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승사자 앞에서 웃는 선비
저승사자 앞에서 웃는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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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조선시대에 저승사자를 만난 선비가 있었답니다. 죽으러 가는 길인데, 저승사자 앞에서 웃었다는 거예요. 죽음 앞에서 웃다니? 미쳤나 싶으시죠? 그게 아니에요. 이 선비, 평생을 청렴하게 살았던 양반인데요, 저승사자가 와서 "따라오라"고 하니까, 이 사람이 덤덤하게 "알겠소" 하더래요. 그러고는 짚신 끈을 야무지게 조여 매더랍니다. 그런데 저승 명부를 펼쳐 보니, 죄부에는 붉은 글씨가 한 줄 박혀 있고 공덕부는 백지장이었어요. 지옥문이 열리려던 그 순간, 저승차사가 갓을 벗고 무릎을 꿇습니다.
※ 본 이야기는 조선 후기 야담집에 전하는 청백리 설화와 저승 명부 설화를 바탕으로 극적으로 각색한 창작물입니다.
※ 1: 지붕에서 비 새는 집의 도둑
경상도 예천 땅, 산자락에 폭 안긴 개실마을이라고 있었더랍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누구든 눈길이 한 번은 가는 집이 하나 있었지요. 기와집이라서가 아니에요. 그 반대였어요. 지붕에 얹은 이엉이 삭을 대로 삭아서, 비만 오면 방 안에 바가지를 받쳐 놓아야 하는 그런 집이었더랍니다.
그 집에 유청재라는 선비가 살았습니다.
한때는 이 어른이 이웃 고을 현감을 지내셨던 분이에요. 사또라고, 원님이라고 불리던 양반이지요. 그런데 지금은 마을에서 제일 가난한 집에 삽니다. 왜 그런고 하니, 나라 곡식을 축냈다는 죄로 곤장을 맞고 벼슬을 빼앗겼거든요.
관곡이라는 게 무어냐면, 나라 창고에 쌓아 둔 곡식이에요. 흉년 들면 굶는 백성 먹이라고 두는 쌀이지요. 그 쌀 삼백 석이 장부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는데, 그 죄를 유청재 선비가 고스란히 뒤집어썼더랍니다.
마을 사람들 수군거림이 어땠겠어요.
"청렴하다더니, 그 청렴이 죄다 쌀가마니로 갔구먼."
"사람 속은 모르는 거여. 겉으로 글 읽는 척하는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지."
우물가에서, 빨래터에서, 사랑방에서, 이 어른 이야기가 안주처럼 씹혔더랍니다.
이 어른이 현감으로 계실 적 이야기를 좀 해 드릴까요.
부임하시던 날, 고을 아전들이 눈이 휘둥그레졌더랍니다. 새 사또가 가마도 없이, 나귀도 없이, 짚신 신고 걸어 들어오셨거든요. 봇짐 하나에 든 것이라고는 책 몇 권하고 벼루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그해 첫 사흘 만에 아전들이 관례라며 은자 꾸러미를 슬쩍 밀어 넣었는데, 이 양반이 그걸 그대로 마당에 쏟아 놓고 이러셨대요.
"이것이 어디서 나왔는지 나는 아오. 굶는 집 항아리에서 나왔소. 도로 그 항아리에 넣으시오."
그날부터 아전들 눈에 이 어른이 얼마나 미웠겠어요. 특히 차달수라는 이방이 있었는데, 이자가 그 고을에서 삼대째 아전 노릇을 하며 안 해 먹은 것이 없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청렴하다던 원님이, 몇 해 못 가서 나라 곡식 도둑으로 몰려 쫓겨난 거예요.
곤장 백 대를 맞고 관아 문을 나서던 날, 부인 조씨가 달구지를 끌고 왔더랍니다. 피에 젖은 바지를 갈아입히면서 부인이 물었지요.
"여보. 정말 잡수셨소?"
"..."
"그 쌀을 정말 우리 입에 넣었소?"
"부인 손을 좀 주시오."
부인이 손을 내미니, 선비가 그 손을 꼭 잡고 이러셨답니다.
"내가 부인한테 못 할 짓을 참 많이 했소. 그런데 한 가지만 믿어 주시오. 나는 남의 것으로 내 배를 불린 적이 한 번도 없소이다."
부인이 그 말을 믿었느냐고요. 처음 몇 해는 믿었더랍니다. 그런데 사람이 배가 고프면 믿음도 얇아지는 법이에요. 아들이 도둑놈 자식 소리를 듣고 오던 날, 그 얇아진 믿음이 그만 툭 끊어졌지요.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하나 있었어요. 쌀 삼백 석을 먹었다는 사람이, 어째서 삼시 세끼 시래기죽을 먹느냐 이 말이에요.
부인 조씨가 하루는 참다 참다 방문을 열어젖혔습니다.
"여보. 내가 열아홉에 시집와서 지금까지 비단 한 필 걸쳐 본 적이 없소. 그건 다 괜찮소. 헌데 우리 개똥이가, 열두 살 먹은 그 어린것이, 동무들한테 도둑놈 자식 소리를 듣고 코피가 터져 돌아왔단 말입니다."
선비는 잠자코 붓을 내려놓았어요.
"그러니 한마디만 하시오. 아니라고, 내가 안 그랬다고. 관아 문 앞에 가서 한 번만 소리치시오. 그거 한마디가 그리 어렵소?"
"부인."
"말씀하시오."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오."
늘 그 말이었더랍니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오. 십 년째 그 말만 하고 사시니, 부인 속이 얼마나 문드러졌겠어요.
이 어른한테는 남들이 모르는 버릇이 하나 있었습니다.
