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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 ‘명부를 찢어버린 날’

황금 인생 21 2025. 12. 24.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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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 ‘명부를 찢어버린 날’ , 숭늉 한 그릇이 만든 기적 『기문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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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 멘트 (약 400자):

"어이, 저승 갈 준비는 됐는가?" 서슬 퍼런 검은 갓 아래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오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혼비백산하여 나자빠지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 저승사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기는커녕 따뜻한 숭늉 한 사발을 내밀며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소"라고 말한 기막힌 사내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귀신도 감동하고 염라대왕도 뒷목을 잡았다는 그 사건! 조선 최고의 기문(奇聞)들을 모은 『기문총화』 속에서도 단연 압권으로 꼽히는 '저승사자가 명부를 찢어버린 사건'의 전말을 오늘 낱낱이 공개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문턱에서 벌어진 기상천외한 협상,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디스크립션 (약 300자):

인생사 새옹지마라지만, 죽음 앞에서 이토록 당당하고 따뜻했던 이가 또 있을까요? 오늘 소개해 드릴 이야기는 『기문총화』에 기록된 실제 같은 전설, 저승사자의 마음을 돌린 한 남자의 감동적인 야담입니다. 저승사자가 명부를 찢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절박하고도 아름다운 이유를 통해, 우리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재미와 교훈, 그리고 가슴 뭉클한 감동까지 모두 담았습니다.

※ 1 저승 명부의 착오

에헤이, 여러분. 옛날 저기 전라도와 경상도가 만나는 어느 깊은 산골에 ‘구름마을’이라는 동네가 있었어요. 그 동네에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뜨끈해지는 ‘최만수’라는 선비가 살았더랬죠. 이 양반, 말이 좋아 선비지 사실은 다 떨어진 갓에 꿰맨 도포를 입고 사는 가난뱅이 중의 가난뱅이였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최 선비의 마음보가 얼마나 넓은지 동네 사람들이 "저 집 담장은 도둑을 막으려는 게 아니라, 배고픈 사람 쉬어가라고 세운 거다"라고 할 정도였다니까요.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어요. 살을 파고드는 칼바람이 쌩쌩 부는데, 마을 어귀에 웬 다리를 저는 거지가 나타났습니다. 다들 제 코가 석 자라 문을 쾅쾅 닫아걸 때, 우리 최 선비는 어땠을까요? 신발 끈도 제대로 못 매고 버선발로 뛰어나갔답니다. "어이구, 이 사람아! 이 추위에 어찌 그리 얇은 옷을 입고 있는가!"라며 자기가 입고 있던 유일한 솜옷을 훌렁 벗어 거지에게 덮어주었지요. 그러고는 부엌으로 달려가 아내가 정성껏 끓인 죽 한 그릇을 가져왔는데, 자기는 굶을지언정 거지의 숟가락에 김치 한 조각까지 올려주며 허허 웃는 겁니다. "천천히 들게나. 체하면 약도 없는 세상이니."라며 그 언 손을 자기 품속에 넣어 녹여주기까지 했으니, 이쯤 되면 사람이 아니라 생불(生佛) 아니겠습니까?

