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 둘이 한 사람을 두고 생사를 놓고 벌어진 지옥의 다툼
저승사자 둘이 한 사람을 두고 생사를 놓고 벌어진 지옥의 다툼 【해동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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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킹멘트 (200자)
당신의 목숨을 거두러 온 저승사자. 그런데 한 명이 아닌 둘이라면? 한 명은 데려가야 한다고, 다른 한 명은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당신의 팔을 잡고 싸운다면? 한 효자의 목숨을 두고 벌어진 저승사자들의 기막힌 다툼!
디스크립션 (300자)
조선시대 야담집 『해동잡록』에 기록된 기이하고도 감동적인 실화. 지극한 효심으로 늙은 어머니를 모시던 한 선비. 마침내 명이 다해 저승사자가 찾아오지만, 어찌 된 일인지 또 다른 저승사자가 나타나 그의 죽음을 막아섭니다. 본 영상은 한 남자의 목숨을 두고 저승의 법과 하늘의 뜻이 충돌하는, 소름 돋고도 가슴 뭉클한 오디오 드라마입니다.
※ 꺼져가는 등불, 효자의 눈물
살을 에는 듯한 삭풍(朔風)이 초가집의 썩은 문틈을 비집고 들어와, 가뜩이나 냉골인 방 안의 온기를 마지막 한 점까지 앗아가던 그런 밤이었다. 방 한가운데, 목숨의 불씨가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로운 늙은 노모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밭은기침이 터져 나올 때마다 앙상한 어깨가 들썩였고, 그때마다 곁을 지키던 아들 김 선비의 심장은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듯했다.
"어머니… 제발… 제발 기운을 조금만 더 내시옵소서. 이 불효자식이 날이 밝는 대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약재를 구해오겠습니다. 제발…." 그의 목소리는 끓어오르는 눈물을 삼키느라 심하게 잠겨 있었다. 며칠째 미음 한 술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노모의 얼굴은 산 사람의 것이라기엔 너무나도 창백했다. 동네 의원은 며칠 전, 귀한 약재를 쓰지 않으면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집안의 형편은 너무나도 참담했다. 가난한 선비의 살림에 책이란 책은 이미 오래전에 모두 팔아 노모의 약값으로 들어갔고, 이제는 쌀독의 바닥을 긁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은 지 나흘이 넘어가고 있었다.
김 선비는 마른 행주를 쥐어짜 노모의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불덩이처럼 뜨거웠던 이마는 이제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체온이라도 나누어 드릴 요량으로,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노모의 손을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 싸늘하다 못해 얼음장처럼 느껴지는 그 감촉에, 그는 끝내 참고 참았던 눈물을 주르륵 떨구고야 말았다. 뜨거운 눈물이 노모의 손등 위로 떨어져 차가운 김을 피워 올렸다.
"하늘이시여… 천지신명이시여, 보고 계시나이까! 어찌하여 이토록 무심하시나이까! 평생을 자식 하나만을 위해 헌신하신 분입니다. 당신의 젊음과 맞바꿔 이 못난 자식을 키워내셨고, 당신의 배를 곯아가며 이 자식의 입에 밥을 넣어주셨습니다. 그런 제 어머니가 이제야 겨우 허리 한번 펴고 살아보시려 하는데, 어찌하여 이리 허망하게 거두어 가시려 하나이까! 차라리… 차라리 이 불효막심한 자식의 목숨을 거두어 가십시오! 제 수명을 덜어 제 어머니의 삶에 보태어 주시옵소서! 단 하루라도, 아니 반나절이라도 좋으니, 제발 제 어머니를 살려주시옵소서!"