해마다 섣달그믐이면 헌 도포 한 벌과 짚신 한 켤레를 곱게 개어 머리맡 궤짝에 넣어 두시는 거예요. 부인이 하도 이상해서 물었더니, 이러시더랍니다.
"길 떠날 때 신을 것이오. 언제 부르실지 모르는데, 허둥지둥 나서면 모양이 사납지 않겠소."
'참 별난 양반일세.'
부인은 속으로 혀를 찼지만, 그 도포는 해마다 새로 개켜졌더랍니다.
그 전날 밤에 이런 일도 있었더랍니다. 선비가 부인을 불러 앉히더니, 방구석 낡은 문갑을 가리켰어요.
"부인. 저 문갑 맨 아랫칸은 내가 간 뒤에 열어 보시오. 그전에는 열지 마시고."
"거기 무엇이 들었소?"
"열어 보면 아오. 다만 너무 늦게 열지는 마시오."
부인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요. 뭐 대단한 게 들었겠나 싶었던 거예요.
세월은 흐르고 흘러, 유청재 선비 나이 예순셋이 되던 해였어요.
그해 섣달, 눈이 참 지독하게도 왔습니다. 처마 끝에 고드름이 팔뚝만 하게 열리고, 마당의 장독이 얼어 터지던 밤이었지요.
선비가 자리에 누운 지 보름째였습니다. 기침을 한 번 하면 어깨가 들썩이고, 두 번 하면 이불깃에 붉은 것이 묻어 나왔더랍니다.
부인이 이웃집에 약재라도 얻어 보려고 눈길을 헤치고 나간 사이, 방 안에는 선비와 아들 개똥이만 남았어요. 개똥이는 아버지 손을 붙들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지요.
그때였습니다.
마당의 눈이 뽀드득, 뽀드득 밟히는 소리가 났어요.
'벌써 오셨는가.'
선비는 눈을 떴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기침이 뚝 그쳤더랍니다.
방문 창호지에 그림자 둘이 비쳤어요. 키가 훌쩍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진 사내 둘이었습니다.
문이 스르르 열렸어요.
바람 한 점 없는데 등잔불이 미친 듯이 흔들렸습니다. 검은 도포에 검은 갓, 갓끈까지 새카만 사내 둘이 문지방 밖에 서 있었어요. 얼굴은 분칠한 듯 창백한데, 두 눈만 숯불처럼 붉었지요.
앞에 선 늙수그레한 사내가 두루마리를 촤르륵 펼쳤습니다.
"경상도 예천현 개실촌, 유청재. 계축년 섣달 열엿새, 명이 다했다. 따라오시오."
보통 사람 같으면 어땠겠어요. 기절을 하든지, 살려 달라고 매달리든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벌벌 떨든지 했겠지요.
그런데 이 어른이요.
빙긋.
웃었더랍니다.
죽으러 가는 길인데, 저승사자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면서 어린애처럼 환하게 웃은 거예요.
그러고는 아주 덤덤하게 한마디 하셨습니다.
"알겠소.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소? 신을 것을 꺼내야 해서."
※ 2: 발걸음이 가벼운 죄인
저승사자가 다 무안했겠지요.
"기다려 달라?"
"오래 걸리지 않소. 저 궤짝 안에 도포하고 짚신을 넣어 두었소이다. 삼십 년을 개켜 둔 것이라, 오늘 안 신으면 좀이 슬 것 같아서 말이오."
젊은 쪽 사자가 어이가 없어서 갓전을 들썩였습니다.
"이보시오.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이러시오?"
"저승차사 아니시오."
"알면서 그러시오?"
"알기에 이러는 것이오. 오실 줄 알고 삼십 년을 기다렸는데, 맨발로 따라나서면 서운하지 않겠소."
이 젊은 차사가 이름이 초행이라고, 차사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풋내기였어요. 사람 혼백을 데리러 다닌 게 이제 겨우 백 년 남짓이었지요. 그런데 이런 사람은 처음 봤더랍니다.
늙은 차사는 이름이 묵산이라 했습니다. 이 양반은 아무 말도 안 하고, 그저 선비의 얼굴만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저 웃음을... 내가 어디서 보았더라.'
유청재 선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더니, 자는 아들의 이불깃을 목까지 끌어 올려 주었습니다. 손끝으로 아이의 이마를 한 번 쓸어 주고요.
"아비가 물려줄 게 없어 미안하구나. 그저 부끄러운 것 한 가지 안 물려주고 가는 걸로 갈음하마."
그러고는 궤짝에서 도포를 꺼내 입고, 짚신 끈을 야무지게 조여 매고, 방문을 나섰더랍니다.
마당의 눈은 무릎까지 차 있는데, 세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발자국이 하나도 남지 않았어요.
저승길이라는 게요, 이야기로 듣던 것과는 좀 달랐다고 합니다.
캄캄한 것도 아니고, 무서운 것도 아니고, 그저 온 세상이 잿빛인 길이었대요. 자갈이 깔린 길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양옆으로는 안개가 담벼락처럼 서 있고, 하늘에는 해도 달도 없이 뿌옇기만 하고요.
그 길 위에 혼백들이 줄줄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나같이 난리도 아니었어요.
"차사 나으리! 사흘만! 딱 사흘만 말미를 주시오! 우리 아들놈이 아직 장가를 안 갔소!"
"내 논문서가 아직 궤 안에 있소! 그것만 아들놈 손에 쥐여 주고 오면 안 되겠소?"
어떤 노인은 논문서를 손에 꼭 쥐고 왔더랍니다. 저승길에 논문서가 무슨 소용이겠어요. 그런데도 못 놓는 거예요. 손가락이 하얗게 되도록 움켜쥐고서, 자갈길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한쪽에서는 살이 뒤룩뒤룩 찐 사내가 차사 도포 자락을 붙들고 늘어졌어요.