그뿐인 줄 아셔요? 길을 걷다가도 길가에 튀어나온 뾰족한 돌멩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굽은 허리를 두드려가며 그 무거운 돌을 영차영차 들어 길가로 옮겨두었지요. "밤눈 어두운 노인네들이 걸려 넘어지면 큰일이지, 암." 하면서요. 비 오는 날이면 처마 밑에 집을 지은 제비 새끼들이 젖을까 봐 낡은 짚신을 덧대어 지붕을 만들어주고, 산길에서 덫에 걸린 토끼를 보면 제 살점이 뜯기는 것처럼 아파하며 덫을 풀어주던 사람이 바로 최 선비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러분! 하늘이 정말 장난을 치는 건지, 아니면 저승 시스템이 고장이 난 건지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저 깊고 어두운 저승 세계, 염라대왕님이 호령하는 그곳 명부전(冥府殿)에서 큰 사고가 터진 거예요. 명부를 담당하는 판관이 그날따라 눈이 침침했는지, 아니면 지나가는 원귀의 곡소리에 정신이 팔렸는지, 붓대를 놀리다가 그만 잉크 한 방울을 툭 떨어뜨리고 만 겁니다. 하필이면 그 먹물이 번진 곳이 바로 우리 최 선비의 이름 위였던 거예요!
원래는 옆 마을의 욕심쟁이 ‘최부자’를 데려와야 하는데, 판관이 잉크 자국을 쓱 닦더니 "어허, 오늘 데려올 놈이 최만수구먼!" 하고 이름을 잘못 읽어버린 겁니다. 염라대왕님은 그것도 모르고 "오늘 밤 삼경, 최만수라는 자를 대령하라!" 하고 어명을 내렸으니, 아이고,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시커먼 안개 속에서 검은 갓을 깊게 눌러쓴 저승사자가 쇠사슬을 짤랑거리며 이승으로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자가 발을 뗄 때마다 이승의 강물은 얼어붙고, 집집마다 키우던 개들은 낑낑대며 마루 밑으로 숨기 바빴지요. 이 억울한 운명의 장난을 최 선비는 꿈에도 모른 채, 그저 "오늘따라 별빛이 유난히 차구나" 하며 낡은 창호지를 문지르고 있었답니다.

※ 2 한밤중의 불청객

자, 이제 밤은 깊어 사방이 고요한 삼경이 되었습니다. 산사람은 모두 잠들고 귀신들만 돌아다닌다는 그 무시무시한 시간이지요. 최 선비의 집 마당에 갑자기 차가운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칩니다. 마당 구석에 쌓아둔 장작더미가 우르르 무너지고, 장독대 위에서는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얼음 깨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만 것이지요.
"최만수! 최만수 있느냐! 염라의 명을 받들어 네 놈을 데리러 왔다! 어서 나와 인연을 끊거라!"
천둥 같은 목소리가 집안을 울리는데, 보통 사람 같으면 심장이 쪼그라들어 그 자리에서 기절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 최 선비, 허허 웃으며 방 안의 촛불을 켭니다. 그리고는 정갈하게 옷매무새를 다듬고 사립문을 천천히 열었지요. 문을 열자마자 눈앞에 나타난 건, 키가 지붕만큼 크고 얼굴은 백지를 바른 듯 창백한 저승사자였습니다. 눈동자에는 푸른 불꽃이 일렁이고, 허리춤에는 영혼을 옭아매는 무시무시한 쇠사슬이 걸려 있었지요.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최 선비가 바닥에 넙죽 엎드려 살려달라고 빌 줄 알았는데, 오히려 사자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겠습니까?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승의 귀한 손님께서 이 누추한 곳까지 발걸음을 하시다니요. 제가 준비가 좀 덜 되었습니다만, 잠시만 안으로 드시지요." 이 말에 저승사자가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수천 년간 영혼을 수거했지만, 자기를 손님 대접하는 인간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거든요.
사자가 헛기침을 하며 엄하게 말했습니다. "이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안으로 들라 하느냐? 나는 네 목숨을 뺏으러 온 저승사자다!" 그러자 최 선비가 사자의 거친 손을 살며시 잡으며 말합니다. "그걸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먼 길 오시는 동안 목이 얼마나 타셨겠습니까. 저승에는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기도 어렵다 들었습니다. 가기 전에 제가 정성껏 끓인 숭늉이라도 한 사발 대접하게 해주십시오. 제 평생의 소원이 마지막 가는 길에도 누구에겐가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사자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쇠사슬을 던져 목을 채야 하는데, 따뜻한 숭늉이라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이 꿀꺽 넘어가는 겁니다. "에헴... 정 그렇다면 딱 한 사발만 마시고 가겠다. 시간 없으니 서둘러라!" 최 선비는 부엌으로 달려가 가마솥 바닥에 눌어붙은 구수한 누룽지를 긁어 숭늉을 끓여왔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숭늉을 사발째 바치며, 최 선비는 또 하나의 보따리를 내밀었지요.
"사자님, 이건 제가 틈틈이 꼬아둔 짚신입니다. 저승 가는 길이 험하고 날카로운 돌이 많다던데, 발이라도 편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못난 솜씨지만 제 성의라 생각하고 신어주십시오." 사자는 멍하니 그 짚신을 바라보았습니다. 수만 명의 인간을 저승으로 끌고 갔지만, 사자의 부르튼 발을 걱정해 신발을 내어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사자는 숭늉을 단숨에 들이켰습니다. 그 따뜻하고 구수한 기운이 차가운 사자의 가슴 속으로 스며드는데, 수천 년 얼어붙었던 심장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지요.
사자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런 선한 사람을 내가 데려가야 한다니... 명부가 정말 맞는 것인가?' 사자는 슬쩍 품속에서 명부를 꺼내 보았습니다. 하지만 거기엔 분명히 '최만수'라고 적혀 있었지요. 사자의 눈에 고뇌가 서리기 시작했습니다. 법도를 지키느냐, 아니면 이 따뜻한 사람을 살리느냐! 그 운명의 갈림길에서 사자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 3 명부를 펴든 사자와 최 선비의 기막힌 문답