그는 노모의 머리맡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등잔불을 보며, 그 앞에 정화수 한 그릇을 떠다 놓았다. 그리고는 닳아 해진 무릎이 마룻바닥에 찧여 피가 배어 나오는 것도 잊은 채, 엎드려 빌고 또 빌었다. 그의 기도는 더 이상 기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늘을 향한 절규였고,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피맺힌 통곡이었다. 방구석에서 처량하게 울던 귀뚜라미마저 그의 울음소리에 숨을 죽였고, 방 안에는 오직 김 선비의 비통한 흐느낌과 꺼져가는 노모의 희미한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밤은 더욱 깊어져 자시(子時)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노모의 숨결은 이제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미약해졌다. 김 선비는 기도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며칠 밤을 뜬눈으로 새운 그의 눈은 핏발이 선 채 퀭하게 들어가 있었고, 정신은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들며 몽롱해져 갔다. 그는 마지막 힘을 짜내 노모의 앙상한 몸을 가슴에 품었다. "어머니… 불효자를… 부디 용서 마시옵소서…." 그 말을 끝으로, 그의 의식은 캄캄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 순간, 방 안의 등잔불이 마지막 남은 기름을 태우며 '파앗' 하고 한번 밝아지더니, 이내 '푹' 소리를 내며 꺼져버렸다. 마치 그의 운명과 노모의 운명이 함께 끝났음을 알리는 불길한 신호처럼.
※ 두 명의 저승사자, 엇갈린 명부
김 선비의 의식이 완전한 어둠 속으로 떨어진 바로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돌연 송곳처럼 날카롭고 차갑게 변했다. 삭풍이 들이치던 문틈은 어느새 고요해졌고, 대신 무덤 속 같은 정적과 한기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분명 굳게 닫혀 있었을 방문이 끼익,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저절로 열렸다. 그리고 달빛조차 없는 어둠 속에서, 사람의 형상을 한 두 개의 그림자가 연기처럼 스며들어 왔다.
먼저 방 안으로 들어선 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칠흑같이 검은 도포를 입고 있었다.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다 못해 푸른 기운이 감돌았고, 텅 빈 눈동자는 이 세상의 어떤 감정도 담고 있지 않았다. 그의 손에는 붉은 먹으로 '김 아무개, 자시(子時)'라고 쓰인 명패, 즉 적패지(赤牌旨)가 들려 있었다. 그는 쓰러진 김 선비를 기계적으로 내려다보며, 쇠를 긁는 듯한 차가운 목소리로 방 안의 정적을 깼다. "망자 김 아무개. 네놈의 수명이 오늘 자시(子時)로 다하였으니, 염라대왕의 명을 받들어 너를 데리러 왔노라. 덧없는 이승에 미련 두지 말고, 어서 일어나 길을 떠날 채비를 하라."
그가 바로 저승의 법도에 따라 망자의 목숨을 거두는 일직사자(日直使者)였다. 그의 서슬 퍼런 목소리는 그 자체로 거역할 수 없는 법이자 명령이었다. 김 선비의 영혼은 그 목소리에 이끌려, 마치 자석에 끌리는 쇠붙이처럼 속수무책으로 육신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생의 모든 기억이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오직 병든 노모의 창백한 얼굴만이 굵은 쇠사슬처럼 그의 영혼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아, 안된다… 이대로 내가 가면 홀로 남으실 어머니는 어찌 되는가…'
그렇게 그의 영혼이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위태롭게 걸쳐 있던 바로 그 찰나였다. 뒤따라 들어온 또 다른 저승사자가 소리 없이 일직사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쪽빛처럼 푸른 도포를 입고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일직사자와는 달리 깊은 고뇌와 인간적인 연민의 빛이 서려 있었다. 그의 손에는 푸른 먹으로 쓰인 청패지(靑牌旨)가 들려 있었다. 그가 바로 망자의 평생 공덕을 살피는 월직사자(月直使者)였다. "멈추게, 일직. 아직은 아니네. 이 자는 아직 이승에서의 삶이 끝나지 않았어."
일직사자는 자신의 임무를 방해받은 것에 심기가 거슬린다는 듯, 날카롭게 미간을 찌푸렸다. "월직, 네 지금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인가. 저승 명부에 적힌 이름과 시각이 한 치의 오차도 없거늘, 네가 감히 지엄하신 염라대왕의 명을 거역하려 드는 것이냐?" 월직사자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청패지를 내밀었다. "염라대왕의 명도 지엄하나, 그보다 더 높은 하늘의 뜻이 있음을 정녕 모르는가. 이 자의 효심이 지극하여 땅을 울리고 하늘을 감동시켰으니, 옥황상제께서 친히 그의 수명을 연장하라 명하셨다. 이 청패지가 바로 그 증표이니라."