"내가 누군 줄 아시오? 내가 아랫녘에서 알아주는 부자요! 돈이면 되지 않겠소? 얼마면 되겠소?"
그 소리에 늙은 차사 묵산이 딱 한마디 했습니다.
"이 길에서는 자네 손에 쥔 것이 아니라, 자네가 남에게 놓아 준 것만 셈하네."
그 말에 사내가 제 손바닥을 펴 보더랍니다. 아무것도 없었지요.
그런데 그 아수라장 속에서, 유청재 선비 혼자만 뒷짐을 지고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어요. 콧노래라도 부를 것 같은 걸음이었습니다.
그 걸음 뒤로 안개가 스르르 밀려오는데, 그 안개 속에서 옛일이 그림처럼 떠올랐더랍니다.
계축년 앞으로 팔 년 전, 그러니까 선비가 현감으로 있던 그해였어요.
봄 가뭄이 석 달을 가더니, 여름에는 논바닥이 거북 등처럼 갈라졌습니다. 가을에 벨 것이 없으니 겨울이 어땠겠어요. 고을 사람들이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고, 그것도 없어서 흙을 씹었더랍니다. 아이를 업고 나갔다가 아이만 두고 오는 어미도 있었대요.
관아 창고에는 곡식이 그득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풀려면 감영에 문서를 올리고, 감영에서 조정으로 올라가고, 조정에서 다시 내려와야 해요. 그게 빨라야 두 달입니다.
두 달이면 그 고을 사람 절반이 죽는 판이었지요.
그날 밤, 유청재 현감이 등불을 들고 창고 앞에 섰더랍니다. 아전들이 다 말렸어요.
"사또! 이건 목이 달아나는 일입니다요!"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목이 대수인가. 열어라."
"문서가 없으면 이건 도둑질입니다!"
"그러면 도둑질을 하겠네. 내 이름으로."
그렇게 창고 문이 열렸습니다. 삼백 석이 그 고을 백성들 솥으로 들어갔어요. 죽을 쒀서 아이들 입에 떠 넣던 그 겨울을, 개실마을 근방 사람들은 아직도 기억한답니다.
그런데 봄에 감영에서 조사가 나왔을 때, 장부에는 이상한 것이 적혀 있었더랍니다. 삼백 석 위에 백 석이 더 붙어 사백 석이 되어 있었고, 그 백 석은 차달수 이방이 슬쩍 빼돌린 것이었지요.
조사관 앞에서 유청재 현감은 딱 한마디만 했습니다.
"창고 문을 연 것은 나요."
백성들이 먹었다고 말하면, 그 죽 한 그릇 얻어먹은 사람들까지 줄줄이 끌려가 곤장을 맞을 판이었거든요. 그래서 입을 다물었더랍니다. 십 년을요.
'그 겨울에 살아난 아이들이 지금쯤 장가를 갔겠지. 그거면 되었네.'
초행이가 도저히 못 참겠던 모양이에요. 옆으로 쪼르르 붙더니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선비. 아까 왜 웃었소?"
"웃었소?"
"웃었지요.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소. 사람 데리러 간 지 백 년인데, 우리 얼굴 보고 웃는 인간은 당신이 처음이오."
선비가 잠깐 걸음을 멈추고, 지나온 길을 한 번 돌아보았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빚진 것이 없소. 또 남한테 받을 것도 없소이다. 사람이 말이오, 빚이 있으면 발이 무겁고, 받을 것이 있으면 뒤가 궁금한 법인데, 나는 둘 다 없으니 발걸음이 이리 가벼울 수밖에요."
초행이가 픽 웃었습니다.
"허, 말은 그럴듯하오. 그런데 내가 명부에서 봤소. 당신, 나라 곡식 삼백 석 훔친 죄인 아니오? 그것도 빚이 아니면 무엇이오?"
그 말에 선비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어요. 그저 또 빙긋 웃고는 다시 걸음을 옮길 뿐이었습니다.
바로 그 웃음이었더랍니다.
늙은 차사 묵산의 걸음이 우뚝 멎었어요. 갓 아래 붉은 두 눈이 흔들리고, 두루마리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설마... 설마 그 사람인가.'
저 앞쪽 안개가 스르르 갈라지면서, 검은 기와를 얹은 어마어마하게 큰 문이 나타났습니다. 저승 명부전으로 드는 문이었지요.
그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더랍니다.
※ 3: 백지장이 된 공덕부
명부전 안은 상상하시던 것과 좀 달랐어요.
시뻘건 불구덩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깨비가 방망이를 들고 서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어둑어둑한 대청마루가 끝도 없이 넓은데, 벽이란 벽에는 문서 궤짝이 천장까지 빼곡히 쌓여 있었어요. 궤짝마다 이름표가 붙어 있는데, 그게 다 죽은 사람들 이름이랍니다.
가운데 높다란 자리에 판관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름은 엄장이라 하는데, 저승에서도 인정머리 없기로 소문난 양반이었지요. 눈썹은 서리처럼 하얗고, 붓을 쥔 손가락 마디는 대나무처럼 굵었더랍니다.
그 양옆으로는 귀졸들이 먹을 갈고 있었어요. 사각사각, 사각사각. 그 소리가 어찌나 서늘한지, 웬만한 혼백은 그 소리만 듣고도 오줌을 지린다고 합니다.
그 앞에 먼저 불려 나온 혼백이 하나 있었어요. 아까 길에서 돈이면 되지 않겠느냐고 떠들던 그 부자였습니다.
이 사람 죄부는 두루마리가 마당까지 끌릴 만큼 길었어요. 남의 논을 헐값에 빼앗은 것, 빚 못 갚는다고 이웃을 얼음판에 세워 둔 것, 흉년에 쌀값을 세 배로 올려 받은 것. 그런데 공덕부를 펼치니 딱 두 줄 적혀 있었더랍니다. 절에 시주 오백 냥, 다리 놓는 데 삼백 냥.