자, 이제 정든 집과 울부짖는 아내를 뒤로하고 최 선비와 저승사자가 본격적인 황천길 대장정에 올랐습니다. 여러분, 황천길이라는 게 말입니다, 우리네 동네 뒷산 가는 길하고는 차원이 달라요. 해가 뜨는 것도 아니고 달이 비치는 것도 아닌데, 사방에는 허리춤까지 차오르는 시퍼런 안개가 자욱하니 앞이 보일 리가 있겠습니까? 발밑에는 정처 없이 떠도는 영혼들의 한숨이 서려 있어 걸음마다 '질척질척' 소리가 나고, 멀리서는 이름 모를 산짐승인지 원귀인지 모를 '우우'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서글픈지 웬만한 장정이라도 오금이 저려 걷지도 못할 곳이지요.
그런데 이 길을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이 참으로 가관입니다. 보통은 저승사자가 쇠사슬을 '짤랑짤랑' 흔들며 "이놈! 어서 가지 못할까!" 하고 호통을 치면, 망자는 "아이고 사자님, 한 번만 살려주쇼!" 하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져야 정상이지요. 그런데 지금 우리 최 선비는 어떻습니까? 오히려 저승사자의 보폭을 맞추려 애쓰며, 안개 속에서 사자가 발이라도 헛디딜까 봐 "사자님, 이쪽 길은 돌이 많으니 조심하십시오. 제가 앞을 좀 봐 드릴까요?" 하고 앞장서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니, 세상에 자기를 저승으로 끌고 가는 사자를 걱정하는 인간이 어디 또 있겠냐고요!

특히 저승사자의 걸음걸이를 좀 보세요. 최 선비가 정성껏 꼬아준 그 투박한 짚신을 신었지 않습니까? 수천 년간 저승의 차가운 바닥을 딱딱한 관화만 신고 걸어 다녔으니 사자의 발바닥이 오죽이나 부르트고 굳었겠어요? 그런데 이 짚신을 신으니, 발가락 사이사이로 이승의 따뜻한 볏짚 기운이 스미는 것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인 겁니다. 사자는 짐짓 엄한 척 "에헴! 길눈은 내가 밝으니 너나 잘 따라오너라"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허어, 이 짚신이라는 게 이토록 폭신했단 말인가? 어찌 이승의 풀때기가 내 마음까지 이리 간지럽히는고...' 하며 감동에 젖어 있었던 거지요.
한참을 걷던 최 선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사자님, 실례가 안 된다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님께 제 사정을 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사자가 눈을 부릅뜨며 묻습니다. "사정이라니? 억울하다고 빌기라도 하겠다는 게냐?" 그러자 최 선비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가난해서 아내에게 비단 옷 한 벌 못 해주고 온 것이 가슴에 사무쳐서요. 혹시 저승에서 일을 좀 해서라도 이승에 복을 내려줄 수 있는지 여쭙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사자의 가슴 속이 갑자기 뜨거워졌습니다. '이런 바보 같은 사람을 봤나... 자기 죽는 건 걱정 안 하고 남겨진 사람 걱정뿐이로구나.' 사자는 도저히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가던 길을 멈추고 소매 안에서 묵직한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습니다. 바로 사람의 명줄을 적어둔 '저승 명부'였지요. 차가운 바람이 명부를 '파르르' 흔드는데, 사자가 눈등에 힘을 주고 최만수라는 이름 위를 훑어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명부 속 기록을 보니, 최만수라는 자는 평생 죄라고는 짓지 않고 살았는데, 그의 수명 칸에 적힌 글자가 아주 이상했습니다. 글자가 번져서 잘 보이지 않는데, 자세히 보니 옆 칸에 있는 악독한 '최부자'의 이름 위에 찍혀야 할 붉은 점이, 판관의 실수로 최 선비의 이름 옆에 툭 떨어져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이고, 이 망할 놈의 저승 행정!" 사자가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습니다. 알고 보니 판관이 졸다가 이름을 착각해서, 죽어야 할 욕심쟁이 최부자 대신 우리 착한 최 선비를 데려오게 된 명백한 사고였던 겁니다. 사자는 멍하니 서 있는 최 선비를 보며 입술을 바르르 떨었습니다. "최 선비... 자네, 큰일 났네. 자네는 지금 여기 올 때가 아닌데... 명부가, 명부가 잘못되었어!" 사자의 떨리는 목소리가 안개 자욱한 황천길로 길게 퍼져 나갔습니다.