두 사자는 서로 다른 색의 명패를 내밀며 팽팽하게 맞섰다. 한 명은 저승의 법을, 다른 한 명은 천상의 뜻을 이야기했다. 방 안의 공기는 두 사자의 상반된 기운이 부딪히며,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일직사자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흥, 옥황상제의 명이라. 나는 직접 들은 바 없다. 내 임무는 오직 이 명부에 적힌 대로 망자를 정해진 시각에 데려가는 것뿐. 쓸데없는 동정심으로 저승의 법도를 어지럽히지 말고 썩 비켜서라.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 "안된다. 이 자의 지극한 효심에 대한 하늘의 상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나는 결코 이 자의 영혼을 네게 내어줄 수 없다." 두 저승사자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히며, 보이지 않는 불꽃이 파직, 하고 튀었다.
※ 한 영혼을 둔 끔찍한 줄다리기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일직사자는 결국 강제 집행에 나섰다. 그는 얼음 송곳 같은 손을 뻗어, 반쯤 빠져나온 김 선비의 영혼의 팔 한쪽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그 순간, 지옥의 냉기가 혈관을 타고 흐르듯 영혼 전체로 퍼져나가, 김 선비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크아악! 차갑다… 뼈가 시리다…!"
그의 비명을 들은 월직사자 역시 다급하게 다른 한쪽 팔을 붙잡았다. 그의 손에서는 놀랍게도 차가움이 아닌, 봄날의 햇살 같은 온화하고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 미련한 것아, 당장 이 손을 놓아라! 이러다 이 자의 영혼이 둘로 찢어지는 것을 정녕 보지 못했느냐!" "시끄럽다! 네놈이야말로 저승의 법도를 어지럽히는 반역자가 아니더냐! 네가 먼저 놓으면 될 것을, 어찌하여 내게 책임을 돌리는가! 어서 이 자를 넘기고 네 갈 길이나 가거라!"
그 순간부터, 한낱 인간의 영혼을 두고 두 초월적 존재의 끔찍하고도 기괴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김 선비의 영혼은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엄청난 힘에 이리저리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녔다. 한쪽에서는 뼈를 얼리는 지옥의 냉기가, 다른 한쪽에서는 영혼을 감싸는 천상의 온기가 그의 몸 안에서 격렬하게 충돌하며 소용돌이쳤다. 그의 영혼은 마치 낡고 해진 삼베가 양쪽에서 찢어지듯, '지지직' 소리를 내며 금방이라도 두 조각으로 나뉠 것만 같았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완전히 상관없이, 육신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가, 다시 머리부터 반쯤 빨려 들어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경험을 수없이 반복해야 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위태롭게 걸쳐진 그의 눈에는, 이제 세상이 둘로 나뉘어 보이기 시작했다. 한쪽 눈으로는 희미한 등잔불 아래, 자신의 싸늘한 육신을 부여잡고 오열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다른 한쪽 눈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들판 위로, 이름 모를 흰 꽃들이 소복처럼 피어 있는 저승길의 풍경이 동시에 펼쳐졌다. 어머니의 애타는 울음소리와, 저 멀리 저승길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원혼들의 구슬픈 곡소리가 그의 양쪽 귓가에 뒤섞여 들어와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는 차라리 이 고통을 끝내고 싶어, 모든 것을 놓고 완전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두 사자의 힘은 용호상박, 막상막하였다. 한참을 그렇게 실랑이하던 그들은, 이대로는 선량한 영혼 하나만 소멸시킬 뿐, 결코 승부가 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저승사자들이었지만, 그들의 이마에는 곤혹과 당혹의 기색이 역력했다. 수천 년간 저승의 명을 받들며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일직사자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빨 사이로 말을 뱉어냈다. "…그만두자. 좋다, 월직. 네 고집을 인정하지. 이 문제는 우리 선에서 해결할 수 없을 듯하니, 염라대왕께 직접 가서 판결을 받도록 하자. 대왕의 판결이라면, 너도 더는 군말 없이 따를 테지." 월직사자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대왕께서도 지극한 효심을 외면하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은 마침내 영혼을 잡아끌던 손을 놓고, 대신 차가운 쇠사슬을 꺼내 김 선비의 영혼을 꽁꽁 묶었다. 그리고는 그의 양팔을 하나씩 잡고, 그를 저승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김 선비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소용돌이치는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의 등 뒤에서는 "아가, 내 아가! 어디를 가는 것이냐…" 하는 어머니의 애타는 목소리가 실낱처럼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뒤를 돌아보려 했지만, 저승사자들의 힘은 나약한 인간의 영혼이 저항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지극한 효자 김 선비는, 두 명의 상반된 저승사자에게 이끌려 지옥의 법정으로 향하고 있었다.