"그 시주는 무엇을 바라고 하였느냐."
"그야... 아들놈 과거 급제를 빌었지요."
"그러면 그것은 베풂이 아니라 흥정이다. 저울이 움직이지 않는다."
부자가 비명을 지르며 끌려 나가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처량한지 명부전 기둥이 다 울렸어요.
다음이 유청재 선비 차례였습니다.
"경상도 예천현 개실촌, 유청재. 앞으로 나오라."
선비가 짚신을 신은 채로 마루 한가운데 섰습니다. 등이 꼿꼿했어요.
"죄부를 올려라."
귀졸 둘이 궤짝을 들고 낑낑대며 나왔습니다. 뚜껑을 열고 두루마리를 촤르륵 펼치자, 새하얀 종이 위에 붉은 글씨가 딱 한 줄, 피처럼 선명하게 박혀 있었어요.
관곡 삼백 석 횡령.
그 글씨를 본 순간, 명부전 안이 술렁였습니다. 삼백 석이면 그 시절에 백성 수백 명이 겨우내 먹을 곡식이에요. 그걸 나랏일 맡은 관리가 빼돌렸다? 저승에서 이건 아주 무거운 죄입니다.
판관 엄장이 붓끝으로 그 글자를 툭툭 짚었습니다.
"유청재. 이 기록이 맞느냐."
"..."
"맞느냐 물었다."
선비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조용히 대답했어요.
"관아 장부에 그리 적혔다면, 그리 된 것이겠지요."
이게 무슨 대답이에요. 했다는 것도 아니고, 안 했다는 것도 아니고요.
"그대는 지금 제 목숨줄을 쥔 자리에 서 있다. 변명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변명할 것이 없소이다."
"없다?"
"소인이 그 창고 문을 연 것은 사실이오. 열쇠도 제 손에 있었고, 장부에 적힌 이름도 제 이름이오. 그러니 죄인이 맞소."
옆에 서 있던 초행이가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이 풋내기 차사가 오는 길에 정이 들었던 모양이에요.
"판관 나으리! 이 사람 말은 어딘가 이상합니다! 쌀 삼백 석을 먹은 자가 어찌 시래기죽을 먹고 살며, 어찌 지붕에서 비가 새는 집에 삽니까!"
"차사는 입을 다물라. 이곳은 저승 명부전이지 인정을 파는 저잣거리가 아니다."
초행이가 입술을 깨물고 물러섰습니다.
"공덕부를 올려라."
그 말에 명부전이 조용해졌어요. 죄가 무거워도, 공덕이 그만큼 쌓였으면 저울이 뒤집히는 법이거든요. 살아생전 남에게 베푼 것, 살린 목숨, 감춰 준 허물, 그런 것들이 다 적히는 장부가 공덕부입니다.
귀졸이 궤짝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두루마리를 펼쳤는데요.
텅 비어 있었더랍니다.
종이가 누렇게 바랬을 뿐, 글자가 단 한 자도 없었어요. 백지장이었습니다.
명부전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지요.
"어찌 이럴 수가."
"죄는 붉은 글씨로 한 줄, 공덕은 백지 한 장이라니."
여기에는 저승의 법도가 하나 있었더랍니다.
이승에서 한 선행이 공덕부에 적히려면, 본 사람이 있어야 해요. 누가 보았거나, 누가 알았거나, 하다못해 도움받은 사람이 마음속으로라도 고마워해야 붓이 움직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게 한 일은요, 저승 붓도 그 자취를 잡지 못하는 거예요.
숨어서 한 선행은 향기는 남기되 글자는 남기지 않는다. 저승에서 그리 말한답니다.
사실 이 공덕부라는 장부에는 웃지 못할 사연이 참 많답니다.
동네방네 소문내고 쌀 한 가마 준 사람은 열 줄이 적히는데, 밤중에 남의 집 담 너머로 쌀자루를 넘겨 주고 도망친 사람은 한 줄도 못 적히는 일이 허다해요. 그래서 저승 판관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돈답니다.
착한 사람은 지옥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오고, 영악한 사람은 극락 문턱까지 갔다가 쫓겨난다.
붓끝에서 먹물이 한 방울 툭 떨어졌습니다.
판관 엄장이 붓을 들었습니다.
"유청재. 죄는 명백하고 공덕은 없다. 그대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로다."
그러고는 판결을 적으려 붓끝에 먹을 묻혔지요. 대청 저 끝에서 무거운 쇳소리가 났습니다. 지옥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는 소리였어요. 문틈으로 뜨거운 바람이 훅 밀려 들어왔습니다.
그런데도 유청재 선비는 눈 하나 깜짝 안 했어요.
'그래도 나는 후회하지 않네.'
그 얼굴을 보고 있던 늙은 차사 묵산이, 그 순간 무릎을 꿇었습니다.
쿵.
명부전이 울렸어요. 저승차사가 판관 앞에 무릎을 꿇는 일은 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입니다.
"판관 나으리. 붓을 멈춰 주십시오."
"묵산 차사. 지금 무엇 하는 짓인가."
"소인이... 저 사람을 압니다."
"무어라?"
"소인이 저 사람의 공덕부에 적히지 못한 증인이올시다."
판관 엄장이 붓을 든 채로 굳었습니다. 귀졸들이 갈던 먹을 멈추고, 명부전 천장까지 쌓인 궤짝들이 일제히 삐걱대는 소리를 냈어요.
"차사가 산 자의 일에 증인을 서겠다? 그것은 명부의 법도에 없는 일이다."