※ 4 저승으로 가는 길목

두 사람은 어느덧 첫 번째 고개인 ‘망령고개’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이곳은 이승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내려다보이는 곳이지요. 최 선비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자신의 초가집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내는 마당에 엎드려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하고 있겠지요. 최 선비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습니다.
저승사자는 그런 선비의 뒷모습을 보며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저승의 법도를 어기면 나 또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명백한 실수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내가 어찌 저승의 질서를 지키는 사자라 할 수 있겠는가!’ 사자는 결심한 듯 명부를 바닥에 내려놓고 최 선비를 불렀습니다.
“최 선비, 잠시 여기 앉아 쉬어가자구나.” 사자는 명부를 펼쳐놓고 날카로운 손톱을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명부에 적힌 ‘최만수’라는 이름 옆의 나이 수(壽) 자를 지그시 눌렀습니다. 보통의 사자라면 감히 상상도 못 할 일, 바로 명부의 내용을 고치려 한 것이지요. 하지만 명부는 저승의 신성한 기록이라, 사자의 힘만으로는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명부에서 번쩍이는 보랏빛 광채가 사자의 손을 밀쳐냈습니다.

“으윽!” 사자가 신음하며 뒤로 물러나자 최 선비가 깜짝 놀라 달려왔습니다. “사자님! 어찌 그러십니까? 어디 다치신 곳이라도 있으신지요?” 사자는 거친 숨을 내쉬며 최 선비를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이 미련한 사람아! 내 너를 살려보려 애를 쓰는데, 너는 네 몸 하나 건사할 생각은 안 하고 또 내 걱정이냐!”
최 선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저를... 살려주신다니요? 명부에 적힌 운명을 어찌 바꿀 수 있단 말씀입니까.” 사자는 명부를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사실은 명부가 잘못되었다. 네가 죽을 차례가 아닌데, 판관의 실수로 이름이 올라온 게야. 하지만 이미 이 강을 건너기 직전이니, 법대로라면 너는 억울하게 죽어야 한다. 내가 이 명부를 수정해보려 했으나, 내 힘만으로는 부족하구나.”
사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이었습니다. “방법이 딱 하나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목숨을 건 도박이지. 내가 이 명부의 네 이름이 적힌 페이지를 아예 찢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너는 저승의 명단에서 사라지게 되고, 이승으로 돌아갈 틈이 생긴다. 하지만 명부를 훼손한 죄는 내가 오롯이 짊어져야 하지. 염라대왕님의 불호령은 물론이고, 내 영혼이 소멸할 수도 있는 일이다.”

