 같은 시간이 내려앉았다가 사라졌다. “스님, 마지막 질문이오. 당신이 지옥의 문을 열지 않겠다는 결심은 굳건하오. 그러나 이 산 아래 또 다른 누군가가 문을 열려고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소.” 승려는 등불을 가리켰다. “이걸 나누겠소. 문을 여는 손에 등불을 쥐여 주겠소. 밝은 데서 본다면, 열쇠가 칼인지 약인지 분간할 수 있을 테니.” 사자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열쇠를 들어 햇빛에 비춰 보았다. 금속의 표면에 마을사람들의 얼굴이 어렸다. 웃음, 주름, 기다림, 후회, 소망. 사자의 눈동자가 부드러워졌다. “나는 돌아가서 말하겠소. 오늘 본 것을. 문을 열지 않고도 길을 여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등불 하나로 사람을 살린다고.” 승려가 물었다. “그럼 우리 논쟁은 누가 이겼소.” 사자는 고개를 저었다. “논쟁은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오. 끝내려고 하는 것도 아니오. 길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오. 우리는 길을 찾았소.” 그때, 산길 아래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젊은 부부가 갓난아이를 안고 올라오고 있었다. 아이는 열이 나는 듯했지만 울음은 힘이 있었다. 승려는 죽솥을 내려놓게 하고, 아이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뜨거웠다. 그는 등 하나를 풀어 아이의 곁에 매달았다. 불빛이 작았으나, 아이의 눈이 그 빛을 좇았다. 저승사자는 멀찍이서 그 모습을 보았다. 명부의 빈칸 어디쯤, 오늘의 장면이 기록되는 듯했다. “스님.” 사자의 목소리가 낮았다. “나는 내일도 올 수 있소. 그러나 오지 않겠소. 오늘 당신이 가르쳐준 일을 먼저 해보아야 하니까.” 승려는 미소 지었다. “무엇을요.” 사자는 열쇠를 가만히 쥐었다 펴며 말했다. “어둠 속에서 먼저 등을 달아보는 일.” 마을사람들이 돌아가며 기도를 올리고, 죽그릇이 빈 그 시간, 해는 서쪽으로 기울었다. 여섯째 날의 저녁, 산은 잠잠했고, 바람은 얌전했다. 저승사자는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묻지 않은 질문을 던졌다. “스님, 당신의 어머니는 잘 가셨소.” 승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 목탁 소리를 앞세워 가셨습니다. 이제 제 차례입니다. 남은 이들의 밤을 밝히는 차례.” 사자는 그 대답을 오래 들고 서 있었다. 그러고는 아주 낮게 인사했다.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 중, 오늘 당신은 지옥의 열쇠를 거부하고도 가장 큰 문을 열었소.” 발자국이 남지 않는 발걸음으로 사자는 떠났다. 산 그림자는 길어졌으나 무섭지 않았다. 일곱 개의 등불이 저마다의 작음으로, 서로의 꺼짐을 미루고 있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오늘 이야기, 어떠셨습니까. 지옥의 열쇠를 거부한 승려와 저승사자의 7일 논쟁. 문은 열지 않았지만 길은 열렸고, 열쇠 대신 등불 하나가 남았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크고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먼저 등 하나 달아 주는 마음이 사람을 살릴 때가 있습니다. 오늘 밤, 곁에 잠 못 드는 누군가가 있다면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보면 어떨까요. 그 작은 불빛이 내일까지 이어지는 다리가 될지도 모릅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죽은 할머니가 돌아와 알려준 저승의 비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부탁드리고요, 모두 평안한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