"법도에 없으면 오늘 만들면 되지요. 소인이 삼백 년을 이 일 하면서 단 한 번도 판관 앞에 무릎 꿇은 적이 없습니다. 오늘 처음이올시다."
초행이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제 선배를 쳐다봤어요.
'저 어른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야.'
묵산 차사가 천천히 갓을 벗었습니다. 저승차사가 판관 앞에서 갓을 벗는다는 것은, 제 목숨을 걸겠다는 뜻이랍니다.
"소인은 살아생전 이름도 없이 죽어 길바닥에 버려졌던 자올시다. 그런 소인을 사람 모양으로 만들어 준 이가, 지금 저 자리에 서 있습니다."
유청재 선비가 그제야 고개를 돌렸어요. 그 창백한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눈이 아주 조금 커졌더랍니다.
'설마... 자네가.'
※ 4: 이름 없이 묻힌 사내
판관 엄장이 붓을 내려놓았습니다.
"말해 보라. 무슨 사연인가."
묵산 차사가 마루 바닥에 이마를 대고 이야기를 시작했더랍니다. 목소리가 자꾸 갈라져서, 몇 번이나 말을 멈췄다지요.
"삼십 년 전, 갑술년 흉년을 기억하십니까."
갑술년이라면 나라 안이 온통 뒤집혔던 해예요. 남쪽에서는 굶주린 사람들이 길바닥에 쓰러지고, 북쪽에서는 역병이 돌아서 마을 하나가 통째로 비었다는 소문이 돌던 그런 해였지요.
"소인은 그때 떠돌이 등짐장수였습니다. 처자식도 없고, 고향도 없고, 이름 석 자도 부르는 이 없이 이 고을 저 고을 떠돌던 놈이었지요. 그러다 문경 새재 넘어가는 고갯길에서 그만 쓰러졌습니다. 사흘을 굶은 몸이라 눈 한 번 감았다가 다시 못 떴어요."
"그래서."
"그런데요, 나으리. 사람이 죽어도 눈이 감기지 않으면 혼백이 제 몸뚱이 옆에 그대로 앉아 있게 됩니다. 소인이 꼭 그랬어요. 제 시체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사람들이 오가는 걸 다 봤습니다."
그 고갯길로 사람이 안 지나갔겠어요. 지나갔지요. 그런데 다들 얼굴을 돌리고 종종걸음으로 가 버렸더랍니다.
"역병이여, 역병. 손대면 옮아."
"관에서 치울 테지. 우리가 무슨 상관이여."
그렇게 사흘이 갔습니다. 까마귀가 내려앉고, 들개가 킁킁대며 다가오고요. 혼백이 된 사내가 제 몸뚱이를 지키겠다고 팔을 휘둘러 봐야, 손이 허공만 지나갈 뿐이었지요.
"나흘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웬 젊은 선비가 고개를 넘어오더군요."
허름한 도포에 다 해진 짚신을 신은 젊은이였더랍니다. 등에는 책 궤짝을 지고 있었고요. 과거 보러 한양 가는 길이었대요.
이 젊은이가 시신을 보더니 우뚝 멈춰 섰습니다.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짐을 내려놓고 도포 소매를 걷었어요.
"그 선비가 제 몸뚱이를 안아 올렸습니다. 역병 시체를요. 맨손으로요."
"그런데 나으리. 그 선비가 시신을 안아 올리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아십니까."
"무엇을 했는가."
"제 도포를 벗어서 소인의 얼굴을 덮어 주었습니다. 까마귀가 눈을 파먹지 못하게요. 그러고는 그 옆에 밤새 앉아 있었습니다. 들개가 다가오면 돌을 던져 쫓고, 또 다가오면 또 쫓고요."
초행이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어요.
'남도 아니고 생판 모르는 시체를 지키느라 밤을 새웠다고?'
"새벽녘에 그 선비가 소인의 시신을 보면서 이러더군요."
세상에 태어나 죽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죽어서 짐승 밥이 되는 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소.
젊은 선비는 그 길로 산 아래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관을 사려는데 돈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등에 진 책 궤짝을 통째로 팔았더랍니다. 과거 보러 가는 선비한테 책이 무엇이겠어요. 목숨줄이지요. 그것도 모자라서 제 도포까지 벗어 주고, 널빤지 관 하나를 얻었습니다.
"양지바른 자리를 찾는다고 산을 세 번이나 오르내리더군요. 땅이 얼어서 곡괭이가 튕겨 나가는데도, 꼬박 이틀을 팠습니다. 손바닥이 다 터져서 피가 흐르는데도 말입니다."
무덤을 다 쓰고 나서, 젊은 선비가 나무를 깎아 비목을 하나 세웠어요. 거기에 이렇게 썼더랍니다.
이름 모를 나그네의 무덤.
그러고는 마을에서 얻어 온 막걸리 한 사발을 흙 위에 부으면서, 혼잣말처럼 이러더랍니다.
"뉘신지는 모르나, 세상에 나셨으면 이름이 있었을 것이고, 이름이 있었으면 누군가 그 이름을 불러 주었을 것이오. 오늘은 내가 그 사람 대신 절을 하겠소."
그러고 두 번 절을 했대요.
명부전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 선비가 과거를 보러 가던 길이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책 궤짝을 팔았으니 볼 책이 없고, 이틀을 무덤 파느라 날짜를 넘겼으니 시험장 문은 이미 닫혔지요. 그해 과거는 그렇게 날아갔더랍니다. 젊은 선비는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가서, 삼 년을 더 기다렸다가 다시 시험을 봤대요.
"소인이 차사가 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 선비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찾지 못하였는가."
"명부에 없었습니다. 이름을 몰랐으니까요. 얼굴은 삼십 년이 지나 늙었을 것이고요. 그래서 소인은 사람을 데리러 갈 때마다 얼굴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혹시 이 사람인가 하고요. 삼백 년을 그리 들여다봤습니다."