※ 염라의 법정, 끝나지 않는 다툼
김 선비의 영혼이 당도한 염라대왕의 법정은 인간 세상의 그 어떤 관아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삼엄했다. 바닥은 서리가 내린 듯 차가운 청석(靑石)으로 깔려 있었고, 전각의 기둥에는 죄인들의 고통스러운 얼굴이 조각되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양옆으로는 시뻘건 유황불이 강물처럼 흐르는 도산지옥(刀山地獄)과 발설지옥(拔舌地獄)의 끔찍한 광경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죄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 모든 것을 발아래에 둔 채, 수십 개의 해골로 장식된 거대한 옥좌에 염라대왕이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은 천 년 묵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그 눈빛은 이 세상 모든 죄악을 꿰뚫어 보는 신성한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일직사자와 월직사자는 김 선비의 영혼을 끌고 옥좌의 바로 앞까지 나아가 엎드렸다. 이례적인 두 사자의 동시 등장은 저승 법정의 모든 이목을 집중시켰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법과 원칙의 수호자, 일직사자였다. 그의 목소리는 한 치의 감정도 섞이지 않은 채, 법전의 글자처럼 딱딱하게 울려 퍼졌다. "대왕이시여, 소직 일직사자, 명부(冥府)의 명에 따라 망자 김 아무개의 혼을 거두어 왔나이다. 허나 월직사자가 천상의 뜻을 운운하며 소직의 임무를 방해하고 저승의 법도를 어지럽혔으니, 부디 지엄하신 법으로 다스려 주시옵소서."
그는 품에서 붉은 적패지를 꺼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 명패에 적힌 대로, 김 아무개의 명은 오늘 자시(子時)에 다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는 천지개벽 이래로 정해진 생사(生死)의 법도이옵니다. 만약 이 자의 효심이 가상하다 하여 법을 어기고 예외를 둔다면, 앞으로 저승의 질서는 어찌 되며, 수많은 망자들의 원성은 어찌 감당하시겠나이까.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하오니, 부디 원칙에 따라 이 자의 혼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일직사자의 주장은 논리 정연했고, 그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운 저승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이었다. 법정의 판관들과 옥졸들 역시 그의 말이 옳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월직사자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일직사자처럼 우렁차지는 않았지만,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대왕이시여, 일직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오나, 그는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법이 그러할진대, 법 위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인(仁)과 덕(德)이 아니옵니까. 소직이 이 자의 집에 당도했을 때, 그는 이미 자신의 목숨을 포기한 채 오직 늙은 어미를 살려달라며 피눈물로 하늘에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효심은 너무나도 지극하여, 차가운 방 안의 공기마저 그의 슬픔에 함께 울고 있었고, 그의 집을 둘러싼 초목들마저 고개를 숙여 그의 효심에 감복하고 있었습니다."
월직사자는 품에서 푸른 청패지를 꺼내 들었다. "이 자의 기도는 땅을 울리고 마침내 하늘에까지 닿았습니다. 옥황상제께서 친히 이 자의 효심을 가상히 여기시어, 그의 수명을 삼십 년 늘려주고 어미를 봉양토록 하라 명하셨습니다. 이 청패지가 바로 그 증표이옵니다. 대왕이시여, 저승의 법도가 지엄하다 한들, 어찌 하늘의 뜻을 거역할 수 있겠사옵니까. 법은 죄인을 벌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덕은 의인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법. 부디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이 의로운 효자를 다시 이승으로 돌려보내 주시옵소서."