최 선비는 소스라치게 놀라 손사래를 쳤습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저 하나 살자고 사자님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미 숭늉도 대접했고, 짚신도 신겨 드렸으니 여한이 없습니다. 그저 순리대로 가게 해주십시오.”
하지만 사자는 이미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는 최 선비가 준 짚신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차가운 저승 길에서 유일하게 온기를 전해주던 그 투박한 짚신. “선비, 너는 이승에서 수많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었지? 나 또한 사자이기 전에 생명의 귀함을 아는 존재다. 네가 나에게 보여준 그 작은 정성이, 수천 년간 얼어붙었던 내 마음을 녹였느니라. 사자가 명부를 찢는 일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으나, 오늘 내가 그 금기를 깨뜨리겠다!”
사자는 기합을 넣으며 명부의 한 귀퉁이를 잡았습니다. 명부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저항하며 강한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주위의 나무들이 꺾이고 흙먼지가 휘날리는 아수라장 속에서, 사자는 온 힘을 다해 ‘북!’ 하고 명부 한 장을 통째로 찢어버렸습니다. 그 순간, 하늘에서 벼락이 치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고, 최 선비의 몸이 점점 투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 어서 가라! 뒤도 돌아보지 말고 저 고개를 내려가거라! 네 아내가 기다리는 그곳으로!” 사자의 외침과 함께 최 선비의 영혼은 거센 바람에 휩쓸려 이승으로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멀어지는 최 선비의 시야 속에서, 저승사자는 찢어진 명부 조각을 손에 쥔 채 홀로 서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 대신,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지요.

※ 5 염라대왕 앞에 선 사자와 최 선비

자, 여러분! 이제 무대는 다시 저 시퍼런 서슬이 가득한 저승의 심장부, 염라전으로 바뀝니다. 사방에서는 시빨간 지옥 불길이 확확 타오르고, 억울한 귀신들의 곡소리와 죄지은 자들의 비명이 땅을 흔드는데, 그 중심에 염라대왕님이 떡하니 앉아 계십니다. 눈은 부릅뜨고 수염은 거칠게 휘날리며, 책상을 ‘쾅!’ 하고 내리치시는데 그 소리에 저승 전체가 들썩들썩합니다. "무엇이라? 명부를 찢었다고? 저승사자 강림이 제정신이 아니로구나! 감히 천지의 법도를 어기다니, 어서 그놈을 잡아 대령하라!"

이윽고 우리 저승사자가 포졸들에게 양팔을 붙잡힌 채 염라대왕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사자의 소매 안에는 아직도 최 선비의 이름이 적혔던 명부의 찢어진 조각이 꽉 쥐어져 있었지요. 염라대왕님이 사자의 발을 내려다보더니 더 크게 호통을 칩니다. "네 이놈! 저승의 엄격한 관복은 어디 가고, 웬 해괴망측하고 투박한 짚신을 신고 있느냐! 그것도 모자라 저승의 보물인 명부를 훼손하다니, 네 영혼을 당장 소멸시켜 구천을 떠돌게 하리라!"

사자는 떨리는 몸을 가다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보다도 어떤 단단한 확신이 서려 있었지요. "대왕님, 소신을 죽여주옵소서. 저승의 법도를 어긴 죄,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나이다. 하오나 대왕님, 벌을 내리시기 전에 이 짚신을 한번 보아주십시오. 수천 년간 차갑고 날카로운 황천길 자갈밭을 걷던 제 발에 처음으로 따뜻한 온기를 전해준 물건입니다. 그리고 제가 찢어버린 그 명부 속의 최만수라는 자의 기록을 다시 한번만 살펴주십시오."

사자는 소매에서 찢어진 명부 조각을 높이 치켜들었습니다. "그자는 평생 남을 위해 살았습니다. 제 입에 들어갈 죽 한 그릇을 떼어 거지에게 주고, 추위에 떠는 이에게 제 옷을 벗어주며, 심지어 길가에 버려진 작은 돌멩이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승 판관의 실수로 그 선한 자가 억울하게 죽어야 한다면, 우리 저승의 정의는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소신은 그자의 목숨을 구한 것이 아니라, 바로 대왕님이 다스리는 이 저승의 공정함과 명예를 구하고자 명부를 찢었습니다!"