"그런데 오늘 알아보았구나."
"웃는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그 고갯길에서, 흙 묻은 손으로 절을 하고 일어서면서 그 선비가 딱 저렇게 웃었거든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묵산 차사가 고개를 들었어요.
"그 선비가요. 이듬해 한식날에 또 왔습니다. 술 한 병하고 북어 한 마리를 들고요. 그다음 해에도 왔습니다. 그다음 해에도요."
"몇 해나 왔는가."
"이십 년을 왔습니다, 나으리."
명부전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남의 무덤에 이십 년을."
"제 조상 산소도 삼 년이면 잊는 세상에."
"그 무덤에 사람 손길이 닿을 때마다, 갈 곳 없던 소인의 혼백에 힘이 붙었습니다. 무주고혼으로 떠돌다 흩어질 팔자였는데, 그 절 두 번과 술 한 사발 덕에 소인이 저승 문턱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이 검은 도포를 입게 되었지요."
묵산 차사가 유청재 선비를 돌아보았습니다. 붉은 두 눈에서 시커먼 눈물이 뚝 떨어졌어요.
"이름 모를 나그네가, 지금 나으리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유청재 선비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더랍니다.
"그런 일이 있었소?"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글쎄올시다. 젊었을 적에 고갯길에서 누굴 묻어 준 일이 있기는 한 것 같은데, 그게 그리 대단한 일이었소? 사람이 사람을 땅에 묻어 주는 것이야 당연한 것 아니오."
이 대답에 명부전이 또 한 번 술렁였어요.
바로 그때였습니다.
명부전 안쪽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울리기 시작했어요. 쿵. 쿵. 쿵. 궤짝들이 흔들리고, 등불이 일제히 파랗게 타올랐습니다.
귀졸들이 일제히 엎드렸어요.
진홍빛 곤룡포를 입고, 구슬발이 늘어진 면류관을 쓴 어른이 걸어 나오셨더랍니다.
염라대왕이었습니다.
※ 5: 넘쳐 버린 공덕 창고
염라대왕이 자리에 앉으면서 첫마디를 이렇게 하셨어요.
"삼백 년을 일한 차사가 갓을 벗었다기에 나와 보았다."
판관 엄장이 황급히 허리를 굽혔습니다.
"대왕님. 이 자는 관곡을 축낸 죄인이옵고, 공덕부는 백지올시다."
"그 백지가 이상하지 않은가."
"예?"
"사람이 예순 해를 살았는데 공덕이 한 줄도 없다면, 그건 그자가 악해서가 아니라 우리 붓이 게을렀던 것이다. 이승 장부를 다시 가져오너라. 갑술년부터 계축년까지, 예천현 것을 전부."
명부전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귀졸 수십이 궤짝을 지고 오가는데, 먼지가 안개처럼 피어올랐어요.
먼저 나온 것이 관아 장부였습니다. 염라대왕이 손끝으로 종이를 쓸어 보시더니, 눈썹을 한 번 치켜올리셨어요.
"이 글씨는 두 사람 것이다."
"두 사람이라 하심은."
"삼백 석까지는 붓이 곧고 먹이 진하다. 그 뒤에 붙은 백 석은 붓이 떨리고 먹이 묽다. 나중에 덧쓴 것이야. 이 백 석을 쓴 자를 불러라."
그런데 그 사람이 아직 이승에 살아 있으니 부를 수가 있나요. 대신 저승에서는 그 사람 이름이 적힌 궤짝을 열면 다 나온답니다.
궤짝 이름표에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예천현 이방 차달수.
두루마리를 펼치니 나오는 것마다 가관이었지요. 백성 부역 값을 가로챈 것, 송사 붙은 집 양쪽에서 다 뇌물을 받은 것, 그리고 갑술년 그해 창고에서 백 석을 빼내 제집 광에 쌓아 둔 것.
"그자의 죄부에는 스물세 줄이 적혔고, 공덕부에는 세 줄이 적혔습니다. 그 세 줄이 무엇인고 하니, 제 어미 약값을 대고, 자식들을 굶기지 않은 것이올시다."
판관 엄장이 두루마리를 읽어 내리다가 혀를 찼어요.
"제 식구만 챙긴 공덕이라. 이런 것은 저울에 올려도 눈금이 겨우 흔들릴 뿐입니다."
"제 죄를 남의 이름 밑에 숨겼구나. 이자는 뒤에 따로 셈하겠다."
염라대왕이 이번에는 유청재 선비를 내려다보셨습니다.
"유청재. 그대는 어찌하여 십 년을 입을 다물었는가."
"말하라."
선비가 그제야 처음으로 목소리를 조금 높였더랍니다.
"대왕님. 제가 입을 열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 겨울에 죽 한 그릇 얻어먹은 사람이 사백 명이 넘습니다. 관에서 조사가 시작되면 그 사람들이 다 끌려갑니다. 곤장을 맞고, 가산을 뺏기고, 도로 굶습니다. 겨우 살려 놓은 목숨을 제 결백 하나 밝히자고 도로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대의 처자식은."
그 말에 선비가 잠깐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것이 제 죄올시다. 백성 앞에서는 떳떳했으나, 제 처와 자식 앞에서는 평생 죄인이었습니다. 그것만은 지옥에 가서 갚겠습니다."
염라대왕이 한참을 말없이 내려다보시다가, 손을 드셨어요.
"공덕부를 다시 펼쳐라. 그리고 그 겨울 예천현에서 죽 한 그릇 먹고 살아난 자들을 전부 호명하라."
그때부터 벌어진 일을요, 저승에서도 삼백 년 만에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고 합니다.