두 사자의 주장은 팽팽하게 맞섰다. 한 명은 흔들릴 수 없는 '법'을, 다른 한 명은 그 법을 뛰어넘는 '덕'을 이야기했다. 염라의 법정은 순식간에 거대한 토론장으로 변했다. 판관들은 서로 의견이 나뉘어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법을 한번 무너뜨리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고, 다른 쪽에서는 "효는 모든 행동의 근본이니, 이를 장려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맞섰다. 김 선비의 영혼은 그 거대한 논쟁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운명이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존재는 이미 그의 것이 아니었다.
※ 하늘의 뜻, 옥황상제의 증표
법정의 소란이 극에 달했을 때, 옥좌에 앉아 모든 것을 지켜보던 염라대왕이 마침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위엄은 순식간에 모든 논쟁을 잠재웠다. "모두 조용히 하라."
염라대왕은 깊고 고뇌에 찬 눈으로 두 저승사자와 김 선비의 영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일직의 말도 옳고, 월직의 주장도 틀리지 않다. 법과 덕, 어느 것 하나 가볍다 할 수 없는 저승의 근간이다. 법이 무너지면 질서가 사라지고, 덕이 사라지면 자비가 메마를 것이니, 이는 실로 어려운 문제로다." 그의 목소리에는 왕의 고뇌가 깊이 배어 있었다. 그는 저승의 질서를 책임지는 왕으로서, 법의 편에 서야 함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예외가 반복되면 법은 더 이상 법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잠시 동안의 깊은 침묵 끝에, 마침내 결심한 듯 비장한 표정으로 판결을 내리려 했다. "법은 지엄하고, 명부에 적힌 운명은 거스를 수 없는 법. 이 자의 효심은 가상하나, 저승의 법도를 위해…" 그가 법에 따라 김 선비의 죽음을 선고하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명부전의 천장이 통째로 열리는 듯하더니,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찬란한 황금빛 광선이 옥좌를 향해 곧장 쏟아져 내렸다. 그 빛은 너무나도 신성하고 압도적이어서, 천하의 염라대왕마저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고개를 숙였다. 법정의 모든 판관과 옥졸, 심지어 두 저승사자마저 본능적으로 바닥에 엎드려 부복했다.
빛기둥 속에서,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와 함께 황금색 비단 두루마리 하나가 천천히 내려왔다. 그 두루마리는 저절로 펼쳐졌고, 그 안에는 용이 꿈틀거리는 듯한 힘찬 필체로 쓰인 글자들이 나타나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하늘의 주인이자 모든 신들의 왕, 옥황상제의 칙서(勅書)였다. 칙서의 내용은 장엄한 목소리가 되어 명부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짐이 이르노니, 인간 세상의 모든 법도 위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효(孝)이니라. 효는 하늘을 감동시키고 땅을 움직이는 힘을 가졌나니, 이는 저승의 법보다 우선하는 천도(天道)이니라. 아비의 살을 베어 어미를 먹인 아들이 있었고, 한겨울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아비를 봉양한 아들이 있었으니, 이들의 효심이 어찌 저승의 법도에 묶일 수 있겠는가. 효자 김 아무개의 지극한 효심이 짐의 보좌에까지 닿았으니, 그의 정성을 가상히 여겨 그의 수명을 삼십 년 더 늘려주어, 그 어미가 천수를 누릴 때까지 봉양토록 하라. 이는 짐의 명이요, 곧 하늘의 뜻이니라. 저승의 왕 염라는 즉시 이 명을 받들지어다!"