그 순간, 떠들썩하던 염라전이 쥐 죽은 듯 고요해졌습니다. 염라대왕님의 매서운 눈매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지요. 대왕님은 사자의 발에 신겨진 낡은 짚신을 한참 동안 뚫어지게 내려다보았습니다. 그 투박한 짚신 한 올 한 올에는 최 선비가 사자에게 건넸던 따뜻한 정성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거든요. 대왕님은 옆에 서서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던 판관을 불러 호통을 쳤습니다. "이 멍청한 판관 놈아! 어서 최부자의 명부와 최 선비의 명부를 이 자리에서 당장 다시 대조해 보거라!"

판관이 혼비백산하여 명부를 뒤적이더니 이내 바닥에 엎드려 아룁니다. "대... 대왕님! 사자의 말이 맞사옵니다! 최 선비의 수명은 아직 사십 년이나 더 남았는데, 제가 그만... 이름을 착각하여 다른 장에 적어 넣었나이다!" 염라대왕님은 긴 한숨을 내쉬며 거친 수염을 쓸어내렸습니다. "허어, 이런 천하의 망할 놈들 같으니라고. 내 자칫하면 저승의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구나." 대왕님은 무릎을 꿇고 있는 사자를 향해 이제껏 본 적 없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사자 강림아, 네 죄는 결코 가볍지 않으나 그 충심과 자비심이 저승의 허물을 바로잡았구나. 명부를 찢은 죄는 묻지 않겠다. 다만, 그 짚신은 저승의 보물고에 간직하여 후대 사자들에게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에 대한 경계로 삼게 하리라." 사자는 안도의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대왕님!" 이렇게 저승에서의 대소동은 일단락되었지만, 진짜 기적은 이제부터 이승에서 벌어지게 됩니다.

※ 6 다시 이승으로

자, 여러분! 무대를 옮겨서 다시 이승의 최 선비 집으로 가보십시다. 지금 그곳은 그야말로 통곡의 바다, 눈물바다였습니다. 최 선비의 숨이 멎은 지 이미 반나절이 꼬박 지났고,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모여들어 "그 좋은 양반이 왜 그리 일찍 갔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며 저마다 손수건을 적시고 있었지요. 아내는 남편의 차가운 손을 붙잡고 "서방님, 나를 두고 어찌 가십니까!" 하며 목이 놓아 울다가 그만 기운이 다해 까무러치기까지 했습니다.
마당 한쪽에서는 이미 장례를 치르기 위해 관을 짜는 망치 소리가 '텅, 텅' 울려 퍼지고 있었어요. 그 소리가 어찌나 구슬픈지, 지나가던 까마귀도 울음을 멈출 지경이었지요.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최 선비가 누워 있는 방 안으로 어디선가 따스한 봄바람 같은 기운이 확 불어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창호지가 '부르르' 떨리더니, 천장 위에서 금빛 가루 같은 것들이 팔랑팔랑 나비처럼 내려앉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지요. "이게 무슨 일이야? 한겨울에 웬 금가루람? 아니면 하늘에서 꽃가루가 내리는 건가?"

그 금빛 가루들은 다름 아닌, 저승사자가 최 선비를 살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찢어버렸던 그 명부의 파편들이었습니다! 그 눈부신 조각들이 최 선비의 가슴 위로 하나둘 내려앉더니,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선비의 피부 안으로 스며들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이미 딱딱하게 굳어가던 최 선비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탁’ 하고 움직였습니다. "어? 어! 저기 좀 봐! 선비님 손이 움직여! 내가 잘못 본 건가?" 누군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를 쳤습니다.