백지였던 두루마리에 글자가 하나둘 돋아나기 시작했어요. 마치 마른 논에 물이 차오르듯이요.
정월 초하루, 아이 업은 여인에게 죽 두 그릇.
정월 초사흘, 눈먼 노파에게 좁쌀 두 되.
정월 초닷새, 열병 든 아이 셋에게 미음.
글자가 한 줄 돋을 때마다, 명부전 저 뒤에서 혼백이 하나씩 걸어 나왔습니다. 이미 저승에 와 있던 사람들이었지요.
허리가 굽은 노파가 나와서 절을 했어요.
"소인은 그해 겨울에 죽었어야 할 목숨입니다. 사흘을 굶고 얼어 있는데 관아에서 죽이 나왔지요. 그 죽 덕에 십오 년을 더 살고, 손주 혼례까지 보고 왔습니다."
젊은 여인도 나왔습니다.
"제 아이 셋이 그 겨울을 넘겼습니다. 저는 지금 여기 있지만, 그 아이들은 아직 이승에 있습니다. 셋 다 자식을 낳았고요."
그렇게 나온 혼백이 하나, 둘, 열, 백... 두루마리는 마루를 덮고, 기둥을 감고, 문지방을 넘어 마당까지 굴러 나갔습니다. 귀졸들이 새 궤짝을 가져오고, 또 가져오고, 나중에는 공덕부 창고 문이 닫히질 않았더랍니다.
초행이가 두루마리 끝자락을 붙들고 훌쩍이고 있었어요. 저승차사가 우는 걸 보고 귀졸들이 다 놀랐지요.
'내가 이 사람더러 죄인이라 그랬지. 도둑이라 그랬지.'
"공덕이라는 게 참 묘한 것이다."
염라대왕이 말씀을 이으셨어요.
"쌀 한 되를 주면 공덕 한 되가 아니다. 그 쌀로 살아난 사람이 또 남을 살리면 그것도 이자처럼 붙는다. 그래서 저승 셈은 이승 셈과 달라. 이승에서는 주면 줄어들지만, 여기서는 준 것만 남는다."
판관 엄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어요.
"사백일곱 명이올시다. 그리고 그 사백일곱이 낳은 자식과 손주까지 세면... 세면..."
"세지 마라. 셈이 안 될 것이다."
염라대왕이 껄껄 웃으셨습니다. 저승에서 대왕이 웃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요.
"쌀 삼백 석이 없어졌다 하였지. 없어진 게 아니라, 사람이 되어 걸어 다니고 있었구나."
그런데 여기서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유청재 선비가 그 자리에 무릎을 꿇더니, 이렇게 청하는 겁니다.
"대왕님. 소인이 한 가지만 아뢰어도 되겠습니까."
"말하라."
"차달수 이방을 너무 무겁게 다스리지 말아 주십시오."
명부전이 웅성거렸습니다. 제 인생을 통째로 망가뜨린 자를 두둔하다니, 저승 귀졸들도 어이가 없었던 모양이에요.
"그자는 그대에게 십 년의 누명을 씌웠다."
"압니다. 그런데 그자도 딱한 데가 있었습니다. 그 집에 굶는 자식이 다섯이었고, 아전이라는 게 나라에서 녹봉 한 푼 안 주는 자리올시다. 굶다 보면 손이 먼저 움직이는 법이지요. 물론 그것이 옳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그자가 뉘우칠 기회는 한 번 주십사, 그 말씀입니다."
염라대왕이 면류관 구슬발 너머로 한참을 내려다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오늘 저승사자 앞에서 웃은 사람 하나를 보았고, 원수를 위해 무릎 꿇는 사람 하나를 보았다. 두 사람인 줄 알았더니 한 사람이로구나."
※ 6: 문갑 맨 아랫칸
염라대왕이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유청재의 죄부를 태워라. 나라 곡식을 푼 것은 죄가 아니라 관리의 도리였다. 그 도리를 다한 자를 벌한 것은 이승의 법이 어두웠던 탓이지, 저승 저울이 기울 일이 아니다."
붉은 글씨 한 줄이 적힌 두루마리에 파란 불이 붙더니, 재도 안 남기고 사라졌더랍니다.
"그리고 이자의 명은 아직 남았다."
"예? 대왕님, 명부에는 분명 계축년 섣달로."
"그 명부가 짧았던 것이다. 공덕 사백일곱에서 열다섯 해를 떼어 돌려주어라. 살려 준 목숨이 제 목숨을 늘려 준 것이니, 이것은 은혜가 아니라 받을 것을 받는 것이다."
유청재 선비가 놀라서 고개를 들었어요.
"대왕님, 소인은 이미 갈 채비를 다 하고 왔습니다."
"그래서 웃었다지."
"예."
"그러니 열다섯 해를 더 살고, 그때 다시 그 웃음으로 오너라. 그때는 내가 문 앞까지 나가 맞으마."
그러고는 묵산 차사를 부르셨습니다.
"묵산. 네가 데려온 자이니, 네가 데려다주어라."
"황공하옵니다, 대왕님."
"그리고 오늘 네가 갓을 벗은 일은, 명부 법도에 어긋났으나 사람의 도리에는 맞았다. 그 갓, 다시 쓰라."
돌아가는 길은 올 때보다 훨씬 짧았다고 합니다.
문지방을 넘기 전에 유청재 선비가 묵산 차사의 손을 잡았어요.
"내 자네한테 한 가지 미안한 것이 있네."
"말씀하십시오."
"자네 비목에 이름을 못 써 주었네. 이름이 무엇인가."
묵산 차사가 삼십 년 만에 처음으로 웃었더랍니다.
"이름 모를 나그네. 그 이름이 좋습니다. 그 이름 덕에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한편 이승에서는요.