옥황상제의 판결은 절대적이었다. 그 명이 떨어지는 순간, 일직사자가 들고 있던 붉은 적패지는 한 줌의 재가 되어 바닥으로 스르르 흩어졌다. 그의 권위와 주장은 하늘의 뜻 앞에서 완전히 무력화된 것이었다. 그는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패배감과 경외감에 휩싸여 부들부들 떨었다. 반면 월직사자는 깊이 엎드린 채, 자신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에 조용한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염라대왕 역시 칙서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이며 명을 받들었다. "소신 염라, 옥황상제의 지엄하신 명을 받들겠나이다." 한 인간의 지극한 효심이, 저승의 왕마저 무릎 꿇게 만든 순간이었다.
※ 기적의 아침, 되찾은 삶
하늘의 판결이 내려지자, 김 선비의 영혼을 묶고 있던 차가운 쇠사슬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저절로 풀어졌다. 옥황상제의 칙서에서 뿜어져 나온 황금빛 광선이 그의 영혼을 부드럽게 감쌌다. 지옥의 냉기와 죽음의 공포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하고 평온한 기운이 그의 영혼을 가득 채웠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월직사자의 부축을 받으며 빛으로 가득한 길을 걷고 있었다. 그 길의 끝에는 그가 떠나왔던 낡은 초가집의 모습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돌아가거라, 효자여. 가서 그대의 효를 마저 다하거라." 월직사자의 따뜻한 목소리를 끝으로, 그의 의식은 다시 한번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가… 아가, 정신 좀 차려보거라…!" 애타는 목소리에 김 선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천천히 열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눈물범벅이 된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머니는 자리에 누워 있지 않았다. 분명 위태롭게 숨만 몰아쉬던 어머니가, 자신의 힘으로 몸을 일으켜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얼굴에는 희미하게나마 혈색이 돌아와 있었고, 그녀의 눈빛은 이전처럼 흐리멍덩하지 않고 총기를 되찾아 있었다. 기적이었다.
"어머니… 어머니! 정신이 드시옵니까!" "오냐, 내 아들… 내가 간밤에 아주 흉한 꿈을 꾸었단다. 험상궂은 사내 둘이 너를 어디론가 끌고 가려 하더구나… 내가 아무리 소리쳐도 네가 돌아보지 않아, 내 가슴이 얼마나 철렁했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렸다. 김 선비는 그것이 꿈이 아니었음을 알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살아 돌아온 어머니의 손을 부여잡고, 아이처럼 엉엉 울 뿐이었다. 어머니의 손은 더 이상 얼음장 같지 않았다. 미약하지만 분명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때, 동쪽 창호지 문으로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왔다. 기나긴 밤이 끝나고, 기적 같은 아침이 밝아온 것이다. 햇살은 방 안의 냉기와 어둠을 모두 몰아내고, 두 모자의 얼굴을 따스하게 비추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오후,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현감의 명을 받은 아전들이 쌀과 고기, 그리고 귀한 약재들을 한가득 싣고 그의 집을 찾아온 것이었다. 간밤에 현감의 꿈에 신선이 나타나, "이 고을에 사는 효자 김 아무개의 효심이 하늘을 감동시켰으니, 왕을 대신하여 그를 도우라"는 계시를 내렸다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김 선비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나라에서 내려준 녹봉으로 더 이상 굶주리지 않았고,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여 완전히 건강을 되찾게 해드렸다. 그리고 하늘이 약속한 삼십 년의 세월 동안, 그는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어머니를 봉양하며 효를 다했다. 그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지극한 효심은 저승의 법도마저 바꿀 수 있다는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유튜브 엔딩멘트
지극한 효심으로 하늘을 감동시켜, 저승의 법도를 뒤엎고 새로운 삶을 얻은 김 선비.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운명보다 더 강한 것이 바로 인간의 진심임을 보여줍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인 가장 큰 덕목은 무엇입니까?
하지만 모든 영혼이 김 선비처럼 선한 것은 아닐 터. 만약 평생을 탐욕으로 가득 채운 탐관오리가 죽음의 순간, 저승사자에게 뇌물을 건네며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 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다음 이야기, 『계서야담』이 들려주는 저승사자에게 뇌물을 준 탐관의 끔찍한 결말 편에서, 돈으로 죽음마저 사려 했던 한 남자의 비참하고도 소름 돋는 최후가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