아내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남편의 가슴에 귀를 갖다 대었습니다. '두근... 두근...' 멈췄던 심장이 다시 힘차게 뛰기 시작한 것입니다! 최 선비의 얼굴에 서서히 붉은 혈색이 돌더니, 이윽고 "허어..." 하는 깊은 장탄식과 함께 선비가 눈을 번쩍 떴습니다. 최 선비는 마치 긴 낮잠에서 막 깨어난 사람처럼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여보... 내가 아주 길고 기묘한 꿈을 꾼 모양이오. 저승사자님을 만나 숭늉을 대접하고 고개를 넘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다시 우리 집 안방이구려."
아내는 남편을 껴안고 오열했습니다. "서방님! 살아나셨군요! 정말로 살아나셨어요!" 마을 사람들은 이 기적 같은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더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최 선비가 일어서려 할 때 그의 도포 소매 안에서 낡은 종이 조각 하나가 툭 떨어졌는데, 거기에는 ‘수연백세(壽延百世)’ 즉, 수명을 연장하여 백 세까지 살리라는 글자가 황금빛으로 번쩍이며 적혀 있었던 겁니다. 사자가 명부를 찢을 때 그 간절한 기운이 최 선비에게 전달되어 하나의 신표가 된 것이지요. 그날 이후 최 선비는 예전보다 훨씬 건강하고 정정한 모습으로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저승사자도 감동시킨 이 시대의 참인간”이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고, 그 소문은 팔도강산에 퍼져나가 우리네 야담의 전설이 되었답니다.

※ 7 무병장수의 복을 누린 최 선비의 결말과 인생 교훈

자, 여러분. 이제 이야기의 막을 내릴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 우리 최 선비는 어찌 되었을까요? 명부에 적힌 대로,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래도록 무병장수하며 온갖 복을 누렸답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가 살아난 날 이후로 그의 집안에는 늘 따라다니던 가난의 그늘이 씻은 듯이 걷히고 풍요가 찾아왔다는 점입니다. 최 선비가 심은 나무는 다른 집보다 배나 많은 열매를 맺었고, 그가 가꾸는 논밭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지요. 마치 하늘이 그의 선행에 대한 보상을 이승에서 미리 주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최 선비는 아흔이 넘고 백 세가 다 된 나이에도 허리 한번 굽지 않은 정정한 모습으로 동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지나가는 나그네들에게 항상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상을 내어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최 선비를 볼 때마다 경외심을 담아 물었습니다. “선비님, 저승 문턱까지 갔다 오셨는데 죽음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어찌 그리 늘 평온하실 수 있나요?” 그러면 최 선비는 허허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곤 했답니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내 마음속의 차가움이라네. 저승사자님도 따뜻한 숭늉 한 사발에 마음을 여시는 분인데, 하물며 살아있는 사람끼리 어찌 서로의 체온을 나누지 않겠는가. 내가 베푼 아주 작은 친절이 결국 나를 살려 돌아오게 했으니, 나는 남은 생을 그저 그 따뜻함을 갚으며 살 뿐이라네.”
최 선비는 정말로 백 세가 되던 해의 어느 화창한 봄날,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마치 단잠에 든 듯 평온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날 최 선비의 집 위로는 오색 무지개가 아름답게 피어올랐고, 어디선가 은은하고 신비로운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고 전해집니다. 아마도 그때 그 저승사자가 이번에는 쇠사슬이 아니라, 선비를 극락으로 모실 꽃가마를 들고 마중 나오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그 사자의 발에는 여전히 최 선비가 꼬아주었던 그 낡은 짚신이 신겨져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참으로 명확합니다. 저승사자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공포와 끝을 의미하지만, 그조차도 진심 어린 정성과 선한 마음 앞에서는 자신의 명예와 목숨을 걸고 명부를 찢어버릴 만큼 감동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하는 작은 배려 하나가 어쩌면 훗날 우리가 인생의 가장 어두운 고개를 넘을 때, 우리를 구원할 가장 밝은 등불이 될 것입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혹은 오늘 우연히 마주칠 누군가에게 우리 최 선비처럼 따뜻한 숭늉 한 사발 같은 마음을 전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것이 바로 저승의 명부조차 바꿀 수 있는 인생의 진정한 기적이며, 우리가 이 땅에 남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흔적일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최 선비처럼 덕을 쌓아 무병장수하시고, 가시는 길마저 꽃길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유튜브 엔딩 멘트

오늘 준비한 '저승사자가 명부를 찢어버린 사건', 재미있게 들으셨습니까?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던 최 선비의 선한 마음과, 그 마음을 알아본 저승사자의 기막힌 우정! 우리 어르신들의 가슴 속에도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기를 바랍니다. 인생사 마음먹기 달렸다고 하지요? 오늘 하루도 최 선비처럼 활짝 웃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정을 나누는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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