개실마을 그 낡은 초가에 곡소리가 났습니다. 이웃들이 모여서 얇은 널빤지 관 하나를 짜 놓고, 부인 조씨는 아들 개똥이를 끌어안고 실신하기를 몇 번이나 했지요.
염을 마치고 관 뚜껑을 덮으려던 참이었습니다.
관 속에서 기침 소리가 났어요.
콜록.
사람들이 뒷걸음질을 치다가 마당에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관 속에 누워 있던 선비가 눈을 뜨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켰어요.
"...이보시오. 내가 도포는 입고 있는데, 짚신은 어디 갔소?"
죽었다 살아난 사람 첫마디가 짚신 타령이니, 사람들이 울다가 웃었더랍니다.
부인 조씨가 남편을 붙들고 통곡을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어요. 문갑 맨 아랫칸이요.
떨리는 손으로 그 칸을 열었더니, 기름 먹인 종이로 겹겹이 싼 꾸러미가 하나 들어 있었습니다.
풀어 보니 낡은 장부였어요.
갑술년 겨울, 관곡 배분기.
그 안에는 마을 이름, 집주인 이름, 식구 수, 내준 곡식의 되와 홉까지 빼곡히 적혀 있었더랍니다. 사백일곱 집이요. 그 아래에는 지난 십 년간 선비가 품을 팔고 글씨를 써 주고 받은 삯을 한 푼 두 푼 모은 기록이 또 있었어요. 나라에 갚겠다고, 죽기 전에 백 석은 채워 놓겠다고 적어 놓았지요.
맨 뒷장에 짧은 글이 있었습니다.
부인 보시오. 이 장부는 내가 죽은 뒤에도 관가에는 내지 마시오. 이 이름들이 밝혀지면 이 사람들이 다칩니다. 그저 부인만 보고, 이 남편이 도둑은 아니었구나 그것만 알아주시오. 평생 고생만 시켜 미안하오.
부인이 그 종이를 가슴에 안고 마당에 주저앉아 목을 놓았습니다.
"이 답답한 양반아! 이걸 왜 이제야 보여 줘! 왜 이제야!"
그런데요, 그날 밤 마을에 또 한 가지 일이 벌어졌더랍니다.
이웃 고을 이방 차달수가, 한밤중에 맨발로 개실마을까지 뛰어왔어요. 마당에 엎어져서 머리를 땅에 찧는데, 그 소리가 온 동네에 들렸답니다.
"사또! 사또!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이 사람이 그날 밤 꿈을 꾸었대요. 검은 도포에 검은 갓을 쓴 사내가 머리맡에 앉아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제 얼굴만 들여다보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러다 딱 한마디 하고 사라졌답니다.
"자네 궤짝은 이미 저승에 있네. 이승에서 비울 텐가, 저승에서 비울 텐가."
차달수는 이튿날 감영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 자수를 했습니다. 광에 쌓아 둔 것을 전부 토해 내고, 매를 맞고, 먼 섬으로 귀양을 갔지요. 그런데 귀양지에서 그 사람이 글을 가르치며 남은 생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나중에 전해집니다.
마을 사람들 얼굴이 그날 이후로 싹 달라졌더랍니다.
우물가에서 제일 크게 험담하던 아낙이 제일 먼저 쌀 됫박을 이고 왔어요. 문 앞에 놓고는 얼굴을 못 들고 돌아섰지요.
"내가 저 어른 욕을 얼마나 했는데... 그 겨울에 우리 시아버지가 잡순 죽이 저 어른 죽이었네."
사랑방에서 안주 삼아 씹던 노인들도 지팡이를 짚고 찾아와서 마당에 절을 하고 갔더랍니다.
진실이 밝혀지자 나라에서 유청재 선비에게 벼슬을 도로 내리려 했더랍니다. 그런데 이 어른이 사양하셨어요.
"내가 벼슬을 잃고 십 년을 살아 보니, 백성 마음이 어떤지 그제야 알겠더이다. 이제 와 관복을 입으면 그 십 년이 아깝습니다."
대신 마을 아이들을 모아 놓고 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서당에서 배운 아이 중 하나가 아들 개똥이인데, 이 아이가 훗날 과거에 급제해서 고을 원님이 되었더랍니다. 부임하던 날, 아버지가 그랬듯이 짚신을 신고 걸어 들어갔다지요.
개실마을 어귀에는 돌 하나가 섰습니다. 살아난 사백일곱 집이 한 되씩 쌀을 모아 세운 비석이었어요. 거기에는 이렇게 새겨졌답니다.
굶는 백성을 위해 홀로 도둑이 된 사람.
유청재 선비는 그로부터 딱 열다섯 해를 더 사셨습니다. 일흔여덟에 자리에 누우셨는데, 그날도 머리맡에 도포와 짚신이 곱게 개켜져 있었더랍니다.
숨을 거두시던 밤, 방문 밖에 검은 그림자 둘이 섰어요. 앞에 선 사내가 갓을 벗고 깊이 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이 어른은요.
빙긋 웃으셨더랍니다.
사람이 죽음 앞에서 웃을 수 있다는 게, 참 대단한 일이지요.
그런데 그 웃음은 용감해서 나오는 게 아니랍니다. 남한테 부끄러운 것이 없으면, 그냥 저절로 나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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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유청재 선비가 저승사자 앞에서 웃을 수 있었던 건 용감해서가 아니었지요. 남한테 부끄러울 것이 없으니 저절로 나온 웃음이었어요. 우리도 언젠가 그 길을 갑니다. 그때 웃으며 갈 수 있으면 그것이 잘 산 인생 아니겠습니까. 오늘 하루도 부끄럽지 않게, 편안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눌러 주시고, 다음 이야기에서 또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